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혜전서 3
황육홍의 『복혜전서』는 청대의 다양한 관잠서 유형 가운데 특히 자신의 경험을 축약하여 담은 초급 지방관을 위한 실무지침서의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면서도 비교적 복합적인 형식과 내용을 갖춘 종합형 관잠서에 가까운 유형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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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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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관으로 부임하는 사람은 꼭 한 질을 갖추어 놓고 참고하는 지침서
청대 초기(17세기 후반)의 지방관 출신인 황육홍(黃六鴻)이 지은 이 책은 황제가 직접 임명하는 가장 하층의 지방행정 단위인 주(州)·현(縣)의 지방장관, 즉 지현(知縣)·지주(知州)라는 지방관을 독자로 삼고 있다. 유일하게 관원이 직접 일반 백성을 대면하면서 관리할 수 있는 단위인 주·현의 지방관은 이 때문에 목민관(牧民官)이나 부모관(父母官)으로 불린다. 『복혜전서』는 주로 새로 부임할 예정이거나 이제 막 부임한 이러한 초임 지방관들을 대상으로 쓴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다스리는 백성에게 행복과 은혜를 가져다주는 지침서로서 마련된 이 책은 '훌륭한 지방관이 되는 법'이라 할 수 있다. 사실상 중국판 『목민심서』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지방관의 주 임무인 세금 징수(전곡)와 소송 관리(형명)를 비롯하여 부임 때부터 시작하여 이임할 때까지의 모든 사항에 대해 아주 꼼꼼한 지침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의 중요한 특징이다. 지방관이 이임할 때 그가 떠나지 못하게 백성이 수레의 끌채에 매달리거나 바퀴 앞에 드러눕거나, 아니면 백성이 관리를 좀 더 머물게 해 달라고 길을 막고 황제에게 요청하는 일이 가능해지도록, 부모관으로서 지방관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서도 최선의 방향을 제시하는 점 역시 마찬가지다.
황육홍은 이러한 『복혜전서』라는 제목의 책을 지은 이유에 대해 지방관이 다스리는 주현이라는 지방사회에 행복[福]을 조성하고 백성에게 은혜[惠]를 베풀기 위한 종합적인 지침서라는 취지를 제시하고 있다. 단순하게 지방관으로의 경력을 잘 수행하기 위한 지침서라는 범위를 훨씬 뛰어넘어서, 지방관의 올바른 행정 업무가 곧 지역사회의 행복, 나아가서는 천하의 안정과 번영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적극적인 자세가 이 책의 기반이 되고 있다.
청말까지 이 책은 지방관으로 부임하는 사람은 꼭 한 질을 갖추어 놓고 참고할 정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효용성은 그 때문에 일찍부터 주목을 받았지만, 그 분량이 상당히 방대하였기 때문에, 표점본이 나오거나 이 책의 일부가 영어로 번역된 적은 있지만, 원문과 더불어 거의 완역한 것은 아마 세계에서 최초의 사례가 될 것이다.
한국에서는 보통 '목민서(牧民書)'로 부르지만 중국에서는 '관잠서(官箴書)'라고 부른다. '관잠(官箴)'에서 관(官)은 종정(從政), 즉 정치나 행정에 관여한다는 뜻이고, 잠(箴)은 경계나 권고라는 뜻을 가리킨다. 즉 관원(官員)에게 정치·행정의 사무를 맡을 때 주의하도록 권고·경계한다, 또는 관원에게 황제의 잘못을 지적하라고 권장한다는 뜻이다. 기존 연구에 의하면 관잠의 최초 용례는 아마도 『좌전』 양공(襄公) 4년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에는 관잠이 주로 신하의 군주에 대한 권고나 군신 관계에 중점을 두었지만 송대 이후에는 훌륭한 지방관이 되기 위한 실무지침서의 성격이 뚜렷해진다. 이것은 송대 이후 인구의 증가와 과거제의 정착에 따른 각급 중앙·지방 행정기구의 증가, 관(官. 관원)과 리(吏. 즉 서리)의 분리, 지방행정의 복잡화에 따른 자연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초임 지방관이 지방행정을 제대로 파악하고 장악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청대에는 세금 징수와 사법 처리 등의 직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경우 이에 대한 처벌은 대단히 엄격하였다. 초임 지방관이 그 때문에 신세를 망치는 일도 적지 않았다. 이를테면 황육홍이 근무하였던 산동성 담성현은 원래 빈곤한 지역이었던 데다가 대지진(大地震)이 발생한 여파 등 때문에 그의 전임자 네 명이 업무(아마도 赤字나 負債)의 인수인계를 거부당했기 때문에 다른 근무지로 이동하지 못한 채 현지에 대기상태로 남아 거의 거지와 같은 처참한 생활을 보내는 지경이었다. 따라서 처음 임명된 신임 지방관들은 이러한 괴리를 극복하기 위하여 고래(古來)로부터 정무 지침서를 반드시 참조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이것이 송대 이후 중국 관료제의 관잠서 편찬 문화를 형성하는 배경이 되었다. 이후 청대에 들어오며 관잠서에 관심이 더욱 높아지며 500여 종이 발간된다.
