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으로 바치는 기도
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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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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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은 하느님을 향한 육의 부르짖음이다!
"단식은 기도를 굳세게 하고, 기도는 단식을 굳건하게 하여 주님 앞에 가져갑니다."
_클레르보의 베르나르두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따라 걷는 영적 수행의 길에서 '단식'은 '기도', '자선'과 더불어 검증된 수단이다. 교회는 처음 세워질 때부터 단식 수행을 익히 알고 실천했으며, 이미 초세기에 이에 대한 규칙도 마련해 두었다. 예컨대 그들은 예수의 붙잡히심과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기억하여, 수요일과 금요일을 단식일로 정했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서며 단식 규칙은 갈수록 축소되어 거의 무의미해졌다. 지난 수십 년간 교회는 단식이란 전통을 그저 외형적으로 유지했을 뿐, 그 의미는 점점 망각했다. 이 책은 단식이란 것이 죽은 전통이 아닌, 오늘날도 그 무엇보다 유효한 도구임을 일깨운다.
단식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도와 묵상, 침묵과 노동, 자선 등 다른 수행과 분리해서 보는 게 아니라, 반드시 연결 지어, 특히 기도와 연결 지어 살펴봐야 한다. 오늘날은 기도가 하느님과의 대화이며, 순전히 영적인 행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옛사람들은 기도를 언제나 육과 영으로 함께 바치는 행위로 이해했다. 일면, 이는 기도하는 몸짓에서 드러났다. 그들은 그저 머릿속으로 기도한 게 아니라, 온몸으로 하느님께 기도했다. 두 손을 위로 쭉 뻗고 자신의 몸을 활짝 열어 기도를 올렸다. 그들에게 기도란, 곧 '하느님을 향해 두 손을 든다'는 의미였다.
단식은 우리의 신심이 육화해야 함을 보여 준다. 하느님의 말씀이 그리스도 안에서 육체를 취하셨듯이, 우리의 신심도 육체를 취해야 한다. 기도는 단식으로 표현될 때 육화하며, 이 일은 또한 우리에게도 일어난다. 그때는 하느님과의 관계가 머릿속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때는 그분께 우리의 입으로 기도할 뿐 아니라, 우리의 온몸으로도 그분을 향한 갈망을 고백하게 된다. 그분 없이 우리는 빈껍데기임을, 그분 은총에 의지하고 있음을, 그분 사랑으로 우리가 살고 있음을, 우리의 주린 배는 결국 그분으로, 오직 "그분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마태 4,4) 충만해짐을 고백하게 된다.
단식 중에 우리 인간은 자신을 하느님께 내맡긴다. 우리는 자신을 무력한 모습 그대로 전능하신 분께 내바치며, 그분을 경배한다. 단식은 경배이다. 우리는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더 크신 그분 앞에 엎드릴 뿐이다. 우리는 허기에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무한하신 그분 앞에 엎드린다. 오로지 그분만이 인간의 깊디깊은 허기를 달래 주실 수 있다. 단식은 하느님을 향한 육의 부르짖음이다. 저 깊은 곳, 저 심연으로부터 터져 나온 부르짖음이다. 이 심연에서 우리는 마치 시편 말씀처럼 자신의 무력함을, 자신의 상처와 결핍을 마주하며, 이로써 온전히 그분의 심연 속에 내맡겨진다.
"심연이 심연을 부르나이다"(abyssus abyssum invocat, 시편 42,8).
"단식은 기도를 굳세게 하고, 기도는 단식을 굳건하게 하여 주님 앞에 가져갑니다."
_클레르보의 베르나르두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따라 걷는 영적 수행의 길에서 '단식'은 '기도', '자선'과 더불어 검증된 수단이다. 교회는 처음 세워질 때부터 단식 수행을 익히 알고 실천했으며, 이미 초세기에 이에 대한 규칙도 마련해 두었다. 예컨대 그들은 예수의 붙잡히심과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기억하여, 수요일과 금요일을 단식일로 정했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서며 단식 규칙은 갈수록 축소되어 거의 무의미해졌다. 지난 수십 년간 교회는 단식이란 전통을 그저 외형적으로 유지했을 뿐, 그 의미는 점점 망각했다. 이 책은 단식이란 것이 죽은 전통이 아닌, 오늘날도 그 무엇보다 유효한 도구임을 일깨운다.
