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식동물의 피(시와사람 서정시선 2)
이은봉 시선집
이은봉 시선집 [초식동물의 피]. 《일기 ―1987년 4월 20일》, 《코스모스, 가 바로 사람인 것을》, 《호박넝쿨이 자라는 속도라니!》, 《내 안의 외뿔소》, 《바람이 좋아하는 것》등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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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화엄의 바다를 찾아가는 보살행
김 영 호 (문학평론가)
시인 이은봉은 한결같다. 이제 법률적인 노인의 나이가 되어 대학 강단을 떠나는 정년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꾸준한 창작활동으로 예전 문학청년의 순수하고 뜨거운 열정을 오롯이 지켜내고 있다. 그 열정은 다양한 체험과 오랜 경륜으로 푹 삭여져 보다 넉넉하고 너그러운 모습으로 계속 진화하고 있다. 그는 정년퇴직으로 공적 삶의 한 매듭을 짓게 된 기념으로 그간에 내놓은 11권의 서정시집에서 126편의 시를 골라 이 시선집 『초록동물의 피』을 묶는다.
2007년에는 그간 출간한 6권의 시집에서 고른 시선집 『알뿌리를 키우며』를 낸 바 있고, 2016년에는 그간 출간한 9권의 시집에서 고른 시선집 『달과돌』을 낸 바 있는 것이 시인 이은봉이다. 그러니까 이번 시선집 『초록동물의 피』는 그의 세 번째 시선집인 셈이다. 두 번째 시선집은 육필시집이므로 예외라고 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번의 시선집은 첫번째 시선집 이후에 출간된 시집부터 고르지 않고 그의 시집 11권의 모두를 대상으로 다시 고른 만큼 그 성격이 좀 다르다.
2007년 첫 번째 시선집을 내면서 그는 6권의 시집을 내는 과정에 초창기의 자신의 시 작업이 기대와 이상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자신의 창작활동이 세상을 향기로 가득 채워 온통 빛날 것이라는 기대에서 많이 벗어나 그간의 작업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자본주의 근대를 살아가는 고민과 처방을 시로 표현하려 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번의 작업 역시 지금까지의 자신의 시적 작업을 총체적으로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리라 본다.
억압과 절망 속에서도 유쾌한 낙관으로 이를 극복해 왔듯이 그는 먼저 이번 작업과정에서 겪은 멋쩍은 일화를 먼저 고백한다.
"까닭 없이 126이라는 숫자가 나를 계속 유혹했다. 시를 고르며 내내 한심하고 회심했다. 기껏 이러한 정도의 수준에 불과하다니!"
126이란 숫자에 대한 유혹은 아마 화투놀이에서 9를 뜻하는 '갑오' 때문일 테지만, 굳이 이런 걸 순순히 밝히며 뉘우친다. 그런데 이런 일화는 사업가의 경우엔 오히려 자기 미화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대중적 필기구였던 '모나미' 볼펜에 적힌 '153'이란 숫자가 바로 그런 경우다. 기독교인인 회사 대표가 부활한 예수가 다시 뱃사람으로 돌아간 제자들에게 나타나 그물 칠 곳을 알려줘 그물 가득 153마리의 물고기를 잡았다는 성경의 일화에서 따왔고, 또 9를 뜻하기도 하는데, 그의 이런 시도는 결과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시인 또한 그런 유혹을 받을 만하다. 중요한 것은 각각의 시가 나름의 사연 속에 쓰인 만큼 다 소중할 테지만, 선정한 시들이 고른 수준을 보여주면 될 뿐이다. 다만 시인이 그만큼 자기성찰에 민감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번 시선집의 대상이 첫 시선집과 상당 부분 겹치다 보니 첫 시선집에 실렸던 시들이 다 빠진 듯하다. 그래서 처음 여섯 권 시집의 표제작들이 없다는 점이 우선 눈에 띈다. 독자들은 그간 익숙히 보아온 시들이 없어 아마 좀 아쉬운 면도 있으리라 본다. 더구나 시인 스스로 표제작으로 삼은 작품이 없는 만큼, 그의 시적 여정을 살펴보는 이 글의 과정에서 부득이한 경우 이번 시선집에 없는 작품을 살펴보는 경우도 있음을 미리 밝힌다.
