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명학연론(정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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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양명학파인 석학 정인보의 양명학 입문서를 교주본을 만들고 그 교주본을 바탕으로 우리말 문장을 사용, 번역한 현대의 고전서
『양명학연론』은 주자학의 위세에 눌려 조선 후기 가느다랗게 명맥을 이어온 조선 양명학파의 마지막 거장인 위당 정인보가 지은 양명학 입문서이다. 주자학에 맞서 그 대안으로 일어난 양명학을 간략하게 소개한 것이기도 하지만 ‘전통 시대에 학문과 인생의 관계를 어떻게 보았는가’ 하는 문제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책이다. 그러나 어려운 한자말이 수두룩하고 여러 가지 사정으로 텍스트가 엉망이어서 읽기가 어렵다. 특히 후자의 문제는 출판조차 꺼리게 만들어 『양명학연론』은 ‘잊힌 고전’이 됐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관련 자료를 섭렵해 그 텍스트를 복원하고 비판과 주석을 붙인 ‘교주본(校注本)’과 이를 21세기 한국어로 쉽게 푼 ‘현대어본’을 합친 것이다. 『양명학연론』이 처음 발표된 지 거의 한 세기 만에 나온 ‘정본(定本)’이다.
『양명학연론』은 주자학의 위세에 눌려 조선 후기 가느다랗게 명맥을 이어온 조선 양명학파의 마지막 거장인 위당 정인보가 지은 양명학 입문서이다. 주자학에 맞서 그 대안으로 일어난 양명학을 간략하게 소개한 것이기도 하지만 ‘전통 시대에 학문과 인생의 관계를 어떻게 보았는가’ 하는 문제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책이다. 그러나 어려운 한자말이 수두룩하고 여러 가지 사정으로 텍스트가 엉망이어서 읽기가 어렵다. 특히 후자의 문제는 출판조차 꺼리게 만들어 『양명학연론』은 ‘잊힌 고전’이 됐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관련 자료를 섭렵해 그 텍스트를 복원하고 비판과 주석을 붙인 ‘교주본(校注本)’과 이를 21세기 한국어로 쉽게 푼 ‘현대어본’을 합친 것이다. 『양명학연론』이 처음 발표된 지 거의 한 세기 만에 나온 ‘정본(定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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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국난 극복을 위한 정인보의 외침
정인보가 겨냥했던 이 책의 1차적인 대상은 일반 대중이다. 그가 일제 치하인 1930년대에 이 글을 『동아일보』에 연재한 이유다. 그는 엉망이 되어 버린 사회가 올바른 길을 찾기 위한 지침으로 양명학의 창시자인 왕수인(호 : 양명)의 가르침을 식민 치하 조선 민중들에게 전하고자 했다. 왕수인이 제시한 양명학의 핵심은 주자학처럼 고도로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양심에 따라 살라는 외침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주자학에 맞선 '학문'이긴 했지만 복잡한 이론 탐구가 필요 없는 간단명료한 실천 지침이었다. 양명학에서 제시하는 간단한 원리를 가지고 살아간다면 더 나은 사회를 기약할 수 있다는, 식민 치하 지식인 나름의 처방이었다.
지행합일, 아는 것은 느끼고 통하는 것
왕수인과 그의 생각을 이어받은 정인보가 주자학을 비판하는 가장 중요한 지점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주자학의 핵심적 방법론인 '즉물궁리(卽物窮理)'(모든 사물에 나아가 이치를 탐구한다)가 현실의 삶과 동떨어진 사변적 작업에 불과하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렇게 얻은 지식이 실천과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양명학에서는 첫 번째 문제를 복잡한 탐구가 아니라 '양지(良知)', 즉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대안을 제시했고, 두 번째 문제는 '지행합일(知行合一)', 즉 지식과 실천이 별개가 아니라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학문'에 대한 이런 양명학의 관점은 이 책이 현대를 살아가는 대중들에게도 여전히 의미가 있음을 보여준다.
정인보가 글을 연재하던 시점에서 점점 멀어지면서 『양명학연론』은 또 하나의 의미를 키워갔다. 연구자들을 위한 양명학 연구 자료로서의 의미이다. 양명학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것이기 때문에 양명학 입문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 양명학의 기본 개념, 창시자 왕수인과 그 후계자들에 대한 소개, 그가 양명학의 핵심 논문으로 본 두 논문의 번역 및 해설, 여기에 한국(조선)의 양명학사까지 망라해서 길지 않은 글 속에 양명학의 기본 내용들을 짜임새 있게 소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양명학연론』은 간행본들이 절판된 뒤에도 '제본복사'를 통해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읽혔다. 특히 한국 양명학사 부분은 정인보가 인용한 조선 양명학자의 글들을 연구자들이 자주 인용할 정도로 중요한 지침서 역할을 했다.
