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방의 모놀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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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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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 수필집 『빈방의 모놀로그』 원고를 정독했다. 읽어 나가는 동안 그의 세계에 대한 사랑에 감동하고, 세계로 나아가는 관계의 서사에 공감하였다. 그의 작품집 『빈방의 모놀로그』에 수록된 전 52편의 작품을 꿰뚫어 한마디로 말하면 '사랑으로 엮어서 관계로 열어가는 서사'라고 요약할 수 있다.
사랑은 무엇이라 정의를 내려야 할까. 사랑의 범주는 어디까지일까. 진정한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이런 의문들이 작품을 읽어가는 동안 하나하나 풀려나갔다. 그는 사랑의 서사를 진솔하게 고백하는 가운데 자신의 존재를 확연하게 드러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가르쳤다.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이웃을 위하여 목숨도 걸어야 하는 행위를 사랑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리스도는 말뿐 아니라 몸소 사랑을 실천으로 가르쳤다. 모두의 죄를 용서받으려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으로써 자신을 희생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진실을 가르친 것이다. 이것이 절대적인 사랑이고 사랑의 원형이다. 여기에서 사랑의 정의, 사랑의 범주, 진정한 사랑의 양상을 배울 수 있고, 어떤 사랑으로 세계와 관계를 어떻게 지어나갈 것인가를 학습할 수 있다.
공자는 인(仁)을 사랑의 근본으로 생각하였다. 인은 기본적으로 혈연에 바탕 둔 사랑으로 시작하여 인연이 없는 이웃으로 확산해 나가는 관계의 사랑이다. 仁은 나만 못한 사람에 대한 측은지심의 발동이 실천의 시작이라고 맹자는 가르쳤다. 이 또한 관계가 뚜렷하지 않은 대상에 대한 사랑의 시작이고 확실한 관계의 문을 여는 일이다.
불가에서는 사랑을 자비(慈悲)라고 가르친다. 자(慈)와 비(悲)로 나누어 자(慈)는 진정한 정의(情誼)이며, 비(悲)는 친절함, 상냥함, 따뜻함으로 이해할 수 있다. 동양에서는 자와 비를 따로 생각하지 않고 자비로움을 곧 사랑으로 이해한다. 자비는 대상을 구분하거나 차별 짓지 않고 널리 애처로운 마음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이밖에 묵자는 '하늘 아래 모두를 겸애하라.'라고 가르쳤다. 모두를 평등하게 사랑하라는 묵자의 말에서 보듯이 보편적 사랑을 강조한 말이다. 묵자의 보편적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박애와 기본적 의미를 함께 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영희 수필가는 항상 미소를 띠고 있다. 이영희는 사랑이 준비되어 있는 작가이다. 문우들에게 친절하고 상냥하며 자기희생적이다. 그는 충북 제천에서 출생하여 고등학교까지 고향에서 마쳤다. 1998년 ≪???맥문학≫에 수필 「가을의 직지사」와 「마동남과 사모님을」 발표하면서 수필가로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 후 동양일보 신춘문예소설이 당선되어 소설가로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장편소설 『비망록, 직지로 피어나다』 단편소설집 『메이저아르카나 13번』을 펴내 그 부지런한 창작 열정은 물론 소설 창작의 재능을 실감하게 된다. 수필가로 등단한 이후 이미 수필집 『칡꽃 향기』 주)대명사 2018 『정비공』을 출간하여 수필 문단에서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는데 이번에 그동안의 주옥같은 작품을 모아 『빈방의 모놀로그』를 펼쳐낸다니 함께 공부하는 문우로서 반가운 마음 금할 길 없다.
이영희 수필가는 도내 각 문학 단체는 물론 전국 단위 문학 단체에서 실무를 맡아 수필 문단과 소설 문단 발전을 위해 기여한 바가 크다. 또한 청주시 1인 1책 펴내기 지도강사로 위촉받아서 재능기부를 할 뿐 아니라, 지방 일간지의 고정 필진으로 지방 문화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모두가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다.
이영희의 세 번째 수필집 『빈방의 모놀로그』는 모두 52편 수필을 각부 13편씩 4부로 나누어 엮었다. 수록된 52편을 대략 크게 몇 가지 주제로 나누어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 첫째는 앞에서 밝힌 대로 혈육, 남편, 이웃, 사회, 국가에 대한 사랑을 담았다. 둘째는 예술과 문화에 관한 관심이다. 셋째로 시대와 역사에 대한 고민과 자연에 관한 안타까움을 담은 작품으로 볼 수 있었다.
다음에는 수필 문학에서 빠질 수 없는 자기 성찰의 글이다. 자기 성찰의 작품에서는 진정성 있는 고백이 중요한데 그 고백의 양상을 객관적으로 살펴보겠다. 작품을 읽는 과정에서는 반드시 작가의 세계에 대한 인식과 해석을 엿보는 것이 필요하다. 수필을 체험의 문학이라고 하지만 미적 상상이 필요하므로 작가가 상상하는 세계도 살펴보는 것이 작가에 대한 예의이고 독자의 기대에 부합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대부분의 발문이나 서평이 서사에 따른 주제의 해석에만 치중하는데, 이 글에서는 작가가 주제를 드러내기 위한 형상화 기법도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그것이 작가와 독자 사이를 편안하게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되는 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발문(跋文)이라 하면 책의 말미에 그 책이 발간된 경위와 내용의 대강과 아울러 발문을 쓰는 사람과 저자와의 관계 등을 간략하게 적는 글을 말한다. 이와 달리 서평(書評)이라고 하면 주제에 관심이 있거나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이 필자에 대한 정보, 가치관, 신념을 찾아 독자에게 일러주는 글이라고 본다. 서평은 먼저 읽은 사람이나 평론가가 그 책을 읽고자 하는 사람 또는 이미 읽은 사람에게 해석의 방향이나 배경지식을 주는 글이다. 독자의 폭넓은 이해를 돕기 위한 글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글은 조선시대 우리 문인들이 쓰던 발문 형식에 객관적인 해석을 가한 서평 형식을 혼합하여 글을 전개하려고 한다. 이영희 수필가와 함께 수필 창작 공부를 해온 세월이 길고, 그만큼 문학적 신념에 대한 공감이 크기에 그의 창작 활동을 응원해야 하지만, 응원은 작품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1. 『빈방의 모놀로그』에 드러난 수필에 대한 관점
수필 창작은 수필가의 수필에 대한 관점으로 방향이 정해진다. 대부분의 수필가나 평론가들이 그렇듯이 이영희 수필가도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자기 성찰의 문학으로 접근한다. 이러한 관점을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으나 작품 전체에 흐르는 분위기가 그렇다. 이영희의 수필은 끊임없는 자기 탐구의 모습이 보인다. 자기를 탐구하는 것은 자아 성찰을 위한 기초 작업이다. 수필 창작 과정이나 예술 작품 감상 과정에서 자아를 되돌아보고 삶의 철학을 세워 자신을 다져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사유는 수필 창작에서 필수적인 상상의 단계이다. 다만 경험과 사유에 대한 고백을 '수필은 온전히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라는 이유로 '이제 그만하자'라고 마음먹기도 했던 것은 그가 하는 고백이 어떤 것인지 잘 말해 준다. 다시 말해서 수필은 고백의 문학이고 그 고백은 솔직하고 진정성이 있어야 하기에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제 그만하자고 했던 작가는 다시 용기를 내어 '빈방에서 모놀로그'를 하게 된 것이라 생각된다. 수필은 경험과 자아 성찰의 문학이고 성찰의 결과를 고백하는 과정에서 용기를 내어 자아를 객관화해야 하기 때문에 자아의 변환과 성숙을 꾀하는 문학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이영희의 수필은 특별하지 않은 일상에서 의미를 찾아낸다. 어떤 이는 수필이 문학성을 확보하려면 제재가 되는 경험이 일상을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소소한 일상에서 단순한 듯하면서도 깊이 있는 진리를 발견한다.
이영희의 수필에서는 서사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소설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체험을 서사로 구조화하는 남다른 재능이 있는 덕택으로 보인다. 그의 수필은 대부분 체험한 서사를 뼈대로 삼아 서정으로 옷을 입혀 미적 쾌감을 불러오는 작품이다. 대상에 대한 사유로 일관하거나 설명으로 마무리하지 않는 것이 그가 얼마나 서사를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이영희는 수필을 교훈과 위로를 주는 문학으로 본다. 서두 글인 '작가의 말'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인용하여 '목욕할 때 생겨나는 비누 거품과 땀과 때, 그리고 기름기가 있는 물을 보면, 너는 역겨워하지만, 인생의 모든 부분과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것이 그런 것들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 우리 인생에서 부끄러운 일이 많이 있지만, 그런 것들이 누구나 겪는 삶의 일상이라 생각하면 부끄러울 것도 없다. 그러니 서로 깨우치고 위로하는 것이 삶이라는 그의 생각에 공감이 간다.
