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채 기억록(양장본 HardCover)
독립 민주공화국을 향한 고난의 역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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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독립투사 이규채의 치열했던 항일투쟁의 기록
독립투사 이규채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과 한국독립당 선전위원 ? 군사부 참모장 ? 총무위원장, 한국독립군 참모장 등을 역임하면서 중국 관내와 만주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인물이다. 이 책은 이규채 자신이 남긴 일기 형식의 연보와 피체 후 일경에 의해 작성된 신문조서, 재판 기록 등을 통해 확인된 독립운동가로서의 삶의 기록이다. 이 책에서 주목할 부분은 그동안의 독립운동사 연구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던 독립운동가 개인의 삶의 궤적에 대한 추적이다. 그가 남긴 기록에는 독립투사로서의 인간적 고뇌와 갈등, 독립운동가 사이의 대립과 갈등, 독립운동 여정에서 맞닥뜨린 죽음의 위기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책은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고난과 역경을 선택한 독립투사가 걸어야 했던 치열한 삶의 궤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독립투사 이규채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과 한국독립당 선전위원 ? 군사부 참모장 ? 총무위원장, 한국독립군 참모장 등을 역임하면서 중국 관내와 만주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인물이다. 이 책은 이규채 자신이 남긴 일기 형식의 연보와 피체 후 일경에 의해 작성된 신문조서, 재판 기록 등을 통해 확인된 독립운동가로서의 삶의 기록이다. 이 책에서 주목할 부분은 그동안의 독립운동사 연구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던 독립운동가 개인의 삶의 궤적에 대한 추적이다. 그가 남긴 기록에는 독립투사로서의 인간적 고뇌와 갈등, 독립운동가 사이의 대립과 갈등, 독립운동 여정에서 맞닥뜨린 죽음의 위기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책은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고난과 역경을 선택한 독립투사가 걸어야 했던 치열한 삶의 궤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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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식민지 치하에서도 대한 독립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독립투사 이규채의 삶의 궤적과 항일투쟁의 기록
2019년,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일제 강점기 중국으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독립운동가의 치열했던 삶과 항일투쟁의 기록이 책으로 발간되었다. 독립운동가 이규채가 직접 자술한 일기 형식의 연보와 일제 경찰과 검찰의 신문조서 및 재판 기록을 엮은 『이규채 기억록』이라는 제목의 책이다. 신문조서와 재판 기록은 일본어로 된 원문과 함께 번역문을 수록하여 연구자는 물론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동안의 독립운동가 연구는 사건 위주의 독립운동 행적과 관련 단체 활동을 고증하는 경향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규채 기억록』은 독립운동가 개인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독립운동가로서 겪어야만 했던 고뇌와 갈등, 삶과 죽음의 기로 등에 관한 생생한 삶의 기록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가 높다고 하겠다. 특히 역사학자이자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관장으로 재직 중인 엮은이의 노력으로 단순한 자료 나열에 그치지 않고, 이규채의 행적을 입체적으로 분석하여 만주 지역 항일 무장투쟁 연구에 중요한 기초 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규채 기억록』을 통해 독립운동가 한 사람만을 위한 기록이 아니라, 일제 강점기 망국의 설움을 안고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치열한 삶을 살았던 이 땅의 모든 항일 독립투사의 삶이 기억되길 바란다.
"나의 정치적 견해는 한국의 독립이지 자치 따위의 문제는 전혀 고려할 여지가 없다. 일본이 한국 독립을 승인하느냐 아니냐는 나로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한민족 2천만이 일본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가는 귀하들이 잘 알고 있을 터이다. 독립군이 귀화했다 하더라도, 혹은 또 일본군 때문에 한 사람도 남지 않고 살멸되었다 하더라도 2천만 민중의 마음을 귀순시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2천만 민중이 한 사람도 남지 않고 죽임을 당하기 전까지는 독립운동은 종식되지 않을 것이다."
