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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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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 본래의 도깨비를 되찾다
도깨비에 대한 옛날이야기는 무수히 많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도깨비이야기를 듣거나 읽으면서 자랐다. 지금도 수많은 도깨비 동화책이 돌아다닌다. 그러나 ‘도깨비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이 책은 그러한 물음에 답을 해줄 수 있는 내용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저자 조자용은 도깨비기와를 품에 안은 지 40여년 만에 이 책을 썼다. 그만큼 오랫동안 자료를 모으고 연구하며 시간이 걸려서 완성된 책이다.
고대 동양의 도깨비는 잡귀를 물리치는 벽사신으로 출발했고 중국?한국?일본에 두루 통용되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그 모습이 나타났고 삼국시대에는 지붕 위의 도깨비기와로 퍼지기 시작했으며 특히 백제에서는 도깨비 전신상 벽돌로 그 도상이 나타났다고 밝힌다. 통일신라시대에 꽃피운 도깨비문화는 기와뿐 아니라 석탑, 문고리 등에 다양하게 활용되었으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까지 면면히 이어졌다고 한다. 그 벽사의 도깨비얼굴은 사찰의 사천왕 배꼽장식이나 수미단, 민간의 장승, 상여의 용수판에 영향을 미쳤다. 한 마디로 말해 우리의 도깨비는 잡귀를 물리치는 ‘왕(王) 도깨비’고 복을 가져다주는 ‘복 도깨비’다.
그러한 주장들을 중국 한나라의 화상석 탁본부터 시작해 고구려 고분벽화, 신라의 도깨비기와, 장승, 용수판, 일본의 오니나 민간자료 등 200여 개가 넘는 사진자료를 친절하게 보여주며 체계 있게 밝힌다. 도깨비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성인용 도서가 없었는데 이 책은 그러한 갈증을 풀어줄 수 있는 대중교양서로서 제 몫을 다할 것으로 기대된다.
도깨비에 대한 옛날이야기는 무수히 많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도깨비이야기를 듣거나 읽으면서 자랐다. 지금도 수많은 도깨비 동화책이 돌아다닌다. 그러나 ‘도깨비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이 책은 그러한 물음에 답을 해줄 수 있는 내용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저자 조자용은 도깨비기와를 품에 안은 지 40여년 만에 이 책을 썼다. 그만큼 오랫동안 자료를 모으고 연구하며 시간이 걸려서 완성된 책이다.
고대 동양의 도깨비는 잡귀를 물리치는 벽사신으로 출발했고 중국?한국?일본에 두루 통용되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그 모습이 나타났고 삼국시대에는 지붕 위의 도깨비기와로 퍼지기 시작했으며 특히 백제에서는 도깨비 전신상 벽돌로 그 도상이 나타났다고 밝힌다. 통일신라시대에 꽃피운 도깨비문화는 기와뿐 아니라 석탑, 문고리 등에 다양하게 활용되었으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까지 면면히 이어졌다고 한다. 그 벽사의 도깨비얼굴은 사찰의 사천왕 배꼽장식이나 수미단, 민간의 장승, 상여의 용수판에 영향을 미쳤다. 한 마디로 말해 우리의 도깨비는 잡귀를 물리치는 ‘왕(王) 도깨비’고 복을 가져다주는 ‘복 도깨비’다.
그러한 주장들을 중국 한나라의 화상석 탁본부터 시작해 고구려 고분벽화, 신라의 도깨비기와, 장승, 용수판, 일본의 오니나 민간자료 등 200여 개가 넘는 사진자료를 친절하게 보여주며 체계 있게 밝힌다. 도깨비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성인용 도서가 없었는데 이 책은 그러한 갈증을 풀어줄 수 있는 대중교양서로서 제 몫을 다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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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우리의 옛날 이야기 중에 가장 많은 소재가 도깨비와 호랑이일 것이다. 지금도 동화책에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바로 도깨비와 호랑이 이야기이다. 그만큼 오랫동안 우리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또 우리 전통문화의 상징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문양을 꼽으라면 그것은 무엇일까? 단연코 도깨비문양이다. 그럼 도깨비의 실체는 무엇인가? 언제 어떻게 만들어져서 어떻게 흘러내려 갔는가? 이러한 물음에 이 책은 그 답을 내놓는다.
