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존하는 이미지: 바르부르크의 미술사와 유령의 시간(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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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미술사!
왜 미술은 ‘광기’ 또는 ‘혁명’에서 시작해
‘미술관’과 ‘시장’과 ‘고가’로 끝나는가?
미술은 장르와 예술가에 대한 ‘이해’ 차원에서 소비되는 ‘교양’의 대상이 아니다.
미술사의 최대 미스터리 중 하나는 최대 문제작 〈모나리자〉가 ‘신비한 미소’로만, 즉 ‘잔존하는 이미지’로만 기억되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에 대한 대답은 아직까지는 ‘아무도 모른다’이다. 아마 그것은 〈모나리자〉를 넘어 모든 미술 또는 미술사의 미스터리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즉 미술은 이해되지 않지만 우리 뇌리 속의 어떤 잔존하는 이미지로 계속 남아 있는 어떤 것이다. 즉 미술이나 이미지는 ‘이해’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기존에 미술 논의를 주도해온 장르론(곰브리치)이나 도상학(파노프스키)은 그런 이성의 이해 중심으로 논의를 끌어왔다. 하지만 〈모나리자〉의 ‘신비로운’ 미소조차 해명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진 지 오래다. 따라서 미술과 이미지를 ‘삐딱하게’ 아니 오히려 물구나무 세워 읽을 때이다. 그리고 20세기의 제도적 미술론을 수립한 곰브리치와 파노프스키의 ‘은폐된 아버지’, 정신병원에 갇힌 ‘미술사의 유령’ 바르부르크에게 돌아갈 때이다.
왜 미술은 ‘광기’ 또는 ‘혁명’에서 시작해
‘미술관’과 ‘시장’과 ‘고가’로 끝나는가?
미술은 장르와 예술가에 대한 ‘이해’ 차원에서 소비되는 ‘교양’의 대상이 아니다.
미술사의 최대 미스터리 중 하나는 최대 문제작 〈모나리자〉가 ‘신비한 미소’로만, 즉 ‘잔존하는 이미지’로만 기억되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에 대한 대답은 아직까지는 ‘아무도 모른다’이다. 아마 그것은 〈모나리자〉를 넘어 모든 미술 또는 미술사의 미스터리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즉 미술은 이해되지 않지만 우리 뇌리 속의 어떤 잔존하는 이미지로 계속 남아 있는 어떤 것이다. 즉 미술이나 이미지는 ‘이해’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기존에 미술 논의를 주도해온 장르론(곰브리치)이나 도상학(파노프스키)은 그런 이성의 이해 중심으로 논의를 끌어왔다. 하지만 〈모나리자〉의 ‘신비로운’ 미소조차 해명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진 지 오래다. 따라서 미술과 이미지를 ‘삐딱하게’ 아니 오히려 물구나무 세워 읽을 때이다. 그리고 20세기의 제도적 미술론을 수립한 곰브리치와 파노프스키의 ‘은폐된 아버지’, 정신병원에 갇힌 ‘미술사의 유령’ 바르부르크에게 돌아갈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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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20세기의 제도적 미술사의 숨겨진 유령, 감추어진 아버지 바르부르크!
21세기의 '이미지학'과 '미술학'을 위한 새로운 아방가르드 이론을 구축하기 위한 출발점!
