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자 편지(실천시집선 304)
전태일 문학상, 수주문학상, 김민부 문학상, 김만중문학상 등을 수상한 송유미 시인이 여섯 번째 시집 『점자편지』를 《실천문학사》에서 출간했다. 이 시집에는 4부 57편의 처절한 삶의 질곡과 고독한 존재에 대하여 날 이미지의 시어로 형상화한 살아 숨 쉬는 시들이 실려 있는데, 현실의 무게에 짓눌린 밑바닥의 아픔과 슬픔 그리고 이산문제와 노년의 쓸쓸함에 대하여 핏빛 잉크의 철필로 쓴 점자 편지를 손가락으로 더듬어 읽듯 잘 드러내고 있다. 김다연 해설가는 송유미 시인에게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삶을 깨닫는 실천적 과정이며, 생에 깃든 슬픔과 고난 안에서 끝끝내 ‘목울대가 까맣게 타버린 詩의 꽃’들을 피워 올리는 일이다. 『점자 편지』는 ‘귀 없는 새들만 알아듣는’ ‘숲의 말씀’처럼, 더는 잃을 것이 없는 존재의 밑바닥에서 써 내려간 삶의 경전이다. 생의 싸늘한 잿더미 속에서 발견한 불씨 같은 성찰에는 치열하고 강인한 정신이 깃들어 있다. 그렇기에 시인의 시로부터 삶의 고통과 난관을 견디는 힘을 얻’는다고 상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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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송유미 시집 『무점자 편지』의 시 세계
Ⅰ.
척박한 삶들을 시 세계 속에 그대로 옮겨놓는 일은 아픔이다. 오랜 기간 삶과 시를 쓰는 행위를 밀착시키고자 했던 시인은 『점자 편지』를 통해 시가 말의 유희나 언어의 향연이 아닌 삶의 양식임을 보여준다. 한 산문에서 시인은 '시를 쓴다'는 행위에 대해 '생과 사가 반복되고 소멸하고 탄생하는 것들을 처연하게 바라보는 한 견의 시선'으로 세상에 드리워진 '정체불명의 슬픔'을 형상화 하는 일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점자 편지』는 만져지는 슬픔이다. '두 눈을 감고 꽃잎 같은 고사리 손으로/부드러운 살결을 만지듯이 읽어'야만 읽히는 약자들의 울음을 닥종이에 철필로 새겨놓았다. 시인은 '가시 손으
로/모래사막 낙타가시풀의 고독'을 읽어내듯이 밑바닥 심층의 통점을 명료하게 짚어내지만, 그 아픔을 어루만지는 손길은 깊고 따스하다. '세계 속에 머물다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비 영원성의 존재들을 향한 안타까움에서 생성되는 이미지'들로 자신만의 시 세계를 구축해가는 그의 작업은 현대 시문학에 있어 소중한 시적 실천이다.
Ⅱ.
