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래 생수거(시와사람 서정시선 116)
조규춘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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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 작품론
| 평설 |
기상천외한 퍼포먼스, 임기능변의 천의무봉,
풍자 질펀한 무소유 시
노 창 수
(시인, 문학평론가)
1.
파람, 아봄, 난해, 뜬금 등의 호와 필명을 여럿 가진, 그러나 때로 그 호를 반납하기도 하는, 그래 좀 기이한, 그러면서도 활달한 퍼포먼스로 천의무봉 사유를 거침없이 뿜어내는 사람, 그가 조규춘이다. 현장에서 그는 기외奇外의 재간으로 임기능변함과 '퍼폼시'로 흥을 돋우는 순발력을 뭐 탄환처럼 장착한다. 한데, 그에겐 내장된 게 더 있다. 사실 13여 년간 꾸준히 시를 쓴 사람이다. 만년설 같은 서정의 맥을 캐는 문학도다. 최근 몇 년간 그는 '디카시' 분야를 섭렵하여 전국 공모전에 20여 차례 상위 입상을 하기도 했다. 디자인과 디카시, 그리고 문자시文字詩, 기호시記號詩, 거기에 세태풍자시世態諷刺詩다 담시譚詩다 하며, 시맥을 찾는바 이 시대 보기 드문 전방위적 시 추격자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가 시에 도드라지게 서정성을 입힌다는 사실을. 서사를 끼고돌아 결국은 서정의 골목으로 가 웅크린다는 것도. 그게 의외의 일처럼 보여도 천상 보리밥 먹고 까시락 똥을 누던 보성 촌놈이었다. 동원되는 시어 대부분이 토박이말에 심저온정心底溫情이 마람장을 엮이듯 펼쳐진다.
2
이제, 그의 시 몇 편을 살펴봐야겠다. 10여 년간 수백 편을 쓰며, 그는 밤 고양이를 울리고 새벽 부엉이 눈을 부릅뜨게 했으며, 가족을 등진 채 못박히듯 서재 귀퉁이에서 희미한 새벽을 마주하고 시로 웃었을 법하다. 그중에서 고작 7편을 골라 이 축제상祝祭床에 올리며 그동안 위무할 돗자리를 편다.
사십여 년 무사안일한 강당
교수형 면한 발목은
끝까지 별을 달고 돌아왔다
아내의 안도하는 눈길에
포옹은커녕 악수조차 어색하다
꿈, 꿈틀댈 수도 없는 세상
늦잠 깨어나 보니 뜻밖의 감촉
뻘밭에 빠진 양
수면양말 신겨 주었더니
잠결에 발길질이란다
갈비뼈 하나쯤
별빛처럼 접붙이면 어떠냐고
나는 수면안대를 걸어주었다
- 「손끝 발끝」 전문
아뿔싸, 부부의 관계적 아이러니를 유머로 윤색해 입혔다. 시니컬한 분위기이지만 일견 빗나간 인정미가 은근 미소를 훔친다. 그는 "사십여 년" 동안 "무사안일한 강당"이란 자기평가를 하며 교직생활을 정리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평생 교수생활을 한 결과 "교수형 면한 발목"이니 다행이라 여긴다. 그런 심보로 본 운위의 풍자 또한 천의무봉 격이다. 근무하는 동안 별다른 사고가 없었기에 "발목" 잡힐 일은 면했다고 보고한다. 그래 "끝까지" 버텨내 비로소 퇴직이란 "별을 달고" 금의환향하듯 돌아온 것이다. 아내는 이제부턴 자고 쉬라는 뜻으로 그에게 수면양말을 신겨준다. 한데, 잠결에 그만 그 아내에게 발길질하고 만다. 찰나, 미안한 마음이다. 어쩌면 오는 정 가는 정일까. 그는 "갈비뼈"를 "별빛처럼 접붙이면 어떠냐고" 능청을 부린다. 잠투정이 심하니, 자신의 발길질을 아예 느끼지 못하게끔 그녀에게 "수면안대를 걸어주었다"는 식의, 참 말리지 못할 해학으로 부부애마저 풍자적 넋두리로 돌린다. 부부간 화답이란 반드시 언어로 하는 것만이 아니다. 본의와 달리 엇갈리는 이 같은 배려도 상대 여정餘情을 내 것으로 옮겨올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빈 상자라도 실을수록 가볍다
저울대 앞의 덧셈과 뺄셈
탄력받은 손수레 속도를 더 하고
덜거덕 소리 줄어든다
오뉴월 우박이 내려
비에 씻긴 모래 반짝 촉 틔운다
생의 수레바퀴는 외상이 없다
오르막 느릴지라도
내리막길 재촉해도
내일 내 일을 당겨 쓰지 않는다
-손수레가 나를 끄네
소리는 다른 궤적을 찾는다
멀리서 칠성판 기다리고 있는가
- 「할머니의 미사」 전문
리어카의 주인은 폐휴지 팔아 자신을 유지하는 할머니다. 그녀는 "오뉴월 우박"으로 "씻긴 모래"가 "반짝 촉 틔운" 길을 오른다. 힘겨운 오르막에선 짐 실은 리어카가 느리게 구를 수밖에 없다. 할머니는 정직하다. 내리막길에 이르러 수레가 달리기를 재촉해도 날짜를 당겨쓰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바쁘게 일하지 않는다는 뜻은 내일은 내일인 까닭이다. 할머니가 공들여 돈을 모으는 건 따로 있다. 흔히 말하는 밥벌이나 손주 용돈이 아니다. 할머니 기도에 파고든 그 "미사" 때문이다. 죽어 관에 들 때 당신의 사지를 묶을 "칠성판"을 마련할 돈을 벌게 해달라는 기도가 그것이다. 시의 눈은 이리도 깊다. 그녀는 오늘도 폐지를 주우며 리어카를 무겁게 끈다. 할머니의 깨달음은 고물상 저울대 앞이다. 폐지를 많이 주우면 덧셈이겠지만 적게 모으면 시원찮은 뺄셈의 '벌이'이니 곧 자기에게 '벌'이 주어진다. 대체로 그녀의 일상은 뺄셈의 '벌'을 받을 때가 많다. 여기에 시인은 놓칠세라, '벌이'와 '벌'의 병치로 언어유희 포충망을 잡아든다. 수레는 탄력을 배가시키며 내리막을 저절로 구를 때가 있다, 하지만 대개는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야 하기에 입에 쓴내를 풍기는 일을 자주 겪는다. 해서, 생의 수레는 할머니의 '벌이'만큼 느릿하게 구른다. 내일이라 해서 넉넉함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리어카가 나를 끄네"란 드디어 내리막에 이르렀음이다. 아니, 칠성판을 마련하라고 수레가 스스로 내리막으로 이끄는 것으로 표현하기에 시답다. 이도 역시 중의의 의미이겠다. 그녀는 점차 가까워져 오는 황토색 '칠성판'을 향해 나아간다. "리어카가 나를 끄네"라는 말에는 칠성판 값에 버금할 돈이 불어나고 있다는 암시일 것이다.