라캉에 따르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출발점에서는 혁명적이었다. 하지만 제자들의 '정상' 심리학과 American Way of Life에 의해 순응주의적인 것이 되었다. 저자에 따르면 앞의 역사적 궤적은 미술론과 미술사의 프로이트라고 할 수 있는 바르부르크에도 동일하게 해당된다. 프로이트는 경험주의의 나라 영국으로의 망명 그리고 미국에서의 수용이 그러한 순응주의를 부추겼다면 바르부르크의 경우 그가 말년에 정신병원에 갇히고 제자들이 미국의 대학이라는 제도 안에 갇히면서 동일한 사태가 초래되었다. 따라서 우리가 오늘날 미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의 모든 것은 '이것을 무슨 의미이지'를 둘러싼 이해와 '교양'이 대부분이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이미지와 미술 논의를 주도하게 된 양식사와 도상학에도 불구하고 미술은 여전히 알 듯 말 듯하고, 누구도 '이해'했다고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와 미술사 밖에서는 '주목' 경제, 이미지의 각종 '몽타주', '기억[므네모시네]의 아틀라스' 등 잔존하는 이미지, 시선의 기억학, 새로운 몽타주 이론으로서의 아틀라스가 21세기 이미지를 새롭게 주도하고 있다. 이미지는 '이해'보다는 기억과 시선과 정동의 영역임이 여실히 증명되고 있지만 기왕의 제도적 논의로는 이 새로운 흐름을 뒤쫓기에도 버거운 형편이다. 이제 미술사를 거꾸로 읽고, 미술과 미술사에 전복적으로 접근할 때이다.
□ 빙켈만부터 아감벤까지 정상과 비정상, 이성과 감성, 종합과 해체 간의 장대한 사유의 투쟁의 역사를 재구성하며 미술과 이미지의 본질을 재구축한다.
포도 그림을 그려 새를 속인 제욱시스, 그리고 커튼을 그려 그런 제욱시스를 속인 파라시오스 간의 경합에 대해 플리니우스가 전하는 고대 그리스의 미술 이야기는 이미지와 미술의 의미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처음부터 깨부순다. 즉 그것은 이미지나 미술의 본질은 눈을 위해 정확성을 생산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눈을 위한 착각, 즉 눈속임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일화는 '잔존하는 이미지'라는 본서 제목과도 긴밀하게 관련된다. 즉 이미지에서 중요한 것은 정확하게 이해되는 부분이라기보다는 그렇게 가정되는 것의 '나머지', '잔여'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미지나 그림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표방하는 장르론이나 도상학은 기본적으로 제욱시스의 패러다임과 동일한 셈이다.
우리는 '이 그림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이지'하고 궁금해한다. 하지만 이미지나 그림은 말로, 논리적으로 자기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시선과 응시의 대상이며, 우리의 이성이 아니라 기억의 전통 전체와 접속된다. 하지만 이미지를 글로 설명하려는 앞의 패러다임이 이미지론이나 미술학, 미술 연구를 주도해왔다. 하지만 본서 주장에 따르면 그것은 일종의 연목구어緣木求魚 격이다. 온갖 추상적인 논리와 교묘한 궤변을 동원해 나무 높이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려고 하는 꼴이다. 눈이 본 것을 입으로 말할 수밖에 없지만 눈이 본 것을 눈이 말하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따라서 본서는 어쩔 수 없이 미술사 일종의 '불편한 진실'에 대해 말하는 셈이다. 벤야민의 기술복제와 '아우라의 상실' 테제만 해도 우아한 미술이나 예술의 죽음의 슬픈 애가처럼 들리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본서는 아예 이미지와 미술의 본질은 기술이나 아우라와 같은 그런 측면에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만약 말하는 입(철학이나 문학)과 먹는 입(경제학)이라는 비유를 빌려 기존의 인문학을 설명하자면, 이미지는 양쪽의 입과는 모두 무관하며 말 그대로 눈의 영역에 속한다. 게다가 그것은 기왕의 장르론이나 도상학이 포착하려는 전체가 아니라 항상 '잔여'에 불과하다. 미술과 이미지는 눈과 기억 즉 일종의 정동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눈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며, 도상이나 장르보다는 우리의 '기억의 아틀라스' 속에서 성좌를 그린다. 당연히 이와 같은 도전적이고 도발적인 주장에 대해서는 쉽게 찬반의 대답을 해서는 안 되겠지만 21세기의 이미지 논의 맥락에서 그의 도발과 도전은 모두 일독의 대상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 19세기와 20세기의 다채로운 이론가와 도전적 지성이 합종연횡하면서 그려내는 서양의 새로운 지성사의 캔버스. 다윈이 프로이트와 대면하고, 후설은 빈스방거와 회동하고, 피렌체의 뱀은 아메리카 인디언의 뱀 무더기와 마주한다.
