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의 버릇
이정선 에세이집
『원의 버릇』을 읽고 많은 것을 새롭게 안 사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수필집에서 에세이집으로 고쳤을까. 수필은 한 편 한 편이 독립적이어서 정신 바짝 차리고 읽어야 한다. 글에는 숙제와 같은 ‘부득이지문’이 있다. 비록 ‘후기’를 쓰겠다는 부득이한 마음이었지만 교정까지 보면서 통독했으니 저자인 이정선 빼놓고 이렇게 꼼꼼하게 읽은 독자는 없을 것이다. 엄숙하신 나의 큰 외숙이 당신의 출입 두루마기를 갓 시집온 어린 손부가 다리다 눌려버리고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 있을 때 “다리미가 태웠지 네가 태웠냐!”고 한 말씀은 유머의 극치다. 유머(해학)의 본질이란 심각한 것(상황)을 심각하지 않게 말함으로써 그 긴장된 심각한 상황을 일시에 누그려 뜨려 놓는 것이다. 내가 교수 재직 시에 이런 사례를 알았더라면 ‘유머’의 본질을 설명하는데 좋은 본보기로 이용했을 것이다. 나도 외숙을 닮아서였을까. 1970년 지리산 산행을 마치고 진주의 어느 이발소에 들려 이발을 할 때 여종업원이 저희들끼리 낄낄 대며 수다를 떨다가 내 뺨을 제법 크게 베어 놓고 말았다. 그 때 화가 났지만 마침 컵이 있기에 먹는 물 한 컵을 청했더니 행여 그 물로 흐르는 피를 닦는 줄 알고 그 종업원이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물 한 모금을 마셔 푹 뿜는 시늉을 하고 나서 물을 삼키고는 “물이 안 새는 것 보니 다행이네”라 했더니 사람들이 다 웃었다. 이것이 바로 유머의 요체인 것이다. 이정선은 나에게 유머의 좋은 사례를 일깨워 주었다. - 김병욱(문학평론가, 문학박사) 해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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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김병욱(문학평론가, 문학박사)
이정선의 에세이집 『원의 버릇』을 읽고 나니 여러 가지 감회가 새롭다. 그녀는 자신의 고향집에 '수필가 이정선 생가'라는 표짓돌을 세웠다. 나는 흔히 '누구의 생가'라는 것은 유명 문인들에게만 그러는 것으로 여겨왔었는데 그것을 보니 이정선의 성격이 들어나는 것 같아 가벼운 웃음이 나왔다. 아하, 이정선은 수필가가 된 것을 무척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고 자기의 고향집 또한 역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내 마음 속에는 외가집만 있었고 작은 외숙댁 새집은 내 외가의 부속 건물로 생각해왔는데 앞으로는 '새집'은 이정선이 태어난 집으로 잘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서울 아현동에서 태어나서 5살 때 외가에서 2km 떨어진 구읍 성산리 상풍으로 이사를 했고, 내 큰집은 30리 떨어졌으니 어렸을 때부터 친척하면 외가만 생각날 정도로 외갓집 사람들과 가깝게 지냈다. 외가에 가면 작은 집인 새집도 으레 들렸다. 어린 내 생각으로 새집이 큰 집보다 규모는 작지만 시골집으로는 잘 지어진 집으로 여겼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정선도 자신의 고향집에 대한 강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수필가라는 자긍심과 고향집을 사랑하는 마음이 표석에 새겨졌다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하다. 나는 딱히 고향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대답을 망설이는데 뚜렷한 고향집을 가진 그녀가 부러울 뿐이다.
에세이집 『원의 버릇』에 관류하는 정신은 '동기애'와 '충만한 호기심'이라고 할 수 있다. 딸 일곱에 아들 하나인 동기간이 인생의 노년에서도 화기애애하게 돈독한 정을 나누는 것을 보면 이정선은 분명히 복 받은 여자다. 뿐만 아니라 나의 외갓집(그녀의 큰집)의 형제들과도 한 형제처럼 지내는 것이 책의 곳곳에 보인다. 나는 4남매이지만 우리 외가에 비하면 그저 대면대면 대하는 편이라 마음속으로 늘 부럽게 생각하고 있다.