선암사 큰 곰 집 아래 멍에 두른 소
코뚜레가 땅에 닿을 듯
쟁기 부리 박고 용쓰고 있다
지난날 큰바람에 뿌리째 넘어진 솔
엎드린 채 땅을 붙잡고 있다
솔가지 채찍 휘날리는 바람결에
그저 고요히 그림자만 품고 있다
쉼은 있는 듯 없는 듯
들릴 듯 말 듯 솔방울 워낭
소갈머리로 조잘대는 뱁새 한 마리
소 등에서 휘파람만 불어 댄다
와 와
세상이 등을 떠미는데 왜 이리도
재촉하는가
소는 묵묵히 누워서 되새김질한다
- 「와송臥松 와선臥禪」 전문
누운 듯 몸을 비튼 와송이 인상에 들어온다. 그 솔을 두고 "선암사 큰 곰 집 아래 멍에 두른 소"로 병치하여 시의 자리에 앉힌다. "코뚜레가 땅에 닿을 듯"한 나무의 모습, 그건 영락없이 "쟁기 부리 박고 용쓰는" 소와 같다. 즉 소의 논갈이 모습을 시각적 장치로 그려낸 것이다. 그 단계는 기승전결의 순차를 따랐다. '쟁기질 하는듯한 소의 형상화' 〈기〉 → '뿌리째 넘어진 솔가지 바람을 채찍으로 맞으며 땅을 붙잡고 있는 소나무' 〈승〉 → '쉴 틈 없는 소와 소갈머리 없이 조잘대는 뱁새 모습' 〈전〉 → '등을 떠밀지만 누운 듯 천천히 가겠다는 와 와' 〈결〉의 단계가 그것이다. "와 와"는 쟁기질 용어로 소에게 '천천히 가라'는 의미로 쓰인다. 와송인 '와臥'의 의미를 '눕다', '천천히'란 뜻으로 소나무의 여유로움과 소 모는 소리를 연합해 중의어가 되도록 장치하고도 묵묵 묵언 선禪으로, 되새김질은 깨달음의 선경 세계로 들게 한다.
이러한 중의법은 '언어적 유희linguistic fun' 기법으로 조규춘 식 발화에 한 특징으로 자리한다. 이는 기상천외한 그의 기질 발휘와 잘 연몌될 보법일 듯하다. '언어적 펀'이란 현대시 독자가 견디어낼 긴장감으로부터 무장해제를 함이 목적이다. 2000년대 이래 여러 시인이 즐겨 다루는 보편적 시의 문법이 되었다.
해마다 문안드린 백세 수묵 한 폭
몰골사나워도 꽃이 핀 계당매(溪堂梅)
계곡 따라 달리는 차창 밖
밑동이 잘린 매화 한 그루
땅바닥에 통째로 누워 있다
길섶에 차 세워 골짝을 뒤졌지만
흔적 없이 사라진 백발의 나무
그건 환시였다
-수목요양원으로 모셨다네
오백 년은 더 살으라고...
쥔장의 말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이듬해 꽃 피웠다는 소문만 돌고
상봉 날은 언제쯤일까
지팡이 짚은 소록도 수양매도
태풍 매미가 울어대며 모셔갔지만
내 영종(令終) 사진 먼저 찍어 둬야 할
- 「수목요양원」 전문
대체로 사람은 종생終生쯤에 집을 떠나게 된다. 끝내 그가 요양병원으로 가야 하는 수순이 그러하다. 좋든 싫든 거긴 신변 처리를 맡아 해준다. 마찬가지로 오래 마을을 지킨 당산나무나 늙은 매화나무도 요양원이 필요할지 모른다. '수목요양원'이란 오염된 환경에 적응이 어려울 때 관리인의 보호를 받아야 할 그 나무를 수용할 터이지만 이후 생은 차츰 위험해지기 마련이다. 화자가 본 '계당매'는 풍우의 더께로 몸피가 죄 얽었으나 꽃 향만은 짙다. 탐매하러 가는 차창으로 얼핏 밑동 잘린 매화가 스친다. 그는 차를 세우고 찾지만 백발 나무는 없다. 순간의 이 환시는 명품 매화로 향하는 그 간절함에서 빚어진 일이다. 희구의 탐매욕探梅慾에 헛것이 백발의 실재로 향하는 기억이다. "쥔장"이 수목요양원에 모셨다는 말에도 의심이 든다. 매년 탐매 때 찍어 오던 터라 이제는 제 영종令終 사진 먼저 찍을 차례라고 말한다. 그래, 매화는 사라졌다. 오백 년 이어갈 방도를 찾기 위해 멀리 보냈다는 요양원이 궁금한 건 화자나 독자도 마찬가지다. 결국 이 시는 노매老梅의 행방을 찾아가는 감정, 그리고 그가 상봉할 꽃에 대한 그리움, 그러나 부재한 감정을 노정함으로써 오랜 존재에 대한 향수적 생태성을 부여한다.
3
햇볕마저 삼킨 둑 아래 비포장 길
빗물 고인 터 연탄재 버짐 피었지
길바닥에 찌그러진 양은 냄비 툭!
플라타너스 버즘나무잎 눌어붙고
노란 은행잎 띠기 과자 침 바르던
끊어진 고무줄
콜록거리 훌쩍거리 좁다란 소야곡
광석-라디오 귓바퀴에 아슴푸레한
기타 줄 끊어진 후 무고한 진혼곡
차곡차곡 "김광석 다시 그리는 길"
지천명 세월에 들어 우뚝 선 기타
새 한 마리 날아와 솟대가 되었다
퇴¡ 자본주의 허깨비는 물렀거라!
