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를 위한 투쟁 법감정의 형성에 대하여(양장본 Hardcover)
너는 투쟁을 통해 너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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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를 위한 투쟁 법감정의 형성에 대하여』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법의 목적은 평화이지만 수단은 투쟁’이라는 것이다. 이 투쟁은 불법에 대한 항거에 있으며, 그것 없이는 법의 생명은 죽어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이 책은 기존의 여러 번역본과는 다른 독일어 원본 신역으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원본과 꼼꼼히 대조해가면서 새로 번역한 정역서이다.
‘권리를 위한 투쟁’에 이어 수록한 이 글은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것으로, 예링이 1884년 3월 12일 빈 법률가협회에서 행한 강연의 초고이다. 제목은 ‘법감정의 형성에 관하여’다. 이 12년의 기간 동안 예링의 사상은 자신의 사고에 남아 있던 자연법적 잔재들을 완전히 청산하고, 법과 도덕 자체가 역사적 발전의 산물이고, 발전의 동력은 사회적 효용을 증대시키는 ‘목적’에 있다는 목적사상을 정립하게 된다.
‘권리를 위한 투쟁’에 이어 수록한 이 글은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것으로, 예링이 1884년 3월 12일 빈 법률가협회에서 행한 강연의 초고이다. 제목은 ‘법감정의 형성에 관하여’다. 이 12년의 기간 동안 예링의 사상은 자신의 사고에 남아 있던 자연법적 잔재들을 완전히 청산하고, 법과 도덕 자체가 역사적 발전의 산물이고, 발전의 동력은 사회적 효용을 증대시키는 ‘목적’에 있다는 목적사상을 정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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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이 참담한 세월에 읽는 현대 법철학의 영원한 고전, 다시 우리 현실을 일깨우다!
"불법을 감수하지 말라! …… 투쟁은 권리의 영원한 작업이다.
투쟁 가운데서 너는 너의 권리를 발견해야 한다."
저 낮은 곳에서는 산문에 불과했던 권리가,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이 높은 곳에서는 시詩가 된다.
'민주 공화국'이 통째로 도둑맞은 참담한 시국에 현대 법철학의 영원한 고전을
새롭게 읽는다!
'대의 정치'는 '내시 정치'로 타락하고 민주주의는 '비선 실세'에 철저하게 농락당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권리를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
'법치'와 '정치' 자체가 우리 권리를 지켜주지는 않는다.
우리 권리는 우리 권리를 위한 투쟁을 통해,
즉 불법을 감수하지 않는 것을 통해 우리가 지켜야 한다.
"투쟁은 권리의 영원한 작업이다. ……
투쟁 가운데서 너는 너의 권리를 발견하여야 한다."
법치가 '자본'과 결탁하고 권력의 시녀나 앞잡이가 되어 있는 것이 현재의 우리
법의 부끄러운 자화상 중의 하나이다.
"법의 목적은 평화이며, 평화를 얻는 수단은 투쟁이다."
우리의 새로운 민주주의를 열어나가는 길은 '법과 투쟁' 사이의 이처럼 역설적인 관계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불법과 불의를 감수하고 관용하는 비겁과 무관심이야말로
가장 큰 죄악이다.
기존의 여러 번역본과는 완전히 다른 독일어 원본 신역!
기왕의 여러 중역본이나 맥락을 잃은 난해한 판본과 달리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원본과 꼼꼼히 대조해가면서 새로 번역한 정역!
권리를 위한 투쟁 - 불법을 감수하지 마라!
본서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법의 목적은 평화이지만 수단은 투쟁'이라는 것이다. 이 투쟁은 불법에 대한 항거에 있으며, 그것 없이는 법의 생명은 죽어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링에게서 법은 논리적 개념이 아니고 힘의 개념이다. 그리고 이 힘의 원천은 권리이다. 권리는 그에게서는 인간의 실존적 조건으로 파악된다. 생명권, 신체권, 재산권, 자유권, 명예권, 인격권 등의 확보 없이는 인간은 인간으로 생존할 수 없다. 법은 이 권리들을 보호할 목적을 갖고 있으며, 내용은 권리의 객관화된 '사진'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법학에서 권리를 '주관적 법'이라고 하고 법을 '객관적 권리'라고 하는 소이가 바로 여기 있다. 이 양자는 마치 동전의 표리와 같은 관계에 놓여 있다. 따라서 '권리를 위한 투쟁'은 곧 '법을 위한 투쟁'을 의미한다.
