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역을 지나며(오늘의 시와사람 170)
윤인자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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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 작품론
작품론
生의 비의와 생명성, 그리고 모성성의 변주
- 윤인자 시집 『간이역을 지나며』
강 경 호
(시인, 한국문인협회 평론분과 회장)
1.
시는 시인에게 살아온 궤적을 보여주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말해주기도 한다. 이는 많은 시인들이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시적 발화를 하기 때문인데, 이때 시인의 시는 객관성을 통해 보편적인 인간의 삶에 대해 메시지를 가질 수 있다. 일상에서 만나는 일상과 특별한 인상에 의해 정서적 충격을 받기 마련인데, 시인은 영감을 얻게 되고 그 영감을 시인 특유의 정서와 개성을 상상력으로 직조한다. 이렇듯 경험된 정서적 사건을 시인의 언어로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개성 있는 시적 목소리와 독자와의 공감대를 형성하여 감흥을 얻게 된다.
윤인자 시인의 『간이역을 지나며』는 시제가 암시하듯 노년에 이른 시인의 최근 정서가 투사되어 있다. 그동안 달려온 인생을 뒤돌아보기도 하고 지난 시간에 대해 깊이 회상한다. 몹쓸 병과 투병하며 삶의 허무와 존재의 미래에 대해 불안의식을 드러내는데, 특히 지난 세월의 아쉬움을 통해 삶의 본질을 모색하고 있다.
이렇듯 생명의 의지를 드러내는 그의 시의 한켠에서는 생명의 계절인 '봄'의 환희를 노래하고 있어, 배 농사를 지어온 경험을 바탕으로 생명성을 탐구하고 있다. 이는 존재성을 드러내는 일이 생명을 갖는 일이며, 생명을 통해 사물이 자신만의 정체성을 드러낸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번 시집에서 윤인자 시인이 가장 많이, 천착하는 세계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안타까움, 연민, 그리움의 정서이다. 어머니가 쪄준 옥수수를 먹던 기억, 늘 장독대 항아리를 반질반질 윤이 나게 닦던 정성, 치매기로 기억이 흐려지면서도 자신을 잊지 않으려는 안간힘, 놋쇠 요강에 얽힌 어머니와 자식들의 에피소드, 어머니가 일구던 밭, 그리고 어머니 돌아가신 슬픔과 제삿날 회상하는 시편 등에서 어머니를 사모하는 정이 그리움으로 전이된다.
그리고 압해도에 시집와 살면서, 일상에서 만나는 다양한 정서를 통해 시인의 삶을 보여준다. 공동체적인 삶, 과수원에서 생긴 일, 비 오는 날의 부침개 등 수많은 일상이 정겹다.
이 시집은 윤인자 시인의 시가 지향하는 지점이 보편적이고 인정이 넘치는 세계라는 것을 말해주는데, '시는 현실을 반영한다'는 서정시의 명제를 실천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더불어 그의 자신의 삶과 윤리적 주체로서 모범적인 삶의 양태를 보여주고 있어 온기와 감흥을 잔잔하게 전해준다.
2.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친다. 윤인자 시인은 이 과정에서 노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자연의 순환 과정의 한 부분으로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못한다. 언젠가는 자연으로 돌아가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수많은 역을 거쳐 숨이 가쁜 열차
때로는 비가 내리고, 때로는 눈이 내리는
길고 긴 레일을 타고 달려왔다
내 고향 남녘 강진에서 시작된 여행
세월의 플랫폼에서 인연을 맺고 이별하는
종착역이 어딘지도 모르는 열차는
레일을 이탈하여 상처를 입기도 하고
사랑을 만나 행복하기도 했다
열차에 몸을 실은 나는 철로에서
가슴이 뛰고 설레며 미지로 달려간다
이제 서서히 저녁 햇살 눈부신
황혼, 하늘나라 역으로 가는 길목에서
후회하지 않을 만큼 잘 살았어,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간이역을 지나치며
지나온 뒤안길을 다시 뒤돌아본다.
- 「간이역을 지나며」 전문
「간이역을 지나며」에서 시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길을 가는 열차로 설정한다. "수많은 역을 거쳐 숨이 가쁜 열차"여서 레일을 타고 목적지로 향하고 있다. 그동안 "때로는 비가 내리고, 때로는 눈이 내리"는 길을 거쳐 왔다. 뿐만 아니라 "종착역이 어딘지도 모르는 열차는/ 레일을 이탈하여 상처를 입기도 하고/ 사랑을 만나 행복하기도 하였다"고 고백한다. 강진에서 태어나서 압해도에 시집와 사랑하는 반려자와 살아오는 과정을 열차에 비유하여 자신의 삶을 노래하고 있다.
인생은 종점도 도착시간도 알 수 없는 것이어서 시적 화자는 "가슴이 뛰고 설레며 미지로 달린다"고 한다. 얼마나 달려왔을까. "이제 서서히 저녁햇살 눈부신/ 황혼, 하늘나라역으로 가는 길목"에 접어들었음을 느낀다. 시적 화자의 진술처럼 황혼녘에 이른 열차는 그동안 간이역을 지나면서 내리는 사람들의 삶을 지켜보며 자신을 뒤돌아본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을 만큼 잘 살았어"라고 말할 수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작품은 궁극적으로 삶을 통찰하면서 성찰에 이르고자 하는 시적 화자의 소망이 배어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종점이 어디인지 모르지만, 후회하지 않는 삶이 되기를 바라며 삶을 완성하려는 것이다.
인생은 그저 평탄하지 않아서 수많은 난관을 만나기 일쑤이다. 시인은 투병 중이다. 생사를 가름하는 병을 이기기 위해 노력을 다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시적 화자인 시인은 온갖 불안의식으로 가득 차 있을 수밖에 없다. 시적 화자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 대해 많은 생각을 드러내고 생에 대해 깊은 통찰을 하고 있다.
누군가 암에 걸렸다는 소리를 들어도
담담했던 마음에
소용돌이가 휘몰아친다
몇 날 며칠 내 마음에
태풍이 불고 파도가 범람한다
하필 나에게 몹쓸 것이 찾아오다니,
암은 관념이 아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어서
인생이 허무하고
아웅다웅 살아온 날들이 후회스럽다
벼랑 끝에 핀 꽃처럼
바람에 파르르 떨며
염천에 한기가 돈다
이제 얼마나 남았을까?
저기가 거기인가?
끝자락이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을 때,
그 지긋지긋한 것
나를 괴롭히는 너를 쓰러뜨리겠다
암이 나를 일으켜 세운다.
- 「암과 함께」 전문
생로병사의 과정은 순탄하지 않다. "누군가 암에 걸렸다는 소리를 들어도/ 담담했던 마음"이었다. 자신에게 닥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필 나에게 몹쓸 것이 찾아오"니 마음속에서 "소용돌이가 휘몰아 친다/ 몇날 며칠 내 마음에/ 태풍이 불고 파도가 범람한다"고 토로한다. 암이 쉬운 병이 아닌 까닭이다.
절망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서정시의 한 효용적 가치이다. "암은 관념이 아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다. 병을 극복하기 위해 시적 화자는 힘든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 과정은 매우 지난한 것이기도 하여 고통스러운 일이다. 누구나 자신은 몹쓸 병에 걸리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막상 병에 걸리면 절망하고 괴로워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마치 죽음이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내적 불안으로 마음에 소요가 일어난다. "인생이 허무하고/ 아웅다웅 살아온 날들이 후회스럽"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벼랑 끝에 핀 꽃처럼/ 바람에 파르르" 떤다고 하는 비유가 말해주듯 시적 화자는 위태로울 수도 있는 불안의식에 휩싸인다. 뿐만 아니라 더운 날씨이지만 몸이 추위를 느끼기도 병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어쩌면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제 얼마나 남았을까"라는 미래에 대한 불안의식이 시적 화자를 괴롭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적 화자는 생명에 대한 의지를 내보인다. "그 지긋지긋한 것/ 나를 괴롭히는 너를 쓰러뜨리겠다"고 한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암이 나를 일으켜 세운다"고 하며, 시제가 말해주듯 '암과 함께'하는 지금의 상황을 생을 일으키는 기제로 작동시키고자 한다.
이 작품은 마음의 동요를 잠재우고 건강한 생명성을 갖고자 하는 시적 화자의 내면 풍경이 독자들에게 강인한 의지와 감동을 준다.
이번 윤인자 시인의 시집에서 생의 비의에 천착한 작품 중에는 시인의 시간관념을 모색하는 시편 「노년의 시간」과 「마음은 스물 몇 살」이 있다. 「노년의 시간」은 떠나는 시간과 다가오는 시간에 대한 진지하고 진중한 질문과 사색이 깃들어 있다. 해마다 오가는 시간의 영속성에서 인간은 유한한 생명의 한계를 지니고 있어 영원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시적 화자는 '시간'을 "어느 누구도 셈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형용할 수 없는 극과 극의 거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인의 인식은 시간을 붙잡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하고 단지 "역사가 한 획을 그은 새해 아침"이라고 한다. 새해를 맞는 나약한 인간 존재의 한계성을 드러낸다. 이러한 태도는 시간에 순응하고, 우주의 섭리 속에 인간 역시 시간처럼 흘러가는 존재라는 태도가 깃들어 있다. 그러므로 새해를 맞는 의식을 "또 그렇게 순식간에 한 살을 더 먹고/ 나이가 들어가는/ 노년의 시간"이라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마음의 스물 몇 살」에서는 "나이는 칠십 대 마음은 이십 대"라며, 마음은 청춘인데 몸은 그렇지 못하다는 말을 상기시킨다. '스물 언저리'는 인생에서 가장 몸이 왕성한 때로 정신적으로도 두려움이 없는 때이다. 그러나 칠십의 나이가 되면 용기가 없어지고 "몸은 늙고 무거워 숨이 차"게 된다. 칠십이어도 마음만 이십 대인 노년의 시간에 대한 시적 화자의 인식은 "그저 야속한 세월만 원망하"게 된다고 하는 최근 시인의 정신 표정을 보여주고 있다.
