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동초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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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삼상사(三上思)
-나의 집필 공간
30여 년 전, 사촌 남동생이 대학에 입학하여 시작한 아르바이트가 책 세일즈였다. 그때 36권에 이르는 '세계문학 대전집'을 주문하여 들여놓았다. 거기에는 귀에 익은 대문호의 작품들이 줄을 서서 내가 읽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나 문고판으로 안면을 익힌 작품들이 있기는 했지만 두고두고 읽으면서 자식들에게 물려주면 좋은 선물이 될 것이라 여기며 흐뭇했다.
장정도 좋고 모처럼 큰돈 들여 구입한 책을 모셔둘 자리가 필요했다. 변변치 못한 글을 쓰면서 나만의 집필 공간을 원한다는 게 면구스러워 안방과 주방을 옮겨 다니며 글을 써 왔는데, 이참에 서재를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책에 둘러싸여 글을 읽고 쓰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부자가 된 듯 흡족했다.
그 후 몇 번의 이사를 하며 나의 집필 공간은 작은 방에서 가장 큰 방으로 확장되어 갔다. 서재와 연결된 베란다를 작은 쉼터로 만들어 호사를 부려보기도 했다.
책꽂이는 많은 부류의 책들로 채워져 갔다. 사서오경(四書五經)으로부터 현대수양전집(現代收養全集)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책이 나의 허기진 영혼을 달래주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책꽂이에서 제대로 숨도 못 쉬고 빼곡히 꽂혀 있는 책들. 글을 쓰려면 많이 읽고 사유하며 내 것으로 소화해야 하는데, 나의 시선을 받아 읽힌 책보다는 임금님의 손목 한 번 잡아보지 못하고 궁궐에 갇혀 사는 궁인의 신세 같은 책들이 더 많다. 그래도 그때그때 구미에 당겨 구입한 책은 미루지 않고 읽게 되는데, 한가할 때 벗하려고 미뤄두었던 고전(古典)들은 시력이 나빠지면서 장식품이 되어가니 책 안에 있는 현인군자(賢人君子)의 지혜를 고루 터득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수필을 쓰면서 S교수님의 연구실에 자주 가게 되었는데 테이블 위에 두서없이 쌓여 있는 책들이 눈에 거슬렸다. 한 번은 내가 정리를 해드리겠다고 했더니 건드리지도 못하게 하셨다. 책과 자료들이 뒤섞여 있지만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다 아신다고 했다. 이렇게 어수선한 집필실에서 명수필이 나온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었다.
이제 나의 서재 풍경도 교수님의 연구실을 닮아가고 있다. 여기저기 쌓여가는 책들이며 잡다한 물건들. 이곳이 집필 공간인지 쉼터인지 구분이 안 되면서 떠오르는 낱말이 있으니 삼상사( 三上思). 즉 마상(馬上), 측상(厠上), 침상(枕上)에서의 사유함이다. 수필과 사랑을 나눌 마음만 있다면, 자동차를 타고 갈 때나 측간에 앉아서나 침대에 누워서나 주제와 소재를 떠올리며 생각에 잠길 수 있고, 이따금 영풍문고와 종로애(愛)서(書) '삼봉서랑'에 들러 필요한 책을 골라보며 작품을 구상하기도 한다. 그렇게 기억의 창고 속에 그려 넣은 것과 메모한 것을 컴퓨터에 입력하여 초안을 잡고 퇴고를 거듭하여 작품을 마무리한다.
이렇게 천지 사방이 사유의 공간이고 집필 공간이 될 수 있으니, 영혼이 깃든 글은 잘 치장된 공간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집중과 열정, 끈기와 고뇌에 있다는 것을 '삼상사'에서 느끼곤 한다.
(2013. 「한국수필」 11월호)
나를 짓궂게 놀리는 운명
-분실물에 관한 에피소드
'겉에 걸친 옷만 바꿔 입어도 운명이 바뀐다.'라는 말은 소설이나 동화에서나 나오는 말일 뿐일까. 작가가 스토리 전개나 흥미 유발을 위해 지어낸 말이려니 하다가도 때깔 고운 거지가 밥도 먼저 얻어먹는 세상이고 보면 아주 현실성이 없는 말도 아닌 듯하다. 그래서 인간의 잠재의식 속에는 신분 위장이나 품격 유지를 위해 겉치장에 치중하는 습성이 숨겨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디선가 입은 옷에 따라 운명이 바뀐다는 말을 얻어들은 후, 부쩍 50년 전의 황망하고 기막힌 두 가지 분실 사건이 되살아나 잠잠해진 가슴에 파문이 인다.
하나
내가 결혼할 당시만 해도 여자들의 혼수 품목에는 네댓 벌의 한복이 들어 있었다. 나는 월급날이면 동대문 광장시장의 포목점을 돌아다니며 새색시의 꿈을 안고 한복감을 고르곤 했다.
그 당시 내 얼굴형과 어울리는 뒤통수 아래로 주먹만 한 똬리를 틀어 붙이는 고전스타일에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새색시 모습이 내가 꿈꿔온 롤모델이었다. 한복감을 새로 장만할 때마다 옷감의 질과 색상을 조합해 가며 쪽머리를 한 새색시의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을 그려보았다.
결혼 날짜를 잡아놓고 그동안 장만해 온 옷감을 바느질집에 맡겼다. 그리고 약속한 날짜에 기대를 안고 설레는 마음으로 맞춤옷을 찾으러 갔다. 한데 이게 웬일인가. 한복집 주인의 말인즉, 내가 옷감을 맡기고 나간 얼마 후 누군가 내가 맡긴 한복감을 도루 찾아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누가 내 뒤를 쫓아와 그런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인가. 한복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혼숫감만을 노리는 전문 털이범에게 내가 걸려든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섬뜩하고 허망한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누구인지 확인도 안 하고 물건을 내준 한복집 주인이 자신의 불찰을 인정하면서 자기 집에 있는 옷감으로 내 한복을 만들어 주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내 앞에 내민 옷감이 탐탁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다시 마음에 드는 옷감을 찾아 나설 시간적 여유도 없어서 한복집 주인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부모님 곁을 떠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결혼.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남의 옷을 빌려 입은 것처럼 어정쩡하게 한복을 입고 찍은 신혼여행지에서의 사진을 보니, 마치 영혼은 빠져나가고 껍데기만 두르고 앉아 있는 듯한 나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 허전하고 아쉬운 마음에 내가 장만한 옷감으로 한복을 지어 입은 모습을 상상해 보았지만, 사진 속의 나는 씁쓰름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둘
첫아이가 돌을 지내고 얼마 후 집안에 도둑이 들었다. 그때 우리 가족은 남편의 직장 관계로 부산에서 살고 있었다. 이사한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 그 유명한 자갈치 시장을 구경하고 싶어서 갔다가 돌아와 보니 친정아버지가 사업자금으로 내게 맡겨놓은 현금과 아이의 돌 반지와 팔찌, 그리고 나의 패물이 몽땅 없어졌는데 유독 결혼반지만 남아있었다. 결혼 전에 예비 신랑이 해외 출장에서 돌아오며 결혼 예물로 준비해 온 다이아몬드 반지로 세팅은 한국에서 했다.
그런데 경찰 조사 과정에서 그 반지는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사파이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제야 자세히 살펴보니 남편 될 사람이 처음 내게 보여줄 때 푸른색이 섞여 빛나던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무채색의 유리알 같은 사파이어가 내 방 장롱 안에 숨어서 반지 알이 바뀐 것도 모르고 사는 나를 짓궂게 놀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넌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라고…. 지금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보석상에서 다이아몬드라는 것을 확인한 후 세팅해 주겠다고 했고, 나도 그 집의 간판만 믿고 세팅을 맡겼는데 반지 알까지 맡긴 것이 불찰이었다. 그때는 다이아몬드라는 보석보다도 그것을 선물해 준 사람이 더 좋았던 때라 보석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반지를 세팅할 때는 눈을 똑바로 뜨고 옆에서 반지 알을 박는 것을 직접 지켜보아야 한다는 것도 모르던 어리석고 순진한 때였다. 보석상은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서울의 한복판 그 자리에서 여전히 같은 이름의 간판을 달고 버젓이 영업하고 있다.
이렇게 두 번씩이나 눈뜨고 코를 베이고 말았다. 그것도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며 축복 속에 주고받아야 할 결혼 예물이 두 번씩이나 바뀌고 보니 우연치고는 너무 얄궂은 일이어서, 이것도 운명인가 하는 회의에 젖게 되었다. 마치 거지와 왕자의 뒤바뀐 운명처럼, 나는 졸지에 꿈을 잃고 거리를 헤매는 거지 왕자가 된 심정이었다.
내 결혼의 꿈이 담긴 한복감으로 옷을 만들어 나 대신 입고 다니는 사람은 누구일까? 누가 내 남편의 사랑이 담긴 다이아몬드를 차지했을까? 그들은 행복할까, 불행할까? 그간 살아오며 안타깝고 괴로운 일들을 겪을 때마다 내 인생에는 없어야 할 일들이 일어나는 것만 같아 내 인생은 도둑맞고 남의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결혼 혼수품의 분실은 내게 깊은 상처를 남겨주었고 그 상처의 흔적은 한동안 나를 혼란케 했다.
어쩌면 잃어버린 물건들은 애당초 나와는 인연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들로 액땜하여 힘든 일들도 잘 견뎌냈고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을 바꿔보니 '돌고 도는 인생'이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행복과 불행도 돌고 도는 것이 아닌가 싶다. 화(禍)가 복(福)이 되고 복이 화가 돼서 돌아올 수도 있으니,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남의 것에 눈독 들이는 잔망스러운 인간이 되지는 말아야겠다.
어쨌거나 그간 나는 어떤 형태로든 남의 인생을 도둑질하지는 않았는지, 지난날을 되짚어 본다.
(『그린에세이』 2018. 3~4월호)
〈문학이 주는 위로〉
'다른 직업을 택했다면 지금의 나는…'이라는 제목의 원고 청탁서를 뒤적여 본다. 다른 직업을 택하여 지금의 내가 이렇다 하고 내놓을 정도가 되었다면 아마 그 직업은 스무 살 즈음부터 뿌리내린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은 나이와 상관없이 적성에 맞지 않으면 서슴없이 자리를 옮기는 다변화 시대이지만, 60년대의 젊은이들은 처음 택한 직업으로 정년을 맞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나 역시 학창 시절에는 문학이나 연극, 춤사위에 관심이 있었고 그 방면의 교내 활동에 적극적이었지만 설사 재능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키워줄 가정적 여건과 인식의 부족, 꿈을 향해 나아갈 사회적 통로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봄날의 몽환처럼 잠시 '춤꾼'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어본 적이 있다. 그러나 춤이 예술로서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천대받던 시대였다. 큰오빠는 춤꾼이 되겠다는 나에게 눈총을 주어 주저앉혔지만, 최은희 주연의 영화 〈검사와 여선생〉을 보고 난 후 여검사가 되겠다고 천방지축 나대는 나에게 작은오빠는 자기의 고려대학 법학과 뱃지를 내 가슴에 달아주며 기를 살려 주었다.
스무 살 무렵, 가정 형편이 좋거나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세 친구가 의상디자이너를 꿈꾸며 일본으로 유학 떠나는 것을 보며 부러워했다. 1년 후 그 친구들이 베레모를 쓰고 한국에 돌아왔다. 마중 나간 김포 공항에서 비행기 트랩을 내리는 친구들의 세련된 모습은 마치 전쟁을 겪은 후 안정을 찾아가는 이 나라에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갈 신여성들인 것 같아 경이롭기까지 했다. 베레모는 유럽의 가난한 농민들과 프랑스의 양치기가 쓰던 평범한 벨트 모자가 변형되어 유행의 첨단을 걷는 멋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 친구들은 전공을 살려 각자 제 갈 길로 뻗어나갔고, 문학의 밤과 음악 감상실을 드나들며 우울한 영혼을 달래던 나는 서울시 말단 교육공무원이 되었다. 나의 방황은 직장에 충실히 하는 것으로 서서히 날개를 접었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면 그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는 보석처럼 내 가슴에 빛이 될 것이라고 믿고 가정에 안주하고 말았다.