이 에세이집에는 여행기 또는 여행에서 느끼는 감상의 조각들이 주옥 같이 녹아 있다. 나도 세계 여러 곳, 그리고 국내도 많이 여행을 했지만 동기간들과 같이 여행을 간 적이 거의 없다. 하지만 저자 이정선은 동기간과 여러 번 여행을 한 것을 보니 좀 숙연해지기도 한다.
수필의 길은 오솔길이고 악기로 치면 플룻이나 클라리넷과 어울릴 것이다. 이정선의 에세이에 좀 아쉬운 것이 있다면 음악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음악이라면 클래식이나 국악을 가리지 않고 듣는 편이다. CD만도 6천장이 넘고 은퇴 후에는 하루에 3~4장은 듣는 편이니 그저 귀가 황홀할 뿐이다. 만약 그녀가 음악을 좋아한다면 내가 이미 여러 장의 CD를 선물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하루가 30시간이라도 모자랄 판에 무슨 한가한 소리를 하느냐고 반문하면 어쩔 수 없지만 시나 수필을 쓰는 사람들에게 음악은 창작의 원천이 되어줄 것이다. 달이 뜬 밤에 조용히 흘러나오는 플륫 음악을 들으면 마음의 청량제가 될 것이다. 나는 20세기 구소련의 최고의 트럼팻 연주자였던 독스쳐의 음반을 들으면 가슴이 뻥 뚫릴 것 같아 장거리 운전을 할 때는 3~4장을 준비해 간다. 우리는 어떨 때 말을 못해 안달이지만 입을 닫고 귀만 열어두는 것도 삶의 큰 지혜일 때가 많다. 나는 읽은 책이 수천 권에 달하고 말도 잘 하지만 귀만 열어 놓고 있을 때가 많다. 진정으로 말을 잘 하는 사람은 경청하는 사람일 것이다.
흔히 여행은 목적지가 어디냐, 그리고 날씨, 마지막으로 누구와 동행하느냐에 달려 있다. 제일 좋은 여행은 마음에 맞는 사람과 함께 할 때다. 이정선의 글에는 여행담이 많다. 그래서 앞으로 여행담을 한 권 묶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살다가 보면 횡재 아닌 횡재를 할 때가 있다. 나는 1999년 7월엔 미국의 그랜드 캐년과 요세미테 국립공원, 10월 16일에는 금강산여행, 12월 14일에는 중국의 항주를 여행했다. 지금 생각해도 미국의 절경과 한반도의 절경, 중국의 절경을 한 해에 다 볼 수 있었다니 꿈만 같다. 그런데도 각각의 곳을 다녀온 기행문을 남기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그래서 금년 여름 러시아의 블라디보스독, 하바로브스를 거쳐 이르쿠츠크와 바이칼의 알혼섬까지 시베리아 철도를 이용한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이번에는 작심하고 긴 기행문을 꼭 써 보려한다.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누가 그랬던가. 여행은 돌아오는 기쁨 때문에 떠난다고. 나는 젊은 날에 남한의 산들을 거의 다 올라 봤다. 진정한 산행자는 배낭이 더 업어달라고 칭얼거리는 소리를 감지하는 사람일 것이다. 이정선에게 여생동안 효자효부와 더불어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좋은 기행문을 남기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중앙아시아 키르기스탄에 해발 1,600m에 있는 거대한 호수 '이식 쿨'에 꼭 가보라고 권한다. 아울러 그 호수를 배경으로 한 키르기스탄의 국민작가 징기스의 「하얀배」(장편소설), 우리나라 윤후명의 「하얀배」(단편소설)를 꼭 읽고 가기 바라며 '이식 쿨'을 보고나서 비교 감상하기 바란다. 해발 3~4천 미터의 설산에 둘러싸인 호수의 풍경은 너무나 황홀하여 눈을 감을 수밖에. 다행히 이 '이식 쿨'을 다녀온 기행문은 15장 정도로 써 놨다. 실은 이번 6월 15일에 떠나는 러시아 여행도 두 번째인데 일행이 달라 다시 가기로 했다.