- 이규채 「청취서」에서
독립투사 이규채는 경기도 포천 출생으로 국내에서 창신서화회를 창립해 활동하는 한편, 중국으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과 한국독립당 선전위원?군사부 참모장?총무위원장, 한국독립군 참모장 등을 역임하면서 일제에 체포될 때까지 평생을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그 과정에서 중국의 상해, 북경, 남경 등 관내는 물론 길림 등 만주 지역까지 동분서주하면서 조선인의 자립과 동지의 규합, 독립운동 전선 확대를 위해 삶을 바친 인물이다.
특히 1932년 9월 일제의 중국 관내 침공의 교두보였던 하얼빈의 쌍성보 전투에서 참모장으로 참전하여 제1차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어 최초의 한중 공동 항전의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조선인의 자립 경제와 독립운동 기지 구축을 위해 생육사를 추진하였고, 중국 및 베트남의 인사들과 교류하면서 독립운동 전선 확대를 모색했다.
1932년 쌍성보 전투 이후 재기를 도모하다가 1934년 11월 밀정에 의해 상해에서 체포되어 조사받을 때 그는 "어떤 조선인 경찰이 와서 나의 몸을 수색하였다. 이에 내가 질책을 하면서 물러가라고 하였다. (중략) 이로부터는 단지 한 번 죽을 마음만 있어서 혹 며칠 동안을 밥을 먹지 않기도 하였으며, 혹 대나무 젓가락을 가지고 귀 사이를 스스로 찌르기도 하였다."라고 하면서 죽음을 담보로 독립운동에 임했다.
독립투사 이규채의 삶의 궤적과 항일투쟁의 기록
2019년,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일제 강점기 중국으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독립운동가의 치열했던 삶과 항일투쟁의 기록이 책으로 발간되었다. 독립운동가 이규채가 직접 자술한 일기 형식의 연보와 일제 경찰과 검찰의 신문조서 및 재판 기록을 엮은 『이규채 기억록』이라는 제목의 책이다. 신문조서와 재판 기록은 일본어로 된 원문과 함께 번역문을 수록하여 연구자는 물론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동안의 독립운동가 연구는 사건 위주의 독립운동 행적과 관련 단체 활동을 고증하는 경향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규채 기억록』은 독립운동가 개인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독립운동가로서 겪어야만 했던 고뇌와 갈등, 삶과 죽음의 기로 등에 관한 생생한 삶의 기록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가 높다고 하겠다. 특히 역사학자이자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관장으로 재직 중인 엮은이의 노력으로 단순한 자료 나열에 그치지 않고, 이규채의 행적을 입체적으로 분석하여 만주 지역 항일 무장투쟁 연구에 중요한 기초 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규채 기억록』을 통해 독립운동가 한 사람만을 위한 기록이 아니라, 일제 강점기 망국의 설움을 안고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치열한 삶을 살았던 이 땅의 모든 항일 독립투사의 삶이 기억되길 바란다.
"나의 정치적 견해는 한국의 독립이지 자치 따위의 문제는 전혀 고려할 여지가 없다. 일본이 한국 독립을 승인하느냐 아니냐는 나로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한민족 2천만이 일본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가는 귀하들이 잘 알고 있을 터이다. 독립군이 귀화했다 하더라도, 혹은 또 일본군 때문에 한 사람도 남지 않고 살멸되었다 하더라도 2천만 민중의 마음을 귀순시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2천만 민중이 한 사람도 남지 않고 죽임을 당하기 전까지는 독립운동은 종식되지 않을 것이다."
- 이규채 「청취서」에서
독립투사 이규채는 경기도 포천 출생으로 국내에서 창신서화회를 창립해 활동하는 한편, 중국으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과 한국독립당 선전위원?군사부 참모장?총무위원장, 한국독립군 참모장 등을 역임하면서 일제에 체포될 때까지 평생을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그 과정에서 중국의 상해, 북경, 남경 등 관내는 물론 길림 등 만주 지역까지 동분서주하면서 조선인의 자립과 동지의 규합, 독립운동 전선 확대를 위해 삶을 바친 인물이다.
