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소녀: 요코와 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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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두 소녀-요코와 나의 이야기』에 대해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작품에도 어떤 운명이 있다면
나는 이 얘기를 쓰기 위해 작가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등단 40年동안 수많은 작품을 창작한 작가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
그것은 좁은 의미로는 작가 개인적으로
'아주 오랫동안 이 얘기를 들려주신 나의 어머니 김남숙 여사님'
의 전기이기 때문으로 보이고,
넓은 의미로는
창씨개명과 일본어 수업 시대를 살았던 우리와
우리를 그렇게 살게 했던 일본인들이
'이 얘기를 우리의 얘기로 함께 들어주'어
우리 모두 이 역사적 사실을 잊지도 지우지도 않은 채
두 나라의 보다 밝은 미래를 만들어가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두 소녀-요코와 나의 이야기』는 한국 문학사의 공백을 메꾸는 의미 깊은 작품
이 작품은 한국문학에서 생략된 '창씨개명과 일본어 수업 시대(조선어 말살시대)'를 복원해낸 작품으로 한국문학사적으로 의미 깊은 작품이다. 그래서일까? 작가는 이 작품에서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을 중요한 모티프로 여러 번 등장시키고 있다. 이 작품의 주요 무대인 두 소녀의 국민학교 6년 간의 「일본어 수업 시대」가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의 주제와 다르지 않음을 강조하는 것이리라.
잊혀지지도, 지워지지도 않으며 사라지지도 않는다(해설과 함께)
소녀상에 숨결을 불어넣다
평화의 소녀상(Peace Monument)엔 따로 이름이 없다. 그저 '소녀'상일 따름이다. 아픈 시대를 치러낸 모든 사람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땅에서 살았던 그 모든 소녀들에겐 이름이 있었을 터이다. 『두 소녀-요코와 나의 이야기』는 그 소녀 중 한 명인 '용자(容子)'의 이름을 화자인 나 95세 후득이가 불러준다. 당차고 멋졌던 용자, 가난해도 꿋꿋했던 단짝 친구. 열다섯 살에 손을 흔들며 떠나보낸 친구가 80년 만에 소녀상이 되어 돌아왔다.
"여자아이의 맨발을 보고, 아니 그 옆에 누가 고무신을 가져다 놓는 것을 보고서야 나는 저 아이가 내 기억 속의 누군지 알았던 거예요." 라면서 후득은 소녀상에서 용자를 떠올리고 깊은 회한에 사로잡힌다. 그런 미안함과 죄책감의 근원엔 신발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역사는 삼인칭, 소설은 일인칭
『두 소녀-요코와 나의 이야기』는 여리고 얌전한 모범생 후득이와 당찬 용자, 두 소녀의 이야기로 꾸려진다. '나는 그때 그곳에 살았었고, 너와 함께했다.' 누군가를 떠올리면, 그 사람과 지낸 시절과 공간, 함께했던 사람들도 더불어 온다.
소설의 구성 요소인 배경은 한 시절의 시간과 공간을 복원하는 저장소 역할을 한다. 용자(容子)와 후득(後得)은 강릉 근교 납돌마을에서 태어났다. 소녀들이 살던 동네며 오가는 길들을 그려지며 소설의 배경인 강릉군 성덕면 납평마을(납돌)의 모습이 복원된다. 1928년과 1929년에 태어나 1937년 소학교에 입학해 1943년 3월에 졸업하는 두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 일제 말기의 역사가 생동감 있게 그려진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역사적 사건을 줄거리에 따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관공서에서 조선어 사용금지 일본어만 사용(1937)
-황국신민의 서사 제정(1937)
-학교에서 조선어 수업 폐지(1938-1939)
-조선어 신문 폐간과 창씨개명(1940)
-일상에서도 조선말 사용을 금지하여 교실에서 서로 딱지 빼앗기(1941)
-일본의 인도지나반도 침략과 점령 환영대회(1942년 3월)
-함흥에서 시작된 조선어학회 사건(1942년 10월)에 연류된 홍숙인 선생님과 이것을 조사하기 위해 경찰서에 끌려간 후득은 조선말 옛날얘기 모임으로 상급학교의 진학이 막히고 용자는 졸업 이태 후(1944년) 강릉보국대장의 함정 같은 꾐에 빠져 정신근로대로 끌려간다.