그는 분명 수필 문학도 개인의 시선으로 세계의 모습을 바라보고 해석하여 상상을 통하여 형상화하는 문학으로 보고 있다. 이영희의 수필 문학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문학에서 수필이 차지하는 위상을 더욱 풍요롭게 살찌우고 이해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생각한다.
2. 사랑으로 열어가는 관계의 문
이영희의 사랑은 관계를 전제로 한다. 다시 말하면 그의 사랑은 仁을 바탕으로 한다. 사랑 가운데 仁을 중심으로 가르친 공자도 그것을 정의하지는 않았다. 다만 실천 방법론을 가르친 것으로 보인다. 설문해자에서도 仁은 人과 二의 결합이라고 설명한 것을 보면 사랑을 실천하는 데에 관계를 중히 여기고 있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仁의 실천으로 효제충신(孝悌忠信)을 방법으로 제시하고 효제충신을 이룬 다음에 예(禮)ㆍ서(恕)ㆍ경(敬)ㆍ공(恭)ㆍ관(寬)ㆍ민(敏)ㆍ혜(惠)의 덕을 베풀고, 마지막으로 온량(溫良)과 애인(愛人)에 도달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가르침은 사랑이 효제에서 시작하여 모두를 사랑하는 애인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말하자면 보편적인 사랑에 이르는 것이다.
이 모든 덕목은 관계를 전제로 하고 실천함으로써 관계를 열어가는 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효(孝)는 부모에게 제(悌)는 형제자매 사이에서 시작하는 사랑이라면, 혈육으로부터 시작하여 이웃으로 확산하는 사랑이라고 볼 수 있다. 충(忠)은 국가나 군주 또는 사회에서 받드는 사랑이고, 신(信)은 벗이나 인간관계에서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사랑이다. 다음 예(禮)ㆍ서(恕)ㆍ경(敬)ㆍ공(恭)ㆍ관(寬)ㆍ민(敏)ㆍ혜(惠)도 모두 가까운 이웃이고, 윗사람이거나 아랫사람, 혹은 처지가 딱한 사람이거나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 대한 폭 넓은 사랑을 말하고 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은 결국 온량(溫良)한 마음으로 애인(愛人)한다는 보편적 사랑에 도달해야 한다. 연(緣)이 닿지 않았던 사람, 사실, 제도 등에 대한 사랑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영희 수필은 이러한 仁을 중심으로 한 사랑을 실천한 체험을 담고 있다. 사랑은 혈육으로부터 시작하여 이웃과 사회 그리고 모든 사람과 대상에게 관계를 지으며 확산되는 모습을 작품에서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仁을 중심으로 자비와 박애 그리고 묵자가 가르친 겸애에 이르렀다고 해석할 수 있다.
아이들을 위해서 뒤늦게 교육학을 이수하면서 시작의 동기만큼 실천하겠노라 다짐했다. 돌아서면 바쁜 생활에 함몰되어 야누스의 다른 얼굴이 되었다. 부모는 한결같은 자세로 기다려주고 믿어 주며 지켜봐 줘야 하는데 내 기분에 빠져서 일관성을 유지하지도 못했다. 그때는'엄마 반성문' 같은 책도 없었던 듯하다.
여러 권 꽂혀있는 노트를 뽑아 펴본다.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꽂혀있는 것을 무심히 보았는데 일기장이다. 아마 아이는 엄마랑 소통하고 싶어 은근히 봐주었으면 했나 본데, 퇴직하고 아이도 떠난 빈방이 되니 이제야 눈에 들어온 것이다.
-「빈방의 모놀로그」에서
이 작품은 표제작인 「빈방의 모놀로그」의 일부이다. 화자는 출가시킨 딸의 방에서 혼자 지난날을 반성한다. 자녀 교육을 위해 늦깎이로 교육학 공부까지 했으면서도 사랑의 욕심, 계획을 실천하지 못한 어머니로서의 회한을 독백하는 것이다. 사랑은 자녀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시작한다. 부모에 대한 효성의 마음도 생득적으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식을 키우다 보면 부모에 대한 안타까운 사랑이 샘솟는 법이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작품 「맥문동」에서 맥문동을 보면서 어머니의 '인고의 세월'을 되새긴다. 어머니는 일제 강점기의 어려움 속에서 제대로 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남다른 지혜로 가정을 지키고 자녀를 양육한다. '시앗' '득남' '농사일' '출산' '참척의 아픔' 같은 어구들이 어머니 인고의 세월을 잘 말해 준다. 맥문동이라는 '초중군자(草中君子)의 단아함'이 어머니의 미소와 동일시되어 피어난다고 했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존경은 이렇게 표현하였다.
아버지는 혼수를 제대로 못 해 주는 딸에게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을 주셨는데 딸은 제 설움에 겨워 그 뜻을 깊이 헤아리지 못했다. 부부가 나란히 꿈을 이루고 부러운 눈길 속에 퇴임하던 날 무지한 딸은 선친 뜻을 짚어보며 당신 음덕이라고 감읍했다. 북벌을 계획했던 효종 대왕이 이완 이대장에게 삼도수군통제사와 포도대장을 겸하라고 주신 교지였다. 그걸 본받아 목민관이 되라는 큰 소망을 담은 거였다. 하늘나라에 계시니, 이제는 용서도 구할 수 없다.
-「어떤 혼수」에서
혼수를 제대로 해 주지 못한 선친께서 가보로 내려오는 교지를 혼수로 주었다. 그러나 선친의 깊은 뜻을 다 헤아리지 못했다. 선친의 진정어린 부성애를 이해하지 못한 일을 뒤늦게 반성하는 모습이다. 선친에 대한 사랑은 바로 남편에 대한 사랑으로 전이된다.
마음을 고쳐먹었다. 괜한 힘 빼지 말고 환자가 수술 전 상태로 돌아가도록 병간호에 최선을 다하자고. 우선 화가 가라앉게 복식호흡을 크게 했다. 그리고 장시간의 수술 시간과 수면 치료를 하느라 오 일이나 피를 말리던 그의 부존재를 생각했다. 잘못되어 그가 없다고 생각하니 먹는 것도 화장실 가는 것도 다 예쁘게 보이고 감사했다. 심지어 코 고는 소리까지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아 자장가같이 들렸다. '최선을 다하자.'라던 좌우명이 '매사에 감사하고 웃으며 살자.'로 자연스레 바뀌었다.
-「남편을 다시 읽다」에서
남편의 수술 과정에서 남편이라는 '존재'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남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정하니 존재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된 것이다. 이 작품에서 존재 자체의 소중함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 그 관계에서의 사랑과 이해는 인연의 끈이 없을 것 같은 남에게로 옮겨간다. 이 또한 사랑의 전환이고 확산이다.
지하철이 멈추고 문이 열리면서 승강장에 휠체어를 탄 수십 명의 장애인이 팻말과 현수막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지금도 이동권 투쟁을 하고 있었다. 출구를 찾아 헤매던 장애인이 선로에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 사회적 타살이다. 그런데도 보통 사람들은 우선 불편함에 눈살을 찌푸리고 혐오스러운 대상으로 바라보았다.
