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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걸어본다 1: 용산)
이광호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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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걷고’ 또 ‘봐도’ 지치지 않는, 당신만의 ‘그곳’은 어디인가요?
소박하지만 또렷한 목적 아래 매일같이 예술로 사는 작가들의 매일 같은 발걸음을 좇아보자 하는 의도로 시도되는 기획 시리즈 「걸어본다」제 1편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문학평론가 이광호가 현재 그의 생활 터전이기도 한 ‘용산구’를 테마로 걷고 보고 쓰면서 관통해낸 이야기를 ‘용산에서의 독백’이라는 부제로 담아낸 책이다. 저자는 문화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여전히 복잡다단한 한국에서의 ‘용산’이라는 입지는 ‘과도하게 산문적이라고’ 말하며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곳곳을 자유롭게 산책한다.
총 3부로 구성하여 ‘용산구’를 크게 서쪽과 동쪽과 남쪽으로 나누어 각각에 위치한 동네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책에 담겨진 사진들은 모두 ‘휴대폰’으로 저자가 직접 촬영한 것으로 이 책의 글이 그렇듯, 어떤 대상을 만났을 때의 즉흥성을 특징으로 한다. 책 안에는 산책자의 걸음 동선을 따라 걷기 쉽게 표시한 용산 지도가 펼쳐진다.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조성흠 작가가 그린 것으로, 그 역시 용산에 오래 살았던 경험을 토대로 정확성과 전문성을 더했다. 더불어 주요한 지하철역과 책 안에 언급되는 지역들을 빠짐없이 수록하여 당장이라도 용산을 탐방할 수 있도록 도왔다.
소박하지만 또렷한 목적 아래 매일같이 예술로 사는 작가들의 매일 같은 발걸음을 좇아보자 하는 의도로 시도되는 기획 시리즈 「걸어본다」제 1편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문학평론가 이광호가 현재 그의 생활 터전이기도 한 ‘용산구’를 테마로 걷고 보고 쓰면서 관통해낸 이야기를 ‘용산에서의 독백’이라는 부제로 담아낸 책이다. 저자는 문화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여전히 복잡다단한 한국에서의 ‘용산’이라는 입지는 ‘과도하게 산문적이라고’ 말하며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곳곳을 자유롭게 산책한다.
총 3부로 구성하여 ‘용산구’를 크게 서쪽과 동쪽과 남쪽으로 나누어 각각에 위치한 동네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책에 담겨진 사진들은 모두 ‘휴대폰’으로 저자가 직접 촬영한 것으로 이 책의 글이 그렇듯, 어떤 대상을 만났을 때의 즉흥성을 특징으로 한다. 책 안에는 산책자의 걸음 동선을 따라 걷기 쉽게 표시한 용산 지도가 펼쳐진다.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조성흠 작가가 그린 것으로, 그 역시 용산에 오래 살았던 경험을 토대로 정확성과 전문성을 더했다. 더불어 주요한 지하철역과 책 안에 언급되는 지역들을 빠짐없이 수록하여 당장이라도 용산을 탐방할 수 있도록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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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난다의 새 시리즈 》걸어본다《 첫 책!
문학평론가 이광호가 걷고, 보고, 쓴, 용산!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문학동네 임프린트 난다에서 새 시리즈를 선보입니다. '걸어본다'라는 소박하지만 또렷한 목적 아래 매일같이 예술로 사는 작가들의 매일 같은 발걸음을 좇아보자 하는 의도로 시도되는 기획이지요. 예술가들에게 산책이란 곧 사유로 이어집니다. 사유는 곧 거리두기를 보태 예술이라는 무한한 아름다움으로 승화되지요. 여행이 아니라 관광이 아니라 바야흐로 산책. 지금껏 우리는 왜 그토록 먼 데로만, 거창한 데로만 자주 시선을 돌리고 몸을 혹사시켜왔던 걸까요.
어디로 가서 무엇을 봐야 하나요? 시작은 이 말미에 붙은 물음표 하나에서 기인했습니다. 낯선 도시에 이끌려 트렁크를 들고 내렸는데 관광지의 천편일률적인 코스가 싫어 숙소 한구석에 차렷하고 손 든 옷걸이처럼 처박혀 있다가 다시금 발 돌리기를 두어 차례 경험하고 나니 그 순간마다 '책'의 어떤 필요성에 간절히 기대게 됐던 겁니다. 우리들 저마다의 '고향'에 대한 이야기는 어떻고, 저마다의 사는 '동네'에 관한 이야기는 또 어떻고요. 의구심을 가지며 한 지역 한 지역 적어나가니 용케도 우리나라 곳곳에, 나아가 세계 곳곳에 사는 우리 작가들이 랜드 마크처럼 솟아올랐습니다. 최소한 그들은 명품 쇼핑 알차게 하는 요령 따위에 제 산책 시간을 허비하지는 않을 테지요. 최대한 그들은 자신들의 예술 세계에 깊이 투영될 수 있는 보다 존재론적인 고민 속에 하늘과 땅을 제 속내의 쿠션으로 활용해왔을 테지요.