릴케가 말했던가, 현대인은 '고향을 잃은 사람'이라고. 그래서 현대인은 뿌리 뽑힌 나무처럼 흉측한 몰골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고향을 떠나보지 않은 사람들은 고향을 말하지 말라. 경상남도 쌍계사 계곡에서 들었던 '고향돌'이야기는 지금 기억에도 가슴이 시리다. 고향을 등질 때 개천에서 반들반들 자잘한 돌멩이를 주어가지고 가서 향수병에 걸렸을 때 그 돌멩이를 맹물에 끓여 마시면 향수병이 낫는다는 그 돌이 바로 고향돌이란다. 1969년에 답사 가서 들은 이야기인데도 아직도 기억에 너무나 생생하다. 어떤 사람은 어이없다는 듯 '맹물에 돌멩이 삶아먹는 싱거운 소리'하고 자빠졌네라 할 지 모르지만 타향살이에 지친 실향민에게 명치끝이 찡하게 저려 올 것이다. 내 비록 진정한 고향이 아니지만 일 년에 한두 차례 외가를 찾는 것은 수구초심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이정선과 나는 고향에 대한 향수의 일부를 나눠가지고 있다.
나는 친할아버지도 시인이셨고 외할아버지도 시인이셨다. 이정선의 친할아버지가 나의 외할아버지시다. 작년에 외할아버지 『시은집』을 상재하는데 외손인 나도 작은 보탬을 한 것이 은근히 자랑스럽다. 올 4월 중순에 자신의 수필집을 내겠다는 말에 그러면 발문내지 해설은 내가 하겠다고 해 놓고 좀 시일을 끌었는데 차마 재촉도 못하고 발을 동동거렸을 것을 생각하면 미안, 미안할 따름이다. 이런 후기에 평론가랍시고 매 작품 평을 한다면 그건 바보일 것이다. '낙천당(樂泉堂)'에서 조촐한 출판 기념회를 가질 때 내려가서 몇 마디 덕담을 해 줄 기회가 있을지 기다려진다. 그첨저첨 그래서 고향, 외가에 한 번 더 갈 구실이 생겼기 때문이다.
『원의 버릇』을 읽고 많은 것을 새롭게 안 사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수필집에서 에세이집으로 고쳤을까. 수필은 한 편 한 편이 독립적이어서 정신 바짝 차리고 읽어야 한다. 글에는 숙제와 같은 '부득이지문'이 있다. 비록 '후기'를 쓰겠다는 부득이한 마음이었지만 교정까지 보면서 통독했으니 저자인 이정선 빼놓고 이렇게 꼼꼼하게 읽은 독자는 없을 것이다. 엄숙하신 나의 큰 외숙이 당신의 출입 두루마기를 갓 시집온 어린 손부가 다리다 눌려버리고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 있을 때 "다리미가 태웠지 네가 태웠냐!"고 한 말씀은 유머의 극치다. 유머(해학)의 본질이란 심각한 것(상황)을 심각하지 않게 말함으로써 그 긴장된 심각한 상황을 일시에 누그려 뜨려 놓는 것이다. 내가 교수 재직 시에 이런 사례를 알았더라면 '유머'의 본질을 설명하는데 좋은 본보기로 이용했을 것이다. 나도 외숙을 닮아서였을까. 1970년 지리산 산행을 마치고 진주의 어느 이발소에 들려 이발을 할 때 여종업원이 저희들끼리 낄낄 대며 수다를 떨다가 내 뺨을 제법 크게 베어 놓고 말았다. 그 때 화가 났지만 마침 컵이 있기에 먹는 물 한 컵을 청했더니 행여 그 물로 흐르는 피를 닦는 줄 알고 그 종업원이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물 한 모금을 마셔 푹 뿜는 시늉을 하고 나서 물을 삼키고는 "물이 안 새는 것 보니 다행이네"라 했더니 사람들이 다 웃었다. 이것이 바로 유머의 요체인 것이다. 이정선은 나에게 유머의 좋은 사례를 일깨워 주었다.
