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수숫대(실천문학 시인선 38)
정완희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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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작가마당》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해 두 권의 시집을 낸 바 있는 정완희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붉은 수숫대』가 출간되었다. 정완희 시인은 현재 한국작가회의 충남지부 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정완희 시인이 태어난 곳은 충남 서천의 작은 마을이었으나 그는 평생 엔지니어로서 기곗밥을 먹고 살았던 사람이다. 사실 정완희 시인의 또래 대부분이 농촌에서 태어났지만 산업화 바람에 떠밀려 도시로 나오면서는 오로지 ‘경제 성장’이라는 목표에 청춘과 중년을 다 바쳐 왔다. 이 시집은 어쩌면 농촌(흙)이라는 심리적 터전과 도시(자본)라는 육체적 터전을 양가(兩價)적으로 두고 살아야 했던 한 인간(혹은 세대)의 내밀한 고백이자 새로운 삶의 시작을 알리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시인은 자연의 품속에서 조화로운 삶을 희원하는 동시에, 도시에서 그러했듯이 흙의 터전 위에서도 노동의 신성함을 몸소 실현하고 깨우치며 ‘원형이정(元亨利貞)’의 유기체적 시 세계를 구축해낸다.
정완희 시인이 태어난 곳은 충남 서천의 작은 마을이었으나 그는 평생 엔지니어로서 기곗밥을 먹고 살았던 사람이다. 사실 정완희 시인의 또래 대부분이 농촌에서 태어났지만 산업화 바람에 떠밀려 도시로 나오면서는 오로지 ‘경제 성장’이라는 목표에 청춘과 중년을 다 바쳐 왔다. 이 시집은 어쩌면 농촌(흙)이라는 심리적 터전과 도시(자본)라는 육체적 터전을 양가(兩價)적으로 두고 살아야 했던 한 인간(혹은 세대)의 내밀한 고백이자 새로운 삶의 시작을 알리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시인은 자연의 품속에서 조화로운 삶을 희원하는 동시에, 도시에서 그러했듯이 흙의 터전 위에서도 노동의 신성함을 몸소 실현하고 깨우치며 ‘원형이정(元亨利貞)’의 유기체적 시 세계를 구축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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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부푼 꿈을 안고 고향을 떠나왔지만 도시는 청년에게 풍요만 가져다준 것이 아니다. 인간을 소모품 취급하는 도시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은 그에게 쉴 틈을 주지 않았고, 인간다운 삶은 저당 잡혔다. 그렇게 쉴 틈 없이 살아온 대가로 이젠 "이십 일 간격으로 뒷머리에서/지지직거리며 스파크가 터"(「스파크」)지는가 하면, "세 사람의 직원을 자"르고, "다음엔 내 차례가 될 수도 있다"(「살생」)는 강박과 불안감에 점점 삶이 아득해지기에 이른다. 정완희 시인은 더 늦기 전에 자신의 삶이 달라져야 한다고 느낀다.
"냄새는 습한 저기압의 흉흉한 소문을 타고/급성 전염병이 되어 축축한 들판으로/온 세상으로 퍼져 나간다"(「안개의 냄새」). 이대로 가다가는 위험하다. "저 계곡 아래로 추락할 수도 있다"(「돌풍」)는 예감이 든다.
표제작 「붉은 수숫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벼랑 끝에 내몰린 "해고 노동자"인 동시에 언제 실직자가 될지 알 수 없는 노년기에 다다른 시인 자신을 상징한다.
