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소련(양장본 Hardcover)
잊혀진 인물과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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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만든 나라는 소련이었다
1945년 8월에 벌어진 소일(蘇日)전쟁은 결국 한반도의 분단과 북한의 공산화로 끝났다. 김일성도 스탈린이 뽑은 지도자였다. 즉, 만일 소련이 1945년 일본을 공격하지 않았다면 ‘북한’이라는 개념 자체도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냉전 시대 한국에서는 북한을 자주 ‘북괴(北傀)’, 즉 ‘북한 괴뢰 정권’이라고 불렀다. 1940년대에 이런 표현은 틀리다고 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1950년대 후반 김일성은 소련의 통제에서 벗어났다. 동유럽의 지도층은 대부분 소련의 통제가 완화되자 나라를 개혁 방향으로 이끌기 시작했다. 그러나 김일성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스탈린 시대의 소련보다도 북한 사회와 경제를 더욱 더 강력하게 통제했고 ‘유일사상체계’라는 전체주의 제도를 확립했다.
북한 정권이 소련 통제에서 벗어난 지 벌써 60년이 넘었다. 그러나 지금도 북한은 스탈린 시대의 소련 유산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소련 당국과 소련 출신자들이 세운 제도의 특징들이 상당히 많이 남아 있다. 소련은 1991년 망했지만 북한에서 소련식 제도는 없어지지 않았다.
1945년 8월에 벌어진 소일(蘇日)전쟁은 결국 한반도의 분단과 북한의 공산화로 끝났다. 김일성도 스탈린이 뽑은 지도자였다. 즉, 만일 소련이 1945년 일본을 공격하지 않았다면 ‘북한’이라는 개념 자체도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냉전 시대 한국에서는 북한을 자주 ‘북괴(北傀)’, 즉 ‘북한 괴뢰 정권’이라고 불렀다. 1940년대에 이런 표현은 틀리다고 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1950년대 후반 김일성은 소련의 통제에서 벗어났다. 동유럽의 지도층은 대부분 소련의 통제가 완화되자 나라를 개혁 방향으로 이끌기 시작했다. 그러나 김일성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스탈린 시대의 소련보다도 북한 사회와 경제를 더욱 더 강력하게 통제했고 ‘유일사상체계’라는 전체주의 제도를 확립했다.
북한 정권이 소련 통제에서 벗어난 지 벌써 60년이 넘었다. 그러나 지금도 북한은 스탈린 시대의 소련 유산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소련 당국과 소련 출신자들이 세운 제도의 특징들이 상당히 많이 남아 있다. 소련은 1991년 망했지만 북한에서 소련식 제도는 없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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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소련과 북한의 관계를 부자(父子) 관계와 비교할 수 있다
1922년 탄생한 소련은 1948년 북한을 낳았고 1991년 이 세상에서 떠났다. 그러나 이 소련의 자식인 북한은 언제 사라질지 누구도 알 수 없다.
북한이 탄생했을 때 소련 지도자는 스탈린이었다. 그래서 북한은 당연히 스탈린주의 국가로 탄생되었다. 그러나 1953년 3월 5일 스탈린이 사망한 후 소련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권력을 잡았던 말렌코프, 흐루쇼프, 베리야의 삼두체제 지도자 중 개혁가 비율은 100%였다. 말렌코프는 집단농장을 해체하고 경공업 중심으로 하는 경제개혁을 하자고 했고, 흐루쇼프는 '모두를 말살하는 수령은 무슨 수령인가?'라며 정치 개혁을 제안했으며, 베리야는 오스트리아뿐만 아니라 동서 독일을 중립국가로 통일시키자고 했다. 스탈린의 통치 노선을 계승하자고 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북한은 이 새로운 '개혁 시대 소련'의 영향을 받지 못했다. 동유럽과 달리 북한에서 스탈린주의 정권은 유지되었고 1967년경 더 탄압적인 유일사상체계로 진화해왔다. 김일성의 나라가 된 북한에서 이제 '위대한 소련', '조선 인민을 해방한 소련 군대', '탁월하신 수령이신 스탈린 대원수님'에 대한 언급은 사라졌다.
