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너스에게(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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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두를 사랑할 수 있는 비너스!
동성을 사랑한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권하은의 장편소설 『비너스에게』. 청소년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였다는 평가를 받은 작품으로, 금기시되어온 동성애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열여덟 살의 평범한 소년 성훈. 그에게는 친구들과 달리 이성에게 아무 관심도 생기지 않는다는 고민이 있다. 그러던 중 성훈은 학교에서 동성 선배 군을 보고 한눈에 반한다. 군과 가까워진 성훈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군에게 키스하고, 이 사건이 학교에 알려져 결국 자퇴를 하고 만다. 청소년 상담소에서 상담을 받게 된 성훈은 누구보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양나와 수의사 현신을 만나면서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해가는데….
동성을 사랑한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권하은의 장편소설 『비너스에게』. 청소년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였다는 평가를 받은 작품으로, 금기시되어온 동성애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열여덟 살의 평범한 소년 성훈. 그에게는 친구들과 달리 이성에게 아무 관심도 생기지 않는다는 고민이 있다. 그러던 중 성훈은 학교에서 동성 선배 군을 보고 한눈에 반한다. 군과 가까워진 성훈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군에게 키스하고, 이 사건이 학교에 알려져 결국 자퇴를 하고 만다. 청소년 상담소에서 상담을 받게 된 성훈은 누구보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양나와 수의사 현신을 만나면서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해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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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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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나는 그냥 나면 안 되는 건가?
첫사랑, 첫 키스. 당신은 이 단어들을 들을 때 어떤 장면, 어떤 사람을 떠올리는가? 혹자는 첫 키스의 기억을 종소리로 표현했다. 서로의 입술과 입술이 맞닿았을 때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퍼졌다고 하는. 상투적인 표현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어떤 그리움과 아련함, 따스함이 묻어나는 표현인 것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당신의 기억을 더듬어 보자. 당신의 첫사랑, 첫 키스. 첫사랑과 첫 키스라는 단어를 듣고 당신의 마음에 따뜻한 물이 한 잔 엎질러진다면, 당신의 마음이 부드러운 휴지처럼 천천히 젖어든다면 당신의 첫사랑, 첫 키스는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을 것이다. '처음'이라는 말이 주는 서?과 떨림, 아련함. 첫사랑은 서툴기 때문에 서글프고 그리하여 아름다운 것일 테다. 당신이 겪은 첫, 처음. 그것을 넘어서면서 당신은 어른이 되었거나,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 첫사랑, 첫 키스로 인해 한순간에 세상으로부터 낙오한 소년이 있다. 『비너스에게』의 주인공 '성훈'. 성훈은 열여덟 살의 남자 고등학생으로 아빠 없이 엄마와 단둘이 산다는 것 외엔 지극히 평범한 소년이다. 하지만 그에게 말 못할 고민이 생긴다. 또래 친구들과 달리 이성에게 아무런 관심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 그 문제로 고심하던 성훈은 학교 체육대회 날, 한 학년 위의 동성 선배 '군'에게 한눈에 반한다. 그리고 혼란에 휩싸인다. '사랑'이라는 것은 누군가의 마음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것이고, 그러므로 그 감정 자체로도 엄청난 책임감과 고통을 수반한다. 하지만 이 소년은 누군가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어려운 한걸음을 내딛기 전에 먼저 자신의 마음속으로 걸어들어가야 했다. 사랑이라는 감정과 그 감정이 가져온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 지금껏 아주 평범하던 자신이 느닷없이 엄청나게 튀게 돼버린 데 대한 당혹감.
엄마가 날 위해 골라준 것들은 언제나 지극히 평범했어. 평범한 셔츠, 평범한 바지, 평범한 양말, 평범한 가방, 평범한 연필, 평범한 자전거 등등……. 그래서인지 나는 엄마의 성을 가진 아이치고는 꽤나 평범했고 앞으로도 평범하게 살게 될 거라 굳게 믿었었어. 하지만 나는 아빠가 없는 것 정도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튀게 될 처지에 놓이고 말았던 거야. 다른 문제야 다 접어둔다 해도, '동성애자'라는 건 그야말로 엄청나게 튀게 돼 있는 거잖아. 엄마는 꽤 용감하고 씩씩한 여자지만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어. 나는 엄마를 실망시키게 될까봐 정말 두려웠어.
