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암시민 살아진다(실천문학시집선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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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초짜 '제주시인'이자 보따리 '항만 기술자'의 첫 시집-「살암시민 살아진다」
1.
안시표 시인은 지금 뭍(율촌 앞마다)으로 나와 살지만, 섬나라 탐라 사람이자 타고난 시인이다. 그는 문학을 전공하지도 않은 토목 공학도(토목기사 1급)로서 평생을 건설사업관리기술인으로서 항만 현장에서 살아왔고 지금도 근무 중이다. 그 '보따리 항만 기술자'가 지천명도 한참 지난 '어느 날 고향 한 줄 우연히 펼쳐놓고 신춘 시인이란' '초짜 시인 타이틀을 얻'어 시인이 되었다. 그런데 이 시집의 시를 보면 시인의 말은 겸손으로 보인다. 어찌 보면 시인 자신은 겸손의 예로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나는 시에 대해서 배운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는데 우연히 고향 얘기 한 줄 풀어놓았는데 신춘 시인이란 타이틀을 얻었다'고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 말은 분명 거짓말로 들린다.
뭍으로 나와 있는 나는 제주 사람
어느 날 고향 한 줄 우연히 펼쳐놓고
신춘 시인이란 타이틀을 얻었다
어떻게 하면 시가 올까요
제주작가회의 가입원서를 내고
외조부님 4·3 유족 보상금 신청을 하고
나는 시간에 쫓겨 공항으로 간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걸려 온 전화 한 통
선생님 뭍으로 가지 마시고 제주로 직장을 옮기면 안 되나요?
순간순간 지나온 모든 기억이
여기 율촌 앞바다 뻘밭으로 자꾸만 빠진다
당장 버려지는 것 같은 그런 순간순간이
원하던 대화에서 찾아오는 웃음 뒤의 여백은
종이 한 장 묻어 있을 선잠뿐인데
오늘이 과거를 부정하는 의미로
잠의 실체를 찾고 있다면
나는 거짓이다
(중략)
-「물은 물길을 안다」 부분
(중략)
나는 보따리 항만 기술자인데요
왜 산으로 뒤뚱뒤뚱 걸어왔을까요
바다를 버리고 작은 솔방울을 버리고
버릴 게 하나 더 있나 주변을 살펴봤어요
어! 하나 있네요
엊그제 초짜 시인 타이틀을 얻었는데요
천만다행입니다
개미등에 올라 저 먼 곳을 바라보는 개오리나무
헐벗은 갈색을 오래 감추고 변명하는 사기꾼 같아 좋았어요
(중략) -「개오리나무」 부분
왜 시인의 말이 거짓말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말랑말랑한 연둣빛 허공을 움켜쥔 바다~', '한 뭉텅이 맨드라미 빛 비명~', '쓸쓸해진다는 건 고요가 부풀어진다는 것', '풀려버린 입술을 식탁에 올려놓고', '석양의 온기에 바람을 올려놓고', '겨울 심장에 둥지를 튼 텃새처럼 붉은 부리로 하늘을 쪼아대는 기억', '차분해진다는 건 옷을 벗고 맨살을 만져보는 것~', '산은 이미 숲을 체념한 듯 색을 내려놓고 싸늘히 식어 간다', '문 열면 불빛에 매달린 고독에 떠밀려', '내 안에 고이는 바람이나 만지작거리다가~','숨이 찬 해변은 파도를 뱉어 내고', '남은 생을 당신으로 앓아누워도 되겠는지요?', '~새벽을 묶는다' 등의 표현은 20대 젊은 감수성의 시인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시적 언어를 다루는 기교가현란 수려하다. 또한, 시인은 한국어의 장점인 의성어나 의태어를 잘 살려 써서 시의 수준을 한층 끌어올리고 있다. 다음의 '울음이 말랑말랑해질 때까지', '자박자박 들린다'. '사각사각 베어 물다', '잘근잘근 대는 소리를 씹으며', '삐걱삐걱 거룻배 기지개 켜는 아침~' 등을 읽으면 어찌 이 시인을 이제껏 문학과 동떨어진 '보따리 항만 기술자'이자 늦깎이 '초짜 시인'이라고 하겠는가? 시인의 말대로 특별한 시 창작 공부나 습작 없이 그냥 한번 써봤더니 이런 시가 탄생했다고 한다면 타고난 시인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시인은 시가 은유의 언어예술이란 것을 태생적으로 알고 있었단 말이니까. 물론 좋은 시가 현란한 기교만으로 창작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문학이 언어예술인 이상 언어를 다루는 뛰어난 기교는 시인으로서 큰 자산임이 분명하리라 본다.