힙합이 난무한 높은음 벤치 위에
까치밥 차려 박수무당의 난장-굿
껍데기들 모두 모아 싹쓸이할 때
파노라마 병풍처럼 담장 모자이크
노을빛 내려앉은 저물어 간 내리막
눈물 따라 담쟁이넝쿨도 자라난다
퉁! 6번 줄 능청스레 늘어져 가는
그 줄 옆, 또 다른 줄 &
- 「김광석 골목길 그림자」 전문
김광석(1964-1996)은 80~90년대를 아우르며 진정성을 토로한 싱어송라이터이다. 통기타 곡 〈서른 즈음에〉는 음악평론가들로부터 당시 최고 노랫말로 선정되기도 했다. 다른 히트곡도 여럿 남겼다. 그는 포크송 사상 요절한 가객歌客으로 오래 회자되는 이름이다. 대구 대봉동은 그가 살던 방천시장 인근에 있다. 그의 삶과 음악을 테마로 조성한 벽화의 골목거리를 도식화한 듯 형태시로 펼친다. 화자는 "햇빛마저 삼킨 둑 아래 비포장 길 빗물 고인 터 연탄재 버짐" 핀 길을 가다 "찌그러진 양은 냄비 툭" 찬다고 전한다. 거기 이어지는 길 "플라타너스 버즘나무 잎 눌어붙"은 풍경, "노란 은행잎"을 주우며 "띠기 과자 침 바르던 끊어진 고무줄"을 소환한다. 당시 가수가 산 시대를 화자의 그것과 연결해 보인다. 그러다 그만 "툭!"이란 상징어로 김광석의 죽음을 압축한다. "콜록거리 훌쩍거리", "좁다란 소야곡", "광석-라디오", "무고한 진혼곡" 등 당시 유행하던 말과 사물을 오버랩시키며 치받는 리듬이 "차곡차곡" 쟁여진 거리를 지난다. 하지만 이젠 "힙합이 난무한 높은음"에 밀려 대봉동 골목에 남겨진 내리막은 벌써 저물어버리고 기념물만이 그를 대신한다. 기타 "6번 줄 능청하게 늘어져" 가듯 "그 줄 옆 다른 줄"이 된 시간을 맞듯 우리는 김광석을 잊었다. 하지만 화자는 그를 동시대를 산 사람답게 담화론이나 풍자적으로 접근한다. 그가 〈서른 즈음에〉를 부를 때 높은음 부위 하모니카를 내두르다가 끝내 오열하듯, 마침내 제 기타마저 부숴버리려고 박치던 모습, 그때 젊은 관중들은 얼마든지 오줌을 싸버려도 좋을 만큼 열광한 바 있다. 그는 90년대 대학가의 우상이자 물상이었다. 그 김광석은 우리 시대 달아난 청춘, 그 앤솔로지 판을 쥐고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부르며 지하에서 흐느낀다. 그 골목길에 다가선 그림자는 시인의 것일까, 김광석의 환생일까.
"고무줄 " "처럼 사람이 고무줄을 당기는 시대를 지나 그 옆의 다른 "줄 &"로, 줄과 사람이 멀어지는 시대를 상징해 보인다. "자본주의 허깨비"를 "퇴¡" 하고 뱉어버리는 그때, 거꾸로 선 느낌표를 일으킬 듯한 김광석 자리가 그리워진다. 그가 부렸던 높은음 아래에는 온갖 난장도 싹쓸이할 수 있는 힘을 지녔더랬다. 한데, 현대는 자본주의 줄을 늘이려고만 달려든다. 김광석이 고뇌하며 앓던 골목길, 그곳에 나부꼈던 깃발과 그림자를 이제 시인이 내린다. 시는 그걸 부정하는 듯하지만, 사실 읽는 독자는 재 지탱시키려는 역설의 마력을 보게 된다.
4
평화 통일 물 건너 일통-화평 가련다
태안사 계곡물 따라 갈라지고
동리산 죽곡 빗방울 어깨를 내리친다
투둑투둑 길바닥에 튕기는 우레비
어느 편의 부메랑인가
쭉 뻗은 다리인 양 헐벗은 주목 나무
섬진강을 미처 건너지 못한 청설모
어서 건너가라고 외나무다리 된다
폭우에 떠내려온 나무 동강 방아깨비
빈 물레방앗간 찾아든다
계곡 바위 뒤 숨어 있는 산짐승 울음
이산 저산 천둥이 울고
뼛가루 갈아 은빛으로 튀는 물 밖에
쉬리, 짝을 찾아 오르내리는데
- 「압록에서 곡성」 전문
섬진강과 보성강이 합류한 기점이 압록鴨綠이다. 여기서부터 강은 굽이굽이길[曲城]을 거쳐 바야흐로 1 이른 데가 곡성(谷城)이다. 한국의 10대 아름다운 길로 알려졌지만, 사실 고려시대는 장사꾼들이 이곳을 찾을 때마다 길이 힘들기에 우는 일이 많아 곡성哭聲으로 불려진 곳이다.
이런 사유인지 시에서도 강을 건너지 못해 청설모가 주저하고, 동강 방아깨비가 물레방앗간에서 산짐승 울음소릴 듣는다. 길바닥을 튕기는 우레비, 천둥의 울음 등 통곡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러나 경계의 밖은, 청설모에게 "외나무다리"가 되어주는 주목 나무, 그리고 "폭우에 떠내려온" 방아깨비가 물레방앗간에 이르는 길, 바야흐로 2 "은빛으로 튀는 물 밖에 쉬리"를 만나듯, 화평세상을 오르는 강의 길이 빛나는 곳이다. 압록에서 듣는 곡성(哭聲)은 이처럼 빗방울에 젖어오는 밀밀한 울음소리를 깐다. '청설모, 산짐승, 방아깨비, 쉬리' 들이 '주목 나무와 물레방앗간과 우레비'를 만나 화평계로 나아가는 부메랑이 된다. "은빛으로 튀는 물 밖에" "쉬리"가 짝을 찾으러 비상하는 곳에 "일통-화평"은 열린다. 시의 처음인 "평화 통일"은 물 건너에 존재하는 다른 화평 즉 거꾸로 읽어본 "일통-화평"이 압록에서 곡성으로 이어지는 그 세상일 것이다.
글은 송곳이 아니면 쓰지 말고
그림은 칼날 아니면 그리지 말아야 한다
닳아 무뎌진 펜촉
스스로를 찌르며 녹슬어가는 글
녹슨 언어로 상처 덧나게 해선 안 된다
공중에서 맴도는 말들
숨은 볼펜 심 쥐어짜듯 토해낸다
모기 눈알 같은 저항에
구르며 토한 쥐눈이콩 글자들
눈알이 빠져도 조서는 끝나지 않는다
먹물 대신 핏물로 채운 붉은 리스트
갈기다가 피의 응고를 부른다
벗고 벗기고 추락 앞에 추잡한 꼴불견
생체 인식기가 키보드를 대역한다지만
말하지 않으면 스스로 시인하는 것
글 하나 죽어야 비로소 태어나는
말, 말
- 「붉은 펜의 증후군」 전문
'메타시'는 조규춘 시인이 더러 쓰는 무기다. 그에 의하면 모름지기 글이란 아픈 곳을 "송곳"으로 찌르듯 써야 함을 말한다. 이때 "상처를 덧나게" 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 독자의 감동을 자아내는 글이 되어야 한다는 걸 말한다. 그는 이데올로기적 사고에서 뒷짐 지고 살지만은 않았기에 시국이 어수선할 때면 트라우마에 내심 시달리기라도, 생의 단면을 실행에서 들춘 듯 글에 비해 "그림은 칼날"로 다듬어내듯 그려가야 한다는 지론을 펴기도 한다. 글 쓰는 일은 "무뎌진 펜"으로 스스로를 찌르지만, 그리는 건 "칼날"처럼 "녹슬어가는 날들"을 자기 세계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다. 요컨대 글은 "녹슨 언어"로는 발도 붙일 수 없게 장치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니, 게으르지 않아야 할 일이다. 한데, 대부분은 글을 쓰려고 작정만 하다 떠오르는 글을 붙잡지 못하고 그냥 허공에 맴돌게 할 때가 많다. "모기 눈앞 같은 저항"에 억지 토해낸 듯한 콩알 같은 단어들만 빼곡히 부리는 일이 그렇다. 글의 자초지종을 따지기만 하는 "조서"와 같은 글로는 그 끝을 보지 못한다. "핏물로 채운 붉은 리스트"를 "갈기다가 피의 응고를 부르"는 수도 있다. 첨단 영상 장비 "생체 인식기"로 "말하지 않으면 스스로 시인하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작금의 시사성을 들추어 그건 쓰지 못한 채로 죽는 일과 같다 한다. 이제, 챗봇과 AI의 시대로, 이들은 이미 작가 대역으로 쳐들어와 있다. 작가나 시인의 전유물이던 글이란 이제 "죽어야 비로소 태어나는" 전신의 그 "말, 말"일 것이다.
