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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루즈로트레크(시공아트 61)
세기말 파리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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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천재 예술가'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의 삶과 예술
이세기말 파리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초상『툴루즈로트레크』. ‘비운의 천재 예술가’라고 불리는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의 무수한 소문과 신화를 털어내고 예술가로서 객관적으로 검증하고 있는 책이다. 편지와 평론, 일화, 회고록 등의 방대한 자료를 통해 인간적, 예술적으로 툴루즈로트레크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더불어 생애와 작품에 영향을 끼친 가족과 인상주의 작가들을 비롯한 모든 인간관계에 주목하며 귀족 가문 출신으로 불안한 생활, 불구로 인한 고통, 사창가,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정치적, 사회적 혼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파헤친다.
귀족 가문 출신이었으나 불구가 되고 알코올 중독과 정신착란 증상, 36세에 요절하기까지 이러한 신화화에 가려져 제 평가를 받지 못한 툴루즈로트레크를 예술가로서 새롭게 조명한다. 그는 유화 737점, 수채화 275점, 판화와 포스터 368점 드로잉 5084점과 도자기, 스테인드글라스까지 엄청난 수의 작품을 남기고 떠났다.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과 함께 끊임없이 관찰하고 분석하며 작품을 연마했고 사업가 기질이 뛰어난 영리한 예술가이기도 했다. 그의 치열한 습작의 일상과 예술가들의 교류, 자신만의 표현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통해 미술에 대한 열정과 능력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이세기말 파리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초상『툴루즈로트레크』. ‘비운의 천재 예술가’라고 불리는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의 무수한 소문과 신화를 털어내고 예술가로서 객관적으로 검증하고 있는 책이다. 편지와 평론, 일화, 회고록 등의 방대한 자료를 통해 인간적, 예술적으로 툴루즈로트레크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더불어 생애와 작품에 영향을 끼친 가족과 인상주의 작가들을 비롯한 모든 인간관계에 주목하며 귀족 가문 출신으로 불안한 생활, 불구로 인한 고통, 사창가,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정치적, 사회적 혼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파헤친다.
귀족 가문 출신이었으나 불구가 되고 알코올 중독과 정신착란 증상, 36세에 요절하기까지 이러한 신화화에 가려져 제 평가를 받지 못한 툴루즈로트레크를 예술가로서 새롭게 조명한다. 그는 유화 737점, 수채화 275점, 판화와 포스터 368점 드로잉 5084점과 도자기, 스테인드글라스까지 엄청난 수의 작품을 남기고 떠났다.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과 함께 끊임없이 관찰하고 분석하며 작품을 연마했고 사업가 기질이 뛰어난 영리한 예술가이기도 했다. 그의 치열한 습작의 일상과 예술가들의 교류, 자신만의 표현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통해 미술에 대한 열정과 능력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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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신화와 검은 그림자를 걷어낸
툴루즈로트레크의 삶과 예술
[출간 의의]
세기말 파리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초상,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
귀족 가문 태생부터 장애와 수많은 여인들, 급작스러운 성공, 알코올 중독과 이른 요절까지 숨 가쁘게 이어지는 삶의 궤적은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Henri de Toulouse-Lautrec, 1864-1901를 소위 '비운의 천재 예술가'로 불릴 요건을 모두 충족한다. 그리하여 신문과 잡지, 영화 등 대중매체를 통해 반 고흐 못지않게 유명세와 더불어 무수한 신화가 덧붙여지고 재생산되었다.
이 책은 툴루즈로트레크라는 이름에 내려앉은 무수한 소문과 신화를 털어내고 19세기 후반 미술사에 제 이름을 또렷이 새긴 예술가로서 재조명한다. 특히 편지와 평론, 일화, 회고록 등 방대한 자료를 뒤져서 로트레크가 헤쳐 나간 인간적, 예술적 도전들을 새롭게 조명한다. 저자는 로트레크의 생애와 작품에 영향을 끼친 가족부터 인상주의 작가들을 비롯해 모든 주요한 관계에 주목한다. 귀족 가문 출신으로서 기행과 불안한 생활, 불구로 인한 고통, 미술교육과 훈련, 극장과 바, 카페, 사창가, 그리고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정치적, 사회적 혼란에 이르기까지 샅샅이 파고든다.