― 본문에서
성훈은 아주 평범한 옷을 입고, 아주 평범한 가방을 메고 아주 평범하게 누군가를 사랑했다. 대부분의 소년들처럼 서툴게, 수줍게 몸을 떨면서 사랑하는 상대 '군'에게로 천천히 다가섰다. 드디어 여름방학, 성훈은 '군'의 집에 초대를 받는다. 사랑하는 사람과 단둘이 있게 된다면 당신은 어떤 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는가? 그것이 서툰 첫사랑이라면? 성훈은 누구나처럼 첫사랑의 서?을 감추지 못한 채 '군'에게 키스한다. 성훈의 첫 키스. 하지만 놀란 '군'은 성훈을 밀쳐낸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엔 자신조차 당혹스럽던 감정이었기에 그가 사랑한 상대 '군'에게 가닿지 못한 것이다. 여름방학이 끝난 후 '군'과의 사건이 학교에 알려지고 성훈은 엄마의 손에 이끌려 학교를 떠난다. 자신의 의도와 달리 성훈의 기억 속에 '수치'로 남은 첫사랑, 첫 키스.
내 진심은 다 어디로 증발했을까?
내가 누구인지, 어떤 성향의 인간인지를 깨달아야 하는 것, 그래서 지금껏 '나'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삶이 다른 무엇으로 설명되어져야 하는 것,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세상 대부분의 사람이 납득하지 못하는 '나'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고통. 성훈은 동성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취향이나 관심사 모두 단지 성적 기호에 맞추어 해석되어지는 현실에 절망한다. 자신이 학교 선생님들, 형제나 다름없던 친구 영무뿐 아니라 엄마에게조차 받아들여질 수 없는 무엇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하며, 한순간에 세상으로부터 낙오했다고 느낀다.
나는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아침이면 일어나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툭탁거리고, 지루한 수업도 견뎌가며 어딜 가든 내 이름과 함께하는 'A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문장이 당연한 것인 줄 알았어. 나는 정말 낙오자가 된 거였고, 그게 바로 첫 키스 때문이라는 건 웃어넘길 수도 없는 악질적인 농담 같았어. 거짓말로 시작된 설문을 위해 쉬는 시간을 몽땅 바쳤던 일들이며 군에게 잘 보이고 싶어 했던 모든 과장된 말과 행동들, 군에게 가졌던 터무니없는 기대들, 그리고 죽는 날까지 내게는 '수치' 그 이상은 아닐 첫 키스의 당혹스럽고 황망한 기억. 도대체 어디쯤에서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는 건지 전혀 알 수 없었어.
― 본문에서
'나는 나'면 안 되는 것인지, 세상은 왜 자신의 진심을 이렇게까지 변질시켜 받아들이는지 묻고 싶은 한편, 성훈은 스스로를 수치스러워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성훈의 내면을 혼란스럽게 하고 이제 그 커다란 입을 벌려 성훈을 송두리째 집어삼키려고 한다. 가혹하기만한 성훈의 첫사랑. 성훈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대로 멈추어 서서 "내 안에는 벌레밖에 없어요"라는 자조를 읊조려야 할까? 세상으로부터 낙오했다는 절망감에 몸을 한껏 웅숭그리고 있어야 할까? 첫사랑의 실패 때문에 스스로를 혐오하며 안으로 침잠하는 성훈에게 '애미 청소년 상담소'의 양나 씨는 말한다.
"어떤 누구라도 자신의 본모습은 절대 수치스러운 게 아니야. 자연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거든. 단지 그 모습을 인정할 수 없는 자신은 수치스러워해야 해. 자신을 인정할 수 없으면 더 나은 사람이 될 가능성도 없기 때문이야."
― 본문에서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 비너스, 애미 청소년 상담소의 한 벽면에는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 그려져 있다. 성훈은 비너스를 보며 말한다. "저 애라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겠군요"라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으려면 누군가를 사랑해야 하고,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으려면 먼저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비너스는 세상 모두를 사랑할 수 있는 여신이기에,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랑의 여신'일 것이다. 그리고 비너스는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잘 알기에, 다름 사람의 아름다움도 아는 '미(美)의 여신'일 것이다.
성훈은 이러한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 비너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모습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애쓴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부터 사랑해야 함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사랑'으로 인해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한다. 그리고 '수치'로 남은 첫사랑의 기억을 그 다음 사랑으로 극복하며 성장한다.