앞에서 나는 이정선에게 기행 수필을 권했는데 한 가지 더 보탠다면 이야기가 있는 서사 수필을 권하고 싶다. 요즈음 '스토리텔링'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르는 어중이떠중이들이 그것을 떠들어대는데 이야기를 담고 있는 수필을 써보기 바란다. 이야기는 인간이 시간을 담는 그릇으로 발명해낸 것이다. 이야기만큼 많은 뜻을 담고 있는 말도 드물 것이다. 우리는 이야기 바다에서 항해하는 탐험가들이다. 다음에는 이정선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목차
목차
8 축하의글 금파 이정선/한영자
1 원의 버릇
20 산두릅의 무장 해제
23 원의 버릇
27 연근 속의 시방세계
29 라온 사랑
33 봄의 들머리, 청황
36 거울 세포
40 사랑 발자국
43 송침지미松針之美
46 시간의 도장
51 달 무덤
2 보고 싶다 정선아
56 모순과 타협
60 블루의 봄나들이
63 가을 쑥 향기
66 꽃몸살
69 꿈 너머 꿈
72 불똥김치
76 생가 표짓돌
79 엿 피리
81 보고 싶다 정선아
85 토마토 사위
3 날개 달린 꽃
92 밥알 하나
95 날개 달린 꽃
97 또 하나의 손
101 꽃신 신고 봄이 왔어요
103 외손녀가 내 시를 망쳤노라
106 재치 만점 내 강아지
109 존재의 이유
111 윤초
114 에너지가 없어졌어요
117 전원 어린이집, 포공영 선생님들께
4 고구마 비둘기의 푸념
120 감초
123 고구마 비둘기의 푸념
127 추어탕
130 잊고, 잇고, 있고
133 파랑 차오르듯
136 합환주
139 씨앗의 길
141 천군만마가 몰려온다
145 天平地平
148 내 안에 묘수가
5 구미계
152 글자 한 자의 인연
157 십장생 보물 찾기
161 구미계
165 모질이
168 얼음판의 상륙
171 배신자의 멍에
174 사면대불의 서원
176 사바사나
180 소리 없는 전쟁
183 담쟁이넝쿨 사이에 뜨는 달
6 속삭이는 열매
188 가게 밖의 난롯불
191 땅 속 지주목
194 딛는 걸음걸음 개구리 울음소리
199 바윗돌 연정
202 샐빛을 뚫고 빛의 세계로
210 속삭이는 열매
214 아픔이 다른 아픔에게 내미는 손
218 주사위 속 비밀
220 파훼, 그 아름다움
224 공작 품에 안기어
7 당구 3년 음풍월
232 영호남, 진주 배양기
237 당구 3년 음풍월
243 사람의 집
246 인문 향기 그윽한 월봉서원
256 담보된 즐거움
261 늦바람
264 갈피표
268 자세
272 알 수 없을 거야
275 장성호에 얼비치는 시서화 물결
279 해설_수필의 길, 인생의 길/김병욱
284 작가 연보
저자
저자
· 불명 靑蓮華
· 전남 장성 출생
· 1992년 《한맥문학》으로 등단
· (사)영호남수필문학협회 상임이사
· 광주 국제펜, 광주문인협회 이사,
· 한국문인협회, 광주여류수필, 광주수필문학회원
· 영호남수필문학협회 광주지역회장, 광주여류수필회장, 국제펜 광주부회장 역임
· 네잎클로버 동인
· 영호남수필문학 대상, 광주문학상, 허균문학상 본상, 국제펜광주문학상 수상
· 수필집 『부딪치며 사랑하며』 『걸림돌을 디딤돌로』 『원의 버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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