베트남 처갓집 방문(실천시선 227)
1998년 『문화일보』로 등단한 김명국 시인의 첫 번째 시집. 등단 후 오랜 시간 정련해온 작품들이 실린 이 시집은 한국 농촌의 애환과 베트남 농촌의 일상이 교묘하게 교차되어 있다. “꿈이 있다면 비록 허름하더라도 내 집을 갖는 일”이라고 말하는 시인은 “옆집에서 넘어온 오이순을 탐내지 않”고 “봄이 되어 제비가 찾는다면 집을 짓게 내버려두리라”며 가진 것을 놓아버림으로써 그동안 잃어버렸던 것들을 되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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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1998년 『문화일보』로 등단한 김명국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이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었다. 등단 후 오랜 시간 정련해온 작품들이 실린 이 시집은 한국 농촌의 애환과 베트남 농촌의 일상이 교묘하게 교차되어 있다. "꿈이 있다면 비록 허름하더라도 내 집을 갖는 일"이라고 말하는 시인은 "옆집에서 넘어온 오이순을 탐내지 않"고 "봄이 되어 제비가 찾는다면 집을 짓게 내버려두리라"며 가진 것을 놓아버림으로써 그동안 잃어버렸던 것들을 되찾고 있다.
나는 꽃밭으로 출근한다
시집의 1부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들은 아직 결혼을 하지 못한 시인이 살아가는 농촌이 배경이다. 서른이 다 되어서도 변변한 직장이 없어 어머니의 속을 태우던 시인은 마지막 이력서를 넣은 곳마저 아무런 연락이 없자 홀로 불 켜진 방에서 "시 같지 않은 시나 쓰고 앉아 있는 내가 죄스럽고 미안하다"(「이립(而立)」)고 말한다. 그리고 다음 날 부족했던 잠을 몰아서 한꺼번에 죽어라 자고 꽃밭으로 나간다. 그는 꽃밭으로 출근한다. 직장 동료는 청보리와 버드나무이며, 출근 시간은 느지막이 아침을 먹고 나서이다.
부지런을 떨기보다는 게으르게,
곡식을 심고 가꾸고 거두는 일만은 잊지 않으리라
가난은 수치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툇마루에 드는 봄볕처럼
남은 생(生)은 그렇게 작고 하찮은 일에
다 써버린대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리,
꿈이 있다면 세상의 포근한 집 한 채 되는 일이다
_「굴뚝집」 부분
오직 빠름만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한 발짝 이탈한 시인은 자신의 마음속에 조그만 집 한 채를 짓고 '욕심'을 부려놓는 대신 '삶'을 짊어지기로 한다. 혹자의 눈에는 게으르게도 보일 수 있지만 제 할 일을 다 하는 농촌에서의 삶은 "가난은 수치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 일깨운다. 군불로 지핀 아랫목에서 더운밥을 함께 먹고, 추위가 가시면 한뎃부엌의 낮은 굴뚝에서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집. 그곳에 살며 퇴비를 나르며 농사일을 하고, 때로는 송아지를 얻을 기쁨에 밤새워 보름달 같은 전등을 밝히는, 늦은 밤 홀로 책상에 앉자 시 한 편을 마련하는 삶은 느리지만 결코 게으르지 않다.
풀 끝에 이슬을 손톱으로 톡톡 건드려
밤새 오므렸던 채송화 꽃송이를 부끄럽게 벌리면서
고요한 하루가 시작된다
봉숭아꽃들이 줄을 지어 늘어선 마당 한 귀퉁이
민들레가 피었던 산 밑 방죽에서부터
들판 안개가 살며시 밀려난다
나는 깊은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곤 한다
울창한 수목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숲 오솔길
잎이 푸른 한 그루 상수리나무가 되고픈 시절이 있었다
(중략)
줍지 않은 논바닥 진흙땅에 박힌 이삭과도 같이
하늘 우물에 빠뜨린 눈썹 몇 개쯤 아득히 잊고
갈수록 빛이 나는 저 억새풀밭에 억새꽃이라든가
갈대가 바람에 몸을 꺾는 들판
후두두 잎 턴 싸리나무가 기러기 울음에 젖을 때
마음의 장작에 불씨 몇 줌 꺼내 노을을 지피고
감나무, 그 붉디붉은 전설이 까치밥으로 영근 대숲 마을에서
나는 동면하는 산짐승마냥 긴 겨울을 나고
이른 봄 햇살로 다시 태어나리라
_「대숲이 있는 작은 마을」 부분
시인이 그리는 농촌은 쌀값이 형편없이 떨어져서 갈수록 삶이 팍팍해지지만 "태풍 한번 없이 지낸 논에 나락이 그득그득 들어차"고 "강아지를 옹골지게 열여섯 마리나 낳"(「풍년」)은 것에 감사하는, 물질적으로는 조금 부족할지도 모르나 마음만은 풍성한 곳이다. 그간에 시들이 한국의 농촌을 주로 아픔과 절망으로 그린 것에 비해 시인은 농촌의 긍정적인 모습에 더 주목한다. 그는 도시로부터 버림받은 농촌이 아니라 도시가 잃어버린 것을 지켜내는 농촌을 그리며 긍정한다.
