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바퀴다(실천시선 249)
2003년 『실천문학』 시부문 신인상 수상하며 시작활동을 시작한 시인은 2008년 시집 『쪽문으로 드나드는 구름』을 상재하였으며,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진흥기금을 수혜하고 2015년 서울문화 재단 창작지원금을 수혜하였다. 이번 시집은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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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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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그동안 박설희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느낀 점은 이 시인은 스스로 형상화시킬 수 없는 것은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현실과 환상의 중간 지점에 놓인 시적 오브제를 다룰 때 그러하다. 이러한 시적 태도는 필연적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첫 번째 시집 『쪽문으로 드나드는 구름』의 추천사에서 최두석 시인이 지적했듯이 박설희 시인은 "세속의 누추한 풍경" 속에서 이 세계의 진경을 발견하고 그린다. 자신을 포함한 살아가는 모든 것에 뿌리 깊은 연민을 가진 박설희의 시를 마주하며 최두석 시인의 지적에 고개를 끄덕인다. 이번 두 번째 시집을 읽으면서 그러한 세계관은 여전히 관철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박설희의 시 기저에 놓인 물음은, 나는 무엇인가 혹은 나는 진짜인가 가짜인가 하는 것이다. 아트만(Atman), 진면목으로서의 자아에 대한 탐구가 예술의 한 기원을 이룬다는 사실은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터이다. 예술이 종교와 친연적 성격을 띠고 있는 이유도 아마 이 지점일 것이다. 시인 자신이 의식했든 안 했든 간에 시 곳곳에 아트만에 대한 갈구가 깔려 있다는 것은 현상으로서의 이 세계에 대한 믿음이 충분하지 않은 까닭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존하는 자아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자아를 포함한 세계 전체를 회의하게 하는 동인이 된다.
이사를 하려고 짐을 정리하다 보니 마루 밑에 자루, 그
속에 팔들이 가득, 손이 달린 팔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와,
누군가 맡겨놨는데 언제 맡겼는지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무슨 짓을 했던 팔들인지, 이사를 해야 하는데 팔들이 한
자루
죽은 자와 마주쳐 간신히 벗어났다 싶으니 또 다른 주검
과 마주치고 산 사람보다는 죽은 자와 더 많이 마주쳐, 이
제 그만 죽은 자들은 신물이 난다고 체머리 흔드는데 흰 상
여가 거리 저쪽에서 다가오고
생전 처음 보는 집을 내 집이라고 들어가 차 마시고 이야
기 나누고 다시 나와 거닐다 보면 바닷가, 파도 넘실거리다
가 기어코 해일이 덮치는 그 마을 수천 번도 넘게 해일
이 덮쳤는데
어느 날 문득 낯선 들판에 홀로 서서는 이름도 기억도 잊
어버리고 기억이 없다는 것만 기억나, 드디어 다 벗어버렸
다고 뿌듯해하다가 다음 순간 버스며 사람들 혼잡한 거리
를 다시 헤매는
수없이 재생되는 친숙하게 낯선 거기,
매번 돌아오고야 기억나는 거기의 나는 누구인가
심연처럼 들여다보고 있는 눈, 을
빤히 마주 보고 있는 나는
-「완강한 텍스트」 全文-
견고한 성채와 같은 이 세계를 시적화자는 '완강한 텍스트'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텍스트는 개별적 자아를 구속하고 규정하며, 각성하려는 자아를 조롱하고 무화시킨다. 각성하려는 자아에게 이 세계는 혼돈일 뿐이다. '수없이 재생되는' 세계를 인지하고 그곳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할 때 시적화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이러한 일상의 퍼소나를 생경하게 바라보는 지점에서 비롯된다. '어느 날 문득 낯선 들판에 홀로 서' 있는 화자의 자기 발견은 박설희의 시가 자기를 찾아가는 여행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의미한다. 동시에 그의 여정이 그가 자주 쓰는 관형어처럼 '낯선' 곳으로의 방황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낯선 여행자의 아트만을 향한 욕망은 "나는 나인가"라는 반성을 낳는다. 불교적 수행을 떠올리게 하는 이 질문은 이 시집의 화두에 해당한다.
오가다 기름을 넣곤 하던 주유소에
노란 줄이 둘러쳐져 있다
유사석유의 가스누출로 주유소가 폭발했다고
유사석유, 유사지폐, 유사감정, 유사행동, 유사시(詩)
끊임없이 제조되어 비밀 투입구로 흘러드는
그 힘으로 냅다 달려보다가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지폐로, 드라이브하며, 사랑의 시를 읊어주면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애인이, 히히 웃으며, 사랑한다고, 응답할까
유사일수록 휘발력과 폭발력이 월등하다는데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사랑을 하다가
순간 폭발이 일어나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애인들이 기화해 버린다면
진짜가 되는 거겠지
사랑의 순교자가 되는 거겠지
-「유사시」 全文-
유사(類似)한 것이 진짜를 능가하는 현실을 보면서 화자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에 대해 명상한다. 장자의 꿈 이야기처럼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혼돈을 일으키고 있다. 혼돈이라기보다는 대승적 차원에서 진짜와 가짜의 차이가 무엇인지 되묻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 모든 것의 기원이 혹 동일한 뿌리를 가진 것은 아닌가 하는 물음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이러한 혼돈스러운 세계 속에서도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시인의 열정은 집요하다.
