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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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박태를 받는 선지자(렘 18:18-23)
예레미야의 선지활동에 대하여 반감을 갖는 백성들이 모의를 꾸밉니다.
선지를 "죽이는 자"라는 무서운 흉계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안 선지는 자신의 심정을 하나님께 탄원합니다.
먼저
1. 백성들이 선지를 박해하려고 모함합니다.
18절 "그들이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꾀를 내어 예레미야를 치자… 오라 우리가 혀로 그를 치고…"
이 말은 일반 백성들은 당시 예레미야 선지 예언에 대하여 불신합니다. 왜냐하면 백성들을 선동하는 거짓 제사장, 지도자를 선지자들이 예레미야선지의 예언이 참람되고 거짓이라 했기 ?문이었습니다.
이에 영향받은 백성들이 예레미야선지를 제거해야겠다하여 모의를 했습니다.
2. 구덩이를 팠습니다.
20절 "…그들이 나의 생명을 해하려고 구덩이를 팠나이다…"
"구덩이"는 사람을 죽이려하는 수단입니다. 무자비한 일입니다. 요셉도 형돌의 미움을 받아 구덩이에 빠졌^다가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렸던 것입니다(창 37:24).
고대사회에서는 사람을 처형할 때 구덩이에 빠뜨려 그곳에서 나올수 없게 하여 굶어죽게 했습니다.
훗날 예레미야는 실제 빈구덩이에 빠져 죽게 되었을 때 왕궁 내시 구스인 에벳멜렉에 구조한 일이 있습니다(렘 38:13).
3. 선지가 기도합니다.
23절 "여호와여 그들이 나를 죽이려 하는 계략을 주께서 다 아시오니 그 악을 사하지 마옵시며 그들의 죄를 주의 목전에서 지우지 마시고 그들을 주 앞에 넘어지게 하시되…"
선지는 기도합니다.
무서운 죽음앞에서 구원을 주시는 이는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뿐이시기 때문입니다.
선지를 죽이려는 흉계는 구덩이에 빠뜨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선지의 길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선지의 길을 꿰뚫어 보시고 지켜주십니다.
다윗도 깊은 수렁과 웅덩이에서 건질 이는 하나님이시며 그 자신 발을 바위 위에 두시게 하신다고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합니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시 40:2)
깨진 옹기(렘 19:1-6, 10-12)
유다에 임할 심판의 불가피성을 깨진 옹기를 통하여 설명합니다.
예레미야선지는 토기장이에게 가서 옹기를 삽니다. 그리고, 흰놈의ㅔ 골짜기에 가서 옹기를 깨트려 버립니다. 그럼 "옹기"(오지병)란? 목이 좁고 오짓물을 발라서 구원 만든 윤이 나는 병입니다.
또한, 오짓물은 윤이 나게 하는 "잿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소중한 오지병(옹기)d을 깨트리라고 하는 가요?
그 이유는
1.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당신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4절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이 곳을 불결하게 하며…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무죄한 자의 피로…"
유다, 그들은 이방신을 예배함으로써 그곳을(가나안) 이방인문화와 종교를 놓인 그런 곳으로 변질시켜 놓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그 땅이 하나님이 조상에게 주신 땅인지, 이방땅인지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계시록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고 합니다.
계 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오늘날 현대사회에서 성도들, 교회는 세상의 세속적 물결에 물들지 말고 구별된 생활로 거룩성을 보존해야함입니다.
2. 자녀들을 이방신 번제로 드리는 것입니다.
5절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산당을 건축하고 자기 아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로 불살라 드렸나니…"
자녀들을 이방신 바알 제단에 인신제사로 드리는 것은 가나안 지역에서 잘 알려져 있었던 악한 풍습이었던 것입니다.
당시 그런 사례가 빈번했습니다(왕하 23:10). 요시아 당시에 흰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거행되었던 악습입니다.
이것은 유일하고 절대적인 주권에 대한 거부이며 여호와를 정면에서 모욕하는 행위였습니다.
즉, 이러한 행위는 자녀들의 신앙교육에 대한 매우 중요한 것임을 가르침이 있어야 함을 교훈합니다.
모세는 일찍이 모압평지에서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역설합니다. 신 6: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신 6:14 "너희는 다른 신들 곧 네 사면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르지 말라"
3. 웅기를 깨라고 하십니다.
11절 "…토기장이의 그릇을 한 번 깨뜨리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나니…"
"도벳"과 같이 재난을 내리시겠다고 경고합니다.
"도벳"은 시체를 매장하는 거대한 공동묘지입니다.
이는 썩은 고기를 먹는 야생새들과 공중의 새들이 밥이 되고 말 것이라는 재난과 경고이며 예고입니다.
이는 갈대인에게 팔려 나라가 망하고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됨을 암시함입니다.
그리고, 결코 인간 스스로 자기를 구원할 수 없는 힘없고 무기력한 존재라는 것이며, 오늘도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무가치한 존재이며 가련한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선지의 신앙(렘 20:1-13)
선지가 박해를 받습니다. 가해자는 성전의 총감독자, 제사장 바스홀입니다. 그는 선지를 때리고 쇠사슬로 묶고(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 가두워 둡니다(2절). 그러나, 바스홀은 구금되었던 선지를 석방하여 감옥에서 풀려납니다.
비록, 박해와 구금, 폭행, 모욕을 받으면서도 선지는 그의 신앙과 사명을 잘 드러냅니다.
1. 예언을 멈출 수 없다고 합니다.
9절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더욱더 거세어져가는 핍박중입니다. 그러한 와중속에 선지활동을 포기하고 침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불과 같아서 속에 다 담아둘 수 없는 것입니다.
선지는 사명을 멈추다면 오히려 견딜 수 없는 영적 고통이라고 합니다.
이는 성령의 감동 때문입니다.
에즈켈 선지도 그 발 강가에서 성령의 권능과 감동이 힘있게 임하며 말씀을 받습니다. 겔 3:17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곧, 시대적 사명인 것입니다. 즉, 참선지의 상은 핍박과 박해중에도 사명감이 더욱 불타게 됩니다.
중도에 포기하지 않스빈다. 반면, 바르지 못한 길을 걷는 선지는 그 길을 걷다가 중도에 포기합니다.
오히려 그 시대 참선지들을 박해합니다. 거짓 선지의 상입니다.
2.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신앙입니다.
11절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 하시므로…"
선지의 소중한 신앙입니다. 선지가 시대적 사명을 수행할 수 있게 됨은 이러한 신앙의 힘입니다.
"여호와가 나와 함께 하시니…"
이 신앙고백은 수 1:9에서도 언급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말씀을 주셨던 것입니다. 사명자의 길은 내가 혼자 가는 길로 생각하면 필패합니다. 반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신앙은 힘이며 능력입니다. 불패입니다.
다윗도 골리앗과 엘라골짜기 싸움에서 이 신앙으로 승리했스비니다.
이러한 기적은 나와 함께 하신다는 신앙의 힘이었습니다.
삼상 17:45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삼상 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그렇습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했습니다.
3.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13절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
찬양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응답적 신앙표현입니다. 즉, 인간이 할 수 없는 한계에서 도와주시는 이는 하나님의 구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지도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합니다.
예배중에 드리는 찬송은 복음찬양과 성격상 틀립니다. 찬송은 영원 죽을 수밖에 없는, 하나님을 떠난 죄 아래 인생을 주님을 믿어 구원 얻을 수 있게 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예배중 찬송을 통하여 응답하는 것입니다.
반면, 복음찬양은 예배중 하나님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받은 은혜에 대하여 신앙의 결단과 헌신의 표현입니다.
또한, 불신자들에게 복음 전파를 위한 간증시라 할 수 있습니다.
선지의 답변(렘 21:1-10)
시드기야는 유다 20대왕 중 마지막 왕으로 BC.586년 유다 왕국이 멸망할 때 두 아들과 자신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스비니다.
그는 예레미야 선지에게 사람을 보냅니다. 그리고, 바벨론 왕국의 침공을 막아달라고 부탁합니다. 즉, 하나님께 기도하여 기적을 나타내게 해달라는 것입니다(2절). 예레미야는 답변합니다.
1. 바벨론 침공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7절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손과 그들의 원수의 손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넘기리니… 측은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시드기야는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왕으로부터 침공을 받자 당황합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2. 항복하라는 것입니다.
9절 "갈대아인에게 나가서 항복하는 자는 살 것이나 그의 목숨은 전리품 같이 되리라"
예레미야는 백성을 향하여 갈대아인들에게 항복할 것을 권유합니다. 이는 그 시대에 있어 하나님의 계획이며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시드기야 왕과 정치 지도자들은 선지를 매국노로 보았습니다. 왜? 적에게 항복하고 투항하려고 선동하는가? 그들에게 핍박의 명분을 제공한 것이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지를 반역자로 여긴 것입니다(28장).
그러나, 선지가 주장하는 원리는 단순합니다.
여호와께서 유대사람들의 불의와 불순종으로 인하여 이 백성을 버리신 것과 따라서 멸망을 피할 수 없다는 필연성입니다.
그래서, 선지는 항복을 권유할 수박에 없다는 것이며 오히려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들이라고 권유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에서 회개한다면 미래에 치유와 회복을 주실 것이며 70년만에 예루살렘 귀환을 약속하심을 선지는 예언합니다.