그래서 작가들에게 이렇게 묻게 된 겁니다. 아무리 '걷고' 또 '봐도' 지치지 않는, 당신만의 '그곳'은 어디인가요? 이와 같은 취지 속에 완성이 된 그 첫 권이 여기 놓여 있습니다. 문학평론가 이광호가 현재 그의 생활의 터전이기도 한 '용산구'를 테마로 걷고 보고 쓰면서 발끝으로 관통해낸 이야기. '용산에서의 독백'이라는 부제가 달린 책,『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입니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용산구'를 크게 서쪽과 동쪽과 남쪽으로 나누어 각각에 위치한 동네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식이지요. 1부는 '오래된 망각'이라는 제목 아래 삼각지, 효창공원, 청파동, 용산전자상가, 용산역, 서부이촌동을, 2부는 '나누어진 인공낙원'이라는 제목 아래 삼각지 화랑거리, 전쟁기념관, 녹사평역, 해방촌, 이태원, 후커 힐, 남산을, 3부는 '침묵의 상속자들'이라는 제목 아래 한남동, 동부이촌동, 국립중앙박물관, 남일당 터를 다루고 있지요. 각 부를 여는 앞 장마다 각 부별로 전개되는 산책 코스를 담은 지도 또한 빼먹지 않았습니다.
"친절한 여행 안내서도 아니고 글쓴이의 얼굴이 오롯이 드러나는 수필도 아니며 소설이나 시라는 이름의 문학은 더더욱" 아니라고 저자는 서문을 빌려 말한 바 있지만, 어쩌면 각각의 줄기가 하나의 다발로 조화를 이룬 결과물이 바로 이 저작이 아닐까 합니다. 때로는 친절하게 여행 안내자로 길을 앞서나가며 주린 배를 채워줄 가게 문을 드르륵 열어주기도 하고(본문 곳곳에 맛집으로 소문이 자자한 가게의 문패가 걸려 있음), 때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은키시 은콘디》라는 작품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오늘의 자신을 들키기도 하며(p141), 때로는 "하늘에서 죽는 새는 없다는 것, 결국 땅으로 내려와 죽어야 한다는 것을 일찍 알았다. 어린 날 조류의 어떤 깊이도 없는 눈을 두려워하는 것이 그것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p137) 라는 시와 같은 문장들을 심심치 않게 흩뿌려놓기도 하니까요.
리움 미술관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55길 60-16 위쪽으로 올라가면 시작되는 이 거리는 아랫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다한 상점들이 거의 없고 고요한 골목과 마치 성채 같은 높은 담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그 담 안쪽 삶의 실제는 알 수 없지만, 텔레비전의 주말 드라마는 이 담 안의 삶을 끊임없이 전시한다. 이 높은 성채들은 미군 부대의 긴 담들과 유사한 방식으로 용산이라는 공간을 쪼개고 나누어 고립과 단절의 장소로 만든다. 사람들이 사는 곳에 있어야 하는 슈퍼, 목욕탕, 미용실, 세탁소, 분식점 같은 것들은 이 골목에는 필요하지 않다. 그 대신에 이 골목들에 자주 발견되는 것은 경비 초소나 방범 초소 같은 것들이다. 행인들이 거의 없는 이 거리의 폐쇄성은 번잡한 이태원 거리와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공간을 만든다. 자동차를 타지 않고 이 거리를 걸어가보면, 다른 세계에서 온 이방인이라는 신분이 금방 노출된다. 이 거리는 컵라면이나 맥주를 앞에 놓고 슈퍼 앞에 걸터앉는 일 따위는 벌이지 않는다.
-「주의력이 없는 도시-이태원」
목적이 없기에 참으로 자유롭게 이어지던 용산 산책의 기록. 산책자가 산책의 타깃을 '이곳'으로 삼고 관심의 촉을 면밀히 겨눴던 배경에는 문화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여전히 복잡다단한 한국에서의 '용산'이라는 입지의 호기심이 한몫을 했을 것입니다.
용산은 애써 지우고 싶은 식민과 이식의 역사와 모욕과 단절의 시간이 폭력적인 개발을 호출하는 기이한 장소이다. 불균등한 시간들이 어지럽게 교차하면서 일상적 우울과 권태와 뒤섞일 때, 용산의 '과도한 산문성'이 만들어진다.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구성하는 여러 겹의 '식민의 시간'이 여전히 현재의 삶을 규정하고 있다면, 참담하고 역동적인 모더니티의 장소로서의 용산은 다시 성찰의 대상이 될 만하다.