사춘기에 자신의 성 정체성을 명료하게 인식한
한 소년의 드라마틱한 자기탐구의 기록
『비너스에게』의 작가 권하은은 2009년 청소년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했다는 평을 들으며 등장했다. 미술을 전공한 독특한 이력이 반영된 섬세하고 감각적인 묘사, 생기발랄하면서도 서정성이 느껴지는 문체와 이야기 구조는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주인공들의 내면을 능숙하게 담아냈다. 이러한 자신의 강점을 바탕으로, 작가는 『비너스에게』에서 지금껏 청소년소설에서 금기시돼왔던 동성애에 대해 정면으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비너스에게』는 주제를 다루는 방식이 도전적이지도, 감정적이지도 않다. 진지하면서도 무겁거나 가볍지 않게 동성을 사랑하는 소년의 혼란스러운 내면을 다루고, 상처 입은 소년의 마음을 끌어안는다. '사랑은 사랑이다'라는 아주 단순한 진리를 바탕으로, 지금껏 금기시되어온 동성애에 대해 그 특유의 따뜻한 시선으로 응시하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타인에 대한 이해와 포용력, 자아정체성의 확립을 표현한 『비너스에게』. 소년 성훈의 시선에서 말하는 사랑에 대한 표현들은 청소년뿐 아니라 어른들의 공감을 자아내며, 사랑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이로써 작가는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까지 모두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존재 자체로 따스하게 바라보아져야 할 사람, 사랑. 밑줄치고 싶은 문장과 가슴을 울리는 표현들을 한 줄 한 줄 따르며, 동성을 사랑하는 소년 성훈이 세상 모두를 사랑할 수 있는 비너스에게 띄우는 내밀한 자기고백을 들어보자.
줄거리
『비너스에게』의 주인공 '성훈'은 열여덟 살의 남자 고등학생이다. 아빠 없이 홀로 자신을 낳아 키워준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다는 것 외엔 지극히 평범한 소년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말 못할 고민이 있다. 또래 친구들과 달리 이성에게 아무 관심도 생기지 않는다는 것. 그 문제로 고심하던 성훈은 학교 체육대회 날, 한 학년 위의 동성 선배 '군'을 보고 한눈에 반한다. 선배에게 접근할 마땅한 방법이 없어 고심하다 생각해낸 것이 설문조사 아르바이트. 물론 자신이 만들어낸 가상의 아르바이트다. 성훈은 '우리나라 입시제도의 고찰'을 설문조사의 주제로 잡고, 3학년 교실로 진입한다. 수험생들의 일상을 자세히 들어야 한다는 핑계로 3학년 선배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주게 된 것이다. 성훈은 이 설문조사 아르바이트를 통해 바라던 대로 '군'과도 가까워진다.
여름방학에 '군'의 집으로 초대를 받은 성훈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군'에게 키스하고, 놀란 '군'이 자신을 밀쳐내자 상처받는다. 여름방학이 끝난 후 성훈은 교장실로 불려간다. '군'과의 사건이 학교에 알려져 문제가 된 것. 성훈은 결국 모든 일을 어머니 '운수'에게 털어놓는다. 운수는 평범한 줄 알았던 아들의 동성애 고백에 큰 충격을 받는다. 학교를 찾아간 운수는 학교 측의 폭언에 발끈해 그 자리에서 성훈을 자퇴시키고, 강압적으로 유학을 추진한다. 성훈은 절망감에 사로잡혀 점점 자폐적이 되어가고, 운수는 그런 아들을 보며 고민하다 청소년 상담소를 운영하는 '양나'에게 연락한다.
양나가 운영하고 있는 '애미 청소년 상담소'에서 상담을 받게 된 성훈. 성훈은 누구보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양나와 수의사 현신을 만나면서, 차츰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한다. 상담소의 다른 아이들과도 학교에서와는 다른 방식으로 소통을 시도한다. 그러던 어느 날 성훈은 상담소의 아이들과 함께 놀이공원에 갔다가 단짝 친구였던 '영무'와 마주친다. 이 만남에서 성훈은 자신이 영무가 사는 정상적인 세계에서 완전히 낙오했다는 두려움에 빠지고, 결국 유학을 가기로 결심한다.
유학을 준비하는 한편 상담소 아이들과 비밀스런 작전을 펼치는 성훈. 이 일로 인해 성훈은 다시 한 번 엄마와 말다툼을 벌이고 무작정 가출을 감행하는데……
■ '작가의 말'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밤하늘을 수놓는 무수한 별들을 바라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각기 다른 수 억 개의 별들이 저마다의 빛을 내며 그들과 우리 사이에 놓인 시공을 넘어 존재하고, 우리 역시 그들에게 그렇게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세계'로 인식하며 '우주'라 부른다. 세계와 우주는 하나인 동시에 다른 존재들이며, 다른 존재들인 동시에 하나이기도 하다. 그 불가해한 곳에는 언젠가부터 두 발로 걷는 기이한 존재들이 살고 있어서, 우연한 생을 얻어 별처럼 빛나다 별처럼 허무하게 스러져간다. 우주는 넓고 세계는 다양하되, 두 발로 걷는 '인간'이란 존재는 좀체 땅에서 발을 떼지 못하고 작디작은 자기 발만 보고 살다 정말 소중한 것들을 보지 못하고 만다.