이 밖에 시인의 개인사나 자아의식들이 군데군데 녹아들어 있는 시편들로는 「나무 혼자」, 「슬픔의 밀착」, 「빗소리를 듣는 가을」, 「화포 해변에서」, 「첫눈」, 「능소화」, 「문득 바람」, 「너는 나다」이 있다. 또 이 시집의 각부마다 시인은 자신의 가족들을 그리는 시를 형상화하고 있다. 「어머니의 입동」, 「아버지의 방」, 「할아버지의 바다」, 「소리의 정원」(아내)이 그 대표적인 시편들이다.
2.
시인은 고내봉(172.8m) 때문에 한라산이 가려진 제주 서쪽 마을(고내리) 토박이 시인답게 제주의 풍광과 제주인의 삶을 독자들에게 조곤조곤 들려주고 있다. 그런 대표 시로 이 시집에서 편집부가 가장 눈여겨본 시편이 「다락빌레의 소沼로 간 소牛」이다. 시인의 뜻을 좇아 평범한 교훈 투의 약간 애매하게 다가오는 『살암시민 살아진다』로 이 시집의 제목을 최종 양보했지만, 편집부에서는 이 시의 제목을 이 시집의 제목으로 추천하기도 했었다. 이유는 제주도의 과거와 현재를 잘 표현하고 있는 시의 내용(다락빌레 벼랑과 소沼, 송아지, 큰어머니, 벼랑 파도, 수초, 진흙 물뱀, 장수풍뎅이, 황소의 발굽 소리, 버들 막대, 신작로, 다락 쉼터 표지석)뿐만 아니라 제목 자체에도 제주도의 토속어와 함께 음은 같지만, 뜻은 다른(同音異義) 한자인 소(沼)와 순우리말인 소(牛)를 언어 유희적으로 구사해 재치도 돋보였기 때문에 제주 시인의 정체성과 호기심을 동시에 독자들에게 주는 데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7080세대들이라면 제주도가 아닌 뭍에서도 소를 먹이다가 낭떠러지에서 굴러 죽은 소의 사연 하나 정도는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또 동구 밖 으슥하고 굽이진 산기슭의 도깨비불이 날아다닌다는 애장터로 소먹이 소를 찾으러 갔거나 나무를 하러 갔을 때의 오싹했던 기억들 또한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곳은 지금도 그대로 방치되어 있거나 아니면 제주도처럼 개발된 곳은 신작로가 깔려 아스팔트 위로 불빛을 밝힌 자동차 바퀴가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신작로가 들어선 지금도 비가 오는 밤에 교통사고가 나서 안전띠를 맨 아이들만 숨이 멎었다며, 현재와 이어져 있음을 민담을 전하듯 「아기 밴 돌」에서 들려주고 있다.
?