-「얼굴 없는 산책의 흔적」부분
우리들에게 용산은 저마다 어떤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을까요. 우리는 왜 기차를 타러 용산역에 가는지, 우리는 왜 컴퓨터를 수리하러 용산전자상가에 가는지, 우리는 왜 색다른 문화를 체험하고자 이태원에 가는지, 우리는 왜 노인들을 찍으러 효창공원에 가는지…… 이 책은 바로 그 '왜'라는 물음에 대한 친절한 답변의 노트이기도 합니다. 산책자의 말은 가르침이 아니라 함께 걷는 자가 곁일 때 발을 맞추는 리듬으로의 이른바 독백인 까닭입니다. 지극히 사실적으로 놓인 길과 건물 앞에서 절로 유지되는 객관적 거리감에 제 감상이나 제 추측 따위에 궤변을 늘어놓을 겨를조차 없지요. 그래서 참 맑지만 한편으로 불투명한 뒤끝이 남는 건 걷는다는 행위, 즉 걷는다는 일로 맞닥뜨리게 되는 '나'와의 만남이 그리 명쾌하고 흔쾌하지만은 않기 때문일 겁니다. 그 맞부딪침으로 번번이 '나'와 대면하는 일은 그러나 끊임없이 나의 허물을 절로 벗겨지게 만들지요. 걸음과 동시에 이뤄지는 탈피. 흘리는 땀만큼 가벼워지는 솜털. 그걸 증명하게 하는 바람. 길 위에서 걷지 않으면 절대로 맞을 수 없는 그 바람이라는 손의 치유. 오늘날 우리가 바라고 우리에게 필요한 책의 역할은 바로 이러한 '오감 열기'의 열쇠가 되어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오래된 식민지 시대의 계단에서 등이 굽은 할머니가 폐지를 줍는다.
어떤 지독한 기억은 이 생애가 끝날 때까지 지워지지 않을 것 같지만 반드시 망각의 순간이 도래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가장 아름답고 참혹한 얼굴도 마침내 지워지는 시간이 올 것이다. 하지만 그 최후의 순간에도 망각은 그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거한다. '너를 잊게 된다는 것'은 '네가 있었다는 것'에 대한 증명이다.
-「다른 기다림이 찾아온다」 부분
짐작하셨겠지만 이 책을 심심치 않게 채운 사진들은 모두 산책자가 '휴대폰'으로 촬영한 것입니다. 어떤 대상을 찍기 위한 준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어떤 대상을 만났을 때 절로 휴대폰을 꺼내 찍었을 즉흥성에 기인하는 바가 큰데 글과 참 묘하게도 닮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책의 겉표지를 펼쳐 그 안을 살피면 산책자의 걸음 동선을 따라 걷기 쉽게 표시한 용산 지도가 한 장 나옵니다.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조성흠 작가가 그린 것으로, 그 역시 용산에 오래 살았던 경험을 토대로 정확성과 전문성에 기인하여 공을 들여보았습니다. 주요한 지하철역과 책 안에 언급되는 지역들은 빠짐없이 표시를 해두었으니 용산 탐방이라도 나설 적에 가방 속에 넣어두시면 요긴한 도움이 될 듯합니다.
난다의 》걸어본다《 시리즈는 앞으로도 강석경의 경주, 허수경의 뮌스터, 강병융의 류블랴나, 황현산의 비금도 등 지역을 대표하는 예술가들의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읽을거리로 여러분들을 찾아갈 예정입니다. 느긋한 마음으로 이곳저곳을 거닐 줄 아는 예술가들의 산책길을 뒤따르는 과정 속에 저마다의 '나'를 찾아보자는 의도답게, 산책이라는 발 디딤의 아름다움을 모두가 '삶'이라 부르는 그날까지 국내, 나아가 세계지도 곳곳에 방점을 찍어볼 작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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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25년간 발 딛고 살 때 나는 지층의 울림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아니 무관심했다고 하는 편이 정직하다. 한 문학평론가의 '용산에서의 독백'을 읽고 그것을 깨달았다. 역사는 삶의 시각을 확대시킨다. 13세기 고려 말 몽고군이 병참기지로 활용했다는 용산 동쪽들판을 떠올리니 역사의 잔뿌리에 달려 있는 개인의 삶들이 보다 더 애잔하게 다가왔다. 근세사의 고독이 묻혀 있는 용산에서 시간의 지층을 고고학자처럼 파내려가는 이 산책자가 쏟아내는 삶의 잠언들은 불편하지만, 진실이기에 아름답다. "풍경은 풍경 너머로 나아가는 혼자만의 시선 때문에 자기 안의 상처처럼 박힌다." "우연들의 의미를 찾아낸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삶은 피할 수 없이 잔혹해 보인다." "도시가 내 영혼의 텅 빈 공간으로 느껴질 때 이 거리는 내게 자기 처벌의 장소가 되었다." 산책자를 뒤따라 '거대한 가상 무대와 같은' 용산을 따라가면 혼란스러운 스타일의 드래곤 힐 스파, 흐린 오후 이태원의 이슬람 사원 앞 전화 부스에서 전화를 걸고 있는 아랍 청년의 깊고 불안한 두 눈, 철거민 다섯 명과 경찰 한 명이 숨진 옛 금은방 남일당 터의 주차장을 만난다. 용산은 바로 한국 현대사의 축소판이며 산책자가 그린 이 의식의 세밀화는 부박한 시대에 바치는 '진정성'이라는 선물과도 같다. '강물에 던져진 돌이 스스로 가라앉는 시간을 음미하는 것' 같은.
