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죄인입니다
황교안 고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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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인 황교안의 진솔한 〈고백록〉
'통합'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놨던 '정치인 황교안'
특보출신 저자와 나눈 정치리더 15개월의 이야기
2020년 4월 15일 총선은 참으로 아팠다. 국민의 삶을 지켜낼 기반을 만들지 못하고, 대한민국 되살려내기에 실패한 책임으로 당 대표직을 사퇴했다. 국민께 죄송한 마음으로 엎드려 사죄했다. 총선이 끝난 후에도 참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동안 저와 우리 당을 응원해 주신 국민들, 함께 고생했던 당원들, 당협위원장들, 그리고 국회의원들께 가슴 찢는 사죄의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지냈다.
그런데 김우석이 찾아왔다. 나의 정치를 비판적으로 돌아보는 시간을 갖자고 했다. 책으로 진실을 담고 싶다고 했다. 고민 끝에 동의했다. 정치권에 들어온 후 지난 2년을 뒤돌아보고 정리하며 반성의 시간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백록이며 참회록이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지난날들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도와주셨던 많은 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한 분 한 분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지금도 안타까운 분들이 너무 많다. 그분들이 앞으로도 국민과 나라를 위해 더 큰 역할을 하시리라 믿고 응원한다.
- 황교안 추천사 中
'통합'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놨던 '정치인 황교안'
특보출신 저자와 나눈 정치리더 15개월의 이야기
2020년 4월 15일 총선은 참으로 아팠다. 국민의 삶을 지켜낼 기반을 만들지 못하고, 대한민국 되살려내기에 실패한 책임으로 당 대표직을 사퇴했다. 국민께 죄송한 마음으로 엎드려 사죄했다. 총선이 끝난 후에도 참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동안 저와 우리 당을 응원해 주신 국민들, 함께 고생했던 당원들, 당협위원장들, 그리고 국회의원들께 가슴 찢는 사죄의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지냈다.
그런데 김우석이 찾아왔다. 나의 정치를 비판적으로 돌아보는 시간을 갖자고 했다. 책으로 진실을 담고 싶다고 했다. 고민 끝에 동의했다. 정치권에 들어온 후 지난 2년을 뒤돌아보고 정리하며 반성의 시간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백록이며 참회록이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지난날들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도와주셨던 많은 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한 분 한 분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지금도 안타까운 분들이 너무 많다. 그분들이 앞으로도 국민과 나라를 위해 더 큰 역할을 하시리라 믿고 응원한다.
- 황교안 추천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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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1. 황교안 추천사와 저자 머리말
- 황교안 추천사 중 (pp.5~6)
2020년 4월 15일 총선은 참으로 아팠다. 국민의 삶을 지켜낼 기반을 만들지 못하고, 대한민국 되살려내기에 실패한 책임으로 당 대표직을 사퇴했다. 국민께 죄송한 마음으로 엎드려 사죄했다. 총선이 끝난 후에도 참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동안 저와 우리 당을 응원해 주신 국민들, 함께 고생했던 당원들, 당협위원장들, 그리고 국회의원들께 가슴 찢는 사죄의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지냈다.
그런데 김우석이 찾아왔다. 나의 정치를 비판적으로 돌아보는 시간을 갖자고 했다. 책으로 진실을 담고 싶다고 했다. 고민 끝에 동의했다. 정치권에 들어온 후 지난 2년을 뒤돌아보고 정리하며 반성의 시간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백록이며 참회록이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지난날들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도와주셨던 많은 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한 분 한 분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지금도 안타까운 분들이 너무 많다. 그분들이 앞으로도 국민과 나라를 위해 더 큰 역할을 하시리라 믿고 응원한다.
- 저자 머리말 중 (pp.7~10 에서 발췌)
· 이 책은 정치영역에서 '리더십'과 '통합'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은 현실 정치영역에서 '리더십'과 '통합'에 관한 이야기다. 이 둘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리더십이 강하면 자연스럽게 그 리더십이 미치는 영역은 확장된다. 위대한 리더들은 대부분 영역과 영토를 확장했다.
· 리더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
나는 소금의 삼투압(?透壓)을 활용해 리더십을 설명한다. 소금의 농도가 높으면 주위의 수분을 끌어들인다. 소금이 리더고 물은 백성이다. 어느 나라가 리더십이 강하면 타지의 백성이 스스로 알아서 부의한다.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이때 소금은 물에 고단하게 설명하거나 유치하려 노력하지 않는다. 소금이 물을 끌어들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이것이 '무위의 통치'(無爲之治)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물 흐르듯 사회를 이끄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리더가 낮아지거나 쫓아가는 것이 아니고, 백성이 스스로 찾아오게 하는 것이 리더의 덕목이란 것이다.
· "승리한 정당의 승인(勝因)은 다들 비슷비슷하지만, 패배한 정당은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다."
총선패배 후 당 비상대책위원회가 당에 별도의 기구를 두어 백서까지 펴냈다. 하지만 언론은 '맹탕'이라고 폄하했다. 지금 지도부의 성격을 고려하면 구조적으로 한계가 있었음은 인정한다. 하지만 '객관적인 원인'을 회피하면 다음에도 같은 패착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돌아오는 '4.7 재·보궐선거'가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 알 것이다. 틀린 처방을 반복하면 결국 패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원내교섭단체 유일 야당은 뿔뿔이 공중 분해될 수도 있다.
2. 총선 패배 원인 (pp. 33~36)
나 : 당이 출간한 백서에서 '황교안 책임론'을 강조하는 분위기였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책임 떠넘기기'라는 지적도 있는데 억울한 부분은 없나?
황 : 나는 패배한 장수다. 할 말이 없다. '제가 죄인'이라는 말씀으로 대신하겠다. 패배를 통해 정치적 리더십에 대해 많이 깨닫고 배웠다. 나는 '섬김의 리더십'을 추구했다. 높고 강력한 리더십보다는 '협치의 리더십'이 필요할 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단 결과는 실패였다. 내가 가진 이상을 현실에서 구현하기엔 경험과 스킬이 많이 부족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섬김의 리더십'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괜히 '공복(公僕)'이 아니지 않은가? 아직은 잘 맞지 않더라도 희망을 가지고 그 목표를 향해 계속해나가야 한다. 지금 기성 정치권 분들과 관점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향후 정치지도자들은 이 부분에 깊은 성찰이 필요할 것 같다.
나 : 대표님이 진단하는 진짜 패배원인은 뭔가? 객관적으로 설명해 달라.
황 : 당에서 발간한 백서 자체는 일리 있으나 그것이 전부를 설명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먼저 '막말'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기본적으로 〈국민의힘〉을 지지해왔던 분들께서는 '특정 정파에 편향되었다'라고 보기보다 애국심이 기본적인 동기였던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분들을 전부 '극우 프레임'이나 '막말 대상자'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그런 면에서 단순히 '막말 때문에 졌다'라고 생각하는 데에는 전부 다 동의하지는 않는다.
'공천'은 실패했다. 다만, 이번 공천에서 지난날 반복되었던 비리와 당 대표의 일방주의공천 등으로 인한 부작용은 최소화됐다고 생각한다. 많은 유혹이 있었지만, 내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했다. 특히 "'통합'을 이루고 좋은 공천을 통해 승리하고자 하는 것"이 당시 대표인 내가 지향했던 '이기는 공천'이었다. 그런 뜻을 가지고 공관위를 구성하고 나름 긍정적인 역할을 기대했으나, 결과적으로는 공천은 실패했다. 그래도 당 대표의 전권을 내려놓는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는 유의미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중앙당의 전략 부재'에 대해선 인정한다. 민부론(국민을 부자 만들자는 경제 대안), 민평론(국민 중심 평화 대안), 민교론(국민 중심 교육 대안) 등 평소에 우리 당에서 정책 대안을 마련해오긴 했지만, 선거 때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압축적이고 매력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이다.
'탄핵에 관한 입장 표명'의 경우는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당시는 그 문제를 논할 상황이 아니었다. 미래지향적인 관점이 옳다고 생각했다. '탄핵'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분열이 야기되는 분위기였다. 적어도 국가지도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분열적 요소에 몰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당시 정권의 폭주를 막기 위해 자유민주진영은 미래와 단합에 집중해야 했다.
'청년층의 외면'은 뼈아팠다. 이들의 자유민주진영에 대한 지지율은 15%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의 필요와 바람에 부합하는 정책을 만들어 내고 당의 운영방식 역시 시대정신에 맞는 형태로 개선해 나간다면, 이러한 진정성이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총선 당시 나에게 다가온 수많은 청년을 보면서 희망의 기운을 느꼈다. 그런 맥락에서 더 쇄신하고, 청년들의 수요에 맞는 정책과 당 운영방식을 지속해서 실행에 옮겨야 했는데 아쉽다.
3. 공천실패
- 개관(PP.39~42)
나 : 아까 공천이 잘못됐다고 하셨다. 공관위와의 갈등 때문인가?
황 : 내가 처음 당에 들어왔을 때, 한국당이 직면한 가장 큰 비판이 '싸움을 못한다.', '대안이 없다.', 그리고 '미래가 없다'라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나는 '싸워 이기는 정당', '역량 있는 대안 정당', 그리고 '미래를 준비하는 정당' 등을 목표로 삼았다. 문제는 내가 이 모든 것들을 포괄하는 최고의 전문가는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상기 목표들을 함께 이룰 수 있는 '협치 모델'을 연구했다. 예를 들면 광화문 투쟁을 진행하는 동시에, 경제적 대안을 민부론등을 통해 출판했다.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은 현장·학계 전문가들을 초빙했다. 그 외에도 안보, 교육 등 여러 대안을 연이어 만들었다. 당내의 인재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 2019년 6월부터 인재영입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하지만 타이밍이 너무 늦어져서 결국은 공천에만 매몰된 인재영입이 되어 버렸다. 개인적으로는 공천 외에도 당 내외 혁신을 이룰 수 있는 '포괄적 인재영입'을 추구했었다. 특히 당내 의원들을 중심으로 여러 분야 인재들을 추천받았다. 총선준비단도 경험 있는 의원들과 뜻을 모아 오래전부터 출범시켰고, 준비도 착실히 했었다. 공관위 역시 제왕적 당 대표의 무분별한 공천개입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적인 조직을 추구했다. 하지만공관위가 처음 내 구상과 다른 길로 간 부분은 많다. 최선을 다했을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하지만 책임을 미루려는 뜻은 전혀 없다. 역시 최종적인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나 : 마지막 공천의 정정은 약속했던 '공관위 독립성'을 침해한 것 아닌가?
황 : 권한을 분명히 주었지만, 대표인 나도 당헌·당규의 범위를 넘는 정도의 권한을 줄 수 없다. 공천과정에서 분명한 문제가 있었다. 특히 마지막 몇 자리의 경우, 당헌·당규상 명백히 위배되는 내용이 있었다. 통념상 받아들이기 힘든 지역과 후보들이어서 당헌·당규에 따라 최고위를 통해 바로 잡은 것이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발생한 마찰에 대해서는 내 잘못이 없지 않다. 전반적으로 10여 곳이 문제가 있는 지역으로 분류되는데, 여기에 대해서 최고위원회의 정당한 권한을 활용해 최소한의 조치를 했고, 여기에 대해선 국민께서도 양해를 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 : 총선 이후 김형오 위원장을 만난 적이 있나?