이 권리의 내용은 '이익'으로 파악된다. 즉 법에 의해 보호된 이익이 법적 권리이다. 그래서 '권리를 위한 투쟁'은 동시에 '이익을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이익은 물질적ㆍ경제적 이익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신적ㆍ인격적 이익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순수한 인격적 권리 침해는 물론이고 재산적 권리 침해의 경우에서도 그것의 한가운데서는 동시에 '인격'이 침해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체의 권리 침해에서 궁극적으로 문제되는 것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이다. 이것을 수호하기 위해 인간은 자의에 대해 단호히 맞서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예링은 침해된 재산권의 보상에서도 단순한 금전적 가치의 보상, 즉 금전배상만으로써는 부족하며 동시에 정신적 가치, 즉 손상된 법감정에 대한 보상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옛날 로마법에서의 민사상의 제재는 이러한 요구에 만족을 줄 수 있었으나 오늘날의 사법상의 손해배상에서는 이에 대한 배려가 되어 있지 않다고 주장하며, '물질주의'의 전형적 형태라고 비난한다.
특히 그의 사상에서 우리가 또한 주목해야 할 것은 권리를 위한 투쟁은 개인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국가공동체의 존립을 위해서도 필요불가결하다는 점이다. 권리의식이 뚜렷하지 못한 백성은 결국 국가의 권리도 지킬 줄 모른다고 한다. 따라서 외적으로부터 국가를 확고하게 방어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국방예산보다 백성들이 투철한 권리의식으로 무장되어 있을 것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내 것을 빼앗기지 않고 어떤 일이 있어도 지킨다는 권리의식의 함양이야말로 최선의 정치교육이다. 이 관점으로부터 바라볼 때 예링으로서는 침략자보다 오히려 짓밟히는 자를 탓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불법을 행하지 마라!'는 금지명제보다 오히려 '불법을 감수하지 마라!!'는 요구명제를 우선시킨다. 이 요구명제에 상응하는 자기주장이 바로 '권리를 위한 투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은 그에게서는 도덕적 자기보존의 의무로 각자에게 명해지며, '인간의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에로까지 높여진다. 그리고 이 의무를 태만히 하는 자는 자기의 도덕적 실존 조건을 포기하는 자로, 그것은 '도덕적 자살'이라고 할 수 있다. 권리침해를 감수하는 자, 그럼으로써 자기 존재를 노예나 동물의 간계로 전락시키는 자, 그자가 바로 법의 정신을 좀먹는 자이다. 불법과 불의를 감수하고 관용하는 비겁과 무관심이야말로 타기唾棄할 일이며 용서하지 못할 죄를 짓는 것이다. "투쟁은 권리의 영원한 작업이다. …… 투쟁 가운데서 너는 너의 권리를 발견해야 한다."는 이 책의 마지막 구절은 인간의 실존 조건으로서의 권리라는 것은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투쟁에 의해 비로소 쟁취되어짐을 알려주는 진리의 말이다. 예링의 법철학, 아니 더 정확히 말하여 그의 권리의 철학은 이 마지막 결론구에서 가장 잘 표현되어 있다.
법감정의 형성에 관하여
'권리를 위한 투쟁'에 이어 수록한 이 글은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것으로, 예링이 1884년 3월 12일 빈 법률가협회에서 행한 강연의 초고이다. 제목은 '법감정의 형성에 관하여'다. 이 12년의 기간 동안 예링의 사상은 자신의 사고에 남아 있던 자연법적 잔재들을 완전히 청산하고, 법과 도덕 자체가 역사적 발전의 산물이고, 발전의 동력은 사회적 효용을 증대시키는 '목적'에 있다는 목적사상을 정립하게 된다. 예링 법사상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에 해당하는 이 강연문은 강연 직후 〈빈법률가신문〉에 실리긴 했지만 이후 다시 출간된 적이 없다. 예링 스스로도 강연에서 나중에 이 강연을 책으로 출간하겠다고 언급하긴 했지만 실천에 옮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강연은 1877년에 1권이 출간된 그의 주저 『법에서의 목적』이 어떠한 이론적 배경 아래 탄생했는지를 감지할 수 있는 중요한 문헌이다.
예링의 길을 따라, 여기 한국사회에서 왜 "권리를 위한 투쟁인가?"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고대하며
1872년 3월 11일 월요일 오전, 오스트리아 수도 빈.