─강석경(소설가)
작가의 말
이 책은 용산이라는 장소의 특정성에 글쓰는 산책자인 '나'라는 익명의 실존이 돌아다닌 흔적이다. 목적 없는 산책은 이 도시의 공간과 리듬에 대한 저항이며 동시에 탐미이다. 이야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무심한 걸음걸이의 동선, 장소와 이미지 들의 우연한 대면만이 있다. 장소에 대한 정보들은 '너'라는 부재를 향한 일인칭의 독백, 장소를 둘러싼 감각의 파편들과 어색하게 동거하게 되었다. 전달해야 할 정보들과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는 침묵의 언어 사이의 감당할 수 없는 흔들림 때문에 이렇게 이상한 독백이 생겨났다. 이런 얼굴 없는 글쓰기를 '익명적인 에세이'라고 부르려 했다.
왜 하필 '용산'이어야 했나? 나날의 삶을 통해 잘 알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겠지만, 용산이라는 모더니티의 참혹함과 혼종성에 이끌렸을 것이다. 용산의 순결할 수 없는 시간과 장소 들은 사회적인 시간과 신체의 감각이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는 먼 과거의 것들을 보존하려는 당위와 노력에 비해 가까운 과거인 근대의 기억들은 잊으려 한다는 것이다. '민족 이야기'에 대한 동경과 '식민지 근대'에 대한 불편함이 이런 자발적인 망각을 낳게 했을 것이나, 서울 중심부의 거대한 땅에 아직도 외국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엄연한 사실은 그 망각의 이유가 동시대적인 요인을 갖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용산은 애써 지우고 싶은 식민과 이식의 역사와 모욕과 단절의 시간이 폭력적인 개발을 호출하는 기이한 장소이다. 불균등한 시간들이 어지럽게 교차하면서 일상적 우울과 권태와 뒤섞일 때, 용산의 '과도한 산문성'이 만들어진다.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구성하는 여러 겹의 '식민의 시간'이 여전히 현재의 삶을 규정하고 있다면, 참담하고 역동적인 모더니티의 장소로서의 용산은 다시 성찰의 대상이 될 만하다.
(……)
원고를 정리하는 중에 너무 많은 생명들이 어처구니없는 참사를 당했다. 용산과 세월호 사이의 서로를 마주보는 비극의 연대기와 '국가'의 참혹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만 했다. 무력감과 죄의식은 오래고 익숙한 것이나, 한 시대의 애도는 한 개인의 애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어떤 글쓰기는 피할 수 없이 애도의 제의가 될 수밖에 없다. 예정된 망각과 마비와 자기기만으로부터 끈질긴 애도를 지키는 것은 문학적인 동시에 정치적인 기다림의 문제이다.
이 글쓰기가 문학 제도와 지식 영역의 관습과 경계에 미세한 균열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비애의 상투성에 저항하고 그것의 단독성과 개별성을 보존하는 것을 문학적 글쓰기라고 생각해왔다. 글쓰기는 삶의 기록이 아니라, 삶의 외부를 향하는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긴장과 침묵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곳곳에 부끄럽게 산재해 있을 끈질긴 자기 연민 때문에 오래 참담할 것이다.
호명하는 것조차 미안한, 가깝고 먼 곳의 이름들에게, 염치없는 고마움을 전한다. 안부를 물을 수 없는 세계에 속한 '당신들'에게 이 책으로 내 남루한 안부를 대신한다.
2014년 5월 이광호
문학평론가 이광호가 걷고, 보고, 쓴, 용산!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문학동네 임프린트 난다에서 새 시리즈를 선보입니다. '걸어본다'라는 소박하지만 또렷한 목적 아래 매일같이 예술로 사는 작가들의 매일 같은 발걸음을 좇아보자 하는 의도로 시도되는 기획이지요. 예술가들에게 산책이란 곧 사유로 이어집니다. 사유는 곧 거리두기를 보태 예술이라는 무한한 아름다움으로 승화되지요. 여행이 아니라 관광이 아니라 바야흐로 산책. 지금껏 우리는 왜 그토록 먼 데로만, 거창한 데로만 자주 시선을 돌리고 몸을 혹사시켜왔던 걸까요.