『비너스에게』는 동성애자(이자 미성년자)가 주인공이지만, 정작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다양성'에 대한 것이다. 하늘의 별들처럼 제각기 다른 빛을 발하며 그 자리에 존재하지만, 결국 하나가 되어 세계를 이루고 있는 인간 안의 다양성 말이다. 조화로운 세계란 모두 같은 모양을 지닌 채 한 가지 빛을 내는 곳이 아니라, 각자 자신만의 빛을 내며 그 자리를 묵묵히 견뎌내는 곳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그 빛이 모이면 환하고 아름다운 불덩이가 되어 어둡고 공허하며 차가운 인간의 삶을 따스하게 비추어줄 것이다.
■ '해설'에서
사춘기가 지나면 '세계의 프레임'이 말끔하게 정리될 것이라는 우리의 생각은 틀렸다. 세계의 프레임이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오늘 알고 있는 세계에 대한 지식이 내일 뒤바뀔 수도 있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수천 년 전 지구인들은 인정할 수 없었듯이.
우리는 가끔 이 세계가 '완성작'이 아니라 '공사 중'이라는 사실을 망각한다. 세계의 윤곽선은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살아가며, 아직 말랑말랑한 세계의 윤곽선을 조금씩 매만지고 다듬어나가고 있다.
19세기만 해도 동성애는 '치유해야 할 질병'이었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동성애를 일종의 질병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학은 끊임없는 연구와 실험을 통해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인간의 본성'을 발견해낸다. 문학은 때로는 과학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도 말할 수 있다. 인간 개개인에게 존재하는 천차만별의 '차이'는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고. 그러므로 '너와 내가 다르다'는 사실로 타인을 무시하거나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우리에게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함으로써 더욱 다양한 빛깔의 삶을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문학평론가 정여울
[책속으로] 추가
- 나는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아침이면 일어나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툭탁거리고, 지루한 수업도 견뎌가며 어딜 가든 내 이름과 함께하는 'A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문장이 당연한 것인 줄 알았어. 나는 정말 낙오자가 된 거였고, 그게 바로 첫 키스 때문이라는 건 웃어넘길 수도 없는 악질적인 농담 같았어. 거짓말로 시작된 설문을 위해 쉬는 시간을 몽땅 바쳤던 일들이며 군에게 잘보이고 싶어했던 모든 과장된 말과 행동들, 군에게 가졌던 터무니없는 기대들, 그리고 죽는 날까지 내게는 '수치' 그 이상은 아닐 첫 키스의 당혹스럽고 황망한 기억. 도대체 어디쯤에서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는 건지 전혀 알 수 없었어. (70~71쪽)
- 비너스. 어른이 된다는 건 멋지고 완벽한 사랑을 가지게 되는 게 아니라, 양나 씨처럼 불완전한 사랑에 담담해진다는 걸까? 그렇다면 나도 이 고통이나 자책에서 온전히 벗어나는 게 아니라, 단지 무감각해지게 되는 것뿐인가? 이 순간의 아픔이 영원히 남게 되는 거냐고 양나 씨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나는 묻지 않았어. 내 질문에 양나 씨가 "그래, 소년. 불행히도 우리가 한 번 겪은 시간은 우리에게 영원히 남아버려"라고 답하는 것을 듣고 싶지 않았거든. (93쪽)
- 나는 내가 만일 이성애자였다면, 이라는 가정을 좋아하지 않아. 가정은 가정일 뿐 현실이 될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때 처음 생각해보았어. 이성애자였다면. 사람들이 그렇게 길고 지루하며 복잡한 과정을 통해 결합하는 법적인 관계를 만들고, 또다시 그러한 과정을 겪어야만 헤어질 수 있는 결혼제도를 만들어낸 건 어차피 사람 모두가 가볍고 무성의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은 아닐까? (104~105쪽)
-비너스. 나는 현신의 부드러운 음성에서 어떤 멜로디를 들을 수 있어. 그건 무척이나 매혹적이고 아름다우며 순수해서 내 마음을 흔들어. 어쩌면 나는 다시 사랑에 빠지고 있는 건지도 몰라. 참 이상한 일이야.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가 생겨난다는 것은. 만일 내가 현신을 정말로 사랑하게 된다면 아마도 군에 대한 사랑과는 완전히 다를 거야. 우리는 사랑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는 거고, 사람은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랑할 테니까. (130~131쪽)