황 : 만난 적 없다. 총선 선거전 진행 중 만난 일은 있지만…
나 : 김형오 위원장과 선거가 한참 지난 후 신동아 인터뷰를 했다. 보셨나? '내부에 적이 있었다'라는 내용이 주던데,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황 : 봤다. 그런데 면밀하게 따져 본 것은 아니다. 굳이 시시비비 가리고 싶지 않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함께 고생했던 분인데, 인터뷰하신 내용을 가지고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나 : 김형오 위원장이 인터뷰에서 언급한 공천자료로서 '위원장 평가지침서'에 대한 생각은?
황 : 총선준비단에서 많은 내용이 검토되고 논의됐다. 정량·정성 평가의 기준, 평가 주체의 객관성 등 여러 문제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했다. 2019년 6월부터 총선준비단은 제기될 수 있는 여러 이슈를 광범위하게 정리했고, 공관위에도 결과와 기준들을 종합적으로 전달했다. 그것을 공관위가 받아들여 활용했는지는 모르겠다.
나 : 김형오 위원장 인터뷰에서 언급된 '김종인 책임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황 : 책임은 전적으로 내가 져야 한다. 물론 김종인 위원장이 나와 함께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으셨기 때문에 선거결과에 대한 책임도 같이 지어야 한다고 말하는 분도 있지만, 엄밀히 말해서 내가 당 대표를 겸해 맡았기 때문에 내 잘못이 절대적으로 크다.
나 : 김형오 위원장은 태영호 의원을 공천하고 그를 중심으로 별도의 유세단을 만들려고 했는데 김종인 위원장이 비토를 놓으면서 유세단 자체가 수포가 되었다며 아쉬움을 피력했다. 이에 대해 부연해 설명할 것이 있나?
황 : 처음 김종인 위원장을 영입하려 했을 때, 강남(갑) 공천이 잘못되었다며 변경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하셨다. 거기에 대해 내가 반대하니까, '당에 들어와서 할 역할이 없다'라고 하시더라. 그러나 공천 결정은 공관위에 위임했고, 실제 최종공천까지 이뤄진 마당에 그걸 되돌린다는 것은 공정성에 부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결국 그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태영호 의원이 강남갑 국회의원이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팩트는 거기까지다. 지금 시점에 다시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 김형오 공관위원장, 공관위 관련(pp.212~227)
나 : 김형오 공관위원장과의 첫 접촉은 어떠했고, 어떤 약속을 했는가?
황 : 대표가 된 이후 계속 '총선 승리의 핵심'은 공천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었다. 그런 만큼 좋은 공관위원장과 공관위원을 모셔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노력을 많이 했다. 이전의 총선준비단과 인재영입위 활동 등으로 그림이 갖춰진 10월 즈음부터 공관위원장 인선을 위해 여러 사람과 두루 만났다. 총선 승리를 위해 '공천 혁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내 개인적인 인연과 상관없이 다양하게 접촉했다. 초기에는 좋은 분들이라고 생각했던 분들이 많이들 고사하셨다. 고사한 분 중 여당에 가시거나 선거 방송에 출연하시기도 하더라. 12월 4일에는 공개적으로 '공천관리위원장 국민추천'을 받았고, 그 결과 공관위원장 추천을 수합했다. 그때 내가 '비움을 통해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같은 발언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는 공천 혁신을 통해 총선 승리를 이뤄내는 것이 내게 가장 중요한 목표였고, 거기에 맞는 공관위원장을 영입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많은 추천과 논의 끝에 결국 '우리 당 출신 국회의장 중 한 분을 모시자'라는 의견으로 수렴되었다. 당내 논의를 통해 김형오 전 국회의장을 공관위원장으로 모시자는 쪽으로 논의가 이루어졌다. 개인적으로는 얼마 전인 9월 15일에 김형오 위원장을 뵈었는데, 소장품 기증자로 국회 특별전시회를 여셨을 때였다. 전반적으로 이미지나 평판이 좋았다. 2020년 1월 초 공관위원장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드리려 처음 연락을 드렸는데, 그때는 베트남에 계셨다. 처음 들었을 때는 고사하셨는데, 지속적으로 권유했고 고민 끝에 수락하셨다. 그분이 제시한 조건은 공관위원회 구성을 자신에게 맡겨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분 재량으로 만들 수 있도록 허용해 드렸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공천의 취지나 원칙에 대해서는 상세히 설명해 드렸다.
나 : 공관위원 구성은 누구와 논의했는지 혹시 아는가?
황 : 재량을 드렸기 때문에 나는 구성에 관여치 않았다. 김형오 위원장께서 단독으로 구성 했다.
나 : 원래 김형오 위원장과는 잘 아는 사이였나?
황 : 원래는 박관용 의장님과 제일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박관용, 정의화, 김형오 세 분의 전직 의장 중에서 어쩌면 김형오 의장과의 인연이 가장 적었다. 사천(私薦)을 막아야 하고 이를 위해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멋쩍게 웃으며) 다른 분들도 모두 훌륭한 분들이라 생각했지만, 역차별을 당하신 측면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하실 생각이 있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 : 혹시 모를 상황에 대한 안전장치는 있었나?
황 : 안전장치는 당헌·당규에 있었다. 그중 하나가 '국민공천배심원단'이었다. 공관위에서 결정된 후보를 '배심원단 3분의 2' 이상 동의를 통해 제청하면 최고위가 거부할 수 있도록 한 장치였다. 지난 20대총선 '막장 공천'을 교훈 삼아 뒤늦게 만들어 놓은 안전장치였다. 다만 그 배심원단 구성을 공관위가 요구하도록 되어있기는 하더라. 정작 공관위는 줄기차게 '배심원단' 조항을 당헌·당규에서 삭제해달라고 요청했는데,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당헌·당규를 바꾸는 것은 법치주의가 아니라고 생각해 허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최고위가 의결하는 절차를 밟기 때문에 따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지 않았다. 한국당의 당헌·당규는 공천에 문제가 있어 바로잡으려면 최고위에서 하면 되는 구조였다. 당헌·당규에 의한 정당한 정정이 나중에 '뒤집기, 사천' 논란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나 : 보통 내부논의의 안전장치 역할을 사무총장이 한다. 당시 박완수 사무총장은 초선이고 당 경험이 많지 않아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알고 있었나?
황 : 박 총장이 총선준비단부터 함께했고 공관위까지 합류했었다. 그래서 믿었다. 하지만 '인해전술'에 밀려 결국 힘을 못 쓴 것 같다. 실력 발휘를 할 상황이 안됐다. 당의 일에는 다른 분야에서의 경력보다 국회의원 선수와 당무 경험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때 실감했다.
나 : 김형오 위원장은 취임 초부터 대폭적인 '물갈이' 선언을 했는데, 사전에 그 폭과 대상에 대한 공감은 있었나?
황 : 총선준비단을 운영하면서 여러 기준이 논의됐다. 내가 제시한 기준은 △ '이기는 공천', △ '공정한 공천', △ '경제 살리는 공천, △'혁신 공천'이 큰 틀이었다. 물론 그에 따른 세세한 기준들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뻔한 이야기 같이 들릴지 모르지만 나름의 의미가 있다. '혁신 공천'은 무난히 이길 수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시행하자는 것이 주된 의견이었다. 가령 TK, PK 같은 지역이 자연스럽게 그 대상이 되었다. 수도권 등 박빙 지역의 경우, '이길 수 있는 공천'을 기준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공감이 있었다. 이 모두 공정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었다. 그 원칙에 따라 결과적으로 피해 보신 모든 분에 대해서는 거듭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중략)
나 : 2월부터 TK, PK 공천에 들어가면서 '물갈이'가 본격화됐다. 이를'낙동강 벨트 전략'이라고 했다. '낙동강 벨트 전략'이 무엇이었나?
황 : '낙동강 벨트'는 전통적으로 우리 당 지지기반이 강한 지역이라 '혁신공천'이 원칙이었다. 하지만 부·울·경의 경우 양상이 좀 달랐다. 상대적으로 불리한 지역으로 분류되는 곳이 많았다. 따라서 '이기는 공천'을 병행하는 컨셉으로 진행했다. 그 결과 53개 선거구에서 20대 총선 때는 40곳이 승리한 것에 비해 21대는 45곳에서 승리했다.
나 : 김형오 위원장과 김세연 위원이 부산 출신이다. PK 지역 잘 아는 분들임에도 그 지역 공천과정이 굉장히 요란스러웠다. 이들에 의한 사천(私薦)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당시 김형오 위원장은 '혁신공천'과 '이기는 공천'에 대해 어떻게 말했는가?
황 : 나와 당에서 정한 기준에 전반적으로 동의했다. '혁신공천'은 어느 정도 되었는데, '이기는 공천'이 잘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다. 가령 특정 지역에서 컷오프된 인물들을 급작스레 다른 지역으로 출마시키는 방식은 전혀 동의할 수 없었다. 물론 재배치 관련 논의도 있었고 내가 우려도 표명했지만, 정작 실행은 김형오 위원장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나 : 우려를 표했음에도 왜 그때 바로 정정하지 않았나?
황 : 권한을 주기로 했기 때문에 기회를 준 것이었다. 내가 바로 정정해버리면 사실상 공관위원회 독립성을 나 스스로 없애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결국 제어가 되지 않을 때까지 개입하지 않은 것이다. 민감한 지역 대부분은 뒤로 밀려있었고, 거의 끝에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막판에 진통을 겪은 이유다.
나 : 김형오 위원장 사퇴 후 공관위의 누구와 소통했나?
황 : 이전 김형오 위원장 때는 위원장님과 내가 직접 소통했다. 하지만, 이석연 대행으로 갔을 때는 사무총장이 중심이 되어 소통했다. 그런데 그때의 공관위원회는 이미 당 기구와 소통이 전혀 되지 않았다. 시간은 시간대로 없는 상황에서 결국 막판에 그런 불통 요소들이 터져 나왔다.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나 : 부산의 경우 권력투쟁의 양상이 있었다. 이언주 의원의 경우 부산영도(영도는 김형오 의원이 5선을 한 이후 김무성 의원이 이어받은 지역이다)를 희망했는데, 처음엔 김형오 위원장이 전략공천을 약속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나중에 김무성 의원의 반발로 '통합 잉크도 마르기 전에' 문제가 생겼다. 통합의 책임자로서 조율을 하지 않았나?
황 : 공천 갈등은 늘 있었다. 초창기에는 언론 보도와 달리 '그렇게 심각한 현안이 아니라'고 판단했고 추후 과정을 봐도 실상이 그랬다. 실제로 갈등이 표면화되기는 했지만, 당사자(이언주 후보)는 다른 지역으로 자연스럽게 재배치되었다. 이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볼 수도 있겠지만, 이런 유형의 갈등과 시행착오는 모든 지역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나 : PK는 불출마 선언이 굉장히 많았던 반면, TK는 상대적으로 불출마 선언이 거의 없었다. 경북 안동 출신 김광림 최고위원이 불출마선언을 하며 분위기를 선도했는데 배경이 있었나?