-「블록 틈의 민들레」에서
서로 접촉하여 사상이나 감정 따위를 함께 나누어 가질 때 교감(交感)한다고 하고, 남의 주장이나 감정, 생각 따위에 찬성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낄 때 공감한다고 한다. 물론 비슷한 말이지만 같은 종류의 재료라도 신선도나 산지, 양념, 조리 시간 등에 따라 맛도 달라지니 초심으로 돌아가 조심하여 간을 맞추어야 하리라. 거기에 사람은 유전과 환경은 물론, 섭생을 신경 써야 하니 교감하고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교감과 공감」에서
위의 두 작품은 확장된 사랑을 바탕으로 관계를 이루어가는 삶의 양상을 보여준다. 〈블록 틈의 민들레〉는 장애인에 대한 측은지심을, 〈교감과 공감〉은 관계에서 교감과 공간의 중요성을 표현했다. 관계(關係)라는 말은 조령관(鳥嶺關) 주흘관(主屹關)할 때의 '관(關)'으로 요새의 문을 의미한다. 이런 본래의 의미는 훗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어지는 교감과 공감을 의미하는 연(緣)의 빗장이 되었다. 의미는 많이 달라졌지만 대문에 빗장이 있듯이 사람의 마음에도 빗장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상징적 의미도 이해할 수 있다. 상대 마음의 빗장은 나의 온량(溫良)한 마음이라는 열쇠로 풀면 보편적 사랑을 실천하는 애인(愛人)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3. 자아 성찰로 변환과 성숙
수필은 체험에 대한 철학적 해석이다. 과거에 체험한 기억을 소환하여 현재의 가치관에 따라 재해석한다. 경험에 대한 철학적 해석은 수필적 상상이라는 단계적 사유에 의해 현재화하여 재구성된다. 재구성되는 과정에서 작가는 구체적 체험을 제재로 추상적 관념을 형상화하여 객관적 진실로 보편화한다.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경험에서 형이상학적인 삶의 철학을 담아낸다는 말이다. 이런 과정에서 물리적인 소재, 자연과학적 시선으로 추구해야 소재가 인문학적이고 철학적인 주제로 구현된다. 이러한 수필적 상상을 이른바 통섭이라고 한다. 통섭(consilience)이란 말은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조선시대 성리학이나 불가에서 쓰던 말인데 서구에서는 1840년경 영국 자연철학자 윌리엄 휴얼(William Whewell, 1794~1866)이 출간한 『귀납적 과학의 철학』에서 처음 만들어 썼다고 한다. 학계에서는 매우 어려운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으나 수필 창작 과정에서는 자연과학적 사고와 인문학적 사고를 연결하여 통합된 하나의 진리를 얻어내는 개념으로 단순하게 생각하여 적용할 수 있다. 이러한 개념을 적용하면 사유가 한 차원 높게 이루어질 수 있고 주제를 얻어내는 어려움도 덜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영희의 수필 「껍질 벗기」에서 통섭에 의한 사유가 수용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자연적 소재인 더덕 껍질을 벗기면서 '스스로 벗어야 당당할 수 있다.'라는 철학적 진리를 찾아낸다. 이어서 매미, 자작나무, 매의 발톱 등의 껍질 벗기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껍질 벗기에 대하여 용기를 내게 된다. 그러고는 마이크를 잡고 여러 사람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용기를 낸다. '체면의 껍질을 벗고' 새로운 세계에 임하게 된 것이다. 이런 사유의 과정은 매미나 자작나무 같은 자연 소재의 껍질 벗기에서 체면이라는 추상적 껍질 벗기로 통섭의 지혜를 얻은 것이다. 수필은 이러한 창작의 과정에서 자아가 변환하고 성숙한 경지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사유는 작품 「문패」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통섭의 과정에서 필수적인 사유의 단계는 바로 자아 성찰이다. 대상이 되는 사물의 본질과 원리를 기준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것이다. 남을 보면서 나를 돌아보는 작품으로 「옹이」를 들 수 있다.
백조가 우아하게 물 위에 떠 있지만 보이지 않는 물속에서 얼마나 부지런히 물 갈퀴질을 했겠느냐 생각하면 밤잠 못 자며 노력하는 모습이 보여 가슴이 먹먹하다. 그분들에 비하면 나의 작은 옹이는 일회용 반창고만 붙여도 무난한데 건강염려 하며 최선을 다하지 않고 적당히 사는 내 의지가 부끄럽다. 강익중 화가의 전시회를 다녀와서 사유가 깊어진다. 관솔 박힌 소나무 삭정이가 되지 않고 옹이를 둥그런 나이테로 승화시키며 잘살고 있는지….
-「옹이」에서
전시회에서 작품을 감상하면서 '옹이를 둥그런 나이테로 승화시키며 잘살고 있는지' 자아를 돌아보는 모습이다. 옹이라는 자연적 소재의 본성에서 삶의 본성을 찾아 자아의 삶을 비추어보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자아는 내적 변화와 성장을 이루게 된다. 이 또한 이영희 수필에서 느낄 수 있는 미적 공명(共鳴)이라고 하겠다.
4. 예술과 문화를 통한 치유
수필은 문학이다. 문학은 예술의 영역에 속하고 그러므로 하나의 문화이다. 수필 창작은 예술의 창작이고 문화의 성에 벽돌을 올리는 작업이다. 창작은 미적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새로운 진리를 찾아낼 때 이루어진다. 이영희 수필에는 예술 작품을 감상하면서 예술적 미감을 체득하고 미적 안목을 확장하고 있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의 작품 「팔만대장경을 읽다」 「카타르시스」에 이러한 점이 뚜렷하다.
더 놀라운 것은 장경각의 남쪽과 북쪽에 있는 창의 크기가 다르고 서로 엇갈리게 해서 건물 안에 들어간 공기가 아래위로 돌아 나오도록 했다. 대개 대웅전이 맨 위에 있는데, 대적광전보다 장경판전이 높은 곳에 있는 것은 위상뿐만 아니라 가야산 세 계곡이 만나는 지점과 멀지 않아서 항상 바람이 통하도록 한 것이란다. 바닥을 숯, 소금, 횟가루, 모래, 황토로 했는데 숯과 소금은 흡착력이 강해 공기와 물을 정화하고 자동 습도조절을 한다. 횟가루, 마사 황토는 해충을 막는 기능이 있다. 이 모두가 대장경판의 변형을 막는 작용을 하니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과학적이고 지혜로웠는지….
-「팔만대장경을 읽다」에서
추석 전날 그 친구가 갑자기 아직 취침 안 하면 가요무대를 틀어보라고 했다. 장사익의 스페셜 무대 「소리길 고향길」로 데뷔부터 현재까지 가슴을 쥐어짜는 그만의 한스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젊어서 10여 개가 넘는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우리 소리를 잊지 않고 좋은 가사에 직접 작곡하여 온몸으로 부르니 감정이입이 더 잘 되었다. 우연인지 뭉크처럼 아버지 묻고 와서 아버지가 하시던 말씀을 떠올리는 대목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자리를 같이하지는 않지만,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질 친구 얼굴이 떠올라 슬픔이 전이되며 나 역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우리는 흔히 좋지 않은 것 더러운 것은 외면하려 하나 용감하게 직면할 때 트라우마를 상쇄시킬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다.
-「카타르시스」에서
「팔만대장경을 읽다」에서는 팔만대장경을 하나의 예술품, 문명으로 보고 그것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그에 따른 조상들의 슬기에 감동하는 모습을 담았다. 「카타르시스」는 가수의 노래를 감상하면서 그동안 겪은 많은 예술에서 예술가들이 살아온 세월의 한과 자아의 삶을 유비추리 하면서 체득할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담았다. 두 작품은 예술 작품을 감상하면서 공감과 공명으로 치유되는 체험을 작품화했다. 두 작품 외에서 여러 편의 작품에서 이러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5. 시대와 역사에 대한 고민
성현들은 시대와 역사에 대한 고민이 없으면 문학이 아니라고 했다. 기원전에 완성된 시경(詩經)도 공자가 왕조의 정치적 행태와 민중의 수용에 관한 자세와 태도를 가르치고, 아울러 문학과 교육을 가르치려 한 시집이다. 왕조를 찬양한 것이 있지만 위정자를 원망하는 민중이나 지식인의 비판 소리도 엿들을 수 있다. 시대와 역사에 대한 고민은 정치가 어려울 때 문학 작품에 더 많이 수용되었다. 이것이 바로 지식인으로서의 고뇌라고 본다. 이러한 고민은 바로 역사 속에서 자아의 존재 이유에 대한 성찰로부터 비롯된다.
인간으로 태어났을 때 존재 이유가 분명히 있었을 터이다. 모든 인간을 이롭게 해서 모두가 함께 잘살 수 있도록 한다는 홍익인간이 단군의 건국이념이다. 그런 역사 인식을 크게 한 적이 있었던가. 보통 사람은 그저 무탈함이 행복이라고 세뇌하며 피상적인 삶을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의식주를 해결하는 생업에 바빠서 홍익인간을 잊고 산 적이 더 많다고 부끄럽지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거장들의 맞잡은 손」에서
청정했던 환경이 훼손되는 것이 마음 아프고, 왜 진작 그 아름다움을 동영상에라도 담아놓지 못했나 하는 소시민적 아쉬움이 일었다. 잠시 빌려 쓰는 지구를 위해 무심히 안주만 했지, 지구 환경 보존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공동체적이고 사회 조직적 운동은 못 해도 지구에 부담을 주지 않는 생명체로 살아가고 있는지 자문해 본다.
-「은회색 풍경화」에서
「거장들의 맞잡은 손」은 역사 속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하여 성찰하면서 반성하고 있다. 「은회색 풍경화」는 지구 환경 보존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6. 형상화 기법
이영희 수필은 소소한 일상에서 삶의 지혜를 발견한다. 그의 일상은 자랑스러운 일도 있지만 부끄러운 일도 있을 것이다. 때로 독자로부터 부러움을 사는 일도 있다. 삶에서 겪은 소소한 체험의 기억은 소환되어 삶의 지혜로 승화한다. 그러나 기억은 그냥 그대로 의미를 얻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가 아니라 구조화된 서사이다. 서사로 구조화되고 서정의 살을 붙여 미적 감동을 부른다. 그렇게 이영희 수필은 문학예술이 되었다.
