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의(실천시선 230)
김수열 시집 『빙의』. 시인은 부유물처럼 떠돌고 있는 죽음을 삶 속으로 끌고 온다. 먹고, 보고, 이야기하는 일상 속에서 서로가 빙의되는 행위를 통해 지친 육신과 영혼을 묵묵히 다독인다. 이 시집은 생과 사를 선 긋지 않고, 존재의 있고 없음의 차이를 넘어 땅속으로 스며드는 물처럼 천연스레 독자와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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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1982년『실천문학』등단 이후, 시집『어디에 선들 어떠랴』,『신호등 쓰러진 길 위에서』등을 펴낸 김수열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이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었다. 시인은 부유물처럼 떠돌고 있는 죽음을 삶 속으로 끌고 온다. 먹고, 보고, 이야기하는 일상 속에서 서로가 빙의되는 행위를 통해 지친 육신과 영혼을 묵묵히 다독인다. 시집『빙의』는 생과 사를 선 긋지 않고, 존재의 있고 없음의 차이를 넘어 땅속으로 스며드는 물처럼 천연스레 독자와 마주한다.
내가 네가 되어 중얼거리는
담담한 삶 속 이야기
이번 신작 시집 『빙의』에서도 김수열 시인만의 언어유희는 녹슬지 않았고 삶을 대하는 태도 역시 겸허하고 소박하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시의 배경이 한층 드넓어 졌다는 것이다. 시인이 머물고 있는 제주도에서 연변, 베트남, 모리셔스까지 생의 낮은 곳에 있는 노동자의 애환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삶의 비의를 포착하는 시인의 조망 능력은 일상생활과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 상황 속에서 재기를 발휘한다. 동네 시장과 마을을 돌며 서민들의 일상을 재치 있게 담거나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모습들을 스케치하기도 한다.
호텔 정원에서 낙엽을 쓸거나
뷔페 식당에서 서빙을 하거나
호화 요트 주방에서 생선 내장을 손질하거나
수상택시 운전을 하거나
그리그리 해변에서 빈 병을 줍거나
수확 끝난 사탕수수 농장에 불을 놓거나
_「모리셔스, 아침 7시」 부분
이번 김수열의 시 작품에는 다양한 대상들과 교감을 나누는 장면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는 나무, 오리, 개, 병아리 같은 자연의 대상물들에서부터 이미 죽거나 죽음에 임박한 사람, 장애인, 어린 시절 동무들, 해녀, 할머니, 길림성의 북한 사람, 베트남의 사람들을 만나 시를 쓰며 훈김을 불어 넣는다. 시인은 실생활의 다양한 소재를 시 작품으로 쓰면서 소재로 썼던 대상들의 생의 이면을 담담한 어조로 보여준다. 그 어조 중에는 그가 나고 자란 고향의 언어인 제주어가 빠질 수 없는데, 어린 학생들의 대화에서부터 제주 사투리를 구사하는 노인의 말을 넘어 다른 지역의 방언을 사용함으로써 생동감을 전한다.
우당도서관 1층 남자화장실
어린 학생 둘이 화장실 문 앞에 나란히 서서
왼 다리 오른쪽으로 오른 다리 왼쪽으로
배배꼬며 안절부절 서 있다
(중략)
무사 영 오래 싼?
몰라, 완전 많아 완전 길어
진짜? 아침에 뭐 먹언?
그냥, 밥
밥?