54세의 대학교수 예링이 서재의 문을 열고 걸어 나온다. 잠시, 거실 벽에 걸린 거울을 보고 섰다. 검은 정장의 옷깃을 여미고, 넓은 이마 뒤로 남은 머리를 꼼꼼 매만진다. 얼마 뒤면 독일에 돌아간다. 안경테를 잡아 살짝 올리며, 혼잣말을 한다. 지난 4년 간 봉직한 빈 대학을 떠나기에 앞서 예링은 오늘 빈 법률가협회에서 고별 강연을 할 것이다. 다소 긴장되는지, 예링은 볼을 둥글게 부풀려 날숨을 뱉어본다. 고개를 돌려 탁자 위에 놓아둔 강연문에 눈길을 주다, 어깻죽지에 내려앉은 새치 한 올을 무심코 집어 든다. 외국에서 법학을 가르치는 자신의 새하얀 현재를, 과거의 편린들이 무심히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에, 예링은 새삼 숙연해진다. 26년 전, 그러니까 1846년 예링은 독일 북부에 위치한 로스톡 대학에서 로마법 학자의 행보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변호사인 아버지를 따라 법학을 전공한지 10년 만의 일이었다. 자신이 세운 목표와 자신이 가진 능력 사이에 놓인 심연을 메우고자, 항시 초초한 기색으로 읽고 쓰는 날을 반복했다.
부인 헬레네가 세상을 떠난 것은 로스톡에 정착하고 2년 뒤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이를 낳은 후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 탓이었다. 그녀의 나이 23살이었고, 예링은 29살이었다. 품 안의 젖먹이마저 두 달 후 어미를 뒤따랐다. 음악과 문학에 심취했던 예링 특유의 사교성은 그때부터 힘을 잃기 시작했다. 1년 뒤, 예링은 슬픔의 그림자가 미치지 않는 곳을 찾아, 독일 중부의 작은 도시 기센으로 자리를 옮겼다. 기센 대학교에서 예링은 연구에 집착적으로 몰두했다. 그것이 슬픔을 잊는 방식이자, 잊음을 슬퍼하는 방식이었다. "로마법을 통하여, 로마법을 넘어!"를 기치로, 13년에 걸쳐 4권으로 펴낸 『로마법의 정신』은 예링의 찢긴 가슴에 틔운 싹이었다. 그러나 불행은 1868년에도 예링을 찾아왔다. 49세의 예링은 두 번째 부인 이다와도 사별하고 말았다. 생활의 시詩는 사라졌다. 광막한 슬픔의 그림자는 익숙한 모든 사람과 사물에 드리워져, 예링이 머물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예링은 아예 국경을 넘기로 작심했다. 때마침 오스트리아의 빈 대학 측이 예링을 초빙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빈은 예링이 그동안 근무했던 곳과는 달리 아주 큰 도시였다. 그 규모는 놀랍게도 문화와 예술의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예링은 서서히 그곳의 이색異色에 젖어들며, 다시금 연구와 강의에 매진했다. 예링이 머문 1868년부터 1872년까지 그의 강의실은 수백 명의 학생들로 가득 찼다. 오스트리아 황제는 법학 발전에 공헌한 점을 높이 사, 예링에게 작위를 하사했다. 그리고 예링은 결혼을 했다.
예링의 눈길이 다시 강연문을 향한다. 강연문이 놓인 탁자로 걸어가며 생각한다. "너는 투쟁을 통해 너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라는 표어만은 청중의 가슴속에 아로새기리라. 훗날 이 강연문을 책으로 출간한다면, 그 표지에 반드시 이 경구를 넣으리라. 옛 로마를 비롯한 오늘날 각국 사람들의 권리의식을 뚜렷이 대비시켜 청중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리라. 예링의 얼굴에 미소가 엷게 번진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절묘하게 인용하고 해석할 때, 청중들이 짓게 될 오묘한 표정을 볼 생각에 마음이 들먹인다. 그러나 이내 만면에 걱정이 섞여든다. 모든 다툼에서 권리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사람들이 오해하지는 않을까. 오로지 권리의 침해가 인격에 대한 멸시까지 포함하는 경우에만 권리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인데도 말이다. 잠시 후, 예링은 집을 나서 법률가협회로 향할 것이다.
