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종말 전쟁 1
2010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작품 『세상 종말 전쟁』 제1권. 19세기 남미의 역사와 정치, 신앙의 세계를 진솔한 묘사와 치밀한 구성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19세기 말에 있었던 브라질의 어느 광적인 종교 집단과 정부 측 공화주의자들 사이의 전쟁을 다루었다. 네 가지 군상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과 다양한 사건이 전개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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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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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19세기 말에 있었던 브라질의 어느 광적인 종교 집단과 정부 측 공화주의자들 사이의 전쟁을 다루고 있다. 공화국을 악마로 규정하는 종교 집단이나 현대화를 위해 비이성적 집단을 무조건 적대시하는 공화주의자들, 광적인 종교 집단을 유토피아 실현 혁명으로 오인하고 멀리 유럽에서부터 혁명의 밀알이 되겠다고 건너온 무정부주의자 갈릴레오 갈, 전쟁을 취재하러 갔다가 종교 집단 내부의 평등과 박애주의에 감명받아 그들의 이상을 펜으로 알리고 언젠가 그러한 사회가 도래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되는 신문기자. 기본적으로 이 소설은 이 네 가지 군상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과 다양한 사건이 전개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바르가스가 항상 추구해온 대로 하나의 우주 전체를 다양한 관점과 시점에서 그리는 '총체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노예제가 폐지되고, 왕정이 공화정으로 바뀌던 시기, 옛것이 새것으로 바뀌어가며 현대화란 말이 그럭저럭 받아들여지는 시기에 그런 모든 소식이 몇 달은 지나야 전해지는 오지에서 광적인 종교 집단의 반란이 일어난다. 빗나간 교리 해석으로 공화국을 그들의 적, 적그리스도라 선언하면서 반란이 일어나자 수도에 위치한 현대화의 신봉자들은 이 '반란'을 진압하는 동시에 이를 각자의 정치적 이익에 맞게 이용해먹기 위해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다. 하지만 너무나 먼 곳의 오지이기에 토벌대로 파견된 정부군은 도착하기도 전에 괴멸 상태에 빠지고, 급기야 겨우 도착한 군대조차 반란군의 산개전 앞에 참패를 거듭한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그곳으로 모여드는데…… 여러 번의 참패 끝에 정부군은 봉쇄와 포격으로 전술을 바꾸고, 반란의 끝은 군인에 의한 무차별 학살로 마무리된다. 격동의 시기, 신구 세력의 대립, 민중의 반란과 처참한 몰락은 사실 어느 정도는 흔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한 반란이 종교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해도, 그리고 결말이 잔인한 학살극으로 끝나더라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처럼 핏빛 선연한 이 참혹한 이야기가 우리를 끌어당기는 것은 그것을 들려주는 이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이기 때문이다. 마치 『전쟁과 평화』가 나폴레옹 전쟁을 다루었지만 그것을 들려주는 이가 톨스토이이기 때문에 '역사보다 더 뛰어나듯'이 말이다. 겅중겅중 건너뛰는 듯이 보이지만 빈틈없는 묘사와 마치 눈앞에 살아 있는 듯한 인물들, 그리고 그것을 풀어내는 그만의 천재적인 솜씨와 방식들. 선악을 가릴 수 없는 집단들, 누가 옳다고 말할 수 없는 인물들. 그리고 그들이 얽어내는 복잡한 사건들. 이 소설은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다. 혁명과 이성을 맹신하며 종교를 배척하던 '진보주의자'로 아나키스트인 갈릴레오 갈은 종교적 반란을 서구에서 실패한 혁명을 제3세계에서 실현할 수 있는 호기로 오인하고 그들을 지지하려다 공화주의자의 간계에 빠져 쫓기는 신세가 된다. 여기에 그가 고용하려던 길잡이의 아내인 후레마가 따라붙고, 둘은 몰락한 집시 서커스단의 단원들과 함께 반란의 본거지 카누도스로 향한다. 소심한 글쟁이이지만 공화주의자인 신문기자는 토벌군의 종군 취재를 따라나섰다가 낙오되어 카누도스에서 후레마와 연인 사이가 된다. 후레마의 후견인이자 군국주의자인 남작은 영지를 불태우고 아내를 실신하게 한 반란군들을 적대시하지만 공화주의자들에게 그들과 연루되었다며 추궁받는다. 