히히히히
히히히히
_「송아지 동무」부분
그런데 시인은 왜 시집 제목을 '빙의'라고 붙였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해 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빙의 현상은 죽은 이의 혼이 살아 있는 사람의 몸에 덧씌워져 무언가를 전하려는 메시지로 볼 수 있다. 시인은 다양한 사람들의 생존 방식을 시라는 매개로 '빙의'되어 그것을 의도적 기법으로 보여준다. 그 중 제주어로 쓴 시편들은 다른 나라 언어처럼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제주어가 주는 이질감이 도리어 생의 긴밀성을 느끼게 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 외에도 시인은 시집 말미에 독자들의 편의를 생각하여 제주어의 난독을 풀어주는 작업을 시도하기도 했는데, 제주어로 쓴 시와 표준어로 쓴 시를 비교해 가며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 추천의 글
우리는 살고 있는 곳의 山水를 닮는다. 그럴 것이다. 탄생의 배경이 되며 거기서 나온 것을 먹고 자란 데다 사람은 가장 오래 바라보는 것을 닮으니까. 베두인족 눈에 사막의 지평선이 있듯 김수열 시인의 두 눈에는 제주의 푸른 수평선이 들어 있다. 그곳에서 쉬지 않고 출렁인다. 그의 큰 키 또한 한라산에서 왔다. 수직의 산세와 수평의 물결, 그 거대한 두 세계가 붙어먹어 새로운 DNA를 만들었으니 그게 이번 시집 『빙의』이다. 그가 높고 깊은 어떤 지경까지 갔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한창훈 (소설가)
맹물 같은 시다. 오래된 소갈증이 사라진다. 시원하고 담박하다. 근데 이놈의 맹물 시가 다시 갈증을 불러온다. 속이 탄다. 좋은 시는 당연 조감이 있어야 한다. 시인은 키가 훤칠해서 당연 눈이 높다. 거시적 통찰이 기본적으로 가능하다. 그런데 키 큰 사람은 싱겁다. 이 말을 하루하루 실천하며 산다. 맹물로 가장 키가 큰 게 강물이다. 그는 강을 세워 논 것 같다. 사막에 사는 포아풀도 맹물 한 모금 먹으려고 600미터나 발돋움한다. 그는 또 골목길 가로등과 닮았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늦은 귀가와 훌쩍임과 배웅이 있다. 모퉁이와 구석이 있다. 그 골목 끝자락에 집이 있고, 마루가 있고, 아랫목 이불 속에는 따뜻한 밥그릇이 있다. 나물이 있고, 비린 것이 있고, 맹물 한 그릇이 있다. 한국 시 가운데 제주도 국어 선생이 가장 가르치기 어려운 시다. 설명할 게 없어서 멀뚱멀뚱 종 치기만 기다리는데, 눈시울은 젖고 가슴은 먹먹하다.
이정록 (시인)
목차
목차
빨래 | 사랑을 배우다 | 낌새 | 모리셔스, 아침 7시 | 폭염 | 아내의 건망증 | 아내가 읽지 말았으면 하는 시| 곶자왈에서 | 나무의 시 | 흔적 | 누이네 집 똥개 | 파문 | 파치 | 자작나무 | 소와 명태와 시인
제2부
달의 엉덩이 | 노랑병아리에 대한 악몽 | 연자매 | 파도 소리 | 송아지 동무 | 신엄중학교 | 새우의 꿈 | 참 당돌한 인사법 |장날 |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 덜떨어진 생각 | 우리 동네 정육점 | 어떤 그림 |장공장 골목 |쫀쫀한 놈
제3부
밥그릇| 어머니는 힘이 세다 | 상군잠수 | 두 죽음 | 폭설 | 플라워 카펫 | 정말 시인 | 마라도에서 | 거미 |사람이어서 미안하다 | 국데워라 금순아 | 방이 이모 | 하필 그때 왜? | 숯불 피우는 사내 | 희정 식당 | 오십만 동
제4부
긴한 말씀 | 빙의 | 자리물회 | 삼복을 지나며 | 마지막 소망 | 꽃을 든 남자 | 오래된 사랑 | 간절하게 | 나중에 | 아버지의 不忘記 | 휘영청 | 붉은발말똥게 | 사이렌 | 꽃 | 터진목의 눈물 | 어머니 말씀
해설 김진하
시인의 말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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