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 가례증해 4(한국고전의례연구회 국역 총서 3)(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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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가례학의 대체적인 체계와 중요한 학설을 개관하는 데 도움을 주는 『국역 가례증해』 제4권. 조선조에 널리 강구되었던 <주자가례>에 대한 학설의 창고로 일컬어질 만큼 '가례'에 대한 풍부한 주석을 담고 정밀하게 완비된 조선후기 최고의 가례주석서인 <가례증해>를 번역한 것이다. 시대를 넘어서 오늘날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도 적용되고 있는 예의 규범의 근원과 그 본질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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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가례증해」는 18세기 후반에 편찬된 「주자가례」 주석서로서, 사계 김장생의 「가례집람」과 시남 유계의 「가례원류」, 도암 이재의 「사례편람」의 전통을 계승하여 「주자가례」의 충실한 주석을 통하여 주자학에 입각한 사대부의 예제禮制를 강구하여 준행하려 하였던 노론의 예설을 널리 수집하여 절충한 조선후기 대표적인 예서의 하나이다. 이 책은 「가례집람」을 토대로 송준길, 송시열을 거쳐 권상하, 이희조, 김창협, 이재, 한원진, 이간, 윤봉구, 김원행, 송능상, 박성원에 이르기까지 노론 계열의 중요한 학자들의 예설禮說을 절충하여 집대성함으로써, 이 계열 예설의 대체를 파악하는데 긴요하다.
조선말의 학자 숙재肅齋 조병덕趙秉悳(1800-1870)은 말하기를 "「가례증해」는 없어서는 안 될 예서의 일대 창고"라고 하면서, "영남의 예서로 「상변통고常變通攷」와 「가례증해」가 있어 함께 통용되는데, 노론은 「증해」를 사용하고 남인南人은 「통고」를 사용한다."고 한 바 있다.
기호의 노론학자 뿐만 아니라 영남의 남인 학자들도 「가례증해」를 매우 존중하였다. 한주 이진상은 스스로 동암東巖 류장원柳長源의 「상변통고」와 경호鏡湖 이의조李宜朝의 「가례증해」를 참고하여 「사례집요四禮輯要」를 편찬하면서 말하기를 "근세에 화산花山의 「통고」라는 책과 경호의 「증해」라는 책은 백가의 설을 종합하여 꿰고 종류대로 분류함으로써 상례常禮와 변례變禮를 모조리 모았으니, 비유하자면 페르시아 시장에 온갖 상품이 모두 모여 있어서 구하는 게 있으면 반드시 찾을 수 있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근대 영남의 학자 심재深齋 조긍섭曺兢燮(1873-1933)의 글에도 "「심경부주心經附註」는 자못 지리하여 「근사록近思錄」의 정밀함보다 못하며, 「가례증해」의 상세함은 「상변통고」보다 더하다."고 한 말이 있다.
조선왕조 후기에 크게 흥성하였던 가례학家禮學 연구는 「상례비요」나 「가례집요家禮輯要」·「사례편람四禮便覽」 등 실용예서의 편찬에서부터, 「오선생예설五先生禮說」·「남계선생예설」·「예의유집禮疑類輯」 등의 예설서의 유취類聚 단계를 거쳐 「상변통고」와 「가례증해」·「사의」 등의 전문예학논저가 나타남에 이르러 조선예학은 가히 예설禮說의 유취類聚 변증辨證 절충折衷에 있어서 전성기를 이루었다고 할 만하다. 그 중에서도 「가례증해」는 조선후기 가례학의 주류 영역이었던 가례주석학의 가장 대표적인 성과라고 할 것이다.
이제 이 책이 편찬된 지 근 200여 년이 흘러 세상의 풍속이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인간이 사는 곳에 예의 규범이 없을 수 없다. 시대를 넘어서 오늘날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도 적용되고 있는 예의 규범의 근원과 그 본질을 찾으려고 한다면, 이 책을 통하여 여전히 사랑과 공경을 근간으로 하는 예의 정신과 그 실천을 목표로 하였던 「주자가례」의 본디 의도와, 조선후기 예학자들의 인간관계에 대한 면밀하고 세심한 배려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인간관계의 조화를 통하여 인간다운 문명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였던 선인들의 뜻을 받들어 인륜 도덕을 존중하는 새로운 사회의 기풍을 진작하는데 도움이 적지 않을 것이다.