섬 노을이 바다를 펼치면 다락빌레 벼랑 속으로
거친 숨결 하나, 하늘로 간 소沼에 소가 있었지
도시의 아파트 한 채처럼 송아지를 분양받은 큰어머니
차양 넓은 햇살이 작은 어깨에 내려앉아
들판의 하루가 감투로 숨 차오를 때
다락빌레 한가운데 소沼의 잘근잘근 대는 소리에 잠시 쉬어 가고는 했지
하양 떠밀려 오는 벼랑 파도 소리가
무성한 파동을 이끌고 수초의 혼을 빼놓을 때
개구리 숨죽이며 알 낳은 소리, 공기 방울로 터져 나오고
진흙 물뱀 꼬리는 바람의 온기를 감추며 저물어 갔지
어디선가 장수풍뎅이 물가에 지문 찍듯 소沼 지천을 쿵쿵 울리며
소의 발굽 소리 다가올 적, 겁 없이 손에 쥐어진 버들 막대 하나
물가에 비친 늙은 호박 같은 엉덩짝을 찰싹 내리치고는 했어
목을 축이는 소의 울음 곁, 하얀 목덜미를 씻는 큰어머니의 환한 하루가
이렇듯 흘러가는 어진 눈매에
느려도 천 리를 가는 황소의 콧김으로
점점 소沼와 뜨겁게 맞닿던 어느 여름날이었어
꿈결 소沼에 비친 낮달을 사각사각 베어 물다
생이가래 속으로 툭 떨어진 이빨을 찾으려 손을 집어넣던 딸애
간질대는 물뱀에 울면서 깨어난 다락빌레엔
종일 비가 내렸고
웃자란 풀을 쫓다 벼랑 아래로 큰어머니의 황소는 별안간 떨어졌지
바다는 굵어지는 빗소리에 큰어머니 상혼喪魂의 궁핍을 남기고
그 해, 무른 콜타르 감정이 다락빌레 소沼를 자르니
쭈욱 뻗어나간 신작로에 소금 핀 마른 눈물만 번져갔어
서쪽 돌 염전 따라 빌레의 명치끝을 밟으면 다락쉼터 표지석을 만날 수 있어
바람 부는 날 이곳에 서면 수평선 너머로 간 큰어머니의 황소가
아직도 소沼의 잘근잘근 대는 소리를 씹으며
바다로 터져나간 신음을 삼키는 것 같아 먹먹해지고는 해
-「다락빌레의 소沼로 간 소」 전문
제주 서쪽 굽이진 자리에 고내리 마을 이정표가 있지요 소낭밭 동쪽 어구 한 길이 잘려나간 귀퉁이에요 옛날 옛적 마을 사람들은 도채비 불이 자주 날아 다닌다고 했는데 여기가 그곳인가 봐요 지금은 자동차 불빛만 굽이굽이 흘러가는데요 가끔 딱딱한 울음소리 때문에 아스팔트 불빛은 자주 미끄러지고 혹여 비가 오는 밤이면 소리들이 모여 앉아 달리던 바퀴들을 급제동 시켜요 어느 해 이곳에서 큰 사고가 났는데 안전벨트를 맨 아이들만 숨이 멎었대요 (중략)
-「아기 밴 돌」 부분
3.
이 시집에서 그리고 있는 소재 중의 하나가 제주도의 역사성이다. 지금 제주도의 역사라고 하면 저 고대의 탐라국이나 삼성혈의 전설보다는 근세사인 4.3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역시 시인은 섬사람들은 대 놓고 안부를 묻지 않고, 잃어버린 계절을 견디어 낸 민들레 안부가 저희들끼리 피어난 목숨이고, 살아남은 민들레 자손임을 알고 그렇게 제주의 4월을 「양, 양!」, 「민들레 오름」,「고사리 장마」,「속슴허라」 등에서 안개를 풀어 비를 내리듯 비유로 시화하고 있어 독자들의 가슴에 은은히 젖어 들게 한다..
남도 섬사람들은 말이 참 짧아서 누군가를 부를 때면 양, 양! 하고 부른다 말을 할 때마다 멈칫멈칫하는 게 낯선 사람을 보고 뭘 숨기는 것 같기도 하고 봐봐 길을 걷다 지명을 물으면 나이 지긋한 이들도 위아래를 찬찬히 훑어보며 한참 뜸을 들인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 수 없어서 어머니께 여쭤보니 속슴허래 그냥 그렇게 살래 히어뜩이헌 소리 할 거면 갯갓디 나가 보라고 파도가 왜 돌멩이를 그렇게 때리는지 그래도 소란 없이 잠잠해지는 바당을 보라고 섬에서 부는 바람은 안다고 그렇게 삭풍은 어머니 가슴을 붙잡고 우는 거래 누가 묻더라도 쉬이 대답하지 말고 되도록 짧게, 짧게 말하라고
바깥의 소란을 거부하는 환해장성의 외로움을 당신은 아느냐고? 숨 막힌 4.3 세월이 끝난 거냐고?