지금 그 마음으로
처음 그 마음으로
살아라 한다 목백합나무 잎사귀
위로 고이는 아침 이슬처럼
그렇게 살아라 한다
내가 이런 말 할 수 있을까만 그래도
지금 그 마음으로
그 착한 마음으로
고향 들녘, 송아지 잔등 위
로, 쏟아져 내리는 봄햇살처럼
그렇게 살아라 한다
애초의 마음으로
지금 그 마음으로, 살아라 한다
내가 이런 말 할 수 있을까만 그래도
설레이는 참새의 앞가슴
앞가슴 털의 따뜻함으로
살아라 한다 처음 그 마음으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살아 있을 때까지 살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꿈틀거릴 수 있을 때까지
저기 북한산 연봉 위
늙어 더욱 찬란한 소나무 등걸 하나
청청청, 솟아오르고 있다
솟아오르며 환히 웃고 있다.
-「지금 그 마음으로」 전문
시인은 애초에 가졌던 처음 그 마음을 간직한 채, 순수하고 착하며 따뜻하고 곧게 살아갈 것을 주변의 자연에 빗대 다짐한다. 시인이 대학 1학년 때 아버지가 큰 빚을 져 이사한 용두동 언덕의 낡고 비가 새는 집은 한국전쟁 피난민들이 모여 살던 해방촌에 있었고(「용두동집」), 그는 이곳에서 자취생활을 하며 독서에 몰두하거나, 친구들과 다방에 모여 "오늘이며 내일의 역사를 지껄여대다" "조국이니 민중이니 하는 말들"에 가슴을 치며 "반유신의 불화살로 날아가고 싶어 온몸이 뾰쪽뾰쪽 날이 서기도" 한다(「싸락눈, 대성다방」). 급기야는 순수한 이상을 이루려 눈 오는 날 독재에 저항하다 스스로 감옥행을 택한 친구도 생겨, 그의 순수하고 드높은 이상을 떠올리며 그를 걱정하기도 한다(「스스로 걸어 들어간 녀석은 지금」). 그래서 그의 초기 시는 유신독재의 억압을 어둠과 겨울, 눈보라, 그리고 죽음으로 비유하면서, 그에 분연히 맞서는 자유와 평등과 사랑의 혁명을 예감하는 역사의식을 보여준다.
죽음 속에서 죽음의 풀밭 속에서
싹이 튼다 죽음의 뿌리를 뚫고
그렇다 사랑의 싹이다
죽음이여 이윽고 사랑의 어머니여
긴 겨울이 끝나고, 겨울의 눈보라가 끝나고
어둠 가운데, 어둠의 긴 동굴 가운데
싹이 튼다 죽음의 뿌리를 뚫고
그렇다 자유의 싹이다
죽음이여 끝없는 자유의 아버지여
죽음을 먹고, 푹 곰삭은 죽음의 심장을 먹고
기어코 생명의 꽃대궁 솟아오른다
봄날 아지랑이 솟아오른다
한꺼번에 사랑을, 자유를 밀어올리는
오래 기름진 밭이여 희망이여
배추씨도 무씨도 함께 환호하는
풍성한 식탁의 예감이여
죽음을 먹고, 고통으로 죽음의 심장을 먹고
벅찬 가슴으로 달려가는 수레바퀴
죽음 속에서 죽음의 뿌리 속에서 오히려
찬란한 생명의 운산이 여기 있다 죽음이여
매듭 굵은 이 나라 역사가 비로소 싹을 틔운다.