이따금 '결혼 지상주의'라는 시대적 사회제도에서 벗어나 좀 더 적극적으로 내 삶을 타개해 나갔다면 지금의 나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변신해 있지 않았을까 하는 미몽에 젖을 때도 있었다.
내가 또 다른 직업을 선망하지 않은 것은 내 삶이 만족스러워서가 아니었다. 나는 환란과 역경 속에서 글쓰기를 시작했고 그 쓰는 행위에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기 때문에 이 작업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지 않으면 그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라는 러시아 소설가 에이모 토울스의 삶의 신조처럼, 나에게 있어 글을 쓴다는 것은 내 환경을 극복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제대로 글 줄이 풀리지 않아 답답할 때, 예기치 않은 삶의 여정에서 괴로움이 찾아들어 가슴에 쌓인 울적함을 토해내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는 마치 내가 춤꾼이 된 것처럼 음악의 볼륨을 올려놓고 리듬에 맞춰 마음 깊은 골에 흐르고 있는 아픔까지 온몸으로 풀어내 본다. 춤동작을 혹독하게 연습하거나 기술을 연마하지는 않았지만, 노래 가사에 얽힌 사연과 선율을 따라가노라면 신들린 영혼이 내 몸의 세포들을 자극해 잠시나마 무아경에 빠져들 때도 있지 않던가.
축구 경기 중 결정적인 순간에 한 골을 넣었을 때 선수와 관중이 내뿜는 폭발적 함성을 들으며 그 순간의 피돌기가 우리를 살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는 음악이나 춤에서 위로를 얻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
우리는 이렇게 누군가를 위로하고 무언가에 위로받으며 삶을 영위해 나간다. 텔레비전에 비친 무용수들의 일그러진 발 모양과 축구선수의 절묘한 발놀림은 피나는 노력의 결과이기에 나에게도 그런 끈기와 기교가 있을지 의구심이 들지만, 그래도 굳이 다른 길을 갔다면 '춤꾼'이 되었을 것 같다. 문학이 마음속의 밑그림을 서서히 녹여내는 정적인 작업이어선지, 춤과 어우러진 음악이나 스포츠처럼 단번에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주는 폭발력은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문학이 주는 위로는 무엇일까. 문학은 어떤 정점을 향해 질주하고 경쟁하며 피나는 노력을 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문학은 자연적인 일상의 연속으로, 삶의 경건함과 지진함이 한데 어우러진 경험이 추억이 되고 그것을 기억에서 끌어내어 재생시키는 작업이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상상과 창조가 결합된 복합적 요소들로 구성된다. 독자는 작가의 가슴에 내재되어 있는 실수와 절망, 방황과 고뇌를 읽고 진정한 삶의 세계로 나가는 활력을 얻게 된다. 이렇게 작가의 자화상에서 은근히 우러나는 삶의 변주곡들이 독자의 마음에 피딱지처럼 달라붙어 있다가 서서히 용해될 때 문학이 주는 위로가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스무 살 즈음에 뿌리내린 문학의 나무 아래에서 두 번째 인생을 살아온 나. 이제 수필가라는 이름으로 36년을 살아왔다. 나는 춤과 스포츠처럼 단숨에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주는 폭발력에 매력을 느끼는 편인데, 한편 나의 뇌 조직 어딘가에 숨어있는 문학의 DNA가 차분히 사유하며 글을 쓸 수 있게 한다는 것이 신기하고 고맙다.
그렇다고 이렇다 하게 내세울 만한 역작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글을 쓸 때 가장 행복하니 '수필가'라는 직업은 하늘이 내게 내려준 축복이 아닌가 싶다.
(『그린에세이』 2021.1~2월호 권두에세이)
〈인동초 사랑〉
내가 남편 될 사람에게서 받은 첫 고백은 "사랑한다"라는 말이 아니라 "나에게는 어머니가 두 분 계시다"라는 말이었다. 그는 작은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친정아버지는 나를 망연자실 바라보실 뿐, 사랑에 눈먼 딸을 제어할 아무런 힘도 없어 보였다. 나는 아버지 앞에서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진다"라는 말을 겁도 없이 내뱉었다. 책임이 얼마나 무겁고 중한 것인지도 모르면서…. 나는 그의 사랑에 대해 확신이 있었고, 그 어떤 사회적 편견도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사회적인 지위가 높고 권위 의식이 강한 집안일수록 서출(庶出)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조선 시대에 머물고 있음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 집안의 일원이 되고자 했던 남편의 끈질긴 종자(種子) 의식으로 내 생은 슬프게 물들어 갔다.
결혼을 앞두고 시어머니 되실 분이 나를 시댁의 선산에 데리고 갔다. 광릉의 수려한 경관에 둘러싸인 선산에는 윗대 조의 묘소가 차례대로 모셔져 있었고, 어느 때 무슨 벼슬을 했다는 비문에서 명문가의 위세가 엿보였다. 선산을 둘러보고 시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묻히게 될 가묘 앞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산지기가 달려오더니 "지금 큰댁 어머니가 선산에 오르고 계시니 빨리 몸을 피하세요."라는 말에 반대편 능선을 타고 도망치듯 내려왔던 일은 큰 충격이었다.
이로 인해 '사랑은 눈부심이요, 아름다운 슬픔'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사랑론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어쩌면 사랑은 연민에서 싹트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해 가고 있었다. 그의 호탕한 웃음 뒤에 감춰진 눈물과 가슴속에서 들끓는 분노와 좌절, 방황에 연민을 느끼며, 아버지 앞에서 내뱉은 '내 인생을 책임'지기 위해 자신과 외로운 싸움을 시작해야 했다.
남편은 매사 열정적이어서 일도 사랑도 끝을 보고야 마는 조금은 무모한 사람이다. 어떤 일이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낙천적인 기질이어서, 계산적인 치밀함보다 남을 자신의 마음처럼 믿어 다른 사람의 무거운 짐까지 지고 돌아올 때가 많았다. 그가 일과 사랑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태생적 외로움으로 인한 사람에 대한 그리운 정(情)의 발로는 아니었을까.
나는 그의 가슴에 일고 있는 바람의 정체를 뒤좇으며 그의 충실한 동반자가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나의 마음을 쉽게 헤아려 주지 않았다. 나는 때때로 그의 어머니를 향한 애절함에 가려지고 자칫 그들의 희생양이 되곤 했다. 내 입에서 시어머니와 시누이들에 대한 '시' 자만 나와도 남편은 '안개 피우지 말라'며 내 입을 봉해 버렸다. 시집 식구들은 나를 마치 그들의 사랑으로 결집한 울 안에 침입한 이방인 대하듯 했고, 시어머니와의 갈등으로 오랜 세월을 아픔 속에서 살아야 했다.
남편은 나와 시어머니 갈등 사이에서 숨통을 트이려는 방편으로 외도를 택했다지만, 그의 외도는 나를 깊은 절망과 슬픔의 나락으로 끌어내렸다. 나는 남편이 오랜 기간 숨겨둔 여자를 찾아냈고, 그녀의 방에 놓인 분홍색 시트가 덮여 있는 더블 침대를 보면서 아찔한 현기증과 함께 온몸의 기(氣)가 모두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집에 돌아와 처음으로 내 방에도 더블 침대를 들여놓았다. 그것은 누구도 감히 내 가정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나 자신에 대한 결의요, 남편에 대한 시위였다.
한차례 심한 세찬 풍랑을 겪은 후 남편의 방황은 잠잠해졌고, 그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의 일에 대한 집착은 본가에 인정받고 싶은 일종의 자기 최면 같은 것이었다. 그들과 같은 대열에 서고 싶은 몸부림으로 그는 늘 고달파했지만, 지나친 과욕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곤 했다.
여전히 그에 대한 연민이 계속되었던 것은 그의 내면에 인각 되어 있는 아픔과 분노가 그대로 내게 전이된 까닭이기도 하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그의 반복되는 실수와 실패를 용인하는 꼴이 되어 나에게 치명타가 되었다.
나는 남편 컨트롤에 실패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험한 풍파를 용케 헤쳐 나온 것은 아픔과 갈등 속에서 싹튼 남편에 대한 곡진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지난 상처를 훌훌 털고 이젠 나와 함께 행복의 자리를 튼실하게 지키고 있으니 폭풍우 속을 지혜롭게 헤쳐 온 보람이라고 하겠다. 사랑에 등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방법이 달라 힘이 들었을 뿐이었다.
남편의 배신을 겪으면서도 자신을 죽여야 살아나는 연민은 겨울의 세찬 비바람을 이겨내고 살아난 인동초(忍冬草) 같은 사랑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연민 속에 세월은 흘러 이제 나도 육십 줄에 들어섰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을 다스리는 담담함도 터득하게 되었다.
내 생애 63페이지는 무채색이다. 사랑도 미움도 빠져나간 무채색의 텅 빈 곳에, 이전에 간간이 스치고 간 외로움과는 또 다른 낯선 외로움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 가을비의 우수(憂愁) 같은 외로움이 또다시 몸 안에 번져가고 있었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 2006. 11월호)
〈정신이 아프다〉
≪나는 천국을 보았다≫라는 제목의 책은 듀크대학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버지니아 대학교에서 뇌기능을 연구한 세계적인 뇌과학 연구자 이븐 알렉산더가 7일 만에 뇌사상태에서 살아와 죽음 이후의 세상을 증명한 내용을 수록한 글이다. 하버드 신경외과 의사로서 뇌사상태에서 겪은 천국 이야기는 삶과 죽음, 몸과 정신의 과학을 새롭게 써 나갔다. 가장 물질적이고 과학적인 세계관으로 살던 최고의 신경외과 의사가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를 과학적 통찰로 조명한 임사체험의 보고서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는 2008년 11월 10일 54세의 나이에 대장균성 뇌막염에 걸려 있었는데, 그것을 아는 사람은 없었고 그 자신도 모르고 있었다. 성인에게는 천문학적 확률로, 성인이 자연발생적으로 걸리는 비율은 천만 명 중에 한 명 이하라는 드문 질병이었기 때문이다. 환자는 대개 신생아들이며 태어난 지 3개월만 지나도 이 병에 걸리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한다. 박테리아성 뇌막염인 경우, 박테리아는 먼저 뇌의 바깥 부분인 대뇌피질을 공격한다고 한다. 뇌의 겉면이 멈춰버려 혼수상태, 뇌사상태가 되고 뇌가 작동하지 않으므로 이븐 알렉산더는 임사체험을 하게 된다. 이븐 알렉산더의 ≪나는 천국을 보았다≫에서 그가 앓고 있는 대장균성 뇌막염을 토대로 치밀하고 논리적인 의학적 탐구와 통찰, 인간은 육체가 아닌 영적인 존재임을 확인시켜 준다. 뇌 과학자인 이븐 알렉산더의 현대과학과 영성의 세계를 통해,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게 해 준다.
나는 두 번의 무의식 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난 적이 있다. 죽음의 문턱에까지 갔다가 왔기에 죽음은 무엇이고 삶은 무엇일까? 두 번 모두 무의식 상태로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사를 시행했지만, 신체적인 결함을 찾지 못한 것으로 보아 혼수상태의 원인을 신의 조화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신께서 나를 두 번씩 삶의 현장으로 되돌려 보낸 까닭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으로 고심하던 중 이븐 알렉산더의 ≪천국 이야기≫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러나 "영적인 세계에 대해 너무 많이 알게 된다면 지상의 삶을 살아가는 일이 지금도 어려운데 더욱더 어려워지기만 할 것이다."라는 그의 조언대로 영적인 세계의 장엄함과 방대함에 대해 과도하게 의식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신이 내게 부여한 영적인 체험과 연계된 지상에서 엉킨 삶을 풀어나가려 한다.
