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밤을 열면서(실천시선 258)
2002년 《문학과 의식》에 시가, 2013년 《작가세계》에 평론이 당선되며 전방위적인 글쓰기를 해 온 권성훈 시인이 시집 『밤은 밤을 열면서』를 출간했다. ?배꼽?을 비롯한 59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는 이번 시집에서는 방민호 평론가의 표현대로 “사물을 읽는 몸”의 언어들이 재기발랄하면서도 날카롭고 촘촘하게 펼쳐진다. 시인은 자신의 생활을 둘러싸고 있는 사물(물상)들로부터 삶의 단서들을 예리한 감각으로 포착하여 독자들 앞에 제시한다. 권성훈은 사물 겉으로 보이는 상식의 외간을 벗기고 적나라한 삶의 ‘비밀’과 ‘실상’을 우리 앞에 드러내 보여 줌으로써 새로운 미학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권성훈의 이번 시집은 세상 보잘것없는 것들이 펼치는 치열한 전복(顚覆)의 몸부림을 빼곡히 기록한 필사(筆寫)라 이름 붙여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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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살아서 입지 못하는 황홀한 옷 한 벌
저승 가는 길을 꼼꼼히 재단해
이제야 나를 위해 떳떳하게 나를 입어 보는 것
스스로 입지 못하는 생애의 끝 한 벌 입는 거야
매일같이 시작되는 하루를 내 손으로 갈아입지만
벗었던 세월만큼 주름진 길
그 길을 세상 밖에서 지우는 화려한 복화술
거울의 눈치를 살폈던 관절 마디를 섞어서
내가 안 보일 때까지 나를 반죽해 줘
손댈 수 없을 때까지 후끈 달구어지면
내 몸도 이렇게 눈부신 뜨거움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 「유쾌한 치킨」 부분
「유쾌한 치킨」은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음식의 하나인 '치킨'으로써 인간 삶의 야만성을 찔러 댄다. 이 시의 화자는 알몸으로 튀겨져 인간들의 식탁 위에 올려질 치킨인데, 인간들의 무지막지한 탐식욕의 희생양이 되어 지상에서의 짧은 삶을 마감하게 된 치킨의 마지막 반어적 야유, "내 몸도 이렇게 눈부신 뜨거움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라는 말은 자본주의 시대 속 인간의 단말마처럼 여겨져서 섬뜩함을 안겨 준다.
철수세미는 사물을 읽는 몸이다.
철수가 손을 쓸 때 입을 여는 세미
거칠거칠한 손은 입보다 가볍게
얽히고설킨 입은 손보다 무겁게
철수세미의 익숙한 수화로
저녁에 붙은 반점을 닦아 낸다.
꽉 다문 벙어리 저린 가슴에서
웅크린 윤기가 뽀드득뽀드득 빠져 나온다.
궁금증의 뒤꿈치를 내려놓으며
소금기 빠진 밤이 달팽이처럼 지나간다.
발 디딜 틈 없이 비릿한 하수구에 들어찬다.
바람이 드나드는 맨얼굴로
아미타불 빛나는 철수세미
능청스럽게도 너무 아프게 붙어 있다.
― 「철수세미」 전문
이 병든 세계의 일상을, 철수세미처럼 사물들을 몸으로 겪어 가듯 살아가는 시인의 생활은 버라이어티로 넘치면서도 위태롭다. 일개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그는 언제나 굴신과 굴욕을 감수해야 하고, 사랑을 원하지만 미움과 질시가 들끓는 거리의 삶에서 벗어날 수 없다. 웃음, 야유와 유머로 세계를 견뎌 나가려 하지만 하루하루의 삶은 '견고한' 오물들을 닦아 내느라 철수세미의 몸뚱이가 해져 버리듯 피투성이가 된 몸과 마음으로 얼룩져 간다.
『밤은 밤을 열면서』는 이처럼 지금 세계가 병들어 있음을 뼈아프게 느끼며 자신의 삶을 질료 삼아 몸으로 겪어 나가는 한 시인의 정신적 풍경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삶 주변에 널린 사물들, 물상들 속에서 그것들의 외관, 그것들이 피워 내는 냄새, 그것들의 황폐한 존재 방식으로부터 자신이 살아가며 견뎌 내는 세계를 처절하게 인식하며, 맞부딪혀 나아간다. 그 처절한 인식과 항거의 몸짓이 바로 이 시집의 제목 '밤은 밤을 열면서'와 일맥상통하며 닿아 있다.
다음 생애 좋은 곳에서 태어나라
십 년 살다 바다에 묻은 그 애도 그랬다
울음소리 수리도 않은 채 도로를 넘나들며
녹슨 바람에 이는 사월 파도를 태우는
밤은 밤을 열면서 떠돌아다녔다
― 「폐차」 전문
「폐차」라는 시에서 보듯 '밤'이 '아침'을 여는 것이 아니라 '밤'이 '밤'을 연다는 표현에 우리는 주목해야 할 것이다. 오늘의 밤은 비록 암흑뿐일지라도, 병(病)투성이일지라도 내일의 밤은 오늘과 다르게 열겠다는 다짐, 의지, 그리고 기대. 권성훈 시인은 그 간절한 희원(希願)을 이번 시집에 녹여 내었다.
목차
목차
발톱
슬픔의 문장
유쾌한 치킨
배꼽의 각도
오늘 병동
골방 엽서
음력 2월 30일
남은 이유
한길 순대
감자탕
팬티스타킹
붉은 습관
지퍼 행간
보리살타 돼지
꽃피는 복날
제2부
바퀴의 환승
수상한 테라스
뒤쪽이 앞쪽에게
골반의 바깥
안전핀
단추
21세기형 십계명
내비의 눈물
네네
그래서 환생
늪의 킬로미터
짝짝이 그림
발로만 출애굽
변기
제3부
사시들
폭염주의보
철수세미
스티로폼
새사람
아하, 역돔
황태덕장
당신은 시뮬라크르
드럼 세탁기
모서리
나사
휴지에게 사랑을 배울 때
하루도 책상같이
치명적 그루
조금, 만이라는
제4부
흡반별
정직한 사각
혀의 반성
캔
한번도
봄날 견인되다
더와 다
시월
이상한 개나리
폐차
자화상
손잡이
대충(大蟲)
가닿고 싶은 것과 와닿을 수 없는 것
닻과 돛
해설
시인의 말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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