어디로 가서 무엇을 봐야 하나요? 시작은 이 말미에 붙은 물음표 하나에서 기인했습니다. 낯선 도시에 이끌려 트렁크를 들고 내렸는데 관광지의 천편일률적인 코스가 싫어 숙소 한구석에 차렷하고 손 든 옷걸이처럼 처박혀 있다가 다시금 발 돌리기를 두어 차례 경험하고 나니 그 순간마다 '책'의 어떤 필요성에 간절히 기대게 됐던 겁니다. 우리들 저마다의 '고향'에 대한 이야기는 어떻고, 저마다의 사는 '동네'에 관한 이야기는 또 어떻고요. 의구심을 가지며 한 지역 한 지역 적어나가니 용케도 우리나라 곳곳에, 나아가 세계 곳곳에 사는 우리 작가들이 랜드 마크처럼 솟아올랐습니다. 최소한 그들은 명품 쇼핑 알차게 하는 요령 따위에 제 산책 시간을 허비하지는 않을 테지요. 최대한 그들은 자신들의 예술 세계에 깊이 투영될 수 있는 보다 존재론적인 고민 속에 하늘과 땅을 제 속내의 쿠션으로 활용해왔을 테지요.
그래서 작가들에게 이렇게 묻게 된 겁니다. 아무리 '걷고' 또 '봐도' 지치지 않는, 당신만의 '그곳'은 어디인가요? 이와 같은 취지 속에 완성이 된 그 첫 권이 여기 놓여 있습니다. 문학평론가 이광호가 현재 그의 생활의 터전이기도 한 '용산구'를 테마로 걷고 보고 쓰면서 발끝으로 관통해낸 이야기. '용산에서의 독백'이라는 부제가 달린 책,『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입니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용산구'를 크게 서쪽과 동쪽과 남쪽으로 나누어 각각에 위치한 동네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식이지요. 1부는 '오래된 망각'이라는 제목 아래 삼각지, 효창공원, 청파동, 용산전자상가, 용산역, 서부이촌동을, 2부는 '나누어진 인공낙원'이라는 제목 아래 삼각지 화랑거리, 전쟁기념관, 녹사평역, 해방촌, 이태원, 후커 힐, 남산을, 3부는 '침묵의 상속자들'이라는 제목 아래 한남동, 동부이촌동, 국립중앙박물관, 남일당 터를 다루고 있지요. 각 부를 여는 앞 장마다 각 부별로 전개되는 산책 코스를 담은 지도 또한 빼먹지 않았습니다.
"친절한 여행 안내서도 아니고 글쓴이의 얼굴이 오롯이 드러나는 수필도 아니며 소설이나 시라는 이름의 문학은 더더욱" 아니라고 저자는 서문을 빌려 말한 바 있지만, 어쩌면 각각의 줄기가 하나의 다발로 조화를 이룬 결과물이 바로 이 저작이 아닐까 합니다. 때로는 친절하게 여행 안내자로 길을 앞서나가며 주린 배를 채워줄 가게 문을 드르륵 열어주기도 하고(본문 곳곳에 맛집으로 소문이 자자한 가게의 문패가 걸려 있음), 때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은키시 은콘디》라는 작품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오늘의 자신을 들키기도 하며(p141), 때로는 "하늘에서 죽는 새는 없다는 것, 결국 땅으로 내려와 죽어야 한다는 것을 일찍 알았다. 어린 날 조류의 어떤 깊이도 없는 눈을 두려워하는 것이 그것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p137) 라는 시와 같은 문장들을 심심치 않게 흩뿌려놓기도 하니까요.
리움 미술관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55길 60-16 위쪽으로 올라가면 시작되는 이 거리는 아랫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다한 상점들이 거의 없고 고요한 골목과 마치 성채 같은 높은 담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그 담 안쪽 삶의 실제는 알 수 없지만, 텔레비전의 주말 드라마는 이 담 안의 삶을 끊임없이 전시한다. 이 높은 성채들은 미군 부대의 긴 담들과 유사한 방식으로 용산이라는 공간을 쪼개고 나누어 고립과 단절의 장소로 만든다. 사람들이 사는 곳에 있어야 하는 슈퍼, 목욕탕, 미용실, 세탁소, 분식점 같은 것들은 이 골목에는 필요하지 않다. 그 대신에 이 골목들에 자주 발견되는 것은 경비 초소나 방범 초소 같은 것들이다. 행인들이 거의 없는 이 거리의 폐쇄성은 번잡한 이태원 거리와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공간을 만든다. 자동차를 타지 않고 이 거리를 걸어가보면, 다른 세계에서 온 이방인이라는 신분이 금방 노출된다. 이 거리는 컵라면이나 맥주를 앞에 놓고 슈퍼 앞에 걸터앉는 일 따위는 벌이지 않는다.