팔십을 바라보는 윤인자 시인의 정신 지리를 드러낸 「울음」에서는 태어나는 시간으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에 놓여있는 시간의 간극을 묘파하고 있다. "아기에게 울음은 메시지다"라고 한다. 말을 못 하므로 울음으로 배가 고프거나 똥오줌을 지릴 때 아기는 울음으로서 존재를 드러낸다. 성장해서는 "억울하고 분할 때" "누군가가 그리울 때" "즐거울 때" '울음'이라는 감각을 통해 자신을 나타낸다. 그러나 울음을 참음으로써 "팽팽해지는 울음보"가 된다고 한다. 울지 않지만, 울음들이 모여 울음보에 가득한 것이다. 지난 세월 동안 수많은 울음을 참았지만,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리워 눈물을 참다가도 가끔은 "장독대 아래서 숨죽여/ 가만가만 울어본다."고 하여 슬픔과 그리움의 정서를 울음으로 터뜨린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 '울음'이 시간의 간극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으며, 생의 다양한 비의를 표현하는 방식임을 알 수 있다.
3.
윤인자 시인의 삶과 문학은 날마다 마주하는 과수원과 관련이 깊다. 집과 과수원이 등을 맞대고 있어 눈만 뜨면 바라보이는 환경 속에서 살기 때문이다. 변화하는 계절의 흐름도 과수원을 통해 알 수 있으니 생명성에 관한 시인의 시적 발화가 많을 수밖에 없어 생명의 또다른 말인 '봄'을 시로 형상화한 경우가 적잖다. 생장이 일시 멈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과수원에 배꽃이 피고 온갖 봄꽃들이 들풀처럼 기지개를 켠다. 홍매화가 피고 풀꽃들도 함초롬하게 피어나면 대지는 푸르게 짙어온다. 이러한 풍경을 바라보는 시인에게는 특히 생명성에 관한 상상력이 시세계의 주류를 이룬다.
2월의 정원은 고요한 듯하지만
꽃샘추위에 놀란 봄꽃들이 눈치를 보다
수선화 노란 입김이 잔설을 녹이고
황사 방지용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린 봄은
가만가만 꽃샘추위를 밀어낸다
그 틈새를 타고 진달래꽃들은
곧 다가올 3·1 만세운동처럼
깃발을 흔들며 산 아래에서부터 함성이 요란하다
마침내 초록 바람과 함께
집 앞 화단까지 밀고 온 시위대열에
화들짝 놀란 할미꽃 민들레꽃들이
두 손 번쩍 들어 만세를 부른다.
- 「몰래 온 봄」 전문
계절의 변화는 느릿하다. 시적 화자의 말처럼 봄이 몰래 눈치채지 않게 오는 경우가 많다. 2월이면 겨울과 봄의 경계여서 때로 눈이 내려 겨울인 듯싶어 정원은 고요하다. 생명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수선화 노란 입김이 잔설을 녹이고" "가만가만 꽃샘추위를 밀어낸다". 봄은 소리 없이 슬그머니 오는 것이다. 그러나 봄을 상징하는 진달래 꽃들은 분홍빛 화려한 빛으로 "곧 다가올 3·1 만세운동처럼/ 깃발을 흔들며 산아래에서부터 함성이 요란하다". 봄은 몰려오기 시작하면 초록바람과 함께 "집 화단까지 밀고 온 시위대열"이 되어 할미꽃, 민들레꽃 등 온갖 꽃들이 "두 손 번쩍 들어 만세를 부"르는 것이다. 생명을 가진 것들이 만물이 깨어나는 봄날 환호작약하며 푸르름으로 대지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는 모습에서 살아있음을 알리는 것이 아름답다.
봄날의 환희를 노래한 시편이 유독 많은 이번 시집에서 「봄꽃들」은 "불이 지나간 잿빛 속에서 쑥이 고개를 들고/ 꽃들이" "꽃등을 두고 봄을 비춘다"하고, 「봄의 길목에서」는 아직 이른 오월의 들녘에서 곰보배추를 캘 때, "애기똥풀꽃에 긴 빨대를 처박고/ 궁둥이 쳐들고 꿀을 빠는/ 각시나비의 생존방식", "하얀 배추나비 두 마리 얼싸안고/ 봄똥밭으로 숨"는 모습을 통해 신비로운 생명 활동을 알게 된다. 그리고 사랑꾼들의 "혼인잔치로 수선스러"운 봄이 진정한 생명의 계절임을 확인한다.
「봄의 뜨락」 또한 생명의 환희를 노래하고 있다. 골담초꽃, 병꽃, 명자꽃, 모란꽃, 민들레, 할미꽃 등이 꽃을 피워 "바람에 자식들 분가시키는" 왁자지껄한 봄의 뜨락에서 벌어지는 생명활동이 모두 마술을 부리는 것이라고 한다.
「홍매화 분분한 날」에서도 "분홍빛 눈송이"로 형상화한 홍매화 꽃잎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을 사진 찍어 누군가에게 보내고 싶다고 한다. 온갖 꽃들이 피고 지는 모습에서 생명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화자의 마음이 싱그럽게 느껴진다.
생명성을 노래한 위의 시편들은 모두 '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생명의 환희와 아름다움에 취해 감정이 매우 들뜬 상태이다. 그러나 다음의 「늙은 호박」은 단순한 생명성을 넘어 모성성을 잔잔한 정서로 말해주고 있다.
들에서 늙은 호박을 손수레에 실었다
춥지 않게 폭신한 담요 네 겹으로 접어
엉덩이 밑에 받쳐주고 거실에 모셨다
큰 덩이 위에 작은 덩이 겹겹
아기 엉덩이 닮은 골이 진 토실토실한 맷돌 호박
잘 숙성되어라,
주문을 외우며 백제 오층 석탑처럼 쌓았다
봄부터 가을까지 만고풍상 다 겪었으니
겨울엔 집안에서 가족이 되어
썩지 말고 잘 버텨라.
날마다 만져주며 손끝으로 온기를 전했다
동짓날 젤 큰 호박 하나
종자를 받기 위해 칼로 가르는데
탯줄로 뒤엉켜 빈틈이 없이 가득한 뱃속
뼈처럼 하얀 씨앗들이 풍성하다
호박은 늙어야만 제 핏줄을 남기느니
또다시 밭둑에 얼크러져
줄레줄레 새끼들 달고
아이들 유치원에 데리고 가는
어미 모습 선연하다.
- 「늙은 호박」 전문
누렇게 익은 호박을 '늙은 호박'이라고 부른다. '늙다'의 동사가 지닌 감각을 사람에 비유하면 '어미' '노인'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시적 화자는 '늙은 호박'을 "늙어서야만 제 핏줄을 남"긴다 하고 "아이들 유치원에 데리고 가는/ 어미 모습"이라고 한다.
시적 화자는 늦가을쯤 "들에서 늙은 호박을 손수레에 실었다". 그리고 집 안 거실에 놓아두었다. 잘 익은 호박 여러 개를 "백제 오층석탑처럼 쌓았다". "동짓날 젤 큰 호박 하나/ 종자를 받기 위해 칼로" 쪼개니 안에 많은 씨앗들이 들어있다. 사람은 늙어서는 자식을 생산하지 못하지만 "호박은 늙어서야만 제 핏줄을 남"긴다고 한다. 모든 종(種)은 어떤 형태로든 제 유전자를 남겨 생명의 끈을 이어가게 한다. 호박 또한 "또다시 밭둑에 얼크러져/ 줄레줄레 새끼들 달고" "유치원에 데리고 가는/ 어미의 모습"을 할 것이다.
이 작품은 시종일관 의인화법으로 호박을 '늙은이'로 받들고 있다. "춥지 않게 폭신한 담요 네 겹으로 접어/ 엉덩이 밑에 받쳐주고 거실에 모셨다". "아기 엉덩이 닮은 골이 진 토실토실한" "겨울엔 집안에서 가족이 되어" "탯줄로 뒤엉켜 빈틈이 없이 가득한 뱃속" "아이들 유치원에 데리고 가는/ 어미" 등이 그것들이다. 이러한 형상화를 통해 시적 화자는 "봄부터 가을까지 만고풍상 다 겪"은 호박을 '늙은'이라는 형용사에 어울리게 이른바 어른으로 대접하고 있는 것이다.
잘 숙성된 호박을 '늙은 호박'이라고 부르며 인격을 부여한 시적 화자의 의식은 생명성에 대한 인식 태도가 어떠한지를 잘 말해준다.
이외에 생명성을 노래한 「수숫대」도 시간적 공간이 가을이다. 이 작품은 생명의 순환을 잘 보여주고 있다. 콩밭에 드문드문 서 있는 키가 큰 수숫대에서 알맹이가 익어가자 참새 떼가 수수알 빼먹고 간다. 쫓아버려도 다시 몰려오는 참새 떼는 생존을 위해 수수를 먹고자 다시 몰려온다. 햇살 좋고 청명한 가을날 콩밭의 수숫대는 뭉게구름 떡가는 하늘 아래에서 쑥쑥 자란다. 특별한 갈등 구조가 없는 이 작품은 평화롭고 한가한 가을의 한때 풍경을 통해 생명의 순환과 조화로움을 형상화시켰다.
4.
오랫동안 배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윤인자 시인의 삶은 압해도 사람들과 환경에 깊이 동화되었고, 그의 시 역시 압해도라는 한반도 서남해 일우의 일상을 형상화하고 있다. 대부분 시인이 살고 있는 장소와 공간을 시로 형상화하는 일은 '시는 현실을 반영한다'는 명제를 충실히 따르는 것이며, 이는 시의 현장이 시인의 삶을 가장 잘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윤인자 시인 역시 집과 마을에서 마주한 구체적 현실을 통해 시적 정서와 자신이 추구하는 세계관을 노래하고 있다.