특히 1932년 9월 일제의 중국 관내 침공의 교두보였던 하얼빈의 쌍성보 전투에서 참모장으로 참전하여 제1차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어 최초의 한중 공동 항전의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조선인의 자립 경제와 독립운동 기지 구축을 위해 생육사를 추진하였고, 중국 및 베트남의 인사들과 교류하면서 독립운동 전선 확대를 모색했다.
1932년 쌍성보 전투 이후 재기를 도모하다가 1934년 11월 밀정에 의해 상해에서 체포되어 조사받을 때 그는 "어떤 조선인 경찰이 와서 나의 몸을 수색하였다. 이에 내가 질책을 하면서 물러가라고 하였다. (중략) 이로부터는 단지 한 번 죽을 마음만 있어서 혹 며칠 동안을 밥을 먹지 않기도 하였으며, 혹 대나무 젓가락을 가지고 귀 사이를 스스로 찌르기도 하였다."라고 하면서 죽음을 담보로 독립운동에 임했다.
목차
목차
머리에
해제 : '자술 연보'를 통해 본 이규채의 삶과 독립운동/ 박경목
1장 이규채 자술 연보
1. 이규채 자술 연보
■ 일제 강점기 활동 이력
■ 1945년 해방 후 활동 이력
■ 이규채 관련 신문기사 목록
■ 이규채 관련 신문기사 모음
2. 이규채 자술 연보 원문과 탈초문
2장 한국독립군과 중국의용군 연합항일 기실
1. 한국독립군과 중국의용군 연합항일 기실
2. 한국독립군과 중국의용군 연합항일기실 원문과 탈초문
3장 이규채 형사소송기록(치안유지법위반)
1. 이규채 재판기록
1) 청취서(상해 일본총영사관)
(1) 제1회 청취서(1934. 11. 14.)
(2) 제2회 청취서(1934. 11. 21.)
(3) 제3회 청취서(1934. 12. 8.)
(4) 제4회 청취서(1934. 12. 15.)
2) 신문조서(경기도 경찰부)
(1) 치안유지법 위반자 호송의 건(1934. 12. 18.)
(2) 한국독립당 간부 및 조선혁명간부학교 졸업생에 관한 건(1934. 12. 24.)
(3) 영치조서(1934. 12. 25.)
(4) 영치목록(1934. 12. 25.)
(5) 조선혁명간부학교 졸업생 신병 이송에 관한 건(1934. 12. 25.)
(6) 제1회 신문조서(1934. 12. 26.)
(7) 제2회 신문조서(1935. 1. 9.)
(8) 제3회 신문조서(1935. 1. 21.)
(9) 증인 여운형 신문조서(1935. 1. 25.)
(10) 제4회 신문조서(1935. 1. 26.)
(11) 제5회 신문조서(1935. 1. 27.)
(12) 제6회 신문조서(1935. 1. 28.)
(13) 소행조서(1935.1. 28.)
3) 검찰 신문조서
(1) 의견서(1935. 1. 30.)
(2) 제1회 신문조서(1935. 1. 30.)
(3) 제2회 신문조서(1935. 1. 31.)
(4) 공판청구서(1935. 1. 31.)
(5) 촉탁서(1935. 1. 23.)
(6) 증인 심준구 신문조서(1935. 2. 13.)
4) 법원 공판조서와 판결문 및 상소권포기신청서
(1) 제1회 공판조서(1935. 2. 26.)
(2) 제2회 공판조서(1935. 2. 26.)
(3) 판결문(1935. 3. 5.)
(4) 상소권포기신청서(1935. 3. 5.)
■ 이규채의 이동과 활동 연표
2. 이규채 재판기록 원문과 탈초문
이규채 형사소송기록(치안유지법위반)(1934. 12. 18.)
압수금품총목록
서류목록
한국독립당간부 및 조선혁명간부학교 졸업생에 관한 건(1934. 12. 24.)
영치조서(1934. 12. 25.)