북한 역사에 소련파의 영향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소련파 안에 여러 분파가 있었다. 이 책에 등장한 인물들 중에는 허가이, 박창옥과 같은 스탈린주의자도 있었고, 박의완, 유성철, 인노켄티 김 등 개혁 분파도 있으며 박정애, 방학세, 남일 등 김일성주의자도 있었다. 또한 북한의 정치 흑막 문일, 연안파 출신이지만 소련에 망명한 리상조, 김일성의 탄압을 직접 느껴 그의 본질을 알게 된 강상호 그리고 아마도 일찍부터 북한의 미래를 예측한 미하일 강은 어떤 분파에도 속하지 않았다.
스탈린 사망 직후 북한의 희망이 된 세력은 소련파의 개혁 분파였다. 당시 박헌영의 국내파는 이미 붕괴 중이었기 때문에 국내파 간부들 중 개혁 노선을 지지할 사람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연안파에 윤공흠, 리필규를 비롯한 개혁가들이 있었다. 김두봉도 친개혁 간부로 평가할 근거가 없지 않다. 그리고 용감한 서휘의 사상과 활동을 보면 그를 개혁가가 아니라 자유주의자로 평가해야 할 것 같다. 당시 소련파와 연안파는 전략적인 차이가 있었다. 소련 지도자가 된 흐루쇼프는 중국의 지도자 마오쩌둥과 달리 개혁주의자였다. 그래서 소련파 개혁가들은 대국(大國)의 지지를 받을 희망이 있었다. 그들의 실패는 곧 김일성 시대 문을 열었고 북한 인민에게 비극의 시발점이 되었다.
결국 살아남은 자들은 김일성주의자뿐이었다.
박정애, 방학세 그리고 남일 외에 여기 언급해야 할 인물은 김봉률이다. 그는 원래 소련 집단농장 위원장이었고 횡령으로 고발을 받아 수용소에 투옥되었다가 소련 극동전선 사령관 아파나센코 대장이 실시했던 사면 덕분에 석방되었다. 김일성이 복무했던 제88여단에서 트랙터 운전사로 알려져 있던 그는 1995년 조선인민군 차수로 사망했다.
김봉률은 소련파의 마지막 생존자였다. 그의 사망과 함께 소련파의 역사는 종결되었다. 김일성의 빨치산들과 달리 그의 후손들은 높은 간부가 되지 않았다. 외국인들을 위한 안내원이 된 방학세의 손녀 방유경의 운명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안내원의 자리는 나쁘지 않지만 정치국 위원과 같은 엘리트 성원과 비교할 수 없다. 1995년 이후 북한 지도층에서 소련파는 아예 사라져버렸다.
앞으로 북한이 1인체제에서 벗어날 기회가 다시 생긴다면
북한은 외국, 즉 소련이 세운 나라다. 북한 체제는 훗날 김일성이 형성했지만 원본은 소련이 도입시켰다. 1950년대 북한은 이 길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었고 그 기회도 소련에서 나왔다. 그러나 지도부 야권 실패로 북한은 이 기회를 이용하지 못했다.
그리고 앞으로 북한이 1인체제에서 벗어날 기회가 다시 생긴다면 그 기회는 러시아나 다른 구소련의 공화국이었던 나라에서 나오지 않을 것이다. 중국에서 나올지 내부에서 나올지 알 수 없다. 미래는 알 수 없지만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북한 주민 그리고 변화를 원하는 북한 엘리트 일부다. 1950년대 개혁가들이 일으키지 못했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사람들은 그들뿐이다.
1922년 탄생한 소련은 1948년 북한을 낳았고 1991년 이 세상에서 떠났다. 그러나 이 소련의 자식인 북한은 언제 사라질지 누구도 알 수 없다.
북한이 탄생했을 때 소련 지도자는 스탈린이었다. 그래서 북한은 당연히 스탈린주의 국가로 탄생되었다. 그러나 1953년 3월 5일 스탈린이 사망한 후 소련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권력을 잡았던 말렌코프, 흐루쇼프, 베리야의 삼두체제 지도자 중 개혁가 비율은 100%였다. 말렌코프는 집단농장을 해체하고 경공업 중심으로 하는 경제개혁을 하자고 했고, 흐루쇼프는 '모두를 말살하는 수령은 무슨 수령인가?'라며 정치 개혁을 제안했으며, 베리야는 오스트리아뿐만 아니라 동서 독일을 중립국가로 통일시키자고 했다. 스탈린의 통치 노선을 계승하자고 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북한은 이 새로운 '개혁 시대 소련'의 영향을 받지 못했다. 동유럽과 달리 북한에서 스탈린주의 정권은 유지되었고 1967년경 더 탄압적인 유일사상체계로 진화해왔다. 김일성의 나라가 된 북한에서 이제 '위대한 소련', '조선 인민을 해방한 소련 군대', '탁월하신 수령이신 스탈린 대원수님'에 대한 언급은 사라졌다.