그날 강연에 대한 속기速記에 따르면, 예링이 강연을 마친 뒤 청중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가 몇 분 동안이나 이어졌다고 한다. 지금 여기는 예링 탄생 200주년을 앞둔 2016년의 대한민국이다. 당신도 1872년 봄의 어느 월요일 오스트리아의 빈 법률가협회(이 협회는 지금도 명맥을 잇고 있다)에 모인 사람들이 받은 감동을 느낄 수 있을까. 아니, 옮긴이의 반사실적 바람을 섞어 묻건대, 당신은 과연 한 점의 동요 없이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을까. 갇혀온 한국 사회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서도 유용한 논의를 촉발할 수 있을 것이다.
"불법을 감수하지 말라! …… 투쟁은 권리의 영원한 작업이다.
투쟁 가운데서 너는 너의 권리를 발견해야 한다."
저 낮은 곳에서는 산문에 불과했던 권리가,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이 높은 곳에서는 시詩가 된다.
'민주 공화국'이 통째로 도둑맞은 참담한 시국에 현대 법철학의 영원한 고전을
새롭게 읽는다!
'대의 정치'는 '내시 정치'로 타락하고 민주주의는 '비선 실세'에 철저하게 농락당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권리를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
'법치'와 '정치' 자체가 우리 권리를 지켜주지는 않는다.
우리 권리는 우리 권리를 위한 투쟁을 통해,
즉 불법을 감수하지 않는 것을 통해 우리가 지켜야 한다.
"투쟁은 권리의 영원한 작업이다. ……
투쟁 가운데서 너는 너의 권리를 발견하여야 한다."
법치가 '자본'과 결탁하고 권력의 시녀나 앞잡이가 되어 있는 것이 현재의 우리
법의 부끄러운 자화상 중의 하나이다.
"법의 목적은 평화이며, 평화를 얻는 수단은 투쟁이다."
우리의 새로운 민주주의를 열어나가는 길은 '법과 투쟁' 사이의 이처럼 역설적인 관계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불법과 불의를 감수하고 관용하는 비겁과 무관심이야말로
가장 큰 죄악이다.
기존의 여러 번역본과는 완전히 다른 독일어 원본 신역!
기왕의 여러 중역본이나 맥락을 잃은 난해한 판본과 달리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원본과 꼼꼼히 대조해가면서 새로 번역한 정역!
권리를 위한 투쟁 - 불법을 감수하지 마라!
본서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법의 목적은 평화이지만 수단은 투쟁'이라는 것이다. 이 투쟁은 불법에 대한 항거에 있으며, 그것 없이는 법의 생명은 죽어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링에게서 법은 논리적 개념이 아니고 힘의 개념이다. 그리고 이 힘의 원천은 권리이다. 권리는 그에게서는 인간의 실존적 조건으로 파악된다. 생명권, 신체권, 재산권, 자유권, 명예권, 인격권 등의 확보 없이는 인간은 인간으로 생존할 수 없다. 법은 이 권리들을 보호할 목적을 갖고 있으며, 내용은 권리의 객관화된 '사진'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법학에서 권리를 '주관적 법'이라고 하고 법을 '객관적 권리'라고 하는 소이가 바로 여기 있다. 이 양자는 마치 동전의 표리와 같은 관계에 놓여 있다. 따라서 '권리를 위한 투쟁'은 곧 '법을 위한 투쟁'을 의미한다.
이 권리의 내용은 '이익'으로 파악된다. 즉 법에 의해 보호된 이익이 법적 권리이다. 그래서 '권리를 위한 투쟁'은 동시에 '이익을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이익은 물질적ㆍ경제적 이익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신적ㆍ인격적 이익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순수한 인격적 권리 침해는 물론이고 재산적 권리 침해의 경우에서도 그것의 한가운데서는 동시에 '인격'이 침해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체의 권리 침해에서 궁극적으로 문제되는 것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이다. 이것을 수호하기 위해 인간은 자의에 대해 단호히 맞서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예링은 침해된 재산권의 보상에서도 단순한 금전적 가치의 보상, 즉 금전배상만으로써는 부족하며 동시에 정신적 가치, 즉 손상된 법감정에 대한 보상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옛날 로마법에서의 민사상의 제재는 이러한 요구에 만족을 줄 수 있었으나 오늘날의 사법상의 손해배상에서는 이에 대한 배려가 되어 있지 않다고 주장하며, '물질주의'의 전형적 형태라고 비난한다.