다른 듯 닮은 삶―한국과 베트남, 도시와 농촌
깜짝, 밀림에서 튀어나온 뱀처럼 날은 징글징글 더운데
무슨 이따위로 생겨먹은 선풍기도 다 있나 싶은
중고 선풍기도 봤고,
썩을 대로 다 썩어빠져서
무슨 이런 오토바이가 다 있나 싶은,
털털거리며 비포장 길을 달릴 수 있다는 게 볼수록
신기하고 기가 막히기만 한
오토바이도 봤는데,
무슨 이런 사람들이 다 있나 싶은
처갓집에서
찌는 듯한 더위, 비자까지 받고 가서
면(面) 이발관에서 머리도 한번 깎고
한 달을 살다 왔다
죽는 줄 알았다
_「눌려서 떡이 된 오리온 초코파이 정(情)」 전문
시집 『베트남 처갓집 방문』은 대한민국의 농촌과 베트남의 농촌 풍경이 담겨 있다. 대를 엮어 울타리를 만들고 논 가운데 쇠뜸부기사촌과 쇠물닭이 사는 한국과, 벌레를 잡아먹는 도마뱀들이 벽을 기어 다니고 물고기를 잡아 키우는 양식장 같은 물웅덩이를 변소간으로 쓰는 베트남은 서로 다른 듯하면서도 어딘가 닮아 있다.
무더위와 낯선 사람들이 시인을 파김치로 만들어놓지만 그런 깜짝 놀랄 만한 경험은 곧 장인의 낡은 집을 어쩌면 좋을까 걱정으로 바뀐다. "벌어먹고 살기가 힘든 게 여기나 저기나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시인의 몇 번의 처갓집 방문은 아내의 고향인 베트남의 문화와 그곳 사람들을 서서히 받아들이게 해주었다. 그런 경험을 통해 시인은 "제사를 극진히" 하면서도 조상을 위해 매일 향을 피우고(「끼니」), 닭 대신 오리를 잡아 사위를 대접하며(「각별한 식구」),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위해 신 과일을 구해주는(「입덧」) 그곳이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벌어먹고 살기가 힘든 게 여기나 저기나 매한가지
그렇게 서로들 서로를 동경하며 살아가고 있었을 뿐,
목마르면 한 개에 천 원 하는 야자열매를 묵직한 칼로 깎아서 한번 자셔보는 일뿐
너무 욕심내지도 그렇다고 더 나무라지도 않겠습니다
고개 돌리고 있으면 푸른 논둑 한가운데
반듯하게 자리한 조부모를 모신 분묘가 보일 테니까요
밭이 아니라 논 한가운데 조상의 묘가 있다는 것이 이채롭다면 이채로운,
자동차보다는 오토바이가 눈에 더 많이 띄는 곳,
여기가 바로 동탑 처갓집입니다
_「집 걱정」 부분
시집의 해설에서 문학평론가 김영범은 "이런 익숙함과 애정은 주체가 기억하는 과거의 한국이 거기에 포개져 있어 가능한 것"이라 말한다. "새벽잠을 깨우는 닭?오리?돼지?개 등 가축의 왁자지껄함(「기상나팔」), 처조모의 제사를 잔치처럼 준비하는 대가족의 모습(「할머니 제사」), 아이의 상처에 '약이 된다는 풀'을 짓이겨 발라주는 어른들(「바늘」)"이 바로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지금 베트남에 한국의 과거가 포개져 있다면, 한국의 농촌은 도시의 과거가 포개져 있는 곳이다. 도시인들의 마음에서 멀고 눈에 낯선 농촌은 어쩌면 우리 안의 타국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해마다 귀농 인구가 늘고 있는 것은 농촌이 단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낭만적인 '과거의 땅'이기 때문은 아니다. 사람들은 오히려 도시가 잃어버린 미래가 농촌에 남아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김명국 시인의 시를 읽어보면 수긍이 가능할 것이다. 그곳에는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이들이 찾아들어 오래도록 '느리게' 궁구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 "길 가는 사람을 만나면 자가용 운전자는/한 번쯤 멈췄다 가는 것이 예의인"(「첫 번째 시집」) 그곳에 말이다.