황 : 보통 PK는 불출마가 많고 TK는 적다고 했는데, 일단 '다선의원'들이 용퇴를 하는 분위기가 되다 보니 그 과정에서 다선의원이 많은 PK에 불출마 선언이 쏠려있었던 것뿐이다. 실제로 TK는 3선 이상 의원이 별로 없었다. 그나마 희소했던 TK 다선의원 중 김광림 의원과 강석호 의원이 자진해서 빠지겠다고 한 거다. 김광림 의원의 경우, 일에 대한 의욕이 상당히 많으신 분이기에 인상적이었다. 김형오 위원장의 권유를 받고 선선히 의원직을 내려놓으셨다. 공천과정에서 그분이 '불이익을 받았다'고 생각할 만했음에도 불구하고 담담히 받아들이시더라. 실제로 불출마 선언 이후에도 당의 여러 가지 역할들을 요청드렸는데, 하나도 빠짐없이 수락해주셨다. 이분께 정말로 감사했고, 나중에 꼭 다시 중요한 일을 하셨으면 좋겠다 싶었다. 예를 들면, 우리 정부 통계청에서 고용관련 지표를 발표한 적이 있었다. 다른 분들은 몰라도 김광림 최고위원 한 사람만이 해당 통계의 맹점을 딱 뽑아내서 예리하게 문제를 제기하시더라. 경험과 연륜에서 나온 그 분석 능력이 아주 예리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분은 정말 변함없이 노력하시는 분이다. 지금 계신 퇴계 연구원도 지원 없이 봉사하는 자리라고 들었다.
나 : 당시 기사를 보니, 공천 분위기도 새보수당 계에서 리드한 것으로 나오더라. 예를 들면, 이준석 최고위원이 '분홍 옷만 입으면 뭐하냐'면서 '중진들 영남 불출마 후 수도권 출마'를 강권했던데, 이런 압박은 새보수당 출신이 조직적으로 움직인 것이란 분석이 많았다. 최고위의 이준석 최고위원, 공관위의 김세연 위원, 외곽지원 유승민과 정병국 의원 등의 활약이 컸다. 이때 대표는 어디 계셨는가?
황 : 그런 언론 보도는 전혀 사실과 다른 것이다. 예를 들어 이준석 최고위원 발언만으로 특정 의원이 불출마 선언을 한 것은 전혀 아니다. 불출마 권유 작업은 다각도로 이뤄졌다. 그 과정에서 일부의 목소리가 새보수당 출신들을 통해 (언론에) 표출되면서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 개인적인 아픔에도 불구하고 불출마 선언에 동참해 주신 분이 많다. 실제 불출마 선언을 한 한 분 한 분을 생각해 보면 안타깝다. 결과가 더 좋았어야 그분들의 희생이 빛을 발했을 텐데'하는 생각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생각나는 분들이 많다. 정갑윤 의원은 예리한 통찰력으로 많은 정무적 조언을 해 주셨다. 이주영 의원은 공직생활 선후배 인연으로 많이 의지했고, 유기준 의원은 같은 국무위원 출신으로 정치적 조언자를 마다치 않으셨다. 여상규 의원은 마지막까지 법사위원장 역할 등 궂은 일을 도맡아 해 주셨기에 아직도 강하게 기억에 남는다. 김성찬 의원도 선언은 나중에 했지만, 일찍이 불출마 결심을 해 주셨다. 중앙위 위원장이던 정종섭 의원도 당원 교육 아이디어 등을 제시하고 실행하신 능력자셨다. 최교일 의원은 법률지원단을 대폭 늘려 30여 명에서 200명까지 확충해 야당으로서 법률 수요를 맞춰주셨다. 변호사뿐 아니라 회계사, 변리사, 세무사 등을 모집하여 광범위한 기여를 해 주셨다. 이분들 한 분 한 분은 불출마 이후에도 미래통합당을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해 주셨다. 지금도 생각해 보면, 그 희생이 안타깝고 고맙다.
나 : 좋아할 질문이 아닐 수도 있어 조심스럽게 묻겠다. '불출마 릴레이' 속에서도 그 빈자리를 채운 분들이 틀림없이 있다. 그중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한 분들이 공교롭게도 '지분을 주장하지 않았다'는 새보수당 출신이란 이야기가 많다. 지금도 불출마 선언을 한 분들이 이런 불만을 갖고 있다는 소문도 들었다. 그래서 언론에 확인해 보니, 당시에도 '유승민계는 본인 계파 챙기기에 혈안 돼 있다'는 불만의 소리가 있었더라. 지금도 당내 요직 중 상당수를 그분들이 차지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황 : 얘기는 들었다. 특히 통합과정에서 새롭게 들어오신 분들에 대해서 너무 많은 기회를 부여해 준 것이 아니냐는 피드백에 대해서는 그런 심정을 겸허하게 수용한다. 그러나 당시는 통합이 반드시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대승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씀드린다. 그 과정에서 상처받으신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나 : 김형오 위원장과 세력 안배에 관해 대화하지 않았나?
황 : 공정한 공천에 관해 얘기했고, 편중되지 않도록 당부도 했다. 이후 중간중간에도 불균형 이슈가 나올 때마다 지속적으로 피드백 보냈다. 나는 원칙적으로 계파와 상관없이 두루두루 사람을 챙기려고 노력했다. '친박만 챙긴다'는 말들을 굉장히 많이 들었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그렇게 되지도 않았다. 나 스스로 먼저 내려놓는다고 선언했고, 그 약속을 지키려 부단히 노력했다. 내가 어떤 세력을 특별히 챙겼다면 지금의 상황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 : 공천 전략엔 지역마다 포석이 될 키맨(Key man)들이 있다. 그 중한 분이 김병준 위원장이었다. 세종을 공천은 좀 '뜬금없다'라는 평가가 많았다. 세종시 내에서도 공무원들이 많은 청사 쪽이 아니라 원주민이 많이 사는 지역에 공천을 받았다. 대구를 말렸으면 수도권의 상징적인 지역을 주면 좋지 않았나?
황 : 특별히 누구를 어디에 배치하느냐의 문제는 '사후보고'를 중심으로 얘기를 나눴다. 김병준 위원장의 경우 서울 쪽으로 구상하고 뜻을 전했는데, 정작 나중에 알고 보니 세종에 배치되었더라. 난 애초에 서울에 출마하셔서 바람을 일으키는 역할을 기대했었는데,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전개되어서 여러모로 아쉬웠다. 김태호 의원에 관하여서는 나 역시 (다른 지역) 출마를 권유했는데, 생각대로 잘 진척되지 않았다. 홍준표 의원의 경우 당내에 강한 거부감을 가진 분들이 많아 놀랐다.
(중략)
나 : 만약 되돌릴 수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나?
황 : 공천에 문제는 확실히 있었다. 그걸 인정하는 데도 시간이 좀 걸렸다. 결론은 다 내 책임이란 사실이다. 다시 돌이킬 수 있다면, 그 책임을 지기 위해 부여된 권한까지 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권한을 행사하면서도 국민 앞에 진정성을 보이면 국민께서 그 부분을 알아주시지 않을까?
나 : 공천에 대한 마지막 소회가 있다면?
황 : 거듭 말하지만 모두 다 내 책임이다. 다른 사람에 대해 시시비비할 일이 아니다. 지금 의석수가 부족한 것도 내 책임이다. 역대 최대 득표인 1,190만 표 득표는 후보들과 당원들의 공이다. 잘 된 공천을 했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늘 있다. 그때는 스스로 욕심내지 않으려 노력했고, 그것이 혁신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결국은 국민도 알아주실 것으로 생각했다. 문제는 이상과 현실이 달랐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성과로 연결 짓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안타깝고 죄스럽게 생각한다.
4. 당직 인사의 어려움 (pp.92~940)
황 : 나는 과거의 구태정치를 넘어 새로운 정치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때는 '개인의 역량'이나 '적재적소 배치' 그리고 '개혁적 인사' 등의 기준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인사를 결정했다. 당시 나는 유권자 입장과 정치인 입장 중에서, 유권자 입장 중심으로 모든 사안에 접근했다. 일종의 '수요자 중심주의'다. 그러나 현실은 그것만으로는 안됐다. 정치인의 본질을 뒤늦게 알게 됐다.
'공정한 인사'에 주력하느라, 정작 나를 도와준 분들에게 도움보다는 어려움을 주게 되어서 아쉽고 안타깝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그 이후 내게 와 닿았다. 도와주신 분들을 충분히 챙겨보지 못했던 점은 내가 한없이 부족했음을 확인시켜 주는 아픈 증거다. 다시 기회가 온다면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나 : '전문가를 기용했다'라고 하셨는데 누가 전문가였나?
황 : 나는 입당 초부터 '통합'과 '대여 투쟁', '정책 대안', '미래 준비'를 강조했고, 그 이상에 적합한 분들을 모셨고 상당한 권한을 드렸다. 분야별로 보면 이렇다.
'미래'를 담당했던 분은 김기현 의원, 김종석 전 의원이었다. 김기현 의원은 정책위의장 출신답게 구체적인 아이디어들이 많으셨고 열정적이셨다. 김종석 전 의원은 여의도연구원 원장답게 매우 학구적이고 다양한 식견을 가지고 계셨다. 김 전 의원은 경제대전환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약하기도 하셨다. 두 분 모두 어떤 특정한 도그마에 갇혀 있는 분이 아니 었다. 그래서 미래를 준비하는 데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대안' 전문가는 김광림 전 의원, 김재원 전 의원, 추경호 의원 등이다. 김광림 의원은 최고위원으로 경제대전환위원장을 맡아 〈징비록〉과 〈민부론〉 만드는 책임을 훌륭히 완수해 주셨다. 김재원 의원도 정책위의장으로 많은 활약을 해 주셨다. 특히 추경호 의원에 대해서는 나와 개인적인 인연을 많이 이야기하시는데, 나는 대체로 능력 있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다. 추 의원은 나와의 인연 때문에 오히려 능력보다 평가절하되신 분이다.
처음에 대표를 맡았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야당이 싸울 줄을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계속 '세게 하라'는 주문을 받았다. 그래서 투쟁을 많이 했다. 그 중심에 박대출 의원과 민경욱 전 의원이 있었다. 민경욱 전 의원은 내가 기념행사에 갔다가 물세례를 받았을 때 온몸으로 막아줬다. 박대출 의원은 상임위에서 정책 대안으로 잘 싸워줬고 거리에서도 용감했다. 특히 고맙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청와대 앞에서 단식투쟁을 할 때, 마치 관운장같이 항상 내 앞을 지켜준 것이다. 어려울 때 든든한 힘이 되어 주었다.
'통합' 과정은 원유철 전 의원, 김상훈 의원, 홍철호 전 의원 등이 맡아 주셨다. 원유철 전 의원은 통합에 가장 큰 역할을 해주셨고, 총선 때 미래한국당 대표까지 맡아 주셨다. 김상훈 의원은 최근 4·7 재·보궐선거 경선준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약하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잘해주실 줄 믿는다. 홍철호 전 의원도 통합과정에서 매개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주셨다.
나 : 쟁점이 됐던 당직, 사람 등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인선이 있다면?