그의 시에는 아침부터 과수원에서 들려오는 까치 울음소리, 텃밭에서 푸르게 자라는 작물을 바라보는 농부의 뿌듯한 마음, 무더운 여름 과수원에서 울어대는 매미 소리와 배를 노리는 까치들의 떼울음, 비 오는 날 아이들과 부침개를 부쳐 먹는 즐거움, 겨울 배추밭에서 눈에 덮인 배추를 바라보는 안타까움, 겨울바람 속에서 피어난 애기동백을 바라보는 마음, 압해도 선착장 송공항의 분주한 아침 풍경, 폭설에 막힌 길을 내는 날의 정경 등이 담겨 있다. 이러한 일상과 그 속에서 길어 올린 시적 정서는 시인만의 푸근하고 따뜻한 세계를 보여준다.
아침잠을 깨우며 소란을 피우는
까치 소리
오늘은 누가 오시려나
유독 까치 소리가 청명하다
한 쌍이 장단 맞춰 울더니 이윽고 떼울음을 운다
과수원 집이라 흔한 풍경이지만
창문을 열고 훠이 훠이 까치 떼를 쫓는다
과수원 꽃과 잎과 햇살, 과수원을 지나던 바람까지도
일제히 일어나 어우러져 춤을 춘다
오늘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예감
기분이 좋아진 나는 뒷짐을 지고
콧노래 부르며 과수원을 한 바퀴 둘러본다.
- 「까치 지저귀는 아침」 전문
예로부터 까치가 지저귀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하여, 까치를 길조로 여겨왔다. 아침부터 요란하게 들려오는 까치 소리에 시적 화자는 "오늘은 누가 오시려나" 하고 생각하며 창문을 열어 훠이훠이 까치 떼를 쫓는다. 집 옆에 과수원이 있어 까치 소리를 자주 듣지만, 오늘은 유난히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 기분이 한결 밝아진 시적 화자는 뒷짐을 지고 과수원을 한 바퀴 둘러본다.
서정시는 사회의 불화와 절망 등 어두운 현실에 빛을 비추며, 궁극적으로 유토피아적 세계를 지향한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서정시는 대체로 갈등을 해소하는 구조로 전개된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까치와 인간(시적 화자) 사이의 갈등이 없다. 오히려 까치 소리는 청명하게 울리고, 화자에게는 좋은 일이 다가올 듯한 기분을 안겨준다. 이러한 시적 정서를 반영하여 시인은 "과수원 꽃과 잎과 햇살, 과수원을 지나던 바람까지도/ 일제히 일어나 어우러져 춤을 춘다"고 까치와 인간과의 관계성과 상관없이 주변 풍경들을 섬세한 감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처럼 갈등 구조 없이도 서정시의 본질인 유토피아 지향을 구현하며, 서정시의 한 정형을 선보이는 것이다.
시인이 일군 과수원을 소재로 한 작품들 가운데 「여름 과수원」은, 앞의 작품처럼 까치와의 관계에서 오는 긴장을 그리고 있다. 먹거리가 풍부한 과수원에서 까치가 배를 조금씩 쪼아 상품 가치를 떨어뜨리는 상황에 대해 시인은 "저 얄미운 까치 새끼, 어쩌면 좋아"라고 토로한다. 여름 과수원은 까치뿐 아니라 개구리와 달팽이 등 다양한 생명체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며, 더위에 지친 풀잎들까지 드러눕는 한가한 한철로 묘사된다.
「비 오는 날」은 인정이 넘치는 비 오는 날의 정서를 형상화하고 있다.
창밖에 보슬보슬 빗소리
바람은 하늬바람, 마파람
시집가고 장가가고
철대문은 삐거덕 덜커덩,
양철지붕은 깨갱깨갱 징징 징
꽹과리 치고 징 치고
빗줄기 오락가락 호랑이 장가가는데
어느새 쨍하고 해가 뜬다
엄마의 부엌엔 프라이팬이 지글지글
아이들은 볼이 빵빵 주전부리
부침개가 구워 나오는 죽죽
젓가락이 분주하게 춤을 춘다
서로서로 한 젓가락 더 먹겠다고
젓가락 싸움이 벌어진다
날씨도 장맛비 오락가락
부지런한 사람 일하기 좋고
게으른 사람 낮잠 자기 좋은 날.
- 「비 오는 날」 전문
비 오는 날, 가족의 즐거운 한때를 정겹게 표현하였다. 농경사회에서 비 오는 날은 부침개를 부쳐 먹고 콩을 볶아 먹었다. 비가 내려 농사일을 할 수 없는 날이면 가족이 오순도순 모여 여유롭고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햇빛이 비치다 비가 오면 호랑이가 장가간다고 여겼다. 그런 날, "엄마의 부엌엔 프라이팬이 지글지글" 끓고, "아이들은 볼이 빵빵 주전부리/ 부침개가 구워 나오는 족족// 젓가락이 분주하게 춤을 춘다.", "서로서로 한 젓가락 더 먹겠다고/ 젓가락 싸움이 벌어진다". 보슬비가 내리다가 "장맛비 오락가락"하는 궂은 날은 "부지런한 사람 일하기 좋고/ 게으른 사람 낮잠자기 좋은 날"이다. 부지런히 일하든, 느긋하게 낮잠을 자든, 모두가 평화로운 농촌의 일상이다.
이 작품 또한 서정시의 시적 장치 가운데 하나인 갈등 구조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시적 형식을 갖추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시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불화와 절망에서 화해와 희망으로 나아가는 것이라면, 평화롭고 조화로운 세계를 통해 휴머니즘적 유토피아를 형상화한 이 작품은 서정시의 본질에 충실하다.
다음의 작품들은 윤인자 시인의 일상에서 마주하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가을 비」는 한 해 농사의 결실인 추수를 앞둔 시기에 내리는 가을비로 인해 "태풍에 쓰러진 벼 이삭은 싹이 트고/ 잘 익은 과일들은 썩어간다". 이럴 때면 속이 타는 농심(農心)은 "홍시처럼 환한 날을 불러 오면 좋겠다". "날마다 다디 단 날이 오면 좋겠다"며 과수원을 바라보며 "가을비는 언제 그치려나/ 한 해 농사는 언제 걷어 들이나"라며 소박한 마음으로 가을비를 원망하고 있다.
「해변 산책」은 섬에서 살아가는 시인의 평범한 한때를 그린 작품이다. 해변을 거닐던 중 하늘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지만 그는 피하지 않고 바닷가를 계속 걷는다. 그러다 갈대숲에 앉아 있는 바닷새들을 바라본다. 비가 그친 뒤에는 햇빛에 반짝이는 갈대꽃과 바람에 흔들리는 파도의 소란스러운 움직임을 지켜본다. 지극히 소소한 풍경이지만, 도시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자연의 원초적인 움직임이다. 이러한 풍경 속에서 자연에 동화된 시적 화자의 모습이 겹쳐지며, 자연과 인간의 동일성을 드러낸다.
5.
시에서 자주 쓰이는 언어 중에는 낡고 진부한 것이 많다. '어머니'라는 말 역시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단순한 고유명사나 보통명사의 의미를 넘어서는 존재이기에, 설령 진부하다 해도 결코 낡거나 진부하지 않다. 어머니는 생명의 근원이자 사랑과 희생, 그리고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어머니'라는 말만 들어도 모든 감각이 따스해지고 부드러워지며, 연민과 그리움이 온몸을 전율케 한다.
윤인자 시인에게도 어머니는 특별한 존재다. 그 특별함은 '관계'에서 비롯된다. 태어난 순간부터 시작된 이 관계는 유년 시절은 물론 살아온 세월 전반에 걸쳐, 그리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이어진다. 관계는 시인과 어머니가 함께한 시간 속 서사의 기억으로 엮이며, 마치 모태에서 탯줄로 연결된 것처럼 끊임없이 이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시인 역시 어머니라는 이름을 사랑과 존경, 때로는 슬픔과 기쁨, 연민과 그리움의 정서로 호명한다.
시인의 시 속 어머니는 삼복더위에 여문 옥수수를 쪄 동네 아이들에게 먹이고, 들일 나가기 전에는 행주로 항아리부터 자배기, 옴박지, 방구리, 시루 등 집안의 그릇을 정성껏 닦던 분이다. 유년의 어머니는 해가 저물 때까지 들밭에서 일했고, 노년에는 치매기가 있어도 자신을 버텨 일으켜 세우려 애쓰셨다. 그리고 마침내 세상을 떠난 뒤, 시인은 슬픔을 삼키며 제삿날이 돌아오자 어머니의 일생을 회상하고 그리움을 되새긴다.
한평생
들일하러 나가기 전에
맨 먼저 장독대 항아리들을
신성한 종교의식처럼 닦는다
손에는 하얀 행주
그 옆에는 물 양동이
닦고 빨고 또 닦으며,
큰독, 항아리, 자배기, 옴박지, 방구리, 동이
확독, 시루, 작은 단지까지
제 자식처럼 정성을 쏟았다
낮에는 해님이 놀러 오고
밤에는 달님이 망을 본다
집에 놀러 온 손님들도 욕심을 내는
가지런히 줄을 선 항아리들
자존심이고 보물들이어서
어머니의 사원에서
누구도 장독대를 범하지 못한다.
- 「어머니의 사원」 전문
어머니는 한평생 들에 나가기 전 "맨 먼저 장독대 항아리들을/ 신성한 종교의식처럼 닦는다." 집안을 단정히 단속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시적 화자의 표현처럼, 이 행위는 '신성한 종교의식'과 같이 정갈한 성품에서 비롯된 마음을 닦는 일이다. 깨끗이 닦인 항아리들은 "제 자식"이자 "자존심", 그리고 "보물"이다. 그러므로 장독대는 "누구도 범하지 못"하는 "어머니의 사원"이 된다.