- 소년에서 어른이 되는 유일한 방법은 상처를 끊임없이 받는 수밖에는 없는 것처럼 여겨져. 그 말은 우리가 모르는 시간 안에도 이미 지나온 시간 안에서처럼 무수한 상처들이 숨겨져 있고, 그 시간을 통과하려면 상처 역시 필연적으로 겪어낼 수밖에 없다는 뜻. 두렵고 무섭지만, 고통이 뭔지를 알게 되는 게 그렇게 나쁜 일일까? (177쪽)
첫사랑, 첫 키스. 당신은 이 단어들을 들을 때 어떤 장면, 어떤 사람을 떠올리는가? 혹자는 첫 키스의 기억을 종소리로 표현했다. 서로의 입술과 입술이 맞닿았을 때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퍼졌다고 하는. 상투적인 표현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어떤 그리움과 아련함, 따스함이 묻어나는 표현인 것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당신의 기억을 더듬어 보자. 당신의 첫사랑, 첫 키스. 첫사랑과 첫 키스라는 단어를 듣고 당신의 마음에 따뜻한 물이 한 잔 엎질러진다면, 당신의 마음이 부드러운 휴지처럼 천천히 젖어든다면 당신의 첫사랑, 첫 키스는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을 것이다. '처음'이라는 말이 주는 서?과 떨림, 아련함. 첫사랑은 서툴기 때문에 서글프고 그리하여 아름다운 것일 테다. 당신이 겪은 첫, 처음. 그것을 넘어서면서 당신은 어른이 되었거나,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 첫사랑, 첫 키스로 인해 한순간에 세상으로부터 낙오한 소년이 있다. 『비너스에게』의 주인공 '성훈'. 성훈은 열여덟 살의 남자 고등학생으로 아빠 없이 엄마와 단둘이 산다는 것 외엔 지극히 평범한 소년이다. 하지만 그에게 말 못할 고민이 생긴다. 또래 친구들과 달리 이성에게 아무런 관심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 그 문제로 고심하던 성훈은 학교 체육대회 날, 한 학년 위의 동성 선배 '군'에게 한눈에 반한다. 그리고 혼란에 휩싸인다. '사랑'이라는 것은 누군가의 마음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것이고, 그러므로 그 감정 자체로도 엄청난 책임감과 고통을 수반한다. 하지만 이 소년은 누군가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어려운 한걸음을 내딛기 전에 먼저 자신의 마음속으로 걸어들어가야 했다. 사랑이라는 감정과 그 감정이 가져온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 지금껏 아주 평범하던 자신이 느닷없이 엄청나게 튀게 돼버린 데 대한 당혹감.
엄마가 날 위해 골라준 것들은 언제나 지극히 평범했어. 평범한 셔츠, 평범한 바지, 평범한 양말, 평범한 가방, 평범한 연필, 평범한 자전거 등등……. 그래서인지 나는 엄마의 성을 가진 아이치고는 꽤나 평범했고 앞으로도 평범하게 살게 될 거라 굳게 믿었었어. 하지만 나는 아빠가 없는 것 정도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튀게 될 처지에 놓이고 말았던 거야. 다른 문제야 다 접어둔다 해도, '동성애자'라는 건 그야말로 엄청나게 튀게 돼 있는 거잖아. 엄마는 꽤 용감하고 씩씩한 여자지만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어. 나는 엄마를 실망시키게 될까봐 정말 두려웠어.
― 본문에서
성훈은 아주 평범한 옷을 입고, 아주 평범한 가방을 메고 아주 평범하게 누군가를 사랑했다. 대부분의 소년들처럼 서툴게, 수줍게 몸을 떨면서 사랑하는 상대 '군'에게로 천천히 다가섰다. 드디어 여름방학, 성훈은 '군'의 집에 초대를 받는다. 사랑하는 사람과 단둘이 있게 된다면 당신은 어떤 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는가? 그것이 서툰 첫사랑이라면? 성훈은 누구나처럼 첫사랑의 서?을 감추지 못한 채 '군'에게 키스한다. 성훈의 첫 키스. 하지만 놀란 '군'은 성훈을 밀쳐낸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엔 자신조차 당혹스럽던 감정이었기에 그가 사랑한 상대 '군'에게 가닿지 못한 것이다. 여름방학이 끝난 후 '군'과의 사건이 학교에 알려지고 성훈은 엄마의 손에 이끌려 학교를 떠난다. 자신의 의도와 달리 성훈의 기억 속에 '수치'로 남은 첫사랑, 첫 키스.
내 진심은 다 어디로 증발했을까?
내가 누구인지, 어떤 성향의 인간인지를 깨달아야 하는 것, 그래서 지금껏 '나'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삶이 다른 무엇으로 설명되어져야 하는 것,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세상 대부분의 사람이 납득하지 못하는 '나'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고통. 성훈은 동성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취향이나 관심사 모두 단지 성적 기호에 맞추어 해석되어지는 현실에 절망한다. 자신이 학교 선생님들, 형제나 다름없던 친구 영무뿐 아니라 엄마에게조차 받아들여질 수 없는 무엇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하며, 한순간에 세상으로부터 낙오했다고 느낀다.
