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경
손정미 역사소설 | 우리는 통일을 이룬 적이 있었다
손정미 역사소설『왕경』. 신라의 진골이자 화랑인 김유, 고구려 귀족에서 노비로 전락한 진수, 백제에서 온 비밀스러운 소녀 정. 세 사람은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채 신라의 수도 왕경(경주)에서 운명처럼 얽힌다. 그들은 거병을 앞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제 나라의 명운 앞에 번뇌하고, 문득 찾아온 낯선 감정 앞에 망설인다.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분명히 있을 것 같은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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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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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나
삼국 중 가장 약소국이던 신라가 대통일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치와 음탕함이 넘쳐나는 왕경(경주)이었지만
고구려나 백제가 가지지 못한 무엇이 분명 있었다.
'네가 부모를 택해 태어날 수 없듯이, 계림에 태어난 것도 네 선택은 아니었다.
왕경의 진골로 태어난 것, 화랑이 됐다는 것이 기쁨인 줄 아느냐?
천만에 슬픔이다.
네 몸과 혼은 네 것이 아니라 계림을 위해, 이 위대한 신국(神國)을 위해
바쳐야 하기 때문이야.'
***
신라의 진골이자 화랑인 김유, 고구려 귀족에서 노비로 전락한 진수, 백제에서 온 비밀스러운 소녀 정. 세 사람은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채 신라의 수도 왕경(경주)에서 운명처럼 얽힌다. 그들은 거병을 앞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제 나라의 명운 앞에 번뇌하고, 문득 찾아온 낯선 감정 앞에 망설인다.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분명히 있을 것 같은 행복…
"살고 싶고 사랑하고 싶다."
2014년을 살고 있는 우리의 정체성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나
왕경 이야기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정체성은 언제부터 시작됐는가를 더듬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작가는 삼국 통일이 우리에게 중요한 기점이 됐다는 점을 주목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그렇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통일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작가는 삼국 중 가장 소국이었던 신라가 어떻게 중국과 겨뤘던 고구려나 백제를 이기고 통일을 이뤄낼 수 있었는지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보고자 했다. 그 결과 공동체의 목표, 공동선(共同善)을 위해 구성원들이 각자의 이기심을 누르고 공동체의 목표와 조화를 이루었다는 것이 작가가 찾은 답이었다.
더불어 우리가 뿌리로 생각하는 단군 조선이란 무엇이며, 신라 화랑의 영적 무사적 힘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이 소설은 그려내고 있다.
한민족의 대사건, 삼 국 통 일
그 한가운데 아름답고 아픈 청춘이 있었다
삼국 통일 직전 왕경(王京-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의 옛말)에서 삼국의 젊은이 세 사람이 운명처럼 만난다. 계림(신라)의 화랑인 김유와 신분을 숨긴 채 왕경의 동시(東市)에서 장사를 하는 백제 소녀 정, 고구려 귀족 출신이었지만 전장에서 포로로 잡히는 바람에 왕경으로 끌려와 김유의 노비가 된 진수.
김유는 계림의 왕인 김춘추의 총애를 받는 영명부인의 아들로, 어머니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당나라 황제를 호위하는 숙위로 뽑혀 견당사로 떠난다. 김유와 함께 정과 진수도 당 제국의 수도였던 장안으로 함께 떠나게 된다. 어려서 글을 깨쳐 경서에 능한 정은 장안을 넘어 사주지로(실크로드)를 넘나드는 대상(大商)이 되는 포부와 자유를 희구해왔다. 정은 숙부로부터 김유를 없애라는 지시를 받는다. 백제로서는 계림과 당의 연합전선이 임박하면서 절체절명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김유가 포함된 계림 견당사의 활약에 힘입어 계림은 당과 동맹을 맺고 백제를 향해 군사를 일으킨다. 당과 계림의 연합군에 의해 백제 사비성이 함락당하고 사주지로로 떠났던 정은 돌아와 지옥으로 변한 사비성을 목격한다. 진수는 자신에게 등을 돌리고 연개소문 아들들의 내분으로 어지러워진 고구려 평양성이 아닌 아리티(하얼빈)로 가 천부경을 내주었던 연인, 정을 기다리고자 한다.