조선말의 학자 숙재肅齋 조병덕趙秉悳(1800-1870)은 말하기를 "「가례증해」는 없어서는 안 될 예서의 일대 창고"라고 하면서, "영남의 예서로 「상변통고常變通攷」와 「가례증해」가 있어 함께 통용되는데, 노론은 「증해」를 사용하고 남인南人은 「통고」를 사용한다."고 한 바 있다.
기호의 노론학자 뿐만 아니라 영남의 남인 학자들도 「가례증해」를 매우 존중하였다. 한주 이진상은 스스로 동암東巖 류장원柳長源의 「상변통고」와 경호鏡湖 이의조李宜朝의 「가례증해」를 참고하여 「사례집요四禮輯要」를 편찬하면서 말하기를 "근세에 화산花山의 「통고」라는 책과 경호의 「증해」라는 책은 백가의 설을 종합하여 꿰고 종류대로 분류함으로써 상례常禮와 변례變禮를 모조리 모았으니, 비유하자면 페르시아 시장에 온갖 상품이 모두 모여 있어서 구하는 게 있으면 반드시 찾을 수 있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근대 영남의 학자 심재深齋 조긍섭曺兢燮(1873-1933)의 글에도 "「심경부주心經附註」는 자못 지리하여 「근사록近思錄」의 정밀함보다 못하며, 「가례증해」의 상세함은 「상변통고」보다 더하다."고 한 말이 있다.
조선왕조 후기에 크게 흥성하였던 가례학家禮學 연구는 「상례비요」나 「가례집요家禮輯要」·「사례편람四禮便覽」 등 실용예서의 편찬에서부터, 「오선생예설五先生禮說」·「남계선생예설」·「예의유집禮疑類輯」 등의 예설서의 유취類聚 단계를 거쳐 「상변통고」와 「가례증해」·「사의」 등의 전문예학논저가 나타남에 이르러 조선예학은 가히 예설禮說의 유취類聚 변증辨證 절충折衷에 있어서 전성기를 이루었다고 할 만하다. 그 중에서도 「가례증해」는 조선후기 가례학의 주류 영역이었던 가례주석학의 가장 대표적인 성과라고 할 것이다.
이제 이 책이 편찬된 지 근 200여 년이 흘러 세상의 풍속이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인간이 사는 곳에 예의 규범이 없을 수 없다. 시대를 넘어서 오늘날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도 적용되고 있는 예의 규범의 근원과 그 본질을 찾으려고 한다면, 이 책을 통하여 여전히 사랑과 공경을 근간으로 하는 예의 정신과 그 실천을 목표로 하였던 「주자가례」의 본디 의도와, 조선후기 예학자들의 인간관계에 대한 면밀하고 세심한 배려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인간관계의 조화를 통하여 인간다운 문명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였던 선인들의 뜻을 받들어 인륜 도덕을 존중하는 새로운 사회의 기풍을 진작하는데 도움이 적지 않을 것이다.
목차
목차
일러두기
가례증해 권8
상례4
성복
셋째 대공 9월
넷째 소공 5월
다섯재 시마 3월
무릇 어려서 죽은 자를 위한 복은 차례로 한 등급 강복한다
무릇 위인후자가 된 남자나 시집간 여자는 그 사친을 위해 모둔 한 등급 강복하며 사친도 그를 위해 역시그렇게 한다
성복하는 날 주인 및 형제는 비로소 죽을 먹는다
무릇 무거운 상을 아직 벗지 못했는데 가벼운 상을 만나면, 그 복으 입고 곡한다. 매달 초하루에 자리를 설치하고 그 복을 입고 곡하고,
마치면 무거운 복으로 돌아온다. 그 복을 벗을 때는 또한 가벼운 복을 입는다. 만약 무거운 복은 벗고 가벼운 복을 아직 벗지 못했다면,
가벼운복을 입고서 그 남은 날짜를 마친다
가례증해 권9
상례5
조석곡전
상식
조전
식사 때에 상식한다
석전
무시로 곡한다
초하루에는 조전에 음식을 차린다
새로 난 음식물이 있으면 올린다
조ㆍ전ㆍ부
무릇 조문할 때는 모두 소복을 입는다
전에는 향, 차, 초, 술, 과일을 사용한다