이 소설은 기록하고 기억해야 할 역사적 사실을 소녀들의 이야기를 통해 풀어냄으로써, 역사가 개개인의 인간에게 어떻게 다가오고 어떤 파장을 일으켰는지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일인칭 시점으로, 소녀가 바라본 세상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내면의 움직임도 섬세하게 포착한다.
또한 소녀들을 구심점으로 하여 아이들을 둘러싼 많은 사람들을 아우르며 역사를 다각도로 보여준다. 할아버지 세대, 아버지와 삼촌 세대, 덕선이과 근숙 등 언니들, 더 어린 세대의 이야기를 담아냄으로써 역사의 파장이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폭넓게 담아낸다.
이러한 대화는 어린 화자의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되어 학교생활을 다루고 사건을 체험한 당사자의 생생한 감정을 다룬다는 강점에 시국을 걱정하는 어른들의 대화를 통해 시대상을 전하고 분석하는 내용이 더해진다. 성인 화자의 목소리로 현실 뒤에 숨은 '구조'와 사건의 의미를 깊이 있게 담아내는 것이다. 역사에 대한 서사는 상황으로서의 서사, 체험으로서의 서사, 증언으로서의 서사, 마지막으로 '기억'으로서의 서사로 갈무리된다고 한다. 어른들의 이야기는 당대의 상황을 조망하고 분석하며, 어린 화자의 서사는 그 시대를 직접 겪은 사람의 체험을 기록하여 증언으로서의 서사를 펼쳐나간다. 이러한 여러 겹의 서사는 기억을 보존하는 역할을 하여, 비극의 역사를 겪지 않는 포스트 메모리 세대에게 이전 세대의 트라우마를 기억하고 전유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우리들의 '마지막 수업' 같은 '일본어 수업'
이 소설은 두 소녀의 학창 시절을 통해, 제국주의 논리가 어떻게 침투하고,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해나가는지 보여준다. 학교에 다니려면 학칙을 지켜야 하는데, 그 학칙은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제국주의 정책에 뿌리를 박고 있다. 학생들은 다른 나라의 지배자에게 아침마다 기계인형처럼 의례를 올려야 한다. 행동을 통제당하고 식민지 정책에 부응하는 충실한 신민으로 육성된다. 열심히 공부해서 더 나은 삶을 찾으라는 일본 선생의 말은 표면적으로는 그럴싸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 공부는 개인적 영달을 찾거나 식민지 정책에 발맞추는 결과를 낳게 된다. 너무 어려 그저 순응하던 아이들은 점차 그러한 모순에 눈을 뜨게 된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말'을 빼앗아 얼을 앗아가는 과정에 주목한다. 창씨개명으로 이름을 바꿔야 하고, 일본어가 '고쿠고(국어)'로 탈바꿈하고 모범생이 되려면 '황국신민 서사'를 일본말로 읊어야 한다.
언어는 생각의 집이란 말이 있듯, 말을 빼앗는다는 것은 단순히 다른 언어를 쓴다는 데 국한되지 않는다. 사고방식마저 바꿔야 하는 중대한 문제이며 말속에 어린 얼마저 빼앗긴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말은 단순히 의미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다. 말 속에는 겹겹의 역사와 그 말을 사용하던 사람들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양조장 집 지숙 언니는 도저히 일본어로 바꿀 수 없는 우리 말이 있다고 한다.
