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찾으러 간다(실천시선 228)
장문석 시집 『꽃 찾으러 간다』. 등단 25년을 맞는 중진 시인의 발견과 성찰의 과정을 담은 가파르고도 진정성 있는 실존적 도록(圖錄)이다. 자연스러운 감각적 구체성과 기억의 깊이에 의해 구성되는 장문석의 시학은, 세상의 주류로 자처하는 도시 문명보다는, 자연 사물들의 활력을 통해 시간의 심층에 가 닿는다. 그럼으로써 그는 크고 세련된 것들이 구성해온 세계에 항의하면서, 작고 거친 것들이 구성해내는 세계를 상상하고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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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등단 25주년을 맞은 장문석 시인의 네 번째 시집 『꽃 찾으러 간다』가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었다. 존재론적 기원과 궁극을 그려낸 중진 시인의 시편들은 삶의 과정을 담은 진정성 있는 실존적 도록(圖錄)이다.
자연스러운 감각적 구체성과 기억의 깊이에 의해 구성되는 장문석의 시학은, 세상의 주류로 자처하는 도시 문명보다는, 자연 사물들의 활력을 통해 시간의 심층에 가 닿는다. 그럼으로써 그는 크고 세련된 것들이 구성해온 세계에 항의하면서, 작고 거친 것들이 구성해내는 세계를 상상하고 노래한다.
불가항력적인 삶의 형식으로서의 '순례(巡禮)'
시공간은 인간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있어 주요한 역할을 하며, 공통의 지각과 감정구조를 공유하는 근간이 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문학에서 재현되는 시공간은 개인의 기억과 경험을 토대로 실존적 의미를 육화하는 모태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개인의 서정이 어떤 시공간을 만나 의식화되느냐는 문학적 특성을 결정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장문석의 시편들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실존적 의미망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장문석의 시작(詩作)은 시적 자아의 어떤 결핍에 대한 존재론적 시원을 반추하는 행위이자 정화적 의식의 제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시편들은 특정한 시공간 아래에서 형성된 시인의 정체성이자 실존적 의미이며, 이는 시인의 끊임없는 구도 행위에 의해서 캐어지는 광맥과도 같다.
문학작품에서 나타나는 시간적 좌표는 회상의 방법으로 어느 지점 혹은 사건적 시간으로 돌아가며 시적 자아의 존재적 시원으로 향한다. 공간적 좌표 역시 그러한 시적 자아의 현상적 의미망에 의해 구체화 된다. 다시 말해 시인이 통과해 온 삶의 궤적을 따라 거슬러 오르는 행위와 거기에서 만나는 시공간적 현상에 대한 의미 부여는 자신이 밟고 있는 현재적 좌표에 대한 존재론적 당위성과 내력에 대한 기록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추상된 삶에 대한 실존의식을 육화하게 되며 개인의 내밀한 무의식을 언어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이전에 없던 그 무엇의 고유성과 특이성을 구성하게 되며, 실존적 특이점을 생성하게 된다. 이제부터 그 특이점들이 분포하게 되는 공간을 따라 장문석의 시세계를 살펴보자.
나도 알고는 있다 우리가 가는 이 길이
끝내 성지(聖地)에 도달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히말라야의 짧았던 여름
네가 초록 풀밭을 네 활개 치면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온몸에 흉터가 생겼고
내가 열매를 따러 나무에 오르면
너는 늘 먼산바라기였다
(중략)
묻지 말자 애당초
누가 먼저 고삐를 잡았는지
길은 여전히 설산을 향해 고개를 들고 있고
우리의 등짐엔 아직 편자 몇 족 남아 있다
_「차마고도 4」부분
장문석의 시적 서정이 어디서 발원하는지를 보고자 한다면 대표적으로 그의 「차마고도」연작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차마고도(茶馬古道)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무역로이다. 상인들이 말과 야크를 이용해 중국의 차와 티베트의 말을 서로 사고팔기 위해 지나다니던 험준한 길이다. 시인은 그 가파른 '길'에서 자신의 시인으로서의 삶을 이입한다. "이 길이/끝내 성지에 도달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순례'의 길이란 그 도달 불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하게 지속될 수밖에 없는 길일 것이다. 시인은 자신의 등짐에 아직 '편자 몇 족'이 남아 있다고 고백한다. 이는 시인의 마지막 순례를 가능케 하는 물리적 근간이요, 어쩌면 시를 써가는 시인이 가지는 마지막 언어를 함의하는 것일 터이다. 그렇게 시인의 순례는 때로 고단한 험로를 수반하지만, 시인은 불가항력적인 삶의 형식으로서의 '순례(巡禮)'를 지속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상상을 가능케 하는 차마고도는 시인 장문석의 상상력이 발원하는 기원(origin)이자 궁극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은 장문석 시편에서 "나의 오관을 붙들었던, 도시의/주파수 공간에서 멀어지기 시작한"(「靑山行」) '청산'이나, "글썽이는 눈물/바람으로 씻으며"(「율도국」) 가야 하는 '율도국' 같은 곳으로 그 지경을 넓혀간다.