영치목록(1934. 12. 25.)
조선혁명간부학교 졸업생 신병 이송에 관한 건(1934. 12. 25.)
피의자 신문조서(1934. 12. 26.)
피의자 신문조서(제2회)(1935. 1. 9.)
피의자 신문조서(제3회)(1935. 1. 21.)
증인신 문조서(여운형)(1935. 1. 25.)
피의자 신문조서(제4회)(1935. 1. 26.)
피의자 신문조서(제5회)(1935. 1. 27.)
피의자 신문조서(제6회)(1935. 1. 28.)
유치장(1935.1. 28.)
피의자 소행조서(1935.1. 28.)
치안유지법 위반자 호송의 건(1934. 12. 18.)
청취서(1934. 11. 14.)
청취서(제2회)(1934. 11. 21.)
청취서(제3회)(1934. 12. 8.)
청취서(제4회)(1934. 12. 15.)
의견서(1935. 1. 30.)
사건송치서(1935. 1. 28.)
피의자 신문조서(1935. 1. 30.)
구류장(1935. 1. 30.)
피의자 신문조서(제2회)(1935. 1. 31.)
본적조회서(1935. 2. 2.)
공판청구서(1935. 1. 31.)
변호인선임계(1935. 2. 15.)
기록열람원(1935. 2. 18.)
기록열람원(1935. 2. 19.)
기록열람원(1935. 2. 20.)
송부서(1935. 2. 18.)
증인 신문조서 작성에 관한 건(1935. 2. 14.)
촉탁서(1935. 1. 23.)
만주국 신경 일본총사관경찰서장전(1935. 1. 23.)
증인 신문조서(심준구沈駿求)(1935. 2. 13.)
송달증서(1935. 2. 22.)
공판조서(1935. 2. 26.)
공판조서(제2회)(1935. 2. 26.)
판결문(1935. 3. 5.)
상소권포기신청서(1935.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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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 '자술 연보'를 통해 본 이규채의 삶과 독립운동/ 박경목
1장 이규채 자술 연보
1. 이규채 자술 연보
■ 일제 강점기 활동 이력
■ 1945년 해방 후 활동 이력
■ 이규채 관련 신문기사 목록
■ 이규채 관련 신문기사 모음
2. 이규채 자술 연보 원문과 탈초문
2장 한국독립군과 중국의용군 연합항일 기실
1. 한국독립군과 중국의용군 연합항일 기실
2. 한국독립군과 중국의용군 연합항일기실 원문과 탈초문
3장 이규채 형사소송기록(치안유지법위반)
1. 이규채 재판기록
1) 청취서(상해 일본총영사관)
(1) 제1회 청취서(1934. 11. 14.)
(2) 제2회 청취서(1934. 11. 21.)
(3) 제3회 청취서(1934. 12. 8.)
(4) 제4회 청취서(1934. 12. 15.)
2) 신문조서(경기도 경찰부)
(1) 치안유지법 위반자 호송의 건(1934. 12. 18.)
(2) 한국독립당 간부 및 조선혁명간부학교 졸업생에 관한 건(1934. 12. 24.)
(3) 영치조서(1934. 12. 25.)
(4) 영치목록(1934. 12. 25.)
(5) 조선혁명간부학교 졸업생 신병 이송에 관한 건(1934. 12. 25.)
(6) 제1회 신문조서(1934. 12. 26.)
(7) 제2회 신문조서(1935. 1. 9.)
(8) 제3회 신문조서(1935. 1. 21.)
(9) 증인 여운형 신문조서(1935. 1. 25.)
(10) 제4회 신문조서(1935. 1. 26.)
(11) 제5회 신문조서(1935. 1. 27.)
(12) 제6회 신문조서(1935. 1. 28.)
(13) 소행조서(1935.1. 28.)
3) 검찰 신문조서
(1) 의견서(1935. 1. 30.)
(2) 제1회 신문조서(1935. 1. 30.)
(3) 제2회 신문조서(1935. 1. 31.)