여기에서 "하얀 행주"와 "물양동이"는 어머니 자신을 지키고 빛내는 무기이자, 종교적 의미를 담은 도구다. 서정시에서 시적 상관물은 비유적 함의를 통해 보다 깊고 내밀한 의미를 확장하며, 시인의 감각 너머에 깃든 정신성을 드러낸다. '행주'와 '물양동이'는 어머니의 내면을 비추는 매개일 뿐이다. 그것들을 "닦고 빨고 또 닦"는 행위야말로 서정시의 위의를 극대화한다. 특히 "큰독, 항아리, 자배기, 옴박지, 방구리, 동이, 확독, 시루, 작은 단지" 등 수많은 살림살이를 빛나게 할수록, '어머니의 사원'이 지닌 종교적 기능은 더욱 깊어진다. 마침내 "가지런히 줄을 선 항아리들"은 어머니의 단정하고 질서 있는 정신세계를 나타낸다.
이 작품은 어머니의 일상을 그리면서도, 시적 화자의 시선을 통해 어머니가 지닌 품성과 인품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인간에게 유년은 오래 기억되는 시간으로, 정서적 사건이 지니는 특별함 때문이다. 윤인자 시인이 떠올리는 유년의 한 장면은 '놋쇠 요강'이다. 시집올 때 혼수품으로 가져온 그 놋쇠 요강에 "다섯 남매 놋쇠 요강 위에 한 뼘씩 키를 키웠고" "하룻밤을 자고 나면 쑥쑥 자라나는 푸성귀처럼" 키웠다고 한다. 이렇듯 추억이 깃든 놋쇠 요강이 현대식 화장실의 보급과 함께 사라진 것에 대해 아쉬움을 갖기도 한다.
「어머니의 밭」에서는 "어머니 인생은 가을 채소밭"이라고 한다. 가을이면 "어머니의 밭엔 무 배추가 쑥쑥 자라"는 까닭이다. 가을은 풍요로운 계절로 어머니의 삶도 이와 같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장례식을 치른 윤인자 시인은 슬픔 속에서 「어머니의 장례식 날」을 통해 어머니가 편안한 세계로 가기를 염원한다.
어머니 보내드리는 날
산꼭대기 안개가
흰머리 풀고 문상을 왔다
흐린 날이라 더 슬픈 납덩이 같은 심사
마침내 안개도 떠나가고
문상객들도 자리를 뜬
한바탕 통곡하던 소낙비도 그치고
운구차는 화장장을 향해 바쁘게 달린다
상주들의 어깨가 들썩이도록
속울음 삼키며 운구차를 뒤따르는데
어머니 가시는 길 더듬지 말라고
하늘은 맑게 개어
하늘나라가 가까이 보인다
그곳에선 아프지 말아요
어머니!
고단한 삶을 지우고 아름다운 하늘나라에서
먼저 가신 아버지 만나
즐겁게 소풍을 즐기시며
머리 맞대고 알콩달콩 편안하셔요.
- 「어머니 장례식날」 전문
어머니의 장례식날은 시인에게는 가장 슬픈 날이다. "산꼭대기 안개"도 "흰머리 풀고 문상을" 오고, 하늘조차 가눌 수 없는 슬픔으로 소나기가 내린다. 서정시는 인간의 정서를 나타내기 위해 사물을 끌어들여 내적 감각을 드러내는데 활용되기도 한다. 흐린 날이어서 "더 슬픈 납덩이 같은 심사"일때 자연이 감응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시적 정서와 메시지가 더욱 풍부해지고 선명하다. 장례식이 끝나 문상객이 떠나고, "마침내 안개도 떠나"가며 "한바탕 통곡하던 소낙비도 그치"자 운구차는 화장장으로 향한다. 상주들은 운구차를 따라가고, "하늘은 맑게 개어/ 하늘나라가 가까이 보인다." 시인은 하늘이 맑게 개이는 것을 "어머니 가시는 길 더듬지 말"라는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인다. 이처럼 이 작품은 시종일관 자연의 섭리로 움직이는 기상현상을 시 속에 끌어들여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느낀 시적 화자의 내면 정서를 환기시키는 특징을 지닌다.
이후 시적 전개는, 평생 고생하다가 노년에 병마에 시달린 어머니가 '하늘나라'라는 은유의 공간, 즉 '좋은 세상'과 '아프지 않은 세상'에서 지내기를 바라는 염원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먼저 하늘나라로 간 아버지를 만나 "즐겁게 소풍을 즐기시며/ 머리 맞대고 알콩달콩 편안하"길 기원한다.
시적 화자인 윤인자 시인은 몸을 버리고 영혼으로 승화된 어머니의 새로운 생명성을, 정제되고 적확한 언어로 형상화함으로써 슬픔의 내면적 깊이를 드러냈다.
「어머니의 제삿날」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1주기가 되는 날을 그린 작품이다. 시적 화자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던 무렵처럼 "밭 언덕에 하얀 찔레꽃"이 "생전의 미소"처럼 피어 있는 모습을 바라본다. 더불어 어린 시절 "찔레꽃 따다 시루떡 쪄 주시던" 일을 떠올리며 밭 언덕에 피어 질퍽한 향기를 통해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찔레꽃'이라는 시적 상관물은 배고팠던 유년을 환기시키며, 화자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엄마 엄마 부르며 하얀 찔레꽃 길 걷는다."
앞에서 보았듯, '찔레꽃'은 시적 화자와 어머니를 이어주는 매개물로 작용한다. 「찔레꽃 필 무렵」에서도 찔레꽃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도 유년이라는 오래된 시간을 불러오는 시적 상관물로 기능한다. '찔레꽃 내음'이 바람에 실려오면 "찔레꽃 찌던 그 옛날 우리 어머니"가 떠올라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그러나 다시 찔레꽃이 피었지만, 어머니는 곁에 없다. 그리움은 "어머니, 지금은 어디에 계시나요?"라는 물음으로 드러난다.
살펴보았듯이 윤인자 시인의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시적 정서가 우리의 가슴 밑바닥에 고여있던 뜨거움을 끌어올려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어머니'라는 보편적 시적 대상이 지닌 정서적 힘에 공감하게 하기 때문이다.
작품론
生의 비의와 생명성, 그리고 모성성의 변주
- 윤인자 시집 『간이역을 지나며』
강 경 호
(시인, 한국문인협회 평론분과 회장)
1.
시는 시인에게 살아온 궤적을 보여주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말해주기도 한다. 이는 많은 시인들이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시적 발화를 하기 때문인데, 이때 시인의 시는 객관성을 통해 보편적인 인간의 삶에 대해 메시지를 가질 수 있다. 일상에서 만나는 일상과 특별한 인상에 의해 정서적 충격을 받기 마련인데, 시인은 영감을 얻게 되고 그 영감을 시인 특유의 정서와 개성을 상상력으로 직조한다. 이렇듯 경험된 정서적 사건을 시인의 언어로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개성 있는 시적 목소리와 독자와의 공감대를 형성하여 감흥을 얻게 된다.
윤인자 시인의 『간이역을 지나며』는 시제가 암시하듯 노년에 이른 시인의 최근 정서가 투사되어 있다. 그동안 달려온 인생을 뒤돌아보기도 하고 지난 시간에 대해 깊이 회상한다. 몹쓸 병과 투병하며 삶의 허무와 존재의 미래에 대해 불안의식을 드러내는데, 특히 지난 세월의 아쉬움을 통해 삶의 본질을 모색하고 있다.
이렇듯 생명의 의지를 드러내는 그의 시의 한켠에서는 생명의 계절인 '봄'의 환희를 노래하고 있어, 배 농사를 지어온 경험을 바탕으로 생명성을 탐구하고 있다. 이는 존재성을 드러내는 일이 생명을 갖는 일이며, 생명을 통해 사물이 자신만의 정체성을 드러낸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번 시집에서 윤인자 시인이 가장 많이, 천착하는 세계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안타까움, 연민, 그리움의 정서이다. 어머니가 쪄준 옥수수를 먹던 기억, 늘 장독대 항아리를 반질반질 윤이 나게 닦던 정성, 치매기로 기억이 흐려지면서도 자신을 잊지 않으려는 안간힘, 놋쇠 요강에 얽힌 어머니와 자식들의 에피소드, 어머니가 일구던 밭, 그리고 어머니 돌아가신 슬픔과 제삿날 회상하는 시편 등에서 어머니를 사모하는 정이 그리움으로 전이된다.
그리고 압해도에 시집와 살면서, 일상에서 만나는 다양한 정서를 통해 시인의 삶을 보여준다. 공동체적인 삶, 과수원에서 생긴 일, 비 오는 날의 부침개 등 수많은 일상이 정겹다.
이 시집은 윤인자 시인의 시가 지향하는 지점이 보편적이고 인정이 넘치는 세계라는 것을 말해주는데, '시는 현실을 반영한다'는 서정시의 명제를 실천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더불어 그의 자신의 삶과 윤리적 주체로서 모범적인 삶의 양태를 보여주고 있어 온기와 감흥을 잔잔하게 전해준다.
2.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친다. 윤인자 시인은 이 과정에서 노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자연의 순환 과정의 한 부분으로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못한다. 언젠가는 자연으로 돌아가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수많은 역을 거쳐 숨이 가쁜 열차
때로는 비가 내리고, 때로는 눈이 내리는
길고 긴 레일을 타고 달려왔다
내 고향 남녘 강진에서 시작된 여행
세월의 플랫폼에서 인연을 맺고 이별하는
종착역이 어딘지도 모르는 열차는
레일을 이탈하여 상처를 입기도 하고
사랑을 만나 행복하기도 했다
열차에 몸을 실은 나는 철로에서
가슴이 뛰고 설레며 미지로 달려간다
이제 서서히 저녁 햇살 눈부신
황혼, 하늘나라 역으로 가는 길목에서
후회하지 않을 만큼 잘 살았어,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간이역을 지나치며
지나온 뒤안길을 다시 뒤돌아본다.
