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령 황태집에서(실천문학 시인선 53)(휠북)
강태근 시집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평생을 교수와 소설가로 살아오다 2019년 《세종시 마루》 제3집에 신작시 9편을 발표하며 시인으로도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강태근 시인의 첫 시집 『진부령 황태집에서』가 《실천문학 시인선》 53번으로 출간되었다. 이 제목이자 1부의 한 시편인「진부령 황태집에서」에 대해 정호승 시인은 추천사에서 ‘황태덕장에 걸린 명태에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사랑을 노래하는 그의 시적 발견이 무척 놀랍다. 인생의 가장 소중한 가치가 사랑이라는 것을 이 시집을 통해 구현함으로써 그의 문학적 인생은 기쁨으로 더욱 충만해질 것이다.’라고 상찬하고 있다. 평생을 소설가로 살아온 시인답게 이 시집에는 서정을 넘어 소설적 서사를 내포한 총 4부 55편의 종심을 넘긴 연륜이 아니면 오를 수 없는 인생에 대한 달관과 관조의 시들 외에 해직 교수로 20여년 투쟁하고 기다리며 만난(萬難)의 세월을 견뎌온 정의의 투사답게 사회 제반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도 일갈하는 시들로 알차게 채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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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나태주 시인은 '나는 평생 서정 형식만을 고집한 사람인데, 강태근 교수님은 놀랍게도 서정과 서사를 넘나들며 특별한 시를 쓰고 계셨다. 서사에 대해서 능력을 갖춘 분이라 평소 가끔 읽었던 시가 매우 특별했고 힘이 있었다.'고 시인을 평하고 있으며, 정호승 시인은'강태근은 경희대 국문과에 문예 장학생으로 나와 함께 입학해 오랜 세월 동안 문학적 우정을 나누어온 벗이다. 나는 시 속에 소설적 서사가 있다고 늘 생각해왔는데, 그는 소설 속에 시적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늘 생각해온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소설가인 그가 종심(從心)을 넘은 나이에 어찌 시를 쓸 수 있으랴.'고 평하고 있는데 이 두 시인의 강태근 시인의 이번 시집에 대한 공통 평은 소설적 서사가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소설가 시인의 특징이 아닌가 한다.
이어 정호승 시인의 다음 평을 들어보자.
'그의 시에는 전통적 서정과 감동의 눈물이 촉촉하다. 그 눈물이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를 깊게 위무해준다. 황태덕장에 걸린 명태에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사랑을 노래하는 그의 시적 발견이 무척 놀랍다. 인생의 가장 소중한 가치가 사랑이라는 것을 이 시집을 통해 구현함으로써 그의 문학적 인생은 기쁨으로 더욱 충만해질 것이다.'
여기서 '황태장에 걸려 있는 명태에서 가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사랑을 노래하는 그의 시적 발견'이라는 것은 이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진부령 황태집에서'란 시를 가르키는 것이다.
마음은 춥고
기다리는 사랑은 배달되지 않은 날
진눈깨비나 맞으며
진부령 황태 집으로 가라
어둠이 짙어가는 진부령 황태 집 창가에 앉아
대책 없이 쏟아지는 눈발을 바라보며
황태탕에 소주 한 병 시켜놓고
마지막 열차를 기다리듯
남은 사랑을 기다려라
창밖의 눈발은 싸락눈으로 변해
싸락싸락 내리고
지상은 주님의 은총으로
마음 따뜻해지고 좀 넉넉해졌을 때
황태에게 물어보아라
생은 왜 이렇게 추운 날이 많으냐고
황태는 대답할 것이다
예수처럼 죄 없이 덕장에 매달려 있다가
질긴 인연으로 너의 밥이 된 황태는
염화시중의 미소를 지으며 대답할 것이다
씨잘 데 없는 노가리 까지 말고
어서 뜨거운 국물이나 마셔라
이는 너를 위하여 흘린 내 피니라
어서 살점이나 뜯어먹고 기운 차려라
이는 너를 위하여 내어주는 내 몸이니라
그렇다 이제는 너도 남은 사랑을 위해
아주 진부령 황태가 되어야 한다
- 「진부령 황태집에서」 전문
이은봉 시인의 추천사에서도 「진부령 황태 집에서」를 언급하고 있다. "강태근 교수는 남다른 정의감 때문에 만난(萬難)의 세월을 견뎌온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수많은 고통을 감내해 왔지만 그의 시는 다정하고 다감한 마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밝고 화사한 위로와 위안을 준다. 새삼스러운 얘기지만 '망부석이 된/기다림을 주'(「기다림」)으며 살아온 것이 그이다. '마음은 춥고/기다리는 사랑은 배달되지 않'(「진부령 황태 집에서」)는 삶을 살아온 것이 그이다. 그래서일까. 이 시집의 시를 읽다보면 무구하고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해맑은 아우라가 독자들의 가슴을 치거니와, 아마도 이는 나날의 삶과 세계에 대한 그의 낙관적 전망에서 비롯되지 않는가 싶다." 여기서 언급한 '마음은 춥고/기다리는 사랑은 배달되지 않은 날'이란 만난한 세월을 견뎌온 것을 이른다. 강태근 시인은 해직 교수로 20년간 투쟁해서 결국 복직을 이뤄낸 만난한 삶의 당사자였다. 그 20여년은 투쟁의 시간이자 기다림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망부석이 된