황 : 역시 김세연 여의도연구원장이다. 임명할 때도 그랬고 이후에도 정말 많은 말을 들었다. 반대를 무릅쓰고 임명을 밀어붙였으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분이 여연원장을 하고 있을 때 보건복지위원장까지 맡았다. 중요 당직을 복수(보건복지위원장, 부산시당위원장, 여의도연구원장)로 맡는 것이 옳지 않다는 비판이 많았다. 당 대표로 곤혹스러웠다. 직접 만나서 이런 분위기를 전했더니 부산시당위원장은 곧 임기가 끝난다고 하며, 본인이 더욱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면담 후 본인 의사를 존중하여 겸직을 허락해주었다. 통합이란 차원에서 결이 좀 다르더라도 함께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에 당에 대해 저주에 가까운 말을 해 논란이 됐다. 또 공천과정에도 구설이 많았다. 지금이라면 어떻게 하시겠는가?
황 : 가정으로 이야기하긴 힘들다. 나는 '여연은 정치를 잘 아는 외부 전문가가 맡는 것이 좋다'는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이후 (김세연 원장이) 그만두자 정치권에 밝은 학자인 성동규 교수를 원장을 임명했다. 성 교수는 공천에 공을 들이기보다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려 애쓰셨다. '시간을 좀 더 충분히 드렸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한다.
5. 문재인대통령과의 인연
- 봉하마을 방문, 노무현 전대통령과 문재인대통령 비교 (pp.84~85)
나 : 노무현 대통령의 '통합'과 '나라 사랑 정신'을 깊이 기억하겠다고 했는데, 문 대통령과는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하나?
황 : 저는 '통합'을 강조하며 대표가 되었기 때문에 상징적인 의미에서 그분을 찾아뵈었다. 지금 문재인 정부와 비교해 보면 그분이 얼마나 훌륭한 분이었는지 새삼 알게 된다.
나 : 그럼,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차이는 뭔가?
황 :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 간에는 정치적 퍼포먼스를 떠나 본질적 차이가 있다. 구체적으로 들자면 한도 없다. 정치적으로는 '협치', 원전 정책 등 산업정책, 파병 문제 등 대외정책 등이 본질에서 다르다. 거의 국정 전반에서 '극과 극'이다. 대통령 개인의 국정 스타일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노 대통령은 욕을 먹더라도 당당히 국민 앞에 나섰다. 문 대통령은 중요한 문제에 숨어만 있다. 책임지는 자리엔 서지 않고 광내는 자리만 등장한다. 이것이 본질적인 차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분들은 문 대통령이 노 대통령의 진정한 계승자라고 하지만,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다. (중략)
노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완전히 다르다. 적어도 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나라에 위해를 가할 사안에 대해서는 자기제어능력을 발휘했다. 본인 진영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했던 '한미FTA 체결'과 '해외파병'(자이툰 부대) 등을 강단 있게 추진한 것이 그런 경우다. 국정운영에 있어 정치적 사익보다 국익에 부합되는 선택을 이어나가셨던 분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과 정반대다. 기본적으로 (잘못으로 판명된 의사결정에 대해)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 노무현정부 '인사불이익', 블랙리스트? (pp.86~88)
나 : 당시 '봉하마을 방문' 기사에 보니 노무현 정부 시절 '인사 불이익'을 당했다는 내용이 있던데, 진상이 어떻게 되나? 블랙리스트 아닌가?
황 : 블랙리스트 이상이었다. 나에 대한 파일이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있었다고 들었다. 2006년도 초 검사장 인사가 있었다. 당시에는 검사장 승진 1순위가 서울중앙지검 차장검사였다. 3명의 차장 중, 2차장 제외하고 제1, 제3차장이 승진했다. 그 불운의 2차장이 바로 나다. 당시는 의아하고 실망스러워서 옷을 벗을 생각도 했다. 한참 후에야 지인에게 '청와대 블랙리스트'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민정수석실에 '황교안은 안 된다'라는 근거자료로 별도의 파일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 부적격 사유는 '강정구 교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이라고 했다. 경찰에서 수사가 한창일 때 노무현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수사 반대 의사를 표했다. 이후 검찰로 이첩되어 살펴보니 '6.25는 통일 전쟁'이라고 한 부분과 전후의 행적을 볼 때 명확한 법 위반이었다. 수사팀이 구속기소를 강력히 주장했고, 나도 같은 생각이어서 검찰 수뇌부도 구속기소를 건의했고 당시 김종빈 검찰총장도 이에 동의했다. 노 대통령의 발언이 있었기에 즉시 법무부에 보고했고, 당시 천정배 법무부 장관은 '구속하지 말라'는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추미애 장관에 의해 남발되고는 있지만, 이때가 헌정사상 최초의 수사지휘권 발동이었다. 결국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법적 권한 행사를 수용하고, 본인이 이 모든 상황을 책임지겠다며 사퇴했다. 그 결과 강정구 교수 사건은 불구속 기소로 마무리됐다. 이것이 나에 대한 인사보복의 빌미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강정구 교수는 결국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 받았다.
두 번째는 '국정원 도청 사건' 문제였다. 지금은 조직 자체가 사라져서 말할 수 있지만, '국정원 8국'이 광범위하게 불법 도청을 주도하고 있었다. 당시 수사팀은 관련자 전원을 구속,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나는 국정원의 경직된 수직적 의사결정 구조를 고려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현실적으로 '지시 불이행'에 대해 어려움을 겪는 행위자들에게 책임을 물려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 따라, 원장 두 사람과 차장 한 사람만을 구속하는 방향으로 내부결정을 조정했다. 이를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 대통령께 보고했다. 그런데 구속 대상인 임동원 원장이 김대중 대통령 측근이었기 때문에 청와대와 (이해찬) 총리실에서 강력히 반발했다. 그런데도 원칙에 따라 그대로 밀어붙여 구속했다. 이 때문에 정권 차원에서 미운털이 박힌 것이다.
두 사건 모두 그 중심에 문재인 대통령이 있었다. 첫 번째 사건 때는 문 대통령이 청와대 민정수석이었고, 두 번째 사건 때는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내가 검사장 승진에서 누락된 것은 진보진영 언론매체도 '부당하다'라는 사설을 쓸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사건들은 내가 책임자로 직접 143회 언론브리핑을 할 정도로 중요한 사건이었다.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참고로, 이후 천신만고 끝에 정권이 바뀐 후 검사장 승진을 했고, 그 후 2011년 부산고검장으로 부임했을 때 문재인 당시 변호사에게 인사 전화를 했다. 내게 인사 불이익을 준 분이지만 말이다.
-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 평가 (p. 79)
나 : 당시는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기 한참 전인데, 그때도 현장은 그리심각했나?
황 : 분명히 말하지만, '코로나 19' 이전에도 우리 경제는 파탄지경이었다. 팬데믹(pandemic) 이전부터 우리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절박한 상황(경제 파탄)이었다. 정치가 엉망이었다 해도 경제가 제대로 돌아갔다면, 내가 정치할 각오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에 보면 오히려 '코로나 19'가 현 정권에게는 구세주가 됐다. 온갖 실정을 가려줬고, 면죄부까지 주었다. 실정을 감춰주고, 돈을 풀 핑계를 만들어 주지 않았나. 남대문 시장 현장에서 새벽을 깨우는 분들을 봤다. 가게는 상당 부분이 닫혀 있었다. 그곳에서 '한 푼이라도 더 벌겠다'라며 일찍 나오신 분들을 보면서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상당수 상인이 내가 손을 잡았을 때 '살려달라'고 했다. '못 살겠다 바꿔 달라'는 얘기도 했다. 이미 익숙한 말이었지만 과거와 달리 생생하게 마음에 꽂혔다. 들을 당시는 분통이 터졌고, 지금은 송구스럽다.
6. 조국, 추미애 전장관 평가 (pp. 132~134)
나 : 패러디 분위기를 타며 대표의 리더십이 강화되고, 조국에 대한 혐오가 확산하는 와중에 대규모 집회로 이어졌다. 결국, 조국 법무부 장관이 사퇴했는데, 선배 장관으로서 그를 어떻게 평가하나?
황 : 후배라고 하니 당혹스럽다. 이런 장관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조국은 대략 35일 정도 장관직에 있었다. 그동안 대한민국 법무부 장관으로서 정확히 어떤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재임 기간 내내 의혹 제기를 받고 국민과 싸우기만 했다. 남 탓, 거짓말, 내로남불 등으로 점철된 행태로 국민과 싸운 법무부 장관은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 후임(추미애 장관)이 더한 것 같아 안타깝다.
나 : 인성에 대한 평가는?
황 : 장관 지명되기 전에도 사건을 통해서 그분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자유 대한민국에서는 인정받을 수 없는 '사노맹 사건' 등에 연루된 인물이었다. 당시 운동권 단체 중에서도 가장 위험도가 높은 조직의 일원이었다. 나중에 본색이 드러나지 않았나. 이 사람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파괴자나 위선자이다. 조국은 '위선적인 혁명가'다.
(중략)
나 : 조국에 이어 추미애 장관이 취임했다. 그런데 현재 검찰과의 갈등이 최고조다. 추 장관을 평가한다면?
황 : 평가하기 싫다. 조국과 마찬가지로 정말 평가하기도 싫다. 조국은 대한민국 체제를 위태롭게 하는 사람이고, 추미애는 법치를 위태롭게 하는 사람이다. 나라를 위태롭게 만든다는 점에선 공통적이지만 개별적인 성격은 좀 다르다. 추 장관의 경우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말도 안 되는 전횡을 저지르고 있다.
집중적인 전문역량을 갖춘 분이 장관이 되어야 하는 부서가 대표적으로 법무부와 외교부다. 추 장관 이전에도 판사 출신 법무부 장관이 있었다. 대체로 그런 분들도 여러 가지를 고려하며 업무수행을 잘해주셨다. 노무현 정권 때도 판사 출신 장관이 있었다. 처음에는 개혁을 내세웠지만, 이내 검찰의 순기능을 인정하고 업무수행을 무난하게 하셨다. 현 정권에서는 전문적인 능력을 갖춘 법무부 장관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추미애 장관은 조국이 질러놓은 불에 기름을 부은 인물이라고 봐야 한다.
나 : 추미애 장관 향후 거취 어떻게 될 것이라고 봄?
황 : 물러나게 되겠지만 사실상 쫓겨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얼마 오래 못 갈 것이다.
7.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생각
(p.133)
나 : 윤석열 검찰총장이 조국 사태를 계기로 대통령과 소원해졌다. 검찰 선배로서 어떻게 평가하는가?
황 : 검찰조직은 민주주의 제도의 중요한 축이다. 검찰 제도는 프랑스 혁명의 산물로 탄생했다. 당시 만연했던 법원과 경찰의 부패를 극복하기 위해 창안된 조직이다. '가장 정의로운 조직'이라
- 황교안 추천사 중 (pp.5~6)
2020년 4월 15일 총선은 참으로 아팠다. 국민의 삶을 지켜낼 기반을 만들지 못하고, 대한민국 되살려내기에 실패한 책임으로 당 대표직을 사퇴했다. 국민께 죄송한 마음으로 엎드려 사죄했다. 총선이 끝난 후에도 참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동안 저와 우리 당을 응원해 주신 국민들, 함께 고생했던 당원들, 당협위원장들, 그리고 국회의원들께 가슴 찢는 사죄의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지냈다.