60여 년 전, 나의 외할머니는 90세 때 혼수상태에 빠진 적이 있었다. 집안에서는 장례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3일 후, 긴 한숨을 내쉬며 "아휴! 잘 잤다."라며 눈을 뜨셨고, 목에 방울을 단 강아지를 따라가다가 강아지가 냇물에 빠지는 바람에 더 이상 따라가지 못하고 되돌아왔다는 꿈 이야기를 하셨다. 할머니는 그 후 2년을 더 사시다가 돌아가셨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할머니는 가슴에 풀지 못 한 한의 응어리가 있어서 이 세상을 떠나지 못하고 머뭇거렸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되었다. 할머니는 동구 밖에 나가 한국전쟁 때 북으로 끌려간 세 아들을 기다리며 긴 세월을 그리움과 한숨으로 채우셨다.
할머니가 혼수상태에서 겪은 꿈 이야기는 우물 안 개구리 소리에 불과한 전래 동화 속의 이야기 같지만, 한편으로는 현대의학과 영성 세계에 대한 탐구가 활발한 시대에 사는 나의 체험과 같은 맥락으로 느껴졌다. 어쩌면 내가 혼수상태에서 두 번씩 다시 살아난 것은, 아들이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 친구로부터 당한 폭력(오른쪽 손목뼈와 앞니가 부러짐 「여성동아」 1987. 8월호에 발표한 나의 수필 〈맞고 돌아온 아이〉에 기재됨)과 이어서 군대에서 받은 폭력과 따돌림의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아들의 잃어버린 30년 세월을 가슴에 안고 애통해하는 나를 가엾게 여기신 신의 은총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간에 아들과 내가 겪은 고통과 슬픔과 외로움은 필설로 나열할 수 없을 정도의 상처로 아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가족 모두가 질곡 속에서 헤매고 있는 30여 년의 세월이었지만, 불행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아들은 장기간 입원한 병원의 조무사 두 명에게 두 팔을 묶인 채 구타당해 갈비뼈에 금이 간 일도 있었다. 몇 해가 지났지만 아들은 지금도 그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의 온몸의 세포에 얼간이 기질이 녹아있는 것일까.
모든 원인은 아들의 부족함에서 비롯된 것이니 무조건 참고 용서하라는 나의 가르침이 아들을 더욱 왜소하게 만든 것은 아니었는지, 의문과 후회가 들기도 한다.
이 세상 어머니들 가슴에 박힌 가장 아픈 못은 자식에 대한 여한일 것이다.
'하늘에 계신 그 분은 우리의 인생을 마모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듬고 계시다.'고 한다. 아들은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그 나라의 지질(地質)을 연구하는 지질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연이은 사고로 꿈은 사라지고, 병 치료를 위한 사설 연구소와 병원을 찾아다니는 순례자가 되어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제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 잃어버린 웃음을 찾고 싶지만 워낙 상처가 깊어 하늘에 계신 그분께 아들의 남은 인생을 아름답게 다듬어 주시기를 믿고 염원할 뿐이다.
우리의 육체는 죽어도 영혼은 살아있다는 종교적인 차원의 관점에 공감한다. 그리운 사람은 천국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이기에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이다.
나에겐 이븐 알렉산더가 본 천국을 믿고 싶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맑고 순수한 영혼으로 살아온 아들은 분명히 천국에 갈 것이라고 믿는다. 한 번 뿐인 인생을 자기의 의지대로 살아보지 못한 아들이 이 세상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천국에 가서라도 펼쳐보기를 염원한다. 나는 아들을 천국에서 다시 만나 웃으면서 즐겁게 꽃동산을 거닐고 싶다.
내가 첫 번째 무의식 상태로 들어간 것은 2005년 초,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있었던 문학세미나에 참석한 때였다. 호주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뉴질랜드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하여 잠이 들었는데, 목적지에 도착하기 30분 전부터 일행이 흔들어 깨워도 꼼짝도 하지 않고 잠에서 깨어나지 않아 도착 후 곧바로 뉴질랜드 병원의 응급실로 이송되었다. 각종 검사를 했지만 별다른 몸의 이상은 없고 10여 시간 만에 정신이 들었는데, 특이한 점은 머릿속이 텅 빈 것처럼 멍했고 혼자서는 일어서지 못할 정도로 다리에 힘이 빠져 있었다. 나와 알렉산더와 다른 점은 "그는 구조대원들이 응급실로 옮겼을 때 여전히 간헐적으로 신음소리를 내고 팔다리를 마구 흔들며 격렬하게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라고 했는데, 나는 전혀 움직이지도 않고 신음소리도 없었다고 한다. 움직이지도 않고 너무 조용했던 것이 주위 사람들을 더욱 긴장시켰던 것 같다. 내 짧은 식견으로 생각해 볼 때, 그는 대장균성 뇌막염으로 박테리아의 공격을 받아 뇌가 어떤 심각한 쇼크를 받아서 대발작을 일으킨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 당시 여러 가지 복잡한 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지친 심신을 달래고자 조용한 곳을 찾아 떠나고 싶었다. 해외 세미나가 목적이 아니라 그저 먼 곳으로 떠나고 싶은 현실 도피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별다른 질병이 없는 나의 몸은 뇌가 시키는 대로 요동치지 않고 조용히 잠들었던 것 같다. 전기 콘센트에 여러 개의 플러그를 꽂으면 과부하가 일어나듯, 내 머릿속 회로도 잠시 가동을 멈추고 정지 상태가 되었던 게 아니었을까?
내가 첫 번째 혼수상태에서 꾼 꿈은, 검은 의상을 입은 노란 눈의 여자(혹자는 이들을 저승사자로 지칭함) 두 명이 양쪽에서 내 어깨를 꼬집고 짓누르며 열 손가락 끝의 손톱을 뾰족하고 날카로운 나무로 찌르며 꼼짝 못 하게 했다. 손톱을 찌를 때는 마치 찢어진 양은그릇이 부딪치듯 날카로운 소리가 나서 소름이 끼쳤다. 나는 그들에게서 빠져나오려고 화장실 좀 보내달라고 사정도 해봤다. 약이 오르기도 하고 무서워서 '엄마'를 부르며 울었는데 그들은 여전히 나를 제압하며 풀어주지 않았다. 꿈속에서도 살아나려고 온 힘을 다해 몸부림쳤다.
내가 의식이 돌아와 제일 먼저 간 곳이 화장실이었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 걷지 못하고 양옆으로 부축을 받아야만 했다. 사람이 죽을 때는 임종 전까지 살아있는 것이 귀라는데, 제일 먼저 빠져나가는 것은 다리 힘인가 보다. 그러고 보면 몇 년간 혼수상태에 있었던 사람이 깨어난 일도 있다는데, 누군가 환자의 귀에 대고 사랑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내가 곁에서 나를 지키던 사람들에게 혼수상태에서 겪은 일들을 이야기했더니 실제로 뉴질랜드 병원의 간호사 두 명이 내가 깨어나도록 어깨를 꼬집고 누르며 몸에 충격을 가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마침 동료 문인 중에 동양 의술인 수지 침술사가 있어서 내 열 손가락 끝에 침을 놓아 피를 뽑았다고 한다. 무의식 상태에서 내가 지른 소리는 밖으로 전달되지 않았지만, 실제 현실에서 벌어졌던 상황이 내게 전달되었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죽음에 끌려가지 않고 삶의 세계로 회귀하려고 발버둥 쳤던 것은, 신의 보호 아래 나의 의식은 삶이 죽음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작동한 것은 아니었을까. 10여 시간 동안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겪은 짧은 체험이었지만 천국의 아름답고 편안한 세계가 아니라 지옥에 다녀온 것만 같아 기분 좋은 꿈은 아닌 것 같다.
내가 두 번째로 혼수상태에 빠졌던 것은 2020년 8월이었다. 동네의 앞산을 산책하다가 잠시 벤치에 앉아 쉬고 있었는데, 그대로 의식을 잃고 말았다. 손발이 차가워진 나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겨졌고, 중환자실에서 4박 5일 만에 퇴원했다. MRI 검사 등에서 특이하다고 할 만한 증세는 없었지만 나의 뇌가 어떤 심각한 쇼크를 받았다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나는 두 번 모두 심신이 지친 상태이기는 하지만 몸보다는 정신이 아파 혼수상태에 빠지곤 했다. 우리는 흔히 몸과 마음이 아프다는 표현으로 괴로움을 토로하지만 정신이 아프다는 것은 마음이 아픈 것 이상의 심각한 단계를 말한다. 나의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극한 상황에 이르렀을 때 인간 존재의 의식마저 잃게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두 번째 혼수상태에서 꾼 꿈은, 밝은 햇빛을 가린 어느 높은 양철지붕 아래의 계곡에서 대여섯 살 먹은 아이들 네댓 명이 물에 발을 담그고 물장구치며 놀고 있는 모습들이 보이는데, 지금은 중년이 된 조카도 어린 소년으로 돌아가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었다. 한쪽 물가에 있는 바위에는 얼마 전 나와 의견 다툼으로 멀어진 여동생이 물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이븐 알렉산더에게는 강렬한 햇빛과 꽃들이 만발한 천국이 보였다는데, 왜 내게는 밝고 맑은 햇빛을 가린 양철지붕 아래에 갇혀, 위에서 내려오는 물에 발 담그며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던 걸까? 그리고 왜 내게 서운함을 털어놓고 떠난 동생이 보였던 걸까.
어떤 불편한 환경에서도 내가 가장 사랑했던 동생인데, 나는 아무리 진정을 다 해도 자기주장만 앞세우는 동생이 야속하여 가슴을 앓고 있었다. 그날도 동생과 같이 걷던 산길을 걸으면서 행여나 동생이 와 있지는 않을까 하는 기다림과 그리움으로 동생과 같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벤치에 앉아 잠시 쉬는 동안에 정신을 잃었다. 혼수상태에서 꾼 또 다른 꿈은, 내가 환자복을 입고 침대에 누워있는데 병실 반대편 창문에서 남편과 아들이 창문을 두드리며 나를 면회시켜 달라며 사정하는 애절한 모습이 보였다. 나도 간호사에게 아들을 들여보내 달라고 애원했지만 아들과 나는 만나지 못하고 서로 자기한테 오라고 손짓만 하는 정경이 마치 현실처럼 또렷이 느껴졌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두 번의 혼수상태에서 겪은 현상을 꿈에서 꿈을 꾸었다고 말해 왔다. 이것이 임사체험이라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최고의 신경외과 전문의인 이븐 알렉산더는 평소의 임사체험이 진짜라고 느껴지지만 사실 극도의 스트레스에서 뇌가 만들어내는 환상에 불과하다고 믿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7일간의 뇌사상태에서 죽음 너머의 세계를 체험하고 다시 살아나면서 인간은 뇌와 상관없이 의식을 갖고 있으며 사실상 의식이야말로 모든 존재의 근간임을 보여 주고 있다고 술회한다. 그렇다면 혼수상태에서 체험한 내 꿈의 세계는 극도의 스트레스에서 뇌가 만들어낸 환상이 아니라 나의 존재 의식에서 불거져 나온 사후세계의 일면이 아니었을까.