단식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도와 묵상, 침묵과 노동, 자선 등 다른 수행과 분리해서 보는 게 아니라, 반드시 연결 지어, 특히 기도와 연결 지어 살펴봐야 한다. 오늘날은 기도가 하느님과의 대화이며, 순전히 영적인 행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옛사람들은 기도를 언제나 육과 영으로 함께 바치는 행위로 이해했다. 일면, 이는 기도하는 몸짓에서 드러났다. 그들은 그저 머릿속으로 기도한 게 아니라, 온몸으로 하느님께 기도했다. 두 손을 위로 쭉 뻗고 자신의 몸을 활짝 열어 기도를 올렸다. 그들에게 기도란, 곧 '하느님을 향해 두 손을 든다'는 의미였다.
단식은 우리의 신심이 육화해야 함을 보여 준다. 하느님의 말씀이 그리스도 안에서 육체를 취하셨듯이, 우리의 신심도 육체를 취해야 한다. 기도는 단식으로 표현될 때 육화하며, 이 일은 또한 우리에게도 일어난다. 그때는 하느님과의 관계가 머릿속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때는 그분께 우리의 입으로 기도할 뿐 아니라, 우리의 온몸으로도 그분을 향한 갈망을 고백하게 된다. 그분 없이 우리는 빈껍데기임을, 그분 은총에 의지하고 있음을, 그분 사랑으로 우리가 살고 있음을, 우리의 주린 배는 결국 그분으로, 오직 "그분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마태 4,4) 충만해짐을 고백하게 된다.
단식 중에 우리 인간은 자신을 하느님께 내맡긴다. 우리는 자신을 무력한 모습 그대로 전능하신 분께 내바치며, 그분을 경배한다. 단식은 경배이다. 우리는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더 크신 그분 앞에 엎드릴 뿐이다. 우리는 허기에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무한하신 그분 앞에 엎드린다. 오로지 그분만이 인간의 깊디깊은 허기를 달래 주실 수 있다. 단식은 하느님을 향한 육의 부르짖음이다. 저 깊은 곳, 저 심연으로부터 터져 나온 부르짖음이다. 이 심연에서 우리는 마치 시편 말씀처럼 자신의 무력함을, 자신의 상처와 결핍을 마주하며, 이로써 온전히 그분의 심연 속에 내맡겨진다.
"심연이 심연을 부르나이다"(abyssus abyssum invocat, 시편 42,8).
목차
목차
들어가며
초기 교회의 단식 관습
육과 영의 치유제
욕망과 악습과의 싸움
단식과 기도
조명(照明)의 길
오늘날의 단식
나오며
주
초기 교회의 단식 관습
육과 영의 치유제
욕망과 악습과의 싸움
단식과 기도
조명(照明)의 길
오늘날의 단식
나오며
주
저자
저자
안셀름 그륀
성 베네딕도회 뮌스터슈바르차흐 수도원 사제다. 상트 오틸리엔과 로마 성 안셀모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카를 라너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대 수도승 전통과 현대 심리학을 연결하는 작업에 힘쓰며, 다양한 영성 강연과 피정을 이끌고 있다.
『아래로부터의 영성』, 『길 위에서』, 『힘들 때 이런 음악 어때요』, 『고요한 행복』, 『내 안의 빛을 찾아』, 『나를 힘들게 하는 습관』(공저) 등이 우리말로 출간되었다.
『아래로부터의 영성』, 『길 위에서』, 『힘들 때 이런 음악 어때요』, 『고요한 행복』, 『내 안의 빛을 찾아』, 『나를 힘들게 하는 습관』(공저) 등이 우리말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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