수필은 형식이 없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형식이 없으므로 구성도 없고 기법도 없다는 말이 된다. 붓이 가는 대로 생각이 따라가면 된다고 한다. 이 말은 수필(隨筆)을 문자 그대로 이해한 것이다. 형식이 없다는 말은 형식에 자유가 있다는 말이다. 구성도 기법도 없다는 말은 그만큼 구성도 기법도 다양하기에 창작이 쉽지 않다는 말로 이해하면 된다. 붓이 가는 대로 생각이 따라간다는 말은 역설적인 말이다. 생각이 가는 대로 붓이 따라는 것이 수필이다. 붓이 제대로 가려면 마음을 닦아야 한다. 그런 연후에 수필 앞에 앉는다. 그리고 가지런해진 제재를, 주제를 향하여 쏟아놓는 것이다.
이영희 수필의 형상화 방법에 대하여 몇 가지만 들어보기로 한다.
첫째는 객관적 상관물을 소재로 유비추리를 통하여 주제를 형상화했다는 점이다. 작품 「맥문동」은 제재인 맥문동의 본성에서 어머니의 성품을 찾아 유비적으로 동일시하였다. 어머니의 일생과 자녀 사랑을 있는 그대로 나열하면 상투적인 이야기에서 멈추고 말 것을 맥문동의 자연적 속성에 빗대어 표현함으로써 어머니의 삶의 성스러움에 공감하게 된다. 이러한 유비 구조는 「맥문동」 이외에도 대부분의 작품에 적용되었다.
둘째는 시점의 다양화이다. 수필은 작가와 화자가 동일 인물인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래서 1인칭 화자가 대부분이다. 수필에서 화자를 3인칭이나 2인칭으로 했을 경우 자칫 허구적 서사로 오해받을 수 있으므로 미적 효과를 거두기 쉽지 않다. 그래서 작가 대부분은 3인칭 화자로 설정하는 것을 꺼리게 마련이다. 예를 들면 「손 가라사대」는 손을 3인칭 화자로 설정하여 자아를 관찰 대상으로 하였다. 이 작품은 1인칭 화자로서 진술하기 거북한 서사를 3인칭 화자인 손가락이 자아를 객관화하여 표현함으로써 효과를 거두었다. 「눈의 하소연」은 눈이 2인칭 화자로서 주인인 대상에게 하소연하는 형식으로 구성하여 주제 형상화에 효과를 거두었다. 시점과 화자의 이동은 사건이 일어난 시간(사건시)과 이야기를 전하는 시간(발화시)과도 연결하여 구조화해야 하므로 쉽지 않은데 두 작품에 비교적 성공적으로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셋째로 방언을 사용하여 작품의 분위기를 더하는데 효과를 거둔 작품이 있다. 「머시기」 「니두 기여」 같은 작품이 여기에 해당된다. 수필에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방언을 사용하지 않는다. 소설은 개연성 확보를 위해 현장감이 주제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수필은 이미 사실성과 진실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개연성보다는 작가의 인식이 더 중요하다. 대부분 제재가 되는 기억은 작가 인식의 체에 걸러져서 재생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방언을 사용하는 것은 크게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서사의 분위기나 작품의 주제에 영향을 미칠 때는 방언을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인 경우가 있다. 지방의 방언을 보존하는 효과도 거둔다고 하지만 이것은 소설에서 더 크게 기여하고 있으므로 크게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영희 수필은 주제와 서사의 분위기에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
수필은 일상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지만 이야기가 아니라 문학이다. 수필은 예술적 미감을 추구하기 때문에 사용되는 어휘는 일상어와 다르다. 시나 소설에 쓰이는 어휘가 실용적인 글에 사용되는 어휘와 다른 것과 같은 의미이다. 나아가 수필의 언어는 시에 쓰이는 언어와도 많이 다르다. 수필 창작에 어떤 어휘를 사용해야 보다 효과적이고 미적 공명을 일으킬 수 있을지 부단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휘갑치기
시인 추방론을 주장한 플라톤은 교훈적인 작품을 제외한 모든 문학 작품은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문학이 청년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면서 문학은 오로지 공리적 교훈적 기능만을 강조하였다. 이에 비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문학 작품을 생산하고 수용하는 과정을 통하여 정서가 순화되고 정화된다고 주장하면서 문학의 쾌락적 기능을 강조하였다. 오늘날 수필 문학이 지향하는 한 방향인 문학을 통한 치유의 근간인 카타르시스 이론을 세운 것이다. 플라톤의 공리적 기능의 측면으로 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 이론에 기대어 바라보나 문학의 긍정적인 효과는 치유뿐만 아니라 개인의 성장과 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영희 수필을 통해서 그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그의 나날은 사랑으로 사람 살림과 세상살이를 엮어간 삶이었다. 그는 혈육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일을 사랑하고 사회를 사랑하고 국가와 역사를 사랑했다. 그는 예술을 사랑하고 자연도 사랑했다. 그는 문학을 사랑해서 수필가가 되고 소설가가 되었다. 그의 삶의 여정은 세계를 향하여 존재로 나아가는 에너지가 되었다. 사랑으로 엮어서 관계로 열어가는 삶이 그의 문학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문인으로서 이영희의 세계는 빈방인 듯하지만, 결코 빈방이 아니고, 닫혀 있는 듯하지만, 결코 닫혀 있지도 않다. 그의 모놀로그는 외롭고 고독한 듯하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라 사랑으로 열어가는 작은 세계라는 것이 작품을 통해서 형상화되었다.
이영희 수필가는 등단 이후 수필과 함께 살아왔고 등단 이전부터 마음을 닦아온 작가이다. 그의 삶 자체가 수행이었음은 작품에서 엿볼 수 있고 그의 약력에 구체적으로 밝혔다. 충청북도교육청 9급 행정직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교육행정 전문가로 성장하였다. 40여 년 고위직으로 퇴임하기까지의 삶이 곧 수행의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수행의 과정이 진정성 있는 고백을 통하여 수필집 『빈방의 모놀로그』에 아름다운 작품으로 승화되어 담겼다.
이영희 수필가는 그 살아온 날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늘 미소가 담겨 있다. 어려움 속에서도 잃어버리지 않은 미소가 그의 길을 꽃길로 만들었을 것으로 본다. 그가 살아온 날에 어려움이 있었다면 그 미소만큼 살아갈 날은 고운 날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세 번째 수필집 『빈방의 모놀로그』 출간에 거친 글을 덧붙이게 된 것을 문우로서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 좋은 영향력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발원한다.
이영희 수필집 『빈방의 모놀로그』 원고를 정독했다. 읽어 나가는 동안 그의 세계에 대한 사랑에 감동하고, 세계로 나아가는 관계의 서사에 공감하였다. 그의 작품집 『빈방의 모놀로그』에 수록된 전 52편의 작품을 꿰뚫어 한마디로 말하면 '사랑으로 엮어서 관계로 열어가는 서사'라고 요약할 수 있다.
사랑은 무엇이라 정의를 내려야 할까. 사랑의 범주는 어디까지일까. 진정한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이런 의문들이 작품을 읽어가는 동안 하나하나 풀려나갔다. 그는 사랑의 서사를 진솔하게 고백하는 가운데 자신의 존재를 확연하게 드러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가르쳤다.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이웃을 위하여 목숨도 걸어야 하는 행위를 사랑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리스도는 말뿐 아니라 몸소 사랑을 실천으로 가르쳤다. 모두의 죄를 용서받으려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으로써 자신을 희생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진실을 가르친 것이다. 이것이 절대적인 사랑이고 사랑의 원형이다. 여기에서 사랑의 정의, 사랑의 범주, 진정한 사랑의 양상을 배울 수 있고, 어떤 사랑으로 세계와 관계를 어떻게 지어나갈 것인가를 학습할 수 있다.
공자는 인(仁)을 사랑의 근본으로 생각하였다. 인은 기본적으로 혈연에 바탕 둔 사랑으로 시작하여 인연이 없는 이웃으로 확산해 나가는 관계의 사랑이다. 仁은 나만 못한 사람에 대한 측은지심의 발동이 실천의 시작이라고 맹자는 가르쳤다. 이 또한 관계가 뚜렷하지 않은 대상에 대한 사랑의 시작이고 확실한 관계의 문을 여는 일이다.