어느 물굽이었을까, 강물은 이미 정년퇴직한 아버지처럼 늙어 있었다 그렇구나 너도 썩은 물고기만 망태기 속에 채웠구나 밭은 해소 기침 소리에 강물은 관절마다 삼겹살 타는 소리를 냈다 삼겹살 속에도 물고기는 살고 있을까? 늙은 아버지와 젊은 아들은 사이좋게 삼겹살을 상추쌈하고는 한 겹 한 겹 더 깊은 지층으로 견지를 해 본다
_「금계리에서 1」 부분
소 떼가 들어온 이후로 마을 옆 계곡을 촘촘히 반짝이던 사금(砂金)이 사라졌다 비 그친 뒤 모래를 솥뚜껑 뒤집어 키질을 하면 한나절 끝에 솥뚜껑 가운데로 오로록 모이던, 인근 마을에서도 곰살갑게 찾아와 눈치 자리하던 마을의 자랑이 어느 날 문득 전설이 되어 버렸다
(중략)
엘도라도 엘도라도 홑적삼 큰애기도 몇 날 몇 밤을 보채다 엘도라도의 물을 따라 야반도주를 하고 얼마 가지 않아 초등학교 국기봉엔 태극기가 매달리지 않았다
승용차 한 대가 시멘트로 복개된 계곡 도로를 달려 나오다 동구에 있는 이정표를 본다
金?溪?里
_「금계리에서 2」 부분
'금계리'라는 장소는 아마도 시인의 남다른 기억이 배어 있는 곳일 터이지만, 이제 그곳의 강물은 늙어버려 썩은 물고기만 망태기 속에 채우고 있고 해소 기침 소리를 동반하면서 관절마다 아프기만 하다. 늙은 아버지와 젊은 아들이 아직도 사이좋게 더 깊은 지층으로 견지를 해보지만, 그렇게 '강'은 결핍과 폐허의 형식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곳은 소 떼가 들어온 이후로 반짝이던 사금도 사라지고, 인근 마을에서 찾아와 눈치 자리하던 자랑마저 전설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현저한 묵시록적 묘사의 뒤켠에는 "어차피 자라지 않을 꿈"(「돌 깨는 소녀」)마저 가라앉히면서 맹목으로 질주해온 문명의 폭력이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그곳은 이제 "답답했던 지난 청춘을 위로하는"(「달서리」) 곳이고, "마른 콩깍지 터지듯/대처로 튕겨 나간/세 남매/잘 지내고 있는지"(「자식 걱정」) 걱정하는 '떠남'과 '결핍'의 공간으로 화하였다. 그 결과 '금계리'는, '차마고도/청산/율도국/숲'과는 대척 지점에서, 한 시대의 폐허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할 것이다.
이처럼 장문석 시인이 찾아가는 곳은 '차마고도'처럼 물리적 주변부이지만 범인들이 가 닿을 수 없는 정신의 극한이기도 하고, '금계리'처럼 고단한 삶을 이어가면서도 불모의 형상을 내장한 격절의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인은 이러한 곳을 찾아다니는 '순례'의 움직임을 멈추지 않음으로써, 삶이라는 것이 속도의 차원이 아니라 깊이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아가는 것이다.