일본어를 자연스럽게 쓰려 일본식으로 사고해야 한단다. 그러나 생각하는 방식이 쉽사리 바뀔 리 없다. 일제는 딱지를 주고 벌을 내리는 방식으로 몰아붙이니 아이들은 홍역을 치른다. 모범생이 되려면 일본식으로 생각하려 애쓴다. 하지만 말을 부품 갈아 끼우듯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오모리 센세이는 그러잖아도 우리가 일본말로 생각하는 폭이 좁아 질문을 하면 자기 생각을 발표하는 말도 짧고 표현도 짧다고 했다." 할 수 있는 말이 줄어드니 생각의 폭도 좁아지고 속에 있는 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게 되는 건 당연한 노릇이다. 아이들은 집에서 하는 말과 학교에서 하는 말이 달라 갈팡질팡하고, 벌을 받을지 무서워 아예 입을 다물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시대의 흐름과 전체주의의 요구에 휩쓸려가지만은 않았다. 제국주의가 전체주의로 몸을 부풀리는 동안, 아이들의 정신도 자라난다. 제도가 규칙으로 억압해도 아이들은 방법을 찾아낸다.
아이들은 효자각에 모여 우리말로 우리 옛이야기를 나눈다. 할머니가 들었던 옛이야기를 일본어로 하면 도저히 맛이 살아나질 않는다. 아이들은 모여서 우리말로 이야기를 소곤소곤 나눈다. 일본어만 써야 하는 억압적인 교육 환경에서 우리말이 풀려나오며 생각의 숨통도 트인다.
이 작품에서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은 중요한 모티프로 작용한다. 후득은 작은 아버지가 삼촌에게 들려준 소설 이야기를 기억한다. 불란서 국경 마을에 보로서(프로이센)군이 진격해 들어온 다음 지금까지 불란서 말을 사용하고 공부하던 마을에 내일부터 새로 독일 선생이 와서 새로운 국어로 독일어 수업을 하게 된다는 것을 알리는 마지막 수업 얘기라고 했다. 80여 년이 흐른 뒤, 후득은 자신의 학창 시절이 그 마지막 수업의 내용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기억의 모뉴먼트
평화의 소녀상(Peace Monument)은 역사적인 사건을 기리는 조형물, '모뉴먼트'에 속한다.
죄책감이나 미안함은 머릿속에 있고 마음속에 있어서 자칫하면 망각되기 쉽다. 황동빛 소녀상은 가방에 매달린 노란 리본처럼 기억을 눈에 보이게 형상화시킨다.
독일의 예술가 권터 뎀니히가 기획한 '걸림돌' 프로젝트는 나치에게 희생된 유대인, 동성애자, 저항했던 시민들을 기리는 황동판을 그들이 생전에 살았던 집 주변에 보도블록과 함께 박아 넣었다. '걸림돌'은 독일어로 슈톨퍼슈타인(Stolperstein)로, 걸려 넘어지다(stolpern) + 돌(stein)을 합친 말이다.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지 말고, 발을 멈추고 잠시나마 기억하란 의도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유태인 박물관에는 '홀로코스트 타워'란 전시실이 자리 잡았다. 건물 제일 위층까지 뚫린 텅 빈 공간인데 전시물은 하나도 없다. 천장에 그어진 틈으로 들어오는 빛 한 줄기가 보이는 것의 전부다. 전시실에 들어선 사람들은 저절로 빛이 들어오는 높은 곳을 올려다보게 된다. 캄캄한 곳에서 가느다랗게 흘러드는 빛을 본다. 희미한 빛이라도 갈구하던 고통 받던 사람의 자리에 서게 된다.
이러한 기억의 모뉴먼트는 망각을 막기 위한 만든 것이다. 이 소설의 말미에는 등장하는,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이름들처럼. 그 시절, 그 사람들을 잊지 말자고 형상화한 것이 소녀상, 그리고 당신 앞에 놓인 이 책도.
용자야.
내 친구야.
우리 다시 경포호숫가에서 만나면 내가 예전에 양보하지 못했던 고무신을 너의 발밑에 놓고 네 옆에 놓아둔 의자에 앉아 네 손을 꼭 잡을게. 그러면 너도 내 손을 꼭 잡고 돌아와서도 못내 불안해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뒤꿈치를 그날만이라도 살며시 내려놓으렴. 그리고 우리 그동안 다 하지 못한 옛날얘기를 밤이 깊도록 하자.