이처럼 문제제기부터 도발적인 본서는 또한 논의의 '광폭성'에서도 여타 저작과 궤를 달리한다. 즉 한 축으로는 빙켈만과 바르부르크로 이어지는 제도적 미술사학의 역사를, 다른 한 축으로는 동시대의 니체-다윈-프로이트의 또 다른 사유의 역사를, 마지막으로는 벤야민-아감벤-들뢰즈로 이어지는 20세기 사상사를 종횡으로 누비며 서구 지성사를 재구축한다.
그처럼 도발적인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주류의 주장을 집요하게 비판하고 해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20세기 '미술사의 아버지'가 체계적으로 파묻히고 배제되어온 논리적 과정을 요령 있게 '폭로'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서양에서 '미술사'라는 장르의 창시자인 빙켈만의 논의부터 꼼꼼하게 살펴보며, 미술사를 고고학적으로 탈구축한다. 이어 그를 계승하는 동시에 극복하는 부르크하르트의 곤혹과 망설임을 살피면서 미술에서 가령 '영원한 미'가 미술의 영원한 이상이 되는 맥락을 고고학적으로 해부한다. 가령 칸트의 논의를 빌리자면 영원히 '감성' 영역에 머무르는 미술과 이미지가 '미술사'를 통해 '이성'의 영역으로 옮겨가, 영원한 이데아로 섬겨지면서 '미술사' 또는 미술의 영원한 목표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논의가 흥미진진한 것은 단지 이처럼 그의 논의가 미술사 내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타일러의 인류학, 동일자의 영원회귀의 니체, 그리고 원초적 장면의 프로이트 등 미술 외부의 논의와도 긴밀하게 관련되는 것이다. '잔존하는 이미지'로 요약되는 미술과 이미지의 본질은 이 세 사람 모두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차이와 반복'의 인간론 및 문명관과도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포스트모던적이다. 즉 20세기 말에 포스트모더즘이 비판하는 모든 것을 이미 20세기 초에 전부 비판하고 있다. 아마 바르부르크가 의도적으로 배제되고 망각되고 은폐된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이어 이 책은 '차이와 반복'과 관련해 들뢰즈와의 새로운 접속 방식을, 그리고 정상/비정상과 관련해 푸코와의 독특한 연결방식을 그리고 '정신병'과 관련해 라캉과의 새로운 접합 방식을 보여준다. 그것을 통해 그동안 인문학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되어온 영역을 종합적으로 재구성해 보여준다. 이 책은 또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독일과 영국 그리고 20세기 하반기의 프랑스의 '이단적 사상가들', '극단의 예언가들'이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를 이미지론을 통해 새롭게 보여준다. 그들이 동시에 미학의 혁명가들이라는 점에서 그동안 철학이라는 이성의 영역 중심으로 이루진 논의의 한계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21세기의 '이미지학'과 '미술학'을 위한 새로운 아방가르드 이론을 구축하기 위한 출발점!
라캉에 따르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출발점에서는 혁명적이었다. 하지만 제자들의 '정상' 심리학과 American Way of Life에 의해 순응주의적인 것이 되었다. 저자에 따르면 앞의 역사적 궤적은 미술론과 미술사의 프로이트라고 할 수 있는 바르부르크에도 동일하게 해당된다. 프로이트는 경험주의의 나라 영국으로의 망명 그리고 미국에서의 수용이 그러한 순응주의를 부추겼다면 바르부르크의 경우 그가 말년에 정신병원에 갇히고 제자들이 미국의 대학이라는 제도 안에 갇히면서 동일한 사태가 초래되었다. 따라서 우리가 오늘날 미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의 모든 것은 '이것을 무슨 의미이지'를 둘러싼 이해와 '교양'이 대부분이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이미지와 미술 논의를 주도하게 된 양식사와 도상학에도 불구하고 미술은 여전히 알 듯 말 듯하고, 누구도 '이해'했다고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와 미술사 밖에서는 '주목' 경제, 이미지의 각종 '몽타주', '기억[므네모시네]의 아틀라스' 등 잔존하는 이미지, 시선의 기억학, 새로운 몽타주 이론으로서의 아틀라스가 21세기 이미지를 새롭게 주도하고 있다. 이미지는 '이해'보다는 기억과 시선과 정동의 영역임이 여실히 증명되고 있지만 기왕의 제도적 논의로는 이 새로운 흐름을 뒤쫓기에도 버거운 형편이다. 이제 미술사를 거꾸로 읽고, 미술과 미술사에 전복적으로 접근할 때이다.