고대사회에서는 자연계의 현상에 신적인 힘을 부여했다. 특히 농경사회가 정착되면서 농사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비?바람?구름?번개를 관장하는 신을 창조하였고 우사(雨師), 풍백(風伯), 운사(雲師), 뇌공(雷公)이라고 불렀다. 한웅이 하늘에서 태백산으로 내려올 때도 역시 풍백?우사?운사를 거느렸고 곡식?수명?질병?형벌?선악 등을 주관했다는 내용만 봐도 그렇다. 돈황의 벽화에도 뇌공과 풍신의 그림이 있으니 동양의 고대에 등장한 이러한 신들은 후대에도 계속 그려졌다. 도깨비는 잡귀를 몰아내는 벽사신으로 등장하여 한나라 화상석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전국시대를 거쳐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도깨비는 다른 자연신과 같이 환상의 산물이다. 그래서 다양한 얼굴 모습으로 나타나고 계속 진화한다.
도깨비를 이야기하다 보면 도철이 등장하고 치우장수가 등장하고 백제의 연꽃 도깨비무늬 벽돌이 자연스레 등장한다. 도깨비얼굴을 놓고도 용의 얼굴, 도깨비얼굴, 사자얼굴이 서로 자기라고 다툰다. 어느 얼굴이 되었든 도깨비문양은 잡귀를 물리치는 신의 얼굴로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후대로 내려가면서 중국에서는 벽사신으로서의 역할이 약화되었고 일본에서는 요괴로 변질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말까지 그 전통을 이어 독자적인 문화로 확장시켜 나갔다. 삼국시대에는 도깨비기와로 만들어져 지붕에서 수호신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고 통일신라시대에는 우수한 도깨비기와들이 제작되어 한껏 장수다운 기상을 뽐내게 되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까지 이 전통은 이어졌지만 차츰 친근하고 익살스런 이미지도 첨가되었다. 수많은 도깨비이야기도 유행처럼 흘러 다니게 되었다. 한국의 도깨비는 장난을 좋아하고 수수팥떡도 좋아하고 씨름도 좋아하고 시기와 질투도 있고 가끔은 멍청해서 사람에게 속아 넘어가기도 한다. 돈을 빌려주면 매일 갚으러 오기도 하고 사람의 꾀에 속아 도깨비방망이를 건네주기도 한다. 그래도 일본이나 중국의 귀신과 달리 한국의 도깨비는 폭력적이지 않다. 인정이 있어 눈물을 흘릴 줄도 안다. 우리의 인생사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 까닭인지 도깨비의 표정도 무척 다양하다. 이마에 '왕(王)'자가 쓰여 진 위엄 있는 도깨비도 있고 실눈을 감은 채 기다란 혀로 콧물을 핥는 도깨비도 있다. 국화꽃 한 가지를 물고 흐뭇해하는 도깨비가 있는가 하면 눈물이 날 듯이 키득키득 웃고 있는 도깨비도 있다. 금강저를 문 도깨비도 있고 두 손을 살짝 내놓은 도깨비도 있다. 벽사용 도깨비가 지닌 얼굴 특징은 커다란 두 눈과, 주먹코, 함지같이 큰 입, 양쪽에 솟아난 벽사치 이빨인데 이 모습은 장승에도 나타나고 상여의 용수단에도 나타난다. 장수 같은 도깨비에 대한 믿음은 장수바위 신앙으로 확대되어 전국에 수많은 장수바위 기도처가 있고 아예 '장군암(將軍岩)'이라고 새겨 놓은 장수바위도 있다. 결국 도깨비는 잡귀를 물리치는 왕 도깨비며 복을 모아다 주는 복 도깨비다. 벽사신(?邪神)과 사복신(賜福神)을 겸하고 있는 우리의 도깨비, 그것이 바로 도깨비가 갖고 있는 우리 문화의 원형질이다.
저자는 어렸을 적부터 도깨비이야기에 매료되어 도깨비가 무엇인지 평생 의문을 품고 살았다. 종래는 신라의 도깨비기와 1,000점을 모았고 40여 년이 지나서야 이 책을 쓸 수 있었다. 이 책에는 도깨비의 연원을 밝히기 위해 200여 장의 컬러 도판이 들어가 있다. 한나라 화상석의 도깨비에서부터 조선조의 장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진을 함께 보여주며 도깨비문화가 어떻게 흘러내려 갔는지를 이해하기 쉽도록 구성했다.