꼭 그러자꾸나.
친구를 떠나보낸 기억을 품고 오랜 세월 살아왔던 나이 든 소녀는 신고 다닐 신발이 없어 학교까지 그만두고 먼 길을 떠났던 친구에게 신발을 놓아준다. 신발 한 켤레는 두 짝이 모여야 제구실한다. 한 소녀의 마음이 늦게나마 다른 소녀의 마음 곁에 놓인다. 친구는 슬픔을 함께 짊어지는 사람이란 의미가 있다고 한다.
소녀상은 더 나이 들지도, 잊혀지지도, 지워지지도 않으며 사라지지도 않는다. 이 소설 속 두 소녀의 빛나고 애틋했던 나날이 그러하듯.
작품에도 어떤 운명이 있다면
나는 이 얘기를 쓰기 위해 작가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등단 40年동안 수많은 작품을 창작한 작가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
그것은 좁은 의미로는 작가 개인적으로
'아주 오랫동안 이 얘기를 들려주신 나의 어머니 김남숙 여사님'
의 전기이기 때문으로 보이고,
넓은 의미로는
창씨개명과 일본어 수업 시대를 살았던 우리와
우리를 그렇게 살게 했던 일본인들이
'이 얘기를 우리의 얘기로 함께 들어주'어
우리 모두 이 역사적 사실을 잊지도 지우지도 않은 채
두 나라의 보다 밝은 미래를 만들어가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두 소녀-요코와 나의 이야기』는 한국 문학사의 공백을 메꾸는 의미 깊은 작품
이 작품은 한국문학에서 생략된 '창씨개명과 일본어 수업 시대(조선어 말살시대)'를 복원해낸 작품으로 한국문학사적으로 의미 깊은 작품이다. 그래서일까? 작가는 이 작품에서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을 중요한 모티프로 여러 번 등장시키고 있다. 이 작품의 주요 무대인 두 소녀의 국민학교 6년 간의 「일본어 수업 시대」가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의 주제와 다르지 않음을 강조하는 것이리라.
잊혀지지도, 지워지지도 않으며 사라지지도 않는다(해설과 함께)
소녀상에 숨결을 불어넣다
평화의 소녀상(Peace Monument)엔 따로 이름이 없다. 그저 '소녀'상일 따름이다. 아픈 시대를 치러낸 모든 사람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땅에서 살았던 그 모든 소녀들에겐 이름이 있었을 터이다. 『두 소녀-요코와 나의 이야기』는 그 소녀 중 한 명인 '용자(容子)'의 이름을 화자인 나 95세 후득이가 불러준다. 당차고 멋졌던 용자, 가난해도 꿋꿋했던 단짝 친구. 열다섯 살에 손을 흔들며 떠나보낸 친구가 80년 만에 소녀상이 되어 돌아왔다.
"여자아이의 맨발을 보고, 아니 그 옆에 누가 고무신을 가져다 놓는 것을 보고서야 나는 저 아이가 내 기억 속의 누군지 알았던 거예요." 라면서 후득은 소녀상에서 용자를 떠올리고 깊은 회한에 사로잡힌다. 그런 미안함과 죄책감의 근원엔 신발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역사는 삼인칭, 소설은 일인칭
『두 소녀-요코와 나의 이야기』는 여리고 얌전한 모범생 후득이와 당찬 용자, 두 소녀의 이야기로 꾸려진다. '나는 그때 그곳에 살았었고, 너와 함께했다.' 누군가를 떠올리면, 그 사람과 지낸 시절과 공간, 함께했던 사람들도 더불어 온다.