불가에서는 사랑을 자비(慈悲)라고 가르친다. 자(慈)와 비(悲)로 나누어 자(慈)는 진정한 정의(情誼)이며, 비(悲)는 친절함, 상냥함, 따뜻함으로 이해할 수 있다. 동양에서는 자와 비를 따로 생각하지 않고 자비로움을 곧 사랑으로 이해한다. 자비는 대상을 구분하거나 차별 짓지 않고 널리 애처로운 마음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이밖에 묵자는 '하늘 아래 모두를 겸애하라.'라고 가르쳤다. 모두를 평등하게 사랑하라는 묵자의 말에서 보듯이 보편적 사랑을 강조한 말이다. 묵자의 보편적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박애와 기본적 의미를 함께 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영희 수필가는 항상 미소를 띠고 있다. 이영희는 사랑이 준비되어 있는 작가이다. 문우들에게 친절하고 상냥하며 자기희생적이다. 그는 충북 제천에서 출생하여 고등학교까지 고향에서 마쳤다. 1998년 ≪???맥문학≫에 수필 「가을의 직지사」와 「마동남과 사모님을」 발표하면서 수필가로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 후 동양일보 신춘문예소설이 당선되어 소설가로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장편소설 『비망록, 직지로 피어나다』 단편소설집 『메이저아르카나 13번』을 펴내 그 부지런한 창작 열정은 물론 소설 창작의 재능을 실감하게 된다. 수필가로 등단한 이후 이미 수필집 『칡꽃 향기』 주)대명사 2018 『정비공』을 출간하여 수필 문단에서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는데 이번에 그동안의 주옥같은 작품을 모아 『빈방의 모놀로그』를 펼쳐낸다니 함께 공부하는 문우로서 반가운 마음 금할 길 없다.
이영희 수필가는 도내 각 문학 단체는 물론 전국 단위 문학 단체에서 실무를 맡아 수필 문단과 소설 문단 발전을 위해 기여한 바가 크다. 또한 청주시 1인 1책 펴내기 지도강사로 위촉받아서 재능기부를 할 뿐 아니라, 지방 일간지의 고정 필진으로 지방 문화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모두가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다.
이영희의 세 번째 수필집 『빈방의 모놀로그』는 모두 52편 수필을 각부 13편씩 4부로 나누어 엮었다. 수록된 52편을 대략 크게 몇 가지 주제로 나누어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 첫째는 앞에서 밝힌 대로 혈육, 남편, 이웃, 사회, 국가에 대한 사랑을 담았다. 둘째는 예술과 문화에 관한 관심이다. 셋째로 시대와 역사에 대한 고민과 자연에 관한 안타까움을 담은 작품으로 볼 수 있었다.
다음에는 수필 문학에서 빠질 수 없는 자기 성찰의 글이다. 자기 성찰의 작품에서는 진정성 있는 고백이 중요한데 그 고백의 양상을 객관적으로 살펴보겠다. 작품을 읽는 과정에서는 반드시 작가의 세계에 대한 인식과 해석을 엿보는 것이 필요하다. 수필을 체험의 문학이라고 하지만 미적 상상이 필요하므로 작가가 상상하는 세계도 살펴보는 것이 작가에 대한 예의이고 독자의 기대에 부합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대부분의 발문이나 서평이 서사에 따른 주제의 해석에만 치중하는데, 이 글에서는 작가가 주제를 드러내기 위한 형상화 기법도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그것이 작가와 독자 사이를 편안하게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되는 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발문(跋文)이라 하면 책의 말미에 그 책이 발간된 경위와 내용의 대강과 아울러 발문을 쓰는 사람과 저자와의 관계 등을 간략하게 적는 글을 말한다. 이와 달리 서평(書評)이라고 하면 주제에 관심이 있거나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이 필자에 대한 정보, 가치관, 신념을 찾아 독자에게 일러주는 글이라고 본다. 서평은 먼저 읽은 사람이나 평론가가 그 책을 읽고자 하는 사람 또는 이미 읽은 사람에게 해석의 방향이나 배경지식을 주는 글이다. 독자의 폭넓은 이해를 돕기 위한 글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글은 조선시대 우리 문인들이 쓰던 발문 형식에 객관적인 해석을 가한 서평 형식을 혼합하여 글을 전개하려고 한다. 이영희 수필가와 함께 수필 창작 공부를 해온 세월이 길고, 그만큼 문학적 신념에 대한 공감이 크기에 그의 창작 활동을 응원해야 하지만, 응원은 작품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1. 『빈방의 모놀로그』에 드러난 수필에 대한 관점
수필 창작은 수필가의 수필에 대한 관점으로 방향이 정해진다. 대부분의 수필가나 평론가들이 그렇듯이 이영희 수필가도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자기 성찰의 문학으로 접근한다. 이러한 관점을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으나 작품 전체에 흐르는 분위기가 그렇다. 이영희의 수필은 끊임없는 자기 탐구의 모습이 보인다. 자기를 탐구하는 것은 자아 성찰을 위한 기초 작업이다. 수필 창작 과정이나 예술 작품 감상 과정에서 자아를 되돌아보고 삶의 철학을 세워 자신을 다져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사유는 수필 창작에서 필수적인 상상의 단계이다. 다만 경험과 사유에 대한 고백을 '수필은 온전히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라는 이유로 '이제 그만하자'라고 마음먹기도 했던 것은 그가 하는 고백이 어떤 것인지 잘 말해 준다. 다시 말해서 수필은 고백의 문학이고 그 고백은 솔직하고 진정성이 있어야 하기에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제 그만하자고 했던 작가는 다시 용기를 내어 '빈방에서 모놀로그'를 하게 된 것이라 생각된다. 수필은 경험과 자아 성찰의 문학이고 성찰의 결과를 고백하는 과정에서 용기를 내어 자아를 객관화해야 하기 때문에 자아의 변환과 성숙을 꾀하는 문학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이영희의 수필은 특별하지 않은 일상에서 의미를 찾아낸다. 어떤 이는 수필이 문학성을 확보하려면 제재가 되는 경험이 일상을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소소한 일상에서 단순한 듯하면서도 깊이 있는 진리를 발견한다.
이영희의 수필에서는 서사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소설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체험을 서사로 구조화하는 남다른 재능이 있는 덕택으로 보인다. 그의 수필은 대부분 체험한 서사를 뼈대로 삼아 서정으로 옷을 입혀 미적 쾌감을 불러오는 작품이다. 대상에 대한 사유로 일관하거나 설명으로 마무리하지 않는 것이 그가 얼마나 서사를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이영희는 수필을 교훈과 위로를 주는 문학으로 본다. 서두 글인 '작가의 말'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인용하여 '목욕할 때 생겨나는 비누 거품과 땀과 때, 그리고 기름기가 있는 물을 보면, 너는 역겨워하지만, 인생의 모든 부분과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것이 그런 것들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 우리 인생에서 부끄러운 일이 많이 있지만, 그런 것들이 누구나 겪는 삶의 일상이라 생각하면 부끄러울 것도 없다. 그러니 서로 깨우치고 위로하는 것이 삶이라는 그의 생각에 공감이 간다.
그는 분명 수필 문학도 개인의 시선으로 세계의 모습을 바라보고 해석하여 상상을 통하여 형상화하는 문학으로 보고 있다. 이영희의 수필 문학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문학에서 수필이 차지하는 위상을 더욱 풍요롭게 살찌우고 이해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생각한다.
2. 사랑으로 열어가는 관계의 문
이영희의 사랑은 관계를 전제로 한다. 다시 말하면 그의 사랑은 仁을 바탕으로 한다. 사랑 가운데 仁을 중심으로 가르친 공자도 그것을 정의하지는 않았다. 다만 실천 방법론을 가르친 것으로 보인다. 설문해자에서도 仁은 人과 二의 결합이라고 설명한 것을 보면 사랑을 실천하는 데에 관계를 중히 여기고 있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仁의 실천으로 효제충신(孝悌忠信)을 방법으로 제시하고 효제충신을 이룬 다음에 예(禮)ㆍ서(恕)ㆍ경(敬)ㆍ공(恭)ㆍ관(寬)ㆍ민(敏)ㆍ혜(惠)의 덕을 베풀고, 마지막으로 온량(溫良)과 애인(愛人)에 도달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가르침은 사랑이 효제에서 시작하여 모두를 사랑하는 애인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말하자면 보편적인 사랑에 이르는 것이다.