□ 빙켈만부터 아감벤까지 정상과 비정상, 이성과 감성, 종합과 해체 간의 장대한 사유의 투쟁의 역사를 재구성하며 미술과 이미지의 본질을 재구축한다.
포도 그림을 그려 새를 속인 제욱시스, 그리고 커튼을 그려 그런 제욱시스를 속인 파라시오스 간의 경합에 대해 플리니우스가 전하는 고대 그리스의 미술 이야기는 이미지와 미술의 의미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처음부터 깨부순다. 즉 그것은 이미지나 미술의 본질은 눈을 위해 정확성을 생산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눈을 위한 착각, 즉 눈속임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일화는 '잔존하는 이미지'라는 본서 제목과도 긴밀하게 관련된다. 즉 이미지에서 중요한 것은 정확하게 이해되는 부분이라기보다는 그렇게 가정되는 것의 '나머지', '잔여'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미지나 그림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표방하는 장르론이나 도상학은 기본적으로 제욱시스의 패러다임과 동일한 셈이다.
우리는 '이 그림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이지'하고 궁금해한다. 하지만 이미지나 그림은 말로, 논리적으로 자기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시선과 응시의 대상이며, 우리의 이성이 아니라 기억의 전통 전체와 접속된다. 하지만 이미지를 글로 설명하려는 앞의 패러다임이 이미지론이나 미술학, 미술 연구를 주도해왔다. 하지만 본서 주장에 따르면 그것은 일종의 연목구어緣木求魚 격이다. 온갖 추상적인 논리와 교묘한 궤변을 동원해 나무 높이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려고 하는 꼴이다. 눈이 본 것을 입으로 말할 수밖에 없지만 눈이 본 것을 눈이 말하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따라서 본서는 어쩔 수 없이 미술사 일종의 '불편한 진실'에 대해 말하는 셈이다. 벤야민의 기술복제와 '아우라의 상실' 테제만 해도 우아한 미술이나 예술의 죽음의 슬픈 애가처럼 들리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본서는 아예 이미지와 미술의 본질은 기술이나 아우라와 같은 그런 측면에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만약 말하는 입(철학이나 문학)과 먹는 입(경제학)이라는 비유를 빌려 기존의 인문학을 설명하자면, 이미지는 양쪽의 입과는 모두 무관하며 말 그대로 눈의 영역에 속한다. 게다가 그것은 기왕의 장르론이나 도상학이 포착하려는 전체가 아니라 항상 '잔여'에 불과하다. 미술과 이미지는 눈과 기억 즉 일종의 정동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눈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며, 도상이나 장르보다는 우리의 '기억의 아틀라스' 속에서 성좌를 그린다. 당연히 이와 같은 도전적이고 도발적인 주장에 대해서는 쉽게 찬반의 대답을 해서는 안 되겠지만 21세기의 이미지 논의 맥락에서 그의 도발과 도전은 모두 일독의 대상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 19세기와 20세기의 다채로운 이론가와 도전적 지성이 합종연횡하면서 그려내는 서양의 새로운 지성사의 캔버스. 다윈이 프로이트와 대면하고, 후설은 빈스방거와 회동하고, 피렌체의 뱀은 아메리카 인디언의 뱀 무더기와 마주한다.