그런데 김우석이 찾아왔다. 나의 정치를 비판적으로 돌아보는 시간을 갖자고 했다. 책으로 진실을 담고 싶다고 했다. 고민 끝에 동의했다. 정치권에 들어온 후 지난 2년을 뒤돌아보고 정리하며 반성의 시간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백록이며 참회록이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지난날들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도와주셨던 많은 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한 분 한 분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지금도 안타까운 분들이 너무 많다. 그분들이 앞으로도 국민과 나라를 위해 더 큰 역할을 하시리라 믿고 응원한다.
- 저자 머리말 중 (pp.7~10 에서 발췌)
· 이 책은 정치영역에서 '리더십'과 '통합'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은 현실 정치영역에서 '리더십'과 '통합'에 관한 이야기다. 이 둘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리더십이 강하면 자연스럽게 그 리더십이 미치는 영역은 확장된다. 위대한 리더들은 대부분 영역과 영토를 확장했다.
· 리더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
나는 소금의 삼투압(?透壓)을 활용해 리더십을 설명한다. 소금의 농도가 높으면 주위의 수분을 끌어들인다. 소금이 리더고 물은 백성이다. 어느 나라가 리더십이 강하면 타지의 백성이 스스로 알아서 부의한다.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이때 소금은 물에 고단하게 설명하거나 유치하려 노력하지 않는다. 소금이 물을 끌어들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이것이 '무위의 통치'(無爲之治)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물 흐르듯 사회를 이끄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리더가 낮아지거나 쫓아가는 것이 아니고, 백성이 스스로 찾아오게 하는 것이 리더의 덕목이란 것이다.
· "승리한 정당의 승인(勝因)은 다들 비슷비슷하지만, 패배한 정당은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다."
총선패배 후 당 비상대책위원회가 당에 별도의 기구를 두어 백서까지 펴냈다. 하지만 언론은 '맹탕'이라고 폄하했다. 지금 지도부의 성격을 고려하면 구조적으로 한계가 있었음은 인정한다. 하지만 '객관적인 원인'을 회피하면 다음에도 같은 패착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돌아오는 '4.7 재·보궐선거'가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 알 것이다. 틀린 처방을 반복하면 결국 패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원내교섭단체 유일 야당은 뿔뿔이 공중 분해될 수도 있다.
2. 총선 패배 원인 (pp. 33~36)
나 : 당이 출간한 백서에서 '황교안 책임론'을 강조하는 분위기였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책임 떠넘기기'라는 지적도 있는데 억울한 부분은 없나?
황 : 나는 패배한 장수다. 할 말이 없다. '제가 죄인'이라는 말씀으로 대신하겠다. 패배를 통해 정치적 리더십에 대해 많이 깨닫고 배웠다. 나는 '섬김의 리더십'을 추구했다. 높고 강력한 리더십보다는 '협치의 리더십'이 필요할 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단 결과는 실패였다. 내가 가진 이상을 현실에서 구현하기엔 경험과 스킬이 많이 부족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섬김의 리더십'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괜히 '공복(公僕)'이 아니지 않은가? 아직은 잘 맞지 않더라도 희망을 가지고 그 목표를 향해 계속해나가야 한다. 지금 기성 정치권 분들과 관점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향후 정치지도자들은 이 부분에 깊은 성찰이 필요할 것 같다.
나 : 대표님이 진단하는 진짜 패배원인은 뭔가? 객관적으로 설명해 달라.
황 : 당에서 발간한 백서 자체는 일리 있으나 그것이 전부를 설명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먼저 '막말'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기본적으로 〈국민의힘〉을 지지해왔던 분들께서는 '특정 정파에 편향되었다'라고 보기보다 애국심이 기본적인 동기였던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분들을 전부 '극우 프레임'이나 '막말 대상자'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그런 면에서 단순히 '막말 때문에 졌다'라고 생각하는 데에는 전부 다 동의하지는 않는다.
'공천'은 실패했다. 다만, 이번 공천에서 지난날 반복되었던 비리와 당 대표의 일방주의공천 등으로 인한 부작용은 최소화됐다고 생각한다. 많은 유혹이 있었지만, 내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했다. 특히 "'통합'을 이루고 좋은 공천을 통해 승리하고자 하는 것"이 당시 대표인 내가 지향했던 '이기는 공천'이었다. 그런 뜻을 가지고 공관위를 구성하고 나름 긍정적인 역할을 기대했으나, 결과적으로는 공천은 실패했다. 그래도 당 대표의 전권을 내려놓는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는 유의미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중앙당의 전략 부재'에 대해선 인정한다. 민부론(국민을 부자 만들자는 경제 대안), 민평론(국민 중심 평화 대안), 민교론(국민 중심 교육 대안) 등 평소에 우리 당에서 정책 대안을 마련해오긴 했지만, 선거 때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압축적이고 매력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이다.
'탄핵에 관한 입장 표명'의 경우는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당시는 그 문제를 논할 상황이 아니었다. 미래지향적인 관점이 옳다고 생각했다. '탄핵'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분열이 야기되는 분위기였다. 적어도 국가지도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분열적 요소에 몰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당시 정권의 폭주를 막기 위해 자유민주진영은 미래와 단합에 집중해야 했다.
'청년층의 외면'은 뼈아팠다. 이들의 자유민주진영에 대한 지지율은 15%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의 필요와 바람에 부합하는 정책을 만들어 내고 당의 운영방식 역시 시대정신에 맞는 형태로 개선해 나간다면, 이러한 진정성이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총선 당시 나에게 다가온 수많은 청년을 보면서 희망의 기운을 느꼈다. 그런 맥락에서 더 쇄신하고, 청년들의 수요에 맞는 정책과 당 운영방식을 지속해서 실행에 옮겨야 했는데 아쉽다.
3. 공천실패
- 개관(PP.39~42)
나 : 아까 공천이 잘못됐다고 하셨다. 공관위와의 갈등 때문인가?
황 : 내가 처음 당에 들어왔을 때, 한국당이 직면한 가장 큰 비판이 '싸움을 못한다.', '대안이 없다.', 그리고 '미래가 없다'라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나는 '싸워 이기는 정당', '역량 있는 대안 정당', 그리고 '미래를 준비하는 정당' 등을 목표로 삼았다. 문제는 내가 이 모든 것들을 포괄하는 최고의 전문가는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상기 목표들을 함께 이룰 수 있는 '협치 모델'을 연구했다. 예를 들면 광화문 투쟁을 진행하는 동시에, 경제적 대안을 민부론등을 통해 출판했다.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은 현장·학계 전문가들을 초빙했다. 그 외에도 안보, 교육 등 여러 대안을 연이어 만들었다. 당내의 인재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 2019년 6월부터 인재영입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하지만 타이밍이 너무 늦어져서 결국은 공천에만 매몰된 인재영입이 되어 버렸다. 개인적으로는 공천 외에도 당 내외 혁신을 이룰 수 있는 '포괄적 인재영입'을 추구했었다. 특히 당내 의원들을 중심으로 여러 분야 인재들을 추천받았다. 총선준비단도 경험 있는 의원들과 뜻을 모아 오래전부터 출범시켰고, 준비도 착실히 했었다. 공관위 역시 제왕적 당 대표의 무분별한 공천개입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적인 조직을 추구했다. 하지만공관위가 처음 내 구상과 다른 길로 간 부분은 많다. 최선을 다했을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하지만 책임을 미루려는 뜻은 전혀 없다. 역시 최종적인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나 : 마지막 공천의 정정은 약속했던 '공관위 독립성'을 침해한 것 아닌가?
황 : 권한을 분명히 주었지만, 대표인 나도 당헌·당규의 범위를 넘는 정도의 권한을 줄 수 없다. 공천과정에서 분명한 문제가 있었다. 특히 마지막 몇 자리의 경우, 당헌·당규상 명백히 위배되는 내용이 있었다. 통념상 받아들이기 힘든 지역과 후보들이어서 당헌·당규에 따라 최고위를 통해 바로 잡은 것이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발생한 마찰에 대해서는 내 잘못이 없지 않다. 전반적으로 10여 곳이 문제가 있는 지역으로 분류되는데, 여기에 대해서 최고위원회의 정당한 권한을 활용해 최소한의 조치를 했고, 여기에 대해선 국민께서도 양해를 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 : 총선 이후 김형오 위원장을 만난 적이 있나?
황 : 만난 적 없다. 총선 선거전 진행 중 만난 일은 있지만…
나 : 김형오 위원장과 선거가 한참 지난 후 신동아 인터뷰를 했다. 보셨나? '내부에 적이 있었다'라는 내용이 주던데,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황 : 봤다. 그런데 면밀하게 따져 본 것은 아니다. 굳이 시시비비 가리고 싶지 않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함께 고생했던 분인데, 인터뷰하신 내용을 가지고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나 : 김형오 위원장이 인터뷰에서 언급한 공천자료로서 '위원장 평가지침서'에 대한 생각은?
황 : 총선준비단에서 많은 내용이 검토되고 논의됐다. 정량·정성 평가의 기준, 평가 주체의 객관성 등 여러 문제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했다. 2019년 6월부터 총선준비단은 제기될 수 있는 여러 이슈를 광범위하게 정리했고, 공관위에도 결과와 기준들을 종합적으로 전달했다. 그것을 공관위가 받아들여 활용했는지는 모르겠다.
나 : 김형오 위원장 인터뷰에서 언급된 '김종인 책임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황 : 책임은 전적으로 내가 져야 한다. 물론 김종인 위원장이 나와 함께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으셨기 때문에 선거결과에 대한 책임도 같이 지어야 한다고 말하는 분도 있지만, 엄밀히 말해서 내가 당 대표를 겸해 맡았기 때문에 내 잘못이 절대적으로 크다.
나 : 김형오 위원장은 태영호 의원을 공천하고 그를 중심으로 별도의 유세단을 만들려고 했는데 김종인 위원장이 비토를 놓으면서 유세단 자체가 수포가 되었다며 아쉬움을 피력했다. 이에 대해 부연해 설명할 것이 있나?
황 : 처음 김종인 위원장을 영입하려 했을 때, 강남(갑) 공천이 잘못되었다며 변경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하셨다. 거기에 대해 내가 반대하니까, '당에 들어와서 할 역할이 없다'라고 하시더라. 그러나 공천 결정은 공관위에 위임했고, 실제 최종공천까지 이뤄진 마당에 그걸 되돌린다는 것은 공정성에 부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결국 그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태영호 의원이 강남갑 국회의원이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팩트는 거기까지다. 지금 시점에 다시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 김형오 공관위원장, 공관위 관련(pp.212~227)
나 : 김형오 공관위원장과의 첫 접촉은 어떠했고, 어떤 약속을 했는가?