경작주는 잘 익은 놈들만 골라, 남몰래
모가지만 뎅강 잘라 갔다
온몸에 흘러내린 선명한 핏자국
이제 수숫대는
강남역 네거리 붉은 현수막 두른 철탑 위
붉은 조끼 입은 해고 노동자가 되어
차가운 바람 앞에 섰다
늦가을 찬 서리가 내리고
겨울 지나 봄이 올 때까지
이파리 껍데기 모두 칼바람에 날리고
하얀 몸통만 남아 비틀린 세상에 맞서며
- 「붉은 수숫대」 부분
검붉은 녹으로 뒤덮인 고철을 열었다
경유와 시너를 발라 기름때 벗기고
망치와 스패너 산솟불로 달구며
조심스레 나사 풀어 부품들을 해체하고
묵은때 먼지 두껍게 녹슨 몸체는
샌드 블라스트. 모래를 날려 새 몸이 된다
긴 세월 삭아서 패인 가슴과 얼굴은
퍼디로 메워 예쁘게 화장을 하고
마모된 베어링과 손상된 부품을 바꾸어
모터와 콘트롤 패널을 붙여 기계를 돌린다
생명을 부여한다, 감히 신의 영역이다
청음봉으로 소음과 진동 맥박을 체크하고
다이얼게이지 붙여서 정밀도를 검사한다
사십 년 쓰다가 십 년은 처박혔던 고철 덩어리가
새 생명으로 부활하는 순간이다
앞으로 사십 년은 더 돌아갈 것이다
나도 이같이 뱃살도 빼고
물렁뼈 마모된 무릎 관절을 바꾸고
총기 떨어진 머리와
파워가 떨어진 심장과 물총도 바꾸고
바꾸고 또 바꾸어서
- 「부활」 전문
기계를 복구해내듯 인간의 몸도 '부활'시키길 바라지만 언감생심! "무릎 관절을 바꾸"거나 "총기 떨어진 머리와/파워가 떨어진 심장"을 갈아 끼울 수 없지만 사유를 전환시키면 더 이상의 빠른 자기 소모는 막을 수도 있다는 깨우침이 든다.
그리하여 시인은 고향으로 돌아온다. 고향으로 돌아온 시인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얼마나 행복해졌는지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시인은 텃밭 농사를 지으며 소소한 기쁨을 누리고, 집 주변의 짐승이며 자연의 품에서 조화로운 삶을 이어 가며 욕심 내려놓는 법을 익혀 간다.
그러한 새 삶 속에서 빚어진 시는 담백하면서도 순수하고, 상생의 미학이 알알이 담겨 있다. 특히 "세상으로 버려진 콩들을 본다/구르지 않는다고 왜 모두 썩은 콩이겠느냐/나도 한때는 고단한 노동에 찌그러진 콩이었으며/지금도 잘 구르지 않는 콩이나니"(「콩 고르기」)라는 단락은 이 시집의 절창이라 할 만하다.
아울러 "나도 얼른 옆으로 비켜야 한다/양보를 해야 한다/사이좋게 햇빛을 나눠야 한다"라는 문장으로 끝나는 시「양보」는 '더불어 살아감'의 지혜와 일상의 미학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노래한다.
쟁반에 콩을 굴려 콩 고른다
벌레 먹어 하얀 속살 드러내거나
찌그러진 콩과 납작한 콩 썩은 콩까지
구르지 않는 것들은 모두 버린다
밭을 갈아 콩를 심어 윗순 잘라 주고
늦서리 내린 뒤에야 낫으로 베어
토방과 마루에서 보름을 말렸다
마당에 어머님 쓰시던 그물망 깔고
도리깨 휘둘러 타작을 했다
겨울이 시작되면 아버지는 콩 고르기를 하셨다
서리태와 메주콩과 작은 콩나물콩까지
겨울 깊어져도 네모난 쟁반을 놓지 못했다
썩은 콩 한 개에 밥 한 그릇이 버려지고
썩은 조개 한 개에 한 솥 국을 버릴 수 있단다
세상으로 버려진 콩들을 본다
구르지 않는다고 왜 모두 썩은 콩이겠느냐
나도 한때는 고단한 노동에 찌그러진 콩이었으며
지금도 잘 구르지 않는 콩이나니
- 「콩 고르기」 전문
감나무에게 자리를 내어 주지 않는
백일홍의 가지를 잘랐다
감나무를 파서 옮겨 주려다
그러면 감나무가 죽을 수도 있고
뿌리가 다시 자리 잡는 데
이삼 년은 걸릴 거라서
사이좋게 햇빛도 나누라고
백일홍에게 가지 하나를 양보하라고
조심스레 양해를 구했다
내가 누리고 있는 이 자리도
행여 누군가에게 얼굴을 가리거나
시야를 햇빛을 가리거나
높이 올라갈 길을 막았다면
나도 얼른 옆으로 비켜야 한다
양보를 해야 한다
사이좋게 햇빛을 나눠야 한다
- 「양보」 전문
"냄새는 습한 저기압의 흉흉한 소문을 타고/급성 전염병이 되어 축축한 들판으로/온 세상으로 퍼져 나간다"(「안개의 냄새」). 이대로 가다가는 위험하다. "저 계곡 아래로 추락할 수도 있다"(「돌풍」)는 예감이 든다.