나는 알렉산더처럼 밝고 아름다운 천국은 보지 못했다. 혼수상태에서도 가슴에 옹이진 아픔을 풀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철새들은 제 갈길을 찾아 떼 지어 날아가는데, 나는 숲속에 홀로 앉아 우는 새 한 마리처럼 외로움과 아들이 살아갈 장래에 대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이븐 알렉산더는 뇌사상태에 있을 때, 강한 광선을 받고 어린 아가씨와 같이 손을 잡고 한참을 걸어가다가 어느 산 밑에서 나비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 거기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나고 어렸을 때 먼저 간 누나를 만난다. "말썽 많았고 영창 갔던 아저씨는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니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다. 아마 천당에는 없는 것 같다."라고 아버지는 대답한다. 이것은 분명히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 대목이 아닌가 싶다. 같은 혼수상태라 해도 사람에 따라 다른 영성 세계를 체험하는 것은 그 사람이 처한 환경과 살아온 삶의 흔적이 다르기 때문은 아닐까. 뼈와 살로 이루어진 육체는 죽어도 영혼은 살아있다는 정설로 보아 사후세계는 현세의 연장이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2022. 「창작수필」 여름호)
*출처: 이븐 알렉산더의 ≪나는 천국을 보았다≫
해설
인동(忍冬)을 넘어 향기로 다시 피어나는 삶의 서사
-한동희 수필집 ≪인동초 사랑≫
최원현 수필가·문학평론가
1. 들어가며
한동희 수필가는 1986년 계간 『한국수필』 제43호에 〈아버지의 목소리〉로 천료된 후 한결같이 수필가로 펜을 놓지 않았다. 그만의 독특한 수필 사랑은 짝사랑처럼 조용하나 진실하게 이어져 왔다. 그래선지 한동희의 수필은 늘 한 계절을 건너온 사람의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 성급하지 않고, 요란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삶을 쉽게 단정하지 않는다. 이번 『인동초 사랑』도 그러한 그의 문학적 태도가 한 권의 책으로 응결된 결과물이다. 이 수필집은 '잘 살아온 이야기'라기보다 버텨온 시간들이 어떻게 문장이 되었는가에 대한 조용한 증언에 가깝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인동초'는 겨울을 견디며 피는 꽃이다. 추위를 이겨낸 뒤에야 향을 내는 존재. 이 상징은 곧 한동희 문학의 정체성을 말해준다. 그의 글에는 늘 시련 이후의 언어, 상처를 통과한 사유가 자리한다. 사랑조차 감정의 고조가 아니라 인내와 성찰, 그리고 관계의 무게 속에서 천천히 익어간다. 그래서 이 책의 '사랑'은 달콤하기보다 단단하고, 감상적이기보다 윤리적이다.
≪인동초 사랑≫은 네 개의 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문학이 주는 위로〉에서는 문학이 삶을 구원하는 방식에 대해 말한다. 문학은 도피가 아니라 견딤의 다른 이름이며, 자기 연민이 아니라 자기 응시의 결과라는 점을 그는 자신의 체험을 통해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특히 글쓰기의 동기와 한계, 그리고 다시 쓰게 되는 이유를 성찰하는 대목들은 오랜 시간 문학과 동행해 온 작가만이 도달할 수 있는 깊이를 지닌다.
2부 〈다시 시작하자〉는 이 수필집의 정서적 중심부라 할 만하다. 여기서 한동희는 삶의 불운과 상실, 관계의 균열 앞에서 주저앉기보다 다시 몸을 일으켜 세운다. 그에게 '다시'는 선언이 아니라 결심이며, 외침이 아니라 다짐이다. 짓궂은 운명 앞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는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조용하지만 분명한 용기를 건넨다.
3부 〈행복 만들기〉에서는 삶의 반경이 한층 넓어진다. 개인의 체험을 넘어 타인의 삶과 시대의 풍경이 함께 호흡한다. 텃밭 이야기나 스승과 선배에 대한 기록, 공동체에 대한 성찰은 '행복'이 결코 개인적 성취에 머물지 않음을 일깨운다. 이 부분에서 한동희의 수필은 회고를 넘어 기록의 성격을 띠며, 한 시대를 살아온 여성 문인의 삶의 궤적을 또렷이 남긴다.
4부 〈주막에 앉아〉는 이 책의 가장 내밀한 공간이다. 여기서 작가는 숨기고 싶었을 마음, 말하지 못했던 감정들까지 문장 위에 올려놓는다. 그러나 그 고백은 결코 폭로로 흐르지 않는다. 수필이 지켜야 할 품격과 거리, 그 미묘한 경계를 끝내 놓치지 않는다. 이는 오랜 수련을 거친 작가만이 가질 수 있는 미덕이다.
2. 문학, 환란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구원의 밧줄
한동희 수필가의 글은 지극히 정직하다. 수필을 '고백의 문학'이라 정의하면서도 자칫 빠지기 쉬운 '폭로'의 함정을 경계하며, 자신의 아픔을 해학과 격조로 승화시키는 절제미를 보여준다. 작가는 60년대라는 보수적인 시대 상황 속에서 춤꾼이나 검사를 꿈꾸던 재기발랄한 소녀였으나, 현실의 제약 속에 교육공무원의 길을 택하고 가정에 안주하게 된다. 그러나 삶은 평탄치 않았다. 남편의 사업 실패와 예기치 못한 가정적 시련은 작가를 어둡고 습한 방으로 밀어 넣었다.
이때 그를 다시 세상 밖으로 끌어올린 것이 바로 '문학'이었다. 1부 〈문학이 주는 위로〉에서 고백하듯, 작가에게 글쓰기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환경을 지배하지 않으면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생존 본능이자, 내면의 응어리를 풀어내는 '정적인 춤'이었다. 4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수필가로 살며 그는 자신의 상처를 활자로 옮겨 독자와 나누었고, 그 과정에서 타인의 위로보다 더 깊은 '자기 구원'의 시간을 가졌다.
한동희의 문장은 과장되지 않고, 그의 감정은 독자에게 강요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자신의 삶을 성실하게 통과해 온 언어를 내어놓는다. 그 언어는 독자의 삶 속으로 조용히 스며들어 각자의 기억과 상처를 건드린다. 이 점에서 ≪인동초 사랑≫은 읽히는 책이기보다 곁에 두고 오래 함께할 책에 가깝다.
3. 서해 바다와 염전, 그리움의 원형질
작가의 문학적 근간은 서해 바닷가와 염전, 그리고 여름이라는 세 가지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미소와 염전을 운영하시던 아버지, 지평선을 붉게 물들이던 석양, 소금꽃을 피우던 뙤약볕의 기억은 작가에게 무한한 상상의 원천이 되었다.
특히 소금은 작가의 인생을 상징하는 메타포와 같다. 바닷물이 뜨거운 태양 아래서 몸을 깎고 졸여내어 마침내 하얀 결정체가 되듯, 작가의 수필 역시 삶의 쓴맛과 짠맛을 온몸으로 받아낸 뒤 얻은 영혼의 결정체다. 비가 오면 소금 농사를 망칠까 전전긍긍하던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인생의 불가항력적인 운명을 배웠고, 거친 파도를 넘는 '파도타기'의 지혜를 터득한 작가는 이제 어떤 풍랑 앞에서도 "오~ 예!"를 외칠 수 있는 슬기로운 항해사가 되었다.
4. 인동초 사랑, 연민으로 완성된 관계의 미학
표제작인 〈인동초 사랑〉은 이 수필집의 정서적 클라이맥스다. 작가는 남편의 태생적 아픔과 외도, 고부갈등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치명적인 상처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그러나 그 시선은 원망에 머물지 않는다. 작가는 남편의 방황 이면에 숨겨진 '서출(庶出)'이라는 태생적 그늘과 인정받고 싶어 했던 고독한 투쟁을 읽어낸다.
그것은 '연민'이다. 남편을 한 남자로 보기 이전에 상처받은 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그 깊은 긍휼의 마음이 바로 겨울의 모진 추위를 견디고 꽃을 피우는 '인동초'의 생명력과 닮아있다. 배신감을 견디며 안방에 더블 침대를 들여놓았던 것은 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그의 결연한 의지였다.
5. 잊히지 않는 존재를 향한 여정
작가는 100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의 글을 읽으며 자신의 초상화를 되돌아본다. "초상화는 평생을 걸려 그려도 완성될 수 없다."던 브라질에서 만난 목사의 말을 빌려 작가는 여전히 변주하는 자신의 삶을 기록한다. 이제 팔십의 나이, 육체의 쇠락과 '잊혀짐'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하는 시기임에도 작가는 멈추지 않는다.
그는 영화 〈내가 죽기 전에 가장 듣고 싶은 말〉을 언급하며, 단순히 사랑한다는 말보다 "당신은 잊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한다. 이 수필집 ≪인동초 사랑≫은 바로 그 '잊히지 않는 존재'가 되기 위한 작가의 고귀한 분투기이다. 브라질과 독일의 동포들을 만나 그들의 이민사를 기록하고, 후배 문인들에게 따뜻한 격려를 건네는 작가의 행보는 이미 수많은 독자의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는 무늬를 새기고 있다.
-나의 집필 공간
30여 년 전, 사촌 남동생이 대학에 입학하여 시작한 아르바이트가 책 세일즈였다. 그때 36권에 이르는 '세계문학 대전집'을 주문하여 들여놓았다. 거기에는 귀에 익은 대문호의 작품들이 줄을 서서 내가 읽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나 문고판으로 안면을 익힌 작품들이 있기는 했지만 두고두고 읽으면서 자식들에게 물려주면 좋은 선물이 될 것이라 여기며 흐뭇했다.
장정도 좋고 모처럼 큰돈 들여 구입한 책을 모셔둘 자리가 필요했다. 변변치 못한 글을 쓰면서 나만의 집필 공간을 원한다는 게 면구스러워 안방과 주방을 옮겨 다니며 글을 써 왔는데, 이참에 서재를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책에 둘러싸여 글을 읽고 쓰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부자가 된 듯 흡족했다.
그 후 몇 번의 이사를 하며 나의 집필 공간은 작은 방에서 가장 큰 방으로 확장되어 갔다. 서재와 연결된 베란다를 작은 쉼터로 만들어 호사를 부려보기도 했다.
책꽂이는 많은 부류의 책들로 채워져 갔다. 사서오경(四書五經)으로부터 현대수양전집(現代收養全集)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책이 나의 허기진 영혼을 달래주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책꽂이에서 제대로 숨도 못 쉬고 빼곡히 꽂혀 있는 책들. 글을 쓰려면 많이 읽고 사유하며 내 것으로 소화해야 하는데, 나의 시선을 받아 읽힌 책보다는 임금님의 손목 한 번 잡아보지 못하고 궁궐에 갇혀 사는 궁인의 신세 같은 책들이 더 많다. 그래도 그때그때 구미에 당겨 구입한 책은 미루지 않고 읽게 되는데, 한가할 때 벗하려고 미뤄두었던 고전(古典)들은 시력이 나빠지면서 장식품이 되어가니 책 안에 있는 현인군자(賢人君子)의 지혜를 고루 터득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수필을 쓰면서 S교수님의 연구실에 자주 가게 되었는데 테이블 위에 두서없이 쌓여 있는 책들이 눈에 거슬렸다. 한 번은 내가 정리를 해드리겠다고 했더니 건드리지도 못하게 하셨다. 책과 자료들이 뒤섞여 있지만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다 아신다고 했다. 이렇게 어수선한 집필실에서 명수필이 나온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었다.
이제 나의 서재 풍경도 교수님의 연구실을 닮아가고 있다. 여기저기 쌓여가는 책들이며 잡다한 물건들. 이곳이 집필 공간인지 쉼터인지 구분이 안 되면서 떠오르는 낱말이 있으니 삼상사( 三上思). 즉 마상(馬上), 측상(厠上), 침상(枕上)에서의 사유함이다. 수필과 사랑을 나눌 마음만 있다면, 자동차를 타고 갈 때나 측간에 앉아서나 침대에 누워서나 주제와 소재를 떠올리며 생각에 잠길 수 있고, 이따금 영풍문고와 종로애(愛)서(書) '삼봉서랑'에 들러 필요한 책을 골라보며 작품을 구상하기도 한다. 그렇게 기억의 창고 속에 그려 넣은 것과 메모한 것을 컴퓨터에 입력하여 초안을 잡고 퇴고를 거듭하여 작품을 마무리한다.
이렇게 천지 사방이 사유의 공간이고 집필 공간이 될 수 있으니, 영혼이 깃든 글은 잘 치장된 공간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집중과 열정, 끈기와 고뇌에 있다는 것을 '삼상사'에서 느끼곤 한다.