기다림을 주워 왔습니다
부처님, 예수님, 언제 오시나요 언제 당신들의 참모습을
뵐 수 있나요 언제까지 당신들을 기다리다가 망부석이 되어
야 하나요
부처님이 말씀하신다 기다림이 없는 삶은 삶이 아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 앞에 나타나면 나는 이미
너희가 기다리는 부처도 예수도 아니다 나는 다만 보이지
않는 구원의 손으로 가련한 기다림들의 다비식을 올려줄 뿐
이다
부처님, 예수님, 오시기는 오시나요
오늘도 나는 기다림이 된
망부석을 주워 왔습니다
- 「기다림」 전문
추천사와 별개로 이 시집에서는 종심을 넘긴 연륜이 아니면 오를 수 없는 인생에 대한 달관의 경지랄까 관조랄까 아니면 황혼의 쓸쓸함이랄까 그런 시들이 눈에 많이 띈다. 저자 산문의 글을 빌린다면 '시나브로 저물어가는 피안의 언덕을 바라보며 묵상하는 중얼거림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삶은, 특별한 삶이 아니면, 거의가 지루한 반나절로 채워지는 것인지 모른다. 새는 죽을 때가 되면 울음이 구슬프고, 사람은 그 말이 선해진다는 말이 있듯이, 한 생을 살며 구겨지고 더럽혀진 말들을 빨아서 정리하는 심경. 아직 다 저물지 않은 남은 생을 아름답게 채색하고 싶은 욕망의 탈색, 적확한 표현인지 모르나 심경의 저변은 그렇다.'고 표현하는 시편들이다.
이승에서 다시는
허망한 집 짓지 말자고
혀 깨물었는데
어느새 내 가슴 속
둥지 튼 당신
바람 부는 날
오늘도 불면의 밤이네
- 「바람 부는 날」 전문
이제 떠나자
천년 사랑을 수놓을 오색실과
주린 그리움을 채울 주발만 달랑 챙겨
훠이훠이 떠나자
길을 가다가
학이 외다리로 서서 영원을 향하고 있는 먼 마을
애증을 내려놓고
사랑과 용서와 배려의 띠 풀로 초막을 짓자
낮에는 텃밭에 청빈의 푸른 푸성귀를 심고
밤이면 그대 고향의 갯벌처럼
별이 내려와 장이 서는 마당에서
사랑의 수를 놓는 그대
무릎에 누워
하늘님과 영원을 흥정하자
생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 같은 것이라지만
토막잠이면 어떠랴
-「이승에서의 하룻밤」 전문
살아온 날들을 탈곡하니
쭉정이가 더 많다
멀고 먼 여정 끝에 회귀한
연어 한 마리
석양에 누워
파도에 할퀸 상처 쓰다듬고 있네
샛별 기다릴 수 있어
행복한 저녁
-「그렇고 그런 날들」 전문
모진 세월 지나고
철들어
다 버린 줄 알았더니
다시 쌓이는 욕심
안락의자에
오래 앉아 있을 일 아니네
해 더 저물기 전에
버릴 건 빨리 버려야지
-「다짐」 전문
한때 찬란했던 꽃이여, 사랑이여
이제 지난 계절은 잊기로 한다
여기, 천둥과 먹구름 속에
생이 더 단단해져
완숙한 사랑의 지문으로 누워 있는
낙엽들을 보아라
온 산야에 누운 홍엽은
떨어져 추하게 시드는
봄꽃보다 오히려 아름답지 않은가
흘린 사랑의 음표를 줍듯
낙엽을 쓸어 모아 불을 지핀다
소천하는 아름다운 넋에 향을 사른다
-「낙엽을 태우며」 전문
그렇지 이제 그런 허망한 인연일랑
더는 만들지 말아야지
떠나보내지 말아야 할 인연이나 잘 간수해야지
이 세상 어느 것도 영원히 내 것이 될 수 없고
잠시 빌렸다가 돌려주고 가는 것
이제 비우고 내려놓아야지
어떤 이념이나 흑백 논리에도 더는 휘둘리지 말아야지
(…중략…)
인간은 자신들이 죽는다는 것을 아는
유일한 동물, 다른 동물들은
모든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는 진술을
이해하지 못하지
죽는 순간에만 그 사실을 깨닫지
깨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만은 예외일 거라는 착각 속에
갑자기 죽음을 당하여 발버둥 치며 끌려가는
추한 뒷모습은 보이지 말아야지
날이 저물기 전에 이쁜 마침표 하나 찍고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이면서
홀로 제 그림자를 끌고 피안의 언덕을 넘어갈
마음의 준비를 해 두어야 하지
-「황혼을 서랍에 넣으며」 부분
날이 저물기 전에 이쁜 마침표 하나 찍고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이면서 홀로 제 그림자를 끌고 피안의 언덕을 넘어갈 마음의 준비를 다짐한다는 시인의 피는 아직 뜨거워 사회 제반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관조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어쩌면 그것은 해직 교수로 20여년 투쟁하고 기다리며 만난(萬難)의 세월을 견뎌온 정의의 투사답게 누구든 불의에 대해 나의 일이 아니라고 방임하면 그 방임의 책임은 결국 나에게 귀결됨을 일갈하는 시와 근래 가장 요란한(?) 사회문제 이슈인'미투'를 소재로한 시가 그것이다.