- 「간이역을 지나며」 전문
「간이역을 지나며」에서 시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길을 가는 열차로 설정한다. "수많은 역을 거쳐 숨이 가쁜 열차"여서 레일을 타고 목적지로 향하고 있다. 그동안 "때로는 비가 내리고, 때로는 눈이 내리"는 길을 거쳐 왔다. 뿐만 아니라 "종착역이 어딘지도 모르는 열차는/ 레일을 이탈하여 상처를 입기도 하고/ 사랑을 만나 행복하기도 하였다"고 고백한다. 강진에서 태어나서 압해도에 시집와 사랑하는 반려자와 살아오는 과정을 열차에 비유하여 자신의 삶을 노래하고 있다.
인생은 종점도 도착시간도 알 수 없는 것이어서 시적 화자는 "가슴이 뛰고 설레며 미지로 달린다"고 한다. 얼마나 달려왔을까. "이제 서서히 저녁햇살 눈부신/ 황혼, 하늘나라역으로 가는 길목"에 접어들었음을 느낀다. 시적 화자의 진술처럼 황혼녘에 이른 열차는 그동안 간이역을 지나면서 내리는 사람들의 삶을 지켜보며 자신을 뒤돌아본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을 만큼 잘 살았어"라고 말할 수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작품은 궁극적으로 삶을 통찰하면서 성찰에 이르고자 하는 시적 화자의 소망이 배어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종점이 어디인지 모르지만, 후회하지 않는 삶이 되기를 바라며 삶을 완성하려는 것이다.
인생은 그저 평탄하지 않아서 수많은 난관을 만나기 일쑤이다. 시인은 투병 중이다. 생사를 가름하는 병을 이기기 위해 노력을 다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시적 화자인 시인은 온갖 불안의식으로 가득 차 있을 수밖에 없다. 시적 화자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 대해 많은 생각을 드러내고 생에 대해 깊은 통찰을 하고 있다.
누군가 암에 걸렸다는 소리를 들어도
담담했던 마음에
소용돌이가 휘몰아친다
몇 날 며칠 내 마음에
태풍이 불고 파도가 범람한다
하필 나에게 몹쓸 것이 찾아오다니,
암은 관념이 아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어서
인생이 허무하고
아웅다웅 살아온 날들이 후회스럽다
벼랑 끝에 핀 꽃처럼
바람에 파르르 떨며
염천에 한기가 돈다
이제 얼마나 남았을까?
저기가 거기인가?
끝자락이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을 때,
그 지긋지긋한 것
나를 괴롭히는 너를 쓰러뜨리겠다
암이 나를 일으켜 세운다.
- 「암과 함께」 전문
생로병사의 과정은 순탄하지 않다. "누군가 암에 걸렸다는 소리를 들어도/ 담담했던 마음"이었다. 자신에게 닥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필 나에게 몹쓸 것이 찾아오"니 마음속에서 "소용돌이가 휘몰아 친다/ 몇날 며칠 내 마음에/ 태풍이 불고 파도가 범람한다"고 토로한다. 암이 쉬운 병이 아닌 까닭이다.
절망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서정시의 한 효용적 가치이다. "암은 관념이 아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다. 병을 극복하기 위해 시적 화자는 힘든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 과정은 매우 지난한 것이기도 하여 고통스러운 일이다. 누구나 자신은 몹쓸 병에 걸리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막상 병에 걸리면 절망하고 괴로워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마치 죽음이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내적 불안으로 마음에 소요가 일어난다. "인생이 허무하고/ 아웅다웅 살아온 날들이 후회스럽"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벼랑 끝에 핀 꽃처럼/ 바람에 파르르" 떤다고 하는 비유가 말해주듯 시적 화자는 위태로울 수도 있는 불안의식에 휩싸인다. 뿐만 아니라 더운 날씨이지만 몸이 추위를 느끼기도 병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어쩌면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제 얼마나 남았을까"라는 미래에 대한 불안의식이 시적 화자를 괴롭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적 화자는 생명에 대한 의지를 내보인다. "그 지긋지긋한 것/ 나를 괴롭히는 너를 쓰러뜨리겠다"고 한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암이 나를 일으켜 세운다"고 하며, 시제가 말해주듯 '암과 함께'하는 지금의 상황을 생을 일으키는 기제로 작동시키고자 한다.
이 작품은 마음의 동요를 잠재우고 건강한 생명성을 갖고자 하는 시적 화자의 내면 풍경이 독자들에게 강인한 의지와 감동을 준다.
이번 윤인자 시인의 시집에서 생의 비의에 천착한 작품 중에는 시인의 시간관념을 모색하는 시편 「노년의 시간」과 「마음은 스물 몇 살」이 있다. 「노년의 시간」은 떠나는 시간과 다가오는 시간에 대한 진지하고 진중한 질문과 사색이 깃들어 있다. 해마다 오가는 시간의 영속성에서 인간은 유한한 생명의 한계를 지니고 있어 영원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시적 화자는 '시간'을 "어느 누구도 셈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형용할 수 없는 극과 극의 거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인의 인식은 시간을 붙잡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하고 단지 "역사가 한 획을 그은 새해 아침"이라고 한다. 새해를 맞는 나약한 인간 존재의 한계성을 드러낸다. 이러한 태도는 시간에 순응하고, 우주의 섭리 속에 인간 역시 시간처럼 흘러가는 존재라는 태도가 깃들어 있다. 그러므로 새해를 맞는 의식을 "또 그렇게 순식간에 한 살을 더 먹고/ 나이가 들어가는/ 노년의 시간"이라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마음의 스물 몇 살」에서는 "나이는 칠십 대 마음은 이십 대"라며, 마음은 청춘인데 몸은 그렇지 못하다는 말을 상기시킨다. '스물 언저리'는 인생에서 가장 몸이 왕성한 때로 정신적으로도 두려움이 없는 때이다. 그러나 칠십의 나이가 되면 용기가 없어지고 "몸은 늙고 무거워 숨이 차"게 된다. 칠십이어도 마음만 이십 대인 노년의 시간에 대한 시적 화자의 인식은 "그저 야속한 세월만 원망하"게 된다고 하는 최근 시인의 정신 표정을 보여주고 있다.
팔십을 바라보는 윤인자 시인의 정신 지리를 드러낸 「울음」에서는 태어나는 시간으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에 놓여있는 시간의 간극을 묘파하고 있다. "아기에게 울음은 메시지다"라고 한다. 말을 못 하므로 울음으로 배가 고프거나 똥오줌을 지릴 때 아기는 울음으로서 존재를 드러낸다. 성장해서는 "억울하고 분할 때" "누군가가 그리울 때" "즐거울 때" '울음'이라는 감각을 통해 자신을 나타낸다. 그러나 울음을 참음으로써 "팽팽해지는 울음보"가 된다고 한다. 울지 않지만, 울음들이 모여 울음보에 가득한 것이다. 지난 세월 동안 수많은 울음을 참았지만,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리워 눈물을 참다가도 가끔은 "장독대 아래서 숨죽여/ 가만가만 울어본다."고 하여 슬픔과 그리움의 정서를 울음으로 터뜨린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 '울음'이 시간의 간극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으며, 생의 다양한 비의를 표현하는 방식임을 알 수 있다.
3.
윤인자 시인의 삶과 문학은 날마다 마주하는 과수원과 관련이 깊다. 집과 과수원이 등을 맞대고 있어 눈만 뜨면 바라보이는 환경 속에서 살기 때문이다. 변화하는 계절의 흐름도 과수원을 통해 알 수 있으니 생명성에 관한 시인의 시적 발화가 많을 수밖에 없어 생명의 또다른 말인 '봄'을 시로 형상화한 경우가 적잖다. 생장이 일시 멈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과수원에 배꽃이 피고 온갖 봄꽃들이 들풀처럼 기지개를 켠다. 홍매화가 피고 풀꽃들도 함초롬하게 피어나면 대지는 푸르게 짙어온다. 이러한 풍경을 바라보는 시인에게는 특히 생명성에 관한 상상력이 시세계의 주류를 이룬다.
2월의 정원은 고요한 듯하지만
꽃샘추위에 놀란 봄꽃들이 눈치를 보다
수선화 노란 입김이 잔설을 녹이고
황사 방지용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린 봄은
가만가만 꽃샘추위를 밀어낸다
그 틈새를 타고 진달래꽃들은
곧 다가올 3·1 만세운동처럼
깃발을 흔들며 산 아래에서부터 함성이 요란하다
마침내 초록 바람과 함께
집 앞 화단까지 밀고 온 시위대열에
화들짝 놀란 할미꽃 민들레꽃들이
두 손 번쩍 들어 만세를 부른다.
- 「몰래 온 봄」 전문
계절의 변화는 느릿하다. 시적 화자의 말처럼 봄이 몰래 눈치채지 않게 오는 경우가 많다. 2월이면 겨울과 봄의 경계여서 때로 눈이 내려 겨울인 듯싶어 정원은 고요하다. 생명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수선화 노란 입김이 잔설을 녹이고" "가만가만 꽃샘추위를 밀어낸다". 봄은 소리 없이 슬그머니 오는 것이다. 그러나 봄을 상징하는 진달래 꽃들은 분홍빛 화려한 빛으로 "곧 다가올 3·1 만세운동처럼/ 깃발을 흔들며 산아래에서부터 함성이 요란하다". 봄은 몰려오기 시작하면 초록바람과 함께 "집 화단까지 밀고 온 시위대열"이 되어 할미꽃, 민들레꽃 등 온갖 꽃들이 "두 손 번쩍 들어 만세를 부"르는 것이다. 생명을 가진 것들이 만물이 깨어나는 봄날 환호작약하며 푸르름으로 대지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는 모습에서 살아있음을 알리는 것이 아름답다.
봄날의 환희를 노래한 시편이 유독 많은 이번 시집에서 「봄꽃들」은 "불이 지나간 잿빛 속에서 쑥이 고개를 들고/ 꽃들이" "꽃등을 두고 봄을 비춘다"하고, 「봄의 길목에서」는 아직 이른 오월의 들녘에서 곰보배추를 캘 때, "애기똥풀꽃에 긴 빨대를 처박고/ 궁둥이 쳐들고 꿀을 빠는/ 각시나비의 생존방식", "하얀 배추나비 두 마리 얼싸안고/ 봄똥밭으로 숨"는 모습을 통해 신비로운 생명 활동을 알게 된다. 그리고 사랑꾼들의 "혼인잔치로 수선스러"운 봄이 진정한 생명의 계절임을 확인한다.