[내용 소개]
신화와 소문을 걷어내고 예술가로서 툴루즈로트레크에 오롯이 주목하다
반 고흐처럼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는 전기 작가들에 의해 전형적인 천재 예술가상像으로 선택되었고, 20세기에 사진, 영화, 텔레비전 등 다양한 미디어에 의해 그러한 이미지가 급속히 확산되었다. 11세기부터 이어진 유수한 귀족 가문 출신으로서 어린 시절에 불구가 되고 몽마르트르의 무용수와 사창가의 여인들과 어울리고, 알코올 중독과 정신착란 증상, 그리고 36세 요절까지 대중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이러한 신화화에 가려져 제 평가를 받지 못한, 19세기 후반 미술사에 중요한 기여를 한 예술가로서 툴루즈로트레크에 대한 객관적 검증에 집중한다.
우선, 로트레트는 1901년 세상을 떠날 때 유화 737점, 수채화 275점, 판화와 포스터 368점, 드로잉 5,084점, 조각과 도자기, 스테인드글라스까지 엄청난 수의 작품을 남겼다. 이 중 어떤 작품도 즉흥적이고 본능적으로 표현하거나 천부적인 재능에만 의존한 적이 없다. 그는 끊임없이 관찰하고 분석하며 드로잉을 그려 부단하게 기본 테크닉을 연마했다. 오늘날 우리가 잘 아는 로트레크의 그래픽 작품은 종이와 잉크부터 하나하나 직접 고르고 인쇄 기술공들과 끊임없이 대화하여 치열하게 이룬 최고의 결과물이었다.
둘째, 툴루즈로트레크는 사업가 기질을 타고난 영리한 예술가였다. 사회적 통념과 달리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주변 인맥을 활용하는 데 주저하거나 전혀 움츠러들지 않았다. 몽마르트르에서 밤새 파티를 하고 알코올에 빠져 사는 동안에도 잡지와 저널에 그림과 판화를 제공해 상당한 수입을 올렸고, 여러 전시 기관들에 작품을 제출하여 미술시장에 근접하려 했다. 그중 돈을 주지 않으려는 잡지와 판매자에게 작품을 회수하여 "장사 수완이 회계사와 집행관을 한데 합쳐 놓은 듯하고…… 각종 공문서를 남발하는 방법을 잘 안다"라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셋째, 툴루즈로트레크는 고전적 주제부터 인상주의 색채를 비롯한 다양한 기법과 주제를 가져오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코르몽의 화실에서 알게 된 반 고흐, 루이 앙크탱, 그르니에를 비롯하여 폴 시냐크, 조르주 쇠라, 모네, 드가 등 동시대 화가들의 경향을 주목하고 일본 판화와 캐리커처 등에 관심을 보였다. 이 모든 것을 통해 로트레크는 구도와 색채 등 독창적이고 독자적인 화가로서의 길을 열었다.
세기말 파리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초상을 그려내다
1884년 작업실을 몽마르트르로 옮긴 로트레크는 주변의 카페와 카바레 등에 모인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한다. 19세기 유럽의 산업화와 엄격하고 과시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생겨난 근대적 삶과 그에 깃든 불안과 분노는 공쿠르 형제와 에밀 졸라 등 문학가와 인상주의 미술가들에게 중요한 주제였다. 당시 몽마르트르는 소규모 상인과 서비스업 종사자, 특히 세탁소 등의 가게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거주지였다. 이들은 환한 조명과 포스터, 화려한 입구의 카페 '물랭 드 라 갈레트'에서 위로와 즐거움을 구했다. 로트레크는 세기말 파리의 노동자 계급과 그보다 낮은 사창가의 여인들로부터 최고의 창의적 영감을 얻어서 어떤 화가도 하지 못한 삶의 측면을 표현했음에 저자는 주목한다. 그 무엇보다 사회의 고립된 존재로 바라보는 전형적인 시선을 거부하고, 대중의 편견이나 시선에 영합하지도 않고 풍자도 동정도 하지 않고 한 인간으로서 표현했다는 것이다.
영화감독 페데리코 펠리니는 "나에게 로트레크는 항상 형제 같고 친구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사회에서 부도덕하고 낙인찍히고 소외된 사람들과 경멸당한 사람들에게 언제나 끌렸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절대로 로트레크의 그림이나 포스터, 판화를 무심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다"라고 말한다.