특히 그의 사상에서 우리가 또한 주목해야 할 것은 권리를 위한 투쟁은 개인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국가공동체의 존립을 위해서도 필요불가결하다는 점이다. 권리의식이 뚜렷하지 못한 백성은 결국 국가의 권리도 지킬 줄 모른다고 한다. 따라서 외적으로부터 국가를 확고하게 방어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국방예산보다 백성들이 투철한 권리의식으로 무장되어 있을 것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내 것을 빼앗기지 않고 어떤 일이 있어도 지킨다는 권리의식의 함양이야말로 최선의 정치교육이다. 이 관점으로부터 바라볼 때 예링으로서는 침략자보다 오히려 짓밟히는 자를 탓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불법을 행하지 마라!'는 금지명제보다 오히려 '불법을 감수하지 마라!!'는 요구명제를 우선시킨다. 이 요구명제에 상응하는 자기주장이 바로 '권리를 위한 투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은 그에게서는 도덕적 자기보존의 의무로 각자에게 명해지며, '인간의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에로까지 높여진다. 그리고 이 의무를 태만히 하는 자는 자기의 도덕적 실존 조건을 포기하는 자로, 그것은 '도덕적 자살'이라고 할 수 있다. 권리침해를 감수하는 자, 그럼으로써 자기 존재를 노예나 동물의 간계로 전락시키는 자, 그자가 바로 법의 정신을 좀먹는 자이다. 불법과 불의를 감수하고 관용하는 비겁과 무관심이야말로 타기唾棄할 일이며 용서하지 못할 죄를 짓는 것이다. "투쟁은 권리의 영원한 작업이다. …… 투쟁 가운데서 너는 너의 권리를 발견해야 한다."는 이 책의 마지막 구절은 인간의 실존 조건으로서의 권리라는 것은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투쟁에 의해 비로소 쟁취되어짐을 알려주는 진리의 말이다. 예링의 법철학, 아니 더 정확히 말하여 그의 권리의 철학은 이 마지막 결론구에서 가장 잘 표현되어 있다.
법감정의 형성에 관하여
'권리를 위한 투쟁'에 이어 수록한 이 글은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것으로, 예링이 1884년 3월 12일 빈 법률가협회에서 행한 강연의 초고이다. 제목은 '법감정의 형성에 관하여'다. 이 12년의 기간 동안 예링의 사상은 자신의 사고에 남아 있던 자연법적 잔재들을 완전히 청산하고, 법과 도덕 자체가 역사적 발전의 산물이고, 발전의 동력은 사회적 효용을 증대시키는 '목적'에 있다는 목적사상을 정립하게 된다. 예링 법사상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에 해당하는 이 강연문은 강연 직후 〈빈법률가신문〉에 실리긴 했지만 이후 다시 출간된 적이 없다. 예링 스스로도 강연에서 나중에 이 강연을 책으로 출간하겠다고 언급하긴 했지만 실천에 옮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강연은 1877년에 1권이 출간된 그의 주저 『법에서의 목적』이 어떠한 이론적 배경 아래 탄생했는지를 감지할 수 있는 중요한 문헌이다.
예링의 길을 따라, 여기 한국사회에서 왜 "권리를 위한 투쟁인가?"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고대하며
1872년 3월 11일 월요일 오전, 오스트리아 수도 빈.
54세의 대학교수 예링이 서재의 문을 열고 걸어 나온다. 잠시, 거실 벽에 걸린 거울을 보고 섰다. 검은 정장의 옷깃을 여미고, 넓은 이마 뒤로 남은 머리를 꼼꼼 매만진다. 얼마 뒤면 독일에 돌아간다. 안경테를 잡아 살짝 올리며, 혼잣말을 한다. 지난 4년 간 봉직한 빈 대학을 떠나기에 앞서 예링은 오늘 빈 법률가협회에서 고별 강연을 할 것이다. 다소 긴장되는지, 예링은 볼을 둥글게 부풀려 날숨을 뱉어본다. 고개를 돌려 탁자 위에 놓아둔 강연문에 눈길을 주다, 어깻죽지에 내려앉은 새치 한 올을 무심코 집어 든다. 외국에서 법학을 가르치는 자신의 새하얀 현재를, 과거의 편린들이 무심히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에, 예링은 새삼 숙연해진다. 26년 전, 그러니까 1846년 예링은 독일 북부에 위치한 로스톡 대학에서 로마법 학자의 행보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변호사인 아버지를 따라 법학을 전공한지 10년 만의 일이었다. 자신이 세운 목표와 자신이 가진 능력 사이에 놓인 심연을 메우고자, 항시 초초한 기색으로 읽고 쓰는 날을 반복했다.