북한 역사에 소련파의 영향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소련파 안에 여러 분파가 있었다. 이 책에 등장한 인물들 중에는 허가이, 박창옥과 같은 스탈린주의자도 있었고, 박의완, 유성철, 인노켄티 김 등 개혁 분파도 있으며 박정애, 방학세, 남일 등 김일성주의자도 있었다. 또한 북한의 정치 흑막 문일, 연안파 출신이지만 소련에 망명한 리상조, 김일성의 탄압을 직접 느껴 그의 본질을 알게 된 강상호 그리고 아마도 일찍부터 북한의 미래를 예측한 미하일 강은 어떤 분파에도 속하지 않았다.
스탈린 사망 직후 북한의 희망이 된 세력은 소련파의 개혁 분파였다. 당시 박헌영의 국내파는 이미 붕괴 중이었기 때문에 국내파 간부들 중 개혁 노선을 지지할 사람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연안파에 윤공흠, 리필규를 비롯한 개혁가들이 있었다. 김두봉도 친개혁 간부로 평가할 근거가 없지 않다. 그리고 용감한 서휘의 사상과 활동을 보면 그를 개혁가가 아니라 자유주의자로 평가해야 할 것 같다. 당시 소련파와 연안파는 전략적인 차이가 있었다. 소련 지도자가 된 흐루쇼프는 중국의 지도자 마오쩌둥과 달리 개혁주의자였다. 그래서 소련파 개혁가들은 대국(大國)의 지지를 받을 희망이 있었다. 그들의 실패는 곧 김일성 시대 문을 열었고 북한 인민에게 비극의 시발점이 되었다.
결국 살아남은 자들은 김일성주의자뿐이었다.
박정애, 방학세 그리고 남일 외에 여기 언급해야 할 인물은 김봉률이다. 그는 원래 소련 집단농장 위원장이었고 횡령으로 고발을 받아 수용소에 투옥되었다가 소련 극동전선 사령관 아파나센코 대장이 실시했던 사면 덕분에 석방되었다. 김일성이 복무했던 제88여단에서 트랙터 운전사로 알려져 있던 그는 1995년 조선인민군 차수로 사망했다.
김봉률은 소련파의 마지막 생존자였다. 그의 사망과 함께 소련파의 역사는 종결되었다. 김일성의 빨치산들과 달리 그의 후손들은 높은 간부가 되지 않았다. 외국인들을 위한 안내원이 된 방학세의 손녀 방유경의 운명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안내원의 자리는 나쁘지 않지만 정치국 위원과 같은 엘리트 성원과 비교할 수 없다. 1995년 이후 북한 지도층에서 소련파는 아예 사라져버렸다.
앞으로 북한이 1인체제에서 벗어날 기회가 다시 생긴다면
북한은 외국, 즉 소련이 세운 나라다. 북한 체제는 훗날 김일성이 형성했지만 원본은 소련이 도입시켰다. 1950년대 북한은 이 길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었고 그 기회도 소련에서 나왔다. 그러나 지도부 야권 실패로 북한은 이 기회를 이용하지 못했다.
그리고 앞으로 북한이 1인체제에서 벗어날 기회가 다시 생긴다면 그 기회는 러시아나 다른 구소련의 공화국이었던 나라에서 나오지 않을 것이다. 중국에서 나올지 내부에서 나올지 알 수 없다. 미래는 알 수 없지만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북한 주민 그리고 변화를 원하는 북한 엘리트 일부다. 1950년대 개혁가들이 일으키지 못했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사람들은 그들뿐이다.