§. 추천의 글
김명국의 첫 시집은 베트남에서 시집온 아내의 친정 동네에 대한 지극한 풍물지이다. 그는 백석의 「가즈랑집」풍으로, 왕겨 타는 냄새와 물웅덩이 화장실, 특별한 날에만 신는 운동화를 모셔둔 채 맨발로 뛰는 아이들이 있고, 마당엔 돼지와 오리 떼, 도마뱀들이 수시로 출몰하는 처갓집을 안간힘으로 관찰한다. 쌀국수와 망고, 짜우라는 물소와 전통 떡 반뗏 등 이국의 허름한 풍물에 대한 장황하기까지 한 집착이 일견 생급스럽기도 하지만 문명과 시류 이전의 사람살이의 진정에 긴절해서일까. 우리나라의 육칠십 년대쯤으로나 가름될 그런 '구닥다리 풍경'의 파노라마에 첫 시집을 온통 할애해버린 시인의 미감은, 아마도 '대숲이 있는 작은 마을'에 김명인 시인의 「너와집 한 채」와도 같은 「굴뚝집」 한 채를 짓고 싶은 마음에 근거할 터. 논과 텃밭 조금, 초가지붕과 낡은 자전거 한 대, 굴뚝의 참새 소리에 눈뜨는 아침과 시로 맑아지는 점심때가 있고, 저녁이면 마루에 등을 거는 집에서 "남은 생은 그렇게 작고 하찮은 일에/다 써버린대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삶을 도모하는 시인의 반문명, 반자본적 궁리에 대고 나는 도대체 무어라고 훈수를 둘 수 있으랴.
_ 고재종(시인)
§. 시인의 말
우기(雨期)만 되면 구멍 뚫린 지붕에서 뚝뚝 비가 새는 집이라고 했다
어머니의 강인 메콩강에서 갈라져 나온,
마을 앞을 흐르는 물길이 혹 범람하기라도 하는 날이면
부엌 바닥까지 물이 들어차는 집,
삼대(三代)가 함께 살고 있는 집이라고,
아내가 살던 집은 그랬다
옅은 안개가 낀 이른 새벽에는 물비린내 물씬 풍기는 강을
먼데 장(場)이라도 가려는지,
베트남식 삿갓 모자인 논을 쓰고
앞뒤로 두 사람이 쪼그리고 앉아 노를 저어서
나무로 만든 쪽배가 하나 지나가곤 했다
나는 흙내 섞인 그 물비린내가 베트남 남부,
아내가 나고 자란 고향의 체취라고 생각한다
입고 있던 옷 어딘가에는 지금도
끼니를 잇기 위해 불을 때서 밥해 먹던 그을음 냄새와
장인어른이 지극정성으로 제단에 올리셨던
향냄새가 배어 있을 것만 같다
오랜 시간이 흘러 어쭙잖은 첫 시집을 세상에 내놓는다
아내와 처갓집 식구들에게는 누(累)가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며,
비록 말은 통하지 않지만, 눈빛으로 알아들으리라 믿으며,
언젠가 꼭 다시 가서 건네게 될 이 시집이
조금이라도 자랑스러웠으면 좋겠다
_ 김명국
목차
목차
첫 번째 시집 / 새끼 낳는 저녁 / 굴뚝집 / 눈 더미에 꽂아놓은 눈삽 하나가 / 이립(而立) / 꽃밭 근무 /
한뎃부엌 목욕물 불 때기 / 대숲이 있는 작은 마을 / 쇠뜸부기사촌 둥지 / 제사 / 밤 껍질 / 꽃 피는 옛집 / 외바퀴 손수레 상여 /
망종(芒種) / 마루 등을 켜며 / 싸리꽃 공룡 / 육묘장 / 풍년
제2부
눌려서 떡이 된 오리온 초코파이 정(情) / 베트남 처갓집 방문 / 왕겨 타는 냄새 / 각별한 식구 / 외갓집 망고나무 /
물웅덩이 화장실 / 뒤란에다 스무 마리 남짓 오리를 키우는 집 / 맹그로브 정글에 베트콩이 없다 / 집 걱정 /
뒷마당에 찍 갈겨진 오리 똥 / 불씨 / 끼니 / 이발소 / 채과(菜果) / 돼지 실은 오토바이 / 작별
제3부
다래끼 / 귀농 현상 / 코 잡는 것 / 안개 걷힌 골짜기 / 도마뱀이 몇 마리 / 떠날 채비 / 돌 사진 / 묵은지 / 들돌 / 밥상 /
기상나팔 / 테두리가 다 헤진 논라 / 입덧 / 할머니 제사 / 망고 / 새집 증후군 / 바늘 / 아홉 마리 용이 그려진 물 항아리 /
도훈이의 화상 / 가출
해설 김영범
시인의 말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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