「봄의 뜨락」 또한 생명의 환희를 노래하고 있다. 골담초꽃, 병꽃, 명자꽃, 모란꽃, 민들레, 할미꽃 등이 꽃을 피워 "바람에 자식들 분가시키는" 왁자지껄한 봄의 뜨락에서 벌어지는 생명활동이 모두 마술을 부리는 것이라고 한다.
「홍매화 분분한 날」에서도 "분홍빛 눈송이"로 형상화한 홍매화 꽃잎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을 사진 찍어 누군가에게 보내고 싶다고 한다. 온갖 꽃들이 피고 지는 모습에서 생명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화자의 마음이 싱그럽게 느껴진다.
생명성을 노래한 위의 시편들은 모두 '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생명의 환희와 아름다움에 취해 감정이 매우 들뜬 상태이다. 그러나 다음의 「늙은 호박」은 단순한 생명성을 넘어 모성성을 잔잔한 정서로 말해주고 있다.
들에서 늙은 호박을 손수레에 실었다
춥지 않게 폭신한 담요 네 겹으로 접어
엉덩이 밑에 받쳐주고 거실에 모셨다
큰 덩이 위에 작은 덩이 겹겹
아기 엉덩이 닮은 골이 진 토실토실한 맷돌 호박
잘 숙성되어라,
주문을 외우며 백제 오층 석탑처럼 쌓았다
봄부터 가을까지 만고풍상 다 겪었으니
겨울엔 집안에서 가족이 되어
썩지 말고 잘 버텨라.
날마다 만져주며 손끝으로 온기를 전했다
동짓날 젤 큰 호박 하나
종자를 받기 위해 칼로 가르는데
탯줄로 뒤엉켜 빈틈이 없이 가득한 뱃속
뼈처럼 하얀 씨앗들이 풍성하다
호박은 늙어야만 제 핏줄을 남기느니
또다시 밭둑에 얼크러져
줄레줄레 새끼들 달고
아이들 유치원에 데리고 가는
어미 모습 선연하다.
- 「늙은 호박」 전문
누렇게 익은 호박을 '늙은 호박'이라고 부른다. '늙다'의 동사가 지닌 감각을 사람에 비유하면 '어미' '노인'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시적 화자는 '늙은 호박'을 "늙어서야만 제 핏줄을 남"긴다 하고 "아이들 유치원에 데리고 가는/ 어미 모습"이라고 한다.
시적 화자는 늦가을쯤 "들에서 늙은 호박을 손수레에 실었다". 그리고 집 안 거실에 놓아두었다. 잘 익은 호박 여러 개를 "백제 오층석탑처럼 쌓았다". "동짓날 젤 큰 호박 하나/ 종자를 받기 위해 칼로" 쪼개니 안에 많은 씨앗들이 들어있다. 사람은 늙어서는 자식을 생산하지 못하지만 "호박은 늙어서야만 제 핏줄을 남"긴다고 한다. 모든 종(種)은 어떤 형태로든 제 유전자를 남겨 생명의 끈을 이어가게 한다. 호박 또한 "또다시 밭둑에 얼크러져/ 줄레줄레 새끼들 달고" "유치원에 데리고 가는/ 어미의 모습"을 할 것이다.
이 작품은 시종일관 의인화법으로 호박을 '늙은이'로 받들고 있다. "춥지 않게 폭신한 담요 네 겹으로 접어/ 엉덩이 밑에 받쳐주고 거실에 모셨다". "아기 엉덩이 닮은 골이 진 토실토실한" "겨울엔 집안에서 가족이 되어" "탯줄로 뒤엉켜 빈틈이 없이 가득한 뱃속" "아이들 유치원에 데리고 가는/ 어미" 등이 그것들이다. 이러한 형상화를 통해 시적 화자는 "봄부터 가을까지 만고풍상 다 겪"은 호박을 '늙은'이라는 형용사에 어울리게 이른바 어른으로 대접하고 있는 것이다.
잘 숙성된 호박을 '늙은 호박'이라고 부르며 인격을 부여한 시적 화자의 의식은 생명성에 대한 인식 태도가 어떠한지를 잘 말해준다.
이외에 생명성을 노래한 「수숫대」도 시간적 공간이 가을이다. 이 작품은 생명의 순환을 잘 보여주고 있다. 콩밭에 드문드문 서 있는 키가 큰 수숫대에서 알맹이가 익어가자 참새 떼가 수수알 빼먹고 간다. 쫓아버려도 다시 몰려오는 참새 떼는 생존을 위해 수수를 먹고자 다시 몰려온다. 햇살 좋고 청명한 가을날 콩밭의 수숫대는 뭉게구름 떡가는 하늘 아래에서 쑥쑥 자란다. 특별한 갈등 구조가 없는 이 작품은 평화롭고 한가한 가을의 한때 풍경을 통해 생명의 순환과 조화로움을 형상화시켰다.
4.
오랫동안 배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윤인자 시인의 삶은 압해도 사람들과 환경에 깊이 동화되었고, 그의 시 역시 압해도라는 한반도 서남해 일우의 일상을 형상화하고 있다. 대부분 시인이 살고 있는 장소와 공간을 시로 형상화하는 일은 '시는 현실을 반영한다'는 명제를 충실히 따르는 것이며, 이는 시의 현장이 시인의 삶을 가장 잘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윤인자 시인 역시 집과 마을에서 마주한 구체적 현실을 통해 시적 정서와 자신이 추구하는 세계관을 노래하고 있다.
그의 시에는 아침부터 과수원에서 들려오는 까치 울음소리, 텃밭에서 푸르게 자라는 작물을 바라보는 농부의 뿌듯한 마음, 무더운 여름 과수원에서 울어대는 매미 소리와 배를 노리는 까치들의 떼울음, 비 오는 날 아이들과 부침개를 부쳐 먹는 즐거움, 겨울 배추밭에서 눈에 덮인 배추를 바라보는 안타까움, 겨울바람 속에서 피어난 애기동백을 바라보는 마음, 압해도 선착장 송공항의 분주한 아침 풍경, 폭설에 막힌 길을 내는 날의 정경 등이 담겨 있다. 이러한 일상과 그 속에서 길어 올린 시적 정서는 시인만의 푸근하고 따뜻한 세계를 보여준다.
아침잠을 깨우며 소란을 피우는
까치 소리
오늘은 누가 오시려나
유독 까치 소리가 청명하다
한 쌍이 장단 맞춰 울더니 이윽고 떼울음을 운다
과수원 집이라 흔한 풍경이지만
창문을 열고 훠이 훠이 까치 떼를 쫓는다
과수원 꽃과 잎과 햇살, 과수원을 지나던 바람까지도
일제히 일어나 어우러져 춤을 춘다
오늘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예감
기분이 좋아진 나는 뒷짐을 지고
콧노래 부르며 과수원을 한 바퀴 둘러본다.
- 「까치 지저귀는 아침」 전문
예로부터 까치가 지저귀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하여, 까치를 길조로 여겨왔다. 아침부터 요란하게 들려오는 까치 소리에 시적 화자는 "오늘은 누가 오시려나" 하고 생각하며 창문을 열어 훠이훠이 까치 떼를 쫓는다. 집 옆에 과수원이 있어 까치 소리를 자주 듣지만, 오늘은 유난히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 기분이 한결 밝아진 시적 화자는 뒷짐을 지고 과수원을 한 바퀴 둘러본다.
서정시는 사회의 불화와 절망 등 어두운 현실에 빛을 비추며, 궁극적으로 유토피아적 세계를 지향한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서정시는 대체로 갈등을 해소하는 구조로 전개된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까치와 인간(시적 화자) 사이의 갈등이 없다. 오히려 까치 소리는 청명하게 울리고, 화자에게는 좋은 일이 다가올 듯한 기분을 안겨준다. 이러한 시적 정서를 반영하여 시인은 "과수원 꽃과 잎과 햇살, 과수원을 지나던 바람까지도/ 일제히 일어나 어우러져 춤을 춘다"고 까치와 인간과의 관계성과 상관없이 주변 풍경들을 섬세한 감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처럼 갈등 구조 없이도 서정시의 본질인 유토피아 지향을 구현하며, 서정시의 한 정형을 선보이는 것이다.
시인이 일군 과수원을 소재로 한 작품들 가운데 「여름 과수원」은, 앞의 작품처럼 까치와의 관계에서 오는 긴장을 그리고 있다. 먹거리가 풍부한 과수원에서 까치가 배를 조금씩 쪼아 상품 가치를 떨어뜨리는 상황에 대해 시인은 "저 얄미운 까치 새끼, 어쩌면 좋아"라고 토로한다. 여름 과수원은 까치뿐 아니라 개구리와 달팽이 등 다양한 생명체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며, 더위에 지친 풀잎들까지 드러눕는 한가한 한철로 묘사된다.
「비 오는 날」은 인정이 넘치는 비 오는 날의 정서를 형상화하고 있다.
창밖에 보슬보슬 빗소리
바람은 하늬바람, 마파람
시집가고 장가가고
철대문은 삐거덕 덜커덩,
양철지붕은 깨갱깨갱 징징 징
꽹과리 치고 징 치고
빗줄기 오락가락 호랑이 장가가는데
어느새 쨍하고 해가 뜬다
엄마의 부엌엔 프라이팬이 지글지글
아이들은 볼이 빵빵 주전부리
부침개가 구워 나오는 죽죽
젓가락이 분주하게 춤을 춘다
서로서로 한 젓가락 더 먹겠다고
젓가락 싸움이 벌어진다
날씨도 장맛비 오락가락
부지런한 사람 일하기 좋고
게으른 사람 낮잠 자기 좋은 날.