되려 묻다가, 묻다가 사월 살바람 붙잡고 양, 양!
서릿바람에 동백꽃 곱게 피어도 양, 양!
-「양, 양!」 전문
(중략) 섬사람들은 대놓고 안부를 묻지 않는다왜 민둥 오름마다 민들레가 터를 잡았는지달빛을 품을 수만 있다면오름 분화구마다 조각달을 채워 놓고어둠에 퉁퉁 부어오른 달빛으로틈과 틈을 맞댄 산담의 비애를 긁어내는지밤마다 돌 빛에 흘린 지아비 눈물과눈물을 머금은 지어미 무덤에도잃어버린 계절을 견디어 낸 민들레 안부가저희들끼리 피어난 목숨인 것을 안다 바닷바람에게 뭍의 소식을 전해 듣는 섬에서는사월이면 어지럼증에 몸살을 앓고오름 꼭지마다 부푼 달빛을 찾아가는 나는살아남은 민들레 자손이다
(중략)민들레 오름은 민들레로 꽃 피어 다시 일어선다
-「민들레 오름」
다랑쉬 들녘에 비가 내린다
산줄기에 매달린 오름과 오름마다
4월은 안개를 풀어 비는 내린다
(중략)
누가 볼까 봐
땅속 깊이 박힌 푸석한 무음無音들
돌아오지 않는 인기척을 기다리며
제주의 봄은 빛보다 먼저 휘휘했던 소문처럼
대지를 훔치며 내린다
아무도 모르게, 알아도 모른 척,
고사리손으로 다랑쉬오름 머리채를 곱게 빗겨내며
가만가만 고여 있는 눈물
사라진 월랑동 돌기까지 닦아 내린다
안개가 걷히는 순간
제주의 4월은
가시덤불 속 외 고사리 표정으로 젖는다
-「고사리 장마」 부분
4.
편집부에서는 제주도의 시만 모아 한 편의 시집을 출간하고 섬 밖 뭍을 소재로한 시는 제2 시집으로 엮기를 바랬지만 시가 부족해서 4부는 뭍의 시로 엮어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다. 그런데, 출간 직후 시인으로부터 〈해양과 문학〉에 공모한 "버텀애쉬" 시편이 장려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상복이 많은 시인이다.
1.
안시표 시인은 지금 뭍(율촌 앞마다)으로 나와 살지만, 섬나라 탐라 사람이자 타고난 시인이다. 그는 문학을 전공하지도 않은 토목 공학도(토목기사 1급)로서 평생을 건설사업관리기술인으로서 항만 현장에서 살아왔고 지금도 근무 중이다. 그 '보따리 항만 기술자'가 지천명도 한참 지난 '어느 날 고향 한 줄 우연히 펼쳐놓고 신춘 시인이란' '초짜 시인 타이틀을 얻'어 시인이 되었다. 그런데 이 시집의 시를 보면 시인의 말은 겸손으로 보인다. 어찌 보면 시인 자신은 겸손의 예로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나는 시에 대해서 배운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는데 우연히 고향 얘기 한 줄 풀어놓았는데 신춘 시인이란 타이틀을 얻었다'고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 말은 분명 거짓말로 들린다.
뭍으로 나와 있는 나는 제주 사람
어느 날 고향 한 줄 우연히 펼쳐놓고
신춘 시인이란 타이틀을 얻었다
어떻게 하면 시가 올까요
제주작가회의 가입원서를 내고
외조부님 4·3 유족 보상금 신청을 하고
나는 시간에 쫓겨 공항으로 간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걸려 온 전화 한 통
선생님 뭍으로 가지 마시고 제주로 직장을 옮기면 안 되나요?