표제작 「붉은 수숫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벼랑 끝에 내몰린 "해고 노동자"인 동시에 언제 실직자가 될지 알 수 없는 노년기에 다다른 시인 자신을 상징한다.
경작주는 잘 익은 놈들만 골라, 남몰래
모가지만 뎅강 잘라 갔다
온몸에 흘러내린 선명한 핏자국
이제 수숫대는
강남역 네거리 붉은 현수막 두른 철탑 위
붉은 조끼 입은 해고 노동자가 되어
차가운 바람 앞에 섰다
늦가을 찬 서리가 내리고
겨울 지나 봄이 올 때까지
이파리 껍데기 모두 칼바람에 날리고
하얀 몸통만 남아 비틀린 세상에 맞서며
- 「붉은 수숫대」 부분
검붉은 녹으로 뒤덮인 고철을 열었다
경유와 시너를 발라 기름때 벗기고
망치와 스패너 산솟불로 달구며
조심스레 나사 풀어 부품들을 해체하고
묵은때 먼지 두껍게 녹슨 몸체는
샌드 블라스트. 모래를 날려 새 몸이 된다
긴 세월 삭아서 패인 가슴과 얼굴은
퍼디로 메워 예쁘게 화장을 하고
마모된 베어링과 손상된 부품을 바꾸어
모터와 콘트롤 패널을 붙여 기계를 돌린다
생명을 부여한다, 감히 신의 영역이다
청음봉으로 소음과 진동 맥박을 체크하고
다이얼게이지 붙여서 정밀도를 검사한다
사십 년 쓰다가 십 년은 처박혔던 고철 덩어리가
새 생명으로 부활하는 순간이다
앞으로 사십 년은 더 돌아갈 것이다
나도 이같이 뱃살도 빼고
물렁뼈 마모된 무릎 관절을 바꾸고
총기 떨어진 머리와
파워가 떨어진 심장과 물총도 바꾸고
바꾸고 또 바꾸어서
- 「부활」 전문
기계를 복구해내듯 인간의 몸도 '부활'시키길 바라지만 언감생심! "무릎 관절을 바꾸"거나 "총기 떨어진 머리와/파워가 떨어진 심장"을 갈아 끼울 수 없지만 사유를 전환시키면 더 이상의 빠른 자기 소모는 막을 수도 있다는 깨우침이 든다.
그리하여 시인은 고향으로 돌아온다. 고향으로 돌아온 시인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얼마나 행복해졌는지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시인은 텃밭 농사를 지으며 소소한 기쁨을 누리고, 집 주변의 짐승이며 자연의 품에서 조화로운 삶을 이어 가며 욕심 내려놓는 법을 익혀 간다.
그러한 새 삶 속에서 빚어진 시는 담백하면서도 순수하고, 상생의 미학이 알알이 담겨 있다. 특히 "세상으로 버려진 콩들을 본다/구르지 않는다고 왜 모두 썩은 콩이겠느냐/나도 한때는 고단한 노동에 찌그러진 콩이었으며/지금도 잘 구르지 않는 콩이나니"(「콩 고르기」)라는 단락은 이 시집의 절창이라 할 만하다.