(2013. 「한국수필」 11월호)
나를 짓궂게 놀리는 운명
-분실물에 관한 에피소드
'겉에 걸친 옷만 바꿔 입어도 운명이 바뀐다.'라는 말은 소설이나 동화에서나 나오는 말일 뿐일까. 작가가 스토리 전개나 흥미 유발을 위해 지어낸 말이려니 하다가도 때깔 고운 거지가 밥도 먼저 얻어먹는 세상이고 보면 아주 현실성이 없는 말도 아닌 듯하다. 그래서 인간의 잠재의식 속에는 신분 위장이나 품격 유지를 위해 겉치장에 치중하는 습성이 숨겨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디선가 입은 옷에 따라 운명이 바뀐다는 말을 얻어들은 후, 부쩍 50년 전의 황망하고 기막힌 두 가지 분실 사건이 되살아나 잠잠해진 가슴에 파문이 인다.
하나
내가 결혼할 당시만 해도 여자들의 혼수 품목에는 네댓 벌의 한복이 들어 있었다. 나는 월급날이면 동대문 광장시장의 포목점을 돌아다니며 새색시의 꿈을 안고 한복감을 고르곤 했다.
그 당시 내 얼굴형과 어울리는 뒤통수 아래로 주먹만 한 똬리를 틀어 붙이는 고전스타일에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새색시 모습이 내가 꿈꿔온 롤모델이었다. 한복감을 새로 장만할 때마다 옷감의 질과 색상을 조합해 가며 쪽머리를 한 새색시의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을 그려보았다.
결혼 날짜를 잡아놓고 그동안 장만해 온 옷감을 바느질집에 맡겼다. 그리고 약속한 날짜에 기대를 안고 설레는 마음으로 맞춤옷을 찾으러 갔다. 한데 이게 웬일인가. 한복집 주인의 말인즉, 내가 옷감을 맡기고 나간 얼마 후 누군가 내가 맡긴 한복감을 도루 찾아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누가 내 뒤를 쫓아와 그런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인가. 한복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혼숫감만을 노리는 전문 털이범에게 내가 걸려든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섬뜩하고 허망한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누구인지 확인도 안 하고 물건을 내준 한복집 주인이 자신의 불찰을 인정하면서 자기 집에 있는 옷감으로 내 한복을 만들어 주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내 앞에 내민 옷감이 탐탁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다시 마음에 드는 옷감을 찾아 나설 시간적 여유도 없어서 한복집 주인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부모님 곁을 떠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결혼.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남의 옷을 빌려 입은 것처럼 어정쩡하게 한복을 입고 찍은 신혼여행지에서의 사진을 보니, 마치 영혼은 빠져나가고 껍데기만 두르고 앉아 있는 듯한 나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 허전하고 아쉬운 마음에 내가 장만한 옷감으로 한복을 지어 입은 모습을 상상해 보았지만, 사진 속의 나는 씁쓰름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둘
첫아이가 돌을 지내고 얼마 후 집안에 도둑이 들었다. 그때 우리 가족은 남편의 직장 관계로 부산에서 살고 있었다. 이사한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 그 유명한 자갈치 시장을 구경하고 싶어서 갔다가 돌아와 보니 친정아버지가 사업자금으로 내게 맡겨놓은 현금과 아이의 돌 반지와 팔찌, 그리고 나의 패물이 몽땅 없어졌는데 유독 결혼반지만 남아있었다. 결혼 전에 예비 신랑이 해외 출장에서 돌아오며 결혼 예물로 준비해 온 다이아몬드 반지로 세팅은 한국에서 했다.
그런데 경찰 조사 과정에서 그 반지는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사파이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제야 자세히 살펴보니 남편 될 사람이 처음 내게 보여줄 때 푸른색이 섞여 빛나던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무채색의 유리알 같은 사파이어가 내 방 장롱 안에 숨어서 반지 알이 바뀐 것도 모르고 사는 나를 짓궂게 놀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넌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라고…. 지금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보석상에서 다이아몬드라는 것을 확인한 후 세팅해 주겠다고 했고, 나도 그 집의 간판만 믿고 세팅을 맡겼는데 반지 알까지 맡긴 것이 불찰이었다. 그때는 다이아몬드라는 보석보다도 그것을 선물해 준 사람이 더 좋았던 때라 보석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반지를 세팅할 때는 눈을 똑바로 뜨고 옆에서 반지 알을 박는 것을 직접 지켜보아야 한다는 것도 모르던 어리석고 순진한 때였다. 보석상은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서울의 한복판 그 자리에서 여전히 같은 이름의 간판을 달고 버젓이 영업하고 있다.
이렇게 두 번씩이나 눈뜨고 코를 베이고 말았다. 그것도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며 축복 속에 주고받아야 할 결혼 예물이 두 번씩이나 바뀌고 보니 우연치고는 너무 얄궂은 일이어서, 이것도 운명인가 하는 회의에 젖게 되었다. 마치 거지와 왕자의 뒤바뀐 운명처럼, 나는 졸지에 꿈을 잃고 거리를 헤매는 거지 왕자가 된 심정이었다.
내 결혼의 꿈이 담긴 한복감으로 옷을 만들어 나 대신 입고 다니는 사람은 누구일까? 누가 내 남편의 사랑이 담긴 다이아몬드를 차지했을까? 그들은 행복할까, 불행할까? 그간 살아오며 안타깝고 괴로운 일들을 겪을 때마다 내 인생에는 없어야 할 일들이 일어나는 것만 같아 내 인생은 도둑맞고 남의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결혼 혼수품의 분실은 내게 깊은 상처를 남겨주었고 그 상처의 흔적은 한동안 나를 혼란케 했다.
어쩌면 잃어버린 물건들은 애당초 나와는 인연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들로 액땜하여 힘든 일들도 잘 견뎌냈고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을 바꿔보니 '돌고 도는 인생'이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행복과 불행도 돌고 도는 것이 아닌가 싶다. 화(禍)가 복(福)이 되고 복이 화가 돼서 돌아올 수도 있으니,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남의 것에 눈독 들이는 잔망스러운 인간이 되지는 말아야겠다.
어쨌거나 그간 나는 어떤 형태로든 남의 인생을 도둑질하지는 않았는지, 지난날을 되짚어 본다.
(『그린에세이』 2018. 3~4월호)
〈문학이 주는 위로〉
'다른 직업을 택했다면 지금의 나는…'이라는 제목의 원고 청탁서를 뒤적여 본다. 다른 직업을 택하여 지금의 내가 이렇다 하고 내놓을 정도가 되었다면 아마 그 직업은 스무 살 즈음부터 뿌리내린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은 나이와 상관없이 적성에 맞지 않으면 서슴없이 자리를 옮기는 다변화 시대이지만, 60년대의 젊은이들은 처음 택한 직업으로 정년을 맞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나 역시 학창 시절에는 문학이나 연극, 춤사위에 관심이 있었고 그 방면의 교내 활동에 적극적이었지만 설사 재능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키워줄 가정적 여건과 인식의 부족, 꿈을 향해 나아갈 사회적 통로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봄날의 몽환처럼 잠시 '춤꾼'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어본 적이 있다. 그러나 춤이 예술로서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천대받던 시대였다. 큰오빠는 춤꾼이 되겠다는 나에게 눈총을 주어 주저앉혔지만, 최은희 주연의 영화 〈검사와 여선생〉을 보고 난 후 여검사가 되겠다고 천방지축 나대는 나에게 작은오빠는 자기의 고려대학 법학과 뱃지를 내 가슴에 달아주며 기를 살려 주었다.
스무 살 무렵, 가정 형편이 좋거나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세 친구가 의상디자이너를 꿈꾸며 일본으로 유학 떠나는 것을 보며 부러워했다. 1년 후 그 친구들이 베레모를 쓰고 한국에 돌아왔다. 마중 나간 김포 공항에서 비행기 트랩을 내리는 친구들의 세련된 모습은 마치 전쟁을 겪은 후 안정을 찾아가는 이 나라에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갈 신여성들인 것 같아 경이롭기까지 했다. 베레모는 유럽의 가난한 농민들과 프랑스의 양치기가 쓰던 평범한 벨트 모자가 변형되어 유행의 첨단을 걷는 멋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 친구들은 전공을 살려 각자 제 갈 길로 뻗어나갔고, 문학의 밤과 음악 감상실을 드나들며 우울한 영혼을 달래던 나는 서울시 말단 교육공무원이 되었다. 나의 방황은 직장에 충실히 하는 것으로 서서히 날개를 접었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면 그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는 보석처럼 내 가슴에 빛이 될 것이라고 믿고 가정에 안주하고 말았다.
이따금 '결혼 지상주의'라는 시대적 사회제도에서 벗어나 좀 더 적극적으로 내 삶을 타개해 나갔다면 지금의 나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변신해 있지 않았을까 하는 미몽에 젖을 때도 있었다.
내가 또 다른 직업을 선망하지 않은 것은 내 삶이 만족스러워서가 아니었다. 나는 환란과 역경 속에서 글쓰기를 시작했고 그 쓰는 행위에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기 때문에 이 작업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지 않으면 그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라는 러시아 소설가 에이모 토울스의 삶의 신조처럼, 나에게 있어 글을 쓴다는 것은 내 환경을 극복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제대로 글 줄이 풀리지 않아 답답할 때, 예기치 않은 삶의 여정에서 괴로움이 찾아들어 가슴에 쌓인 울적함을 토해내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는 마치 내가 춤꾼이 된 것처럼 음악의 볼륨을 올려놓고 리듬에 맞춰 마음 깊은 골에 흐르고 있는 아픔까지 온몸으로 풀어내 본다. 춤동작을 혹독하게 연습하거나 기술을 연마하지는 않았지만, 노래 가사에 얽힌 사연과 선율을 따라가노라면 신들린 영혼이 내 몸의 세포들을 자극해 잠시나마 무아경에 빠져들 때도 있지 않던가.
축구 경기 중 결정적인 순간에 한 골을 넣었을 때 선수와 관중이 내뿜는 폭발적 함성을 들으며 그 순간의 피돌기가 우리를 살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는 음악이나 춤에서 위로를 얻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
우리는 이렇게 누군가를 위로하고 무언가에 위로받으며 삶을 영위해 나간다. 텔레비전에 비친 무용수들의 일그러진 발 모양과 축구선수의 절묘한 발놀림은 피나는 노력의 결과이기에 나에게도 그런 끈기와 기교가 있을지 의구심이 들지만, 그래도 굳이 다른 길을 갔다면 '춤꾼'이 되었을 것 같다. 문학이 마음속의 밑그림을 서서히 녹여내는 정적인 작업이어선지, 춤과 어우러진 음악이나 스포츠처럼 단번에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주는 폭발력은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문학이 주는 위로는 무엇일까. 문학은 어떤 정점을 향해 질주하고 경쟁하며 피나는 노력을 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문학은 자연적인 일상의 연속으로, 삶의 경건함과 지진함이 한데 어우러진 경험이 추억이 되고 그것을 기억에서 끌어내어 재생시키는 작업이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상상과 창조가 결합된 복합적 요소들로 구성된다. 독자는 작가의 가슴에 내재되어 있는 실수와 절망, 방황과 고뇌를 읽고 진정한 삶의 세계로 나가는 활력을 얻게 된다. 이렇게 작가의 자화상에서 은근히 우러나는 삶의 변주곡들이 독자의 마음에 피딱지처럼 달라붙어 있다가 서서히 용해될 때 문학이 주는 위로가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스무 살 즈음에 뿌리내린 문학의 나무 아래에서 두 번째 인생을 살아온 나. 이제 수필가라는 이름으로 36년을 살아왔다. 나는 춤과 스포츠처럼 단숨에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주는 폭발력에 매력을 느끼는 편인데, 한편 나의 뇌 조직 어딘가에 숨어있는 문학의 DNA가 차분히 사유하며 글을 쓸 수 있게 한다는 것이 신기하고 고맙다.
