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
한인 최초의 미 세리토스 시장 조재길 자서전
한인 최초의 미 세리토스 시장 조재길 자서전『소명』. 이민 1세대 한국계 미국시민인 조재길이 청소부로 시작해 미국 세리토스의 시장이 되기까지 감동적인 삶의 여정을 담아냈다. 성공보다는 실패의 과정이 더 많았던 경험담이지만 종교적 가르침을 통해서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낸 조재길의 감동적인 경험담이 진정한 삶의 가치와 용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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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한국계 미국 시장 조재길이 전하는 한인 이민사
누구의 삶이든 고비가 있기 마련이다. 나의 삶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우리 세대의 삶을 관통하는 시대는 격동 그 자체였다. 일제강점기 말에 태어나 해방, 6·25전쟁, 4·19혁명, 5·16군사쿠데타, 5·18민주화운동, 6월민주항쟁 등 거센 파도에 맞서야 하는 삶이었다. 나는 여기에 이민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덤으로 안고 살아야 했다. 아련하기만 한 지난날을 용케 헤쳐 오늘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든다.
- 저자 서문 중
저자는 1974년 암울했던 한국의 정치 상황 속에서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 후 청소부와 주유소 종업원으로 미국 생활을 시작해, 전산국에서 컴퓨터 오퍼레이터로 일했고, 세리토스 시에 한국인 최초로 부동산 회사를 차려 많은 돈을 모았다. 그리고 반정부신문인 ≪코리안스트릿저널≫, ≪라성일보≫를 발행하며 17년간 언론인으로 살았다. 한인사회의 반독재·민주화투쟁과 통일운동을 주도한 결과 파산에 이르렀지만 인쇄소 회사를 차려 재기에 성공했다. 그리고 예순이 넘은 나이에 세리토스 시의원을 거쳐 시장에 당선되며 현재 한국계 미국 정치인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저자는 스스로 평생 치열하게 싸우며 살았다고 한다. 차별을 딛고 당당한 미국 시민으로 거듭나기까지, 독재정부의 탄압에 맞서 재기에 성공하기까지, 미국 시장으로 이민자들의 꿈이 되기까지 수많은 고비와 곡절을 겪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한국을 떠나 새로운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수많은 이민 가정에게 좋은 책이 될 것이다.
이 책에는 성공담보다 실패담이 더 많다. 그럼에도 이 책이 더욱 값지게 느껴지는 것은 미국의 주인으로 살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후배들에게 보여 주고 싶은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책에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한 개인의 성공담에 그치는 것이 아닌 격동기를 지나온 우리 모두의 역사이자, 한인 이민사의 기록이기도 하다.
늘 자신이 가진 능력의 10%밖에 쓰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사람과, 잠자고 있는 자신의 능력 90%를 깨우려고 홀로 애쓰는 용기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이 책에서 하는 이야기는 '할 수 있고, 될 수 있고,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의 목표와 꿈을 발견하는 데 필요한 실제적인 것'들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여러분의 꿈이 헛되지 않고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 추천사 중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 수많은 한국인들이 건너가 살고 있다. 저자는 1980년대 도미해 미주 한인사회에서 대중과 함께했다. 개인적으로 거둔 부와 성공을 뒤로 하고 언론인으로서 이민 1세와 1.5세, 2세의 교량 역할을 했다. 따라서 그의 개인사를 보면 미국 땅에 건너간 한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엿볼 수 있다. 또한 저자는 한인사회의 정치력 향상을 목표로 미 주류사회 정치에 뛰어들어 지금 현재 한인사회는 물론 세리토스 주민 모두의 시장으로 새로운 비전을 갖고 변화를 위해 일하고 있다. 한인 정치력 신장은 개인을 위한 일이 아니라 우리의 2세, 3세들이 미국의 주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미주 한인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다. 저자는 한국계 미국인, 이민 1세대로서 자신의 소명은 앞으로 미국 땅의 주인으로 살아갈 후손들을 위한 일이라 한다. 이 책이 개인사가 아닌 한인 이민사로서의 의미를 갖는 두 번째 이유라 할 수 있다.