-「주의력이 없는 도시-이태원」
목적이 없기에 참으로 자유롭게 이어지던 용산 산책의 기록. 산책자가 산책의 타깃을 '이곳'으로 삼고 관심의 촉을 면밀히 겨눴던 배경에는 문화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여전히 복잡다단한 한국에서의 '용산'이라는 입지의 호기심이 한몫을 했을 것입니다.
용산은 애써 지우고 싶은 식민과 이식의 역사와 모욕과 단절의 시간이 폭력적인 개발을 호출하는 기이한 장소이다. 불균등한 시간들이 어지럽게 교차하면서 일상적 우울과 권태와 뒤섞일 때, 용산의 '과도한 산문성'이 만들어진다.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구성하는 여러 겹의 '식민의 시간'이 여전히 현재의 삶을 규정하고 있다면, 참담하고 역동적인 모더니티의 장소로서의 용산은 다시 성찰의 대상이 될 만하다.
-「얼굴 없는 산책의 흔적」부분
우리들에게 용산은 저마다 어떤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을까요. 우리는 왜 기차를 타러 용산역에 가는지, 우리는 왜 컴퓨터를 수리하러 용산전자상가에 가는지, 우리는 왜 색다른 문화를 체험하고자 이태원에 가는지, 우리는 왜 노인들을 찍으러 효창공원에 가는지…… 이 책은 바로 그 '왜'라는 물음에 대한 친절한 답변의 노트이기도 합니다. 산책자의 말은 가르침이 아니라 함께 걷는 자가 곁일 때 발을 맞추는 리듬으로의 이른바 독백인 까닭입니다. 지극히 사실적으로 놓인 길과 건물 앞에서 절로 유지되는 객관적 거리감에 제 감상이나 제 추측 따위에 궤변을 늘어놓을 겨를조차 없지요. 그래서 참 맑지만 한편으로 불투명한 뒤끝이 남는 건 걷는다는 행위, 즉 걷는다는 일로 맞닥뜨리게 되는 '나'와의 만남이 그리 명쾌하고 흔쾌하지만은 않기 때문일 겁니다. 그 맞부딪침으로 번번이 '나'와 대면하는 일은 그러나 끊임없이 나의 허물을 절로 벗겨지게 만들지요. 걸음과 동시에 이뤄지는 탈피. 흘리는 땀만큼 가벼워지는 솜털. 그걸 증명하게 하는 바람. 길 위에서 걷지 않으면 절대로 맞을 수 없는 그 바람이라는 손의 치유. 오늘날 우리가 바라고 우리에게 필요한 책의 역할은 바로 이러한 '오감 열기'의 열쇠가 되어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오래된 식민지 시대의 계단에서 등이 굽은 할머니가 폐지를 줍는다.
어떤 지독한 기억은 이 생애가 끝날 때까지 지워지지 않을 것 같지만 반드시 망각의 순간이 도래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가장 아름답고 참혹한 얼굴도 마침내 지워지는 시간이 올 것이다. 하지만 그 최후의 순간에도 망각은 그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거한다. '너를 잊게 된다는 것'은 '네가 있었다는 것'에 대한 증명이다.
-「다른 기다림이 찾아온다」 부분
짐작하셨겠지만 이 책을 심심치 않게 채운 사진들은 모두 산책자가 '휴대폰'으로 촬영한 것입니다. 어떤 대상을 찍기 위한 준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어떤 대상을 만났을 때 절로 휴대폰을 꺼내 찍었을 즉흥성에 기인하는 바가 큰데 글과 참 묘하게도 닮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책의 겉표지를 펼쳐 그 안을 살피면 산책자의 걸음 동선을 따라 걷기 쉽게 표시한 용산 지도가 한 장 나옵니다.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조성흠 작가가 그린 것으로, 그 역시 용산에 오래 살았던 경험을 토대로 정확성과 전문성에 기인하여 공을 들여보았습니다. 주요한 지하철역과 책 안에 언급되는 지역들은 빠짐없이 표시를 해두었으니 용산 탐방이라도 나설 적에 가방 속에 넣어두시면 요긴한 도움이 될 듯합니다.