5
로젠블렛Louise Rosenblart은 시의 독서행위를, 거래이론transaction theory을 바탕으로 한 '반응중심 수용미학'이라 재해석한 바 있다. 반응중심이란 독자에 주는 시의 독특한 호소력, 즉 색다른 메시지로 시적 호기심을 일으키는 미학이다. '시-독자'의 거래에 상호 길항拮抗하듯 양측에 가독성을 높일 수 있을 때, 시의 효과는 상승하기 마련이다. 반응중심 시의 체제는 '시인-독자'를 맥락적으로 보는바 일견 '경영체제'와도 같다. 해서, 독자를 새롭게 모실 그 필수 틀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조규춘 시는 '시인-독자' 사이에 맥락적 역할을 하며, 특별한 경험적 담론을 들려주는, 예의 그 반응중심의 미학을 표방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미학과 디자인 전공자가 모색하는 그만의 시적 선택일 것이다.
그는 첫 번째 시집 『공수래 병수거』(2016 시와사람), 두 번째는 디카시집 『줄탁동시』(2017 시와사람)를 내면서 문단에 올랐다. 특히 두 번째 시집은, '디카시' 장르가 정착되지 않았을 때 실험적으로 쓴 시집이다. 표제에 〈디카시집〉이란 명칭을 붙여 주변을 놀라게 한 일도 있다. 한술 더 떠, 시집 『줄탁동시』에 나온 디카시를 모두 기획 전시한 일도 기억할 일이다.
예컨대 '정읍 동죽서원'(2018.3.31.-4.1.), '대원사 티벳박물관'(2018.4.4.-5.22.) 등에서 열었으니, 지역에선 '디카시' 원조란 별칭 또한 객관적으로 입증된 셈이다.
그의 사진시, 기호시, 디카시 등은 시와 독자의 거래이론적 미학을 추구하면서도 질펀한 풍자세계와 맞닿아 있다. 2004년부터 2025년에 이르는 동안 한국 문단은 실로 '디카시 시대'라 할 만큼 번성하고 있다. 차제에 그를 디카시에 대한 개척자, 전도사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이처럼 그는 남이 가지 않은 곳에 먼저 달려들어 끝장을 보는 추진력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좌충우돌의 모험주의자인가.
그러나 이 같은 형이상학적 칭송보다는, 솔직히 난 철들지 않은 그의 형이하학을 사랑한다. 해서, 앞으로 더 속없는 시의 철부지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오늘, 무슨 변고인지 10년의 침묵을 깨고 시집을 상재한다고 한다. 난 그의 서정 보따리를 훔칠 흙손을 이미 넣어본 셈이다. 기왕에 만질 것, 주워다 쓸만한 것이 없는가 하고. 한데, 제법 큰 보물을 만지는 기분이다. 아마 이 시집의 독자들도 보이지 않는 보물을 만지게 되리라 믿는다.
| 평설 |
기상천외한 퍼포먼스, 임기능변의 천의무봉,
풍자 질펀한 무소유 시
노 창 수
(시인, 문학평론가)
1.
파람, 아봄, 난해, 뜬금 등의 호와 필명을 여럿 가진, 그러나 때로 그 호를 반납하기도 하는, 그래 좀 기이한, 그러면서도 활달한 퍼포먼스로 천의무봉 사유를 거침없이 뿜어내는 사람, 그가 조규춘이다. 현장에서 그는 기외奇外의 재간으로 임기능변함과 '퍼폼시'로 흥을 돋우는 순발력을 뭐 탄환처럼 장착한다. 한데, 그에겐 내장된 게 더 있다. 사실 13여 년간 꾸준히 시를 쓴 사람이다. 만년설 같은 서정의 맥을 캐는 문학도다. 최근 몇 년간 그는 '디카시' 분야를 섭렵하여 전국 공모전에 20여 차례 상위 입상을 하기도 했다. 디자인과 디카시, 그리고 문자시文字詩, 기호시記號詩, 거기에 세태풍자시世態諷刺詩다 담시譚詩다 하며, 시맥을 찾는바 이 시대 보기 드문 전방위적 시 추격자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가 시에 도드라지게 서정성을 입힌다는 사실을. 서사를 끼고돌아 결국은 서정의 골목으로 가 웅크린다는 것도. 그게 의외의 일처럼 보여도 천상 보리밥 먹고 까시락 똥을 누던 보성 촌놈이었다. 동원되는 시어 대부분이 토박이말에 심저온정心底溫情이 마람장을 엮이듯 펼쳐진다.
2
이제, 그의 시 몇 편을 살펴봐야겠다. 10여 년간 수백 편을 쓰며, 그는 밤 고양이를 울리고 새벽 부엉이 눈을 부릅뜨게 했으며, 가족을 등진 채 못박히듯 서재 귀퉁이에서 희미한 새벽을 마주하고 시로 웃었을 법하다. 그중에서 고작 7편을 골라 이 축제상祝祭床에 올리며 그동안 위무할 돗자리를 편다.