거리를 미술관으로 - 포스터 예술의 정점을 찍다
19세기 말 인상주의는 일상의 풍경과 새로운 채색법을 통해 미술의 대혁명을 야기했다. 하지만 '미술 애호가'라는 극소수에게 알려지고 퍼졌을 뿐이다. 로트레크의 판화와 포스터가 대중적으로 성공하면서 이러한 혁명에 대한 광범위한 자각을 이끌어냈다. 그의 창작은 세잔과 반 고흐에게 가해진 당대의 혹평을 비켜나서 파리 거리를 장식하고 극장 프로그램, 광고, 수많은 판화와 출판물에 등장했다. 또한 19세기 근대미술에서 바로 이전의 위대한 혁신자들조차 광범위하게 시도하지 못한 기계적 복제의 영역을 끌어들인다. 저자는 포스터와 당시 잡지에 실린 삽화를 통해 로트레크가 삽화예술 전반에 엄청난 박차를 가함으로써 회화와의 연관성을 강화했을 뿐만 아니라 창조적 자신감을 부여했음을 설명한다.
로트레크 개인사의 또 다른 측면에 주목한다
귀족 가문 부모, 친척과의 불화나 자신의 불구,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로 미술에 몰두했다는 숱한 해석에 대해, 저자는 로트레크의 창조적 성과에 영향을 미친 개인사의 또 다른 측면을 주목한다. 소년 로트레크에게 예술 세계의 시작을 열어 준 사람은 아버지인 알퐁스 백작이었다. 19세기 거만함과 고집불통의 전형적인 귀족이자 예술에 조예가 깊던 아버지를 통해 주변의 여러 화가들에게 미술교육을 받았고 보헤미안적 삶을 알게 된다. 이런 특별한 문화적, 사회적 환경이 예술과 삶에 대한 로트레크의 태도를 결정했다고 저자는 제시한다.
어머니에게는 늘 예의바른 행동으로 좋은 인상을 주고 싶어 했다. 집을 나온 이후에 자신의 작업이 잘 진행되고 "아늑한 화실에서 보내는 저녁 시간이 좋다"라고 어머니에 편지를 보낸다. 화가로서 처음으로 인정을 받게 된 아들에 대해 어머니는 "앙리가 아틀리에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존재가 아님을 증명한 셈"이라고 편지를 써 복잡다단한 심경을 드러냈다. 알퐁스 백작은 아들의 죽음을 첫 스승이자 자신의 지인에게 알리며 아들에 대한 사랑과 병에 대한 자책을 절절히 고백한다. "그 애는 항상 착하고 상냥했지. 경멸보다 동정의 시선으로 자신을 보는 사람들 때문에 고통을 받았었지. 하지만 누구도 탓하지 않았다네. 그 애에게 죽음은 고통의 끝을 의미하네. …… 같은 혈통의 자손을 가진 결과로 금지되고 벌을 받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
툴루즈로트레크의 삶과 예술
[출간 의의]
세기말 파리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초상,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
귀족 가문 태생부터 장애와 수많은 여인들, 급작스러운 성공, 알코올 중독과 이른 요절까지 숨 가쁘게 이어지는 삶의 궤적은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Henri de Toulouse-Lautrec, 1864-1901를 소위 '비운의 천재 예술가'로 불릴 요건을 모두 충족한다. 그리하여 신문과 잡지, 영화 등 대중매체를 통해 반 고흐 못지않게 유명세와 더불어 무수한 신화가 덧붙여지고 재생산되었다.
이 책은 툴루즈로트레크라는 이름에 내려앉은 무수한 소문과 신화를 털어내고 19세기 후반 미술사에 제 이름을 또렷이 새긴 예술가로서 재조명한다. 특히 편지와 평론, 일화, 회고록 등 방대한 자료를 뒤져서 로트레크가 헤쳐 나간 인간적, 예술적 도전들을 새롭게 조명한다. 저자는 로트레크의 생애와 작품에 영향을 끼친 가족부터 인상주의 작가들을 비롯해 모든 주요한 관계에 주목한다. 귀족 가문 출신으로서 기행과 불안한 생활, 불구로 인한 고통, 미술교육과 훈련, 극장과 바, 카페, 사창가, 그리고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정치적, 사회적 혼란에 이르기까지 샅샅이 파고든다.