소설의 구성 요소인 배경은 한 시절의 시간과 공간을 복원하는 저장소 역할을 한다. 용자(容子)와 후득(後得)은 강릉 근교 납돌마을에서 태어났다. 소녀들이 살던 동네며 오가는 길들을 그려지며 소설의 배경인 강릉군 성덕면 납평마을(납돌)의 모습이 복원된다. 1928년과 1929년에 태어나 1937년 소학교에 입학해 1943년 3월에 졸업하는 두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 일제 말기의 역사가 생동감 있게 그려진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역사적 사건을 줄거리에 따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관공서에서 조선어 사용금지 일본어만 사용(1937)
-황국신민의 서사 제정(1937)
-학교에서 조선어 수업 폐지(1938-1939)
-조선어 신문 폐간과 창씨개명(1940)
-일상에서도 조선말 사용을 금지하여 교실에서 서로 딱지 빼앗기(1941)
-일본의 인도지나반도 침략과 점령 환영대회(1942년 3월)
-함흥에서 시작된 조선어학회 사건(1942년 10월)에 연류된 홍숙인 선생님과 이것을 조사하기 위해 경찰서에 끌려간 후득은 조선말 옛날얘기 모임으로 상급학교의 진학이 막히고 용자는 졸업 이태 후(1944년) 강릉보국대장의 함정 같은 꾐에 빠져 정신근로대로 끌려간다.
이 소설은 기록하고 기억해야 할 역사적 사실을 소녀들의 이야기를 통해 풀어냄으로써, 역사가 개개인의 인간에게 어떻게 다가오고 어떤 파장을 일으켰는지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일인칭 시점으로, 소녀가 바라본 세상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내면의 움직임도 섬세하게 포착한다.
또한 소녀들을 구심점으로 하여 아이들을 둘러싼 많은 사람들을 아우르며 역사를 다각도로 보여준다. 할아버지 세대, 아버지와 삼촌 세대, 덕선이과 근숙 등 언니들, 더 어린 세대의 이야기를 담아냄으로써 역사의 파장이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폭넓게 담아낸다.
이러한 대화는 어린 화자의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되어 학교생활을 다루고 사건을 체험한 당사자의 생생한 감정을 다룬다는 강점에 시국을 걱정하는 어른들의 대화를 통해 시대상을 전하고 분석하는 내용이 더해진다. 성인 화자의 목소리로 현실 뒤에 숨은 '구조'와 사건의 의미를 깊이 있게 담아내는 것이다. 역사에 대한 서사는 상황으로서의 서사, 체험으로서의 서사, 증언으로서의 서사, 마지막으로 '기억'으로서의 서사로 갈무리된다고 한다. 어른들의 이야기는 당대의 상황을 조망하고 분석하며, 어린 화자의 서사는 그 시대를 직접 겪은 사람의 체험을 기록하여 증언으로서의 서사를 펼쳐나간다. 이러한 여러 겹의 서사는 기억을 보존하는 역할을 하여, 비극의 역사를 겪지 않는 포스트 메모리 세대에게 이전 세대의 트라우마를 기억하고 전유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우리들의 '마지막 수업' 같은 '일본어 수업'
이 소설은 두 소녀의 학창 시절을 통해, 제국주의 논리가 어떻게 침투하고,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해나가는지 보여준다. 학교에 다니려면 학칙을 지켜야 하는데, 그 학칙은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제국주의 정책에 뿌리를 박고 있다. 학생들은 다른 나라의 지배자에게 아침마다 기계인형처럼 의례를 올려야 한다. 행동을 통제당하고 식민지 정책에 부응하는 충실한 신민으로 육성된다. 열심히 공부해서 더 나은 삶을 찾으라는 일본 선생의 말은 표면적으로는 그럴싸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 공부는 개인적 영달을 찾거나 식민지 정책에 발맞추는 결과를 낳게 된다. 너무 어려 그저 순응하던 아이들은 점차 그러한 모순에 눈을 뜨게 된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말'을 빼앗아 얼을 앗아가는 과정에 주목한다. 창씨개명으로 이름을 바꿔야 하고, 일본어가 '고쿠고(국어)'로 탈바꿈하고 모범생이 되려면 '황국신민 서사'를 일본말로 읊어야 한다.