이 모든 덕목은 관계를 전제로 하고 실천함으로써 관계를 열어가는 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효(孝)는 부모에게 제(悌)는 형제자매 사이에서 시작하는 사랑이라면, 혈육으로부터 시작하여 이웃으로 확산하는 사랑이라고 볼 수 있다. 충(忠)은 국가나 군주 또는 사회에서 받드는 사랑이고, 신(信)은 벗이나 인간관계에서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사랑이다. 다음 예(禮)ㆍ서(恕)ㆍ경(敬)ㆍ공(恭)ㆍ관(寬)ㆍ민(敏)ㆍ혜(惠)도 모두 가까운 이웃이고, 윗사람이거나 아랫사람, 혹은 처지가 딱한 사람이거나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 대한 폭 넓은 사랑을 말하고 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은 결국 온량(溫良)한 마음으로 애인(愛人)한다는 보편적 사랑에 도달해야 한다. 연(緣)이 닿지 않았던 사람, 사실, 제도 등에 대한 사랑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영희 수필은 이러한 仁을 중심으로 한 사랑을 실천한 체험을 담고 있다. 사랑은 혈육으로부터 시작하여 이웃과 사회 그리고 모든 사람과 대상에게 관계를 지으며 확산되는 모습을 작품에서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仁을 중심으로 자비와 박애 그리고 묵자가 가르친 겸애에 이르렀다고 해석할 수 있다.
아이들을 위해서 뒤늦게 교육학을 이수하면서 시작의 동기만큼 실천하겠노라 다짐했다. 돌아서면 바쁜 생활에 함몰되어 야누스의 다른 얼굴이 되었다. 부모는 한결같은 자세로 기다려주고 믿어 주며 지켜봐 줘야 하는데 내 기분에 빠져서 일관성을 유지하지도 못했다. 그때는'엄마 반성문' 같은 책도 없었던 듯하다.
여러 권 꽂혀있는 노트를 뽑아 펴본다.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꽂혀있는 것을 무심히 보았는데 일기장이다. 아마 아이는 엄마랑 소통하고 싶어 은근히 봐주었으면 했나 본데, 퇴직하고 아이도 떠난 빈방이 되니 이제야 눈에 들어온 것이다.
-「빈방의 모놀로그」에서
이 작품은 표제작인 「빈방의 모놀로그」의 일부이다. 화자는 출가시킨 딸의 방에서 혼자 지난날을 반성한다. 자녀 교육을 위해 늦깎이로 교육학 공부까지 했으면서도 사랑의 욕심, 계획을 실천하지 못한 어머니로서의 회한을 독백하는 것이다. 사랑은 자녀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시작한다. 부모에 대한 효성의 마음도 생득적으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식을 키우다 보면 부모에 대한 안타까운 사랑이 샘솟는 법이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작품 「맥문동」에서 맥문동을 보면서 어머니의 '인고의 세월'을 되새긴다. 어머니는 일제 강점기의 어려움 속에서 제대로 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남다른 지혜로 가정을 지키고 자녀를 양육한다. '시앗' '득남' '농사일' '출산' '참척의 아픔' 같은 어구들이 어머니 인고의 세월을 잘 말해 준다. 맥문동이라는 '초중군자(草中君子)의 단아함'이 어머니의 미소와 동일시되어 피어난다고 했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존경은 이렇게 표현하였다.
아버지는 혼수를 제대로 못 해 주는 딸에게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을 주셨는데 딸은 제 설움에 겨워 그 뜻을 깊이 헤아리지 못했다. 부부가 나란히 꿈을 이루고 부러운 눈길 속에 퇴임하던 날 무지한 딸은 선친 뜻을 짚어보며 당신 음덕이라고 감읍했다. 북벌을 계획했던 효종 대왕이 이완 이대장에게 삼도수군통제사와 포도대장을 겸하라고 주신 교지였다. 그걸 본받아 목민관이 되라는 큰 소망을 담은 거였다. 하늘나라에 계시니, 이제는 용서도 구할 수 없다.
-「어떤 혼수」에서
혼수를 제대로 해 주지 못한 선친께서 가보로 내려오는 교지를 혼수로 주었다. 그러나 선친의 깊은 뜻을 다 헤아리지 못했다. 선친의 진정어린 부성애를 이해하지 못한 일을 뒤늦게 반성하는 모습이다. 선친에 대한 사랑은 바로 남편에 대한 사랑으로 전이된다.
마음을 고쳐먹었다. 괜한 힘 빼지 말고 환자가 수술 전 상태로 돌아가도록 병간호에 최선을 다하자고. 우선 화가 가라앉게 복식호흡을 크게 했다. 그리고 장시간의 수술 시간과 수면 치료를 하느라 오 일이나 피를 말리던 그의 부존재를 생각했다. 잘못되어 그가 없다고 생각하니 먹는 것도 화장실 가는 것도 다 예쁘게 보이고 감사했다. 심지어 코 고는 소리까지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아 자장가같이 들렸다. '최선을 다하자.'라던 좌우명이 '매사에 감사하고 웃으며 살자.'로 자연스레 바뀌었다.
-「남편을 다시 읽다」에서
남편의 수술 과정에서 남편이라는 '존재'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남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정하니 존재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된 것이다. 이 작품에서 존재 자체의 소중함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 그 관계에서의 사랑과 이해는 인연의 끈이 없을 것 같은 남에게로 옮겨간다. 이 또한 사랑의 전환이고 확산이다.
지하철이 멈추고 문이 열리면서 승강장에 휠체어를 탄 수십 명의 장애인이 팻말과 현수막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지금도 이동권 투쟁을 하고 있었다. 출구를 찾아 헤매던 장애인이 선로에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 사회적 타살이다. 그런데도 보통 사람들은 우선 불편함에 눈살을 찌푸리고 혐오스러운 대상으로 바라보았다.
-「블록 틈의 민들레」에서
서로 접촉하여 사상이나 감정 따위를 함께 나누어 가질 때 교감(交感)한다고 하고, 남의 주장이나 감정, 생각 따위에 찬성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낄 때 공감한다고 한다. 물론 비슷한 말이지만 같은 종류의 재료라도 신선도나 산지, 양념, 조리 시간 등에 따라 맛도 달라지니 초심으로 돌아가 조심하여 간을 맞추어야 하리라. 거기에 사람은 유전과 환경은 물론, 섭생을 신경 써야 하니 교감하고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교감과 공감」에서
위의 두 작품은 확장된 사랑을 바탕으로 관계를 이루어가는 삶의 양상을 보여준다. 〈블록 틈의 민들레〉는 장애인에 대한 측은지심을, 〈교감과 공감〉은 관계에서 교감과 공간의 중요성을 표현했다. 관계(關係)라는 말은 조령관(鳥嶺關) 주흘관(主屹關)할 때의 '관(關)'으로 요새의 문을 의미한다. 이런 본래의 의미는 훗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어지는 교감과 공감을 의미하는 연(緣)의 빗장이 되었다. 의미는 많이 달라졌지만 대문에 빗장이 있듯이 사람의 마음에도 빗장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상징적 의미도 이해할 수 있다. 상대 마음의 빗장은 나의 온량(溫良)한 마음이라는 열쇠로 풀면 보편적 사랑을 실천하는 애인(愛人)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3. 자아 성찰로 변환과 성숙
수필은 체험에 대한 철학적 해석이다. 과거에 체험한 기억을 소환하여 현재의 가치관에 따라 재해석한다. 경험에 대한 철학적 해석은 수필적 상상이라는 단계적 사유에 의해 현재화하여 재구성된다. 재구성되는 과정에서 작가는 구체적 체험을 제재로 추상적 관념을 형상화하여 객관적 진실로 보편화한다.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경험에서 형이상학적인 삶의 철학을 담아낸다는 말이다. 이런 과정에서 물리적인 소재, 자연과학적 시선으로 추구해야 소재가 인문학적이고 철학적인 주제로 구현된다. 이러한 수필적 상상을 이른바 통섭이라고 한다. 통섭(consilience)이란 말은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조선시대 성리학이나 불가에서 쓰던 말인데 서구에서는 1840년경 영국 자연철학자 윌리엄 휴얼(William Whewell, 1794~1866)이 출간한 『귀납적 과학의 철학』에서 처음 만들어 썼다고 한다. 학계에서는 매우 어려운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으나 수필 창작 과정에서는 자연과학적 사고와 인문학적 사고를 연결하여 통합된 하나의 진리를 얻어내는 개념으로 단순하게 생각하여 적용할 수 있다. 이러한 개념을 적용하면 사유가 한 차원 높게 이루어질 수 있고 주제를 얻어내는 어려움도 덜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영희의 수필 「껍질 벗기」에서 통섭에 의한 사유가 수용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자연적 소재인 더덕 껍질을 벗기면서 '스스로 벗어야 당당할 수 있다.'라는 철학적 진리를 찾아낸다. 이어서 매미, 자작나무, 매의 발톱 등의 껍질 벗기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껍질 벗기에 대하여 용기를 내게 된다. 그러고는 마이크를 잡고 여러 사람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용기를 낸다. '체면의 껍질을 벗고' 새로운 세계에 임하게 된 것이다. 이런 사유의 과정은 매미나 자작나무 같은 자연 소재의 껍질 벗기에서 체면이라는 추상적 껍질 벗기로 통섭의 지혜를 얻은 것이다. 수필은 이러한 창작의 과정에서 자아가 변환하고 성숙한 경지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사유는 작품 「문패」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통섭의 과정에서 필수적인 사유의 단계는 바로 자아 성찰이다. 대상이 되는 사물의 본질과 원리를 기준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것이다. 남을 보면서 나를 돌아보는 작품으로 「옹이」를 들 수 있다.