[내용 소개]
신화와 소문을 걷어내고 예술가로서 툴루즈로트레크에 오롯이 주목하다
반 고흐처럼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는 전기 작가들에 의해 전형적인 천재 예술가상像으로 선택되었고, 20세기에 사진, 영화, 텔레비전 등 다양한 미디어에 의해 그러한 이미지가 급속히 확산되었다. 11세기부터 이어진 유수한 귀족 가문 출신으로서 어린 시절에 불구가 되고 몽마르트르의 무용수와 사창가의 여인들과 어울리고, 알코올 중독과 정신착란 증상, 그리고 36세 요절까지 대중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이러한 신화화에 가려져 제 평가를 받지 못한, 19세기 후반 미술사에 중요한 기여를 한 예술가로서 툴루즈로트레크에 대한 객관적 검증에 집중한다.
우선, 로트레트는 1901년 세상을 떠날 때 유화 737점, 수채화 275점, 판화와 포스터 368점, 드로잉 5,084점, 조각과 도자기, 스테인드글라스까지 엄청난 수의 작품을 남겼다. 이 중 어떤 작품도 즉흥적이고 본능적으로 표현하거나 천부적인 재능에만 의존한 적이 없다. 그는 끊임없이 관찰하고 분석하며 드로잉을 그려 부단하게 기본 테크닉을 연마했다. 오늘날 우리가 잘 아는 로트레크의 그래픽 작품은 종이와 잉크부터 하나하나 직접 고르고 인쇄 기술공들과 끊임없이 대화하여 치열하게 이룬 최고의 결과물이었다.
둘째, 툴루즈로트레크는 사업가 기질을 타고난 영리한 예술가였다. 사회적 통념과 달리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주변 인맥을 활용하는 데 주저하거나 전혀 움츠러들지 않았다. 몽마르트르에서 밤새 파티를 하고 알코올에 빠져 사는 동안에도 잡지와 저널에 그림과 판화를 제공해 상당한 수입을 올렸고, 여러 전시 기관들에 작품을 제출하여 미술시장에 근접하려 했다. 그중 돈을 주지 않으려는 잡지와 판매자에게 작품을 회수하여 "장사 수완이 회계사와 집행관을 한데 합쳐 놓은 듯하고…… 각종 공문서를 남발하는 방법을 잘 안다"라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셋째, 툴루즈로트레크는 고전적 주제부터 인상주의 색채를 비롯한 다양한 기법과 주제를 가져오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코르몽의 화실에서 알게 된 반 고흐, 루이 앙크탱, 그르니에를 비롯하여 폴 시냐크, 조르주 쇠라, 모네, 드가 등 동시대 화가들의 경향을 주목하고 일본 판화와 캐리커처 등에 관심을 보였다. 이 모든 것을 통해 로트레크는 구도와 색채 등 독창적이고 독자적인 화가로서의 길을 열었다.
세기말 파리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초상을 그려내다
1884년 작업실을 몽마르트르로 옮긴 로트레크는 주변의 카페와 카바레 등에 모인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한다. 19세기 유럽의 산업화와 엄격하고 과시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생겨난 근대적 삶과 그에 깃든 불안과 분노는 공쿠르 형제와 에밀 졸라 등 문학가와 인상주의 미술가들에게 중요한 주제였다. 당시 몽마르트르는 소규모 상인과 서비스업 종사자, 특히 세탁소 등의 가게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거주지였다. 이들은 환한 조명과 포스터, 화려한 입구의 카페 '물랭 드 라 갈레트'에서 위로와 즐거움을 구했다. 로트레크는 세기말 파리의 노동자 계급과 그보다 낮은 사창가의 여인들로부터 최고의 창의적 영감을 얻어서 어떤 화가도 하지 못한 삶의 측면을 표현했음에 저자는 주목한다. 그 무엇보다 사회의 고립된 존재로 바라보는 전형적인 시선을 거부하고, 대중의 편견이나 시선에 영합하지도 않고 풍자도 동정도 하지 않고 한 인간으로서 표현했다는 것이다.
영화감독 페데리코 펠리니는 "나에게 로트레크는 항상 형제 같고 친구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사회에서 부도덕하고 낙인찍히고 소외된 사람들과 경멸당한 사람들에게 언제나 끌렸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절대로 로트레크의 그림이나 포스터, 판화를 무심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다"라고 말한다.