황육홍의 『복혜전서』는 청대의 다양한 관잠서 유형 가운데 특히 자신의 경험을 축약하여 담은 초급 지방관을 위한 실무지침서의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면서도 비교적 복합적인 형식과 내용을 갖춘 종합형 관잠서에 가까운 유형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복혜전서』는 강희 33(1694)년에 완성되었지만, 출간 판본은 지금까지 파악된 바에 의하면 초판본인 경서당장판(敬書堂藏版)과 그것을 기초로 한 두 번째의 판본이 종서당장판(種書堂藏版)인데 작자가 황육홍(黃六鴻) 수서(授書)'라고 표기되어 있다. 이 판본을 기초로 일본에서 19세기 전반기에 인기리에 발간되기도 하였다.
복혜전서 3의 주제는 전례(典禮), 교양(敎養)과 풍속(風俗), 재해구제(荒政), 그리고 역참(郵政) 및 기타 행정(庶務) 등에 관한 것으로 묶을 수 있다(제24-31권). 이 주제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그가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고 있는 제28·29권의 역참부(郵政部) 1·2 부분이다. 당시 그가 근무하였던 담성현이 남북의 교통 요지에 자리 잡고 있었던 데다가 그가 근무한 시기는 대만에 근거를 둔 정성공(鄭成功) 등 반청(反淸) 세력의 저항이나 남방의 삼번(三藩)의 난(亂) 등으로 군사정보 전달을 위한 역참의 이용이 특히 아주 빈번하였다는 실정을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 황육홍은 "주현을 다스리는 것은 마치 집주인이 집안을 다스리는 것과 같다고 말하고 있다. 마지막권인 32권 승천부(升遷部)는 후임자에게 인수인계를 하기 위한 준비와 관련 서류를 작성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목차
목차
일러두기
제24권 전례부(典禮部)
24-01. 총론(總論)
24-02. 조근과 대계(朝覲大計)
24-03. 매월 두 차례 문묘 행향(行香)
24-04. 봄과 가을의 제사(春秋祭祀)
24-05. 성황신 경배(敬禮城隍)
24-06. 맑은 날씨와 비를 청하는 기도(祈禱晴雨)
24-07. 일식과 월식 맞이하기(救護日月)
24-08. 배패(拜牌)와 접조(接詔)
24-09. 봄맞이(迎春)
24-10. 빈흥고시(賓興考試)
24-11. 향음주례(鄕飮酒禮)
24-12. 문묘 단장(修理文廟)
24-13. 명현 제사(崇祀名賢)
24-14. 열녀와 효자의 표창(旌表節孝)
제25권 교양부(敎養部) 1
25-01. 총론(總論)
25-02. 상유 강독(講讀上諭)
25-03. 향약 선발(擇鄕約)
25-04. 현성과 주변 향촌의 선강(城鄕分講)
25-05. 강독 의식(講讀儀)
25-06. 『선악부』 비치(置『善惡簿』)
25-07. 의학 설립(立義學)
25-08. 생원·동생 시험(生童課試)
25-09. 강학(講學)
제26권 교양부(敎養部) 2
26-01. 농사 권장(勸農功)
26-02. 수리 정비(修水利)
26-03. 황무지 개간(墾荒田)
26-04. 과수나무 심기(藝果木)
26-05. 뽕나무와 느릅나무 심기(植桑楡)
26-06. 절약에 힘쓰기(敦節儉)
26-07. 음사 금지(禁淫祀)
26-08. 사교 엄단(嚴邪敎)
26-09. 덕망 높은 노인 예우(禮耆德)
26-10. 고아와 빈민 구휼(孤貧)
26-11. 의총 건립(立義塚)
제27권 황정부(荒政部)
27-01. 총론(總論)
27-02. 곡식 저장(積貯)
27-03. 진제(賑濟)
27-04. 도적 제거(除盜)
제28권 역참부(郵政部) 1
28-01. 총론(總論)
28-02. 역참 건물 세우기(立局)
28-03. 역무 총리 선발(總理)
28-04. 「감합」과 「화패」 옮겨 쓰기(抄牌)
28-05. 말 골라뽑기(撥馬)
28-06. 차사 환송(送差)
28-07. 역참 경비의 지출(糧)
28-08. 대차 접대(應付大差)
28-09. 역마 구매(買馬)
제29권 역참부(郵政部) 2
29-01. 중간 역참(腰站)
29-02. 말의 사육(養)