-「죽음에 대하여」 전문
시인은 어둡고 긴 겨울의 죽음을 이겨내고 희망의 싹을 틔우는, 생명의 깊고 신비한 원리인 현묘지도(玄妙之道)를 본다. 죽음과 사랑이 서로 대립하면서도 어느 임계점을 넘으면 극적으로 융합하는 화엄의 세계를 깨닫는다. 그래서 시인은 위 시에 대응하는 '「사랑에 대하여」'에서,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봄 동산에서 작은 생명들이 자유롭게 살아나는 것을 "배우고, 깨닫는다"고 고백한다. 문제는 이런 배움과 깨달음이 인식 차원의 알음알이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사랑과 자유, 그리고 평등과 해방이 추상적이고 상호의존적인 개념어로만 인식되는 데서 나아가 이를 구체적인 상황에 맞추어 역동적인 활동으로 바꾸어내야만 진정한 변화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 젊은 시인이 폭압적인 군부독재의 위력에 물리적으로 맞서 변혁을 추동하기엔 역부족인 게 엄연한 현실이다. 하지만 그런 극한적인 상황에서도 "우두커니 서 있을 수는 없지" 다짐하며, 그대와 함께 지푸라기라도 뭉쳐 동아줄을 만들어 죽음의 강물 너머로 건너려고 안간힘을 다한다(「길 끝에」). 엄혹한 절망적 상황에 "쓰러지"고 "허우적대"면서도 희망을 향한 지난한 몸짓을 멈추지 않는 이 도저한 믿음이야말로 시인이 가진 뛰어난 미덕으로 보인다.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형편에 맞게 최선을 다하는 이런 자세가 바로 시인을 늘 역사의 현장에 동참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리라.
시인은 이렇게 가야 할 세상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으면서도 겸허하게 자기 자리를 지켜나간다. 그는 늘 열린 마음으로 주변의 작은 자들과 기꺼이 함께한다. 자신이 젊은 시절을 산언덕 동네인 용두동 해방촌에서 살았기에, 길음동이나 미아동 산동네 사람들의 고단함 속에 간직된 인정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하늘 아래 첫 동네인 산동네 사람들은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서로 부대끼며 싸우다가도 서로를 보듬어가며 내일에 대한 희망을 일구어간다. 남루한 살림살이에 날것의 감정으로 살아가는 그들이지만 하늘과 별빛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임을 시인은 안다. "복되어라,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너희 것이라"는 예수의 축복 대상이 바로 이들인 것이다. 이런 역설이 바로 중생과 부처가 하나 되는 화엄의 세계가 아닐는지. 그래서 시인은 산동네에 내리는 솜이불 같은 눈송이를 보며 '설움이면서도 은혜요 희망'이라고 노래한다.
축복이요 함박웃음이요 사랑이요
여기 길음동 산언덕
산언덕 슬레이트 지붕 위에도
덧씌운 루핑 위에도
환희요 떨어져 내리는 기쁨이요
보아도 눈 부릅뜨고 보아도
은혜요 층층이 늘어선 가난을 덮는
한숨을 덮는 솜이불이요 떡가루요
버리고 온 고향 사람들
눈물겨운 인정이요 거친 손마디
덥석 부여잡는 설움이요 반가움이요
무너져 내리는 담벼락
낡아 찢어진 벽보 위에도
일렁이는 추억이요 그리움이요
이따금 바람 불러와
온통 세상 뒤흔들어도
노랫소리요 아직은 벅찬 내일이요
즐거움이요 그리하여 여기
엉덩이를 비비며 모여 사는 사람들
사람들 넓은 치마 섶이요
젖가슴이요 젖가슴으로 껴안는 희망이요.