난다의 》걸어본다《 시리즈는 앞으로도 강석경의 경주, 허수경의 뮌스터, 강병융의 류블랴나, 황현산의 비금도 등 지역을 대표하는 예술가들의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읽을거리로 여러분들을 찾아갈 예정입니다. 느긋한 마음으로 이곳저곳을 거닐 줄 아는 예술가들의 산책길을 뒤따르는 과정 속에 저마다의 '나'를 찾아보자는 의도답게, 산책이라는 발 디딤의 아름다움을 모두가 '삶'이라 부르는 그날까지 국내, 나아가 세계지도 곳곳에 방점을 찍어볼 작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추천글
서울서 25년간 발 딛고 살 때 나는 지층의 울림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아니 무관심했다고 하는 편이 정직하다. 한 문학평론가의 '용산에서의 독백'을 읽고 그것을 깨달았다. 역사는 삶의 시각을 확대시킨다. 13세기 고려 말 몽고군이 병참기지로 활용했다는 용산 동쪽들판을 떠올리니 역사의 잔뿌리에 달려 있는 개인의 삶들이 보다 더 애잔하게 다가왔다. 근세사의 고독이 묻혀 있는 용산에서 시간의 지층을 고고학자처럼 파내려가는 이 산책자가 쏟아내는 삶의 잠언들은 불편하지만, 진실이기에 아름답다. "풍경은 풍경 너머로 나아가는 혼자만의 시선 때문에 자기 안의 상처처럼 박힌다." "우연들의 의미를 찾아낸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삶은 피할 수 없이 잔혹해 보인다." "도시가 내 영혼의 텅 빈 공간으로 느껴질 때 이 거리는 내게 자기 처벌의 장소가 되었다." 산책자를 뒤따라 '거대한 가상 무대와 같은' 용산을 따라가면 혼란스러운 스타일의 드래곤 힐 스파, 흐린 오후 이태원의 이슬람 사원 앞 전화 부스에서 전화를 걸고 있는 아랍 청년의 깊고 불안한 두 눈, 철거민 다섯 명과 경찰 한 명이 숨진 옛 금은방 남일당 터의 주차장을 만난다. 용산은 바로 한국 현대사의 축소판이며 산책자가 그린 이 의식의 세밀화는 부박한 시대에 바치는 '진정성'이라는 선물과도 같다. '강물에 던져진 돌이 스스로 가라앉는 시간을 음미하는 것' 같은.
─강석경(소설가)
작가의 말
이 책은 용산이라는 장소의 특정성에 글쓰는 산책자인 '나'라는 익명의 실존이 돌아다닌 흔적이다. 목적 없는 산책은 이 도시의 공간과 리듬에 대한 저항이며 동시에 탐미이다. 이야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무심한 걸음걸이의 동선, 장소와 이미지 들의 우연한 대면만이 있다. 장소에 대한 정보들은 '너'라는 부재를 향한 일인칭의 독백, 장소를 둘러싼 감각의 파편들과 어색하게 동거하게 되었다. 전달해야 할 정보들과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는 침묵의 언어 사이의 감당할 수 없는 흔들림 때문에 이렇게 이상한 독백이 생겨났다. 이런 얼굴 없는 글쓰기를 '익명적인 에세이'라고 부르려 했다.
왜 하필 '용산'이어야 했나? 나날의 삶을 통해 잘 알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겠지만, 용산이라는 모더니티의 참혹함과 혼종성에 이끌렸을 것이다. 용산의 순결할 수 없는 시간과 장소 들은 사회적인 시간과 신체의 감각이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는 먼 과거의 것들을 보존하려는 당위와 노력에 비해 가까운 과거인 근대의 기억들은 잊으려 한다는 것이다. '민족 이야기'에 대한 동경과 '식민지 근대'에 대한 불편함이 이런 자발적인 망각을 낳게 했을 것이나, 서울 중심부의 거대한 땅에 아직도 외국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엄연한 사실은 그 망각의 이유가 동시대적인 요인을 갖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용산은 애써 지우고 싶은 식민과 이식의 역사와 모욕과 단절의 시간이 폭력적인 개발을 호출하는 기이한 장소이다. 불균등한 시간들이 어지럽게 교차하면서 일상적 우울과 권태와 뒤섞일 때, 용산의 '과도한 산문성'이 만들어진다.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구성하는 여러 겹의 '식민의 시간'이 여전히 현재의 삶을 규정하고 있다면, 참담하고 역동적인 모더니티의 장소로서의 용산은 다시 성찰의 대상이 될 만하다.
(……)
원고를 정리하는 중에 너무 많은 생명들이 어처구니없는 참사를 당했다. 용산과 세월호 사이의 서로를 마주보는 비극의 연대기와 '국가'의 참혹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만 했다. 무력감과 죄의식은 오래고 익숙한 것이나, 한 시대의 애도는 한 개인의 애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어떤 글쓰기는 피할 수 없이 애도의 제의가 될 수밖에 없다. 예정된 망각과 마비와 자기기만으로부터 끈질긴 애도를 지키는 것은 문학적인 동시에 정치적인 기다림의 문제이다.