고대사회에서는 자연계의 현상에 신적인 힘을 부여했다. 특히 농경사회가 정착되면서 농사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비?바람?구름?번개를 관장하는 신을 창조하였고 우사(雨師), 풍백(風伯), 운사(雲師), 뇌공(雷公)이라고 불렀다. 한웅이 하늘에서 태백산으로 내려올 때도 역시 풍백?우사?운사를 거느렸고 곡식?수명?질병?형벌?선악 등을 주관했다는 내용만 봐도 그렇다. 돈황의 벽화에도 뇌공과 풍신의 그림이 있으니 동양의 고대에 등장한 이러한 신들은 후대에도 계속 그려졌다. 도깨비는 잡귀를 몰아내는 벽사신으로 등장하여 한나라 화상석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전국시대를 거쳐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도깨비는 다른 자연신과 같이 환상의 산물이다. 그래서 다양한 얼굴 모습으로 나타나고 계속 진화한다.
도깨비를 이야기하다 보면 도철이 등장하고 치우장수가 등장하고 백제의 연꽃 도깨비무늬 벽돌이 자연스레 등장한다. 도깨비얼굴을 놓고도 용의 얼굴, 도깨비얼굴, 사자얼굴이 서로 자기라고 다툰다. 어느 얼굴이 되었든 도깨비문양은 잡귀를 물리치는 신의 얼굴로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후대로 내려가면서 중국에서는 벽사신으로서의 역할이 약화되었고 일본에서는 요괴로 변질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말까지 그 전통을 이어 독자적인 문화로 확장시켜 나갔다. 삼국시대에는 도깨비기와로 만들어져 지붕에서 수호신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고 통일신라시대에는 우수한 도깨비기와들이 제작되어 한껏 장수다운 기상을 뽐내게 되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까지 이 전통은 이어졌지만 차츰 친근하고 익살스런 이미지도 첨가되었다. 수많은 도깨비이야기도 유행처럼 흘러 다니게 되었다. 한국의 도깨비는 장난을 좋아하고 수수팥떡도 좋아하고 씨름도 좋아하고 시기와 질투도 있고 가끔은 멍청해서 사람에게 속아 넘어가기도 한다. 돈을 빌려주면 매일 갚으러 오기도 하고 사람의 꾀에 속아 도깨비방망이를 건네주기도 한다. 그래도 일본이나 중국의 귀신과 달리 한국의 도깨비는 폭력적이지 않다. 인정이 있어 눈물을 흘릴 줄도 안다. 우리의 인생사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 까닭인지 도깨비의 표정도 무척 다양하다. 이마에 '왕(王)'자가 쓰여 진 위엄 있는 도깨비도 있고 실눈을 감은 채 기다란 혀로 콧물을 핥는 도깨비도 있다. 국화꽃 한 가지를 물고 흐뭇해하는 도깨비가 있는가 하면 눈물이 날 듯이 키득키득 웃고 있는 도깨비도 있다. 금강저를 문 도깨비도 있고 두 손을 살짝 내놓은 도깨비도 있다. 벽사용 도깨비가 지닌 얼굴 특징은 커다란 두 눈과, 주먹코, 함지같이 큰 입, 양쪽에 솟아난 벽사치 이빨인데 이 모습은 장승에도 나타나고 상여의 용수단에도 나타난다. 장수 같은 도깨비에 대한 믿음은 장수바위 신앙으로 확대되어 전국에 수많은 장수바위 기도처가 있고 아예 '장군암(將軍岩)'이라고 새겨 놓은 장수바위도 있다. 결국 도깨비는 잡귀를 물리치는 왕 도깨비며 복을 모아다 주는 복 도깨비다. 벽사신(?邪神)과 사복신(賜福神)을 겸하고 있는 우리의 도깨비, 그것이 바로 도깨비가 갖고 있는 우리 문화의 원형질이다.
저자는 어렸을 적부터 도깨비이야기에 매료되어 도깨비가 무엇인지 평생 의문을 품고 살았다. 종래는 신라의 도깨비기와 1,000점을 모았고 40여 년이 지나서야 이 책을 쓸 수 있었다. 이 책에는 도깨비의 연원을 밝히기 위해 200여 장의 컬러 도판이 들어가 있다. 한나라 화상석의 도깨비에서부터 조선조의 장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진을 함께 보여주며 도깨비문화가 어떻게 흘러내려 갔는지를 이해하기 쉽도록 구성했다.