- 「비 오는 날」 전문
비 오는 날, 가족의 즐거운 한때를 정겹게 표현하였다. 농경사회에서 비 오는 날은 부침개를 부쳐 먹고 콩을 볶아 먹었다. 비가 내려 농사일을 할 수 없는 날이면 가족이 오순도순 모여 여유롭고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햇빛이 비치다 비가 오면 호랑이가 장가간다고 여겼다. 그런 날, "엄마의 부엌엔 프라이팬이 지글지글" 끓고, "아이들은 볼이 빵빵 주전부리/ 부침개가 구워 나오는 족족// 젓가락이 분주하게 춤을 춘다.", "서로서로 한 젓가락 더 먹겠다고/ 젓가락 싸움이 벌어진다". 보슬비가 내리다가 "장맛비 오락가락"하는 궂은 날은 "부지런한 사람 일하기 좋고/ 게으른 사람 낮잠자기 좋은 날"이다. 부지런히 일하든, 느긋하게 낮잠을 자든, 모두가 평화로운 농촌의 일상이다.
이 작품 또한 서정시의 시적 장치 가운데 하나인 갈등 구조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시적 형식을 갖추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시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불화와 절망에서 화해와 희망으로 나아가는 것이라면, 평화롭고 조화로운 세계를 통해 휴머니즘적 유토피아를 형상화한 이 작품은 서정시의 본질에 충실하다.
다음의 작품들은 윤인자 시인의 일상에서 마주하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가을 비」는 한 해 농사의 결실인 추수를 앞둔 시기에 내리는 가을비로 인해 "태풍에 쓰러진 벼 이삭은 싹이 트고/ 잘 익은 과일들은 썩어간다". 이럴 때면 속이 타는 농심(農心)은 "홍시처럼 환한 날을 불러 오면 좋겠다". "날마다 다디 단 날이 오면 좋겠다"며 과수원을 바라보며 "가을비는 언제 그치려나/ 한 해 농사는 언제 걷어 들이나"라며 소박한 마음으로 가을비를 원망하고 있다.
「해변 산책」은 섬에서 살아가는 시인의 평범한 한때를 그린 작품이다. 해변을 거닐던 중 하늘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지만 그는 피하지 않고 바닷가를 계속 걷는다. 그러다 갈대숲에 앉아 있는 바닷새들을 바라본다. 비가 그친 뒤에는 햇빛에 반짝이는 갈대꽃과 바람에 흔들리는 파도의 소란스러운 움직임을 지켜본다. 지극히 소소한 풍경이지만, 도시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자연의 원초적인 움직임이다. 이러한 풍경 속에서 자연에 동화된 시적 화자의 모습이 겹쳐지며, 자연과 인간의 동일성을 드러낸다.
5.
시에서 자주 쓰이는 언어 중에는 낡고 진부한 것이 많다. '어머니'라는 말 역시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단순한 고유명사나 보통명사의 의미를 넘어서는 존재이기에, 설령 진부하다 해도 결코 낡거나 진부하지 않다. 어머니는 생명의 근원이자 사랑과 희생, 그리고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어머니'라는 말만 들어도 모든 감각이 따스해지고 부드러워지며, 연민과 그리움이 온몸을 전율케 한다.
윤인자 시인에게도 어머니는 특별한 존재다. 그 특별함은 '관계'에서 비롯된다. 태어난 순간부터 시작된 이 관계는 유년 시절은 물론 살아온 세월 전반에 걸쳐, 그리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이어진다. 관계는 시인과 어머니가 함께한 시간 속 서사의 기억으로 엮이며, 마치 모태에서 탯줄로 연결된 것처럼 끊임없이 이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시인 역시 어머니라는 이름을 사랑과 존경, 때로는 슬픔과 기쁨, 연민과 그리움의 정서로 호명한다.
시인의 시 속 어머니는 삼복더위에 여문 옥수수를 쪄 동네 아이들에게 먹이고, 들일 나가기 전에는 행주로 항아리부터 자배기, 옴박지, 방구리, 시루 등 집안의 그릇을 정성껏 닦던 분이다. 유년의 어머니는 해가 저물 때까지 들밭에서 일했고, 노년에는 치매기가 있어도 자신을 버텨 일으켜 세우려 애쓰셨다. 그리고 마침내 세상을 떠난 뒤, 시인은 슬픔을 삼키며 제삿날이 돌아오자 어머니의 일생을 회상하고 그리움을 되새긴다.
한평생
들일하러 나가기 전에
맨 먼저 장독대 항아리들을
신성한 종교의식처럼 닦는다
손에는 하얀 행주
그 옆에는 물 양동이
닦고 빨고 또 닦으며,
큰독, 항아리, 자배기, 옴박지, 방구리, 동이
확독, 시루, 작은 단지까지
제 자식처럼 정성을 쏟았다
낮에는 해님이 놀러 오고
밤에는 달님이 망을 본다
집에 놀러 온 손님들도 욕심을 내는
가지런히 줄을 선 항아리들
자존심이고 보물들이어서
어머니의 사원에서
누구도 장독대를 범하지 못한다.
- 「어머니의 사원」 전문
어머니는 한평생 들에 나가기 전 "맨 먼저 장독대 항아리들을/ 신성한 종교의식처럼 닦는다." 집안을 단정히 단속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시적 화자의 표현처럼, 이 행위는 '신성한 종교의식'과 같이 정갈한 성품에서 비롯된 마음을 닦는 일이다. 깨끗이 닦인 항아리들은 "제 자식"이자 "자존심", 그리고 "보물"이다. 그러므로 장독대는 "누구도 범하지 못"하는 "어머니의 사원"이 된다.
여기에서 "하얀 행주"와 "물양동이"는 어머니 자신을 지키고 빛내는 무기이자, 종교적 의미를 담은 도구다. 서정시에서 시적 상관물은 비유적 함의를 통해 보다 깊고 내밀한 의미를 확장하며, 시인의 감각 너머에 깃든 정신성을 드러낸다. '행주'와 '물양동이'는 어머니의 내면을 비추는 매개일 뿐이다. 그것들을 "닦고 빨고 또 닦"는 행위야말로 서정시의 위의를 극대화한다. 특히 "큰독, 항아리, 자배기, 옴박지, 방구리, 동이, 확독, 시루, 작은 단지" 등 수많은 살림살이를 빛나게 할수록, '어머니의 사원'이 지닌 종교적 기능은 더욱 깊어진다. 마침내 "가지런히 줄을 선 항아리들"은 어머니의 단정하고 질서 있는 정신세계를 나타낸다.
이 작품은 어머니의 일상을 그리면서도, 시적 화자의 시선을 통해 어머니가 지닌 품성과 인품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인간에게 유년은 오래 기억되는 시간으로, 정서적 사건이 지니는 특별함 때문이다. 윤인자 시인이 떠올리는 유년의 한 장면은 '놋쇠 요강'이다. 시집올 때 혼수품으로 가져온 그 놋쇠 요강에 "다섯 남매 놋쇠 요강 위에 한 뼘씩 키를 키웠고" "하룻밤을 자고 나면 쑥쑥 자라나는 푸성귀처럼" 키웠다고 한다. 이렇듯 추억이 깃든 놋쇠 요강이 현대식 화장실의 보급과 함께 사라진 것에 대해 아쉬움을 갖기도 한다.
「어머니의 밭」에서는 "어머니 인생은 가을 채소밭"이라고 한다. 가을이면 "어머니의 밭엔 무 배추가 쑥쑥 자라"는 까닭이다. 가을은 풍요로운 계절로 어머니의 삶도 이와 같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장례식을 치른 윤인자 시인은 슬픔 속에서 「어머니의 장례식 날」을 통해 어머니가 편안한 세계로 가기를 염원한다.
어머니 보내드리는 날
산꼭대기 안개가
흰머리 풀고 문상을 왔다
흐린 날이라 더 슬픈 납덩이 같은 심사
마침내 안개도 떠나가고
문상객들도 자리를 뜬
한바탕 통곡하던 소낙비도 그치고
운구차는 화장장을 향해 바쁘게 달린다
상주들의 어깨가 들썩이도록
속울음 삼키며 운구차를 뒤따르는데
어머니 가시는 길 더듬지 말라고
하늘은 맑게 개어
하늘나라가 가까이 보인다
그곳에선 아프지 말아요
어머니!
고단한 삶을 지우고 아름다운 하늘나라에서
먼저 가신 아버지 만나
즐겁게 소풍을 즐기시며
머리 맞대고 알콩달콩 편안하셔요.
- 「어머니 장례식날」 전문
어머니의 장례식날은 시인에게는 가장 슬픈 날이다. "산꼭대기 안개"도 "흰머리 풀고 문상을" 오고, 하늘조차 가눌 수 없는 슬픔으로 소나기가 내린다. 서정시는 인간의 정서를 나타내기 위해 사물을 끌어들여 내적 감각을 드러내는데 활용되기도 한다. 흐린 날이어서 "더 슬픈 납덩이 같은 심사"일때 자연이 감응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시적 정서와 메시지가 더욱 풍부해지고 선명하다. 장례식이 끝나 문상객이 떠나고, "마침내 안개도 떠나"가며 "한바탕 통곡하던 소낙비도 그치"자 운구차는 화장장으로 향한다. 상주들은 운구차를 따라가고, "하늘은 맑게 개어/ 하늘나라가 가까이 보인다." 시인은 하늘이 맑게 개이는 것을 "어머니 가시는 길 더듬지 말"라는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인다. 이처럼 이 작품은 시종일관 자연의 섭리로 움직이는 기상현상을 시 속에 끌어들여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느낀 시적 화자의 내면 정서를 환기시키는 특징을 지닌다.
이후 시적 전개는, 평생 고생하다가 노년에 병마에 시달린 어머니가 '하늘나라'라는 은유의 공간, 즉 '좋은 세상'과 '아프지 않은 세상'에서 지내기를 바라는 염원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먼저 하늘나라로 간 아버지를 만나 "즐겁게 소풍을 즐기시며/ 머리 맞대고 알콩달콩 편안하"길 기원한다.