순간순간 지나온 모든 기억이
여기 율촌 앞바다 뻘밭으로 자꾸만 빠진다
당장 버려지는 것 같은 그런 순간순간이
원하던 대화에서 찾아오는 웃음 뒤의 여백은
종이 한 장 묻어 있을 선잠뿐인데
오늘이 과거를 부정하는 의미로
잠의 실체를 찾고 있다면
나는 거짓이다
(중략)
-「물은 물길을 안다」 부분
(중략)
나는 보따리 항만 기술자인데요
왜 산으로 뒤뚱뒤뚱 걸어왔을까요
바다를 버리고 작은 솔방울을 버리고
버릴 게 하나 더 있나 주변을 살펴봤어요
어! 하나 있네요
엊그제 초짜 시인 타이틀을 얻었는데요
천만다행입니다
개미등에 올라 저 먼 곳을 바라보는 개오리나무
헐벗은 갈색을 오래 감추고 변명하는 사기꾼 같아 좋았어요
(중략) -「개오리나무」 부분
왜 시인의 말이 거짓말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말랑말랑한 연둣빛 허공을 움켜쥔 바다~', '한 뭉텅이 맨드라미 빛 비명~', '쓸쓸해진다는 건 고요가 부풀어진다는 것', '풀려버린 입술을 식탁에 올려놓고', '석양의 온기에 바람을 올려놓고', '겨울 심장에 둥지를 튼 텃새처럼 붉은 부리로 하늘을 쪼아대는 기억', '차분해진다는 건 옷을 벗고 맨살을 만져보는 것~', '산은 이미 숲을 체념한 듯 색을 내려놓고 싸늘히 식어 간다', '문 열면 불빛에 매달린 고독에 떠밀려', '내 안에 고이는 바람이나 만지작거리다가~','숨이 찬 해변은 파도를 뱉어 내고', '남은 생을 당신으로 앓아누워도 되겠는지요?', '~새벽을 묶는다' 등의 표현은 20대 젊은 감수성의 시인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시적 언어를 다루는 기교가현란 수려하다. 또한, 시인은 한국어의 장점인 의성어나 의태어를 잘 살려 써서 시의 수준을 한층 끌어올리고 있다. 다음의 '울음이 말랑말랑해질 때까지', '자박자박 들린다'. '사각사각 베어 물다', '잘근잘근 대는 소리를 씹으며', '삐걱삐걱 거룻배 기지개 켜는 아침~' 등을 읽으면 어찌 이 시인을 이제껏 문학과 동떨어진 '보따리 항만 기술자'이자 늦깎이 '초짜 시인'이라고 하겠는가? 시인의 말대로 특별한 시 창작 공부나 습작 없이 그냥 한번 써봤더니 이런 시가 탄생했다고 한다면 타고난 시인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시인은 시가 은유의 언어예술이란 것을 태생적으로 알고 있었단 말이니까. 물론 좋은 시가 현란한 기교만으로 창작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문학이 언어예술인 이상 언어를 다루는 뛰어난 기교는 시인으로서 큰 자산임이 분명하리라 본다.
이 밖에 시인의 개인사나 자아의식들이 군데군데 녹아들어 있는 시편들로는 「나무 혼자」, 「슬픔의 밀착」, 「빗소리를 듣는 가을」, 「화포 해변에서」, 「첫눈」, 「능소화」, 「문득 바람」, 「너는 나다」이 있다. 또 이 시집의 각부마다 시인은 자신의 가족들을 그리는 시를 형상화하고 있다. 「어머니의 입동」, 「아버지의 방」, 「할아버지의 바다」, 「소리의 정원」(아내)이 그 대표적인 시편들이다.
2.