목차
목차
제1부 잊혀진 에피소드
제1장 붉은 군대와 김일성 대위
제2장 동아시아 역사를 바꾼 일주일
제3장 북한을 다스렸던 소련 장성들
제4장 사료에 비친 33세 김일성
제5장 소련이 만들어준 북한의 국가 상징물
제6장 소련군의 복제품, 북한군
제7장 북한군 최고사령부의 눈에 비친 6·25전쟁의 초기 국면들
제8장 1954~1955년의 북한 기근
제9장 8월 종파사건
제10장 김일성은 어떻게 소련 통제에서 벗어났나
제11장 스탈린의 소련과 김일성의 북한을 비교한다면
제12장 중소분쟁과 북한의 외교전략
제13장 북한의 역사 왜곡과 소련의 반응
제14장 북한 선전지 ≪카레야≫가 소련에서 인기 있던 이유
제15장 1991년 소련 해체와 북한
제2부 잊혀진 인물
제1장 북한 지도자 등극에 실패한 후보들
제2장 '제88여단파'
제3장 '김일성 대위의 전우' 유성철
제4장 미하일 강
제5장 인노켄티 김
제6장 여성 모략가 박정애
제7장 북한의 모리아티, 문일
제8장 장학봉과 그의 잊혀진 회고록
제9장 북한 보위성의 아버지, 방학세
제10장 당 부위원장 허가이와 6·25전쟁 종료 직전 의문의 사망
제11장 부상 강상호가 기억하는 내무성의 내막, 그리고 그의 기적적인 귀국
제12장 남일
제13장 '소련파의 김일성' 박창옥
제14장 리상조, 수령과 싸운 대사
제15장 양심적인 간부 박의완
제1장 붉은 군대와 김일성 대위
제2장 동아시아 역사를 바꾼 일주일
제3장 북한을 다스렸던 소련 장성들
제4장 사료에 비친 33세 김일성
제5장 소련이 만들어준 북한의 국가 상징물
제6장 소련군의 복제품, 북한군
제7장 북한군 최고사령부의 눈에 비친 6·25전쟁의 초기 국면들
제8장 1954~1955년의 북한 기근
제9장 8월 종파사건
제10장 김일성은 어떻게 소련 통제에서 벗어났나
제11장 스탈린의 소련과 김일성의 북한을 비교한다면
제12장 중소분쟁과 북한의 외교전략
제13장 북한의 역사 왜곡과 소련의 반응
제14장 북한 선전지 ≪카레야≫가 소련에서 인기 있던 이유
제15장 1991년 소련 해체와 북한
제2부 잊혀진 인물
제1장 북한 지도자 등극에 실패한 후보들
제2장 '제88여단파'
제3장 '김일성 대위의 전우' 유성철
제4장 미하일 강
제5장 인노켄티 김
제6장 여성 모략가 박정애
제7장 북한의 모리아티, 문일
제8장 장학봉과 그의 잊혀진 회고록
제9장 북한 보위성의 아버지, 방학세
제10장 당 부위원장 허가이와 6·25전쟁 종료 직전 의문의 사망
제11장 부상 강상호가 기억하는 내무성의 내막, 그리고 그의 기적적인 귀국
제12장 남일
제13장 '소련파의 김일성' 박창옥
제14장 리상조, 수령과 싸운 대사
제15장 양심적인 간부 박의완
저자
저자
표도르 째르치즈스키(이휘성)
페레스트로이카 시대의 모스크바에서 1988년에 출생했다. 중국 역사학자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렸을 때부터 역사, 특히 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중학생 시절 북한에 관한 책을 읽고, 한 민족이지만 너무나 다른 길로 간 남북한, 특히 김일성이라는 인물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결국 고등학생 때 앞으로 북한 연구자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대학교에서는 한국학을 전공했고, 2011년에 서울시로 이주했다.
석사과정은 서울 삼청동에 있는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은 서울대학교에서 마쳤다. 『김일성 이전의 북한』(한울아카데미, 2018), 『김일성 전기』(한울아카데미, 2022), The North Korean Army: History, Structure, Daily Life (Routledge, 2022) 등 도서를 출판했다. 현재는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앞으로도 한국과 북한 주민의 더 좋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
석사과정은 서울 삼청동에 있는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은 서울대학교에서 마쳤다. 『김일성 이전의 북한』(한울아카데미, 2018), 『김일성 전기』(한울아카데미, 2022), The North Korean Army: History, Structure, Daily Life (Routledge, 2022) 등 도서를 출판했다. 현재는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앞으로도 한국과 북한 주민의 더 좋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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