그렇다고 이렇다 하게 내세울 만한 역작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글을 쓸 때 가장 행복하니 '수필가'라는 직업은 하늘이 내게 내려준 축복이 아닌가 싶다.
(『그린에세이』 2021.1~2월호 권두에세이)
〈인동초 사랑〉
내가 남편 될 사람에게서 받은 첫 고백은 "사랑한다"라는 말이 아니라 "나에게는 어머니가 두 분 계시다"라는 말이었다. 그는 작은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친정아버지는 나를 망연자실 바라보실 뿐, 사랑에 눈먼 딸을 제어할 아무런 힘도 없어 보였다. 나는 아버지 앞에서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진다"라는 말을 겁도 없이 내뱉었다. 책임이 얼마나 무겁고 중한 것인지도 모르면서…. 나는 그의 사랑에 대해 확신이 있었고, 그 어떤 사회적 편견도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사회적인 지위가 높고 권위 의식이 강한 집안일수록 서출(庶出)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조선 시대에 머물고 있음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 집안의 일원이 되고자 했던 남편의 끈질긴 종자(種子) 의식으로 내 생은 슬프게 물들어 갔다.
결혼을 앞두고 시어머니 되실 분이 나를 시댁의 선산에 데리고 갔다. 광릉의 수려한 경관에 둘러싸인 선산에는 윗대 조의 묘소가 차례대로 모셔져 있었고, 어느 때 무슨 벼슬을 했다는 비문에서 명문가의 위세가 엿보였다. 선산을 둘러보고 시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묻히게 될 가묘 앞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산지기가 달려오더니 "지금 큰댁 어머니가 선산에 오르고 계시니 빨리 몸을 피하세요."라는 말에 반대편 능선을 타고 도망치듯 내려왔던 일은 큰 충격이었다.
이로 인해 '사랑은 눈부심이요, 아름다운 슬픔'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사랑론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어쩌면 사랑은 연민에서 싹트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해 가고 있었다. 그의 호탕한 웃음 뒤에 감춰진 눈물과 가슴속에서 들끓는 분노와 좌절, 방황에 연민을 느끼며, 아버지 앞에서 내뱉은 '내 인생을 책임'지기 위해 자신과 외로운 싸움을 시작해야 했다.
남편은 매사 열정적이어서 일도 사랑도 끝을 보고야 마는 조금은 무모한 사람이다. 어떤 일이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낙천적인 기질이어서, 계산적인 치밀함보다 남을 자신의 마음처럼 믿어 다른 사람의 무거운 짐까지 지고 돌아올 때가 많았다. 그가 일과 사랑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태생적 외로움으로 인한 사람에 대한 그리운 정(情)의 발로는 아니었을까.
나는 그의 가슴에 일고 있는 바람의 정체를 뒤좇으며 그의 충실한 동반자가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나의 마음을 쉽게 헤아려 주지 않았다. 나는 때때로 그의 어머니를 향한 애절함에 가려지고 자칫 그들의 희생양이 되곤 했다. 내 입에서 시어머니와 시누이들에 대한 '시' 자만 나와도 남편은 '안개 피우지 말라'며 내 입을 봉해 버렸다. 시집 식구들은 나를 마치 그들의 사랑으로 결집한 울 안에 침입한 이방인 대하듯 했고, 시어머니와의 갈등으로 오랜 세월을 아픔 속에서 살아야 했다.
남편은 나와 시어머니 갈등 사이에서 숨통을 트이려는 방편으로 외도를 택했다지만, 그의 외도는 나를 깊은 절망과 슬픔의 나락으로 끌어내렸다. 나는 남편이 오랜 기간 숨겨둔 여자를 찾아냈고, 그녀의 방에 놓인 분홍색 시트가 덮여 있는 더블 침대를 보면서 아찔한 현기증과 함께 온몸의 기(氣)가 모두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집에 돌아와 처음으로 내 방에도 더블 침대를 들여놓았다. 그것은 누구도 감히 내 가정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나 자신에 대한 결의요, 남편에 대한 시위였다.
한차례 심한 세찬 풍랑을 겪은 후 남편의 방황은 잠잠해졌고, 그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의 일에 대한 집착은 본가에 인정받고 싶은 일종의 자기 최면 같은 것이었다. 그들과 같은 대열에 서고 싶은 몸부림으로 그는 늘 고달파했지만, 지나친 과욕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곤 했다.
여전히 그에 대한 연민이 계속되었던 것은 그의 내면에 인각 되어 있는 아픔과 분노가 그대로 내게 전이된 까닭이기도 하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그의 반복되는 실수와 실패를 용인하는 꼴이 되어 나에게 치명타가 되었다.
나는 남편 컨트롤에 실패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험한 풍파를 용케 헤쳐 나온 것은 아픔과 갈등 속에서 싹튼 남편에 대한 곡진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지난 상처를 훌훌 털고 이젠 나와 함께 행복의 자리를 튼실하게 지키고 있으니 폭풍우 속을 지혜롭게 헤쳐 온 보람이라고 하겠다. 사랑에 등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방법이 달라 힘이 들었을 뿐이었다.
남편의 배신을 겪으면서도 자신을 죽여야 살아나는 연민은 겨울의 세찬 비바람을 이겨내고 살아난 인동초(忍冬草) 같은 사랑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연민 속에 세월은 흘러 이제 나도 육십 줄에 들어섰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을 다스리는 담담함도 터득하게 되었다.
내 생애 63페이지는 무채색이다. 사랑도 미움도 빠져나간 무채색의 텅 빈 곳에, 이전에 간간이 스치고 간 외로움과는 또 다른 낯선 외로움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 가을비의 우수(憂愁) 같은 외로움이 또다시 몸 안에 번져가고 있었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 2006. 11월호)
〈정신이 아프다〉
≪나는 천국을 보았다≫라는 제목의 책은 듀크대학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버지니아 대학교에서 뇌기능을 연구한 세계적인 뇌과학 연구자 이븐 알렉산더가 7일 만에 뇌사상태에서 살아와 죽음 이후의 세상을 증명한 내용을 수록한 글이다. 하버드 신경외과 의사로서 뇌사상태에서 겪은 천국 이야기는 삶과 죽음, 몸과 정신의 과학을 새롭게 써 나갔다. 가장 물질적이고 과학적인 세계관으로 살던 최고의 신경외과 의사가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를 과학적 통찰로 조명한 임사체험의 보고서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는 2008년 11월 10일 54세의 나이에 대장균성 뇌막염에 걸려 있었는데, 그것을 아는 사람은 없었고 그 자신도 모르고 있었다. 성인에게는 천문학적 확률로, 성인이 자연발생적으로 걸리는 비율은 천만 명 중에 한 명 이하라는 드문 질병이었기 때문이다. 환자는 대개 신생아들이며 태어난 지 3개월만 지나도 이 병에 걸리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한다. 박테리아성 뇌막염인 경우, 박테리아는 먼저 뇌의 바깥 부분인 대뇌피질을 공격한다고 한다. 뇌의 겉면이 멈춰버려 혼수상태, 뇌사상태가 되고 뇌가 작동하지 않으므로 이븐 알렉산더는 임사체험을 하게 된다. 이븐 알렉산더의 ≪나는 천국을 보았다≫에서 그가 앓고 있는 대장균성 뇌막염을 토대로 치밀하고 논리적인 의학적 탐구와 통찰, 인간은 육체가 아닌 영적인 존재임을 확인시켜 준다. 뇌 과학자인 이븐 알렉산더의 현대과학과 영성의 세계를 통해,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게 해 준다.
나는 두 번의 무의식 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난 적이 있다. 죽음의 문턱에까지 갔다가 왔기에 죽음은 무엇이고 삶은 무엇일까? 두 번 모두 무의식 상태로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사를 시행했지만, 신체적인 결함을 찾지 못한 것으로 보아 혼수상태의 원인을 신의 조화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신께서 나를 두 번씩 삶의 현장으로 되돌려 보낸 까닭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으로 고심하던 중 이븐 알렉산더의 ≪천국 이야기≫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러나 "영적인 세계에 대해 너무 많이 알게 된다면 지상의 삶을 살아가는 일이 지금도 어려운데 더욱더 어려워지기만 할 것이다."라는 그의 조언대로 영적인 세계의 장엄함과 방대함에 대해 과도하게 의식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신이 내게 부여한 영적인 체험과 연계된 지상에서 엉킨 삶을 풀어나가려 한다.
60여 년 전, 나의 외할머니는 90세 때 혼수상태에 빠진 적이 있었다. 집안에서는 장례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3일 후, 긴 한숨을 내쉬며 "아휴! 잘 잤다."라며 눈을 뜨셨고, 목에 방울을 단 강아지를 따라가다가 강아지가 냇물에 빠지는 바람에 더 이상 따라가지 못하고 되돌아왔다는 꿈 이야기를 하셨다. 할머니는 그 후 2년을 더 사시다가 돌아가셨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할머니는 가슴에 풀지 못 한 한의 응어리가 있어서 이 세상을 떠나지 못하고 머뭇거렸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되었다. 할머니는 동구 밖에 나가 한국전쟁 때 북으로 끌려간 세 아들을 기다리며 긴 세월을 그리움과 한숨으로 채우셨다.
할머니가 혼수상태에서 겪은 꿈 이야기는 우물 안 개구리 소리에 불과한 전래 동화 속의 이야기 같지만, 한편으로는 현대의학과 영성 세계에 대한 탐구가 활발한 시대에 사는 나의 체험과 같은 맥락으로 느껴졌다. 어쩌면 내가 혼수상태에서 두 번씩 다시 살아난 것은, 아들이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 친구로부터 당한 폭력(오른쪽 손목뼈와 앞니가 부러짐 「여성동아」 1987. 8월호에 발표한 나의 수필 〈맞고 돌아온 아이〉에 기재됨)과 이어서 군대에서 받은 폭력과 따돌림의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아들의 잃어버린 30년 세월을 가슴에 안고 애통해하는 나를 가엾게 여기신 신의 은총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간에 아들과 내가 겪은 고통과 슬픔과 외로움은 필설로 나열할 수 없을 정도의 상처로 아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가족 모두가 질곡 속에서 헤매고 있는 30여 년의 세월이었지만, 불행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아들은 장기간 입원한 병원의 조무사 두 명에게 두 팔을 묶인 채 구타당해 갈비뼈에 금이 간 일도 있었다. 몇 해가 지났지만 아들은 지금도 그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의 온몸의 세포에 얼간이 기질이 녹아있는 것일까.
모든 원인은 아들의 부족함에서 비롯된 것이니 무조건 참고 용서하라는 나의 가르침이 아들을 더욱 왜소하게 만든 것은 아니었는지, 의문과 후회가 들기도 한다.
이 세상 어머니들 가슴에 박힌 가장 아픈 못은 자식에 대한 여한일 것이다.
'하늘에 계신 그 분은 우리의 인생을 마모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듬고 계시다.'고 한다. 아들은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그 나라의 지질(地質)을 연구하는 지질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연이은 사고로 꿈은 사라지고, 병 치료를 위한 사설 연구소와 병원을 찾아다니는 순례자가 되어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제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 잃어버린 웃음을 찾고 싶지만 워낙 상처가 깊어 하늘에 계신 그분께 아들의 남은 인생을 아름답게 다듬어 주시기를 믿고 염원할 뿐이다.
우리의 육체는 죽어도 영혼은 살아있다는 종교적인 차원의 관점에 공감한다. 그리운 사람은 천국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이기에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이다.
나에겐 이븐 알렉산더가 본 천국을 믿고 싶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맑고 순수한 영혼으로 살아온 아들은 분명히 천국에 갈 것이라고 믿는다. 한 번 뿐인 인생을 자기의 의지대로 살아보지 못한 아들이 이 세상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천국에 가서라도 펼쳐보기를 염원한다. 나는 아들을 천국에서 다시 만나 웃으면서 즐겁게 꽃동산을 거닐고 싶다.