이처럼 문제제기부터 도발적인 본서는 또한 논의의 '광폭성'에서도 여타 저작과 궤를 달리한다. 즉 한 축으로는 빙켈만과 바르부르크로 이어지는 제도적 미술사학의 역사를, 다른 한 축으로는 동시대의 니체-다윈-프로이트의 또 다른 사유의 역사를, 마지막으로는 벤야민-아감벤-들뢰즈로 이어지는 20세기 사상사를 종횡으로 누비며 서구 지성사를 재구축한다.
그처럼 도발적인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주류의 주장을 집요하게 비판하고 해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20세기 '미술사의 아버지'가 체계적으로 파묻히고 배제되어온 논리적 과정을 요령 있게 '폭로'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서양에서 '미술사'라는 장르의 창시자인 빙켈만의 논의부터 꼼꼼하게 살펴보며, 미술사를 고고학적으로 탈구축한다. 이어 그를 계승하는 동시에 극복하는 부르크하르트의 곤혹과 망설임을 살피면서 미술에서 가령 '영원한 미'가 미술의 영원한 이상이 되는 맥락을 고고학적으로 해부한다. 가령 칸트의 논의를 빌리자면 영원히 '감성' 영역에 머무르는 미술과 이미지가 '미술사'를 통해 '이성'의 영역으로 옮겨가, 영원한 이데아로 섬겨지면서 '미술사' 또는 미술의 영원한 목표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논의가 흥미진진한 것은 단지 이처럼 그의 논의가 미술사 내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타일러의 인류학, 동일자의 영원회귀의 니체, 그리고 원초적 장면의 프로이트 등 미술 외부의 논의와도 긴밀하게 관련되는 것이다. '잔존하는 이미지'로 요약되는 미술과 이미지의 본질은 이 세 사람 모두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차이와 반복'의 인간론 및 문명관과도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포스트모던적이다. 즉 20세기 말에 포스트모더즘이 비판하는 모든 것을 이미 20세기 초에 전부 비판하고 있다. 아마 바르부르크가 의도적으로 배제되고 망각되고 은폐된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이어 이 책은 '차이와 반복'과 관련해 들뢰즈와의 새로운 접속 방식을, 그리고 정상/비정상과 관련해 푸코와의 독특한 연결방식을 그리고 '정신병'과 관련해 라캉과의 새로운 접합 방식을 보여준다. 그것을 통해 그동안 인문학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되어온 영역을 종합적으로 재구성해 보여준다. 이 책은 또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독일과 영국 그리고 20세기 하반기의 프랑스의 '이단적 사상가들', '극단의 예언가들'이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를 이미지론을 통해 새롭게 보여준다. 그들이 동시에 미학의 혁명가들이라는 점에서 그동안 철학이라는 이성의 영역 중심으로 이루진 논의의 한계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목차
목차
옮긴이 서문 9
1부 유령으로서의 이미지: 형태의 잔존과 시간의 불순성 19
01 미술은 죽는다, 미술은 부활한다: 역사는 다시 시작된다 (바사리부터 빙켈만까지) 21
02 바르부르크, 우리의 유령 43
03 잔존하는 형태: 역사가 열린다 55
04 잔존 또는 시간의 인류학: 타일러와 함께 바르부르크를 77
05 진화의 운명, 이시성異時性의 상태 89
06 르네상스와 시간의 불순성: 부르크하르트와 함께 바르부르크를 103
07 살아남은 나머지: 잔존은 역사를 시대착오로 만든다 117