사실, 그들의 선조 다윗은 하나님의 법도에 따라 나라를 통치함으로써 하나님의 축복가운데 유다는 번영으로 인도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분열왕국부터 대다수의 왕들은 다윗과 달리 불순종과 배도의 길을 걸었음으로 결국 멸망을 자초하게 된 것임을 자명하게 보여줍니다.
언약의 말씀(렘 22:1-9)
선지는 유다왕들과 백성들의 죄악상을 드러내며 비극적인 최후를 예언합니다, 더욱이 유 다왕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대리하여 공의로운 나라를 세우는데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유다왕들은 백성들에 앞서 하나님을 거역하였던 것입니다.
당시 왕궁은 장엄하고 웅대하여 화려한 모습처럼 유다왕실은 하나님께 귀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돌아올 것을 거듭 촉구합니다.
선지는
1. 언약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2절 "이르기를 다윗의 왕위에 앉은 유다 왕이여 너와 네 신하와… 네 백성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인생은 여호와의 규범과 표준에 맞추어 사는 것만이 언약의 말씀을 다르는 바른 길이며 참 신앙입니다.
또한, 타인에게도 공평히 대우함입니다.
즉, "이방인"과 "고아", "과부"를 학대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는 세계층의 보호는 언약 규정 조항의 일부였습니다(출 22:21, 레 19:33, 신 10:18).
이 의무사항을 충족시켜야함 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재판상의 불공정, 권력의 남용에 따라 억울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무죄한 자들의 ㅍ피를 흘리게" 하는 것은 큰 악행이며 극악한 죄인 것입니다.
2. 언약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5절 "그러나 너희가 이 말을 듣지 아니하면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노니 이 집이 황폐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인생은 미약한 존재이나 산업이 번영하거나 일신상 생활이 부요하면 교만하게 됩니다.
없을때 보다는 있게 되면 자기중심적 이기성이 극치를 이룹니다.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언약의 말씀에 기초를 두고 산다면 다윗의 왕조로서 존속도히게 된다는 것이 예레미야 선지의 선언입니다.
그러나, 이미 세상 재미에 물든 유다 사람들은 영적 감각이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육적 감각으로 사는 것이 편리하고 익숙되어 있는 것은 세속화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3. 불순종에 대한 결과를 진단합니다.
8-9절 "여러 민족들이 이 성읍으로 지나가며 서로 말하기를…"
"그들이 대답하기는 이는 그들이 자기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까닭이라…"
이 두 구절은 여호와께서 유 다 백성과 더불어 모압 평지에서 언약을 체결할 당시에 주셨던 경고의 말씀과 일치합니다(신 29:24-26). 여기서 주목할 것은 언약이 파기가 될 경우 오히려 이방인에게 시달리며 조롱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발에 밟힐 뿐입니다(마 5:13).
참 목자(메시야) (렘 23:1-8)
예레미야 선지는 그 시대에 참 목자와 거짓 목자를 비교합니다.
거짓 목자는 양떼를 흩으는 목자, 참 목자는 흩어진 양떼를 모으는 목자라 합니다.
더욱이 미래의 참 목자는 메시야를 예언합니다.
1. 먼저는 양떼를 흩으는 목자입니다.
1절 "…내 목장의 양 떼를 멸하며 흩어지게 하는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
2절 "…너희가 내 양 떼를 흩으며 그것을 몰아내고 돌보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내가 너희의 악행 때문에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원래 목자의 임무는 양떼를 지키고 돌보는 일입1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시대시, 종교지도자들인 제사장들, 선지자들은 백성들을 그릇된 길로 나아가도록 방치합니다.
우상숭배에 빠지게할 뿐 아니라 향락에 치우쳐 살도록 안일주의 생활하게 함은 양떼를 지키지 못하고 흩어지게 한 것입니다.
2. 그러나, 흩어진 양떼를 모르는 목자가 있습니다.
3-4절 "…모든 지방에서 모아 다시 그 우리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의 생육이 번성할 것이며 내가 그들을 기르는 목자들을 그들 위에 세우리니…"
1절과는 대조적으로 여호와께서는 양떼를 모으는 일을 하는 자가 다름 아닌 하나님이심을 천명하는 것입니다. 그 백성들은 그릇된 목자들의 길을 쫓음으로써 언약을 거부하였고 범민족적으로 반역을 시도하였기 때문에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하나님의 섭리로 인해 귀환의 은혜를 얻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여호와로부터 소명받은 선지자들을 뜻합니다.
그들은 여호와게로부터 임명된 목자들이며 양떼들을 성실하고 희생적으로 돌보며 지키는 것입니다.
양떼들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제거해 주고 희망을 줍니다.
3. 앞으로 이땅에 오실 메시야를 뜻합니다.
5절 "…내가 이 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 같이 잘 돌볼 것이라"
사실 나라가 망하고 백성은 포로가 되어 남의 나라(바벨론)에서 자유가 없이 얽매여 산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불행한 것입니다.
그대신 잃어버린 신앙을 회복할 수 있는 기간이 되어진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며 회개하게 되며 영적회복이 될 수 있음은 오히려 포로생활이 육신적으로는 괴롭고 어렵지만 영적 은혜 회복기간의 과정이 된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무화과들은 여호와께 나아오는 포로된 유다 백성을 상징하며 이 무화과를 여호와께 귀하게 여기시는 자들로 지칭됩니다.
2. 나쁜 무화과입니다.
8절 "…예루살렘의 남은 자로서 이 땅에 남아 있는 자와 애굽 땅에 사는 자들을 나빠서 먹을 수 없는 이 나쁜 무화과 같이 버리되"
여호야김은 유다의 18대왕으로 친애굽정책을 추구하며 애굽에 조공을 받치며 백성에게 중한 세금을 매겼고 갈대인에게 항복을 외치는 선지자 우리야를 살해했습니다(렘 26:21-23). 바룩이 기록한 예레미야의 두루마리를 불태웠고(렘 36:9-24)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 바벨론이 유다를 침공했을 때 결박된채 바벨론으로 잡혀갔고 바벨론에서 죽음을 맞았습니다. 곧,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자들과 친애굽좌로 선지의 예언을 외면하고 바벨론을 향한 반?하던 자들은 나쁜 무과과라 환상을 주 신 것입니다.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이 유다를 침공하였을 때 애굽으로 피신한 유다사람들도 나쁜 무화과로 언급합니다. 즉, 여호와의 뜻을 따르기를 거부한 자들이며 유다땅에 남거나 애굽에 피신한 자들은 예레미야를 죽이려 하며 옥에 가두고 선지의 예언을 매국노로 취급하고 듣지 않습니다.
내종 바벨론왕(렘 25:1-11)
왜? 내종 바벨론왕이라 하셨는가?(9절)
이는 징계의 도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불순종하는 그의 자녀된 백성을 돌이키게 하시는 채찍입니다.
이는 북조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도(BC.722) 나의 몽둥이라고 햇습니다(사 10:5).
이는 불순종하는 그의 자녀들을 진노하시어 징계의 도구로 사용하셨다는 해석입니다.
왜? 징계하시는가?
1. 예언을 계속 거부하였기 때문입니다.
3절 "…이십삼 년 동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기로 내가 너희에게 꾸준히 일렀으나 너희가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 말씀의 배경은 여호야김 통치 4년(BC.605)으로써 구속사적 중요한 의미를 갖는 해입니다.
당시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은 애굽과 전투에서 승리하고 그 여세를 몰아 유다까지 침입합니다. 이러한 수난이 유다의 끊임없는 불순종과 완악함으로 인해 초래하였음과 하나님의 인내하심이 막바지에 달하였음을 강조합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을 선지자로 지칭합니다(2절). 이는 자신이 전하는 예언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증거해 줍니다.
곧, 말씀을 대언하는 자임을 밝히고 있는 인상을 줍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이 선지의 사역을 시작하였던 때(BC.627) 곧, 요시아왕(16대왕) 재직때부터였고 23년동안 동일하게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을 촉구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 사람들은 거절합니다.
2. 결국, 하나님의 노여움은 바벨론을 통하여 나타나게 됩니다.
9절 "보라 내가 북쪽 모든 종족과 내 종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다가 이 땅과 그 주민과… 그들을 놀램과 비웃음거리가 되게 하며 땅으로 영원한 폐허가 되게 할 것이라…"
불순종과 교만이 포화상태에 이른 죄악으로 유다를 징계하는 징계의 선포가 됩니다.
곧, 유다백성이 당할 고통은 스스로 자초한 것입니다. 불순종은 쾌락과 우상숭배를 성행케 하였고 고의적으로 거듭 경고도 무시하여 하나님을 격노하도록 한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을 가리켜 하나님의 종으로 묘사한 것은 묘사함은 고대근동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는 군주와 본신간 관계를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느부갓네살은 자신도 모르게 여호와의 봉신과 같은 역할을 수행할 자로 징계의 도구가 된 것입니다.
3. 징계의 기간은 70년입니다.
11절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70년이라는 기간은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성전이 파괴되던 해(BC.586)부터 성전이 재건되던 해(BC.516)까지로써 구속사적 관점에서 설명이 되어집니다. 곧,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징계로 도구로 사용한 바벨론을 역사속에서 퇴출시키시나 선약의 백성, 유다는 진정 회개하고 신앙을 회복시키신 후 예루살렘 귀환과 성전건축으로 재건케 하시는 것은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구속사적 은총으로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결국, 바벨론은 메대파사에게 멸망당하게 되며 고레스 원년에 유다를 예루살렘 귀환의 칙령을 선포하게 됨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입니다(BC.539).