황 : 대표가 된 이후 계속 '총선 승리의 핵심'은 공천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었다. 그런 만큼 좋은 공관위원장과 공관위원을 모셔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노력을 많이 했다. 이전의 총선준비단과 인재영입위 활동 등으로 그림이 갖춰진 10월 즈음부터 공관위원장 인선을 위해 여러 사람과 두루 만났다. 총선 승리를 위해 '공천 혁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내 개인적인 인연과 상관없이 다양하게 접촉했다. 초기에는 좋은 분들이라고 생각했던 분들이 많이들 고사하셨다. 고사한 분 중 여당에 가시거나 선거 방송에 출연하시기도 하더라. 12월 4일에는 공개적으로 '공천관리위원장 국민추천'을 받았고, 그 결과 공관위원장 추천을 수합했다. 그때 내가 '비움을 통해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같은 발언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는 공천 혁신을 통해 총선 승리를 이뤄내는 것이 내게 가장 중요한 목표였고, 거기에 맞는 공관위원장을 영입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많은 추천과 논의 끝에 결국 '우리 당 출신 국회의장 중 한 분을 모시자'라는 의견으로 수렴되었다. 당내 논의를 통해 김형오 전 국회의장을 공관위원장으로 모시자는 쪽으로 논의가 이루어졌다. 개인적으로는 얼마 전인 9월 15일에 김형오 위원장을 뵈었는데, 소장품 기증자로 국회 특별전시회를 여셨을 때였다. 전반적으로 이미지나 평판이 좋았다. 2020년 1월 초 공관위원장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드리려 처음 연락을 드렸는데, 그때는 베트남에 계셨다. 처음 들었을 때는 고사하셨는데, 지속적으로 권유했고 고민 끝에 수락하셨다. 그분이 제시한 조건은 공관위원회 구성을 자신에게 맡겨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분 재량으로 만들 수 있도록 허용해 드렸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공천의 취지나 원칙에 대해서는 상세히 설명해 드렸다.
나 : 공관위원 구성은 누구와 논의했는지 혹시 아는가?
황 : 재량을 드렸기 때문에 나는 구성에 관여치 않았다. 김형오 위원장께서 단독으로 구성 했다.
나 : 원래 김형오 위원장과는 잘 아는 사이였나?
황 : 원래는 박관용 의장님과 제일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박관용, 정의화, 김형오 세 분의 전직 의장 중에서 어쩌면 김형오 의장과의 인연이 가장 적었다. 사천(私薦)을 막아야 하고 이를 위해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멋쩍게 웃으며) 다른 분들도 모두 훌륭한 분들이라 생각했지만, 역차별을 당하신 측면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하실 생각이 있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 : 혹시 모를 상황에 대한 안전장치는 있었나?
황 : 안전장치는 당헌·당규에 있었다. 그중 하나가 '국민공천배심원단'이었다. 공관위에서 결정된 후보를 '배심원단 3분의 2' 이상 동의를 통해 제청하면 최고위가 거부할 수 있도록 한 장치였다. 지난 20대총선 '막장 공천'을 교훈 삼아 뒤늦게 만들어 놓은 안전장치였다. 다만 그 배심원단 구성을 공관위가 요구하도록 되어있기는 하더라. 정작 공관위는 줄기차게 '배심원단' 조항을 당헌·당규에서 삭제해달라고 요청했는데,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당헌·당규를 바꾸는 것은 법치주의가 아니라고 생각해 허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최고위가 의결하는 절차를 밟기 때문에 따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지 않았다. 한국당의 당헌·당규는 공천에 문제가 있어 바로잡으려면 최고위에서 하면 되는 구조였다. 당헌·당규에 의한 정당한 정정이 나중에 '뒤집기, 사천' 논란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나 : 보통 내부논의의 안전장치 역할을 사무총장이 한다. 당시 박완수 사무총장은 초선이고 당 경험이 많지 않아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알고 있었나?
황 : 박 총장이 총선준비단부터 함께했고 공관위까지 합류했었다. 그래서 믿었다. 하지만 '인해전술'에 밀려 결국 힘을 못 쓴 것 같다. 실력 발휘를 할 상황이 안됐다. 당의 일에는 다른 분야에서의 경력보다 국회의원 선수와 당무 경험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때 실감했다.
나 : 김형오 위원장은 취임 초부터 대폭적인 '물갈이' 선언을 했는데, 사전에 그 폭과 대상에 대한 공감은 있었나?
황 : 총선준비단을 운영하면서 여러 기준이 논의됐다. 내가 제시한 기준은 △ '이기는 공천', △ '공정한 공천', △ '경제 살리는 공천, △'혁신 공천'이 큰 틀이었다. 물론 그에 따른 세세한 기준들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뻔한 이야기 같이 들릴지 모르지만 나름의 의미가 있다. '혁신 공천'은 무난히 이길 수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시행하자는 것이 주된 의견이었다. 가령 TK, PK 같은 지역이 자연스럽게 그 대상이 되었다. 수도권 등 박빙 지역의 경우, '이길 수 있는 공천'을 기준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공감이 있었다. 이 모두 공정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었다. 그 원칙에 따라 결과적으로 피해 보신 모든 분에 대해서는 거듭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중략)
나 : 2월부터 TK, PK 공천에 들어가면서 '물갈이'가 본격화됐다. 이를'낙동강 벨트 전략'이라고 했다. '낙동강 벨트 전략'이 무엇이었나?
황 : '낙동강 벨트'는 전통적으로 우리 당 지지기반이 강한 지역이라 '혁신공천'이 원칙이었다. 하지만 부·울·경의 경우 양상이 좀 달랐다. 상대적으로 불리한 지역으로 분류되는 곳이 많았다. 따라서 '이기는 공천'을 병행하는 컨셉으로 진행했다. 그 결과 53개 선거구에서 20대 총선 때는 40곳이 승리한 것에 비해 21대는 45곳에서 승리했다.
나 : 김형오 위원장과 김세연 위원이 부산 출신이다. PK 지역 잘 아는 분들임에도 그 지역 공천과정이 굉장히 요란스러웠다. 이들에 의한 사천(私薦)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당시 김형오 위원장은 '혁신공천'과 '이기는 공천'에 대해 어떻게 말했는가?
황 : 나와 당에서 정한 기준에 전반적으로 동의했다. '혁신공천'은 어느 정도 되었는데, '이기는 공천'이 잘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다. 가령 특정 지역에서 컷오프된 인물들을 급작스레 다른 지역으로 출마시키는 방식은 전혀 동의할 수 없었다. 물론 재배치 관련 논의도 있었고 내가 우려도 표명했지만, 정작 실행은 김형오 위원장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나 : 우려를 표했음에도 왜 그때 바로 정정하지 않았나?
황 : 권한을 주기로 했기 때문에 기회를 준 것이었다. 내가 바로 정정해버리면 사실상 공관위원회 독립성을 나 스스로 없애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결국 제어가 되지 않을 때까지 개입하지 않은 것이다. 민감한 지역 대부분은 뒤로 밀려있었고, 거의 끝에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막판에 진통을 겪은 이유다.
나 : 김형오 위원장 사퇴 후 공관위의 누구와 소통했나?
황 : 이전 김형오 위원장 때는 위원장님과 내가 직접 소통했다. 하지만, 이석연 대행으로 갔을 때는 사무총장이 중심이 되어 소통했다. 그런데 그때의 공관위원회는 이미 당 기구와 소통이 전혀 되지 않았다. 시간은 시간대로 없는 상황에서 결국 막판에 그런 불통 요소들이 터져 나왔다.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나 : 부산의 경우 권력투쟁의 양상이 있었다. 이언주 의원의 경우 부산영도(영도는 김형오 의원이 5선을 한 이후 김무성 의원이 이어받은 지역이다)를 희망했는데, 처음엔 김형오 위원장이 전략공천을 약속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나중에 김무성 의원의 반발로 '통합 잉크도 마르기 전에' 문제가 생겼다. 통합의 책임자로서 조율을 하지 않았나?
황 : 공천 갈등은 늘 있었다. 초창기에는 언론 보도와 달리 '그렇게 심각한 현안이 아니라'고 판단했고 추후 과정을 봐도 실상이 그랬다. 실제로 갈등이 표면화되기는 했지만, 당사자(이언주 후보)는 다른 지역으로 자연스럽게 재배치되었다. 이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볼 수도 있겠지만, 이런 유형의 갈등과 시행착오는 모든 지역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나 : PK는 불출마 선언이 굉장히 많았던 반면, TK는 상대적으로 불출마 선언이 거의 없었다. 경북 안동 출신 김광림 최고위원이 불출마선언을 하며 분위기를 선도했는데 배경이 있었나?
황 : 보통 PK는 불출마가 많고 TK는 적다고 했는데, 일단 '다선의원'들이 용퇴를 하는 분위기가 되다 보니 그 과정에서 다선의원이 많은 PK에 불출마 선언이 쏠려있었던 것뿐이다. 실제로 TK는 3선 이상 의원이 별로 없었다. 그나마 희소했던 TK 다선의원 중 김광림 의원과 강석호 의원이 자진해서 빠지겠다고 한 거다. 김광림 의원의 경우, 일에 대한 의욕이 상당히 많으신 분이기에 인상적이었다. 김형오 위원장의 권유를 받고 선선히 의원직을 내려놓으셨다. 공천과정에서 그분이 '불이익을 받았다'고 생각할 만했음에도 불구하고 담담히 받아들이시더라. 실제로 불출마 선언 이후에도 당의 여러 가지 역할들을 요청드렸는데, 하나도 빠짐없이 수락해주셨다. 이분께 정말로 감사했고, 나중에 꼭 다시 중요한 일을 하셨으면 좋겠다 싶었다. 예를 들면, 우리 정부 통계청에서 고용관련 지표를 발표한 적이 있었다. 다른 분들은 몰라도 김광림 최고위원 한 사람만이 해당 통계의 맹점을 딱 뽑아내서 예리하게 문제를 제기하시더라. 경험과 연륜에서 나온 그 분석 능력이 아주 예리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분은 정말 변함없이 노력하시는 분이다. 지금 계신 퇴계 연구원도 지원 없이 봉사하는 자리라고 들었다.
나 : 당시 기사를 보니, 공천 분위기도 새보수당 계에서 리드한 것으로 나오더라. 예를 들면, 이준석 최고위원이 '분홍 옷만 입으면 뭐하냐'면서 '중진들 영남 불출마 후 수도권 출마'를 강권했던데, 이런 압박은 새보수당 출신이 조직적으로 움직인 것이란 분석이 많았다. 최고위의 이준석 최고위원, 공관위의 김세연 위원, 외곽지원 유승민과 정병국 의원 등의 활약이 컸다. 이때 대표는 어디 계셨는가?
황 : 그런 언론 보도는 전혀 사실과 다른 것이다. 예를 들어 이준석 최고위원 발언만으로 특정 의원이 불출마 선언을 한 것은 전혀 아니다. 불출마 권유 작업은 다각도로 이뤄졌다. 그 과정에서 일부의 목소리가 새보수당 출신들을 통해 (언론에) 표출되면서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 개인적인 아픔에도 불구하고 불출마 선언에 동참해 주신 분이 많다. 실제 불출마 선언을 한 한 분 한 분을 생각해 보면 안타깝다. 결과가 더 좋았어야 그분들의 희생이 빛을 발했을 텐데'하는 생각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생각나는 분들이 많다. 정갑윤 의원은 예리한 통찰력으로 많은 정무적 조언을 해 주셨다. 이주영 의원은 공직생활 선후배 인연으로 많이 의지했고, 유기준 의원은 같은 국무위원 출신으로 정치적 조언자를 마다치 않으셨다. 여상규 의원은 마지막까지 법사위원장 역할 등 궂은 일을 도맡아 해 주셨기에 아직도 강하게 기억에 남는다. 김성찬 의원도 선언은 나중에 했지만, 일찍이 불출마 결심을 해 주셨다. 중앙위 위원장이던 정종섭 의원도 당원 교육 아이디어 등을 제시하고 실행하신 능력자셨다. 최교일 의원은 법률지원단을 대폭 늘려 30여 명에서 200명까지 확충해 야당으로서 법률 수요를 맞춰주셨다. 변호사뿐 아니라 회계사, 변리사, 세무사 등을 모집하여 광범위한 기여를 해 주셨다. 이분들 한 분 한 분은 불출마 이후에도 미래통합당을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해 주셨다. 지금도 생각해 보면, 그 희생이 안타깝고 고맙다.