시인은 고내봉(172.8m) 때문에 한라산이 가려진 제주 서쪽 마을(고내리) 토박이 시인답게 제주의 풍광과 제주인의 삶을 독자들에게 조곤조곤 들려주고 있다. 그런 대표 시로 이 시집에서 편집부가 가장 눈여겨본 시편이 「다락빌레의 소沼로 간 소牛」이다. 시인의 뜻을 좇아 평범한 교훈 투의 약간 애매하게 다가오는 『살암시민 살아진다』로 이 시집의 제목을 최종 양보했지만, 편집부에서는 이 시의 제목을 이 시집의 제목으로 추천하기도 했었다. 이유는 제주도의 과거와 현재를 잘 표현하고 있는 시의 내용(다락빌레 벼랑과 소沼, 송아지, 큰어머니, 벼랑 파도, 수초, 진흙 물뱀, 장수풍뎅이, 황소의 발굽 소리, 버들 막대, 신작로, 다락 쉼터 표지석)뿐만 아니라 제목 자체에도 제주도의 토속어와 함께 음은 같지만, 뜻은 다른(同音異義) 한자인 소(沼)와 순우리말인 소(牛)를 언어 유희적으로 구사해 재치도 돋보였기 때문에 제주 시인의 정체성과 호기심을 동시에 독자들에게 주는 데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7080세대들이라면 제주도가 아닌 뭍에서도 소를 먹이다가 낭떠러지에서 굴러 죽은 소의 사연 하나 정도는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또 동구 밖 으슥하고 굽이진 산기슭의 도깨비불이 날아다닌다는 애장터로 소먹이 소를 찾으러 갔거나 나무를 하러 갔을 때의 오싹했던 기억들 또한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곳은 지금도 그대로 방치되어 있거나 아니면 제주도처럼 개발된 곳은 신작로가 깔려 아스팔트 위로 불빛을 밝힌 자동차 바퀴가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신작로가 들어선 지금도 비가 오는 밤에 교통사고가 나서 안전띠를 맨 아이들만 숨이 멎었다며, 현재와 이어져 있음을 민담을 전하듯 「아기 밴 돌」에서 들려주고 있다.
?
섬 노을이 바다를 펼치면 다락빌레 벼랑 속으로
거친 숨결 하나, 하늘로 간 소沼에 소가 있었지
도시의 아파트 한 채처럼 송아지를 분양받은 큰어머니
차양 넓은 햇살이 작은 어깨에 내려앉아
들판의 하루가 감투로 숨 차오를 때
다락빌레 한가운데 소沼의 잘근잘근 대는 소리에 잠시 쉬어 가고는 했지
하양 떠밀려 오는 벼랑 파도 소리가
무성한 파동을 이끌고 수초의 혼을 빼놓을 때
개구리 숨죽이며 알 낳은 소리, 공기 방울로 터져 나오고
진흙 물뱀 꼬리는 바람의 온기를 감추며 저물어 갔지
어디선가 장수풍뎅이 물가에 지문 찍듯 소沼 지천을 쿵쿵 울리며
소의 발굽 소리 다가올 적, 겁 없이 손에 쥐어진 버들 막대 하나
물가에 비친 늙은 호박 같은 엉덩짝을 찰싹 내리치고는 했어
목을 축이는 소의 울음 곁, 하얀 목덜미를 씻는 큰어머니의 환한 하루가
이렇듯 흘러가는 어진 눈매에
느려도 천 리를 가는 황소의 콧김으로
점점 소沼와 뜨겁게 맞닿던 어느 여름날이었어
꿈결 소沼에 비친 낮달을 사각사각 베어 물다
생이가래 속으로 툭 떨어진 이빨을 찾으려 손을 집어넣던 딸애
간질대는 물뱀에 울면서 깨어난 다락빌레엔
종일 비가 내렸고
웃자란 풀을 쫓다 벼랑 아래로 큰어머니의 황소는 별안간 떨어졌지
바다는 굵어지는 빗소리에 큰어머니 상혼喪魂의 궁핍을 남기고
그 해, 무른 콜타르 감정이 다락빌레 소沼를 자르니
쭈욱 뻗어나간 신작로에 소금 핀 마른 눈물만 번져갔어
서쪽 돌 염전 따라 빌레의 명치끝을 밟으면 다락쉼터 표지석을 만날 수 있어
바람 부는 날 이곳에 서면 수평선 너머로 간 큰어머니의 황소가
아직도 소沼의 잘근잘근 대는 소리를 씹으며
바다로 터져나간 신음을 삼키는 것 같아 먹먹해지고는 해
-「다락빌레의 소沼로 간 소」 전문
제주 서쪽 굽이진 자리에 고내리 마을 이정표가 있지요 소낭밭 동쪽 어구 한 길이 잘려나간 귀퉁이에요 옛날 옛적 마을 사람들은 도채비 불이 자주 날아 다닌다고 했는데 여기가 그곳인가 봐요 지금은 자동차 불빛만 굽이굽이 흘러가는데요 가끔 딱딱한 울음소리 때문에 아스팔트 불빛은 자주 미끄러지고 혹여 비가 오는 밤이면 소리들이 모여 앉아 달리던 바퀴들을 급제동 시켜요 어느 해 이곳에서 큰 사고가 났는데 안전벨트를 맨 아이들만 숨이 멎었대요 (중략)
-「아기 밴 돌」 부분
3.