다니엘서에서는 바벨론지역을 통치한 다리오왕에 대해 언급합니다(단 5:31, 6:1).
왜? 핍박하는가?(렘 26:1-15)
선지는 여호야김 통치시에 하나님께 받은 예언을 조금도 감하지 않고 전달합니다.
이는 선지의 성전 설교 입니다(2절).
비록 유다사람들은 성전 예배도 드렸고, 곧, 금식일이나 절기에 바깥뜰과 안뜰 경계 지역근처에 모여 예배형식은 따랐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러나 실제 하나님이 주신 예언은 외면하고 거역합니다.
실제로 "너희가 나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내 율법을 행하지 아니하며"(4절)
이 말씀은 7:13-14절과 일맥상통 합니다.
이미 유 다의 타락성은 극치를 이루었습니다.
선지는 책망합니다.
성전을 도둑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하며 마치 "실로"로 같았다고 타락성을 지적했습니다.
"실로"의 언급은 BC.1075년경 블레셋 침입으로 무너졌던 불행한 과거사를 기억하게(삼상 4)한 것이며 이로 인해 백성을 분노를 사게 됩니다.
이로 인해서 선지를 핍박합니다.
1. 예언 때문입니다.
9절 "어찌하여… 성전이 실로 같이 되겠고 이 성이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리라"
예레미야 선지는 망국적 예언인 것으로 유 다 사람들은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선지를 매국노, 반역자로 생각하며 분노합니다.
선지를 고소하는 내용이 제시됩니다.
성전이 실로 같겠고 예루살렘이 사람이 살지 못하는 곳이 되겠다는 것은 그들에게 분노를 일으키는 이중적 죄명입니다.
2. 선지를 죽이자라고 합니다.
11절 "…이 사람은 죽는 것이 합당하니…"
제사장들과 거짓 선지자들은 예레미야선지를 기소합니다.
예레미야의 이중적 죄명으로 죽이는 것으로 구현합니다.
선지는 항변합니다(12절). 자신의 사명이 여호와께로부터 주어진 것이라 소명의식입니다.
그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변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자들에게 강력한 경고를 합니다.
13절 "…너희는 너희 길과 행위를 고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선언하신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시리라"
3.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14절 "보라 나는 너희 손에 있으니 너희 의견에 좋은 대로, 옳은 대로 하려니와"
선지는 세상권력앞에 약한 자 같으나 담대히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용기는 소명의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선지의 믿음은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을 바라며 의지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이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는 믿음입니다(마 10:28).
선지의 용기는 이 믿음에서 기인된 것이며 사람의 위협과 핍박에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거짓 선지자(렘 27:8-15)
거짓선지자들의 활동은 시드기야가 왕위에 오른 이후(20대)입니다. 이 시기 예레미야선지에게 하나님은 목에 멍에를 메라고 말씀을 주 ㅂ니다.
"멍에"는 소에 목에다 가죽끈으로 매단 나무막대기입니다. 이는 무변국가(3절) 사신들이 반 바벨론 동맹을 결성문제를 두고 시드기양과 의논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였고 이 모임의 주모자는 시드기야왕임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당시 거짓 선지자들은 부추켜 바벨론에게 항복치 말라고 충동질 합니다. 거짓선지자들은
1. 바벨론왕을 섬기게 되지 않는다고 예언합니다.
9절 "…너희가 바벨론의 왕을 섬기게 되지 아니하리라…"
가증한 부류와 거짓 선지자들이 등장합니다(신 18:9-13).
이들은 바벨론왕을 섬기게 되지 않게 되고 항목할 이유가 없다고 장래사에 대하여 주술(점)을 합니다.
그러나, 이는 거짓 예언입니다(10절).
거짓 선지자들은 기득권 상실을 우려하는 다수지배층들에게 편승하여 바벨론에게 대항하도록 정치력을 과시하면서 선동합니다. 감언이설입니다.
2. 그러나, 예레미야선지는 거짓 선지자의 말을 듣지 말라고 합니다.
14절 "그러므로 당신들은 바벨론의 왕을 섬기게 되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의 말을 듣지 마소서 그들은 거짓을 예언함이니이다"
예레미야 선지는 시드기야왕(20대)에게 변함없이 전합니다.
바벨론왕에게 항복(멍에)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왕과 백성이 살게 된다고 전해줍니다(12절).
만약, 항복하지 아니하면 칼, 기근, 전염병에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13절).
그러므로, 거짓 예언에 미혹받지 말라고 간청합니다.
왕을 위시하여 대다수 백성이 그 시대 정치성에 의하여 안일무사 주의에 빠져 있음을 우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3. 그들은 하나님이 보내지 않는 자들입니다.
15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니…"
거짓 선지자와 그 주변의 부류 집단의 주목할 특징은 하나님이 그들을 보내지 않았다는 점이며 그들은 오히려 많은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예레미야의 예언과는 상반된 예언이지만 오히려 거짓 선지자들을 백성들은 더 선호한 것입니다.
이는 멸망을 스스로 더 재촉하여 앞당기는 것이었고 우유부단하던 시드기야왕은 결국, 느부갓네살 앞에서 두 아들이 죽게 되고 자신은 두 눈이 뽑혀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거짓 선지자 하나냐(렘 28:8-17)
당시 거짓 선지자의 대표적이었던 하나냐는 그의 예언은 예레미야 선지와는 정반대였습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에게 항복하는 것은 살길이며 70년 후에는 다시 예루살렘 귀환을 약속하신 구속사적 예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냐는 지금 당장 바벨론의 멸망할 것이며 이미 바벨론 침공으로 빼앗겼던 성전 기구를 도로 찾아올 것이라는 예언입니다(3절).
이는 이미 포로로 잡혀 바벨론으로 끌려간 왕은 여고나야, 곧, 여호야긴이었는데(19대) 여호야긴이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예언한 것입니다(4절).
그러면서, 하나냐는 예레미야를 오히려 거짓선지자라는 적반하장식으로 잘못 없는 선지를 나무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는 하나냐를 향해
1. 예전 선지자들은 70년 바벨론 포로될 것을 예언하였다고 반론합니다.
8절 "나와 너 이전의 선지자들이 예로부터… 전쟁과 재앙과 전염병을 예언하였느니라"
예레미야선지의 이 반론으로 하나냐의 예언은 거짓임을 증명해 보입니다.
진실논쟁의 현상입니다.
이 당시에는 참 선지자는 누구이고 거짓 선지자는 누구인지 분별하기가 3자의 입장에서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분명하고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즉, 한사람은 여호와의 회의(계시) 참석하였던 반면 다른 한 사람은 자기가 지어서 한것이라는 정입니다(23:18).
즉, 하나냐는 아전인수격으로 곡해한 것입니다.
2. 하나냐의 예언은 거짓이라고 합니다.
15절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지 아니하셨거늘 네가 이 백성에게 거짓을 믿게 하는도다"
당시 제사장들 정치가들, 시드기야왕은 하나냐를 선호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냐 거짓 선지자임을 공공연하게 말하며 단죄라고 있습니다.
즉, 예레미야는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인기없는 설교자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선지는 홀로 예언하는 것 같지만 그 시대에 정하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계획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3. 하나냐 죽음을 예고합니다.
16절 "…네가 금년에 죽으리라 하셨느니라 하더니", 17절 "선지자 하나냐가 그 해 일곱째 달에 죽었더라"
참 무서운 일입니다. 오늘날 이는 성령훼방죄 입니다.
거짓으로 미혹하게 하는 행위는 하나님이 싫어하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이름으로 거짓 예언하는 것은 망령된 행실입니다. 이에 모세는 신 18:20에서 "만일 어떤 선지자가 내가 전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말을 제 마음대로 내 이름으로 전하든지…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했습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오늘날 설교자들도 강단에 올라서 설교할 때 성경말씀만 선포할 것임이 바른 설교자의 자세입니다.
포로된 곳에서(렘 29:1-14)
예레미야는 바벨론으로 이미 잡혀간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아마도 바벨론 2차 침입(BC.597, 왕하 24:8-16) 이후인 것으로 보입니다.
예레미야 편지의 내용은
1. 그곳에서 안정되어 정착하고 기도할 것을 권유합니다.
5-7절 "너희는 집을 짓고…,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자녀를 낳게 하여…,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선지는 혁신적인 권고를 합니다. 집을 짓고 농사도 하며 결혼도 하면서 포로지에서 안정되이 생활을 권고합니다.
이는 그곳 포로생활이라 할지라도 불안해 하지 말고 정착하여함입니다. 비록 성전과 희생 제사가 없더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을 지속케 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2년만에 바벨론이 멸망할 것을 예언하고 조급한 생활을 하던 백성들에게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예언 내용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그곳 성읍(바벨론 왕권)의 번영과 평안을 기도하라고 합니다.
이는 그곳 성읍이 평안하고 안정되어야만 유다백성도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되고, 그래야 훗날, 고국(예루살렘)으로 귀환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 나라, 교회, 가정의 평안과 안정을 위해 기도해야함을 교훈함은 이는 나의 현재, 미래를 위한 것입니다.
2. 점쟁이를 믿지 말라고 합니다.
8절 "…점쟁이에게 미혹되지 말며 너희가 꾼 꿈도 곧이 듣고 믿지 말라"
위 구절은 27:9의 반복 인용입니다.
점쟁이는 장래사에게 대하여 주술하는 자들입니다.
예레미야 선지는 점쟁이에게 미혹되지 말라고 합니다.