언어는 생각의 집이란 말이 있듯, 말을 빼앗는다는 것은 단순히 다른 언어를 쓴다는 데 국한되지 않는다. 사고방식마저 바꿔야 하는 중대한 문제이며 말속에 어린 얼마저 빼앗긴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말은 단순히 의미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다. 말 속에는 겹겹의 역사와 그 말을 사용하던 사람들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양조장 집 지숙 언니는 도저히 일본어로 바꿀 수 없는 우리 말이 있다고 한다.
일본어를 자연스럽게 쓰려 일본식으로 사고해야 한단다. 그러나 생각하는 방식이 쉽사리 바뀔 리 없다. 일제는 딱지를 주고 벌을 내리는 방식으로 몰아붙이니 아이들은 홍역을 치른다. 모범생이 되려면 일본식으로 생각하려 애쓴다. 하지만 말을 부품 갈아 끼우듯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오모리 센세이는 그러잖아도 우리가 일본말로 생각하는 폭이 좁아 질문을 하면 자기 생각을 발표하는 말도 짧고 표현도 짧다고 했다." 할 수 있는 말이 줄어드니 생각의 폭도 좁아지고 속에 있는 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게 되는 건 당연한 노릇이다. 아이들은 집에서 하는 말과 학교에서 하는 말이 달라 갈팡질팡하고, 벌을 받을지 무서워 아예 입을 다물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시대의 흐름과 전체주의의 요구에 휩쓸려가지만은 않았다. 제국주의가 전체주의로 몸을 부풀리는 동안, 아이들의 정신도 자라난다. 제도가 규칙으로 억압해도 아이들은 방법을 찾아낸다.
아이들은 효자각에 모여 우리말로 우리 옛이야기를 나눈다. 할머니가 들었던 옛이야기를 일본어로 하면 도저히 맛이 살아나질 않는다. 아이들은 모여서 우리말로 이야기를 소곤소곤 나눈다. 일본어만 써야 하는 억압적인 교육 환경에서 우리말이 풀려나오며 생각의 숨통도 트인다.
이 작품에서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은 중요한 모티프로 작용한다. 후득은 작은 아버지가 삼촌에게 들려준 소설 이야기를 기억한다. 불란서 국경 마을에 보로서(프로이센)군이 진격해 들어온 다음 지금까지 불란서 말을 사용하고 공부하던 마을에 내일부터 새로 독일 선생이 와서 새로운 국어로 독일어 수업을 하게 된다는 것을 알리는 마지막 수업 얘기라고 했다. 80여 년이 흐른 뒤, 후득은 자신의 학창 시절이 그 마지막 수업의 내용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기억의 모뉴먼트
평화의 소녀상(Peace Monument)은 역사적인 사건을 기리는 조형물, '모뉴먼트'에 속한다.
죄책감이나 미안함은 머릿속에 있고 마음속에 있어서 자칫하면 망각되기 쉽다. 황동빛 소녀상은 가방에 매달린 노란 리본처럼 기억을 눈에 보이게 형상화시킨다.
독일의 예술가 권터 뎀니히가 기획한 '걸림돌' 프로젝트는 나치에게 희생된 유대인, 동성애자, 저항했던 시민들을 기리는 황동판을 그들이 생전에 살았던 집 주변에 보도블록과 함께 박아 넣었다. '걸림돌'은 독일어로 슈톨퍼슈타인(Stolperstein)로, 걸려 넘어지다(stolpern) + 돌(stein)을 합친 말이다.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지 말고, 발을 멈추고 잠시나마 기억하란 의도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유태인 박물관에는 '홀로코스트 타워'란 전시실이 자리 잡았다. 건물 제일 위층까지 뚫린 텅 빈 공간인데 전시물은 하나도 없다. 천장에 그어진 틈으로 들어오는 빛 한 줄기가 보이는 것의 전부다. 전시실에 들어선 사람들은 저절로 빛이 들어오는 높은 곳을 올려다보게 된다. 캄캄한 곳에서 가느다랗게 흘러드는 빛을 본다. 희미한 빛이라도 갈구하던 고통 받던 사람의 자리에 서게 된다.