나는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아침이면 일어나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툭탁거리고, 지루한 수업도 견뎌가며 어딜 가든 내 이름과 함께하는 'A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문장이 당연한 것인 줄 알았어. 나는 정말 낙오자가 된 거였고, 그게 바로 첫 키스 때문이라는 건 웃어넘길 수도 없는 악질적인 농담 같았어. 거짓말로 시작된 설문을 위해 쉬는 시간을 몽땅 바쳤던 일들이며 군에게 잘 보이고 싶어 했던 모든 과장된 말과 행동들, 군에게 가졌던 터무니없는 기대들, 그리고 죽는 날까지 내게는 '수치' 그 이상은 아닐 첫 키스의 당혹스럽고 황망한 기억. 도대체 어디쯤에서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는 건지 전혀 알 수 없었어.
― 본문에서
'나는 나'면 안 되는 것인지, 세상은 왜 자신의 진심을 이렇게까지 변질시켜 받아들이는지 묻고 싶은 한편, 성훈은 스스로를 수치스러워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성훈의 내면을 혼란스럽게 하고 이제 그 커다란 입을 벌려 성훈을 송두리째 집어삼키려고 한다. 가혹하기만한 성훈의 첫사랑. 성훈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대로 멈추어 서서 "내 안에는 벌레밖에 없어요"라는 자조를 읊조려야 할까? 세상으로부터 낙오했다는 절망감에 몸을 한껏 웅숭그리고 있어야 할까? 첫사랑의 실패 때문에 스스로를 혐오하며 안으로 침잠하는 성훈에게 '애미 청소년 상담소'의 양나 씨는 말한다.
"어떤 누구라도 자신의 본모습은 절대 수치스러운 게 아니야. 자연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거든. 단지 그 모습을 인정할 수 없는 자신은 수치스러워해야 해. 자신을 인정할 수 없으면 더 나은 사람이 될 가능성도 없기 때문이야."
― 본문에서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 비너스, 애미 청소년 상담소의 한 벽면에는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 그려져 있다. 성훈은 비너스를 보며 말한다. "저 애라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겠군요"라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으려면 누군가를 사랑해야 하고,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으려면 먼저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비너스는 세상 모두를 사랑할 수 있는 여신이기에,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랑의 여신'일 것이다. 그리고 비너스는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잘 알기에, 다름 사람의 아름다움도 아는 '미(美)의 여신'일 것이다.
성훈은 이러한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 비너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모습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애쓴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부터 사랑해야 함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사랑'으로 인해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한다. 그리고 '수치'로 남은 첫사랑의 기억을 그 다음 사랑으로 극복하며 성장한다.
사춘기에 자신의 성 정체성을 명료하게 인식한
한 소년의 드라마틱한 자기탐구의 기록
『비너스에게』의 작가 권하은은 2009년 청소년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했다는 평을 들으며 등장했다. 미술을 전공한 독특한 이력이 반영된 섬세하고 감각적인 묘사, 생기발랄하면서도 서정성이 느껴지는 문체와 이야기 구조는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주인공들의 내면을 능숙하게 담아냈다. 이러한 자신의 강점을 바탕으로, 작가는 『비너스에게』에서 지금껏 청소년소설에서 금기시돼왔던 동성애에 대해 정면으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비너스에게』는 주제를 다루는 방식이 도전적이지도, 감정적이지도 않다. 진지하면서도 무겁거나 가볍지 않게 동성을 사랑하는 소년의 혼란스러운 내면을 다루고, 상처 입은 소년의 마음을 끌어안는다. '사랑은 사랑이다'라는 아주 단순한 진리를 바탕으로, 지금껏 금기시되어온 동성애에 대해 그 특유의 따뜻한 시선으로 응시하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타인에 대한 이해와 포용력, 자아정체성의 확립을 표현한 『비너스에게』. 소년 성훈의 시선에서 말하는 사랑에 대한 표현들은 청소년뿐 아니라 어른들의 공감을 자아내며, 사랑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이로써 작가는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까지 모두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존재 자체로 따스하게 바라보아져야 할 사람, 사랑. 밑줄치고 싶은 문장과 가슴을 울리는 표현들을 한 줄 한 줄 따르며, 동성을 사랑하는 소년 성훈이 세상 모두를 사랑할 수 있는 비너스에게 띄우는 내밀한 자기고백을 들어보자.