현대어본으로 다시 탄생한 양명학연론
그러나 책의 가치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잊힌 고전'이 되어 갔다. 출판이 지속되어야 그 명성을 유지할 수 있는데, 이것을 어렵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들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당대 일급 한학자 정인보가 어려운 한자어를 한껏 구사해 쓴 글이어서 시대가 흘러 한자가 낯선 세대로 내려갈수록 점점 더 난해한 글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문제는 신문 연재 이후 저자의 교정에 의한 재출간이 이루어지지 않아 텍스트가 엉망인 채 방치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심각한 것은 두 번째 문제였다. 옛날 신문에서 오탈자가 많은 것은 당연했고, 당시에도 글이 어려웠으니 더욱 엉망이었다. 심지어 정인보의 서술과 왕수인의 글 인용 구분이 명확치 않아, 후대의 재출간본에서 필자를 뒤바꾼 부분도 수두룩했다. 그것을 바로잡아 재출간하기 전 6·25전쟁이 발발했고, 정인보는 납북되어 사망했다. 잡지 『사상계』에 다시 수록하고, 다른 글들과 묶어 단행본으로 펴내는 등 몇 차례 재출간됐으나, 엉망인 텍스트의 상태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일부 명백한 오류를 바로잡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옛날 어투가 점점 낯설어져 새로운 오류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 책은 『양명학연론』의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시도다. 이 책은 석학이자 우리나라에 희귀한 양명학자 계보의 끝자락을 지켰던 위당 정인보가 남긴 명저를 인멸 위기에서 건져내, 묵은 때를 말끔하게 벗겨내고 다시 대중 앞에 내놓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정인보가 겨냥했던 이 책의 1차적인 대상은 일반 대중이다. 그가 일제 치하인 1930년대에 이 글을 『동아일보』에 연재한 이유다. 그는 엉망이 되어 버린 사회가 올바른 길을 찾기 위한 지침으로 양명학의 창시자인 왕수인(호 : 양명)의 가르침을 식민 치하 조선 민중들에게 전하고자 했다. 왕수인이 제시한 양명학의 핵심은 주자학처럼 고도로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양심에 따라 살라는 외침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주자학에 맞선 '학문'이긴 했지만 복잡한 이론 탐구가 필요 없는 간단명료한 실천 지침이었다. 양명학에서 제시하는 간단한 원리를 가지고 살아간다면 더 나은 사회를 기약할 수 있다는, 식민 치하 지식인 나름의 처방이었다.
지행합일, 아는 것은 느끼고 통하는 것
왕수인과 그의 생각을 이어받은 정인보가 주자학을 비판하는 가장 중요한 지점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주자학의 핵심적 방법론인 '즉물궁리(卽物窮理)'(모든 사물에 나아가 이치를 탐구한다)가 현실의 삶과 동떨어진 사변적 작업에 불과하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렇게 얻은 지식이 실천과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양명학에서는 첫 번째 문제를 복잡한 탐구가 아니라 '양지(良知)', 즉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대안을 제시했고, 두 번째 문제는 '지행합일(知行合一)', 즉 지식과 실천이 별개가 아니라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학문'에 대한 이런 양명학의 관점은 이 책이 현대를 살아가는 대중들에게도 여전히 의미가 있음을 보여준다.
정인보가 글을 연재하던 시점에서 점점 멀어지면서 『양명학연론』은 또 하나의 의미를 키워갔다. 연구자들을 위한 양명학 연구 자료로서의 의미이다. 양명학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것이기 때문에 양명학 입문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 양명학의 기본 개념, 창시자 왕수인과 그 후계자들에 대한 소개, 그가 양명학의 핵심 논문으로 본 두 논문의 번역 및 해설, 여기에 한국(조선)의 양명학사까지 망라해서 길지 않은 글 속에 양명학의 기본 내용들을 짜임새 있게 소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양명학연론』은 간행본들이 절판된 뒤에도 '제본복사'를 통해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읽혔다. 특히 한국 양명학사 부분은 정인보가 인용한 조선 양명학자의 글들을 연구자들이 자주 인용할 정도로 중요한 지침서 역할을 했다.