내가 첫 번째 무의식 상태로 들어간 것은 2005년 초,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있었던 문학세미나에 참석한 때였다. 호주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뉴질랜드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하여 잠이 들었는데, 목적지에 도착하기 30분 전부터 일행이 흔들어 깨워도 꼼짝도 하지 않고 잠에서 깨어나지 않아 도착 후 곧바로 뉴질랜드 병원의 응급실로 이송되었다. 각종 검사를 했지만 별다른 몸의 이상은 없고 10여 시간 만에 정신이 들었는데, 특이한 점은 머릿속이 텅 빈 것처럼 멍했고 혼자서는 일어서지 못할 정도로 다리에 힘이 빠져 있었다. 나와 알렉산더와 다른 점은 "그는 구조대원들이 응급실로 옮겼을 때 여전히 간헐적으로 신음소리를 내고 팔다리를 마구 흔들며 격렬하게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라고 했는데, 나는 전혀 움직이지도 않고 신음소리도 없었다고 한다. 움직이지도 않고 너무 조용했던 것이 주위 사람들을 더욱 긴장시켰던 것 같다. 내 짧은 식견으로 생각해 볼 때, 그는 대장균성 뇌막염으로 박테리아의 공격을 받아 뇌가 어떤 심각한 쇼크를 받아서 대발작을 일으킨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 당시 여러 가지 복잡한 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지친 심신을 달래고자 조용한 곳을 찾아 떠나고 싶었다. 해외 세미나가 목적이 아니라 그저 먼 곳으로 떠나고 싶은 현실 도피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별다른 질병이 없는 나의 몸은 뇌가 시키는 대로 요동치지 않고 조용히 잠들었던 것 같다. 전기 콘센트에 여러 개의 플러그를 꽂으면 과부하가 일어나듯, 내 머릿속 회로도 잠시 가동을 멈추고 정지 상태가 되었던 게 아니었을까?
내가 첫 번째 혼수상태에서 꾼 꿈은, 검은 의상을 입은 노란 눈의 여자(혹자는 이들을 저승사자로 지칭함) 두 명이 양쪽에서 내 어깨를 꼬집고 짓누르며 열 손가락 끝의 손톱을 뾰족하고 날카로운 나무로 찌르며 꼼짝 못 하게 했다. 손톱을 찌를 때는 마치 찢어진 양은그릇이 부딪치듯 날카로운 소리가 나서 소름이 끼쳤다. 나는 그들에게서 빠져나오려고 화장실 좀 보내달라고 사정도 해봤다. 약이 오르기도 하고 무서워서 '엄마'를 부르며 울었는데 그들은 여전히 나를 제압하며 풀어주지 않았다. 꿈속에서도 살아나려고 온 힘을 다해 몸부림쳤다.
내가 의식이 돌아와 제일 먼저 간 곳이 화장실이었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 걷지 못하고 양옆으로 부축을 받아야만 했다. 사람이 죽을 때는 임종 전까지 살아있는 것이 귀라는데, 제일 먼저 빠져나가는 것은 다리 힘인가 보다. 그러고 보면 몇 년간 혼수상태에 있었던 사람이 깨어난 일도 있다는데, 누군가 환자의 귀에 대고 사랑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내가 곁에서 나를 지키던 사람들에게 혼수상태에서 겪은 일들을 이야기했더니 실제로 뉴질랜드 병원의 간호사 두 명이 내가 깨어나도록 어깨를 꼬집고 누르며 몸에 충격을 가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마침 동료 문인 중에 동양 의술인 수지 침술사가 있어서 내 열 손가락 끝에 침을 놓아 피를 뽑았다고 한다. 무의식 상태에서 내가 지른 소리는 밖으로 전달되지 않았지만, 실제 현실에서 벌어졌던 상황이 내게 전달되었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죽음에 끌려가지 않고 삶의 세계로 회귀하려고 발버둥 쳤던 것은, 신의 보호 아래 나의 의식은 삶이 죽음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작동한 것은 아니었을까. 10여 시간 동안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겪은 짧은 체험이었지만 천국의 아름답고 편안한 세계가 아니라 지옥에 다녀온 것만 같아 기분 좋은 꿈은 아닌 것 같다.
내가 두 번째로 혼수상태에 빠졌던 것은 2020년 8월이었다. 동네의 앞산을 산책하다가 잠시 벤치에 앉아 쉬고 있었는데, 그대로 의식을 잃고 말았다. 손발이 차가워진 나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겨졌고, 중환자실에서 4박 5일 만에 퇴원했다. MRI 검사 등에서 특이하다고 할 만한 증세는 없었지만 나의 뇌가 어떤 심각한 쇼크를 받았다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나는 두 번 모두 심신이 지친 상태이기는 하지만 몸보다는 정신이 아파 혼수상태에 빠지곤 했다. 우리는 흔히 몸과 마음이 아프다는 표현으로 괴로움을 토로하지만 정신이 아프다는 것은 마음이 아픈 것 이상의 심각한 단계를 말한다. 나의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극한 상황에 이르렀을 때 인간 존재의 의식마저 잃게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두 번째 혼수상태에서 꾼 꿈은, 밝은 햇빛을 가린 어느 높은 양철지붕 아래의 계곡에서 대여섯 살 먹은 아이들 네댓 명이 물에 발을 담그고 물장구치며 놀고 있는 모습들이 보이는데, 지금은 중년이 된 조카도 어린 소년으로 돌아가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었다. 한쪽 물가에 있는 바위에는 얼마 전 나와 의견 다툼으로 멀어진 여동생이 물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이븐 알렉산더에게는 강렬한 햇빛과 꽃들이 만발한 천국이 보였다는데, 왜 내게는 밝고 맑은 햇빛을 가린 양철지붕 아래에 갇혀, 위에서 내려오는 물에 발 담그며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던 걸까? 그리고 왜 내게 서운함을 털어놓고 떠난 동생이 보였던 걸까.
어떤 불편한 환경에서도 내가 가장 사랑했던 동생인데, 나는 아무리 진정을 다 해도 자기주장만 앞세우는 동생이 야속하여 가슴을 앓고 있었다. 그날도 동생과 같이 걷던 산길을 걸으면서 행여나 동생이 와 있지는 않을까 하는 기다림과 그리움으로 동생과 같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벤치에 앉아 잠시 쉬는 동안에 정신을 잃었다. 혼수상태에서 꾼 또 다른 꿈은, 내가 환자복을 입고 침대에 누워있는데 병실 반대편 창문에서 남편과 아들이 창문을 두드리며 나를 면회시켜 달라며 사정하는 애절한 모습이 보였다. 나도 간호사에게 아들을 들여보내 달라고 애원했지만 아들과 나는 만나지 못하고 서로 자기한테 오라고 손짓만 하는 정경이 마치 현실처럼 또렷이 느껴졌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두 번의 혼수상태에서 겪은 현상을 꿈에서 꿈을 꾸었다고 말해 왔다. 이것이 임사체험이라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최고의 신경외과 전문의인 이븐 알렉산더는 평소의 임사체험이 진짜라고 느껴지지만 사실 극도의 스트레스에서 뇌가 만들어내는 환상에 불과하다고 믿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7일간의 뇌사상태에서 죽음 너머의 세계를 체험하고 다시 살아나면서 인간은 뇌와 상관없이 의식을 갖고 있으며 사실상 의식이야말로 모든 존재의 근간임을 보여 주고 있다고 술회한다. 그렇다면 혼수상태에서 체험한 내 꿈의 세계는 극도의 스트레스에서 뇌가 만들어낸 환상이 아니라 나의 존재 의식에서 불거져 나온 사후세계의 일면이 아니었을까.
나는 알렉산더처럼 밝고 아름다운 천국은 보지 못했다. 혼수상태에서도 가슴에 옹이진 아픔을 풀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철새들은 제 갈길을 찾아 떼 지어 날아가는데, 나는 숲속에 홀로 앉아 우는 새 한 마리처럼 외로움과 아들이 살아갈 장래에 대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이븐 알렉산더는 뇌사상태에 있을 때, 강한 광선을 받고 어린 아가씨와 같이 손을 잡고 한참을 걸어가다가 어느 산 밑에서 나비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 거기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나고 어렸을 때 먼저 간 누나를 만난다. "말썽 많았고 영창 갔던 아저씨는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니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다. 아마 천당에는 없는 것 같다."라고 아버지는 대답한다. 이것은 분명히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 대목이 아닌가 싶다. 같은 혼수상태라 해도 사람에 따라 다른 영성 세계를 체험하는 것은 그 사람이 처한 환경과 살아온 삶의 흔적이 다르기 때문은 아닐까. 뼈와 살로 이루어진 육체는 죽어도 영혼은 살아있다는 정설로 보아 사후세계는 현세의 연장이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2022. 「창작수필」 여름호)
*출처: 이븐 알렉산더의 ≪나는 천국을 보았다≫
해설
인동(忍冬)을 넘어 향기로 다시 피어나는 삶의 서사
-한동희 수필집 ≪인동초 사랑≫
최원현 수필가·문학평론가
1. 들어가며
한동희 수필가는 1986년 계간 『한국수필』 제43호에 〈아버지의 목소리〉로 천료된 후 한결같이 수필가로 펜을 놓지 않았다. 그만의 독특한 수필 사랑은 짝사랑처럼 조용하나 진실하게 이어져 왔다. 그래선지 한동희의 수필은 늘 한 계절을 건너온 사람의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 성급하지 않고, 요란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삶을 쉽게 단정하지 않는다. 이번 『인동초 사랑』도 그러한 그의 문학적 태도가 한 권의 책으로 응결된 결과물이다. 이 수필집은 '잘 살아온 이야기'라기보다 버텨온 시간들이 어떻게 문장이 되었는가에 대한 조용한 증언에 가깝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인동초'는 겨울을 견디며 피는 꽃이다. 추위를 이겨낸 뒤에야 향을 내는 존재. 이 상징은 곧 한동희 문학의 정체성을 말해준다. 그의 글에는 늘 시련 이후의 언어, 상처를 통과한 사유가 자리한다. 사랑조차 감정의 고조가 아니라 인내와 성찰, 그리고 관계의 무게 속에서 천천히 익어간다. 그래서 이 책의 '사랑'은 달콤하기보다 단단하고, 감상적이기보다 윤리적이다.
≪인동초 사랑≫은 네 개의 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문학이 주는 위로〉에서는 문학이 삶을 구원하는 방식에 대해 말한다. 문학은 도피가 아니라 견딤의 다른 이름이며, 자기 연민이 아니라 자기 응시의 결과라는 점을 그는 자신의 체험을 통해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특히 글쓰기의 동기와 한계, 그리고 다시 쓰게 되는 이유를 성찰하는 대목들은 오랜 시간 문학과 동행해 온 작가만이 도달할 수 있는 깊이를 지닌다.
2부 〈다시 시작하자〉는 이 수필집의 정서적 중심부라 할 만하다. 여기서 한동희는 삶의 불운과 상실, 관계의 균열 앞에서 주저앉기보다 다시 몸을 일으켜 세운다. 그에게 '다시'는 선언이 아니라 결심이며, 외침이 아니라 다짐이다. 짓궂은 운명 앞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는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조용하지만 분명한 용기를 건넨다.
3부 〈행복 만들기〉에서는 삶의 반경이 한층 넓어진다. 개인의 체험을 넘어 타인의 삶과 시대의 풍경이 함께 호흡한다. 텃밭 이야기나 스승과 선배에 대한 기록, 공동체에 대한 성찰은 '행복'이 결코 개인적 성취에 머물지 않음을 일깨운다. 이 부분에서 한동희의 수필은 회고를 넘어 기록의 성격을 띠며, 한 시대를 살아온 여성 문인의 삶의 궤적을 또렷이 남긴다.