서울 역전, 우리, 孔兄, 새벽 댓바람부터 병나발 분다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소주병 속으로 질주하는 KTX가
푸른 바다에 풍덩 빠질 무렵이면
뱃살 출렁이는 몸뚱이도 바닥이 나겠지
바닥 새들 비상하겠지
바닥을 모르면서 바닥을 노래하는 것도 싱거운 일이지…
너는 뭐 그리 바닥을 잘아냐고
원효 도사 천 원 한 장 주면 성불시켜준다고 손바닥 내민다
헛소리 미친 소리에 귀를 씻고 씻다 보면
나도 마개 열린 우리, 孔兄이다… 복제 孔兄이다
거금 오만 원 넘게 내고, 아등바등 올라온
서울은 빈 병이다… 나는 병 속의 새다
하나부터 열까지 서울 역사 안에서 해결되는 상술 속에서
한발도 나가본 적 없는 나의 서울 나들이, 나는 병 속의 서울,
서글프지만 이런 깨달음을 얻는데
50년이 걸린 나의 인생,
이제부터 '쥐뿔' '개뿔'로 살아갈 것이다
노아의 홍수에서 공기만 먹고 살아남은… 서울역 비둘기들
쥐뿔도 없는 바닥 하나 믿고 은일하다
-「소주병 속에 비둘기가 산다- 서울역」 부분
「소주병 속에 비둘기가 산다 - 서울역」은 '서울'이라는 공간을 빈 병 속으로 옮겨놓는다. 허상으로 채워져 있던 것들이 바닥나면서 드러나는 '서울'의 밑바닥에는 '바닥을 모르면서 바닥
을 노래하는 것'이 '싱거운 일'이 되기까지 굴러다닌 '바닥 새'들의 영혼이 읽힌다. 병 안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어 한 발도 나갈 수 없는 '서울'은 갇혀 있다는 생각에 갇히게 만드는 도시이다. '천 원 한 장'에 성불할 수 있다는 노숙자 신세 원효도사의 '헛소리 미친 소리'에 귀를 씻고 보면 '나도 마개 열린 우리, 孔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풍요 속에서는 절대 입구를 찾지 못'할 유리병 속 삶에서 벗어나는 길은 '바닥'까지 내려와서 '바닥'을 딛고 '비상'하는 것뿐이다. '쥐뿔', '개뿔'의 힘으로 바닥을 살아내다 '개뿔 하나 없는 바닥'이 된 후에야 소주병 밖으로 날아오를 수 있다.
Ⅲ.
아- 나비들 마른 나뭇잎 속에 숨어 있다가 떠나는 가을
등 굽은 뇌졸중 환자들이랑 마구 뒤섞인 화투패 두다가 아네
화투 한 장 넘기는 장력에도 기적이 스며 있다는 거
끔찍한 자식 사랑도 우물쭈물하다가 떠나는 배 같은 거여서
아무도 면회 청하는 이 없는
요양원 물리치료 작업실 두레반 앞에 모여 앉아
이해용 수저와 젓가락으로 물리치료사 선생들
재촉받으며 종일 밥 먹는 작업을 하네 아 힘들어
한 숟가락 뜨는데 1시간이라니 고작 젓가락질뿐인데
겨자씨 한 알로 성을 쌓는 겁의 시간이 필요하다니
푸른빛 강 건너
나의 젊은 삶이야 밥 한 끼는 식은 죽 먹기겠지만
푸른빛 강 건너 이편 저녁 불빛들은 배가 고프다
-「유칼립투스 물리치료실 2」 부분
겨우 '한 숟가락 뜨는데' '겨자씨 한 알로 성을 쌓는 겁의 시간'이 필요한 '몸'들이 둥글게 모여 화투를 두다 보면 '화투 한 장에 넘기는 장력에도 기적이 스며'있음을 알게 된다. '기다리는 것'은 '결국은 노인이 되는 일 「노인이 되어도 나는 노인인 줄 모를 것이다」'이지만, 우리는 젊음을 갈망하며 늙지 않음에 몰두하는 사회안에서 '노인이 되어도' '노인인 줄 모'른 채 살아갈 것이다. 온갖 상품과 시스템이 영원히 '젊음'에 머물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을 부추긴다. 그러나 몸은 욕망과 무관하게 소멸을 향해 다가간다. 유칼립투스 물리치료실 연작시들은 의식이 요구하는 움직임을 몸이 수행하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불일치의 아픔으로 가득 차 있다.
철거지역, 노인 병원 영안실 앞에는
버려진 구두가 꽃잎처럼 지천이다
장거리 문상객을 위해서일까 붉은 다라이 신발 신은
배롱나무 그늘 아래 그가 누런 삼베 두건을 쓰고
밤을 새워 검정 구두를 별빛처럼 닦고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상갓집으로 모여드는 것은
구두만 아니라 국화꽃도 지천이다
검정 구두와 하얀 꽃의 성스러움은 두 말이 필요 없지만,
곡비가 사라진 마당에
상喪예의가 너무나 소홀해서
떠나는 자는 절대 울지 않는다는 것을 아무도 모를 것이다.