-「길음동-산언덕 내리는 눈」 전문
시인은 우리나라 중심부인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에서 태어나고 살아가는 이른바 마지널 맨(marginal man), 곧 주변인이다. 물론 나름 일가를 이룬 시인이고 존경받는 대학교수로 사회적으로 성공했어도, 그의 심성과 삶의 행태를 추동하는 힘은 바로 시골사람의 정서다. 그래서 그는 늘 주변 이웃들의 고통과 신음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끝내 외면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붉은 물이 든 사람으로 낙인찍히기도 하고, 한때는 직장에서 쫓겨나 유랑의 시절을 견뎌야 한다. 이렇게 주변인 의식으로 이웃과 소통하는 그는 '달'과 같은 존재다. 태양처럼 뜨겁고 눈부셔 감히 쳐다볼 수 없는 '너무 먼 당신'이 아니라, 소주잔 기울이며 정담을 나눌 수 있는 '이웃의 장삼이사'이다. 그는 존재하지만 자신을 애써 드러내지 않는 '달'과 같으며, 태양처럼 멀리 있지 않고 훨씬 가까이 있다. 그는 이지가지 아픈 사연들을 간직한 채 기울어진 삶을 서로 다독이며 사는 이웃들을 연민의 정으로 가까이 끌어당긴다. 마치 달의 인력이 지구의 자전축 기울기를 안정적으로 유지해줘 계절이 변화하고 물이 뒤바뀌며 생물들이 살아가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듯 달과 같은 주변인들이 있기에 이 세상의 변화와 조화가 가능한 것이니, 그가 "내 몸에는 달이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우리 삶을 살 맛 나게 해주는 세상사의 이치에 다름 아니다. 즉 삶의 근원적인 질서인 원형이정(元亨利貞)의 순리로 살아가고자 하는 시인의 바람을 말한 것이다. "겨울 가을 여름 봄이 아니라/ 봄 여름 가을 겨울"(「봄 여름 가을 겨울」)인 것이다.
내 몸에는 달이 살고 있다 옥토끼의 달, 계수나무의 달, 때 되면 옥토끼는 아직 절구질을 한다 계수나무 그늘 아래 떡방아를 찐다 인절미며 쑥절편, 백설기며 시루떡 함께 나누어 먹는 달은 지금 많이 프다
……흥건히 피 흘리는 달, 아랫도리 절룩이는 달, 내 몸의 물관부를 따라 출렁출렁 뛰어다니는 달……
뚜벅뚜벅 대보름이 다가오고, 마침내 몸 가득 채우는 달, 때로 달은 흘러넘치기도 한다 밖으로 빠져 나가기도 한다 그러면 달빛 너무 지쳐 피빛으로 붉으죽죽하다 그 달빛, 세상 향해 촉촉이 내려앉는 모습, 보고 싶다 아름답게.
-「달」 전문
사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 우주 속에서 지구는 태양계의 가장자리를 차지한 '창백한 푸른 점'으로 어둠에 둘러싸인 외로운 티끌 하나에 불과하다고 천체물리학자 칼 세이건은 말한다. 따라서 우주의 광대함과 장엄함 앞에서 인간은 아주 취약한 존재에 불과하며,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고 한다. 다른 동식물과 유전적 친족관계에 있으며, 우리 몸을 이루는 물질들 ―혈액 속 철분, 뼈 속의 칼슘, 뇌 속의 탄소, 수분 속의 산소 등은 수천 광년 떨어진 수십억 년 전 적색거성들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모두 오랜 별의 자손이고 빛나는 존재인 것이다. 시인의 직관과 상상력을 통해서만 인간과 우주가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성하는 원소들을 통해서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주의 모든 물질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세상의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화엄의 바다이다.