이 시집에서 그리고 있는 소재 중의 하나가 제주도의 역사성이다. 지금 제주도의 역사라고 하면 저 고대의 탐라국이나 삼성혈의 전설보다는 근세사인 4.3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역시 시인은 섬사람들은 대 놓고 안부를 묻지 않고, 잃어버린 계절을 견디어 낸 민들레 안부가 저희들끼리 피어난 목숨이고, 살아남은 민들레 자손임을 알고 그렇게 제주의 4월을 「양, 양!」, 「민들레 오름」,「고사리 장마」,「속슴허라」 등에서 안개를 풀어 비를 내리듯 비유로 시화하고 있어 독자들의 가슴에 은은히 젖어 들게 한다..
남도 섬사람들은 말이 참 짧아서 누군가를 부를 때면 양, 양! 하고 부른다 말을 할 때마다 멈칫멈칫하는 게 낯선 사람을 보고 뭘 숨기는 것 같기도 하고 봐봐 길을 걷다 지명을 물으면 나이 지긋한 이들도 위아래를 찬찬히 훑어보며 한참 뜸을 들인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 수 없어서 어머니께 여쭤보니 속슴허래 그냥 그렇게 살래 히어뜩이헌 소리 할 거면 갯갓디 나가 보라고 파도가 왜 돌멩이를 그렇게 때리는지 그래도 소란 없이 잠잠해지는 바당을 보라고 섬에서 부는 바람은 안다고 그렇게 삭풍은 어머니 가슴을 붙잡고 우는 거래 누가 묻더라도 쉬이 대답하지 말고 되도록 짧게, 짧게 말하라고
바깥의 소란을 거부하는 환해장성의 외로움을 당신은 아느냐고? 숨 막힌 4.3 세월이 끝난 거냐고?
되려 묻다가, 묻다가 사월 살바람 붙잡고 양, 양!
서릿바람에 동백꽃 곱게 피어도 양, 양!
-「양, 양!」 전문
(중략) 섬사람들은 대놓고 안부를 묻지 않는다왜 민둥 오름마다 민들레가 터를 잡았는지달빛을 품을 수만 있다면오름 분화구마다 조각달을 채워 놓고어둠에 퉁퉁 부어오른 달빛으로틈과 틈을 맞댄 산담의 비애를 긁어내는지밤마다 돌 빛에 흘린 지아비 눈물과눈물을 머금은 지어미 무덤에도잃어버린 계절을 견디어 낸 민들레 안부가저희들끼리 피어난 목숨인 것을 안다 바닷바람에게 뭍의 소식을 전해 듣는 섬에서는사월이면 어지럼증에 몸살을 앓고오름 꼭지마다 부푼 달빛을 찾아가는 나는살아남은 민들레 자손이다
(중략)민들레 오름은 민들레로 꽃 피어 다시 일어선다
-「민들레 오름」
다랑쉬 들녘에 비가 내린다
산줄기에 매달린 오름과 오름마다
4월은 안개를 풀어 비는 내린다
(중략)
누가 볼까 봐
땅속 깊이 박힌 푸석한 무음無音들
돌아오지 않는 인기척을 기다리며
제주의 봄은 빛보다 먼저 휘휘했던 소문처럼
대지를 훔치며 내린다
아무도 모르게, 알아도 모른 척,
고사리손으로 다랑쉬오름 머리채를 곱게 빗겨내며
가만가만 고여 있는 눈물
사라진 월랑동 돌기까지 닦아 내린다
안개가 걷히는 순간
제주의 4월은
가시덤불 속 외 고사리 표정으로 젖는다
-「고사리 장마」 부분
4.
편집부에서는 제주도의 시만 모아 한 편의 시집을 출간하고 섬 밖 뭍을 소재로한 시는 제2 시집으로 엮기를 바랬지만 시가 부족해서 4부는 뭍의 시로 엮어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다. 그런데, 출간 직후 시인으로부터 〈해양과 문학〉에 공모한 "버텀애쉬" 시편이 장려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상복이 많은 시인이다.