백조가 우아하게 물 위에 떠 있지만 보이지 않는 물속에서 얼마나 부지런히 물 갈퀴질을 했겠느냐 생각하면 밤잠 못 자며 노력하는 모습이 보여 가슴이 먹먹하다. 그분들에 비하면 나의 작은 옹이는 일회용 반창고만 붙여도 무난한데 건강염려 하며 최선을 다하지 않고 적당히 사는 내 의지가 부끄럽다. 강익중 화가의 전시회를 다녀와서 사유가 깊어진다. 관솔 박힌 소나무 삭정이가 되지 않고 옹이를 둥그런 나이테로 승화시키며 잘살고 있는지….
-「옹이」에서
전시회에서 작품을 감상하면서 '옹이를 둥그런 나이테로 승화시키며 잘살고 있는지' 자아를 돌아보는 모습이다. 옹이라는 자연적 소재의 본성에서 삶의 본성을 찾아 자아의 삶을 비추어보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자아는 내적 변화와 성장을 이루게 된다. 이 또한 이영희 수필에서 느낄 수 있는 미적 공명(共鳴)이라고 하겠다.
4. 예술과 문화를 통한 치유
수필은 문학이다. 문학은 예술의 영역에 속하고 그러므로 하나의 문화이다. 수필 창작은 예술의 창작이고 문화의 성에 벽돌을 올리는 작업이다. 창작은 미적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새로운 진리를 찾아낼 때 이루어진다. 이영희 수필에는 예술 작품을 감상하면서 예술적 미감을 체득하고 미적 안목을 확장하고 있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의 작품 「팔만대장경을 읽다」 「카타르시스」에 이러한 점이 뚜렷하다.
더 놀라운 것은 장경각의 남쪽과 북쪽에 있는 창의 크기가 다르고 서로 엇갈리게 해서 건물 안에 들어간 공기가 아래위로 돌아 나오도록 했다. 대개 대웅전이 맨 위에 있는데, 대적광전보다 장경판전이 높은 곳에 있는 것은 위상뿐만 아니라 가야산 세 계곡이 만나는 지점과 멀지 않아서 항상 바람이 통하도록 한 것이란다. 바닥을 숯, 소금, 횟가루, 모래, 황토로 했는데 숯과 소금은 흡착력이 강해 공기와 물을 정화하고 자동 습도조절을 한다. 횟가루, 마사 황토는 해충을 막는 기능이 있다. 이 모두가 대장경판의 변형을 막는 작용을 하니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과학적이고 지혜로웠는지….
-「팔만대장경을 읽다」에서
추석 전날 그 친구가 갑자기 아직 취침 안 하면 가요무대를 틀어보라고 했다. 장사익의 스페셜 무대 「소리길 고향길」로 데뷔부터 현재까지 가슴을 쥐어짜는 그만의 한스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젊어서 10여 개가 넘는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우리 소리를 잊지 않고 좋은 가사에 직접 작곡하여 온몸으로 부르니 감정이입이 더 잘 되었다. 우연인지 뭉크처럼 아버지 묻고 와서 아버지가 하시던 말씀을 떠올리는 대목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자리를 같이하지는 않지만,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질 친구 얼굴이 떠올라 슬픔이 전이되며 나 역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우리는 흔히 좋지 않은 것 더러운 것은 외면하려 하나 용감하게 직면할 때 트라우마를 상쇄시킬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다.
-「카타르시스」에서
「팔만대장경을 읽다」에서는 팔만대장경을 하나의 예술품, 문명으로 보고 그것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그에 따른 조상들의 슬기에 감동하는 모습을 담았다. 「카타르시스」는 가수의 노래를 감상하면서 그동안 겪은 많은 예술에서 예술가들이 살아온 세월의 한과 자아의 삶을 유비추리 하면서 체득할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담았다. 두 작품은 예술 작품을 감상하면서 공감과 공명으로 치유되는 체험을 작품화했다. 두 작품 외에서 여러 편의 작품에서 이러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5. 시대와 역사에 대한 고민
성현들은 시대와 역사에 대한 고민이 없으면 문학이 아니라고 했다. 기원전에 완성된 시경(詩經)도 공자가 왕조의 정치적 행태와 민중의 수용에 관한 자세와 태도를 가르치고, 아울러 문학과 교육을 가르치려 한 시집이다. 왕조를 찬양한 것이 있지만 위정자를 원망하는 민중이나 지식인의 비판 소리도 엿들을 수 있다. 시대와 역사에 대한 고민은 정치가 어려울 때 문학 작품에 더 많이 수용되었다. 이것이 바로 지식인으로서의 고뇌라고 본다. 이러한 고민은 바로 역사 속에서 자아의 존재 이유에 대한 성찰로부터 비롯된다.
인간으로 태어났을 때 존재 이유가 분명히 있었을 터이다. 모든 인간을 이롭게 해서 모두가 함께 잘살 수 있도록 한다는 홍익인간이 단군의 건국이념이다. 그런 역사 인식을 크게 한 적이 있었던가. 보통 사람은 그저 무탈함이 행복이라고 세뇌하며 피상적인 삶을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의식주를 해결하는 생업에 바빠서 홍익인간을 잊고 산 적이 더 많다고 부끄럽지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거장들의 맞잡은 손」에서
청정했던 환경이 훼손되는 것이 마음 아프고, 왜 진작 그 아름다움을 동영상에라도 담아놓지 못했나 하는 소시민적 아쉬움이 일었다. 잠시 빌려 쓰는 지구를 위해 무심히 안주만 했지, 지구 환경 보존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공동체적이고 사회 조직적 운동은 못 해도 지구에 부담을 주지 않는 생명체로 살아가고 있는지 자문해 본다.
-「은회색 풍경화」에서
「거장들의 맞잡은 손」은 역사 속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하여 성찰하면서 반성하고 있다. 「은회색 풍경화」는 지구 환경 보존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6. 형상화 기법
이영희 수필은 소소한 일상에서 삶의 지혜를 발견한다. 그의 일상은 자랑스러운 일도 있지만 부끄러운 일도 있을 것이다. 때로 독자로부터 부러움을 사는 일도 있다. 삶에서 겪은 소소한 체험의 기억은 소환되어 삶의 지혜로 승화한다. 그러나 기억은 그냥 그대로 의미를 얻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가 아니라 구조화된 서사이다. 서사로 구조화되고 서정의 살을 붙여 미적 감동을 부른다. 그렇게 이영희 수필은 문학예술이 되었다.
수필은 형식이 없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형식이 없으므로 구성도 없고 기법도 없다는 말이 된다. 붓이 가는 대로 생각이 따라가면 된다고 한다. 이 말은 수필(隨筆)을 문자 그대로 이해한 것이다. 형식이 없다는 말은 형식에 자유가 있다는 말이다. 구성도 기법도 없다는 말은 그만큼 구성도 기법도 다양하기에 창작이 쉽지 않다는 말로 이해하면 된다. 붓이 가는 대로 생각이 따라간다는 말은 역설적인 말이다. 생각이 가는 대로 붓이 따라는 것이 수필이다. 붓이 제대로 가려면 마음을 닦아야 한다. 그런 연후에 수필 앞에 앉는다. 그리고 가지런해진 제재를, 주제를 향하여 쏟아놓는 것이다.
이영희 수필의 형상화 방법에 대하여 몇 가지만 들어보기로 한다.
첫째는 객관적 상관물을 소재로 유비추리를 통하여 주제를 형상화했다는 점이다. 작품 「맥문동」은 제재인 맥문동의 본성에서 어머니의 성품을 찾아 유비적으로 동일시하였다. 어머니의 일생과 자녀 사랑을 있는 그대로 나열하면 상투적인 이야기에서 멈추고 말 것을 맥문동의 자연적 속성에 빗대어 표현함으로써 어머니의 삶의 성스러움에 공감하게 된다. 이러한 유비 구조는 「맥문동」 이외에도 대부분의 작품에 적용되었다.