나치는 처음에
공산주의자를 숙청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기에 침묵했다
그 다음에 유대인을 숙청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기에 침묵했다
그 다음엔 노동조합원을 숙청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기에 침묵했다
그 다음엔 가톨릭교도를 숙청했다
나는 개신교도였기에 침묵했다
마지막에 그들이 내게로 다가왔을 때
나를 위해 말해 줄 이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지」 부분
보리밭에서, 밀밭에서, 물레방앗간에서
안 돼요, 안 돼요… 버티다가
돼요, 돼요, 돼애욧, 허물어졌어도
아니면 보쌈 당했어도
정들어 새끼 낳고 잘 살아
뭣이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
번듯한 집구석 만들었는데
저 산에 들꽃들도 눈 맞아
즈들끼리 저렇게 잘도 붉는데
(중략)
억울한 나비들은
이유여하 불문곡직 성추행 성폭행으로 몰리면
지위고하 나이고하 공소 시효 상관없이
소급 적용되어 졸도 아니면 사망인데
참회와 용서의 백신 언제 나올지 모르는데
눈 뒤집혀 환장한 놈 아니고서야
어디 마음에 드는 꽃한테
윙크 한번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고
삼삼오오 쑥덕공론이고
(중략)
귀하신 꽃과 나비들은 몰래몰래
눈치껏 별식 샛밥도 잘도 챙겨 먹는데
그래, 느그들은 밥만 처묵고 살것드나
-「잔인한 봄」 부분
《실천문학시인선》은 해설보다 저자 산문을 선호하는데 강태근 시인은 「비틀거리는 한국 서정시의 정체성을 묻는다」는 저자 산문에서 한국 서정시에 대해 자신의 시론을 밝히면서도, 우연인지 필연인지 추천사를 쓴 나태주 정호승 시인의 시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서정시가 새로워지는 것은 바람직하다. 서정의 낡은 틀을 부수고 바람직한 탈 서정의 활로를 모색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자폭에 가까운 질주의 파격은 자칫 궤도 이탈의 위험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과거 십여 년 전 어느 한 시기 괴팍한 비유, 강퍅한 이분법적 화법의 시가 유행처럼 번져 한국시를 기형으로 만들었던 일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다행히 요즘에는 그런 광란의 질주를 멈추고, 매우 일상적이면서도 삶의 면면을 탐색하면서 시의 본래성에 안착하는 시들이 많이 나와 미래의 한국시가 건강하게 새로워지리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평자에 따라 다를 수는 있으나, 나태주와 정호승의 서정시를 정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그들의 시가 어떻게 현대시에서 멀어진 대중에게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가는 굳이 사족을 붙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정신적인 기품을 높이면서 대중에게 사랑받는 새로운 서정시를 모색하는 길을 떠나면서 '정서(서정)'를 동반하지 않는 것은, '줄 있는 거문고도 뜯을 줄 모르는 사람이 줄 없는 거문고를 뜯으려는 망상'이 아닌지 자문하고 싶다.'는 시론을 소개하며 출판사 서평을 마친다.
목차
목차
바람 부는 날 11
단청 12
낙수 2제 13
진부령 황태집에서 16
적막한 한낮 18
자탄 19
프로메테우스의 베틀 20
첫사랑 21
이승에서의 하룻밤 22
가을은 비에 젖고 24 밥 25
길에서 26
실종 27
꿈속의 꿈 29
이제 이런 사랑을 30
제2부
조춘 33 섬 34
이중섭 35
동심 36
꽃도 지고 마음도 지고 37
새해 아침에 38
그렇고 그런 날들 41
역마살 42
박꽃 43
호박꽃 44
복사꽃 45
민들레 46
다짐 47
본능의 경제학 원론 48
수담 49
제3부
정류장에서 57
귀로에서 58
만세 선인장 59
낙엽을 태우며 60 역 61 집 63
하니를 묻고 66
꽃이 지는 것은 67
다산 초당에서 68
불립문자 69
귀천 70
무애원 송 71
황혼을 서랍에 넣으며 73
제4부
그래도 할 말은 해야지 83
다시 봄은 왔다고 86
젊음에게 87
기다림 89
운명 90
할미꽃 91
결별 92
아픔도 가꾸면 반짝인다 93
갈대 95
공룡에게 97
아가야, 어서 오너라 101
잔인한 봄 104
저자 산문 111
시인의 말 136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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