모세는 레 20:27에서 "남자나 여자가 접신하거나 박수무당이 되거든 반드시 죽일지니 곧 돌로 그를 치라…"고 단언코 미혹되지 말 것을 경고했습니다.
점쟁이(무당)는 바른 길을 잃어버리게 하고 정신을 헷갈리게 하고 정신을 헷갈리게 하여 갈팡질팡 헤매이게 하는 자들입니다.
점쟁이들은 오늘날도 사주, 팔자 점쳐 주고 돈받는 자들이며 현대사회에서는 더욱 정신적 불안, 미래에 불확실한 근심으로 철학관을 찾거나 점집을 찾는 것은 다 거짓 영, 귀신이 미혹케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대 사회에서 성도는 기도에 힘쓰고 성령충만하여 주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면서 나아갈 때 주님의 인도하심이 궁극적으로 있게 됩니다.
3. 기도를 들으시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리라 약속합니다.
14절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그곳에서 전심으로 기도하여 여호와를 찾으면 그 기도를 들으시고 선지자들에게 약속한 70년만에 구속사적 은총으로 예루살렘 귀환이 성취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속계획은 마침내 바벨론제국을 무너뜨리고 페르시아 제국은 유대인들을 고향땅 예루살렘으로 귀향할 수 있게 됩니다.
바벨론 포로 유대인들은 세차례 걸쳐 귀환합니다. 인류구속사역의 예표가 됩니다.
포로에서 구원(렘 30:1-11)
선지는 유다에 관한 소망의 메시지를 선포합니다(3절).
하지만 그러한 회복은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차야 비로써 실현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선지의 메시지는 궁극적으로 구속사적 미래의 메시야를 암시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예언은
1. 여호와 섬기게 되리라고 하심입니다.
9절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며 내가 그들을 위하여 세울 그들의 왕 다윗을 섬기리라"
곧, 구원의 회복은 그 목적이 이 민족으로 햐여금 누구이신지 분명히 깨달아 경배하는데 있다고 봅니다.
"그들의 왕 다윗"을 섬기리라함은 대망의 메시야, 즉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뜻하는 것입니다.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겔 34:23)
이는 앞으로 오실 종말론적 주님의 예표함입니다.
2. 그러므로, 포로지에서 두려워말며 놀라지 말라고 하심입니다.
10절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므로 나의 종 야곱아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이스라엘아 놀라지 말라…"
선지의 이 예언은 이사야 선지도 동일한 내용으로 이미 선포하였던 것입니다.
사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사 41:14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이는 하나님이 장차 바사왕(페르샤) 고레스를 세워 바벨론의 정복하고 유다를 본국으로 돌아갈 것을 역사적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또한, 더 나아가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초림, 재림주 이십니다.
오늘날도 주를 믿는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주를 믿는 성도의 믿음은 담대함을 얻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미 죄와 사망, 세상과 마귀를 이기셨으므로 그 승리가 성도에게 주신 능력입니다.
3. 너와 함께 하신다고 합니다.
11절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원할 것이라…"
이 예언은 주님이 신약 마 28:20에서 주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부활하신 주께서 제자들에게 지상명령 주시며 주신 말씀입니다.
오늘날 성도들도 세상 끝날까지 함께 계시는 주님과 동행함을 믿는 것입니다.
이는 종말론적 신앙으로 "주예수여! 어서 오십시오" 마라나타의 신앙입니다.
모든 성도들의 종말론적 소망과 주님을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을 상징합니다(계 22:20-21).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2)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새 언약(렘 31:31-33)
언약(言約, Lovenant)이란 법적인 구속력을 지닌 서로간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택하시고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일방적으로 베푸신 은혜의 약속인 것입니다.
다만, 언약의 백성들이 그 언약을 믿고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31절에서 34절까지입니다.
비록 짧은 내용이기는 하지만 구약 전체에서도 가장 심오한 부분중 하나입니다. 더 나아가 본문은 장차 십자가의 사건을 통하여 성취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1. 새언약은 장차 이루어질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31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다윗의 자손 유다 사람들은 세상 열방 가운데서 택하신 선민의 백성입니다. 이사야 선지는 이에 대하여 사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참입니다.
즉, 타락 인생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유다백성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정하신 구속의 계획을 성취하시는 것입니다.
이 구속의 계획을 위하여 유목민 유다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며 광야의 길을 은혜로 지나게 하시며 결국 가나안땅에 입성하게 하심은 구원의 성취를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즉, 이땅에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어 인류 대속 사역을 십자가에서 온전히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 것입니다. 이를 새 언약이라고 하는 구속사적 사건입니다.
결국,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구원을 상징합니다.
2. 옛 언약은 선민의 백성이 깨뜨렸습니다.
32절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 조상들부터 언약관계로 택한 선민의 백성이었습니다. 아담과 에덴에서 언약, 노아와의 무지개언약, 아브라함과 가나안에서 언약, 야곱에게서 벧엘의 언약 모세와의 시내산언약을 맺었습니다.
언약의 본질적 의미는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언약을 저버렸습니다. 아담은 언약과를 따서 먹고 애굽에서 출애굽한 선민의 백성은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입니다.
더욱이 예레미야선지가 활동하던 시기는 더욱 하나님을 떠나서 백성은 타락성을 보였습니다. 결국, 바벨론 포로생활 70년이 지나서 예루살렘으로 귀환은 앞으로 인류대속사역을 위하여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새언약을 증거합니다.
3. 마음속에 기록된 언약을 증거합니다.
33절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예레미야는 여호와는 백성들의 내적 성품의 변화를 주시며 그들로 하여금 순종할 수 있도록 선언합니다.
즉, 여호와는 그들의 마음에 율법을 기록하실 것인바 이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성도들의 삶에 영적 변화가 일어날 것 암시합니다. 사도바울은 갈 5:18이하에서 육체 성품에 대하여, 또한, 성령의 성품에 대하여 두 성품을 비교합니다.
그러면서 육체의 일에 속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지 못하며(갈 5:21) 성령의 일에 속한 사람은 성령의 열매를 맺는다는 영적 성숙함을 사도바울은 증거합니다.
갈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는 영적 성화적 열매입니다.
아나돗밭(렘 32:1-15)
시드기야통치 10년 해에 바벨론 군사들은 예루살렘을 포위하였습니다.
예루살렘성이 정복당한 위급한 상황에서 예레미야 선지는 바벨론에서 항복할 것을 예언하였으나 시드기야는 하나님 경외심이 없음으로써 예레미야를 옥에 가두었던 것입니다(5절).
옥중에서 갇혀있을 때에 예레미야에게 하나님께서는 땅을 구입하라고 하십니다.
이상한 명령입니다.
1. 예레미야가 땅을 매입합니다.
9절 "내 숙부의 아들 하나멜의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는데 은 십칠 세겔을 달아 주되"
그 당시에도 땅을 구입하는 데에도 법적 절차에 따라 거래가 되었습니다. 그 땅은 아나돗에 있는 조카 하나멜의 소유입니다. 그러나 하나멜은 경제적으로 궁핍해져서 밭을 팔아야 처지에 있었고 사촌간인 예레미야에게 전 매권을 주게 된 것입니다. 이에 예레미야는 은 17세겔을 달아 주었는데 1세겔은 약 11.4g 정도의 무게였으므로 17세겔은 약 19g정도였을 것입니다.
당시 1세겔은 노동자 4일에 해당하는 품값으로서 화폐의 단위로 땅값 지불에 사용되었습니다.
2. 땅 증서를 보존하게 하십니다.
14절 "…매매 증서를 가지고 토기에 담아 오랫동안 보존하게 하라"
토기는 웅기, 항아리를 가리킵니다.
흔히 귀중한 문서를 보관하는데 사용되었고 이 매매행위에 있어 행정처리는 바룩이 대신해준 것입니다. 바룩은 예레미야가 신뢰하는 친구이며 애굽에 포로잡혀갈 때에도 함께 시종일관같이 행동한 진정한 친구였습니다.
3. 바벨론에서 귀환후 이땅을 활용하게 될 것을 예언합니다.
15절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리라"
즉, 하나님의 크신 경륜과 섭리는 택한 언약의 백성을 바벨론에 팔아 넘겨 영원히 버리고 망하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70년 기간을 징계하시고 다시 회복케 하시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성전을 진정 사모하고 옛 조상의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바른 신앙회복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연단과정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70년만에 귀환하여 잃었던 옛 토, 농지도 다시 사게 된다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성취함을 의미합니다.
곧, 예루살렘 재건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성취를 하는 상징적인 땅 매매입니다.
미래의 약속(33:1-10)
33장은 미래의 약속에 대한 메시지입니다. 또한, 30-33장의 결론부에 해당하며 위기를 맞는 유다백성에 다시한번 소망의 빛을 확산시키고자하는 내용입니다.
1. 일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절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행하시는" 동사는 히브리어 "아사"로 '만들다' 또한, "바라"로 '창조하다'뜻으로 창세기 1장에서 쓰던 동사로 소급되어 사용됩니다.
곧, 하나님의 창조의 활동을 묘사합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만드신 창조주이시며 지으신 만물을 지배하시며 통치하시는 전능자가 되십니다. 이사야 선지도 사 45:7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모든 일들을 행하는…"
여호와라고 했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땅을 만드시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외에 다른 신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만이 영원한 구원을 주시는 것입니다.
즉, 예레미야는 유다 사람들이 하나님 경외 신앙을 잃어버린 것을 지적하며 하나님을 기억하고 순종할 것을 촉구합니다.