사십여 년 무사안일한 강당
교수형 면한 발목은
끝까지 별을 달고 돌아왔다
아내의 안도하는 눈길에
포옹은커녕 악수조차 어색하다
꿈, 꿈틀댈 수도 없는 세상
늦잠 깨어나 보니 뜻밖의 감촉
뻘밭에 빠진 양
수면양말 신겨 주었더니
잠결에 발길질이란다
갈비뼈 하나쯤
별빛처럼 접붙이면 어떠냐고
나는 수면안대를 걸어주었다
- 「손끝 발끝」 전문
아뿔싸, 부부의 관계적 아이러니를 유머로 윤색해 입혔다. 시니컬한 분위기이지만 일견 빗나간 인정미가 은근 미소를 훔친다. 그는 "사십여 년" 동안 "무사안일한 강당"이란 자기평가를 하며 교직생활을 정리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평생 교수생활을 한 결과 "교수형 면한 발목"이니 다행이라 여긴다. 그런 심보로 본 운위의 풍자 또한 천의무봉 격이다. 근무하는 동안 별다른 사고가 없었기에 "발목" 잡힐 일은 면했다고 보고한다. 그래 "끝까지" 버텨내 비로소 퇴직이란 "별을 달고" 금의환향하듯 돌아온 것이다. 아내는 이제부턴 자고 쉬라는 뜻으로 그에게 수면양말을 신겨준다. 한데, 잠결에 그만 그 아내에게 발길질하고 만다. 찰나, 미안한 마음이다. 어쩌면 오는 정 가는 정일까. 그는 "갈비뼈"를 "별빛처럼 접붙이면 어떠냐고" 능청을 부린다. 잠투정이 심하니, 자신의 발길질을 아예 느끼지 못하게끔 그녀에게 "수면안대를 걸어주었다"는 식의, 참 말리지 못할 해학으로 부부애마저 풍자적 넋두리로 돌린다. 부부간 화답이란 반드시 언어로 하는 것만이 아니다. 본의와 달리 엇갈리는 이 같은 배려도 상대 여정餘情을 내 것으로 옮겨올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빈 상자라도 실을수록 가볍다
저울대 앞의 덧셈과 뺄셈
탄력받은 손수레 속도를 더 하고
덜거덕 소리 줄어든다
오뉴월 우박이 내려
비에 씻긴 모래 반짝 촉 틔운다
생의 수레바퀴는 외상이 없다
오르막 느릴지라도
내리막길 재촉해도
내일 내 일을 당겨 쓰지 않는다
-손수레가 나를 끄네
소리는 다른 궤적을 찾는다
멀리서 칠성판 기다리고 있는가
- 「할머니의 미사」 전문
리어카의 주인은 폐휴지 팔아 자신을 유지하는 할머니다. 그녀는 "오뉴월 우박"으로 "씻긴 모래"가 "반짝 촉 틔운" 길을 오른다. 힘겨운 오르막에선 짐 실은 리어카가 느리게 구를 수밖에 없다. 할머니는 정직하다. 내리막길에 이르러 수레가 달리기를 재촉해도 날짜를 당겨쓰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바쁘게 일하지 않는다는 뜻은 내일은 내일인 까닭이다. 할머니가 공들여 돈을 모으는 건 따로 있다. 흔히 말하는 밥벌이나 손주 용돈이 아니다. 할머니 기도에 파고든 그 "미사" 때문이다. 죽어 관에 들 때 당신의 사지를 묶을 "칠성판"을 마련할 돈을 벌게 해달라는 기도가 그것이다. 시의 눈은 이리도 깊다. 그녀는 오늘도 폐지를 주우며 리어카를 무겁게 끈다. 할머니의 깨달음은 고물상 저울대 앞이다. 폐지를 많이 주우면 덧셈이겠지만 적게 모으면 시원찮은 뺄셈의 '벌이'이니 곧 자기에게 '벌'이 주어진다. 대체로 그녀의 일상은 뺄셈의 '벌'을 받을 때가 많다. 여기에 시인은 놓칠세라, '벌이'와 '벌'의 병치로 언어유희 포충망을 잡아든다. 수레는 탄력을 배가시키며 내리막을 저절로 구를 때가 있다, 하지만 대개는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야 하기에 입에 쓴내를 풍기는 일을 자주 겪는다. 해서, 생의 수레는 할머니의 '벌이'만큼 느릿하게 구른다. 내일이라 해서 넉넉함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리어카가 나를 끄네"란 드디어 내리막에 이르렀음이다. 아니, 칠성판을 마련하라고 수레가 스스로 내리막으로 이끄는 것으로 표현하기에 시답다. 이도 역시 중의의 의미이겠다. 그녀는 점차 가까워져 오는 황토색 '칠성판'을 향해 나아간다. "리어카가 나를 끄네"라는 말에는 칠성판 값에 버금할 돈이 불어나고 있다는 암시일 것이다.
선암사 큰 곰 집 아래 멍에 두른 소
코뚜레가 땅에 닿을 듯
쟁기 부리 박고 용쓰고 있다
지난날 큰바람에 뿌리째 넘어진 솔
엎드린 채 땅을 붙잡고 있다
솔가지 채찍 휘날리는 바람결에
그저 고요히 그림자만 품고 있다
쉼은 있는 듯 없는 듯
들릴 듯 말 듯 솔방울 워낭
소갈머리로 조잘대는 뱁새 한 마리
소 등에서 휘파람만 불어 댄다
와 와
세상이 등을 떠미는데 왜 이리도
재촉하는가
소는 묵묵히 누워서 되새김질한다
- 「와송臥松 와선臥禪」 전문
누운 듯 몸을 비튼 와송이 인상에 들어온다. 그 솔을 두고 "선암사 큰 곰 집 아래 멍에 두른 소"로 병치하여 시의 자리에 앉힌다. "코뚜레가 땅에 닿을 듯"한 나무의 모습, 그건 영락없이 "쟁기 부리 박고 용쓰는" 소와 같다. 즉 소의 논갈이 모습을 시각적 장치로 그려낸 것이다. 그 단계는 기승전결의 순차를 따랐다. '쟁기질 하는듯한 소의 형상화' 〈기〉 → '뿌리째 넘어진 솔가지 바람을 채찍으로 맞으며 땅을 붙잡고 있는 소나무' 〈승〉 → '쉴 틈 없는 소와 소갈머리 없이 조잘대는 뱁새 모습' 〈전〉 → '등을 떠밀지만 누운 듯 천천히 가겠다는 와 와' 〈결〉의 단계가 그것이다. "와 와"는 쟁기질 용어로 소에게 '천천히 가라'는 의미로 쓰인다. 와송인 '와臥'의 의미를 '눕다', '천천히'란 뜻으로 소나무의 여유로움과 소 모는 소리를 연합해 중의어가 되도록 장치하고도 묵묵 묵언 선禪으로, 되새김질은 깨달음의 선경 세계로 들게 한다.
이러한 중의법은 '언어적 유희linguistic fun' 기법으로 조규춘 식 발화에 한 특징으로 자리한다. 이는 기상천외한 그의 기질 발휘와 잘 연몌될 보법일 듯하다. '언어적 펀'이란 현대시 독자가 견디어낼 긴장감으로부터 무장해제를 함이 목적이다. 2000년대 이래 여러 시인이 즐겨 다루는 보편적 시의 문법이 되었다.
해마다 문안드린 백세 수묵 한 폭
몰골사나워도 꽃이 핀 계당매(溪堂梅)
계곡 따라 달리는 차창 밖
밑동이 잘린 매화 한 그루
땅바닥에 통째로 누워 있다
길섶에 차 세워 골짝을 뒤졌지만
흔적 없이 사라진 백발의 나무
그건 환시였다
-수목요양원으로 모셨다네
오백 년은 더 살으라고...