부의에는 돈과 비단을 사용한다
명함을 갖추어 이름을 알린다
들어가 곡하고 전을 올리며, 마치면 곧 조문하고 물러난다
문상ㆍ분상
친상을 들은 처음에는 곡한다
옷을 바꿔 입는다
그대로 간다
도중에 슬픔이 북받치면 곡한다
그 주의 경계나 그 현의 경계나 그 성이나 그 집이 바라보이면 모두 곡한다
대문을 들어가서는 널 앞에 나아가 재배하고 다시 옷을 갈아입고 자리에 나아가 곡한다
나흘 뒤에 성복한다
아직 갈 수 없으면 자리를 만들되 전은 올리지 않는다
옷을 바꾼다
길에서 집에 이르기까지의 의식은 모두 위와 같다
이미 장사지냈으면 먼저 묘소로 가서 곡하고 절한다
재최 이하는 상을 들으면 자리를 만들고 곡한다
분상하면 집에 도착하여 성복한다
분상하지 않으면 나흘째 성복한다
가례증해 권 10
상례6
치장
석 달 만에 장사지내는데, 기일 전에 장사지낼 만한 땅을 고른다
날을 택해 묘역을 열고 후토에게 제사지낸다
그대로 광을 판다
회격을 만든다
지석을 새긴다
명기를 만든다
하장
포
소
앵
대여
삽
신주를 만든다
천구ㆍ조조
전ㆍ부ㆍ진기ㆍ조전
발인 하루 전날에 올리면서 널을 옮기는 것을 고한다
널을 모시고 조상을 뵙는다
그대로 청사로 옮긴다
이에 대곡한다
친척과 빈이 치전하고 부의를 보낸다
기물을 진설한다
일포에 조전을 차린다
견전
이튿날 널을 옮겨 상여에 나아간다
이에 견전을 차린다
축이 혼백을 받들어 수레에 올리고 분향한다
발인
널이 떠난다
주인 이하 남녀는 곡하며 걸어서 따른다
존장이 그 다음이고 복이 없는 친척이 또 그 다음이며 빈객이 또 그 다음이다
친척과 빈객이 성곽 밖 길가에 장막을 치고 널을 멈추게 하여 전을 올린다
도중에 슬픔이 북받치면 곡한다
급묘ㆍ하관ㆍ사후토ㆍ제목주ㆍ성분
도착하기 전에 집사자가 먼저 영악을 설치한다
친척과 빈객의 막차를 설치한다
부인의 악차를 설치한다
방상이 도착한다
명기 등이 도착한다
영거가 도착한다
그대로 전을 차리고 물러난다
널이 도착한다
주인 남녀는 각각 자리로 가서 곡한다
빈객은 절하여 작별하고 돌아간다
이에 하관한다
주인이 폐백을 증정한다
회격 안팎의 덮개를 덮는다
석회로 채운다
이에 흙을 채우고 점점 다진다
묘소 왼쪽에서 후토에게 제사지낸다
명기 등을 갈무리한다
지석을 내린다
다시 흙으로 채우고 견고하게 다진다
신주를 적는다
축이 신주를 받들어 수레에 올린다
집사자는 영좌를 거두고 그대로 떠난다
봉분의 높이는 4자이며 그 앞에 작은돌비석을 세우는데 역시 높이는 4자이고 받침대의 높이는 1자쯤으로 한다
반곡
주인 이하는 영거를 모시고 천천히 길을 걸으며 곡한다
집에 도착하면 곡한다
축이 신주를 받들고 들어가 영좌에 둔다
주인 이하가 청사에서 곡한다
그대로 영좌 앞에 나아가 곡한다
조문객이 있으면 처음과 같이 절한다
기년복과 대공복을 입는 자는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되 잔치에 참석하지 않으며 소공 이하나 대공복을 입느 자로서 거처를 달리하는 자는 돌아가도 된다
가례증해 영인본
가례증해 권8
상례4
성복
셋째 대공 9월
넷째 소공 5월
다섯재 시마 3월
무릇 어려서 죽은 자를 위한 복은 차례로 한 등급 강복한다
무릇 위인후자가 된 남자나 시집간 여자는 그 사친을 위해 모둔 한 등급 강복하며 사친도 그를 위해 역시그렇게 한다
성복하는 날 주인 및 형제는 비로소 죽을 먹는다
무릇 무거운 상을 아직 벗지 못했는데 가벼운 상을 만나면, 그 복으 입고 곡한다. 매달 초하루에 자리를 설치하고 그 복을 입고 곡하고,
마치면 무거운 복으로 돌아온다. 그 복을 벗을 때는 또한 가벼운 복을 입는다. 만약 무거운 복은 벗고 가벼운 복을 아직 벗지 못했다면,
가벼운복을 입고서 그 남은 날짜를 마친다
가례증해 권9
상례5
조석곡전
상식
조전
식사 때에 상식한다
석전
무시로 곡한다
초하루에는 조전에 음식을 차린다