이러한 기억의 모뉴먼트는 망각을 막기 위한 만든 것이다. 이 소설의 말미에는 등장하는,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이름들처럼. 그 시절, 그 사람들을 잊지 말자고 형상화한 것이 소녀상, 그리고 당신 앞에 놓인 이 책도.
용자야.
내 친구야.
우리 다시 경포호숫가에서 만나면 내가 예전에 양보하지 못했던 고무신을 너의 발밑에 놓고 네 옆에 놓아둔 의자에 앉아 네 손을 꼭 잡을게. 그러면 너도 내 손을 꼭 잡고 돌아와서도 못내 불안해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뒤꿈치를 그날만이라도 살며시 내려놓으렴. 그리고 우리 그동안 다 하지 못한 옛날얘기를 밤이 깊도록 하자.
꼭 그러자꾸나.
친구를 떠나보낸 기억을 품고 오랜 세월 살아왔던 나이 든 소녀는 신고 다닐 신발이 없어 학교까지 그만두고 먼 길을 떠났던 친구에게 신발을 놓아준다. 신발 한 켤레는 두 짝이 모여야 제구실한다. 한 소녀의 마음이 늦게나마 다른 소녀의 마음 곁에 놓인다. 친구는 슬픔을 함께 짊어지는 사람이란 의미가 있다고 한다.
소녀상은 더 나이 들지도, 잊혀지지도, 지워지지도 않으며 사라지지도 않는다. 이 소설 속 두 소녀의 빛나고 애틋했던 나날이 그러하듯.
목차
목차
나의 오랜 친구 요코 9
납돌마을의 용자라는 아이 25
우리는 성덕공립보통학교 1학년 42
오오모리 사부로 센세이 68
문학청년 작은아버지와 집안 할아버지 김해경 80
우리는 대일본제국의 신민입니다 86
조선 사람 이름을 일본식 이름으로 109
조선말을 쓰면 빼앗는 딱지 141
옛날에 옛날에 157
우리들의 가두행진 186
천황폐하가 하사한 고무신 210
홍숙인, 난요 센세이 225
오늘은 우리가 헤어지는 날 251
떠난 사람 남은 사람 266
해방이 되었건만 돌아오지 않는 사람 309
친일 부역자의 화려한 변신 324
다시 나의 오랜 친구, 용자 332
해설 김나정 337
납돌마을의 용자라는 아이 25
우리는 성덕공립보통학교 1학년 42
오오모리 사부로 센세이 68
문학청년 작은아버지와 집안 할아버지 김해경 80
우리는 대일본제국의 신민입니다 86
조선 사람 이름을 일본식 이름으로 109
조선말을 쓰면 빼앗는 딱지 141
옛날에 옛날에 157
우리들의 가두행진 186
천황폐하가 하사한 고무신 210
홍숙인, 난요 센세이 225
오늘은 우리가 헤어지는 날 251
떠난 사람 남은 사람 266
해방이 되었건만 돌아오지 않는 사람 309
친일 부역자의 화려한 변신 324
다시 나의 오랜 친구, 용자 332
해설 김나정 337
저자
저자
이순원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1985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소」가 당선된 이래 『19세』, 『아들과 함께 걷는 길』, 『말을 찾아서』, 『은비령』, 『그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 『나무』, 『고래바위』, 『어머니의 이슬털이』 등 '자연과 성찰'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이끌었으며, 많은 작품이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다. 『수색, 그 물빛 무늬』로 동인문학상, 『은비령』으로 현대문학상, 『그대, 정동진에 가면』으로 한무숙문학상, 「아비의 잠」으로 이효석문학상, 「푸른 모래의 시간」으로 남촌문학상, 『나무』로 녹색문학상, 『삿포로의 여인』으로 동리문학상과 황순원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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