쥔장의 말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이듬해 꽃 피웠다는 소문만 돌고
상봉 날은 언제쯤일까
지팡이 짚은 소록도 수양매도
태풍 매미가 울어대며 모셔갔지만
내 영종(令終) 사진 먼저 찍어 둬야 할
- 「수목요양원」 전문
대체로 사람은 종생終生쯤에 집을 떠나게 된다. 끝내 그가 요양병원으로 가야 하는 수순이 그러하다. 좋든 싫든 거긴 신변 처리를 맡아 해준다. 마찬가지로 오래 마을을 지킨 당산나무나 늙은 매화나무도 요양원이 필요할지 모른다. '수목요양원'이란 오염된 환경에 적응이 어려울 때 관리인의 보호를 받아야 할 그 나무를 수용할 터이지만 이후 생은 차츰 위험해지기 마련이다. 화자가 본 '계당매'는 풍우의 더께로 몸피가 죄 얽었으나 꽃 향만은 짙다. 탐매하러 가는 차창으로 얼핏 밑동 잘린 매화가 스친다. 그는 차를 세우고 찾지만 백발 나무는 없다. 순간의 이 환시는 명품 매화로 향하는 그 간절함에서 빚어진 일이다. 희구의 탐매욕探梅慾에 헛것이 백발의 실재로 향하는 기억이다. "쥔장"이 수목요양원에 모셨다는 말에도 의심이 든다. 매년 탐매 때 찍어 오던 터라 이제는 제 영종令終 사진 먼저 찍을 차례라고 말한다. 그래, 매화는 사라졌다. 오백 년 이어갈 방도를 찾기 위해 멀리 보냈다는 요양원이 궁금한 건 화자나 독자도 마찬가지다. 결국 이 시는 노매老梅의 행방을 찾아가는 감정, 그리고 그가 상봉할 꽃에 대한 그리움, 그러나 부재한 감정을 노정함으로써 오랜 존재에 대한 향수적 생태성을 부여한다.
3
햇볕마저 삼킨 둑 아래 비포장 길
빗물 고인 터 연탄재 버짐 피었지
길바닥에 찌그러진 양은 냄비 툭!
플라타너스 버즘나무잎 눌어붙고
노란 은행잎 띠기 과자 침 바르던
끊어진 고무줄
콜록거리 훌쩍거리 좁다란 소야곡
광석-라디오 귓바퀴에 아슴푸레한
기타 줄 끊어진 후 무고한 진혼곡
차곡차곡 "김광석 다시 그리는 길"
지천명 세월에 들어 우뚝 선 기타
새 한 마리 날아와 솟대가 되었다
퇴¡ 자본주의 허깨비는 물렀거라!
힙합이 난무한 높은음 벤치 위에
까치밥 차려 박수무당의 난장-굿
껍데기들 모두 모아 싹쓸이할 때
파노라마 병풍처럼 담장 모자이크
노을빛 내려앉은 저물어 간 내리막
눈물 따라 담쟁이넝쿨도 자라난다
퉁! 6번 줄 능청스레 늘어져 가는
그 줄 옆, 또 다른 줄 &
- 「김광석 골목길 그림자」 전문
김광석(1964-1996)은 80~90년대를 아우르며 진정성을 토로한 싱어송라이터이다. 통기타 곡 〈서른 즈음에〉는 음악평론가들로부터 당시 최고 노랫말로 선정되기도 했다. 다른 히트곡도 여럿 남겼다. 그는 포크송 사상 요절한 가객歌客으로 오래 회자되는 이름이다. 대구 대봉동은 그가 살던 방천시장 인근에 있다. 그의 삶과 음악을 테마로 조성한 벽화의 골목거리를 도식화한 듯 형태시로 펼친다. 화자는 "햇빛마저 삼킨 둑 아래 비포장 길 빗물 고인 터 연탄재 버짐" 핀 길을 가다 "찌그러진 양은 냄비 툭" 찬다고 전한다. 거기 이어지는 길 "플라타너스 버즘나무 잎 눌어붙"은 풍경, "노란 은행잎"을 주우며 "띠기 과자 침 바르던 끊어진 고무줄"을 소환한다. 당시 가수가 산 시대를 화자의 그것과 연결해 보인다. 그러다 그만 "툭!"이란 상징어로 김광석의 죽음을 압축한다. "콜록거리 훌쩍거리", "좁다란 소야곡", "광석-라디오", "무고한 진혼곡" 등 당시 유행하던 말과 사물을 오버랩시키며 치받는 리듬이 "차곡차곡" 쟁여진 거리를 지난다. 하지만 이젠 "힙합이 난무한 높은음"에 밀려 대봉동 골목에 남겨진 내리막은 벌써 저물어버리고 기념물만이 그를 대신한다. 기타 "6번 줄 능청하게 늘어져" 가듯 "그 줄 옆 다른 줄"이 된 시간을 맞듯 우리는 김광석을 잊었다. 하지만 화자는 그를 동시대를 산 사람답게 담화론이나 풍자적으로 접근한다. 그가 〈서른 즈음에〉를 부를 때 높은음 부위 하모니카를 내두르다가 끝내 오열하듯, 마침내 제 기타마저 부숴버리려고 박치던 모습, 그때 젊은 관중들은 얼마든지 오줌을 싸버려도 좋을 만큼 열광한 바 있다. 그는 90년대 대학가의 우상이자 물상이었다. 그 김광석은 우리 시대 달아난 청춘, 그 앤솔로지 판을 쥐고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부르며 지하에서 흐느낀다. 그 골목길에 다가선 그림자는 시인의 것일까, 김광석의 환생일까.
"고무줄 " "처럼 사람이 고무줄을 당기는 시대를 지나 그 옆의 다른 "줄 &"로, 줄과 사람이 멀어지는 시대를 상징해 보인다. "자본주의 허깨비"를 "퇴¡" 하고 뱉어버리는 그때, 거꾸로 선 느낌표를 일으킬 듯한 김광석 자리가 그리워진다. 그가 부렸던 높은음 아래에는 온갖 난장도 싹쓸이할 수 있는 힘을 지녔더랬다. 한데, 현대는 자본주의 줄을 늘이려고만 달려든다. 김광석이 고뇌하며 앓던 골목길, 그곳에 나부꼈던 깃발과 그림자를 이제 시인이 내린다. 시는 그걸 부정하는 듯하지만, 사실 읽는 독자는 재 지탱시키려는 역설의 마력을 보게 된다.
4
평화 통일 물 건너 일통-화평 가련다
태안사 계곡물 따라 갈라지고
동리산 죽곡 빗방울 어깨를 내리친다
투둑투둑 길바닥에 튕기는 우레비
어느 편의 부메랑인가
쭉 뻗은 다리인 양 헐벗은 주목 나무
섬진강을 미처 건너지 못한 청설모
어서 건너가라고 외나무다리 된다
폭우에 떠내려온 나무 동강 방아깨비
빈 물레방앗간 찾아든다
계곡 바위 뒤 숨어 있는 산짐승 울음
이산 저산 천둥이 울고
뼛가루 갈아 은빛으로 튀는 물 밖에
쉬리, 짝을 찾아 오르내리는데
- 「압록에서 곡성」 전문
섬진강과 보성강이 합류한 기점이 압록鴨綠이다. 여기서부터 강은 굽이굽이길[曲城]을 거쳐 바야흐로 1 이른 데가 곡성(谷城)이다. 한국의 10대 아름다운 길로 알려졌지만, 사실 고려시대는 장사꾼들이 이곳을 찾을 때마다 길이 힘들기에 우는 일이 많아 곡성哭聲으로 불려진 곳이다.