08 잔존의 퇴마의식: 곰브리치와 파노프스키 127
09 역사적 생명: 형태, 힘, 시간의 무의식 141
2부 파토스로서의 이미지: 균열선과 강렬함의 형성 157
01 운동하는 시간의 지진 계측학 159
02 타임라인: 역사학자는 심연의 가장자리를 따라 걷는다 171
03 문화의 비극: 니체와 함께 바르부르크를 191
04 생성의 조형성과 역사 속의 균열들 207
05 역량기록 또는 반시간성의 주기 225
06 잔존하는 운동의 장과 매개체: 파토스형성 253
07 원시적 형성을 찾아서 269
08 기억되고, 치환되고, 전도된 몸짓: 다윈과 함께 바르부르크를 295
09 강렬함의 안무: 님프, 욕망, 내적 갈등 323
3부 징후로서의 이미지: 움직이는 화석과 기억의 몽타주 353
01 징후의 관점: 바르부르크로부터 프로이트를 향해 355
02 괴물의 변증법 또는 모델로서의 뒤틀림 369
03 이미지도 무의지적 기억으로부터 고통 받는다 397
04 소용돌이, 반복, 억압 및 사후성 407
05 표준 화석 또는 매장된 시간의 춤 433
06 빈스방거와 함께 바르부르크를: 광기 속의 구성물들 465
07 동감 또는 육화에 의한 지식 501
08 감정이입에서 상징으로: 비셔, 칼라일, 비뇰리 531
09 징후적 힘과 상징형식: 카시러와 함께 바르부르크를? 553
10 몽타주 므네모시네: 도판, 폭죽불꽃, 세부, 간격 577
11 진주조개잡이 어부의 후기 643
감사의 말과 서지 노트 655
그림목록 659
참고문헌 663
저자의 출판 저술 목록(출판 연도순) 727
미주 731
1부 유령으로서의 이미지: 형태의 잔존과 시간의 불순성 19
01 미술은 죽는다, 미술은 부활한다: 역사는 다시 시작된다 (바사리부터 빙켈만까지) 21
02 바르부르크, 우리의 유령 43
03 잔존하는 형태: 역사가 열린다 55
04 잔존 또는 시간의 인류학: 타일러와 함께 바르부르크를 77
05 진화의 운명, 이시성異時性의 상태 89
06 르네상스와 시간의 불순성: 부르크하르트와 함께 바르부르크를 103
07 살아남은 나머지: 잔존은 역사를 시대착오로 만든다 117
08 잔존의 퇴마의식: 곰브리치와 파노프스키 127
09 역사적 생명: 형태, 힘, 시간의 무의식 141
2부 파토스로서의 이미지: 균열선과 강렬함의 형성 157
01 운동하는 시간의 지진 계측학 159
02 타임라인: 역사학자는 심연의 가장자리를 따라 걷는다 171
03 문화의 비극: 니체와 함께 바르부르크를 191
04 생성의 조형성과 역사 속의 균열들 207
05 역량기록 또는 반시간성의 주기 225
06 잔존하는 운동의 장과 매개체: 파토스형성 253
07 원시적 형성을 찾아서 269
08 기억되고, 치환되고, 전도된 몸짓: 다윈과 함께 바르부르크를 295
09 강렬함의 안무: 님프, 욕망, 내적 갈등 323
3부 징후로서의 이미지: 움직이는 화석과 기억의 몽타주 353
01 징후의 관점: 바르부르크로부터 프로이트를 향해 355
02 괴물의 변증법 또는 모델로서의 뒤틀림 369
03 이미지도 무의지적 기억으로부터 고통 받는다 397
04 소용돌이, 반복, 억압 및 사후성 407
05 표준 화석 또는 매장된 시간의 춤 433
06 빈스방거와 함께 바르부르크를: 광기 속의 구성물들 465
07 동감 또는 육화에 의한 지식 501
08 감정이입에서 상징으로: 비셔, 칼라일, 비뇰리 531
09 징후적 힘과 상징형식: 카시러와 함께 바르부르크를? 553
10 몽타주 므네모시네: 도판, 폭죽불꽃, 세부, 간격 577
11 진주조개잡이 어부의 후기 643
감사의 말과 서지 노트 655
그림목록 659
참고문헌 663
저자의 출판 저술 목록(출판 연도순) 727
미주 731
저자
저자
조르주 디디-위베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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