나 : 좋아할 질문이 아닐 수도 있어 조심스럽게 묻겠다. '불출마 릴레이' 속에서도 그 빈자리를 채운 분들이 틀림없이 있다. 그중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한 분들이 공교롭게도 '지분을 주장하지 않았다'는 새보수당 출신이란 이야기가 많다. 지금도 불출마 선언을 한 분들이 이런 불만을 갖고 있다는 소문도 들었다. 그래서 언론에 확인해 보니, 당시에도 '유승민계는 본인 계파 챙기기에 혈안 돼 있다'는 불만의 소리가 있었더라. 지금도 당내 요직 중 상당수를 그분들이 차지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황 : 얘기는 들었다. 특히 통합과정에서 새롭게 들어오신 분들에 대해서 너무 많은 기회를 부여해 준 것이 아니냐는 피드백에 대해서는 그런 심정을 겸허하게 수용한다. 그러나 당시는 통합이 반드시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대승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씀드린다. 그 과정에서 상처받으신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나 : 김형오 위원장과 세력 안배에 관해 대화하지 않았나?
황 : 공정한 공천에 관해 얘기했고, 편중되지 않도록 당부도 했다. 이후 중간중간에도 불균형 이슈가 나올 때마다 지속적으로 피드백 보냈다. 나는 원칙적으로 계파와 상관없이 두루두루 사람을 챙기려고 노력했다. '친박만 챙긴다'는 말들을 굉장히 많이 들었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그렇게 되지도 않았다. 나 스스로 먼저 내려놓는다고 선언했고, 그 약속을 지키려 부단히 노력했다. 내가 어떤 세력을 특별히 챙겼다면 지금의 상황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 : 공천 전략엔 지역마다 포석이 될 키맨(Key man)들이 있다. 그 중한 분이 김병준 위원장이었다. 세종을 공천은 좀 '뜬금없다'라는 평가가 많았다. 세종시 내에서도 공무원들이 많은 청사 쪽이 아니라 원주민이 많이 사는 지역에 공천을 받았다. 대구를 말렸으면 수도권의 상징적인 지역을 주면 좋지 않았나?
황 : 특별히 누구를 어디에 배치하느냐의 문제는 '사후보고'를 중심으로 얘기를 나눴다. 김병준 위원장의 경우 서울 쪽으로 구상하고 뜻을 전했는데, 정작 나중에 알고 보니 세종에 배치되었더라. 난 애초에 서울에 출마하셔서 바람을 일으키는 역할을 기대했었는데,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전개되어서 여러모로 아쉬웠다. 김태호 의원에 관하여서는 나 역시 (다른 지역) 출마를 권유했는데, 생각대로 잘 진척되지 않았다. 홍준표 의원의 경우 당내에 강한 거부감을 가진 분들이 많아 놀랐다.
(중략)
나 : 만약 되돌릴 수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나?
황 : 공천에 문제는 확실히 있었다. 그걸 인정하는 데도 시간이 좀 걸렸다. 결론은 다 내 책임이란 사실이다. 다시 돌이킬 수 있다면, 그 책임을 지기 위해 부여된 권한까지 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권한을 행사하면서도 국민 앞에 진정성을 보이면 국민께서 그 부분을 알아주시지 않을까?
나 : 공천에 대한 마지막 소회가 있다면?
황 : 거듭 말하지만 모두 다 내 책임이다. 다른 사람에 대해 시시비비할 일이 아니다. 지금 의석수가 부족한 것도 내 책임이다. 역대 최대 득표인 1,190만 표 득표는 후보들과 당원들의 공이다. 잘 된 공천을 했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늘 있다. 그때는 스스로 욕심내지 않으려 노력했고, 그것이 혁신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결국은 국민도 알아주실 것으로 생각했다. 문제는 이상과 현실이 달랐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성과로 연결 짓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안타깝고 죄스럽게 생각한다.
4. 당직 인사의 어려움 (pp.92~940)
황 : 나는 과거의 구태정치를 넘어 새로운 정치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때는 '개인의 역량'이나 '적재적소 배치' 그리고 '개혁적 인사' 등의 기준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인사를 결정했다. 당시 나는 유권자 입장과 정치인 입장 중에서, 유권자 입장 중심으로 모든 사안에 접근했다. 일종의 '수요자 중심주의'다. 그러나 현실은 그것만으로는 안됐다. 정치인의 본질을 뒤늦게 알게 됐다.
'공정한 인사'에 주력하느라, 정작 나를 도와준 분들에게 도움보다는 어려움을 주게 되어서 아쉽고 안타깝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그 이후 내게 와 닿았다. 도와주신 분들을 충분히 챙겨보지 못했던 점은 내가 한없이 부족했음을 확인시켜 주는 아픈 증거다. 다시 기회가 온다면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나 : '전문가를 기용했다'라고 하셨는데 누가 전문가였나?
황 : 나는 입당 초부터 '통합'과 '대여 투쟁', '정책 대안', '미래 준비'를 강조했고, 그 이상에 적합한 분들을 모셨고 상당한 권한을 드렸다. 분야별로 보면 이렇다.
'미래'를 담당했던 분은 김기현 의원, 김종석 전 의원이었다. 김기현 의원은 정책위의장 출신답게 구체적인 아이디어들이 많으셨고 열정적이셨다. 김종석 전 의원은 여의도연구원 원장답게 매우 학구적이고 다양한 식견을 가지고 계셨다. 김 전 의원은 경제대전환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약하기도 하셨다. 두 분 모두 어떤 특정한 도그마에 갇혀 있는 분이 아니 었다. 그래서 미래를 준비하는 데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대안' 전문가는 김광림 전 의원, 김재원 전 의원, 추경호 의원 등이다. 김광림 의원은 최고위원으로 경제대전환위원장을 맡아 〈징비록〉과 〈민부론〉 만드는 책임을 훌륭히 완수해 주셨다. 김재원 의원도 정책위의장으로 많은 활약을 해 주셨다. 특히 추경호 의원에 대해서는 나와 개인적인 인연을 많이 이야기하시는데, 나는 대체로 능력 있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다. 추 의원은 나와의 인연 때문에 오히려 능력보다 평가절하되신 분이다.
처음에 대표를 맡았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야당이 싸울 줄을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계속 '세게 하라'는 주문을 받았다. 그래서 투쟁을 많이 했다. 그 중심에 박대출 의원과 민경욱 전 의원이 있었다. 민경욱 전 의원은 내가 기념행사에 갔다가 물세례를 받았을 때 온몸으로 막아줬다. 박대출 의원은 상임위에서 정책 대안으로 잘 싸워줬고 거리에서도 용감했다. 특히 고맙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청와대 앞에서 단식투쟁을 할 때, 마치 관운장같이 항상 내 앞을 지켜준 것이다. 어려울 때 든든한 힘이 되어 주었다.
'통합' 과정은 원유철 전 의원, 김상훈 의원, 홍철호 전 의원 등이 맡아 주셨다. 원유철 전 의원은 통합에 가장 큰 역할을 해주셨고, 총선 때 미래한국당 대표까지 맡아 주셨다. 김상훈 의원은 최근 4·7 재·보궐선거 경선준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약하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잘해주실 줄 믿는다. 홍철호 전 의원도 통합과정에서 매개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주셨다.
나 : 쟁점이 됐던 당직, 사람 등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인선이 있다면?
황 : 역시 김세연 여의도연구원장이다. 임명할 때도 그랬고 이후에도 정말 많은 말을 들었다. 반대를 무릅쓰고 임명을 밀어붙였으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분이 여연원장을 하고 있을 때 보건복지위원장까지 맡았다. 중요 당직을 복수(보건복지위원장, 부산시당위원장, 여의도연구원장)로 맡는 것이 옳지 않다는 비판이 많았다. 당 대표로 곤혹스러웠다. 직접 만나서 이런 분위기를 전했더니 부산시당위원장은 곧 임기가 끝난다고 하며, 본인이 더욱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면담 후 본인 의사를 존중하여 겸직을 허락해주었다. 통합이란 차원에서 결이 좀 다르더라도 함께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에 당에 대해 저주에 가까운 말을 해 논란이 됐다. 또 공천과정에도 구설이 많았다. 지금이라면 어떻게 하시겠는가?
황 : 가정으로 이야기하긴 힘들다. 나는 '여연은 정치를 잘 아는 외부 전문가가 맡는 것이 좋다'는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이후 (김세연 원장이) 그만두자 정치권에 밝은 학자인 성동규 교수를 원장을 임명했다. 성 교수는 공천에 공을 들이기보다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려 애쓰셨다. '시간을 좀 더 충분히 드렸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한다.
5. 문재인대통령과의 인연
- 봉하마을 방문, 노무현 전대통령과 문재인대통령 비교 (pp.84~85)
나 : 노무현 대통령의 '통합'과 '나라 사랑 정신'을 깊이 기억하겠다고 했는데, 문 대통령과는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하나?
황 : 저는 '통합'을 강조하며 대표가 되었기 때문에 상징적인 의미에서 그분을 찾아뵈었다. 지금 문재인 정부와 비교해 보면 그분이 얼마나 훌륭한 분이었는지 새삼 알게 된다.
나 : 그럼,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차이는 뭔가?
황 :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 간에는 정치적 퍼포먼스를 떠나 본질적 차이가 있다. 구체적으로 들자면 한도 없다. 정치적으로는 '협치', 원전 정책 등 산업정책, 파병 문제 등 대외정책 등이 본질에서 다르다. 거의 국정 전반에서 '극과 극'이다. 대통령 개인의 국정 스타일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노 대통령은 욕을 먹더라도 당당히 국민 앞에 나섰다. 문 대통령은 중요한 문제에 숨어만 있다. 책임지는 자리엔 서지 않고 광내는 자리만 등장한다. 이것이 본질적인 차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분들은 문 대통령이 노 대통령의 진정한 계승자라고 하지만,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다. (중략)
노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완전히 다르다. 적어도 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나라에 위해를 가할 사안에 대해서는 자기제어능력을 발휘했다. 본인 진영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했던 '한미FTA 체결'과 '해외파병'(자이툰 부대) 등을 강단 있게 추진한 것이 그런 경우다. 국정운영에 있어 정치적 사익보다 국익에 부합되는 선택을 이어나가셨던 분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과 정반대다. 기본적으로 (잘못으로 판명된 의사결정에 대해)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 노무현정부 '인사불이익', 블랙리스트? (pp.86~88)
나 : 당시 '봉하마을 방문' 기사에 보니 노무현 정부 시절 '인사 불이익'을 당했다는 내용이 있던데, 진상이 어떻게 되나? 블랙리스트 아닌가?