2년간의 취재 … 실크로드의 종착지는 왕경
작가는 2012년 봄부터 2년간 삼국 관련 자료는 물론, 삼국 통일과 깊은 관계였던 당 태종(이세민)에 대한 자료 등 중국 자료를 찾고 취재했다. 통일 직전 당시 상황을 중국과 고구려가 북방 초원 민족들인 유목민 집단과 맺은 관계, 실크로드라는 세계적인 상업-문화-종교 루트와 연동해 들여다보았다.
또한 당시 상황을 입체적으로 보기 위해 경주를 포함해 고구려 영토였던 중국 집안과 백두산, 당 제국의 코스모폴리탄이었던 장안(지금의 서안)과 실크로드의 중요 거점이던 가욕관(실크로드로 나가는 관문)을 비롯해 우루무치, 이란(페르시아) 등을 답사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작가는 실크로드는 중국의 장안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왕경(경주)까지 이어졌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전쟁의 불길도 막을 수 없었던 책벌레들의 서 책 욕 망
이 소설에는 삼국 통일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그 배경을 이야기를 통해 따라가는 재미, 청춘남녀의 로맨스를 쫓아가는 아슬아슬함과 더불어 또 하나의 숨겨진 재미가 있다. 바로 책벌레인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 동양의 진귀한 서책들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화랑인 김유는 왕경에서도 서책을 가장 많이 사 모으기로 유명하고, 백제 소녀 정은 여자가 책을 읽는 것을 금기시했던 당시 상황 속에서 몰래 글을 배우고 책을 탐독했으며, 심지어 책을 훔쳐서 보는 일도 서슴지 않아 주변의 걱정을 들을 만큼 책 욕심이 대단하다. 그러한 정에게 몰래 글을 가르쳐준 숙부 역시 "역사가 없는 나라와 백성은 아무것도 아니다. 적군에게 짓밟히고 약탈당해도 역사가 남으면 영원히 살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며 사책에 목숨을 건다.
천부경(天符經), 역경(易經), 시경(詩經), 논어(論語), 서기(書記), 김해병서(金海兵書), 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 등 등장인물들의 서책에 관한 지식 대결이 숨은 재미를 준다.
책속으로 추가
"이 서책들은 다 뭐야? 누가 읽지?"
"심심할 때 보는 거야. 道雖不在書策 而學道者必始於書策(도수부재서책 이학도자필시어서책-도는 서책에 있지 않으나 도를 배우는 것은 반드시 서책에서 시작된다)이라잖아."
정은 시경을 들추며 혼잣말처럼 뇌까렸다. 경을 하나씩 읽어갈 때 느꼈던 희열이 떠올라 미소 지었다. 읽고 싶은 서책을 손에 넣으면 하늘을 날 것같이 흥분됐다. 책장을 열고 읽기 시작하면 걷기를 배우는 아이처럼 보석을 손에 쥔 여인처럼 신 나고 신기했다.
'여름이 시작됐으니 시(詩)와 서(書)를 배워볼까?'
'왜 봄, 가을에는 예악을 배우고 여름과 겨울에는 시(詩), 서(書)를 배워야 한다고 하세요?'
'봄과 가을은 음양이 중간일 때 아니냐. 예와 악은 모두 중(中)을 지향하므로 음양이 중간인 계절에 배우는 것이 좋은 거야. 여름과 겨울은 음양이 극에 이르는 때이니 지극함을 지향하는 시와 서는 여름과 겨울에 배우는 게 적당하지.'
'전 계절에 관계없이 배우고 싶을 때 배우고 싶어요.'
-p.187, 2부 '어둠 속의 그림자'
역경(易經-주역)에서도 어려움이 극에 달하면 밝은 날이 온다고 했는데 어찌 내게는 어려움만 닥치는가.
아버지에게 자신의 이름이 왜 정(井)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우물 정(井) 아니냐. 끝없이 샘솟는 물이다. 생명의 근원이지. 살고 있는 마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지만 마을의 우물은 옮길 수가 없다고 했다. 우물 속 물은 길어도 길어도 다 없어지지 않지? 우물은 물을 길어내지 않아도 넘치지 않는다. 우물은 잃는 것도 얻는 것도 없다는 말이란다. 그 덕(德)이 항상하다는 것이지.
마을 사람뿐 아니라 오고가는 사람 모두 우물을 마시고 사용한단다. 이 말 역시 두루 쓰임을 덕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너도 항상함(常)과 두루함(周)를 평생 가슴에 새기라고 지었다.'
정은 왕경에도 왕이 태어난 나정이 있다는 걸 알고 신기했다. 박혁거세가 태어난 곳이었다.