부인 헬레네가 세상을 떠난 것은 로스톡에 정착하고 2년 뒤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이를 낳은 후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 탓이었다. 그녀의 나이 23살이었고, 예링은 29살이었다. 품 안의 젖먹이마저 두 달 후 어미를 뒤따랐다. 음악과 문학에 심취했던 예링 특유의 사교성은 그때부터 힘을 잃기 시작했다. 1년 뒤, 예링은 슬픔의 그림자가 미치지 않는 곳을 찾아, 독일 중부의 작은 도시 기센으로 자리를 옮겼다. 기센 대학교에서 예링은 연구에 집착적으로 몰두했다. 그것이 슬픔을 잊는 방식이자, 잊음을 슬퍼하는 방식이었다. "로마법을 통하여, 로마법을 넘어!"를 기치로, 13년에 걸쳐 4권으로 펴낸 『로마법의 정신』은 예링의 찢긴 가슴에 틔운 싹이었다. 그러나 불행은 1868년에도 예링을 찾아왔다. 49세의 예링은 두 번째 부인 이다와도 사별하고 말았다. 생활의 시詩는 사라졌다. 광막한 슬픔의 그림자는 익숙한 모든 사람과 사물에 드리워져, 예링이 머물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예링은 아예 국경을 넘기로 작심했다. 때마침 오스트리아의 빈 대학 측이 예링을 초빙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빈은 예링이 그동안 근무했던 곳과는 달리 아주 큰 도시였다. 그 규모는 놀랍게도 문화와 예술의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예링은 서서히 그곳의 이색異色에 젖어들며, 다시금 연구와 강의에 매진했다. 예링이 머문 1868년부터 1872년까지 그의 강의실은 수백 명의 학생들로 가득 찼다. 오스트리아 황제는 법학 발전에 공헌한 점을 높이 사, 예링에게 작위를 하사했다. 그리고 예링은 결혼을 했다.
예링의 눈길이 다시 강연문을 향한다. 강연문이 놓인 탁자로 걸어가며 생각한다. "너는 투쟁을 통해 너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라는 표어만은 청중의 가슴속에 아로새기리라. 훗날 이 강연문을 책으로 출간한다면, 그 표지에 반드시 이 경구를 넣으리라. 옛 로마를 비롯한 오늘날 각국 사람들의 권리의식을 뚜렷이 대비시켜 청중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리라. 예링의 얼굴에 미소가 엷게 번진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절묘하게 인용하고 해석할 때, 청중들이 짓게 될 오묘한 표정을 볼 생각에 마음이 들먹인다. 그러나 이내 만면에 걱정이 섞여든다. 모든 다툼에서 권리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사람들이 오해하지는 않을까. 오로지 권리의 침해가 인격에 대한 멸시까지 포함하는 경우에만 권리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인데도 말이다. 잠시 후, 예링은 집을 나서 법률가협회로 향할 것이다.
그날 강연에 대한 속기速記에 따르면, 예링이 강연을 마친 뒤 청중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가 몇 분 동안이나 이어졌다고 한다. 지금 여기는 예링 탄생 200주년을 앞둔 2016년의 대한민국이다. 당신도 1872년 봄의 어느 월요일 오스트리아의 빈 법률가협회(이 협회는 지금도 명맥을 잇고 있다)에 모인 사람들이 받은 감동을 느낄 수 있을까. 아니, 옮긴이의 반사실적 바람을 섞어 묻건대, 당신은 과연 한 점의 동요 없이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을까. 갇혀온 한국 사회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서도 유용한 논의를 촉발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목차
옮긴이 서문|불법을 감수하지 말라! ― 권리를 위한 투쟁 · 7
개역판 옮긴이 서문|기억은 현재의 필요 때문에 기억될 뿐, 과거로 되돌아가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다 · 13
권리를 위한 투쟁 · 23
/
법감정의 형성에 관하여 · 137
개역판 옮긴이 서문|기억은 현재의 필요 때문에 기억될 뿐, 과거로 되돌아가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다 · 13
권리를 위한 투쟁 · 23
/
법감정의 형성에 관하여 · 137
저자
저자
루돌프 폰 예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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