우리나라가 미국 기독교 문명에 의해 근대화되면서 인간 중심의 가치관과 지구 중심의 우주관을 내면화하게 되었지만, 우리의 원래적 영성은 동식물은 물론 사물까지도 공감과 배려의 관계로 보고 있다. 해님과 달님 이야기, '비가 오시네.' 란 표현이나 뜨거운 물도 식혀서 버리고, 감나무에 까치밥을 남겨두는 풍습 등이 이를 증명해 준다. 야생영장류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원숭이나 유인원이 사는 열대우림 지역이나, 야생영장류가 흔한 인도 중국 일본 등의 종교에선 인간과 다른 동물 간에 엄격한 경계를 두지 않는다고 한다. 유독 야생영장류가 없는 유대계 기독교만이 인간을 예외적인 특별한 존재로 취급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시인은 천주교 영세를 받았지만 불교 종립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배운 불교적 교양 때문인지, 인간과 만물이 다 연결돼 있음을 쉽게 받아들이고 이를 시로 형상화하고 있다. '나는 별, 별빛과 태초로부터 연결되어 있으며, 질긴 동아줄로 얽힌 관계임'을 시적 상상력과 직관을 통해 노래한다(「휘파람 부는 저녁」).
나와 남, 나와 자연, 나와 사물이 결국 하나라는 시인의 인식은 특히 '바람의 시'에 잘 드러난다. 물론 바람이 부는 과학적 이유는 기압차 때문에 일정한 방향으로 공기가 흐르는 데서 비롯된다. 그러나 시인에게 바람은 움직이는 생명력이고, 사람의 마음이 자유롭게 모아져 이루는 역사이고,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이루고자 하는 소망이기도 하다(「바람이 좋아하는 것」, 「바람의 파수꾼」). 기독교에서는 세상을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신비스런 힘의 존재(spirit)를 우리 주변에서 움직이는 바람(wind)의 모습으로, 우리 내면에서 움직이는 숨(breath)으로 표현한다. 바람은 초월적이면서도 내재적인 그런 신령한 힘인 것이다. 따라서 타인과 자연 또는 사물 모두에게 이런 신령스런 힘이 내재해 있다고 보게 될 때, 우리는 만물에 대해 자비심과 연민의 정을 갖게 된다. 시인이 시에 드러나는 자신을 '각자 선생'으로 부를 때도 바로 이런 자각 또는 깨달음을 표현하면서, 모두가 다 스스로 이런 자각을 가질 수 있다는 믿음을 동시에 함축하고 있다고 보인다.
시인은 이번 시선집의 표제작을 '「초식동물의 피」'로 정했다. 시인이 동식물은 물론 사물까지도 자신과 하나가 되는 화엄사상을 체화(體化)하고 있음은 이미 앞에서 살펴본 바 있다. 이렇게 만유와 내가 둘이 아닌 하나로 차별 없이 모두 소중한 존재라면, 만유가 서로 평화롭게 공존하는 삶이 가장 바람직한 관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가장 비폭력적으로 실현하는 방법은 바로 피 흘림이 없는 먹을거리인 풀과 채소와 열매를 먹는 초식동물의 삶을 사는 것이다. 이는 성경의 창세기에도 제시되어 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땅 위에 있는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있는 열매를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들이 너희의 먹을거리가 될 것이다.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 위에 사는 모든 것, 곧 생명을 지닌 모든 것에게도 모든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준다"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창세기 1장 29-30절)
생명이 있는 모든 것에게 모든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주었다는 것이다. 물론 상징적인 이야기지만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그렇다고 채식주의자가 되라는 명령은 아닐 것이다. 만유의 폭력적인 관계에서 벗어나라는 가르침을 먹을거리를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리라. 그래서 시인도 들농사를 지어 곡식과 푸성귀를 먹는 선조들의 유전자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표현하는 것이리라. 육식을 혐오하거나 거부하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피를 부르는 욕정에 대한 절제를 당부하는 것이리라. 폭력적인 피 흘림의 관계에서 벗어나려는 마음가짐으로 만물과 평화로운 관계를 이루려는 노력을 통해 우리 삶을 변화시켜 보자는 시인의 예지이리라.