줄거리
『비너스에게』의 주인공 '성훈'은 열여덟 살의 남자 고등학생이다. 아빠 없이 홀로 자신을 낳아 키워준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다는 것 외엔 지극히 평범한 소년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말 못할 고민이 있다. 또래 친구들과 달리 이성에게 아무 관심도 생기지 않는다는 것. 그 문제로 고심하던 성훈은 학교 체육대회 날, 한 학년 위의 동성 선배 '군'을 보고 한눈에 반한다. 선배에게 접근할 마땅한 방법이 없어 고심하다 생각해낸 것이 설문조사 아르바이트. 물론 자신이 만들어낸 가상의 아르바이트다. 성훈은 '우리나라 입시제도의 고찰'을 설문조사의 주제로 잡고, 3학년 교실로 진입한다. 수험생들의 일상을 자세히 들어야 한다는 핑계로 3학년 선배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주게 된 것이다. 성훈은 이 설문조사 아르바이트를 통해 바라던 대로 '군'과도 가까워진다.
여름방학에 '군'의 집으로 초대를 받은 성훈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군'에게 키스하고, 놀란 '군'이 자신을 밀쳐내자 상처받는다. 여름방학이 끝난 후 성훈은 교장실로 불려간다. '군'과의 사건이 학교에 알려져 문제가 된 것. 성훈은 결국 모든 일을 어머니 '운수'에게 털어놓는다. 운수는 평범한 줄 알았던 아들의 동성애 고백에 큰 충격을 받는다. 학교를 찾아간 운수는 학교 측의 폭언에 발끈해 그 자리에서 성훈을 자퇴시키고, 강압적으로 유학을 추진한다. 성훈은 절망감에 사로잡혀 점점 자폐적이 되어가고, 운수는 그런 아들을 보며 고민하다 청소년 상담소를 운영하는 '양나'에게 연락한다.
양나가 운영하고 있는 '애미 청소년 상담소'에서 상담을 받게 된 성훈. 성훈은 누구보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양나와 수의사 현신을 만나면서, 차츰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한다. 상담소의 다른 아이들과도 학교에서와는 다른 방식으로 소통을 시도한다. 그러던 어느 날 성훈은 상담소의 아이들과 함께 놀이공원에 갔다가 단짝 친구였던 '영무'와 마주친다. 이 만남에서 성훈은 자신이 영무가 사는 정상적인 세계에서 완전히 낙오했다는 두려움에 빠지고, 결국 유학을 가기로 결심한다.
유학을 준비하는 한편 상담소 아이들과 비밀스런 작전을 펼치는 성훈. 이 일로 인해 성훈은 다시 한 번 엄마와 말다툼을 벌이고 무작정 가출을 감행하는데……
■ '작가의 말'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밤하늘을 수놓는 무수한 별들을 바라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각기 다른 수 억 개의 별들이 저마다의 빛을 내며 그들과 우리 사이에 놓인 시공을 넘어 존재하고, 우리 역시 그들에게 그렇게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세계'로 인식하며 '우주'라 부른다. 세계와 우주는 하나인 동시에 다른 존재들이며, 다른 존재들인 동시에 하나이기도 하다. 그 불가해한 곳에는 언젠가부터 두 발로 걷는 기이한 존재들이 살고 있어서, 우연한 생을 얻어 별처럼 빛나다 별처럼 허무하게 스러져간다. 우주는 넓고 세계는 다양하되, 두 발로 걷는 '인간'이란 존재는 좀체 땅에서 발을 떼지 못하고 작디작은 자기 발만 보고 살다 정말 소중한 것들을 보지 못하고 만다.
『비너스에게』는 동성애자(이자 미성년자)가 주인공이지만, 정작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다양성'에 대한 것이다. 하늘의 별들처럼 제각기 다른 빛을 발하며 그 자리에 존재하지만, 결국 하나가 되어 세계를 이루고 있는 인간 안의 다양성 말이다. 조화로운 세계란 모두 같은 모양을 지닌 채 한 가지 빛을 내는 곳이 아니라, 각자 자신만의 빛을 내며 그 자리를 묵묵히 견뎌내는 곳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그 빛이 모이면 환하고 아름다운 불덩이가 되어 어둡고 공허하며 차가운 인간의 삶을 따스하게 비추어줄 것이다.
■ '해설'에서
사춘기가 지나면 '세계의 프레임'이 말끔하게 정리될 것이라는 우리의 생각은 틀렸다. 세계의 프레임이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오늘 알고 있는 세계에 대한 지식이 내일 뒤바뀔 수도 있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수천 년 전 지구인들은 인정할 수 없었듯이.
우리는 가끔 이 세계가 '완성작'이 아니라 '공사 중'이라는 사실을 망각한다. 세계의 윤곽선은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살아가며, 아직 말랑말랑한 세계의 윤곽선을 조금씩 매만지고 다듬어나가고 있다.
