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님도 아플 때가 있어요(시와사람 아동문학선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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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작품론
생의 본질을 깨우쳐주는 생각하는 동시
강경호(시인, 한국문인협회 평론분과회장)
1.
동시 문학은 아동이 성장하는 데 올바르게 안내하기 위해 아동의 정서 체계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게 하는 문학적 효용성이 있다. 심성을 올곧고 풍성하게 하고 인간적인 기초를 다지게 하는 역할이 있다.
변모하는 현실과 맞물려 사랑과 꿈을 추구하는 동시 문학 역시 언어의 변모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환경 파괴와 인간성 상실, 그리고 인간의 탐욕에 대응하는 생태학적 상상력의 동시와 인문주의가 여전히 유효한 때이다. 또한 첨단 디지털 사회를 살아가는 새로운 동심의 표정에도 시선을 돌려야 한다. 세계와 소통하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한 동심주의, 존재 변환의 시적 태도로 오늘 우리 동시는 도전받고 있다.
오늘날 우리 동시의 한켠에는 여전히 '동심천사주의'와 '생활동시'가 독자들을 외면하게 하는 지점이 있어 아쉽다. 아동들에게 사랑과 꿈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어린이들의 삶을 미화하고 보이는 것만 형상화하는 기존의 매너리즘에서 벗어나야 하는 과제가 있다.
강나루 시인의 동시는 기존 동시의 문법을 벗어나 신인으로서의 패기와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그의 가장 큰 미덕은 현실과 환상을 균형 있게 조화시키는 점이다. 시적 발화를 아동의 시선에서 하되, 현실을 뛰어넘어 환상성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상상력을 확장한다. 그러므로 그의 동시는 다양한 메시지를 담아 흥미를 유발하고 현실을 뛰어넘는 이상성을 지향한다. 진정한 동심의 세계로 시를 이끌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시적 형식은 첫 동시집인 『백화점에 여우가 나타났어요』에서 줄곧 보여준 강나루 시인만의 독창성으로, 두 번째 동시집인 『해님도 아플 때가 있어요』에서 더욱 내밀하게 펼쳐지고 있다.
첫 동시집은 생태학적 상상력에 기반한 작품들로, 인간의 탐욕으로 파괴되고 왜곡된 자연의 모습, 생명의 아름다움, 생명을 가진 것들에 대한 연민에 천착하였다. 그러나 이번 동시집에서는 성장성, 가족애, 사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 사물의 의인화를 통한 감각화, 생명성 탐구 등 다양한 시적 프리즘을 보여준다.
이른바 성장시라 할 수 있는 시편들에서는 성장 과정의 내적 경험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의 이행을 형상화하였다. 여기에는 반드시 도전과 모험이 수반되기 때문에 용기 있는 동심의 세계가 그 바탕이 된다.
가족애를 그린 작품들에서는 사랑과 연민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과 가치를 일깨우고, 시적 대상을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에서 시인이 지향하는 따스함이 느껴진다.
강나루 시인의 시적 특질인 사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감각화는 사물에 생명성을 부여한다. 이때 시적 장치는 의인화법으로, 대상을 인격을 가진 존재로 탈바꿈시킨다.
2.
인간은 끊임없이 성장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더 나은 세계를 지향하며 인간이 마땅히 지녀야 할 다양한 덕목을 통해 내적 결핍을 채워 간다. 특히 아동은 마라토너처럼 멀고 힘겨운 길을 가야 하므로 인간다운 품성과 정신적 근육을 길러야 무사히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아동기의 정서적 체험과 경험 미학을 올곧게 세우고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성숙한 존재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양식인 정신성을 지녀야 한다.
동시는 동심(童心)을 질료로 한 문학 형식이다. 모든 예술의 가장 밑바탕에 있는 동심이 역사 시대에 들어서며 본격적으로 상실되었고, 그 동심을 회복하는 일은 요원하다. '선(善)과 악(惡)'의 대립 구도로 이어져 온 역사는 오늘날 효율성과 성과주의의 도구로 인간을 전락시켰다. 이러한 시대에 아동들도 자본주의에 잘 적응하는 도구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인문주의를 바탕으로 꿈과 용기, 패기를 지닌 바른 인간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그 에너지가 되어주는 동심이 간절하다.