이런 사유인지 시에서도 강을 건너지 못해 청설모가 주저하고, 동강 방아깨비가 물레방앗간에서 산짐승 울음소릴 듣는다. 길바닥을 튕기는 우레비, 천둥의 울음 등 통곡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러나 경계의 밖은, 청설모에게 "외나무다리"가 되어주는 주목 나무, 그리고 "폭우에 떠내려온" 방아깨비가 물레방앗간에 이르는 길, 바야흐로 2 "은빛으로 튀는 물 밖에 쉬리"를 만나듯, 화평세상을 오르는 강의 길이 빛나는 곳이다. 압록에서 듣는 곡성(哭聲)은 이처럼 빗방울에 젖어오는 밀밀한 울음소리를 깐다. '청설모, 산짐승, 방아깨비, 쉬리' 들이 '주목 나무와 물레방앗간과 우레비'를 만나 화평계로 나아가는 부메랑이 된다. "은빛으로 튀는 물 밖에" "쉬리"가 짝을 찾으러 비상하는 곳에 "일통-화평"은 열린다. 시의 처음인 "평화 통일"은 물 건너에 존재하는 다른 화평 즉 거꾸로 읽어본 "일통-화평"이 압록에서 곡성으로 이어지는 그 세상일 것이다.
글은 송곳이 아니면 쓰지 말고
그림은 칼날 아니면 그리지 말아야 한다
닳아 무뎌진 펜촉
스스로를 찌르며 녹슬어가는 글
녹슨 언어로 상처 덧나게 해선 안 된다
공중에서 맴도는 말들
숨은 볼펜 심 쥐어짜듯 토해낸다
모기 눈알 같은 저항에
구르며 토한 쥐눈이콩 글자들
눈알이 빠져도 조서는 끝나지 않는다
먹물 대신 핏물로 채운 붉은 리스트
갈기다가 피의 응고를 부른다
벗고 벗기고 추락 앞에 추잡한 꼴불견
생체 인식기가 키보드를 대역한다지만
말하지 않으면 스스로 시인하는 것
글 하나 죽어야 비로소 태어나는
말, 말
- 「붉은 펜의 증후군」 전문
'메타시'는 조규춘 시인이 더러 쓰는 무기다. 그에 의하면 모름지기 글이란 아픈 곳을 "송곳"으로 찌르듯 써야 함을 말한다. 이때 "상처를 덧나게" 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 독자의 감동을 자아내는 글이 되어야 한다는 걸 말한다. 그는 이데올로기적 사고에서 뒷짐 지고 살지만은 않았기에 시국이 어수선할 때면 트라우마에 내심 시달리기라도, 생의 단면을 실행에서 들춘 듯 글에 비해 "그림은 칼날"로 다듬어내듯 그려가야 한다는 지론을 펴기도 한다. 글 쓰는 일은 "무뎌진 펜"으로 스스로를 찌르지만, 그리는 건 "칼날"처럼 "녹슬어가는 날들"을 자기 세계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다. 요컨대 글은 "녹슨 언어"로는 발도 붙일 수 없게 장치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니, 게으르지 않아야 할 일이다. 한데, 대부분은 글을 쓰려고 작정만 하다 떠오르는 글을 붙잡지 못하고 그냥 허공에 맴돌게 할 때가 많다. "모기 눈앞 같은 저항"에 억지 토해낸 듯한 콩알 같은 단어들만 빼곡히 부리는 일이 그렇다. 글의 자초지종을 따지기만 하는 "조서"와 같은 글로는 그 끝을 보지 못한다. "핏물로 채운 붉은 리스트"를 "갈기다가 피의 응고를 부르"는 수도 있다. 첨단 영상 장비 "생체 인식기"로 "말하지 않으면 스스로 시인하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작금의 시사성을 들추어 그건 쓰지 못한 채로 죽는 일과 같다 한다. 이제, 챗봇과 AI의 시대로, 이들은 이미 작가 대역으로 쳐들어와 있다. 작가나 시인의 전유물이던 글이란 이제 "죽어야 비로소 태어나는" 전신의 그 "말, 말"일 것이다.
5
로젠블렛Louise Rosenblart은 시의 독서행위를, 거래이론transaction theory을 바탕으로 한 '반응중심 수용미학'이라 재해석한 바 있다. 반응중심이란 독자에 주는 시의 독특한 호소력, 즉 색다른 메시지로 시적 호기심을 일으키는 미학이다. '시-독자'의 거래에 상호 길항拮抗하듯 양측에 가독성을 높일 수 있을 때, 시의 효과는 상승하기 마련이다. 반응중심 시의 체제는 '시인-독자'를 맥락적으로 보는바 일견 '경영체제'와도 같다. 해서, 독자를 새롭게 모실 그 필수 틀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조규춘 시는 '시인-독자' 사이에 맥락적 역할을 하며, 특별한 경험적 담론을 들려주는, 예의 그 반응중심의 미학을 표방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미학과 디자인 전공자가 모색하는 그만의 시적 선택일 것이다.
그는 첫 번째 시집 『공수래 병수거』(2016 시와사람), 두 번째는 디카시집 『줄탁동시』(2017 시와사람)를 내면서 문단에 올랐다. 특히 두 번째 시집은, '디카시' 장르가 정착되지 않았을 때 실험적으로 쓴 시집이다. 표제에 〈디카시집〉이란 명칭을 붙여 주변을 놀라게 한 일도 있다. 한술 더 떠, 시집 『줄탁동시』에 나온 디카시를 모두 기획 전시한 일도 기억할 일이다.
예컨대 '정읍 동죽서원'(2018.3.31.-4.1.), '대원사 티벳박물관'(2018.4.4.-5.22.) 등에서 열었으니, 지역에선 '디카시' 원조란 별칭 또한 객관적으로 입증된 셈이다.
그의 사진시, 기호시, 디카시 등은 시와 독자의 거래이론적 미학을 추구하면서도 질펀한 풍자세계와 맞닿아 있다. 2004년부터 2025년에 이르는 동안 한국 문단은 실로 '디카시 시대'라 할 만큼 번성하고 있다. 차제에 그를 디카시에 대한 개척자, 전도사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이처럼 그는 남이 가지 않은 곳에 먼저 달려들어 끝장을 보는 추진력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좌충우돌의 모험주의자인가.