목차
목차
인사말
머리말
1.도깨비의 도상
2.도깨비의 관상
3.도깨비의 왕방울 눈
4.천지개벽의 도깨비
5.동방 최초의 벽사신
6.장수신앙과 장수바위
7.잡도깨비와 왕도깨비
8.한국의 귀신
9.불교 이후의 도깨비
10.귀두화의 장식11.귀면와의 비밀12.민족의 수호신-장승13.일본의 오니14.중국의 따귀15.세계속의 도깨비
부록
에필로그
머리말
1.도깨비의 도상
2.도깨비의 관상
3.도깨비의 왕방울 눈
4.천지개벽의 도깨비
5.동방 최초의 벽사신
6.장수신앙과 장수바위
7.잡도깨비와 왕도깨비
8.한국의 귀신
9.불교 이후의 도깨비
10.귀두화의 장식11.귀면와의 비밀12.민족의 수호신-장승13.일본의 오니14.중국의 따귀15.세계속의 도깨비
부록
에필로그
저자
저자
조자용
조자용(1926-2000)은 황해도 황주 출생으로 18세에 평양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잠시 근무하였다. 해방 후 월남하여 미군의 하우스보이를 거쳐 22세에 미국으로 유학, 벤더빌트 공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구조공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54년 귀국하여 건축사업을 진행하면서 도깨비기와와 민화를 본격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했다. 건축가로서 그는 대구 경북대 본관, 계명대 본관, 동산병원, 세종대학 박물관 등을 지었으며 마지막 작품이 서울 정동에 있는 미국대사관저 하비브하우스이다. 한옥양식으로 지은 이 건물은 전 세계에 나가있는 미국대사관저 중에서 주재국 양식으로 지은 유일한 건물이자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널리 알려졌다. 민화에 대하여 ?한국민화의 멋? ?한호의 예술? ?한일의 미술? ?李朝の民畵? 등 수많은 저서가 있으며 영어판, 일어판으로도 많은 저술을 남겼다.
속리산으로 낙향 후에는 에밀레박물관 옆에 삼진사수련장을 건설, 우리 문화를 직접적으로 먹고 자고 놀며 배우는 최초의 체험박물관을 열었다. 평생에 걸친 우리의 모태문화 연구의 결과물로 ?삼신민고?를 1995년에 출간하였으며 자서전으로 ?비나이다 비나이다?를 썼다. 1999년 ?도깨비문화?를 탈고하였으나 2010년 1월 전시기간 중에 급작스럽게 타계하였다.
조자용은 해방 후 제1세대 건축가로서도 큰 명성을 쌓았지만 민화를 수집?연구하여 많은 저술을 남겼고 끝없는 국내의 전시를 통하여 민화가 다시 우리 문화에 뿌리내리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사후에 조자용기념사업회가 결성되어 조자용을 기리는 〈대갈문화축제〉가 매년 벽두에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개최되고 있다.
1954년 귀국하여 건축사업을 진행하면서 도깨비기와와 민화를 본격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했다. 건축가로서 그는 대구 경북대 본관, 계명대 본관, 동산병원, 세종대학 박물관 등을 지었으며 마지막 작품이 서울 정동에 있는 미국대사관저 하비브하우스이다. 한옥양식으로 지은 이 건물은 전 세계에 나가있는 미국대사관저 중에서 주재국 양식으로 지은 유일한 건물이자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널리 알려졌다. 민화에 대하여 ?한국민화의 멋? ?한호의 예술? ?한일의 미술? ?李朝の民畵? 등 수많은 저서가 있으며 영어판, 일어판으로도 많은 저술을 남겼다.
속리산으로 낙향 후에는 에밀레박물관 옆에 삼진사수련장을 건설, 우리 문화를 직접적으로 먹고 자고 놀며 배우는 최초의 체험박물관을 열었다. 평생에 걸친 우리의 모태문화 연구의 결과물로 ?삼신민고?를 1995년에 출간하였으며 자서전으로 ?비나이다 비나이다?를 썼다. 1999년 ?도깨비문화?를 탈고하였으나 2010년 1월 전시기간 중에 급작스럽게 타계하였다.
조자용은 해방 후 제1세대 건축가로서도 큰 명성을 쌓았지만 민화를 수집?연구하여 많은 저술을 남겼고 끝없는 국내의 전시를 통하여 민화가 다시 우리 문화에 뿌리내리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사후에 조자용기념사업회가 결성되어 조자용을 기리는 〈대갈문화축제〉가 매년 벽두에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개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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