현대어본으로 다시 탄생한 양명학연론
그러나 책의 가치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잊힌 고전'이 되어 갔다. 출판이 지속되어야 그 명성을 유지할 수 있는데, 이것을 어렵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들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당대 일급 한학자 정인보가 어려운 한자어를 한껏 구사해 쓴 글이어서 시대가 흘러 한자가 낯선 세대로 내려갈수록 점점 더 난해한 글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문제는 신문 연재 이후 저자의 교정에 의한 재출간이 이루어지지 않아 텍스트가 엉망인 채 방치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심각한 것은 두 번째 문제였다. 옛날 신문에서 오탈자가 많은 것은 당연했고, 당시에도 글이 어려웠으니 더욱 엉망이었다. 심지어 정인보의 서술과 왕수인의 글 인용 구분이 명확치 않아, 후대의 재출간본에서 필자를 뒤바꾼 부분도 수두룩했다. 그것을 바로잡아 재출간하기 전 6·25전쟁이 발발했고, 정인보는 납북되어 사망했다. 잡지 『사상계』에 다시 수록하고, 다른 글들과 묶어 단행본으로 펴내는 등 몇 차례 재출간됐으나, 엉망인 텍스트의 상태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일부 명백한 오류를 바로잡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옛날 어투가 점점 낯설어져 새로운 오류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 책은 『양명학연론』의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시도다. 이 책은 석학이자 우리나라에 희귀한 양명학자 계보의 끝자락을 지켰던 위당 정인보가 남긴 명저를 인멸 위기에서 건져내, 묵은 때를 말끔하게 벗겨내고 다시 대중 앞에 내놓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목차
목차
책머리에
1. 이 글을 쓰는 연유
2. 양명학이란 무엇인가
3. 왕양명의 생애
4. 「대학문」과 「발본색원론」
5. 양명학의 계승자들
6. 조선의 양명학파
7. 글을 마치며
[부록] 양명학연론 교주(校注)
참고 자료 『양명학연론』 및 그 재출간본들의 오류 연구
참고문헌
찾아보기
1. 이 글을 쓰는 연유
2. 양명학이란 무엇인가
3. 왕양명의 생애
4. 「대학문」과 「발본색원론」
5. 양명학의 계승자들
6. 조선의 양명학파
7. 글을 마치며
[부록] 양명학연론 교주(校注)
참고 자료 『양명학연론』 및 그 재출간본들의 오류 연구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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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저자
정인보
鄭寅普, 1893~1950
한학자이자 역사학자로, 호가 담원(?園)ㆍ위당(爲堂)이다. 어려서 강화학파의 학통을 이은 이건방(李建芳)의 제자로 학문의 기초를 쌓았으며,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그러나 첫 번째 부인의 사망으로 귀국한 뒤 연희전문 교수로 재직하며 국학 연구와 언론 활동에 종사했다. 이익(李瀷)의 『성호사설(星湖僿說)』과 정약용(丁若鏞)의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등을 교열해 간행하고, 우리 고서(古書)에 대한 해제를 신문에 연재했으며, 『양명학연론』과 『오천 년간 조선의 얼』 등도 신문에 발표했다. 해방 후 국학대학장과 제1공화국 초대 감찰위원장을 지냈으며, 6ㆍ25 때 납북되어 사망했다. 저서로는 『조선사 연구』(1946, 『오천 년간 조선의 얼』 개제)와 『담원시조집(?園時調集)』(1948)이 생전에 출간됐고, 『담원국학산고(?園國學散藁)』(1955)와 『담원문록(?園文錄)』(1967, 번역본)이 그가 납북돼 사망한 뒤에 나왔으며, 1983년에는 담원정인보전집이 연세대출판부에서 출간됐다.
한학자이자 역사학자로, 호가 담원(?園)ㆍ위당(爲堂)이다. 어려서 강화학파의 학통을 이은 이건방(李建芳)의 제자로 학문의 기초를 쌓았으며,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그러나 첫 번째 부인의 사망으로 귀국한 뒤 연희전문 교수로 재직하며 국학 연구와 언론 활동에 종사했다. 이익(李瀷)의 『성호사설(星湖僿說)』과 정약용(丁若鏞)의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등을 교열해 간행하고, 우리 고서(古書)에 대한 해제를 신문에 연재했으며, 『양명학연론』과 『오천 년간 조선의 얼』 등도 신문에 발표했다. 해방 후 국학대학장과 제1공화국 초대 감찰위원장을 지냈으며, 6ㆍ25 때 납북되어 사망했다. 저서로는 『조선사 연구』(1946, 『오천 년간 조선의 얼』 개제)와 『담원시조집(?園時調集)』(1948)이 생전에 출간됐고, 『담원국학산고(?園國學散藁)』(1955)와 『담원문록(?園文錄)』(1967, 번역본)이 그가 납북돼 사망한 뒤에 나왔으며, 1983년에는 담원정인보전집이 연세대출판부에서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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