우수수 바람에 떨어지는 꽃을 보라,
바람이 맨발에 꿰면 훌륭한 당혜!
누가 죽음은 끝도 시작도 없는 항해라 했나
누가 뭐라 해도 길고 긴 항해에는
소가죽 구두가 잘 어울릴 텐데
수의에 걸맞은 신발이 시대에 뒤떨어지게 짚신짝이라니
이걸 죽은 자가 어떻게 산 자에게
전달해야 할지 모르는 비애로
세상 모든 검정 구두들은 오늘 밤에도 상갓집으로 모여든다
-「배롱나무 구두 병원으로 맨발들 모여들고」 부분
송유미 시인의 시에서 '신발'은 삶에서 죽음으로, 죽음에서 삶으로 영혼을 싣고 떠도는 배다. 「배롱나무 구두 병원으로 맨발들 모여들고」는 육신이 떠나는 자리에 저마다의 신을 꿰차고 온몸들이 모여 장관을 이룬다. '늙은 아버지의 몸'같이 헐거워져 가는 한 켤레의 신발들이 먼저 떠나는 '몸'을 애도한다. 이 시의 시적 화자는 '죽을힘을 다해 살다가 끝내 떠나고만/막내 영정 앞에' '이 헌신짝 같은 세상을 네가 버리고 가는 거'라며 '소가죽 구두 한 켤레'를 선물한다. 이 한마디 말 속에서 생을 떠나는 자의 발걸음은 가벼워질 것이다. 또 한 켤레의 신발 속에서 '끝도 시작도 없는 항해'를 하다 다시 태어날 몸에 닿게 되리라. '몸의 감옥을 떠다니는 나뭇잎 한척'에 실려 가는 영혼들의 만남과 이별을 시인은 이토록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이미지로 형상화 시켜내고 있다.
Ⅳ.
하루가 무섭다 어두워지는 눈이 무섭다
의사의 만류에도 삶의 낙이 이것뿐이라고
어머니 철필로 점자 불경 닥종이에 옮겨 새기신다
해진 열 손톱 끝에 봉선화 꽃물 번져 간다
시치미 떼고, 연옥을 찾아가는 단테같이
주문呪文을 하얀 닥종이에 새긴다
어디선가 찌르르 스르르 우는 풀벌레 소리
잘 알아보면, 점자별과 통신을 하는 소리…
제 심장에다 나이테를 나무들이 새기듯이
더듬더듬 감은 눈으로 무얼 쓰고 싶은 것인가
오늘 만나도 내일은 알 수 없는 내 마음이
답답한 마스크 끼고 앉아서 철필로 만다라 새긴다
결국 시작과 끝이 만나서 바람에 털리고야 말
모래 만다라처럼, 빈손은 백지로 돌아온다
그래도 자꾸 점자별이 되고 싶어
만다라 속을 수놓는 오롯한 점자의 시간
-「점자 숲 오목눈이 교실3」 부분
시인이 『점자 편지』를 통해 그려내는 언어는 바깥으로 발화되는 언어가 아니라 제 가슴에 철필로 새겨 넣은 '만다라'다. 자꾸만 어두워지는 눈으로 '삶의 낙이 이것뿐'이라며 '점자 불경
닥종이' 옮기는 어머니의 심경이며 '제 심장에다 나이테를 나무들이 새기듯이' 제 가슴 안에 삭히는 슬픔이다. '오롯한 점자의 시간' 속에 수놓는 것은 '결국 시작과 끝이 만나서 바람에 털리고야 말 모래 만다라'이다. 그것은 백지로 돌아가는 시이자, 모래 만다라를 새기는 서로의 손끝에서야 읽을 수 있는 크나큰 아픔이다. 시인은 여성의 삶에 담긴 슬픔을 시라는 형식 안에 '점자'를 새기듯 독창적 이미지로 형상화 시켜냈다.