연을 띄우면
내 마음도 둥둥 뜬다
바람이 거셀수록
연줄을 쥔
손에 힘이 간다
연이 나를 잡아끌수록
올챙이처럼 꼬리를 흔들며
연은 높이 오른다
비행기
타 보지 못했지만
내가 만든 연
내가 띄운 연
비행기가 된다
나도 하늘을 난다
세상이 내려다 보인다
산과 들판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어느새
나도 연이 된다.
- 「연」 전문
이 작품은 아동들의 생체험에 환상성이 접목되어 강나루 시인의 시적 특성을 잘 보여준다. 시적 화자인 아동이 연을 띄우고 있다. "바람이 거셀수록" 연줄에 더 강한 힘이 느껴진다. 연과 화자를 잇는 연줄이 둘 사이의 연결 고리이면서 바람이라는 또 다른 힘이 작동한다. 그러므로 연과 화자, 그리고 바람이 서로 조응하며 연이 비상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공간이 '하늘'이다. '하늘'은 연이 존재할 수 있는 터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늘은 연과 화자의 역학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으로 이 작품의 배경이 된다. '하늘'은 비행기가 이동하는 길이며, 동시에 세상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연을 띄우면/ 내 마음도 둥둥" 뜨는 이유는 연이 바람을 타고 높이 오르기 때문인데, "바람이 거셀수록/ 연줄을 쥔/ 손에 힘이" 가는 역학 작용은 갈등이 아니라, 화자의 꿈을 싣는 시적 상관물로 작동하여 결과적으로 연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한다. 연이 높이 오르는 상황을 화자는 "내가 만든 연/ 내가 띄운 연/ 비행기가 된다"고 비약한다.
비행기를 타 보지 못한 화자는 마침내 비행기가 되어 세상을 내려봄으로써 꿈을 이룬다. 화자가 서 있는 곳은 지상이지만 연을 하늘에 띄워 하늘 높이 오르게 함으로써 자신의 꿈을 구현한다. 그 과정에서 주목되는 환상성의 비유 방식이 화자의 의지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강나루 시인의 시적 개성이 드러난다.
친구들이 자전거를 타고
골목길을 씽씽
잘도 가는데
나는 자전거 타는 일이 무섭다
아빠가 자전거 뒤에서 잡아줘도
엉덩이와 자전거가 따로 놀아
자꾸 넘어진다
무릎이 깨지고
팔꿈치에 멍이 들어
다시는 자전거 타지 않을래
다짐을 하다가
죽기 아니면 살기다
페달을 밟으니
어어, 하늘이 출렁이고
자꾸만 길들이
내게로 달려온다.
- 「처음 자전거 탄 날」 전문
이 작품 또한 화자의 용기와 꿈을 발현하고 있어 주목된다. 자전거 타기는 보편화된 일상으로 누구에게나 통과 의례적인 과정이다. 그러나 자전거를 배우는 일은 쉽지 않다. 용기와 의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자전거를 타고/ 골목길을 씽씽/ 잘도 가는데/ 나는 자전거 타는 일이 무섭다"고 한다. 둥근 바퀴로 움직이기 때문에 넘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연습할 때 "아빠가 자전거 뒤에서 잡아" 준다. 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엉덩이와 자전거가 따로 놀아/ 자꾸 넘어진다". 그러므로 "무릎이 깨지고/ 팔꿈치에 멍이 들어" 포기하려 한다. 그러나 "죽기 아니면 살기다/ 페달을 밟"는다.
인간의 삶은 모험과 실패의 연속이다. 꿈을 이뤄 가는 과정이 순탄하지 않기에 성취감이 더욱 크고 보람차다. 이 작품에서 '아빠'는 보다 안전하게 자전거를 배울 수 있도록 돕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화자의 용기와 의지다. "죽기 아니면 살기다"에 함축된 의지에 의해 마침내 "어어, 하늘이 출렁이고/ 자꾸만 길들이/ 내게로 달려온다." 스스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상황에 이른다. 마지막 연에는 결의를 다지는 결기가 깃들어 있으며 "하늘이 출렁이고" "길들이/ 내게로 달려온다"에서 보듯 매우 감각적이다. 자전거가 질주하는 동세를 역동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극적인 시적 효과를 강조한다.