29-03. 수의사 고르기(選獸醫)
29-04. 쓰러져 죽은 말에 대한 조사(査倒斃)
29-05. 창기 쫓아버리기(逐娼妓)
29-06. 부지런한 직접 시찰(勤親察)
29-07. 선부와 수레·나귀(船夫車驢)
29-08. 노역형 죄수의 통제(稽査徒犯)
제30권 서정부(庶政部) 1
30-01. 총론(總論)
30-02. 개선 사항 보고(條陳興革)
30-03. 아두(衙)?地棍)의 지명체포(訪拿棍)
30-04. 소역참의 정돈(申飭遞)
30-05. 소금밀매 단속(嚴緝私販)
30-06. 중대안건의 처리(承審欽件)
30-07. 규정 외의 잡세(額外雜辦)
30-08. 재해 피해의 보고(申報災傷)
제31권 서정부(庶政部) 2
31-01. 조운선 운행 협조와 독촉(漕船催)
31-02. 제방의 연례 보수(河歲修)
31-03. 도로 정비(平治道塗)
31-04. 패방과 소역참 건립(建立坊)
31-05. 관청 건물 보수(修葺館署)
31-06. 방문자 보고(城門報單)
31-07. 좌이관의 남형(佐貳濫刑)
31-08. 관문과 나루터의 엄격한 단속(嚴飭關津)
31-09. 부녀자의 분향 금지(禁婦女燒香)
31-10. 노비 학대 금지(禁凌錮僕婢)
31-11. 가짜 은 제조 금지(禁造假銀)
31-12. 경작용 소 도살 금지(禁宰耕牛)
31-13. 버려진 영아 키우기(育養兒)
31-14. 어린 아기 익사시키기 금지(禁溺子女)
31-15. 구조선 설치(建救生船)
31-16. 메뚜기 유충 박멸(捕滅蝗)
제32권 승천부(升遷部)
32-01. 총론(總論)
32-02. 전량의 청산(淸錢糧)
32-03. 인수인계 문서 작성(造交盤)
32-04. 창곡 검사(査倉穀)
32-05. 당고 검사(査庫貯)
32-06. 잡세 검사(査稅契)
32-07. 중대 안건 종결(結欽憲件)
32-08. 감창 정리(淸監倉)
32-09. 소송 마무리(簡詞訟)
32-10. 서리 지현 요청(請署篆)
32-11. 신임관 응접(接新官)
32-12. 가족 보내기(發家眷)
32-13. 등록 안건 말소(銷號件)
32-14. 문건 회수(弔案卷)
32-15. 형구 파기(毁刑具)
32-16. 문서양식 준비(備文冊)
32-17. 역참의 말 보충 구입(買補驛馬)
32-18. 포행·아행 포고(論行)
32-19. 빌린 물품 반납(還借辦)
32-20. 이역 포상(賞吏役)
32-21. 신사와의 작별 인사(辭鄕紳)
32-22. 문묘·사당 참배(辭文廟常祀)
32-23. 아문 나서기(出衙)
32-24. 인수인계(交代)
32-25. 상사에게 인사하고 새 부임지로 가기(辭上司赴新任)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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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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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성(江西省)의 신창현 천덕향(天德鄕) 출신으로 장인과 부친이 진사 출신이었던 명문가의 후손으로 그 역시 아주 젊은 나이에 거인이 되었으나 그다음 학위인 진사 학위를 얻는 데는 실패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는 거의 20년 가까이 지난 다음에야 산동성 담성현의 지현으로 부임할 수 있었다. 지방관으로서 "그 정치는 관대하고 공평함을 숭상하고, 묵은 세금 체납을 정리하고 역참을 정돈하였으며, 도적을 미리 막고 못된 무리를 적발하여 감옥이 텅 비고 소송이 멈춰지게 하였다"는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덕분에 보기 드물게 경관(京官)으로 발탁되기도 하였다. 1693년 그는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 『복혜전서』를 완성하는 데 진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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