평생을 바늘로 기워온 그녀
손에 잡히는 것을 습관적으로 깁는다
내 가슴은 꿰맨 자국투성이
물길을 찾지 못한 채 금세 시들어 버린다
그녀가 손에 핑킹가위를 집어 든다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단면들의 연속
풀어지거나 해어진 실밥을 정리하는
견고한 장식성
씨실과 날실의 교차점에서
아이들이 맺히고
레이스로 장식된 옷에 단추들이 정렬해 있다
성장(盛裝)한 나는 가슴이 답답해진다
아가, 체했냐 엄지손가락 따주랴?
손끝이 아니라 가슴이에요
가슴이 아니라 머리에요
늘어진 시접을 정리한 후
이리저리 훑어본다 설레설레 머리를 흔든다
꾹꾹 힘을 주어 다리미질을 한다
이 주름은 왜 이리 안 펴져?
그녀는 더욱더 힘을 준다
열판이 지나가는 대로 눌린 내가 조용하다
옷은 반듯해야지
그녀는 나를 옷걸이에 걸어 장롱 속에 보관한다
장롱 안이 빽빽하다
-「태양섬유 완성반 검사」 全文-
자아의 기원에 대한 치열한 인식을 보여주는 이 시에서 가장 궁금한 것은 '그녀'의 실체이다. 그녀는 내 가슴을 꿰매고 아픈 나를 돌본다. 어찌 보면 어머니 같기도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적화자의 삶을 조율하는 신과 같은 존재가 '그녀'이다. '그녀'의 다리미질에 따라 반듯해지는 시적화자는 장롱 안에 걸린다. 장롱 안에 걸린 시적화자는 빽빽하다. 그것은 늘 같은 행위가 반복되어 왔음을 뜻하는 것이다. 시 속에서 시적화자는 옷이다. 옷으로 알레고리화 된 시적화자의 삶은 재단사에 의해 타율적으로 구조된 세계를 살아갈 뿐이다. 이러한 세계 인식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진짜와 가짜에 대한 고뇌를 불러일으키고 자의식을 흔들어 아트만에 이르는 길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누군가에 의해 구조된 세계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시적 화자는 반대급부로 아트만에 대한 열렬한 욕망을 지니게 된다. '열판이 지나가는 대로 눌린 내가 조용하다'는 자신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되었지만 일정 정도의 자조를 포함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장롱 안'에 '빽빽'하게 걸린 자아는 '아무리 규정해도 여전히 넘치는 나'(「나야」 부분)와 상통한다. 그것 역시도 '한 발 늦게 빈집에 배달된, 그게 나야/버려진 화분 속 곰팡이, 그게 나야/욕망과 허기로 포장된 우울, 그게 나야'(「나야」 부분) 같은 부정적 자조로 비추어진다. 자조와 자기 경멸은 어쩌면 아트만을 향한 욕망과 정확히 비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박설희의 시에서 눈에 띄는 다른 요소는 사라지고 소멸하는 것들에 대한 살뜰한 연민이다. 이는 박설희 시가 처음부터 견지한 세계인식의 한 특징이다. 「오후 네 시」는 박설희 시인이 생각하는 소멸의 정점이다. 이제 노을 앞에 서게 될, 하여 이 세상으로부터 절연될 시간이 오후 네 시이다.
뒷다리를 끌며 걷던 흰 개가
옹크리고 앉아
아픈 제 발을 오래 핥고 간다
그것을 지켜보는
어린 물푸레나무도
날렵한 곤줄박이도
곰곰 생각하는 길
흔들리는 이파리
뾰족한 발끝
갸우뚱한 해가 매달아준 긴 그림자 끌고
어
디
로
-「오후 네 시」 全文-
지순한 연민의 시선으로 대상을 그리고 있는 이 한 편의 시야말로 박설희의 시세계 전반을 설명할 수 있는 좋은 예가 된다. 상처받은 실존에 대한 끈끈한 시선은 도대체 이 세계는 무엇이냐는 물음을 천천히 집요하게 묻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존의 위기에 다다른 '개'를 바라보는 '어린 물푸레나무'나 '날렵한 곤줄박이'의 생각이 아무리 '곰곰'하더라도 '개'의 실존을 이해할 수는 없다. 그것은 서로가 위치한 시간의 영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갸우뚱한 해' 즉 네 시에 도달한 개의 긴 그림자가 어디로 가는가 하는 문제는 현실 너머 초월적인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 마지막 연은 그러한 인식을 잘 보여준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여러 시편에서 이미 그 기운을 느낄 수 있지만 내파의 균열이 육성으로 터졌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시를 잘못 읽은 내 개인의 쓸데없는 허망인지도 모르겠다.
-우대식(시인)-
목차
목차
먼나무
접시
바나나 딜레마
완강한 텍스트
백양나무
한때 비
낯선 시간 속에서
습도 8%
나야
거리유세
물붓
야생화 출사(出寫)
이후
사는 동안
야생화 출사(出寫)
제2부
모심에 대해
영(嶺)
먼지들
산책
아득히 오래 전부터 이 강가에 있었다
물고기의 날
유산(遺産)
충혈
다리들
꼬리는 꼬리를
겨울산에 들다
유사시
인영에게
11월
우천시 누항사
카멜레온의 죽음
제3부
모래성
배꼽 이야기
태양섬유 완성반 검사
구두
약수(弱水)
건배
꽃
졸업식
오래된 웃음
다시 산성마을에서
마개
하늘 아래 첫 우체통
만개한 유모차
만년리(萬年里)에서 온 감
오후 네 시
제4부
그만두다
구로애경역사를 지나며
탑동의 황혼
종묘를 나오면서
잔치 갔다 오는 세 노인
황톳길
웃음에 관해서라면
서쪽으로 난 창
일곱기둥철강
실크로드의 이륙
졸라
저수지의 방식으로
물 한 모금
옛길 위에서
황톳길
빗소리
눈산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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