(4) 공판청구서(1935. 1. 31.)
(5) 촉탁서(1935. 1. 23.)
(6) 증인 심준구 신문조서(1935. 2. 13.)
4) 법원 공판조서와 판결문 및 상소권포기신청서
(1) 제1회 공판조서(1935. 2. 26.)
(2) 제2회 공판조서(1935. 2. 26.)
(3) 판결문(1935. 3. 5.)
(4) 상소권포기신청서(1935. 3. 5.)
■ 이규채의 이동과 활동 연표
2. 이규채 재판기록 원문과 탈초문
이규채 형사소송기록(치안유지법위반)(1934. 12. 18.)
압수금품총목록
서류목록
한국독립당간부 및 조선혁명간부학교 졸업생에 관한 건(1934. 12. 24.)
영치조서(1934. 12. 25.)
영치목록(1934. 12. 25.)
조선혁명간부학교 졸업생 신병 이송에 관한 건(1934. 12. 25.)
피의자 신문조서(1934. 12. 26.)
피의자 신문조서(제2회)(1935. 1. 9.)
피의자 신문조서(제3회)(1935. 1. 21.)
증인신 문조서(여운형)(1935. 1. 25.)
피의자 신문조서(제4회)(1935. 1. 26.)
피의자 신문조서(제5회)(1935. 1. 27.)
피의자 신문조서(제6회)(1935. 1. 28.)
유치장(1935.1. 28.)
피의자 소행조서(1935.1. 28.)
치안유지법 위반자 호송의 건(1934. 12. 18.)
청취서(1934. 11. 14.)
청취서(제2회)(1934. 11. 21.)
청취서(제3회)(1934. 12. 8.)
청취서(제4회)(1934. 12. 15.)
의견서(1935. 1. 30.)
사건송치서(1935. 1. 28.)
피의자 신문조서(1935. 1. 30.)
구류장(1935. 1. 30.)
피의자 신문조서(제2회)(1935. 1. 31.)
본적조회서(1935. 2. 2.)
공판청구서(1935. 1. 31.)
변호인선임계(1935. 2. 15.)
기록열람원(1935. 2. 18.)
기록열람원(1935. 2. 19.)
기록열람원(1935. 2. 20.)
송부서(1935. 2. 18.)
증인 신문조서 작성에 관한 건(1935. 2. 14.)
촉탁서(1935. 1. 23.)
만주국 신경 일본총사관경찰서장전(1935. 1. 23.)
증인 신문조서(심준구沈駿求)(1935. 2. 13.)
송달증서(1935. 2. 22.)
공판조서(1935. 2. 26.)
공판조서(제2회)(1935. 2. 26.)
판결문(1935. 3. 5.)
상소권포기신청서(1935.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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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저자
이규채
1890년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나
포천 청성학교 교사로 2년간 봉직하고,
경성 창신서화연구회를 창설하고, 서종書宗(1922)으로 근무하다가
상해로 망명하여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1924)으로 선임됨.
생육사 중앙집행간사 및 중앙상무원(1930)으로 선임됨.
만주 한국독립당 총무위원장 겸 한국독립군 참모장(1931)으로 활동하였으며,
1945년 해방 후에는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 상무위원,
비상국민회의 국방위원, 대한독립촉성국민회 부위원장 겸
중앙감찰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다
1947년 3·1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다음날 급환으로 서거하였다.
포천 청성학교 교사로 2년간 봉직하고,
경성 창신서화연구회를 창설하고, 서종書宗(1922)으로 근무하다가
상해로 망명하여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1924)으로 선임됨.
생육사 중앙집행간사 및 중앙상무원(1930)으로 선임됨.
만주 한국독립당 총무위원장 겸 한국독립군 참모장(1931)으로 활동하였으며,
1945년 해방 후에는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 상무위원,
비상국민회의 국방위원, 대한독립촉성국민회 부위원장 겸
중앙감찰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다
1947년 3·1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다음날 급환으로 서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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