4부 〈주막에 앉아〉는 이 책의 가장 내밀한 공간이다. 여기서 작가는 숨기고 싶었을 마음, 말하지 못했던 감정들까지 문장 위에 올려놓는다. 그러나 그 고백은 결코 폭로로 흐르지 않는다. 수필이 지켜야 할 품격과 거리, 그 미묘한 경계를 끝내 놓치지 않는다. 이는 오랜 수련을 거친 작가만이 가질 수 있는 미덕이다.
2. 문학, 환란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구원의 밧줄
한동희 수필가의 글은 지극히 정직하다. 수필을 '고백의 문학'이라 정의하면서도 자칫 빠지기 쉬운 '폭로'의 함정을 경계하며, 자신의 아픔을 해학과 격조로 승화시키는 절제미를 보여준다. 작가는 60년대라는 보수적인 시대 상황 속에서 춤꾼이나 검사를 꿈꾸던 재기발랄한 소녀였으나, 현실의 제약 속에 교육공무원의 길을 택하고 가정에 안주하게 된다. 그러나 삶은 평탄치 않았다. 남편의 사업 실패와 예기치 못한 가정적 시련은 작가를 어둡고 습한 방으로 밀어 넣었다.
이때 그를 다시 세상 밖으로 끌어올린 것이 바로 '문학'이었다. 1부 〈문학이 주는 위로〉에서 고백하듯, 작가에게 글쓰기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환경을 지배하지 않으면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생존 본능이자, 내면의 응어리를 풀어내는 '정적인 춤'이었다. 4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수필가로 살며 그는 자신의 상처를 활자로 옮겨 독자와 나누었고, 그 과정에서 타인의 위로보다 더 깊은 '자기 구원'의 시간을 가졌다.
한동희의 문장은 과장되지 않고, 그의 감정은 독자에게 강요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자신의 삶을 성실하게 통과해 온 언어를 내어놓는다. 그 언어는 독자의 삶 속으로 조용히 스며들어 각자의 기억과 상처를 건드린다. 이 점에서 ≪인동초 사랑≫은 읽히는 책이기보다 곁에 두고 오래 함께할 책에 가깝다.
3. 서해 바다와 염전, 그리움의 원형질
작가의 문학적 근간은 서해 바닷가와 염전, 그리고 여름이라는 세 가지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미소와 염전을 운영하시던 아버지, 지평선을 붉게 물들이던 석양, 소금꽃을 피우던 뙤약볕의 기억은 작가에게 무한한 상상의 원천이 되었다.
특히 소금은 작가의 인생을 상징하는 메타포와 같다. 바닷물이 뜨거운 태양 아래서 몸을 깎고 졸여내어 마침내 하얀 결정체가 되듯, 작가의 수필 역시 삶의 쓴맛과 짠맛을 온몸으로 받아낸 뒤 얻은 영혼의 결정체다. 비가 오면 소금 농사를 망칠까 전전긍긍하던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인생의 불가항력적인 운명을 배웠고, 거친 파도를 넘는 '파도타기'의 지혜를 터득한 작가는 이제 어떤 풍랑 앞에서도 "오~ 예!"를 외칠 수 있는 슬기로운 항해사가 되었다.
4. 인동초 사랑, 연민으로 완성된 관계의 미학
표제작인 〈인동초 사랑〉은 이 수필집의 정서적 클라이맥스다. 작가는 남편의 태생적 아픔과 외도, 고부갈등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치명적인 상처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그러나 그 시선은 원망에 머물지 않는다. 작가는 남편의 방황 이면에 숨겨진 '서출(庶出)'이라는 태생적 그늘과 인정받고 싶어 했던 고독한 투쟁을 읽어낸다.
그것은 '연민'이다. 남편을 한 남자로 보기 이전에 상처받은 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그 깊은 긍휼의 마음이 바로 겨울의 모진 추위를 견디고 꽃을 피우는 '인동초'의 생명력과 닮아있다. 배신감을 견디며 안방에 더블 침대를 들여놓았던 것은 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그의 결연한 의지였다.
5. 잊히지 않는 존재를 향한 여정
작가는 100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의 글을 읽으며 자신의 초상화를 되돌아본다. "초상화는 평생을 걸려 그려도 완성될 수 없다."던 브라질에서 만난 목사의 말을 빌려 작가는 여전히 변주하는 자신의 삶을 기록한다. 이제 팔십의 나이, 육체의 쇠락과 '잊혀짐'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하는 시기임에도 작가는 멈추지 않는다.
그는 영화 〈내가 죽기 전에 가장 듣고 싶은 말〉을 언급하며, 단순히 사랑한다는 말보다 "당신은 잊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한다. 이 수필집 ≪인동초 사랑≫은 바로 그 '잊히지 않는 존재'가 되기 위한 작가의 고귀한 분투기이다. 브라질과 독일의 동포들을 만나 그들의 이민사를 기록하고, 후배 문인들에게 따뜻한 격려를 건네는 작가의 행보는 이미 수많은 독자의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는 무늬를 새기고 있다.
목차
목차
저자의 말 | 사랑, 회복중이다 ㆍ 4
해설 | 최원현 ㆍ 223
인동(忍冬)을 넘어 향기로 다시 피어나는 삶의 서사
1. 문학이 주는 위로
삼상사(三上思) ㆍ 10
나를 짓궂게 놀리는 운명 ㆍ 13
액세서리 ㆍ 17
해 질 녘 ㆍ 21
문학이 주는 위로 ㆍ 26
멘토에 대하여 ㆍ 30
다섯 살 즈음 ㆍ 34
존재의 의미 ㆍ 38
나의 초상화 ㆍ 42
인동초 사랑 ㆍ 46
거리의 악사 ㆍ 50
내가 받은 황금알 ㆍ 55
2. 다시 시작하자
깃발 ㆍ 60
두 번째 키스 ㆍ 67
풍경이 있는 찻집 ㆍ 73
감추기 힘든 비밀 ㆍ 78
보고 싶지만 보이지 않는 것 ㆍ 83
환상 여행 ㆍ 87
스쳐간 인연 ㆍ 93
다시 시작하자 ㆍ 98
삶의 변주곡을 찾아서 ㆍ 102
내 옆구리를 찔러 줘 ㆍ 107
두 여자 ㆍ 111
그녀 ㆍ 117
다시, 언니 ㆍ 122
3. 행복 만들기
살고 싶어요 ㆍ 130
텃밭 이야기 1 ㆍ 134
텃밭 이야기 2 ㆍ 138
텃밭 이야기 3 ㆍ 142
모촌 선생의 삶과 문학 ㆍ 146
열정과 끈기의 만년 청년 ㆍ 150
추억 속의 연가 ㆍ 154
우리들의 찬란한 시절 ㆍ 158
파도타기 ㆍ 163
지지(知止) ㆍ 167
리더십 부재 ㆍ 170
4. 주막에 앉아
주막에 앉아 ㆍ 176
손의 역사 ㆍ 179
여행 가방에 대한 소회 ㆍ 183
나에게 주고 싶은 선물 ㆍ 187
감회가 새롭다 ㆍ 191
나도 행복한 국민이 되고 싶다 ㆍ 193
정신이 아프다 ㆍ 197
마음에 작은 방울 하나 ㆍ 207
문학인으로 살아가는 즐거움 ㆍ 213
나의 수필 쓰기 ㆍ 218
해설 | 최원현 ㆍ 223
인동(忍冬)을 넘어 향기로 다시 피어나는 삶의 서사
1. 문학이 주는 위로
삼상사(三上思) ㆍ 10
나를 짓궂게 놀리는 운명 ㆍ 13
액세서리 ㆍ 17
해 질 녘 ㆍ 21
문학이 주는 위로 ㆍ 26
멘토에 대하여 ㆍ 30
다섯 살 즈음 ㆍ 34
존재의 의미 ㆍ 38
나의 초상화 ㆍ 42
인동초 사랑 ㆍ 46
거리의 악사 ㆍ 50
내가 받은 황금알 ㆍ 55
2. 다시 시작하자
깃발 ㆍ 60
두 번째 키스 ㆍ 67
풍경이 있는 찻집 ㆍ 73
감추기 힘든 비밀 ㆍ 78
보고 싶지만 보이지 않는 것 ㆍ 83
환상 여행 ㆍ 87
스쳐간 인연 ㆍ 93
다시 시작하자 ㆍ 98
삶의 변주곡을 찾아서 ㆍ 102
내 옆구리를 찔러 줘 ㆍ 107
두 여자 ㆍ 111
그녀 ㆍ 117
다시, 언니 ㆍ 122
3. 행복 만들기
살고 싶어요 ㆍ 130
텃밭 이야기 1 ㆍ 134
텃밭 이야기 2 ㆍ 138
텃밭 이야기 3 ㆍ 142
모촌 선생의 삶과 문학 ㆍ 146
열정과 끈기의 만년 청년 ㆍ 150
추억 속의 연가 ㆍ 154
우리들의 찬란한 시절 ㆍ 158
파도타기 ㆍ 163
지지(知止) ㆍ 167
리더십 부재 ㆍ 170
4. 주막에 앉아
주막에 앉아 ㆍ 176
손의 역사 ㆍ 179
여행 가방에 대한 소회 ㆍ 183
나에게 주고 싶은 선물 ㆍ 187
감회가 새롭다 ㆍ 191
나도 행복한 국민이 되고 싶다 ㆍ 193
정신이 아프다 ㆍ 197
마음에 작은 방울 하나 ㆍ 207
문학인으로 살아가는 즐거움 ㆍ 213
나의 수필 쓰기 ㆍ 218
저자
저자
한동희 〈한국수필〉로 등단(1986)
(사)한국수필가협회 부이사장, (사)한국문인협회 고양시 회장
제12대 한국수필작가회 회장, 미리내 수필문학회 초대회장
(사)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 (사)국제PEN 한국본부 이사 역임
한국수필작가회 창립회원
(사)대한주부클럽연합회 여성의 집 수필반 강사
일산문학학교 수필반 강사 역임
브라질한인회(회장 신수현) 초청, 방문하여
〈브라질 한인이민역사 30주년기념 사업〉
교민 60여 명 인터뷰 취재 겸 수필 강의
(브라질 한인회관 1991~1992)
파독 간호사회 초청, 방문하여 수필 강의(2009)
현) 한국문인협회, 문학의 집 서울 회원
(사)한국수필가협회 자문위원
수상
제17회 한국수필문학상(1999)
고양시 예술문화상 문학부문 (1999)
수필집 ≪사람, 그 한사람≫(1991)
≪느낌표처럼 사랑했다≫(1996)
≪소금꽃≫(2005)
≪숙제, 그리고 축제≫(2012)
≪인동초 사랑≫(2026)
6인 공저 ≪여섯 빛깔 숲으로의 초대≫(2026)
수필선집 ≪퀼트와 인생≫(2014)
(사)한국수필가협회 부이사장, (사)한국문인협회 고양시 회장
제12대 한국수필작가회 회장, 미리내 수필문학회 초대회장
(사)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 (사)국제PEN 한국본부 이사 역임
한국수필작가회 창립회원
(사)대한주부클럽연합회 여성의 집 수필반 강사
일산문학학교 수필반 강사 역임
브라질한인회(회장 신수현) 초청, 방문하여
〈브라질 한인이민역사 30주년기념 사업〉
교민 60여 명 인터뷰 취재 겸 수필 강의
(브라질 한인회관 1991~1992)
파독 간호사회 초청, 방문하여 수필 강의(2009)
현) 한국문인협회, 문학의 집 서울 회원
(사)한국수필가협회 자문위원
수상
제17회 한국수필문학상(1999)
고양시 예술문화상 문학부문 (1999)
수필집 ≪사람, 그 한사람≫(1991)
≪느낌표처럼 사랑했다≫(1996)
≪소금꽃≫(2005)
≪숙제, 그리고 축제≫(2012)
≪인동초 사랑≫(2026)
6인 공저 ≪여섯 빛깔 숲으로의 초대≫(2026)
수필선집 ≪퀼트와 인생≫(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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