새로 난 음식물이 있으면 올린다
조ㆍ전ㆍ부
무릇 조문할 때는 모두 소복을 입는다
전에는 향, 차, 초, 술, 과일을 사용한다
부의에는 돈과 비단을 사용한다
명함을 갖추어 이름을 알린다
들어가 곡하고 전을 올리며, 마치면 곧 조문하고 물러난다
문상ㆍ분상
친상을 들은 처음에는 곡한다
옷을 바꿔 입는다
그대로 간다
도중에 슬픔이 북받치면 곡한다
그 주의 경계나 그 현의 경계나 그 성이나 그 집이 바라보이면 모두 곡한다
대문을 들어가서는 널 앞에 나아가 재배하고 다시 옷을 갈아입고 자리에 나아가 곡한다
나흘 뒤에 성복한다
아직 갈 수 없으면 자리를 만들되 전은 올리지 않는다
옷을 바꾼다
길에서 집에 이르기까지의 의식은 모두 위와 같다
이미 장사지냈으면 먼저 묘소로 가서 곡하고 절한다
재최 이하는 상을 들으면 자리를 만들고 곡한다
분상하면 집에 도착하여 성복한다
분상하지 않으면 나흘째 성복한다
가례증해 권 10
상례6
치장
석 달 만에 장사지내는데, 기일 전에 장사지낼 만한 땅을 고른다
날을 택해 묘역을 열고 후토에게 제사지낸다
그대로 광을 판다
회격을 만든다
지석을 새긴다
명기를 만든다
하장
포
소
앵
대여
삽
신주를 만든다
천구ㆍ조조
전ㆍ부ㆍ진기ㆍ조전
발인 하루 전날에 올리면서 널을 옮기는 것을 고한다
널을 모시고 조상을 뵙는다
그대로 청사로 옮긴다
이에 대곡한다
친척과 빈이 치전하고 부의를 보낸다
기물을 진설한다
일포에 조전을 차린다
견전
이튿날 널을 옮겨 상여에 나아간다
이에 견전을 차린다
축이 혼백을 받들어 수레에 올리고 분향한다
발인
널이 떠난다
주인 이하 남녀는 곡하며 걸어서 따른다
존장이 그 다음이고 복이 없는 친척이 또 그 다음이며 빈객이 또 그 다음이다
친척과 빈객이 성곽 밖 길가에 장막을 치고 널을 멈추게 하여 전을 올린다
도중에 슬픔이 북받치면 곡한다
급묘ㆍ하관ㆍ사후토ㆍ제목주ㆍ성분
도착하기 전에 집사자가 먼저 영악을 설치한다
친척과 빈객의 막차를 설치한다
부인의 악차를 설치한다
방상이 도착한다
명기 등이 도착한다
영거가 도착한다
그대로 전을 차리고 물러난다
널이 도착한다
주인 남녀는 각각 자리로 가서 곡한다
빈객은 절하여 작별하고 돌아간다
이에 하관한다
주인이 폐백을 증정한다
회격 안팎의 덮개를 덮는다
석회로 채운다
이에 흙을 채우고 점점 다진다
묘소 왼쪽에서 후토에게 제사지낸다
명기 등을 갈무리한다
지석을 내린다
다시 흙으로 채우고 견고하게 다진다
신주를 적는다
축이 신주를 받들어 수레에 올린다
집사자는 영좌를 거두고 그대로 떠난다
봉분의 높이는 4자이며 그 앞에 작은돌비석을 세우는데 역시 높이는 4자이고 받침대의 높이는 1자쯤으로 한다
반곡
주인 이하는 영거를 모시고 천천히 길을 걸으며 곡한다
집에 도착하면 곡한다
축이 신주를 받들고 들어가 영좌에 둔다
주인 이하가 청사에서 곡한다
그대로 영좌 앞에 나아가 곡한다
조문객이 있으면 처음과 같이 절한다
기년복과 대공복을 입는 자는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되 잔치에 참석하지 않으며 소공 이하나 대공복을 입느 자로서 거처를 달리하는 자는 돌아가도 된다
가례증해 영인본
저자
저자
한국고전의례연구회
저자 한국고전의례연구회는 한국 예학고전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소모임이다. 2002년'사의국역단'으로 출발하여 2004년'상변통고국역단', 2007년'가례증해국역단'을 결성하여 조선조에 편찬된 중요한 예학고전을 차례로 번역하여 출간하였으며, 2007년부터 시민을 위한 예학교실을 운영하는 한편 한국예학총서 편찬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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