이 땅에서 선조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나는 잘 모른다
염소처럼 작고 조그만 눈, 토끼처럼 크고 두툼한 귀, 수탉처럼 헐떡이는 작은 가슴이 유전자에 박혀있는 것을 보면 선조들 또한 산천초목을 호령하던 사자나 호랑이는 아니었던 듯싶다
그들 역시 기껏해야 마을 주변이나 맴도는 초식동물 따위로 자분자분 들판을 일구며 겨우겨우 목숨을 부지해왔으리라
이런 선조들의 후손인 내가 무릎을 다쳐 지금 절룩이며 걷고 있다
단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을 뿐인 데도 엉성하기 짝이 없는 유전자가 자꾸만 상처를 키우고 있다
그래서일까 입고 있는 옷도 남루해 보이고, 벗고 있는 마음도 남루해 보인다
절룩이는 다리도 남루해 보이지만 이 모든 것이 시간이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내 어찌 모르랴 마음이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초식동물도 동물인 만큼 내게도 와락 더운 피 돌 때가 있다
가슴 가득 별빛으로 설움 쏟아져 내릴 때가 있다
더러는 그리움의 낯빛을 하는 저 별빛…… 용케 잘 견뎌내고 있는 나는 초식동물의 피를 받은 것이 늘 고맙다
출렁이는 강물을 따라 황금 부스러기 달빛을 밟으며 들일을 마치고 성큼성큼 집으로 돌아왔을 선조들을 생각하면 오래오래 아랫배가 뻑뻑해지고는 한다 사랑과 믿음이 생기고는 한다.
-「초식동물의 피」 전문
초록동물로 살아온 또 살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을 담아낸 이 시에 대해서는 앞의 논의만으로 충분하다. 글을 맺으며 한마디 덧붙인다. 한결같은 모습으로 시대가 부르는 삶의 현장에서 늘 작고 조그만 자들과 함께해온 것이 이은봉 시인이다. 유쾌한 낙관으로 절망을 이겨내며, 그동안 만유에 대한 사랑과 공존이라는 화엄의 바다를 찾아가는 보살행을 보여준 시인의 시적 성취와 삶의 자취에 마음 깊이 경의를 표한다. 이런 시인과 가까이 함께한다는 것은 복된 일이라고 여겨 감사한다. 다만 이제 학자로서의 고된 의무에서 자유로워지는 계기를 맞는 만큼, 모처럼 흩어져 살던 가족들과 한자리에 모여 오순도순 정을 나누며 안식을 누리기를 진심으로 빈다. '빨간 맨드라미'처럼 단심을 간직한 노모, 두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을 이겨내고 '기왓장'처럼 시인을 지켜주는 웅숭깊은 아내, 제 앞갈망하며 사는 아이들, 용두동 산언덕에서 함께 유학하던 누이와 동생들까지 봄꽃이 흐드러지게 핀 고향에서 '주산리 꽃잔치'를 벌이며 이웃과 자연과 사물까지 평화롭게 함께 살아가는 '보살행'을 보고 싶다. 그리고 그 길에 기꺼이 함께하고 싶다. 이은봉 시인은 '화엄의 바다를 찾아가는 보살행'을 이미 이렇게 보여주고 있다.