거리를 미술관으로 - 포스터 예술의 정점을 찍다
19세기 말 인상주의는 일상의 풍경과 새로운 채색법을 통해 미술의 대혁명을 야기했다. 하지만 '미술 애호가'라는 극소수에게 알려지고 퍼졌을 뿐이다. 로트레크의 판화와 포스터가 대중적으로 성공하면서 이러한 혁명에 대한 광범위한 자각을 이끌어냈다. 그의 창작은 세잔과 반 고흐에게 가해진 당대의 혹평을 비켜나서 파리 거리를 장식하고 극장 프로그램, 광고, 수많은 판화와 출판물에 등장했다. 또한 19세기 근대미술에서 바로 이전의 위대한 혁신자들조차 광범위하게 시도하지 못한 기계적 복제의 영역을 끌어들인다. 저자는 포스터와 당시 잡지에 실린 삽화를 통해 로트레크가 삽화예술 전반에 엄청난 박차를 가함으로써 회화와의 연관성을 강화했을 뿐만 아니라 창조적 자신감을 부여했음을 설명한다.
로트레크 개인사의 또 다른 측면에 주목한다
귀족 가문 부모, 친척과의 불화나 자신의 불구,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로 미술에 몰두했다는 숱한 해석에 대해, 저자는 로트레크의 창조적 성과에 영향을 미친 개인사의 또 다른 측면을 주목한다. 소년 로트레크에게 예술 세계의 시작을 열어 준 사람은 아버지인 알퐁스 백작이었다. 19세기 거만함과 고집불통의 전형적인 귀족이자 예술에 조예가 깊던 아버지를 통해 주변의 여러 화가들에게 미술교육을 받았고 보헤미안적 삶을 알게 된다. 이런 특별한 문화적, 사회적 환경이 예술과 삶에 대한 로트레크의 태도를 결정했다고 저자는 제시한다.
어머니에게는 늘 예의바른 행동으로 좋은 인상을 주고 싶어 했다. 집을 나온 이후에 자신의 작업이 잘 진행되고 "아늑한 화실에서 보내는 저녁 시간이 좋다"라고 어머니에 편지를 보낸다. 화가로서 처음으로 인정을 받게 된 아들에 대해 어머니는 "앙리가 아틀리에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존재가 아님을 증명한 셈"이라고 편지를 써 복잡다단한 심경을 드러냈다. 알퐁스 백작은 아들의 죽음을 첫 스승이자 자신의 지인에게 알리며 아들에 대한 사랑과 병에 대한 자책을 절절히 고백한다. "그 애는 항상 착하고 상냥했지. 경멸보다 동정의 시선으로 자신을 보는 사람들 때문에 고통을 받았었지. 하지만 누구도 탓하지 않았다네. 그 애에게 죽음은 고통의 끝을 의미하네. …… 같은 혈통의 자손을 가진 결과로 금지되고 벌을 받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
목차
목차
1 우아함의 결여
2 프로방스에서 파리로
3 도제 교육
4 몽마르트르의 발견
5 거리 미술관
6 카바레와 사창가
7 인상주의의 그림자
8 고통의 끝
연표
참고 문헌
인용 출처
도판 목록
찾아보기
옮긴이의 말
2 프로방스에서 파리로
3 도제 교육
4 몽마르트르의 발견
5 거리 미술관
6 카바레와 사창가
7 인상주의의 그림자
8 고통의 끝
연표
참고 문헌
인용 출처
도판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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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저자
저자
버나드 덴버
저자 버나드 덴버Bernard Denvir는 영국 미술과 건축, 디자인에 대한 감상의 역사를 다룬 전집 네 권을 쓰고, 샤르댕과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 야수주의에 관한 책을 펴냈다. 또한 여러 잡지에 기고를 했으며, 레이븐스본 미술 디자인 대학교Ravensbourne College of Art and Design의 미술사학과 교수를 지냈다. 국가 학위 수여 심사위원회Council for National Academic Awards 위원이자 국제미술비평협회International Association of Art Critics 영국 지부 대표를 거쳤다. 『가까이에서 본 인상주의 미술가The Impressionists at First Hand』(시공아트 011)를 쓰고, 『인상주의 사전The Encyclopaedia of Impressionism』(1989)을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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