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네가 참 좋다(실천시선 234)
등단 15년째를 맞아 세상의 여러 시공간을 관찰하고 탐사하는 고된 역정을 담아내면서도 따듯하고 심미적인 형상화 능력을 보여주는 정용국의 시집 [난 네가 참 좋다]. 이 시집은 우리 시조 시단에서 만나기 어려운 리얼리즘의 본원적 충동이 세상살이의 축도(縮圖)처럼 담긴 작품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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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2001년 『시조세계』로 등단해 시집 『내 마음속 게릴라』, 『명왕성은 있다』를 펴낸 정용국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난 네가 참 좋다』가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었다. 등단 15년째를 맞아 펴내는 시인의 야심작인 이번 시집은 우리 시조 시단에서 결코 만나기 어려운 돌올한 개성의 결실이다. 세상의 여러 시공간을 관찰하고 탐사하는 고된 역정을 담아내면서도 가장 따듯하고 심미적인 형상화 능력을 보여주는 이번 시집은 이 땅 외따로운 곳에서 펼쳐지는 아프고도 가파른 삶을 더욱 정밀하게 응시하고 묘사하면서, 우리 시조 시단의 새로운 전범을 보여준다.
사람살이의 구체성에 발 딛고
시조라는 정형적 형식 속에서도 전방위적으로 시적 소재를 선택하며 비판적으로 세상을 읽어온 정용국 시인의 열정은 이번 시집에서 더욱 첨예화하고 세련되었다. 신작 시집 『난 네가 참 좋다』는 우리 시조 시단에서 만나기 어려운 리얼리즘의 본원적 충동이 세상살이의 축도(縮圖)처럼 담긴 작품집이다. 한마디로 정용국 시인의 시는 '시조'라는 양식과 역사 사회적 인식이 어떻게 결합하고 구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실물적 근거이다.
정용국 시인의 작품이 가진 가장 큰 특징은 우리 시조 시단의 주류 권역에서 잘 다루지 않는 사람살이의 구체성을 애정과 관심으로 길어 올린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시집에서 이에 대한 관심은 삶의 본원적 투시로 나아가며, 동시에 외연적으로는 시조 소재의 권역 확장을 꾀한다.
햇살은 들다 말고
바람도 스쳐 가는
중곡동 헐한 월세 반지하 창밖에는
귀 열린 상추 댓 포기
옹알이가 한창이다
잔웃음 자지러진
외손자 걸음마에
장맛비로 반 토막 나 울상이 된 품삯도
해거름 탁배기 잔에
다소곳이 졸고 있다
_「반지하 창밖에는」 전문
정용국 시인의 시선은 힘겨운 삶을 지속하는 주변의 풍경에서 시작한다. "중환자실"(「명왕성」)이나 "탑골공원 뒷골목"(「불쌍한 돈」)이 그러하며, "중곡동 헐한 월세 반지하"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데 시인의 작품이 가진 애잔함 감정은 그 안에 새로운 도약을 꿈꾸기도 한다. 위의 시에서도 드러나듯이 "헐한 월세 반지하 창밖"에 피어나는 "귀 열린 상추 댓 포기"가 그것을 상징하는데, 고단한 삶이 반쯤 가라앉은 '반지하'는 "잔웃음 자지러진/외손자 걸음마"로 한순간 밝아진다. 반지하 세입자는 장맛비 때문에 반 토막이 난 품삯에 울상이지만 "해거름 탁배기 잔"으로 삶의 고난을 견딘다. 시인은 그런 삶을 일구어가는 이름 없는 이들의 뒷모습을 지극한 애잔함으로 응시한다.
짓무른 시간들이 멋대로 지분대는 번잡한 골목에도 꾸려야 할 삶은 있다 계면조(界面調) 속살이 우는 가리봉동 쪽방촌
낮술로 달래놓은 어깃장 시름 한 놈 어물전 뒷골목을 서성이는 초저녁 중국어 전화방 간판이 싸락눈을 이고 있다
_「삶은 늘 저쪽에 있다」 전문
우리가 꾸려야 할 삶은 언제나 "짓무른 시간들"과 "번잡한 골목"이 있는 '저쪽'이었다. 사람살이의 다양한 변주들이 울려 퍼지는 "가리봉동 쪽방촌"은 "중곡동 반지하"와 마찬가지로 주류화하지 못한 생들이 시름을 달래며 고단한 삶을 꾸리는 곳이다. 시인은 '저쪽'에 존재하는 삶을 보며 소외된 어느 곳도 삶의 주류가 아닌 곳이 없다는 역설을 목격한다. 그리고 현실을 탐색하며 '저쪽'은 추상적 세계가 아닌 바로 이곳에 존재하는 삶의 무대로서 '구체성'을 띠는 곳임을 증언한다.
시조의 새로운 미적 완결성을 꿈꾸다
정용국 시인의 작품에는 늘 사람이 먼저고 사람이 중심이다. 시인은 사람이라는 궁극의 가치를 발견하고 지지하면서, '사람'을 지워가는 폭력적 현실에 저항한다. 그의 시선은 가까이는 가족에서부터 이웃 그리고 멀리 사회에서 억압받는 이들에 이르기까지 관심과 애정의 눈빛을 보낸다.