<책속으로 추가>
1987년 6월 21일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 내 서울국제공원에는 정오부터 수많은 동포들이 태극기, 현수막, 구호판을 들고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날 참여한 동포는 대략 7,000여 명으로 1992년 4·29폭동이 일어나기까지 최대 인파가 몰린 것이었다. 한인 언론은 물론 미국 언론의 취재 기자들까지 몰려들었는데 동원된 카메라만 13대였으며, 행사 이후 일주일 내내 TV에서 이날의 뜨거운 열기가 보도되었다. 조직력 없이 단지 신문과 방송 홍보만으로 이처럼 많은 인파가 자발적으로 모인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만큼 당시 민주화에 대한 뜨거운 열기는 감격스러운 것이었다. (126~127쪽)
북한이 미주동포연합의 결성을 추진하면서 미주 한인사회는 양분되었다. 나는 남과 북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남북 화해를 위한 지렛대 역할'을 하는 통일운동을 지향했다. 그러나 남과 북 양쪽은 모두 자기네 깃발을 들고 따라올 것을 요구했다. 미주 통일운동권은 해외운동으로서의 독자성은 찾아볼 수 없었고, 조직구성원의 의사보다는 북한의 조평통이나 한국 운동권으로부터 정통성을 인정받는지 여부에 의해 조직이 좌우되는 실정이었다. (중략) 나는 남과 북 그리고 한국의 정치권과 운동권 사이에서 독자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려운가를 절감했다. 그리고 1990년대 중반을 넘기면서 무비판적으로 북한의 조평통이나 한국 운동권의 결정을 추종하는 해외 운동권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197~199쪽)
영어의 기초가 없는 내가 선거에서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선거운동에 영어가 중요하지만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영어에 자신이 없어 전화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래서 직접 유권자들을 찾아다니는 가정방문 위주로 선거운동을 했다. 가정방문을 하다 개에게 물리기도 하고, 손전등을 들고 늦은 시간에 다니다 불평을 듣기도 했지만 정말 열심히 했다. (239쪽)
나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지만 내 의지나 능력으로 이룬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농민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어린 소년의 꿈은 태평양 너머 그리움의 대상일 뿐이다. 정치와 담을 쌓고 살기 위해 전공을 컴퓨터로 바꾸고 비정치적인 광고전문지 ≪주간광고≫를 만들었으나 시대적 요청을 거부하지 못하고 결국 반독재·민주화 투쟁의 한가운데 섰다. 이민 1세로서 높은 언어장벽에 눌려 영어가 유창한 젊은 세대의 뒷바라지를 나의 사명으로 생각했으나,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미 주류사회에서 정치인으로서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내 의지대로 인생을 살았다기보다 나에게 주어진 소명을 다하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281쪽)
목차
목차
기적 같은 꿈 _유재건
조 사장, 조 박사 그리고 조 의원 _은호기
머리말 축복받은 삶
제1부 농민의 아들, 세계 속의 한국인 1호가 되다
1.농민의 아들
2.청춘, 멈춰버린 시한폭탄
3.새로운 삶의 터전에서
제2부 참언론, 민주화운동의 한가운데에서
1.'바른 언론'을 지향하다
2.민주화운동의 대변지 ≪코리안스트릿저널≫
3.민족화해와 통일의 지렛대
제3부 오늘도 아메리칸드림을 향해 달린다
1.60대에 이룬 아메리칸드림
2.한국계 미국 정치인으로 새로운 출발
맺는말 '나'의 거울에 비친 자화상
저자
저자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전산국 매니저 보, 제일부동산회사 대표, ≪코리안스트릿저널≫과 ≪라성일보≫ 발행인, 라디오 코리아(LA) 칼럼니스트, KS Printing Co. 대표, Lucy and Joseph Cho Foundation 대표 등을 지냈다. 캘리포니아 주 세리토스 시의원을 거쳐 현재는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세리토스 시장으로 있다.
남가주언론동우회 회장,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미주본부 중앙위원, 미주동포전국협회(NAKA) 부회장, 통일마당 부회장, 남가주공군사관장교회이사장, 휴버트 H. 험프리 민주당위원회 이사 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해왔다.
저서로 『북한은 변하고 있는가』(1990), 『한반도 핵문제와 통일』(1994), 『통일로 가는 길이 달라진다』(1998), 『북핵위기와 한반도 평화의 길』(200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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