장문석 시편들은 삶의 어떤 결여 형식에 대한 일관된 그리움에서 발원하는 세계이다. 이러한 감성의 곡선은 시인 자신의 남다른 자기 확인 과정을 곡진하게 담으면서, 시인과 사물 사이에 흘러버린 오랜 시간을 그리움의 언어로 각인한다. 있어야 할 것의 결핍, 한때 존재했던 것들의 분명한 부재, 이러한 삶의 결여 형식에 대한 원형적 반응이 바로 그의 시에 나타나는 강렬한 그리움의 힘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그리움을 발견하는 힘은 시인 특유의 감각적 구체성과 기억의 깊이에서 온다.
§. 추천의 글
장문석 시인이 명마(名馬)를 기르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내 눈으로 직접 본 적은 없었다. 그렇긴 해도, 그가 그의 말을 데리고 시詩와 생활을 얻기 위해 차마고도, 그 설산 험로를 넘어 다닌다 하기에, 그가 펼쳐 보이는 '룽다 휘날리는 시인의 마을'이 사뭇 궁금해지던 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그의 시집은, 소금과 차를 맞바꾸듯 생활과 서정이 서로 밀고 당기는 활달한 시의 교역으로 붐빈다. 또한, 그의 시에는 웅덩이 같기도 하고 항아리 같기도 한 해학과 능청이 스며 있어서 아무리 소리 내어 읽어도 소란스럽지 않다. 무엇보다 그의 시가 돋보이는 건, 곰삭은 말과 음악의 어울림이다. 시편마다 공후를 숨겨 놓았다. 그러고 보면, 시인에게 명마란 가쁜 호흡을 멈춰 정지하면 격(格)이 되고 갈기를 날리며 내달으면 율(律) 되어 멀리 멀리 퍼져나가는 천장고원의 노래가 아닐까. 아무튼 그에게 차마고도는 저물어가는 옛 교역로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운송하는 여전한 험로이다. 그 길에 나서야 '나무꾼의 노래'를 들을 수 있고, 시인의 그리운 '어머니'를 추억할 수도 있고, '금계리'도 갈 수 있고, 궁극으로 시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먼 길 떠나는 장문석 시인이 이끄는 신새벽 '마방의 워낭 소리'를 들어보자. 그의 시의 고삐를 단단히 쥐어 보자.
송찬호(시인)
§. 시인의 말
세 번째 시집(2003년)을 낸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긴 세월이었습니다. 반성과 질책의 세월이었습니다. 말을 다루는 시인이란 칭호가 과연 나에게 합당한 것인가 수시로 되묻곤 했습니다.
그랬습니다. 나는 너무 서둘러 강호에 나왔던 것입니다. 첫 번째 말도, 두 번째 말도, 세 번째 말도 모두 채 성숙되지 않은 어린 조랑말들이었습니다. 나의 기마술 또한 미숙하여 곳곳에서 풋내가 났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쭙잖은 허세로 언월도를 휘두르려 했던 것이니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서 네 번째 말은 쉽게 강호로 내보낼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나도 나의 말을 나만의 양식으로 살찌우고, 나만의 비법으로 조련하여 적토마나 오추마는 못될지언정 품새 그럴듯한 명마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날렵한 기마술을 깨쳐 그걸 타고 천하를 주유하고 싶었습니다.
편자를 수없이 담금질하는 불면의 밤들이 갔습니다. 때로는 무림 고수를 찾아가 몇 수 귀띔도 받았습니다. 그렇게 10년도 넘는 세월이 갔습니다.
그러나 워낙 기재(器才)가 변변치 않은가 봅니다.
네 번째 말을 타고 강호로 나가는 마음이 처음보다 더 불안하고 조심스럽습니다.
_ 장문석
목차
목차
2부 여름 숲 속|소나기|모과댁|우리 마을 이장 구 씨 1|우리 마을 이장 구 씨 2|우리 마을 이장 구 씨 3|달서리|동지|자식 걱정|겨울밤|폐가|개구리|금계리에서 1|금계리에서 2
3부 돌 깨는 소녀|콩나물을 보면 비비고 싶다|봄 경전|초록 경전|숲|와불(臥佛)|그 아이|호떡 할머니|육전반상(六煎飯床)|
숟가락생|귀향|입동|소리|뒤늦게 요지경에 들다|목정(木丁)
4부 하현(下弦)|등꽃|만추(晩秋)|관솔불|화장|명왕성|영산홍|지청구|목욕론|부채론|병신생|구들의 내력|갈비뼈|물렁뼈
해설 유성호
시인의 말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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