정은 후에 역경을 배우면서 자신의 이름이 정괘(井卦)에 있음을 알고 여섯 효(爻-주역의 괘를 이루는 여섯 가지 획)의 뜻을 들춰보았다. 초 효(첫 번째 효)와 두 번째 효의 뜻은 도와주는 이가 없다는 말이어서 기분이 몹시 상했다. 아버지는 예쁜 이름을 놔두고 이런 이름을 지었을까 속상했다.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게 나의 운명일까.
-p.204, 3부 '낯선 손님'
호병(胡餠)을 구워내고 만두를 쪄내는 식당들은 음식 냄새와 매캐한 연기가 뒤엉켰다. 한쪽에선 양머리를 삶아낸 국을 팔고 다른 쪽에선 과자를 구워 배고픈 여행객을 부르고 있었다.
진기한 구경에 넋을 잃은 진수는 방울소리가 아니었다면 낙타 밑에깔릴 뻔했다. 낙타를 타고 있던 호인은 칠 듯이 막대기를 휘두르며 욕지거리를 해댔다.
다리가 부어 제대로 걷지 못하던 정은 장안에 왔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장안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었다.
"장안이야!"
정은 저도 모르게 진수의 팔을 흔들며 외쳤다.
장안으로 들어서자 직선으로 시원하게 뻗은 대가(大街)가 눈앞에 펼쳐졌다. 주작문가(朱雀門街)는 폭이 100보에 이르는 대로였다. 길옆에 줄지어 심어놓은 홰나무가 뻑뻑해진 눈을 시원하게 식혀주었다.
-p.231~232, 4부 '장안(長安)'
'이거 네가 찾던 거지?'
진수는 달빛을 받아 눈부신 정의 몸을 보며 자그마한 옥(玉)을 쥐여 주었다. 정은 옥을 쥐더니 위에 새겨진 글을 발견했다.'뭐야?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이거 혹시.'
'네가 그렇게 보고 싶어서 난리쳤던 천부경(天符經)이다.'
정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
옥에 새겨진 천부경이었다.
정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옥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천부경을 들여다보며 외우고자 했다.
'가져.'
천부경을 새긴 옥은 자신을 아리티(하얼빈)에 데려갔던 중리소형이 쥐여 줬던 것이었다. 중리소형은 낮지만 날카로운 음색으로 분명하게 말했다.
'진수 넌 다시 아리티에 올 거야. 이건 아주 귀한 천부경을 새긴 옥이다. 가지고 있으면 다시 아리티에 돌아올 거야. 네 목숨만큼 귀히 간직하도록 하거라.'
진수는 중리소형이 주문이라도 걸었는지 이후 아리티를 잊지 못했다. 아니 갈수록 아리티에 대한 생각은 강렬한 그리움으로 변했다.
진수는 천부경이 새겨진 옥을 정에게 쥐여 주면서 함께 아리티로 가자고 하고 싶었다. 그때 왜 그 말을 하지 못했을까. 가슴이 불에 덴 것처럼 쓰라렸다.
천부경을 주었으니 언젠가 아리티로 올 거야. 그곳에서 널 기다리마.
-p.310~311, 4부 '약탈'
목차
목차
2부_ 사절유택(四節遊宅) / 백제 장군의 딸 / 여제(女帝) 선덕대왕 / 암살자 / 어둠 속의 그림자
3부_ 낯선 손님 / 백제의 공격
4부_ 장안(長安) / 서시(西市) / 유학생 / 사랑을 부르는 요초(瑤草) / 말갈소년 / 임무완수 / 사향을 바르고 / 불타는 사비성 / 낙타 위에서 / 약탈
작가의 말 / 신라 왕경도 / 6~7세기 삼국 주요 연표 / 참고 사진
저자
저자
대학시절부터 소설 집필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문학 담당 기자 시절 고(故) 박경리 선생으로부터 소설을 써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2012년 소설을 쓰기 위해 조선일보를 그만두고, 삼국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 ≪왕경(王京)≫을 집필했다. ≪왕경(王京)≫을 쓰기 위해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를 비롯해 고구려 영토였던 백두산과 중국의 집안 등을 다녀왔다. 이어 소설의 배경인 6~7세기 당나라 수도였던 장안(현재 시안)과 실크로드의 요충지였던 우루무치, 이란을 직접 답사했다. 현재 월간 샘터 편집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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