아울러 "나도 얼른 옆으로 비켜야 한다/양보를 해야 한다/사이좋게 햇빛을 나눠야 한다"라는 문장으로 끝나는 시「양보」는 '더불어 살아감'의 지혜와 일상의 미학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노래한다.
쟁반에 콩을 굴려 콩 고른다
벌레 먹어 하얀 속살 드러내거나
찌그러진 콩과 납작한 콩 썩은 콩까지
구르지 않는 것들은 모두 버린다
밭을 갈아 콩를 심어 윗순 잘라 주고
늦서리 내린 뒤에야 낫으로 베어
토방과 마루에서 보름을 말렸다
마당에 어머님 쓰시던 그물망 깔고
도리깨 휘둘러 타작을 했다
겨울이 시작되면 아버지는 콩 고르기를 하셨다
서리태와 메주콩과 작은 콩나물콩까지
겨울 깊어져도 네모난 쟁반을 놓지 못했다
썩은 콩 한 개에 밥 한 그릇이 버려지고
썩은 조개 한 개에 한 솥 국을 버릴 수 있단다
세상으로 버려진 콩들을 본다
구르지 않는다고 왜 모두 썩은 콩이겠느냐
나도 한때는 고단한 노동에 찌그러진 콩이었으며
지금도 잘 구르지 않는 콩이나니
- 「콩 고르기」 전문
감나무에게 자리를 내어 주지 않는
백일홍의 가지를 잘랐다
감나무를 파서 옮겨 주려다
그러면 감나무가 죽을 수도 있고
뿌리가 다시 자리 잡는 데
이삼 년은 걸릴 거라서
사이좋게 햇빛도 나누라고
백일홍에게 가지 하나를 양보하라고
조심스레 양해를 구했다
내가 누리고 있는 이 자리도
행여 누군가에게 얼굴을 가리거나
시야를 햇빛을 가리거나
높이 올라갈 길을 막았다면
나도 얼른 옆으로 비켜야 한다
양보를 해야 한다
사이좋게 햇빛을 나눠야 한다
- 「양보」 전문
목차
목차
1부
붉은 수숫대
부활
해결사
살생
인부수첩28 사과문에 부쳐
견적서
구인 유감
마취
스파크
안개의 냄새
돌풍
땅콩
금강
2부
콩 고르기
삵
호박의 진실
살충
약점
생존
나비 조심
착과
머위
앵두
멧돼지 다녀가셨다
고구마 횡재하다
거지주머니병
3부
배꽃
개축
모시를 키운다
산 아랫집
감이 떨어진다
낙하
삼발이
양보
부여에서 버스를 탄다
밀물 그 그리움 속으로
마을버스
매미
판교는 안녕하신가
4부
꽃들은 말한다
꽃나비
동파 누설
숙련
선유도
전철을 탄다
제주
모슬포의 일박
이중섭
합격
창동 거리에 서다
일광욕
진눈깨비
해설 : 흙의 마음과 뿌리내리기 / 김영호(문학평론가)
시인의 말
붉은 수숫대
부활
해결사
살생
인부수첩28 사과문에 부쳐
견적서
구인 유감
마취
스파크
안개의 냄새
돌풍
땅콩
금강
2부
콩 고르기
삵
호박의 진실
살충
약점
생존
나비 조심
착과
머위
앵두
멧돼지 다녀가셨다
고구마 횡재하다
거지주머니병
3부
배꽃
개축
모시를 키운다
산 아랫집
감이 떨어진다
낙하
삼발이
양보
부여에서 버스를 탄다
밀물 그 그리움 속으로
마을버스
매미
판교는 안녕하신가
4부
꽃들은 말한다
꽃나비
동파 누설
숙련
선유도
전철을 탄다
제주
모슬포의 일박
이중섭
합격
창동 거리에 서다
일광욕
진눈깨비
해설 : 흙의 마음과 뿌리내리기 / 김영호(문학평론가)
시인의 말
저자
저자
정완희
1958년 충남 서천군 판교면에서 출생하여 2005년 《작가마당》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어둠을 불사르는 사랑』, 『장항선 열차를 타고』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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