2. 응답을 주시는 하
예레미야의 선지활동에 대하여 반감을 갖는 백성들이 모의를 꾸밉니다.
선지를 "죽이는 자"라는 무서운 흉계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안 선지는 자신의 심정을 하나님께 탄원합니다.
먼저
1. 백성들이 선지를 박해하려고 모함합니다.
18절 "그들이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꾀를 내어 예레미야를 치자… 오라 우리가 혀로 그를 치고…"
이 말은 일반 백성들은 당시 예레미야 선지 예언에 대하여 불신합니다. 왜냐하면 백성들을 선동하는 거짓 제사장, 지도자를 선지자들이 예레미야선지의 예언이 참람되고 거짓이라 했기 ?문이었습니다.
이에 영향받은 백성들이 예레미야선지를 제거해야겠다하여 모의를 했습니다.
2. 구덩이를 팠습니다.
20절 "…그들이 나의 생명을 해하려고 구덩이를 팠나이다…"
"구덩이"는 사람을 죽이려하는 수단입니다. 무자비한 일입니다. 요셉도 형돌의 미움을 받아 구덩이에 빠졌^다가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렸던 것입니다(창 37:24).
고대사회에서는 사람을 처형할 때 구덩이에 빠뜨려 그곳에서 나올수 없게 하여 굶어죽게 했습니다.
훗날 예레미야는 실제 빈구덩이에 빠져 죽게 되었을 때 왕궁 내시 구스인 에벳멜렉에 구조한 일이 있습니다(렘 38:13).
3. 선지가 기도합니다.
23절 "여호와여 그들이 나를 죽이려 하는 계략을 주께서 다 아시오니 그 악을 사하지 마옵시며 그들의 죄를 주의 목전에서 지우지 마시고 그들을 주 앞에 넘어지게 하시되…"
선지는 기도합니다.
무서운 죽음앞에서 구원을 주시는 이는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뿐이시기 때문입니다.
선지를 죽이려는 흉계는 구덩이에 빠뜨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선지의 길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선지의 길을 꿰뚫어 보시고 지켜주십니다.
다윗도 깊은 수렁과 웅덩이에서 건질 이는 하나님이시며 그 자신 발을 바위 위에 두시게 하신다고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합니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시 40:2)
깨진 옹기(렘 19:1-6, 10-12)
유다에 임할 심판의 불가피성을 깨진 옹기를 통하여 설명합니다.
예레미야선지는 토기장이에게 가서 옹기를 삽니다. 그리고, 흰놈의ㅔ 골짜기에 가서 옹기를 깨트려 버립니다. 그럼 "옹기"(오지병)란? 목이 좁고 오짓물을 발라서 구원 만든 윤이 나는 병입니다.
또한, 오짓물은 윤이 나게 하는 "잿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소중한 오지병(옹기)d을 깨트리라고 하는 가요?
그 이유는
1.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당신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4절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이 곳을 불결하게 하며…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무죄한 자의 피로…"
유다, 그들은 이방신을 예배함으로써 그곳을(가나안) 이방인문화와 종교를 놓인 그런 곳으로 변질시켜 놓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그 땅이 하나님이 조상에게 주신 땅인지, 이방땅인지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계시록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고 합니다.
계 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오늘날 현대사회에서 성도들, 교회는 세상의 세속적 물결에 물들지 말고 구별된 생활로 거룩성을 보존해야함입니다.
2. 자녀들을 이방신 번제로 드리는 것입니다.
5절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산당을 건축하고 자기 아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로 불살라 드렸나니…"
자녀들을 이방신 바알 제단에 인신제사로 드리는 것은 가나안 지역에서 잘 알려져 있었던 악한 풍습이었던 것입니다.
당시 그런 사례가 빈번했습니다(왕하 23:10). 요시아 당시에 흰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거행되었던 악습입니다.
이것은 유일하고 절대적인 주권에 대한 거부이며 여호와를 정면에서 모욕하는 행위였습니다.
즉, 이러한 행위는 자녀들의 신앙교육에 대한 매우 중요한 것임을 가르침이 있어야 함을 교훈합니다.
모세는 일찍이 모압평지에서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역설합니다. 신 6: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신 6:14 "너희는 다른 신들 곧 네 사면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르지 말라"
3. 웅기를 깨라고 하십니다.
11절 "…토기장이의 그릇을 한 번 깨뜨리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나니…"
"도벳"과 같이 재난을 내리시겠다고 경고합니다.
"도벳"은 시체를 매장하는 거대한 공동묘지입니다.
이는 썩은 고기를 먹는 야생새들과 공중의 새들이 밥이 되고 말 것이라는 재난과 경고이며 예고입니다.
이는 갈대인에게 팔려 나라가 망하고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됨을 암시함입니다.
그리고, 결코 인간 스스로 자기를 구원할 수 없는 힘없고 무기력한 존재라는 것이며, 오늘도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무가치한 존재이며 가련한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선지의 신앙(렘 20:1-13)
선지가 박해를 받습니다. 가해자는 성전의 총감독자, 제사장 바스홀입니다. 그는 선지를 때리고 쇠사슬로 묶고(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 가두워 둡니다(2절). 그러나, 바스홀은 구금되었던 선지를 석방하여 감옥에서 풀려납니다.
비록, 박해와 구금, 폭행, 모욕을 받으면서도 선지는 그의 신앙과 사명을 잘 드러냅니다.
1. 예언을 멈출 수 없다고 합니다.
9절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더욱더 거세어져가는 핍박중입니다. 그러한 와중속에 선지활동을 포기하고 침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불과 같아서 속에 다 담아둘 수 없는 것입니다.
선지는 사명을 멈추다면 오히려 견딜 수 없는 영적 고통이라고 합니다.
이는 성령의 감동 때문입니다.
에즈켈 선지도 그 발 강가에서 성령의 권능과 감동이 힘있게 임하며 말씀을 받습니다. 겔 3:17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곧, 시대적 사명인 것입니다. 즉, 참선지의 상은 핍박과 박해중에도 사명감이 더욱 불타게 됩니다.
중도에 포기하지 않스빈다. 반면, 바르지 못한 길을 걷는 선지는 그 길을 걷다가 중도에 포기합니다.
오히려 그 시대 참선지들을 박해합니다. 거짓 선지의 상입니다.
2.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신앙입니다.
11절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 하시므로…"
선지의 소중한 신앙입니다. 선지가 시대적 사명을 수행할 수 있게 됨은 이러한 신앙의 힘입니다.
"여호와가 나와 함께 하시니…"
이 신앙고백은 수 1:9에서도 언급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말씀을 주셨던 것입니다. 사명자의 길은 내가 혼자 가는 길로 생각하면 필패합니다. 반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신앙은 힘이며 능력입니다. 불패입니다.
다윗도 골리앗과 엘라골짜기 싸움에서 이 신앙으로 승리했스비니다.
이러한 기적은 나와 함께 하신다는 신앙의 힘이었습니다.
삼상 17:45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삼상 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그렇습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했습니다.
3.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13절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
찬양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응답적 신앙표현입니다. 즉, 인간이 할 수 없는 한계에서 도와주시는 이는 하나님의 구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지도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합니다.
예배중에 드리는 찬송은 복음찬양과 성격상 틀립니다. 찬송은 영원 죽을 수밖에 없는, 하나님을 떠난 죄 아래 인생을 주님을 믿어 구원 얻을 수 있게 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예배중 찬송을 통하여 응답하는 것입니다.
반면, 복음찬양은 예배중 하나님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받은 은혜에 대하여 신앙의 결단과 헌신의 표현입니다.
또한, 불신자들에게 복음 전파를 위한 간증시라 할 수 있습니다.
선지의 답변(렘 21:1-10)
시드기야는 유다 20대왕 중 마지막 왕으로 BC.586년 유다 왕국이 멸망할 때 두 아들과 자신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스비니다.
그는 예레미야 선지에게 사람을 보냅니다. 그리고, 바벨론 왕국의 침공을 막아달라고 부탁합니다. 즉, 하나님께 기도하여 기적을 나타내게 해달라는 것입니다(2절). 예레미야는 답변합니다.
1. 바벨론 침공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7절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손과 그들의 원수의 손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넘기리니… 측은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시드기야는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왕으로부터 침공을 받자 당황합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2. 항복하라는 것입니다.
9절 "갈대아인에게 나가서 항복하는 자는 살 것이나 그의 목숨은 전리품 같이 되리라"
예레미야는 백성을 향하여 갈대아인들에게 항복할 것을 권유합니다. 이는 그 시대에 있어 하나님의 계획이며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시드기야 왕과 정치 지도자들은 선지를 매국노로 보았습니다. 왜? 적에게 항복하고 투항하려고 선동하는가? 그들에게 핍박의 명분을 제공한 것이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지를 반역자로 여긴 것입니다(28장).
그러나, 선지가 주장하는 원리는 단순합니다.
여호와께서 유대사람들의 불의와 불순종으로 인하여 이 백성을 버리신 것과 따라서 멸망을 피할 수 없다는 필연성입니다.
그래서, 선지는 항복을 권유할 수박에 없다는 것이며 오히려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들이라고 권유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에서 회개한다면 미래에 치유와 회복을 주실 것이며 70년만에 예루살렘 귀환을 약속하심을 선지는 예언합니다.
사실, 그들의 선조 다윗은 하나님의 법도에 따라 나라를 통치함으로써 하나님의 축복가운데 유다는 번영으로 인도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분열왕국부터 대다수의 왕들은 다윗과 달리 불순종과 배도의 길을 걸었음으로 결국 멸망을 자초하게 된 것임을 자명하게 보여줍니다.