가난으로 자식을 살해한 마리아는 선지자를 만나 만인의 어머니가 된다. 병신인 레온은 그녀의 양아들이다. 놀림당하던 그는 카누도스에선 현자이자 서기이다. 이들의 삶의 사연을 하나하나 추적하는 바르가스 요사의 소설은 이들을 19세기 브라질 사람들로 가두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신산하고 고달픈 삶을 사는 사람들, 온갖 간계와 이권을 쫓아 두 눈을 밝히고 있는 인간 군상들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마치 이들이 옆에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다른 면에서 보자면 이 소설은 대립하는 집단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촌사람과 도회 사람, 군국주의자와 공화주의자, 그리고 반란군들. 갈릴레오 갈은 루피노를 이해하지 못한다. 남작은 곤살베스와 정적이다. 반란군은 그들 모두의 적이다. 그러나 이 모든 도식이 줄거리 속에서는 쉽사리 적용되지 않는다. 아니 적용할 수 없다. 그러한 대립에는 '인간의 역사'라는 알 수 없는 공식이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달리 보면 이 소설은 갖가지 사건을 통해 변화무쌍하게 변해가는 인간 군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성을 맹신하던 갈은 루피노와 싸우면서 모욕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루피노와 닮아간다. 공화주의자인 기자는 카누도스의 생활 동안 사랑에 눈을 뜨고 세상에 맞설 인물이 되어간다. 기자와 얘기를 나눈 남작은 세상보다 자기 생활에 맞서 반란적인 행동을 획책한다. 처음에는 선과 악처럼 단순한 대립 구도에 따라 얽혀 있던 집단과 사람들이 조금씩 전혀 다른 얽힘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설명할 논리가 소설에서 주어지는가? 그렇진 않다. 이 소설의 줄거리를 끌어가는 것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역사라는 공식'이기 때문이다. 이 파란만장한 대하드라마 전체를 하나로 꿸 수 있는 무언가는 없다. 다만 이야기가 있고,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사실 이 소설의 줄거리들은 실화에서 따온 것이 아닌가? 그럼 때론 즐겁고 감동적이며 때론 끔찍하고 인간의 비열함에 치를 떨게도 하는 등 인간이 가진 온갖 감정을 다 맛보도록 해주는 이 모든 줄거리 중 어느 것이 실화이고 어느 것이 지어낸 것인가? 그것은 읽고 난 뒤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러나 소설의 인물들이 때론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을 때가 있다. 이 소설은 또한 이야기 자체로서도 흥미진진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문학 논의와 관련해서도 흥미진진한 쟁점을 제공해준다. 예를 들어 '문학은 세계의 총제적인 재현'이라는 근대 소설의 규범은 바르가스 요사도 따르고 있지만 그에게 이러한 총체성은 루카치나 마르크스주의와는 정반대로 '가치중립적인 것'이어야 한다. 또 이 소설은 서구적 형식인 소설과 남미의 현실 사이의 변증법적 긴장을 푸는 데 과연 '이야기'와 '소설'이 얼마나 타당한가 하는 해묵은 논쟁과 관련해서도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준다. 특히 이 작품에서 우리의 시선을 끄는 인물은 광기와 폭력의 시대에 세상과 귀족적 거리를 유지할 줄 아는 대지주 카냐브라바 남작이다. 그는 인간미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몰고 올 재앙을 예견할 수 있는 통찰력을 지녔다. 아마 이쯤에서 19세기 말 브라질을 다룬 이 소설이 실제로는 21세기를 사는 우리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를 둘러싼 온갖 대의명분과 권모술수의 난립, 이데올로기적 갈등과 대립이 난무하는 광기와 폭력의 포말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바르가스 요사의 이 소설은 바로 지금 우리의 삶을 깊이 되돌아보도록 하는 울림을 준다.
[추천평]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작품 중 최고다!
-『뉴욕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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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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