19세기만 해도 동성애는 '치유해야 할 질병'이었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동성애를 일종의 질병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학은 끊임없는 연구와 실험을 통해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인간의 본성'을 발견해낸다. 문학은 때로는 과학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도 말할 수 있다. 인간 개개인에게 존재하는 천차만별의 '차이'는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고. 그러므로 '너와 내가 다르다'는 사실로 타인을 무시하거나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우리에게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함으로써 더욱 다양한 빛깔의 삶을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문학평론가 정여울
[책속으로] 추가
- 나는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아침이면 일어나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툭탁거리고, 지루한 수업도 견뎌가며 어딜 가든 내 이름과 함께하는 'A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문장이 당연한 것인 줄 알았어. 나는 정말 낙오자가 된 거였고, 그게 바로 첫 키스 때문이라는 건 웃어넘길 수도 없는 악질적인 농담 같았어. 거짓말로 시작된 설문을 위해 쉬는 시간을 몽땅 바쳤던 일들이며 군에게 잘보이고 싶어했던 모든 과장된 말과 행동들, 군에게 가졌던 터무니없는 기대들, 그리고 죽는 날까지 내게는 '수치' 그 이상은 아닐 첫 키스의 당혹스럽고 황망한 기억. 도대체 어디쯤에서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는 건지 전혀 알 수 없었어. (70~71쪽)
- 비너스. 어른이 된다는 건 멋지고 완벽한 사랑을 가지게 되는 게 아니라, 양나 씨처럼 불완전한 사랑에 담담해진다는 걸까? 그렇다면 나도 이 고통이나 자책에서 온전히 벗어나는 게 아니라, 단지 무감각해지게 되는 것뿐인가? 이 순간의 아픔이 영원히 남게 되는 거냐고 양나 씨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나는 묻지 않았어. 내 질문에 양나 씨가 "그래, 소년. 불행히도 우리가 한 번 겪은 시간은 우리에게 영원히 남아버려"라고 답하는 것을 듣고 싶지 않았거든. (93쪽)
- 나는 내가 만일 이성애자였다면, 이라는 가정을 좋아하지 않아. 가정은 가정일 뿐 현실이 될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때 처음 생각해보았어. 이성애자였다면. 사람들이 그렇게 길고 지루하며 복잡한 과정을 통해 결합하는 법적인 관계를 만들고, 또다시 그러한 과정을 겪어야만 헤어질 수 있는 결혼제도를 만들어낸 건 어차피 사람 모두가 가볍고 무성의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은 아닐까? (104~105쪽)
-비너스. 나는 현신의 부드러운 음성에서 어떤 멜로디를 들을 수 있어. 그건 무척이나 매혹적이고 아름다우며 순수해서 내 마음을 흔들어. 어쩌면 나는 다시 사랑에 빠지고 있는 건지도 몰라. 참 이상한 일이야.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가 생겨난다는 것은. 만일 내가 현신을 정말로 사랑하게 된다면 아마도 군에 대한 사랑과는 완전히 다를 거야. 우리는 사랑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는 거고, 사람은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랑할 테니까. (130~131쪽)
- 소년에서 어른이 되는 유일한 방법은 상처를 끊임없이 받는 수밖에는 없는 것처럼 여겨져. 그 말은 우리가 모르는 시간 안에도 이미 지나온 시간 안에서처럼 무수한 상처들이 숨겨져 있고, 그 시간을 통과하려면 상처 역시 필연적으로 겪어낼 수밖에 없다는 뜻. 두렵고 무섭지만, 고통이 뭔지를 알게 되는 게 그렇게 나쁜 일일까? (177쪽)
목차
목차
1. 사랑은 어디에서 올까
2. 망상의 끝은 괴로워
3. 낙오자가 되는 건 싫어
4. 세상 모두를 사랑할 수 있는
5. 오맙또 프라이데이
6. 일상의 틈새
7. 뿔로 받는 날
8. 경계인
9. 위로를 주고받기
10. 달려라 달려 달
11. 사랑의 밤
2. 망상의 끝은 괴로워
3. 낙오자가 되는 건 싫어
4. 세상 모두를 사랑할 수 있는
5. 오맙또 프라이데이
6. 일상의 틈새
7. 뿔로 받는 날
8. 경계인
9. 위로를 주고받기
10. 달려라 달려 달
11. 사랑의 밤
저자
저자
권하은
백석예술대학 미술과를 졸업하고, 『미술신문』 『미술세계』에서 취재기자로 활동했다. 청소년소설 『바람이 노래한다』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발이 닿지 않는 아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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