언약의 말씀(렘 22:1-9)
선지는 유다왕들과 백성들의 죄악상을 드러내며 비극적인 최후를 예언합니다, 더욱이 유 다왕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대리하여 공의로운 나라를 세우는데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유다왕들은 백성들에 앞서 하나님을 거역하였던 것입니다.
당시 왕궁은 장엄하고 웅대하여 화려한 모습처럼 유다왕실은 하나님께 귀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돌아올 것을 거듭 촉구합니다.
선지는
1. 언약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2절 "이르기를 다윗의 왕위에 앉은 유다 왕이여 너와 네 신하와… 네 백성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인생은 여호와의 규범과 표준에 맞추어 사는 것만이 언약의 말씀을 다르는 바른 길이며 참 신앙입니다.
또한, 타인에게도 공평히 대우함입니다.
즉, "이방인"과 "고아", "과부"를 학대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는 세계층의 보호는 언약 규정 조항의 일부였습니다(출 22:21, 레 19:33, 신 10:18).
이 의무사항을 충족시켜야함 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재판상의 불공정, 권력의 남용에 따라 억울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무죄한 자들의 ㅍ피를 흘리게" 하는 것은 큰 악행이며 극악한 죄인 것입니다.
2. 언약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5절 "그러나 너희가 이 말을 듣지 아니하면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노니 이 집이 황폐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인생은 미약한 존재이나 산업이 번영하거나 일신상 생활이 부요하면 교만하게 됩니다.
없을때 보다는 있게 되면 자기중심적 이기성이 극치를 이룹니다.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언약의 말씀에 기초를 두고 산다면 다윗의 왕조로서 존속도히게 된다는 것이 예레미야 선지의 선언입니다.
그러나, 이미 세상 재미에 물든 유다 사람들은 영적 감각이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육적 감각으로 사는 것이 편리하고 익숙되어 있는 것은 세속화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3. 불순종에 대한 결과를 진단합니다.
8-9절 "여러 민족들이 이 성읍으로 지나가며 서로 말하기를…"
"그들이 대답하기는 이는 그들이 자기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까닭이라…"
이 두 구절은 여호와께서 유 다 백성과 더불어 모압 평지에서 언약을 체결할 당시에 주셨던 경고의 말씀과 일치합니다(신 29:24-26). 여기서 주목할 것은 언약이 파기가 될 경우 오히려 이방인에게 시달리며 조롱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발에 밟힐 뿐입니다(마 5:13).
참 목자(메시야) (렘 23:1-8)
예레미야 선지는 그 시대에 참 목자와 거짓 목자를 비교합니다.
거짓 목자는 양떼를 흩으는 목자, 참 목자는 흩어진 양떼를 모으는 목자라 합니다.
더욱이 미래의 참 목자는 메시야를 예언합니다.
1. 먼저는 양떼를 흩으는 목자입니다.
1절 "…내 목장의 양 떼를 멸하며 흩어지게 하는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
2절 "…너희가 내 양 떼를 흩으며 그것을 몰아내고 돌보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내가 너희의 악행 때문에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원래 목자의 임무는 양떼를 지키고 돌보는 일입1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시대시, 종교지도자들인 제사장들, 선지자들은 백성들을 그릇된 길로 나아가도록 방치합니다.
우상숭배에 빠지게할 뿐 아니라 향락에 치우쳐 살도록 안일주의 생활하게 함은 양떼를 지키지 못하고 흩어지게 한 것입니다.
2. 그러나, 흩어진 양떼를 모르는 목자가 있습니다.
3-4절 "…모든 지방에서 모아 다시 그 우리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의 생육이 번성할 것이며 내가 그들을 기르는 목자들을 그들 위에 세우리니…"
1절과는 대조적으로 여호와께서는 양떼를 모으는 일을 하는 자가 다름 아닌 하나님이심을 천명하는 것입니다. 그 백성들은 그릇된 목자들의 길을 쫓음으로써 언약을 거부하였고 범민족적으로 반역을 시도하였기 때문에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하나님의 섭리로 인해 귀환의 은혜를 얻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여호와로부터 소명받은 선지자들을 뜻합니다.
그들은 여호와게로부터 임명된 목자들이며 양떼들을 성실하고 희생적으로 돌보며 지키는 것입니다.
양떼들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제거해 주고 희망을 줍니다.
3. 앞으로 이땅에 오실 메시야를 뜻합니다.
5절 "…내가 이 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 같이 잘 돌볼 것이라"
사실 나라가 망하고 백성은 포로가 되어 남의 나라(바벨론)에서 자유가 없이 얽매여 산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불행한 것입니다.
그대신 잃어버린 신앙을 회복할 수 있는 기간이 되어진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며 회개하게 되며 영적회복이 될 수 있음은 오히려 포로생활이 육신적으로는 괴롭고 어렵지만 영적 은혜 회복기간의 과정이 된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무화과들은 여호와께 나아오는 포로된 유다 백성을 상징하며 이 무화과를 여호와께 귀하게 여기시는 자들로 지칭됩니다.
2. 나쁜 무화과입니다.
8절 "…예루살렘의 남은 자로서 이 땅에 남아 있는 자와 애굽 땅에 사는 자들을 나빠서 먹을 수 없는 이 나쁜 무화과 같이 버리되"
여호야김은 유다의 18대왕으로 친애굽정책을 추구하며 애굽에 조공을 받치며 백성에게 중한 세금을 매겼고 갈대인에게 항복을 외치는 선지자 우리야를 살해했습니다(렘 26:21-23). 바룩이 기록한 예레미야의 두루마리를 불태웠고(렘 36:9-24)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 바벨론이 유다를 침공했을 때 결박된채 바벨론으로 잡혀갔고 바벨론에서 죽음을 맞았습니다. 곧,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자들과 친애굽좌로 선지의 예언을 외면하고 바벨론을 향한 반?하던 자들은 나쁜 무과과라 환상을 주 신 것입니다.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이 유다를 침공하였을 때 애굽으로 피신한 유다사람들도 나쁜 무화과로 언급합니다. 즉, 여호와의 뜻을 따르기를 거부한 자들이며 유다땅에 남거나 애굽에 피신한 자들은 예레미야를 죽이려 하며 옥에 가두고 선지의 예언을 매국노로 취급하고 듣지 않습니다.
내종 바벨론왕(렘 25:1-11)
왜? 내종 바벨론왕이라 하셨는가?(9절)
이는 징계의 도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불순종하는 그의 자녀된 백성을 돌이키게 하시는 채찍입니다.
이는 북조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도(BC.722) 나의 몽둥이라고 햇습니다(사 10:5).
이는 불순종하는 그의 자녀들을 진노하시어 징계의 도구로 사용하셨다는 해석입니다.
왜? 징계하시는가?
1. 예언을 계속 거부하였기 때문입니다.
3절 "…이십삼 년 동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기로 내가 너희에게 꾸준히 일렀으나 너희가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 말씀의 배경은 여호야김 통치 4년(BC.605)으로써 구속사적 중요한 의미를 갖는 해입니다.
당시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은 애굽과 전투에서 승리하고 그 여세를 몰아 유다까지 침입합니다. 이러한 수난이 유다의 끊임없는 불순종과 완악함으로 인해 초래하였음과 하나님의 인내하심이 막바지에 달하였음을 강조합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을 선지자로 지칭합니다(2절). 이는 자신이 전하는 예언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증거해 줍니다.
곧, 말씀을 대언하는 자임을 밝히고 있는 인상을 줍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이 선지의 사역을 시작하였던 때(BC.627) 곧, 요시아왕(16대왕) 재직때부터였고 23년동안 동일하게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을 촉구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 사람들은 거절합니다.
2. 결국, 하나님의 노여움은 바벨론을 통하여 나타나게 됩니다.
9절 "보라 내가 북쪽 모든 종족과 내 종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다가 이 땅과 그 주민과… 그들을 놀램과 비웃음거리가 되게 하며 땅으로 영원한 폐허가 되게 할 것이라…"
불순종과 교만이 포화상태에 이른 죄악으로 유다를 징계하는 징계의 선포가 됩니다.
곧, 유다백성이 당할 고통은 스스로 자초한 것입니다. 불순종은 쾌락과 우상숭배를 성행케 하였고 고의적으로 거듭 경고도 무시하여 하나님을 격노하도록 한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을 가리켜 하나님의 종으로 묘사한 것은 묘사함은 고대근동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는 군주와 본신간 관계를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느부갓네살은 자신도 모르게 여호와의 봉신과 같은 역할을 수행할 자로 징계의 도구가 된 것입니다.
3. 징계의 기간은 70년입니다.
11절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70년이라는 기간은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성전이 파괴되던 해(BC.586)부터 성전이 재건되던 해(BC.516)까지로써 구속사적 관점에서 설명이 되어집니다. 곧,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징계로 도구로 사용한 바벨론을 역사속에서 퇴출시키시나 선약의 백성, 유다는 진정 회개하고 신앙을 회복시키신 후 예루살렘 귀환과 성전건축으로 재건케 하시는 것은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구속사적 은총으로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결국, 바벨론은 메대파사에게 멸망당하게 되며 고레스 원년에 유다를 예루살렘 귀환의 칙령을 선포하게 됨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입니다(BC.539).
다니엘서에서는 바벨론지역을 통치한 다리오왕에 대해 언급합니다(단 5:31, 6:1).