목차
목차
공장 굴뚝들을 보고 있으면 16
스스로 걸어 들어간 녀석은 지금 18
비야 19
길 끝에 20
남새갈기 21
부설학교 ―금자 22
공원 23
눈 24
용두동집 26
부활 ―전태일 28
한강 30
대전에 가면 32
수레바퀴론 34
죽음에 대하여 35
삐삐주전자 36
오월의 뼁끼장이 38
임진각 고무풍선 40
일기 ―1987년 4월 20일 41
버들붕어 42
삼돌이 44
향수 45
계룡산 ―연천봉 46
제2부
길음동 ―산언덕 내리는 눈 50
길음동 ―산언덕의 별 51
미아 6동 52
계룡산 ―고향생각 53
계룡산 ―겨울 삼불봉 54
계룡산 ―신원사에서 55
골짜기 56
하지만 사랑이여 58
코스모스, 가 바로 사람인 것을 59
넘겨다보는 북쪽 60
일기 ―1998. 2. 3. 61
오월 아침 62
詩 ―소낙비 한 줄금 63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64
가로등에 대하여 65
고속도로에서 66
바윗덩어리들아 67
매포역 68
호박넝쿨을 보며 69
안녕, 하고 손 흔드는 대전 70
지금 그 마음으로 72
송이눈의 아침 74
제3부
달 78
강, 산, 들 79
휘파람 부는 저녁 80
사막 81
털 없는 원숭이 82
꽁치 84
꿀벌 한 마리 85
등불 86
허물어야지 벽 되었다면 87
가족사진 88
명옥헌의 달 89
호박넝쿨이 자라는 속도라니! 90
낡은 집 91
섬 92
노파 ―공중무덤 93
카메라 94
묵언의 밤 96
빙판을 달리며 98
땅끝 바다에서 100
눈썹달 102
황홀한 속도 104
동행 106
무인도 108
제4부
서산 마애불 110
빨래하는 맨드라미 111
호숫가 수치심 112
고등어 113
바퀴 달린 구두 114
둥근 슬픔 116
淸明前夜 118
내 안의 외뿔소 120
매화원에서 122
무량사 길 123
양심 124
떠돌이의 밤 125
해바라기 꽃판 126
첫눈 아침 128
똥 밟은 날 130
백반천국 131
봄, 거창에서 132
석모도의 저녁 134
남한민국, 1999년, 봄 135
초식동물의 피 136
삼베빛 저녁볕 137
살쾡이 한 마리 138
쉰 139
제5부
민들레꽃 142
오월이라고 143
주산리 꽃잔치 144
상수리나무들아 146
뻐꾸기 울음 147
집의 집 148
담쟁이넝쿨 149
저 석양 150
발목 잡힌 봄 151
셋집 152
오늘치의 죽음 153
오이 154
소나무 자식 155
앵남역 156
봄바람, 은여우 157
江돌 158
바람이 좋아하는 것 159
쥐똥나무 울타리 160
거친 귀 161
흔들의자 162
평사리 들판 163
싸락눈, 대성다방 164
바람의 파수꾼 166
매미 168
제6부
개구리 170
자벌레 171
낙타 172
분청사기 파편들에 대한 단상 173
홍시 174
잠자리 ―첫사랑 176
땡감 하나 177
4호선 전철 178
캄캄한 집 179
갈 길 180
구절초 181
부소산 길 182
115 |해설| 화엄의 바다를 찾아가는 보살행 /김영호 183
저자
저자
충남 공주(현, 세종시)에서 출생(1953)했다. 숭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1992)를 받았고, 《삶의문학》 제5호에 「시와 상실의식 혹은 근대화」(1983)를 발표하며 평론가로, 《창작과비평》 신작시집 『마침내 시인이여』(1984)에 「좋은 세상」외 6편을 발표하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좋은 세상』, 『봄 여름 가을 겨울』, 『절망은 어깨동무를 하고』, 『무엇이 너를 키우니』, 『내 몸에는 달이 살고 있다』, 『길은 당나귀를 타고』, 『책바위』, 『첫눈 아침』, 『걸레옷을 입은 구름』, 『봄바람, 은여우』 등이 있고, 평론집으로 『실사구시의 시학』, 『진실의 시학』, 『시와 생태적 상상력』, 『화두 또는 호기심』, 『풍경과 존재의 변증법』, 『시와 깨달음의 형식』 등이 있다. 시조집으로 『분청사기 파편들에 대한 단상』이 있다. 기타 여러 권의 편저 및 공저가 있다. (사)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부이사장, 창공클럽회장, 신동엽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고, 한성기 문학상, 유심 작품상, 한남 문인상, 충남시인협회상, 가톨릭 문학상, 질마재 문학상, 송수권 문학상, 시와시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충남시인협회 회장,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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