황 : 블랙리스트 이상이었다. 나에 대한 파일이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있었다고 들었다. 2006년도 초 검사장 인사가 있었다. 당시에는 검사장 승진 1순위가 서울중앙지검 차장검사였다. 3명의 차장 중, 2차장 제외하고 제1, 제3차장이 승진했다. 그 불운의 2차장이 바로 나다. 당시는 의아하고 실망스러워서 옷을 벗을 생각도 했다. 한참 후에야 지인에게 '청와대 블랙리스트'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민정수석실에 '황교안은 안 된다'라는 근거자료로 별도의 파일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 부적격 사유는 '강정구 교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이라고 했다. 경찰에서 수사가 한창일 때 노무현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수사 반대 의사를 표했다. 이후 검찰로 이첩되어 살펴보니 '6.25는 통일 전쟁'이라고 한 부분과 전후의 행적을 볼 때 명확한 법 위반이었다. 수사팀이 구속기소를 강력히 주장했고, 나도 같은 생각이어서 검찰 수뇌부도 구속기소를 건의했고 당시 김종빈 검찰총장도 이에 동의했다. 노 대통령의 발언이 있었기에 즉시 법무부에 보고했고, 당시 천정배 법무부 장관은 '구속하지 말라'는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추미애 장관에 의해 남발되고는 있지만, 이때가 헌정사상 최초의 수사지휘권 발동이었다. 결국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법적 권한 행사를 수용하고, 본인이 이 모든 상황을 책임지겠다며 사퇴했다. 그 결과 강정구 교수 사건은 불구속 기소로 마무리됐다. 이것이 나에 대한 인사보복의 빌미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강정구 교수는 결국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 받았다.
두 번째는 '국정원 도청 사건' 문제였다. 지금은 조직 자체가 사라져서 말할 수 있지만, '국정원 8국'이 광범위하게 불법 도청을 주도하고 있었다. 당시 수사팀은 관련자 전원을 구속,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나는 국정원의 경직된 수직적 의사결정 구조를 고려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현실적으로 '지시 불이행'에 대해 어려움을 겪는 행위자들에게 책임을 물려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 따라, 원장 두 사람과 차장 한 사람만을 구속하는 방향으로 내부결정을 조정했다. 이를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 대통령께 보고했다. 그런데 구속 대상인 임동원 원장이 김대중 대통령 측근이었기 때문에 청와대와 (이해찬) 총리실에서 강력히 반발했다. 그런데도 원칙에 따라 그대로 밀어붙여 구속했다. 이 때문에 정권 차원에서 미운털이 박힌 것이다.
두 사건 모두 그 중심에 문재인 대통령이 있었다. 첫 번째 사건 때는 문 대통령이 청와대 민정수석이었고, 두 번째 사건 때는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내가 검사장 승진에서 누락된 것은 진보진영 언론매체도 '부당하다'라는 사설을 쓸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사건들은 내가 책임자로 직접 143회 언론브리핑을 할 정도로 중요한 사건이었다.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참고로, 이후 천신만고 끝에 정권이 바뀐 후 검사장 승진을 했고, 그 후 2011년 부산고검장으로 부임했을 때 문재인 당시 변호사에게 인사 전화를 했다. 내게 인사 불이익을 준 분이지만 말이다.
-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 평가 (p. 79)
나 : 당시는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기 한참 전인데, 그때도 현장은 그리심각했나?
황 : 분명히 말하지만, '코로나 19' 이전에도 우리 경제는 파탄지경이었다. 팬데믹(pandemic) 이전부터 우리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절박한 상황(경제 파탄)이었다. 정치가 엉망이었다 해도 경제가 제대로 돌아갔다면, 내가 정치할 각오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에 보면 오히려 '코로나 19'가 현 정권에게는 구세주가 됐다. 온갖 실정을 가려줬고, 면죄부까지 주었다. 실정을 감춰주고, 돈을 풀 핑계를 만들어 주지 않았나. 남대문 시장 현장에서 새벽을 깨우는 분들을 봤다. 가게는 상당 부분이 닫혀 있었다. 그곳에서 '한 푼이라도 더 벌겠다'라며 일찍 나오신 분들을 보면서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상당수 상인이 내가 손을 잡았을 때 '살려달라'고 했다. '못 살겠다 바꿔 달라'는 얘기도 했다. 이미 익숙한 말이었지만 과거와 달리 생생하게 마음에 꽂혔다. 들을 당시는 분통이 터졌고, 지금은 송구스럽다.
6. 조국, 추미애 전장관 평가 (pp. 132~134)
나 : 패러디 분위기를 타며 대표의 리더십이 강화되고, 조국에 대한 혐오가 확산하는 와중에 대규모 집회로 이어졌다. 결국, 조국 법무부 장관이 사퇴했는데, 선배 장관으로서 그를 어떻게 평가하나?
황 : 후배라고 하니 당혹스럽다. 이런 장관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조국은 대략 35일 정도 장관직에 있었다. 그동안 대한민국 법무부 장관으로서 정확히 어떤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재임 기간 내내 의혹 제기를 받고 국민과 싸우기만 했다. 남 탓, 거짓말, 내로남불 등으로 점철된 행태로 국민과 싸운 법무부 장관은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 후임(추미애 장관)이 더한 것 같아 안타깝다.
나 : 인성에 대한 평가는?
황 : 장관 지명되기 전에도 사건을 통해서 그분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자유 대한민국에서는 인정받을 수 없는 '사노맹 사건' 등에 연루된 인물이었다. 당시 운동권 단체 중에서도 가장 위험도가 높은 조직의 일원이었다. 나중에 본색이 드러나지 않았나. 이 사람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파괴자나 위선자이다. 조국은 '위선적인 혁명가'다.
(중략)
나 : 조국에 이어 추미애 장관이 취임했다. 그런데 현재 검찰과의 갈등이 최고조다. 추 장관을 평가한다면?
황 : 평가하기 싫다. 조국과 마찬가지로 정말 평가하기도 싫다. 조국은 대한민국 체제를 위태롭게 하는 사람이고, 추미애는 법치를 위태롭게 하는 사람이다. 나라를 위태롭게 만든다는 점에선 공통적이지만 개별적인 성격은 좀 다르다. 추 장관의 경우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말도 안 되는 전횡을 저지르고 있다.
집중적인 전문역량을 갖춘 분이 장관이 되어야 하는 부서가 대표적으로 법무부와 외교부다. 추 장관 이전에도 판사 출신 법무부 장관이 있었다. 대체로 그런 분들도 여러 가지를 고려하며 업무수행을 잘해주셨다. 노무현 정권 때도 판사 출신 장관이 있었다. 처음에는 개혁을 내세웠지만, 이내 검찰의 순기능을 인정하고 업무수행을 무난하게 하셨다. 현 정권에서는 전문적인 능력을 갖춘 법무부 장관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추미애 장관은 조국이 질러놓은 불에 기름을 부은 인물이라고 봐야 한다.
나 : 추미애 장관 향후 거취 어떻게 될 것이라고 봄?
황 : 물러나게 되겠지만 사실상 쫓겨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얼마 오래 못 갈 것이다.
7.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생각
(p.133)
나 : 윤석열 검찰총장이 조국 사태를 계기로 대통령과 소원해졌다. 검찰 선배로서 어떻게 평가하는가?
황 : 검찰조직은 민주주의 제도의 중요한 축이다. 검찰 제도는 프랑스 혁명의 산물로 탄생했다. 당시 만연했던 법원과 경찰의 부패를 극복하기 위해 창안된 조직이다. '가장 정의로운 조직'이라
목차
목차
1. 황교안 추천사와 저자 머리말
- 황교안 추천사 중 (pp.5~6)
- 저자 머리말 중 (pp.7~10 에서 발췌)
2. 총선 패배 원인 (pp. 33~36)
3. 공천실패
- 개관(PP.39~42)
- 김형오 공관위원장, 공관위 관련(212~227)
4. 당직 인사의 어려움 (pp.92~940)
5. 문재인대통령과의 인연 및 평가
- 봉하마을 방문, 노무현 전대통령과 문재인대통령 비교 (pp.84~85)
- 노무현정부 '인사불이익', 블랙리스트? (pp.86~88)
-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 평가 (p.79)
6. 조국, 추미애 전장관 평가 (pp. 132~134)
7.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생각 (p.133, pp.271~272)
8. 통합의 전개과정 (PP.184~193)
9. 김종인 공동총괄선대위원장과 비대위원장 (pp.244~246)
10. 정당대표 시절 아쉬웠던 점 (pp.253~255)
11. 정치적 롤 모델은? (pp.62~63)
12. 결론
- 리더의 소명 : "황교안도 재활용되나요?" (pp. 283~285)
- '우생마사(牛生馬死)', 소는 살고 말은 죽는다. (pp.289~290, 292)
- 황교안 추천사 중 (pp.5~6)
- 저자 머리말 중 (pp.7~10 에서 발췌)
2. 총선 패배 원인 (pp. 33~36)
3. 공천실패
- 개관(PP.39~42)
- 김형오 공관위원장, 공관위 관련(212~227)
4. 당직 인사의 어려움 (pp.92~940)
5. 문재인대통령과의 인연 및 평가
- 봉하마을 방문, 노무현 전대통령과 문재인대통령 비교 (pp.84~85)
- 노무현정부 '인사불이익', 블랙리스트? (pp.86~88)
-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 평가 (p.79)
6. 조국, 추미애 전장관 평가 (pp. 132~134)
7.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생각 (p.133, pp.271~272)
8. 통합의 전개과정 (PP.184~193)
9. 김종인 공동총괄선대위원장과 비대위원장 (pp.244~246)
10. 정당대표 시절 아쉬웠던 점 (pp.253~255)
11. 정치적 롤 모델은? (pp.62~63)
12. 결론
- 리더의 소명 : "황교안도 재활용되나요?" (pp. 283~285)
- '우생마사(牛生馬死)', 소는 살고 말은 죽는다. (pp.289~290, 292)
저자
저자
김우석
1967년 충청남도 보령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양정고등학교와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했다. 서강대 언론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공대)에서 정보보호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95년 정계에 들어와 한나라당 대표 특보와 한나라당 중앙당 디지털정당위원장, 대통령직속 국민대통합위원회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근래에는 자유한국당 황교안대표의 특별보좌역을 맡았고, 21대 총선 때 미래통합당 총선선대위 수석대변인으로 활약했다. 현재는 고려대 정보보호연구원 객원연구위원과 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객원교수로 강의를 하고 있다.
대표적인 합리적 보수논객으로 공중파와 종편 및 케이블 방송 등에서 예리하고 정치(精緻)한 정치평론을 하며, 인터넷신문 '데일리안'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95년 정계에 들어와 한나라당 대표 특보와 한나라당 중앙당 디지털정당위원장, 대통령직속 국민대통합위원회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근래에는 자유한국당 황교안대표의 특별보좌역을 맡았고, 21대 총선 때 미래통합당 총선선대위 수석대변인으로 활약했다. 현재는 고려대 정보보호연구원 객원연구위원과 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객원교수로 강의를 하고 있다.
대표적인 합리적 보수논객으로 공중파와 종편 및 케이블 방송 등에서 예리하고 정치(精緻)한 정치평론을 하며, 인터넷신문 '데일리안'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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