시적 화자인 윤인자 시인은 몸을 버리고 영혼으로 승화된 어머니의 새로운 생명성을, 정제되고 적확한 언어로 형상화함으로써 슬픔의 내면적 깊이를 드러냈다.
「어머니의 제삿날」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1주기가 되는 날을 그린 작품이다. 시적 화자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던 무렵처럼 "밭 언덕에 하얀 찔레꽃"이 "생전의 미소"처럼 피어 있는 모습을 바라본다. 더불어 어린 시절 "찔레꽃 따다 시루떡 쪄 주시던" 일을 떠올리며 밭 언덕에 피어 질퍽한 향기를 통해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찔레꽃'이라는 시적 상관물은 배고팠던 유년을 환기시키며, 화자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엄마 엄마 부르며 하얀 찔레꽃 길 걷는다."
앞에서 보았듯, '찔레꽃'은 시적 화자와 어머니를 이어주는 매개물로 작용한다. 「찔레꽃 필 무렵」에서도 찔레꽃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도 유년이라는 오래된 시간을 불러오는 시적 상관물로 기능한다. '찔레꽃 내음'이 바람에 실려오면 "찔레꽃 찌던 그 옛날 우리 어머니"가 떠올라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그러나 다시 찔레꽃이 피었지만, 어머니는 곁에 없다. 그리움은 "어머니, 지금은 어디에 계시나요?"라는 물음으로 드러난다.
살펴보았듯이 윤인자 시인의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시적 정서가 우리의 가슴 밑바닥에 고여있던 뜨거움을 끌어올려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어머니'라는 보편적 시적 대상이 지닌 정서적 힘에 공감하게 하기 때문이다.
목차
목차
간이역을 지나며 / 차례
시인의 말
1 간이역을 지나며
간이역을 지나며 _ 16
노년의 시간 _ 17
마음은 스물 몇 살 _ 18
커피와 인생 _ 19
외로운 간이역 _ 20
암과 함께 _ 22
울음 _ 24
봄꽃들 _ 26
몰래 온 봄 _ 27
홍매화 분분한 날 _ 28
봄의 길목에서 _ 29
봄의 뜨락 _ 30
봄날은 가고 _ 31
봄이 오나, 봄 _ 32
가문 날 _ 33
가을이 막 도착하였는데 _ 34
2 어머니의 노을
어머니의 노을 _ 38
기억을 흘러내리다 _ 39
저녁 무렵 _ 40
어머니의 밭 _ 41
어머니 장례식날 _ 42
놋쇠 요강 _ 44
어머니 제삿날에 _ 46
어머니의 사원 _ 48
찔레꽃 필 무렵 _ 50
아버지의 소금꽃 _ 52
고향 집 우물 _ 54
옥수수 익어가는 8월 _ 56
어버이날에 _ 58
아카시아꽃 피는 오월 _ 60
외할아버지 _ 61
놋쇠 요강 2 _ 62
3 수숫대
수숫대 _ 66
폐비닐, 봉투 같은 _ 67
늙은 호박 _ 68
폭설 _ 70
산수화 그리는 달팽이 _ 72
해변 산책 _ 73
목련 한 그루 _ 74
겨울 배추밭에서 _ 75
비 오는 날 _ 76
애기동백 1 _ 78
애기동백 2 _ 79
폭염 _ 80
오디 도둑 _ 82
소쩍새 우는 밤 _ 83
동백꽃 _ 84
4 소금꽃
소금꽃 _ 86
섬 _ 87
섬은 바다의 가슴에 뿌리를 내린다 _ 88
거미줄과 바람 _ 89
4월 _ 90
가을비 _ 91
물음표 한 시루 _ 92
까치 지저귀는 아침 _ 93
텃밭 _ 94
배꽃 시화전 _ 95
대장 민어 _ 96
여름 과수원 _ 98
날아가 버린 詩 _ 99
오늘도 컴퓨터를 켠다 _ 100
빈집 _ 102
삼겹살 데이 _ 104
5 과수원에서 보낸 한 生
과수원에서 보낸 한 生 _ 106
집 한 바퀴 돌면 배가 부르다 _ 110
한여름 밤의 추억 _ 114
방조제 둑에 앉아서 _ 117
딸 부잣집 사람들 _ 120
전통 장아찌 만들기 _ 125
망둥이 낚시하던 날 _ 129
건강한 노년을 위하여 _ 134
천사의 섬 신안문학 기행 _ 138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님께 _ 145
수혈 _ 148
바랑 _ 151
사우나, 세신사의 진단 _ 154
비비각시 섬 이야기 _ 161
신안의 토속음식 _ 165
작품론
生의 비의와 생명성, 그리고 모성성의 변주 / 강경호 _ 169
시인의 말
1 간이역을 지나며
간이역을 지나며 _ 16
노년의 시간 _ 17
마음은 스물 몇 살 _ 18
커피와 인생 _ 19
외로운 간이역 _ 20
암과 함께 _ 22
울음 _ 24
봄꽃들 _ 26
몰래 온 봄 _ 27
홍매화 분분한 날 _ 28
봄의 길목에서 _ 29
봄의 뜨락 _ 30
봄날은 가고 _ 31
봄이 오나, 봄 _ 32
가문 날 _ 33
가을이 막 도착하였는데 _ 34
2 어머니의 노을
어머니의 노을 _ 38
기억을 흘러내리다 _ 39
저녁 무렵 _ 40
어머니의 밭 _ 41
어머니 장례식날 _ 42
놋쇠 요강 _ 44
어머니 제삿날에 _ 46
어머니의 사원 _ 48
찔레꽃 필 무렵 _ 50
아버지의 소금꽃 _ 52
고향 집 우물 _ 54
옥수수 익어가는 8월 _ 56
어버이날에 _ 58
아카시아꽃 피는 오월 _ 60
외할아버지 _ 61
놋쇠 요강 2 _ 62
3 수숫대
수숫대 _ 66
폐비닐, 봉투 같은 _ 67
늙은 호박 _ 68
폭설 _ 70
산수화 그리는 달팽이 _ 72
해변 산책 _ 73
목련 한 그루 _ 74
겨울 배추밭에서 _ 75
비 오는 날 _ 76
애기동백 1 _ 78
애기동백 2 _ 79
폭염 _ 80
오디 도둑 _ 82
소쩍새 우는 밤 _ 83
동백꽃 _ 84
4 소금꽃
소금꽃 _ 86
섬 _ 87
섬은 바다의 가슴에 뿌리를 내린다 _ 88
거미줄과 바람 _ 89
4월 _ 90
가을비 _ 91
물음표 한 시루 _ 92
까치 지저귀는 아침 _ 93
텃밭 _ 94
배꽃 시화전 _ 95
대장 민어 _ 96
여름 과수원 _ 98
날아가 버린 詩 _ 99
오늘도 컴퓨터를 켠다 _ 100
빈집 _ 102
삼겹살 데이 _ 104
5 과수원에서 보낸 한 生
과수원에서 보낸 한 生 _ 106
집 한 바퀴 돌면 배가 부르다 _ 110
한여름 밤의 추억 _ 114
방조제 둑에 앉아서 _ 117
딸 부잣집 사람들 _ 120
전통 장아찌 만들기 _ 125
망둥이 낚시하던 날 _ 129
건강한 노년을 위하여 _ 134
천사의 섬 신안문학 기행 _ 138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님께 _ 145
수혈 _ 148
바랑 _ 151
사우나, 세신사의 진단 _ 154
비비각시 섬 이야기 _ 161
신안의 토속음식 _ 165
작품론
生의 비의와 생명성, 그리고 모성성의 변주 / 강경호 _ 169
저자
저자
윤인자
ㆍ1950년 전남 강진 출생. 전남 신안 거주.
ㆍ목포과학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식품영양학을 전공.
ㆍ2011년 《리토피아》 겨울호 시 등단, 2024년 《시와사람》 봄호 수필 등단.
ㆍ신안군의회 제6대 의원을 지냈다.(2010. 7. 1 ~ 2014. 6.30)
ㆍ리토피아 문소연 회원, 시와사람시학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한국문인협회 신안지부 편집부장을 맡고 있다.
ㆍ신안 배 고추장 명인.
ㆍ22년 제4회 대한민국 장류 발효 대전 고추장 부문 최우수상 수상.
ㆍ23년 제5회 대한민국 장류 발효 대전 된장 부문 우수상 수상.
ㆍ24년 제6회 대한민국 장류 발효 대전 고추장 부문 금상 수상.
ㆍ25년 제7회 대한민국 장류 발효 대전 고추장 부문 대상 수상.
ㆍ대한민국 장류 발효 대전에 출품한 고추장 부문 4년 연속 수상.
ㆍ시집 : 『에덴의 꿈』 『스토리가 있는 섬 신안 島』
『시가 열리는 과수원』
ㆍ시·산문집 : 『간이역을 지나며』
ㆍ목포과학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식품영양학을 전공.
ㆍ2011년 《리토피아》 겨울호 시 등단, 2024년 《시와사람》 봄호 수필 등단.
ㆍ신안군의회 제6대 의원을 지냈다.(2010. 7. 1 ~ 2014. 6.30)
ㆍ리토피아 문소연 회원, 시와사람시학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한국문인협회 신안지부 편집부장을 맡고 있다.
ㆍ신안 배 고추장 명인.
ㆍ22년 제4회 대한민국 장류 발효 대전 고추장 부문 최우수상 수상.
ㆍ23년 제5회 대한민국 장류 발효 대전 된장 부문 우수상 수상.
ㆍ24년 제6회 대한민국 장류 발효 대전 고추장 부문 금상 수상.
ㆍ25년 제7회 대한민국 장류 발효 대전 고추장 부문 대상 수상.
ㆍ대한민국 장류 발효 대전에 출품한 고추장 부문 4년 연속 수상.
ㆍ시집 : 『에덴의 꿈』 『스토리가 있는 섬 신안 島』
『시가 열리는 과수원』
ㆍ시·산문집 : 『간이역을 지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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