황조롱이 한 쌍이
알을 품는 송전탑에
땅에서 내버려진 날개 없는 사람들이
현수막 둥지를 틀고 하늘을 차지했다
삼십오 년 전 굴뚝에 올라
쇠공을 쏜 난장이 대신
국민소득 수만 달러 어안이 벙벙하고 최저임금 오천 원엔 머리에 쥐가 나고 일조 달러 수출고에도 통상임금 거덜났다 세계 십위 무역 규모에 불법 파견 재하청이라 재벌 입김에 설왕설래 선거 공약은 휘청휘청 이 등쌀에 허리 휘어 키 작은 아들딸들이 아직도 법을 믿고 허공에 매달려 있다
하늘이 너무 비좁다
우러러 보기에는
_「여기, 사람이 있다」 전문
황조롱이 한 쌍이 알을 품은 '송전탑'에 "날개 없는 사람들"이 올라 분노와 항의를 담은 현수막 둥지를 틀었다. "국민소득 수만 달러 (중략) 세계 십위 무역 규모"와 "최저임금 오천 원"의 대비 속에서, '허공'은 사람들이 땅에서 우러러보기에는 너무 비좁다. 이런 비참한 현실은 비단 오늘날만의 것이 아니다. 이미 "삼십오 년 전"에 굴뚝 위에 오른 난장이가 무거운 쇠공을 하늘 높이 쏘아 올리고는 사라졌다(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사람도 바뀌고 시대도 바뀌었지만, 약한 자들을 향한 사회의 폭력과 억압은 여전하다. "세계 십위 무역 규모"에도 "불법 파견 재하청"이라는 "재벌 입김"에 "키 작은 아들딸들이 아직도 법을 믿고 허공에 매달려 있다".
시인은 이런 현실에 분노하면서도 자기 스스로를 먼저 채찍질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는 「낮술」이라는 시에서 "송경동 시인의 목발이", "백기완 선생 쉰 목소리가" "내 시를 밀어낸다"라고 고백한다. 송경동 시인의 '굴하지 않는 투쟁성'이, 백기완 선생의 '견결한 삶의 지속성'이 자신의 시를 밀어내는 경험을 하며 시인은 폭력적 현실에 적절한 대응을 못하는 것만 같아 "무기력"을 느끼며 스스로를 반성한다. 시인이라는 업(業)을 가진 자로서, 현실과 문학의 자장 사이에 서 있는 자신의 '시 쓰기'를 이어가며 그 존재론을 깊이 성찰하는 것이다.
한 사람 떠나갔다
술도 시도 다 버리고
도다리 살 오르고
다북쑥 올라오면
묵은해 풀어내자고
몸살을 앓더니만
올봄은 더디다고
멋쩍게 웃던 저녁
눈으로 보내주던
성근 말만 맴도는데
다 식은
양은 냄비 옆
가지런한 수저 한 벌
_「도다리쑥국」 전문
시인의 가장 강한 무기는 다름 아닌 시임을 증명하는 여러 작품이 이번 시집에 실려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경우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술도 시도 다 버리고 떠나간 "한 사람"을 "다 식은/양은 냄비 옆/가지런한 수저 한 벌"로 은유한 한 편의 아름다운 서정곡이다. "묵은해"를 풀어내려는 몸살과 "올봄은 더디다고/멋쩍게 웃던 저녁"의 대조 속에서 산뜻하고도 아득하게 한 사람의 시간과 그 흔적을 보여준다.
소외된 현대인의 삶의 그늘에 비치는 한 줄기 햇살을 발견하는 정용국 시인은 시조 시단의 주류 현상을 넘어 시조의 현대성 구현에 앞장서며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이 외롭고 처절한 투쟁에서 시인이 승리한다면, 그것은 그의 시에 그려진 이들의 승리 이후일 것이다. 이번 시집은 시조 본연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동시대 삶의 다양한 주제를 다루어야 하는 숙명을 지닌 시인(시조)의 조용하고 치열한 투쟁의 현장이다.
목차
목차
2월|월정리역|날라리에게|실외기
제2부 늙은 떡국|화살나무 편지|석등|자산에서 길을 묻다|블랙아웃|장편|강정 필사본|뜨거운 손|진도실록|첩첩 무등|불쌍한
돈|휘청거리는|모둠전|졸에게|중곡동
제3부 아득하다|산성중수기|눈물|기일|식칼|삶은 늘 저쪽에 있다|선종|후광|모든 것은 지나간다|아가미젓|형수|망우리|강이 나를 불러놓고|몸이 나를 불러놓고|월동
제4부 옹알이 별사|애벌의 꿈|보산역|가자미식해|묻지도 따지지도 않는|일요일의 남자|외경|철야 일지|여기, 사람이 있다|낮술|장엄|자리|개구리는 개구리밥을 먹지 않는다|갑오실록
해설 유성호
시인의 말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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