왜? 핍박하는가?(렘 26:1-15)
선지는 여호야김 통치시에 하나님께 받은 예언을 조금도 감하지 않고 전달합니다.
이는 선지의 성전 설교 입니다(2절).
비록 유다사람들은 성전 예배도 드렸고, 곧, 금식일이나 절기에 바깥뜰과 안뜰 경계 지역근처에 모여 예배형식은 따랐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러나 실제 하나님이 주신 예언은 외면하고 거역합니다.
실제로 "너희가 나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내 율법을 행하지 아니하며"(4절)
이 말씀은 7:13-14절과 일맥상통 합니다.
이미 유 다의 타락성은 극치를 이루었습니다.
선지는 책망합니다.
성전을 도둑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하며 마치 "실로"로 같았다고 타락성을 지적했습니다.
"실로"의 언급은 BC.1075년경 블레셋 침입으로 무너졌던 불행한 과거사를 기억하게(삼상 4)한 것이며 이로 인해 백성을 분노를 사게 됩니다.
이로 인해서 선지를 핍박합니다.
1. 예언 때문입니다.
9절 "어찌하여… 성전이 실로 같이 되겠고 이 성이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리라"
예레미야 선지는 망국적 예언인 것으로 유 다 사람들은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선지를 매국노, 반역자로 생각하며 분노합니다.
선지를 고소하는 내용이 제시됩니다.
성전이 실로 같겠고 예루살렘이 사람이 살지 못하는 곳이 되겠다는 것은 그들에게 분노를 일으키는 이중적 죄명입니다.
2. 선지를 죽이자라고 합니다.
11절 "…이 사람은 죽는 것이 합당하니…"
제사장들과 거짓 선지자들은 예레미야선지를 기소합니다.
예레미야의 이중적 죄명으로 죽이는 것으로 구현합니다.
선지는 항변합니다(12절). 자신의 사명이 여호와께로부터 주어진 것이라 소명의식입니다.
그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변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자들에게 강력한 경고를 합니다.
13절 "…너희는 너희 길과 행위를 고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선언하신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시리라"
3.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14절 "보라 나는 너희 손에 있으니 너희 의견에 좋은 대로, 옳은 대로 하려니와"
선지는 세상권력앞에 약한 자 같으나 담대히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용기는 소명의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선지의 믿음은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을 바라며 의지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이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는 믿음입니다(마 10:28).
선지의 용기는 이 믿음에서 기인된 것이며 사람의 위협과 핍박에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거짓 선지자(렘 27:8-15)
거짓선지자들의 활동은 시드기야가 왕위에 오른 이후(20대)입니다. 이 시기 예레미야선지에게 하나님은 목에 멍에를 메라고 말씀을 주 ㅂ니다.
"멍에"는 소에 목에다 가죽끈으로 매단 나무막대기입니다. 이는 무변국가(3절) 사신들이 반 바벨론 동맹을 결성문제를 두고 시드기양과 의논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였고 이 모임의 주모자는 시드기야왕임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당시 거짓 선지자들은 부추켜 바벨론에게 항복치 말라고 충동질 합니다. 거짓선지자들은
1. 바벨론왕을 섬기게 되지 않는다고 예언합니다.
9절 "…너희가 바벨론의 왕을 섬기게 되지 아니하리라…"
가증한 부류와 거짓 선지자들이 등장합니다(신 18:9-13).
이들은 바벨론왕을 섬기게 되지 않게 되고 항목할 이유가 없다고 장래사에 대하여 주술(점)을 합니다.
그러나, 이는 거짓 예언입니다(10절).
거짓 선지자들은 기득권 상실을 우려하는 다수지배층들에게 편승하여 바벨론에게 대항하도록 정치력을 과시하면서 선동합니다. 감언이설입니다.
2. 그러나, 예레미야선지는 거짓 선지자의 말을 듣지 말라고 합니다.
14절 "그러므로 당신들은 바벨론의 왕을 섬기게 되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의 말을 듣지 마소서 그들은 거짓을 예언함이니이다"
예레미야 선지는 시드기야왕(20대)에게 변함없이 전합니다.
바벨론왕에게 항복(멍에)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왕과 백성이 살게 된다고 전해줍니다(12절).
만약, 항복하지 아니하면 칼, 기근, 전염병에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13절).
그러므로, 거짓 예언에 미혹받지 말라고 간청합니다.
왕을 위시하여 대다수 백성이 그 시대 정치성에 의하여 안일무사 주의에 빠져 있음을 우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3. 그들은 하나님이 보내지 않는 자들입니다.
15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니…"
거짓 선지자와 그 주변의 부류 집단의 주목할 특징은 하나님이 그들을 보내지 않았다는 점이며 그들은 오히려 많은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예레미야의 예언과는 상반된 예언이지만 오히려 거짓 선지자들을 백성들은 더 선호한 것입니다.
이는 멸망을 스스로 더 재촉하여 앞당기는 것이었고 우유부단하던 시드기야왕은 결국, 느부갓네살 앞에서 두 아들이 죽게 되고 자신은 두 눈이 뽑혀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거짓 선지자 하나냐(렘 28:8-17)
당시 거짓 선지자의 대표적이었던 하나냐는 그의 예언은 예레미야 선지와는 정반대였습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에게 항복하는 것은 살길이며 70년 후에는 다시 예루살렘 귀환을 약속하신 구속사적 예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냐는 지금 당장 바벨론의 멸망할 것이며 이미 바벨론 침공으로 빼앗겼던 성전 기구를 도로 찾아올 것이라는 예언입니다(3절).
이는 이미 포로로 잡혀 바벨론으로 끌려간 왕은 여고나야, 곧, 여호야긴이었는데(19대) 여호야긴이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예언한 것입니다(4절).
그러면서, 하나냐는 예레미야를 오히려 거짓선지자라는 적반하장식으로 잘못 없는 선지를 나무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는 하나냐를 향해
1. 예전 선지자들은 70년 바벨론 포로될 것을 예언하였다고 반론합니다.
8절 "나와 너 이전의 선지자들이 예로부터… 전쟁과 재앙과 전염병을 예언하였느니라"
예레미야선지의 이 반론으로 하나냐의 예언은 거짓임을 증명해 보입니다.
진실논쟁의 현상입니다.
이 당시에는 참 선지자는 누구이고 거짓 선지자는 누구인지 분별하기가 3자의 입장에서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분명하고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즉, 한사람은 여호와의 회의(계시) 참석하였던 반면 다른 한 사람은 자기가 지어서 한것이라는 정입니다(23:18).
즉, 하나냐는 아전인수격으로 곡해한 것입니다.
2. 하나냐의 예언은 거짓이라고 합니다.
15절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지 아니하셨거늘 네가 이 백성에게 거짓을 믿게 하는도다"
당시 제사장들 정치가들, 시드기야왕은 하나냐를 선호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냐 거짓 선지자임을 공공연하게 말하며 단죄라고 있습니다.
즉, 예레미야는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인기없는 설교자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선지는 홀로 예언하는 것 같지만 그 시대에 정하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계획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3. 하나냐 죽음을 예고합니다.
16절 "…네가 금년에 죽으리라 하셨느니라 하더니", 17절 "선지자 하나냐가 그 해 일곱째 달에 죽었더라"
참 무서운 일입니다. 오늘날 이는 성령훼방죄 입니다.
거짓으로 미혹하게 하는 행위는 하나님이 싫어하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이름으로 거짓 예언하는 것은 망령된 행실입니다. 이에 모세는 신 18:20에서 "만일 어떤 선지자가 내가 전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말을 제 마음대로 내 이름으로 전하든지…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했습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오늘날 설교자들도 강단에 올라서 설교할 때 성경말씀만 선포할 것임이 바른 설교자의 자세입니다.
포로된 곳에서(렘 29:1-14)
예레미야는 바벨론으로 이미 잡혀간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아마도 바벨론 2차 침입(BC.597, 왕하 24:8-16) 이후인 것으로 보입니다.
예레미야 편지의 내용은
1. 그곳에서 안정되어 정착하고 기도할 것을 권유합니다.
5-7절 "너희는 집을 짓고…,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자녀를 낳게 하여…,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선지는 혁신적인 권고를 합니다. 집을 짓고 농사도 하며 결혼도 하면서 포로지에서 안정되이 생활을 권고합니다.
이는 그곳 포로생활이라 할지라도 불안해 하지 말고 정착하여함입니다. 비록 성전과 희생 제사가 없더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을 지속케 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2년만에 바벨론이 멸망할 것을 예언하고 조급한 생활을 하던 백성들에게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예언 내용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그곳 성읍(바벨론 왕권)의 번영과 평안을 기도하라고 합니다.
이는 그곳 성읍이 평안하고 안정되어야만 유다백성도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되고, 그래야 훗날, 고국(예루살렘)으로 귀환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 나라, 교회, 가정의 평안과 안정을 위해 기도해야함을 교훈함은 이는 나의 현재, 미래를 위한 것입니다.
2. 점쟁이를 믿지 말라고 합니다.
8절 "…점쟁이에게 미혹되지 말며 너희가 꾼 꿈도 곧이 듣고 믿지 말라"
위 구절은 27:9의 반복 인용입니다.
점쟁이는 장래사에게 대하여 주술하는 자들입니다.
예레미야 선지는 점쟁이에게 미혹되지 말라고 합니다.