목차
목차
제1부
개오리나무 11
산골 나비 14
붉은 담쟁이 15
아기 밴 돌 16
바다를 우렸더니 파랑 17
맨드라미 당신 19
자리 물회 20
햇무리 22
나무 혼자 24
슬픔의 밀착 25
낯선 식사 27
빗소리를 듣는 가을 29
어머니의 입동 30
나카스강에 흰 눈이 녹는다 32
제2부
화포 해변에서 37
섣달그믐 38
첫눈 40
겨울나무 42
속슴허라 44
붉은 안부 46
물오름에 안개가 48
능소화 50
압록에서 52
바람꽃 54
문득 발목 56
무인도 58
나팔꽃 59
문어 60
제3부
너는 나다 65
수잠에 저물어 가는 집 67
아버지의 방 68
풍경 70
물은 물길을 안다 72
등불을 켜는 시간 74
양, 양! 76
산지 등대 78
민들레 오름 80
다락빌레의 소로 간 소 82
서쪽 85
고사리 장마 86
할아버지의 바다 88
제4부
안마도 93
다시 안마도 95
갯벌을 말리며 97
파동은 물결처럼 사라진다 98
해당화 100
소리의 정원 102
버텀애쉬 1 104
버텀애쉬 2 107
순환 골재 109
밀봉된 사직서 112
현장 실정 보고 114
최 차장 116
7월의 착수계 118
발문 조성국 123
시인의 말 139
양, 양!
산지 등대
민들레 오름
다락빌레의 소로 간 소
서쪽
고사리 장마
할아버지의 바다
제4부
안마도
다시 안마도
갯벌을 말리며
파동은 물결처럼 사라진다
해당화
소리의 정원
버텀애쉬 1
버텀애쉬 2
순환 골재
밀봉된 사직서
현장 실정 보고
최 차장
7월의 착수계
발문 조성국
시인의 말
개오리나무 11
산골 나비 14
붉은 담쟁이 15
아기 밴 돌 16
바다를 우렸더니 파랑 17
맨드라미 당신 19
자리 물회 20
햇무리 22
나무 혼자 24
슬픔의 밀착 25
낯선 식사 27
빗소리를 듣는 가을 29
어머니의 입동 30
나카스강에 흰 눈이 녹는다 32
제2부
화포 해변에서 37
섣달그믐 38
첫눈 40
겨울나무 42
속슴허라 44
붉은 안부 46
물오름에 안개가 48
능소화 50
압록에서 52
바람꽃 54
문득 발목 56
무인도 58
나팔꽃 59
문어 60
제3부
너는 나다 65
수잠에 저물어 가는 집 67
아버지의 방 68
풍경 70
물은 물길을 안다 72
등불을 켜는 시간 74
양, 양! 76
산지 등대 78
민들레 오름 80
다락빌레의 소로 간 소 82
서쪽 85
고사리 장마 86
할아버지의 바다 88
제4부
안마도 93
다시 안마도 95
갯벌을 말리며 97
파동은 물결처럼 사라진다 98
해당화 100
소리의 정원 102
버텀애쉬 1 104
버텀애쉬 2 107
순환 골재 109
밀봉된 사직서 112
현장 실정 보고 114
최 차장 116
7월의 착수계 118
발문 조성국 123
시인의 말 139
양, 양!
산지 등대
민들레 오름
다락빌레의 소로 간 소
서쪽
고사리 장마
할아버지의 바다
제4부
안마도
다시 안마도
갯벌을 말리며
파동은 물결처럼 사라진다
해당화
소리의 정원
버텀애쉬 1
버텀애쉬 2
순환 골재
밀봉된 사직서
현장 실정 보고
최 차장
7월의 착수계
발문 조성국
시인의 말
저자
저자
안시표
제주도 애월읍 고내리에서 태어나 조선대학교를 졸업했다. 2022년 계간 《시와문화》 여름호 시인 추천 신인상과 2023년 《무등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제주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금을 수혜했다. 현재 건설사업관리기술인으로서 항만 현장에서 근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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