그러나 이 같은 형이상학적 칭송보다는, 솔직히 난 철들지 않은 그의 형이하학을 사랑한다. 해서, 앞으로 더 속없는 시의 철부지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오늘, 무슨 변고인지 10년의 침묵을 깨고 시집을 상재한다고 한다. 난 그의 서정 보따리를 훔칠 흙손을 이미 넣어본 셈이다. 기왕에 만질 것, 주워다 쓸만한 것이 없는가 하고. 한데, 제법 큰 보물을 만지는 기분이다. 아마 이 시집의 독자들도 보이지 않는 보물을 만지게 되리라 믿는다.
목차
목차
공수래 생수거 / 차례
1 천지 세 갈래
최초 태제영무胎臍靈舞
들러리 단추
부자세 꿍꿍이
엉덩이에 뿔
망초 성을 묻지 않는다
압록에서 곡성
관매도觀梅島 장葬보고
공모에서 응모
붉은 펜의 증후군
천지天池 세 갈래
쌍방 밑불 작전
역학의 궁합
식지 않은 염원
죽일 넘들
우애로운 벚나무
세간 신문 가위질
여왕과 땡벌
작전 명령 XO
무등산은 말한다
푸른 기와집
비무장은 없다
뎁데꼬깔
풀피리 조명발
지리산 영원사靈源寺
해맞이 퍼포먼스
2 반영의 세월
마음 속 미음
생일날 보릿국
문명의 저편
반영의 세월
원셔 문ㅎ학관
할머니의 미사
한겨레 멋 하나로 맛
스무고개 두 다리
별천지 농막
투명 인간 되어
못다 한 숙제
허난설헌 공원
죽녹원 그리다
갯고둥 전언
와온 24시
〈' '〉개안開眼
손끝 발끝
하나 된다는 건
양平 용門사 행자木
옥루흔屋漏痕
트라이앵글 운다
목포의 소야곡
숨 고르기 도약
내 안의 주인 것을
머릿결에 싣다
3 허깨비 보호색
해맞이 비손
다육이 다문화
고내다
무식이 용감한 트렌드
바람 속 바람
허깨비 보호색
우포늪 울음
긴 폭우가 시작된다
슈일없는 숨은 일꾼
천○지□인△
소나무 궤적을 따라서
와송臥松 와선臥禪
영산포 팽 어르신
봄바람에 취하다
수목요양원
애월의 숨바꼭질
도가도 비상도
없이 계시는 앵두
승천 보 행선
참 그리고 새
내려앉은 별꽃
美운 꽃
고창 소요사에서
울고 넘는 삽질
비화 한계령 비화
4 오구烏口 조감도
세 겹 속살
피할 수 없는 동승자
붉은 찔레꽃 연정
열아홉 순정파
오구烏口 조감도
하늘+조우선
4 구 4 일생
秋?추억
두암초당 갓끈
통 큰 박 서리
겨울을 포옹한다
마이 웨이馬耳 way
학이 시습
울지마라 홍어야
스무고개 고사리
시작과 끝의 고개
해신 굿
개 꼴
콘돔과 고모라
문이동풍蚊耳東風
우생마사牛生馬死
간이역 따라서
김광석 골목길 그림자
牛川리 3층 석탑
영혼도서관
| 평설 |
기상천외한 퍼포먼스, 임기능변의 천의무봉, 풍자 질펀한 무소유 시 / 노창수
1 천지 세 갈래
최초 태제영무胎臍靈舞
들러리 단추
부자세 꿍꿍이
엉덩이에 뿔
망초 성을 묻지 않는다
압록에서 곡성
관매도觀梅島 장葬보고
공모에서 응모
붉은 펜의 증후군
천지天池 세 갈래
쌍방 밑불 작전
역학의 궁합
식지 않은 염원
죽일 넘들
우애로운 벚나무
세간 신문 가위질
여왕과 땡벌
작전 명령 XO
무등산은 말한다
푸른 기와집
비무장은 없다
뎁데꼬깔
풀피리 조명발
지리산 영원사靈源寺
해맞이 퍼포먼스
2 반영의 세월
마음 속 미음
생일날 보릿국
문명의 저편
반영의 세월
원셔 문ㅎ학관
할머니의 미사
한겨레 멋 하나로 맛
스무고개 두 다리
별천지 농막
투명 인간 되어
못다 한 숙제
허난설헌 공원
죽녹원 그리다
갯고둥 전언
와온 24시
〈' '〉개안開眼
손끝 발끝
하나 된다는 건
양平 용門사 행자木
옥루흔屋漏痕
트라이앵글 운다
목포의 소야곡
숨 고르기 도약
내 안의 주인 것을
머릿결에 싣다
3 허깨비 보호색
해맞이 비손
다육이 다문화
고내다
무식이 용감한 트렌드
바람 속 바람
허깨비 보호색
우포늪 울음
긴 폭우가 시작된다
슈일없는 숨은 일꾼
천○지□인△
소나무 궤적을 따라서
와송臥松 와선臥禪
영산포 팽 어르신
봄바람에 취하다
수목요양원
애월의 숨바꼭질
도가도 비상도
없이 계시는 앵두
승천 보 행선
참 그리고 새
내려앉은 별꽃
美운 꽃
고창 소요사에서
울고 넘는 삽질
비화 한계령 비화
4 오구烏口 조감도
세 겹 속살
피할 수 없는 동승자
붉은 찔레꽃 연정
열아홉 순정파
오구烏口 조감도
하늘+조우선
4 구 4 일생
秋?추억
두암초당 갓끈
통 큰 박 서리
겨울을 포옹한다
마이 웨이馬耳 way
학이 시습
울지마라 홍어야
스무고개 고사리
시작과 끝의 고개
해신 굿
개 꼴
콘돔과 고모라
문이동풍蚊耳東風
우생마사牛生馬死
간이역 따라서
김광석 골목길 그림자
牛川리 3층 석탑
영혼도서관
| 평설 |
기상천외한 퍼포먼스, 임기능변의 천의무봉, 풍자 질펀한 무소유 시 / 노창수
저자
저자
조규춘
曺圭春
ㆍ1954. 봄 전남 보성 첫울음
ㆍ문자조형가구 100종 100작
ㆍ시집 『공수래 병수거』 『공수래 생수거』
ㆍ디카시집 『줄탁동시』 『줄탁동시 폼』
ㆍ『디카시 디자인』 5인 저 『사방팔방』
ㆍ《한국사진문학》 시, 디카시 신인상
ㆍ디카시 수상: 대상 4, 입상 총 20회
ㆍ詩낭송 퍼포먼스 다수
ㆍ조선대 미대 명예교수
ㆍ1954. 봄 전남 보성 첫울음
ㆍ문자조형가구 100종 100작
ㆍ시집 『공수래 병수거』 『공수래 생수거』
ㆍ디카시집 『줄탁동시』 『줄탁동시 폼』
ㆍ『디카시 디자인』 5인 저 『사방팔방』
ㆍ《한국사진문학》 시, 디카시 신인상
ㆍ디카시 수상: 대상 4, 입상 총 20회
ㆍ詩낭송 퍼포먼스 다수
ㆍ조선대 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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