이 글쓰기가 문학 제도와 지식 영역의 관습과 경계에 미세한 균열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비애의 상투성에 저항하고 그것의 단독성과 개별성을 보존하는 것을 문학적 글쓰기라고 생각해왔다. 글쓰기는 삶의 기록이 아니라, 삶의 외부를 향하는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긴장과 침묵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곳곳에 부끄럽게 산재해 있을 끈질긴 자기 연민 때문에 오래 참담할 것이다.
호명하는 것조차 미안한, 가깝고 먼 곳의 이름들에게, 염치없는 고마움을 전한다. 안부를 물을 수 없는 세계에 속한 '당신들'에게 이 책으로 내 남루한 안부를 대신한다.
2014년 5월 이광호
목차
목차
preface 얼굴 없는 산책의 흔적
prologue 모든 장소는 시간의 이름이다
1부 오래된 망각
입체교차로가 있던 자리─삼각지
기억의 전쟁터─효창공원
몇 세기 전의 폐허─청파동
세운상가의 은밀한 그림자─용산전자상가
붉은빛의 가설무대─용산역
철교로 가는 고양이의 시간─서부이촌동
2부 나누어진 인공낙원
모작의 풍경들─삼각지 화랑거리
가장 비극적이거나 가장 희극적인─전쟁기념관
비현실적인 기다림─녹사평역
단기 체류의 저녁연기─해방촌
주의력이 없는 도시─이태원
무한으로 진입하는 밤─후커 힐
사람과 시간 사이의 신호─남산
3부 침묵의 상속자들
닿을 수 없는 언덕─한남동
용산의 옆얼굴─동부이촌동
순결할 수 없는 침묵─국립중앙박물관
식민지의 마지막 장면─남일당 터
epilogue 다른 기다림이 찾아온다
thumnail 용산에서의 독백
prologue 모든 장소는 시간의 이름이다
1부 오래된 망각
입체교차로가 있던 자리─삼각지
기억의 전쟁터─효창공원
몇 세기 전의 폐허─청파동
세운상가의 은밀한 그림자─용산전자상가
붉은빛의 가설무대─용산역
철교로 가는 고양이의 시간─서부이촌동
2부 나누어진 인공낙원
모작의 풍경들─삼각지 화랑거리
가장 비극적이거나 가장 희극적인─전쟁기념관
비현실적인 기다림─녹사평역
단기 체류의 저녁연기─해방촌
주의력이 없는 도시─이태원
무한으로 진입하는 밤─후커 힐
사람과 시간 사이의 신호─남산
3부 침묵의 상속자들
닿을 수 없는 언덕─한남동
용산의 옆얼굴─동부이촌동
순결할 수 없는 침묵─국립중앙박물관
식민지의 마지막 장면─남일당 터
epilogue 다른 기다림이 찾아온다
thumnail 용산에서의 독백
저자
저자
이광호
약력을 고쳐 쓴다고 삶이 달라지지 않는다. 태어난 지방 도시에 다시 가본 것은 수십여 년이 지난 뒤였다. 기억의 흔적을 찾지 못해서 다행스러웠다. 서울의 한 동네 안에서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다녔다. 집에서 학교가 가까운 게 싫어졌기 때문에, 먼 곳의 학교를 다니는 상상을 했다. 대학 시절 학과에서 제때 졸업한 몇 안 되는 남학생 중의 하나였고, 졸업식은 가지 않았으며, 몇 년 후 문학비평가가 되었다. 진해에서 해군사관생도를 가르친 적이 있으며, 서울예술대학교 교수로 20여 년을 재직했다. 직장이 있던 남산과 안산 사이, 남산타워의 늦은 불빛과 서해안고속도로 화물차들의 둔중한 속도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가늠하지 못한다. 어느 날 출판사 대표가 되었다. 어떤 선택에도 충동과 단념이 섞여 있다. 사랑의 서사에서 일인칭 시간의 진실 같은 것은 없어서 『사랑의 미래』를 썼다. 일인칭의 사실성을 비껴가는 '익명의 에세이'라는 글쓰기에 이끌린다. 문학적 글쓰기는 자기 얼굴을 지우면서 침묵과 고독을 보존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의 유려한 풍광보다는 도시의 무의미한 그림자와 뒷골목의 어지러운 공기에 더 많이 매혹된다. 거리의 소음은 부주의하지만, 저녁의 걸음걸이가 만드는 무력한 리듬이 있다. 단일한 인격과 우월한 지혜를 가진 저자의 권위 같은 것을 잘 믿지 못한다. 약력을 쓰는 자는 약력의 주인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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