침묵은 물그리메 깊이 잠들면 고요한 북 잠든다는 건 두 가지 뜻이라지 산다는 건 生을 품은 死, 死를 상대하는 순간순간들 (중략) 흩어진 뼛가루로 뭉쳐진 내 열두 개 손가락으로 도무지 만져지지 않는 피붙이들… 물 위에 쓴다 …사랑이 비산 민교 태언 규린 그리고 연두…
- 「고향 윤슬」 부분
시인의 시에서 나타나는 척박한 현실에서도 일어서는 힘은 '목숨을 걸어야 깊이를 알 수 있'는 사랑에서 나온다. 시인이 품은 사랑은 역경 속에서도 삶을 지탱하게 만드는 근원적 힘이
다. 그 사랑은 '生을 품은 死, 死를 상대하는 순간순간들' 속에서 만나고 이별한 인연들을 향해 있다. 탄생과 소멸을 거치며 '비목 속에서 새겨진 죽은 이름'으로 남겨진 그리운 이들의 흔
적들은 여전히 남겨진 이들의 삶을 빛내고 있다.
세상의 이면을 읽어내는 시의 힘은 여전히 유효하고, 그것이 또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힘이라는 것을 이 시집의 시들이 증명하고 있다. 그 소임을 위해 끊임없이 세상 가장 낮은 곳으로 가고, 그곳에서 들려오는 삶의 소리들을 찾아내는 시인의 작품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목차
목차
고향 윤슬 11
점자 편지 12
점자 숲 오목눈이 교실 1 14
점자 숲 오목눈이 교실 2 16
소주병 속에 비둘기가 산다 18
노인이 되어도 나는 노인인 줄 모를 것이다 20
목울대가 까맣게 타버린 詩의 꽃 23
흑룡 302호 장례식에의 초대 25
방 빼는 날 27
썩지 않은 군화 29
수상한 남대문 시장 복사점 31
감자 먹는 사람들 33
역전 다방 36
배롱나무 구두 병원으로 맨발들 모여들고 38
제2부
봄이 밑천 43
머릿속 지우개 45
깡통 부처 46
병 속의 서울, 나의 우파니샤드 47
그대 쓸쓸한 무덤을 위로할 한그루 벗 49
점자 숲 오목눈이 교실 3 51
검은 해바라기 52
언어의 사원에서 53
거꾸로 선 나무의 말씀 55
점자 숲 오목눈이 교실 4 57
여기 쌈지 공원에 자장면 두 그릇 배달요 58
거미줄 풀어 나비를 짜다 60
화석 62
제3부
붉은 다라이의 기적 67
당나귀 표 직물 공장 옆 양철 지붕 집 68
새들의 장례식 69
호른 애인 71
돼지가 고추장 단지에 빠진 날 73
장대비가 마당을 못질할 때 75
붉은 다라이 76
남해 노도에서 78
청보리밭 교실 80
어머니의 달 82
원형 탈모 앓는 공터 84
앵강만 바람 귀는 사납다 86
공장 불빛으로 만든 아가씨 88
18번 상속 90
잠만 자는 房이 있습니까 92
금붕어, 閑 94
제4부
유칼립투스 물리치료실 1 97
유칼립투스 물리치료실 2 98
유칼립투스 물리치료실 3 99
유칼립투스 물리치료실 4 101
유칼립투스 물리치료실 5 102
개똥 익어가는 계절 104
아비의 등뼈에서 흘러나오는 색소폰 소리 107
신의 12번 현을 위하여 109
갈참나무 요양원 112
은사시나무 요양원 一泊 114
마당 쓰는 사이 116
성묘 118
파도로 남은 꿈 120
너는 나를 나는 너를 건널 수 없다고 돌아설 때 121
해설
시인의 말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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