모세는 레 20:27에서 "남자나 여자가 접신하거나 박수무당이 되거든 반드시 죽일지니 곧 돌로 그를 치라…"고 단언코 미혹되지 말 것을 경고했습니다.
점쟁이(무당)는 바른 길을 잃어버리게 하고 정신을 헷갈리게 하고 정신을 헷갈리게 하여 갈팡질팡 헤매이게 하는 자들입니다.
점쟁이들은 오늘날도 사주, 팔자 점쳐 주고 돈받는 자들이며 현대사회에서는 더욱 정신적 불안, 미래에 불확실한 근심으로 철학관을 찾거나 점집을 찾는 것은 다 거짓 영, 귀신이 미혹케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대 사회에서 성도는 기도에 힘쓰고 성령충만하여 주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면서 나아갈 때 주님의 인도하심이 궁극적으로 있게 됩니다.
3. 기도를 들으시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리라 약속합니다.
14절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그곳에서 전심으로 기도하여 여호와를 찾으면 그 기도를 들으시고 선지자들에게 약속한 70년만에 구속사적 은총으로 예루살렘 귀환이 성취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속계획은 마침내 바벨론제국을 무너뜨리고 페르시아 제국은 유대인들을 고향땅 예루살렘으로 귀향할 수 있게 됩니다.
바벨론 포로 유대인들은 세차례 걸쳐 귀환합니다. 인류구속사역의 예표가 됩니다.
포로에서 구원(렘 30:1-11)
선지는 유다에 관한 소망의 메시지를 선포합니다(3절).
하지만 그러한 회복은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차야 비로써 실현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선지의 메시지는 궁극적으로 구속사적 미래의 메시야를 암시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예언은
1. 여호와 섬기게 되리라고 하심입니다.
9절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며 내가 그들을 위하여 세울 그들의 왕 다윗을 섬기리라"
곧, 구원의 회복은 그 목적이 이 민족으로 햐여금 누구이신지 분명히 깨달아 경배하는데 있다고 봅니다.
"그들의 왕 다윗"을 섬기리라함은 대망의 메시야, 즉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뜻하는 것입니다.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겔 34:23)
이는 앞으로 오실 종말론적 주님의 예표함입니다.
2. 그러므로, 포로지에서 두려워말며 놀라지 말라고 하심입니다.
10절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므로 나의 종 야곱아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이스라엘아 놀라지 말라…"
선지의 이 예언은 이사야 선지도 동일한 내용으로 이미 선포하였던 것입니다.
사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사 41:14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이는 하나님이 장차 바사왕(페르샤) 고레스를 세워 바벨론의 정복하고 유다를 본국으로 돌아갈 것을 역사적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또한, 더 나아가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초림, 재림주 이십니다.
오늘날도 주를 믿는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주를 믿는 성도의 믿음은 담대함을 얻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미 죄와 사망, 세상과 마귀를 이기셨으므로 그 승리가 성도에게 주신 능력입니다.
3. 너와 함께 하신다고 합니다.
11절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원할 것이라…"
이 예언은 주님이 신약 마 28:20에서 주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부활하신 주께서 제자들에게 지상명령 주시며 주신 말씀입니다.
오늘날 성도들도 세상 끝날까지 함께 계시는 주님과 동행함을 믿는 것입니다.
이는 종말론적 신앙으로 "주예수여! 어서 오십시오" 마라나타의 신앙입니다.
모든 성도들의 종말론적 소망과 주님을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을 상징합니다(계 22:20-21).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2)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새 언약(렘 31:31-33)
언약(言約, Lovenant)이란 법적인 구속력을 지닌 서로간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택하시고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일방적으로 베푸신 은혜의 약속인 것입니다.
다만, 언약의 백성들이 그 언약을 믿고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31절에서 34절까지입니다.
비록 짧은 내용이기는 하지만 구약 전체에서도 가장 심오한 부분중 하나입니다. 더 나아가 본문은 장차 십자가의 사건을 통하여 성취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1. 새언약은 장차 이루어질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31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다윗의 자손 유다 사람들은 세상 열방 가운데서 택하신 선민의 백성입니다. 이사야 선지는 이에 대하여 사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참입니다.
즉, 타락 인생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유다백성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정하신 구속의 계획을 성취하시는 것입니다.
이 구속의 계획을 위하여 유목민 유다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며 광야의 길을 은혜로 지나게 하시며 결국 가나안땅에 입성하게 하심은 구원의 성취를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즉, 이땅에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어 인류 대속 사역을 십자가에서 온전히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 것입니다. 이를 새 언약이라고 하는 구속사적 사건입니다.
결국,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구원을 상징합니다.
2. 옛 언약은 선민의 백성이 깨뜨렸습니다.
32절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 조상들부터 언약관계로 택한 선민의 백성이었습니다. 아담과 에덴에서 언약, 노아와의 무지개언약, 아브라함과 가나안에서 언약, 야곱에게서 벧엘의 언약 모세와의 시내산언약을 맺었습니다.
언약의 본질적 의미는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언약을 저버렸습니다. 아담은 언약과를 따서 먹고 애굽에서 출애굽한 선민의 백성은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입니다.
더욱이 예레미야선지가 활동하던 시기는 더욱 하나님을 떠나서 백성은 타락성을 보였습니다. 결국, 바벨론 포로생활 70년이 지나서 예루살렘으로 귀환은 앞으로 인류대속사역을 위하여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새언약을 증거합니다.
3. 마음속에 기록된 언약을 증거합니다.
33절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예레미야는 여호와는 백성들의 내적 성품의 변화를 주시며 그들로 하여금 순종할 수 있도록 선언합니다.
즉, 여호와는 그들의 마음에 율법을 기록하실 것인바 이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성도들의 삶에 영적 변화가 일어날 것 암시합니다. 사도바울은 갈 5:18이하에서 육체 성품에 대하여, 또한, 성령의 성품에 대하여 두 성품을 비교합니다.
그러면서 육체의 일에 속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지 못하며(갈 5:21) 성령의 일에 속한 사람은 성령의 열매를 맺는다는 영적 성숙함을 사도바울은 증거합니다.
갈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는 영적 성화적 열매입니다.
아나돗밭(렘 32:1-15)
시드기야통치 10년 해에 바벨론 군사들은 예루살렘을 포위하였습니다.
예루살렘성이 정복당한 위급한 상황에서 예레미야 선지는 바벨론에서 항복할 것을 예언하였으나 시드기야는 하나님 경외심이 없음으로써 예레미야를 옥에 가두었던 것입니다(5절).
옥중에서 갇혀있을 때에 예레미야에게 하나님께서는 땅을 구입하라고 하십니다.
이상한 명령입니다.
1. 예레미야가 땅을 매입합니다.
9절 "내 숙부의 아들 하나멜의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는데 은 십칠 세겔을 달아 주되"
그 당시에도 땅을 구입하는 데에도 법적 절차에 따라 거래가 되었습니다. 그 땅은 아나돗에 있는 조카 하나멜의 소유입니다. 그러나 하나멜은 경제적으로 궁핍해져서 밭을 팔아야 처지에 있었고 사촌간인 예레미야에게 전 매권을 주게 된 것입니다. 이에 예레미야는 은 17세겔을 달아 주었는데 1세겔은 약 11.4g 정도의 무게였으므로 17세겔은 약 19g정도였을 것입니다.
당시 1세겔은 노동자 4일에 해당하는 품값으로서 화폐의 단위로 땅값 지불에 사용되었습니다.
2. 땅 증서를 보존하게 하십니다.
14절 "…매매 증서를 가지고 토기에 담아 오랫동안 보존하게 하라"
토기는 웅기, 항아리를 가리킵니다.
흔히 귀중한 문서를 보관하는데 사용되었고 이 매매행위에 있어 행정처리는 바룩이 대신해준 것입니다. 바룩은 예레미야가 신뢰하는 친구이며 애굽에 포로잡혀갈 때에도 함께 시종일관같이 행동한 진정한 친구였습니다.
3. 바벨론에서 귀환후 이땅을 활용하게 될 것을 예언합니다.
15절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리라"
즉, 하나님의 크신 경륜과 섭리는 택한 언약의 백성을 바벨론에 팔아 넘겨 영원히 버리고 망하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70년 기간을 징계하시고 다시 회복케 하시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성전을 진정 사모하고 옛 조상의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바른 신앙회복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연단과정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70년만에 귀환하여 잃었던 옛 토, 농지도 다시 사게 된다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성취함을 의미합니다.
곧, 예루살렘 재건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성취를 하는 상징적인 땅 매매입니다.
미래의 약속(33:1-10)
33장은 미래의 약속에 대한 메시지입니다. 또한, 30-33장의 결론부에 해당하며 위기를 맞는 유다백성에 다시한번 소망의 빛을 확산시키고자하는 내용입니다.
1. 일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절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행하시는" 동사는 히브리어 "아사"로 '만들다' 또한, "바라"로 '창조하다'뜻으로 창세기 1장에서 쓰던 동사로 소급되어 사용됩니다.
곧, 하나님의 창조의 활동을 묘사합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만드신 창조주이시며 지으신 만물을 지배하시며 통치하시는 전능자가 되십니다. 이사야 선지도 사 45:7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모든 일들을 행하는…"
여호와라고 했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땅을 만드시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외에 다른 신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만이 영원한 구원을 주시는 것입니다.
즉, 예레미야는 유다 사람들이 하나님 경외 신앙을 잃어버린 것을 지적하며 하나님을 기억하고 순종할 것을 촉구합니다.
2. 응답을 주시는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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