둘째는 시점의 다양화이다. 수필은 작가와 화자가 동일 인물인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래서 1인칭 화자가 대부분이다. 수필에서 화자를 3인칭이나 2인칭으로 했을 경우 자칫 허구적 서사로 오해받을 수 있으므로 미적 효과를 거두기 쉽지 않다. 그래서 작가 대부분은 3인칭 화자로 설정하는 것을 꺼리게 마련이다. 예를 들면 「손 가라사대」는 손을 3인칭 화자로 설정하여 자아를 관찰 대상으로 하였다. 이 작품은 1인칭 화자로서 진술하기 거북한 서사를 3인칭 화자인 손가락이 자아를 객관화하여 표현함으로써 효과를 거두었다. 「눈의 하소연」은 눈이 2인칭 화자로서 주인인 대상에게 하소연하는 형식으로 구성하여 주제 형상화에 효과를 거두었다. 시점과 화자의 이동은 사건이 일어난 시간(사건시)과 이야기를 전하는 시간(발화시)과도 연결하여 구조화해야 하므로 쉽지 않은데 두 작품에 비교적 성공적으로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셋째로 방언을 사용하여 작품의 분위기를 더하는데 효과를 거둔 작품이 있다. 「머시기」 「니두 기여」 같은 작품이 여기에 해당된다. 수필에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방언을 사용하지 않는다. 소설은 개연성 확보를 위해 현장감이 주제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수필은 이미 사실성과 진실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개연성보다는 작가의 인식이 더 중요하다. 대부분 제재가 되는 기억은 작가 인식의 체에 걸러져서 재생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방언을 사용하는 것은 크게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서사의 분위기나 작품의 주제에 영향을 미칠 때는 방언을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인 경우가 있다. 지방의 방언을 보존하는 효과도 거둔다고 하지만 이것은 소설에서 더 크게 기여하고 있으므로 크게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영희 수필은 주제와 서사의 분위기에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
수필은 일상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지만 이야기가 아니라 문학이다. 수필은 예술적 미감을 추구하기 때문에 사용되는 어휘는 일상어와 다르다. 시나 소설에 쓰이는 어휘가 실용적인 글에 사용되는 어휘와 다른 것과 같은 의미이다. 나아가 수필의 언어는 시에 쓰이는 언어와도 많이 다르다. 수필 창작에 어떤 어휘를 사용해야 보다 효과적이고 미적 공명을 일으킬 수 있을지 부단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휘갑치기
시인 추방론을 주장한 플라톤은 교훈적인 작품을 제외한 모든 문학 작품은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문학이 청년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면서 문학은 오로지 공리적 교훈적 기능만을 강조하였다. 이에 비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문학 작품을 생산하고 수용하는 과정을 통하여 정서가 순화되고 정화된다고 주장하면서 문학의 쾌락적 기능을 강조하였다. 오늘날 수필 문학이 지향하는 한 방향인 문학을 통한 치유의 근간인 카타르시스 이론을 세운 것이다. 플라톤의 공리적 기능의 측면으로 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 이론에 기대어 바라보나 문학의 긍정적인 효과는 치유뿐만 아니라 개인의 성장과 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영희 수필을 통해서 그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그의 나날은 사랑으로 사람 살림과 세상살이를 엮어간 삶이었다. 그는 혈육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일을 사랑하고 사회를 사랑하고 국가와 역사를 사랑했다. 그는 예술을 사랑하고 자연도 사랑했다. 그는 문학을 사랑해서 수필가가 되고 소설가가 되었다. 그의 삶의 여정은 세계를 향하여 존재로 나아가는 에너지가 되었다. 사랑으로 엮어서 관계로 열어가는 삶이 그의 문학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문인으로서 이영희의 세계는 빈방인 듯하지만, 결코 빈방이 아니고, 닫혀 있는 듯하지만, 결코 닫혀 있지도 않다. 그의 모놀로그는 외롭고 고독한 듯하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라 사랑으로 열어가는 작은 세계라는 것이 작품을 통해서 형상화되었다.
이영희 수필가는 등단 이후 수필과 함께 살아왔고 등단 이전부터 마음을 닦아온 작가이다. 그의 삶 자체가 수행이었음은 작품에서 엿볼 수 있고 그의 약력에 구체적으로 밝혔다. 충청북도교육청 9급 행정직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교육행정 전문가로 성장하였다. 40여 년 고위직으로 퇴임하기까지의 삶이 곧 수행의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수행의 과정이 진정성 있는 고백을 통하여 수필집 『빈방의 모놀로그』에 아름다운 작품으로 승화되어 담겼다.
이영희 수필가는 그 살아온 날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늘 미소가 담겨 있다. 어려움 속에서도 잃어버리지 않은 미소가 그의 길을 꽃길로 만들었을 것으로 본다. 그가 살아온 날에 어려움이 있었다면 그 미소만큼 살아갈 날은 고운 날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세 번째 수필집 『빈방의 모놀로그』 출간에 거친 글을 덧붙이게 된 것을 문우로서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 좋은 영향력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발원한다.
목차
목차
4 ㆍ 머리말
1부 봄
12 가시
16 팔만대장경을 읽다
20 답청
24 머시기
28 블록 틈의 민들레
31 꿈
35 봄의 에피소드
39 단비
42 맥문동
46 사유에 잠기다
50 리모델링
54 이제 철이 드는지
57 껍질 벗기
2부 여름
62 미술관에 고향이
66 경계
69 표구에 담긴 세월
73 카타르시스
77 니두 기여
82 맷방석
86 누리달
89 직지의 발자취를 찾아
93 여름 예찬
97 빈방의 모놀로그
101 옹이
106 꽃보다 나무
109 거장들의 맞잡은 손
3부 가을
116 문패
120 인다호걸(人多豪傑) 청주
124 교감과 공감
128 피카소를 만나다
132 날마다 산스장
136 마두금 소리
140 세 살에게서 배우다
144 은회색 풍경화
148 습관을 붙박이 하다
152 무심천 가을역
155 최선과 적당의 갈림길에서
159 시적인 지명, 절경인 내 고향
164 어떤 혼수
4부 겨울
170 손 가라사대
174 남편을 다시 읽다
179 유예
182 저녁나절의 그림자
186 풀솜 할미
190 그래도 희망을
194 눈의 하소연
198 숫눈길
201 기발한 덕담
205 소이부답(笑而不答)
208 따뜻한 편지
212 청맹과니
216 이음동의어
221 이방주 | 사랑으로 여는 관계의 서사
1부 봄
12 가시
16 팔만대장경을 읽다
20 답청
24 머시기
28 블록 틈의 민들레
31 꿈
35 봄의 에피소드
39 단비
42 맥문동
46 사유에 잠기다
50 리모델링
54 이제 철이 드는지
57 껍질 벗기
2부 여름
62 미술관에 고향이
66 경계
69 표구에 담긴 세월
73 카타르시스
77 니두 기여
82 맷방석
86 누리달
89 직지의 발자취를 찾아
93 여름 예찬
97 빈방의 모놀로그
101 옹이
106 꽃보다 나무
109 거장들의 맞잡은 손
3부 가을
116 문패
120 인다호걸(人多豪傑) 청주
124 교감과 공감
128 피카소를 만나다
132 날마다 산스장
136 마두금 소리
140 세 살에게서 배우다
144 은회색 풍경화
148 습관을 붙박이 하다
152 무심천 가을역
155 최선과 적당의 갈림길에서
159 시적인 지명, 절경인 내 고향
164 어떤 혼수
4부 겨울
170 손 가라사대
174 남편을 다시 읽다
179 유예
182 저녁나절의 그림자
186 풀솜 할미
190 그래도 희망을
194 눈의 하소연
198 숫눈길
201 기발한 덕담
205 소이부답(笑而不答)
208 따뜻한 편지
212 청맹과니
216 이음동의어
221 이방주 | 사랑으로 여는 관계의 서사
저자
저자
이영희
충북 제천 출생
『?맥문학』 수필 등단(1998)
26회 동양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청풍문학회장, 충북수필문학회장 역임
충청북도교육청 방과후학교지원단장 역임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윤리위원
한국소설가협회, 충북수필문학회,
청주문인협회 회원, 충북소설가협회 사무국장
청주시 1인 1책 프로그램 강사
중부매일 아침 뜨락 필진
충북수필문학상, 직지소설문학상 외 다수 수상
저서
수필집 『칡꽃 향기』 『정비공』
장편소설 『비망록, 직지로 피어나다』
소설집 『메이저아르카나 13번』
『?맥문학』 수필 등단(1998)
26회 동양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청풍문학회장, 충북수필문학회장 역임
충청북도교육청 방과후학교지원단장 역임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윤리위원
한국소설가협회, 충북수필문학회,
청주문인협회 회원, 충북소설가협회 사무국장
청주시 1인 1책 프로그램 강사
중부매일 아침 뜨락 필진
충북수필문학상, 직지소설문학상 외 다수 수상
저서
수필집 『칡꽃 향기』 『정비공』
장편소설 『비망록, 직지로 피어나다』
소설집 『메이저아르카나 13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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