이밖에 성장성을 노래한 동시는 「연과 물고기처럼」, 「다짐」 등 여러 편이 있다. 「연과 물고기처럼」에서는 바람을 피하지 않고 거슬러 하늘로 올라가는 연과 '물길이 세찰수록 더욱 힘이 세져 물길을 오르는' 물고기의 역설이 지닌 강인한 투지와 정신성을 통해 화자의 의지가 드러난다.
「다짐」은 "엄마 아빠 말씀 잘 듣고/ 동생과 싸우지 않고/ 친구들과 잘 지내겠다는 다짐"을 일기장이나 편지에 썼다가 "오늘 학교에서/ 부모님께 쓰는 편지에" "착한 사람이 되겠다고 쓰려다가/ 자꾸만 어기는 약속 때문에/ 마음속으로만 다짐"한다. 지금까지 지키지 못한 다짐을 또다시 편지에 쓰려다 그만둠으로써 시적 진정성을 획득하고 설득력을 얻게 된다.
살펴보았듯이 강나루 시인의 동시는 기존의 말하는 방식을 거부하고 보다 내밀한 주제의 본질을 잘 드러낸다.
3.
아동에게 가족은 세계로 향한 출발이면서 세계를 바라보는 창구이다. 더불어 세계의 전부일 수 있다. 그러므로 유년의 정서적 체험은 일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자양분을 축적하는 계기가 된다. 오늘날 자본 문명이 극도로 발호하는 시대에 가족의 개념도 변화하였고, 전통적인 가족 구성이 붕괴되며 1인 가구가 보편화되고 있다. 이러한 때일수록 혈연을 중심으로 관계를 맺고 살던 농경 사회의 미덕들이 그리워진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작동하는 현대에 이르러 청년들이 살기에는 팍팍해진 사회 구조 속에서 인문주의적 휴머니즘도 아쉽고, 탈근대를 꿈꾸기조차 어려운 토대가 청년들을 불모지대로 내모는 것도 사실이다.
강나루 시인은 유년부터 조부모와 부모를 포함한 삼대가 모여 사는 대가족제에서 성장하여, 가족애가 온몸은 물론 정신 속에 배어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그의 동시는 생체험적 발화를 하기 때문에 가족애의 감각이 설득력과 진정성을 갖는다.
우리집 현관에
엄마 아빠 신발과
나와 동생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어요
우리집 빨래줄에
엄마 아빠 옷과
나와 동생의 옷이
사이좋게 펄럭이고 있어요
우리집 사진틀에
엄마 아빠 결혼사진과
나와 동생의 돌 사진이
정답게 웃고 있어요
아침 저녁 식탁 앞에
엄마 아빠 숟가락과 젓가락
나와 동생의 숟가락과 젓가락이
나란히 놓여 있어요.
-「가족」전문
단란한 가족관계를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어요", 옷이 "사이좋게 펄럭이고 있어요", 돌 사진이 "정답게 웃고 있어요", 젓가락이 "나란히 놓여 있어요"라고 정황만 보여주는 이 작품은 시적 형상 능력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특히 우리 동시단의 많은 동시가 정제되지 않은 언어로 장황하게 설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현관에/ 엄마 아빠 신발과/ 나와 동생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거나, "빨래줄에/ 엄마 아빠 옷과/ 나와 동생의 옷이/ 사이좋게 펄럭이고 있"다고 함으로써 '행복한 가족'임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메시지를 전달한다.
결혼사진, 돌사진이 정답게 웃고, 식탁에 온 가족의 숟가락과 젓가락이 나란히 놓여 있는 모습에서도 건강하고 아름다운 가족의 모습이 선명하다. 즉 이 작품은 '신발', '옷', '사진', '숟가락·젓가락'의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가지런히', '사이좋게', '정답게', '나란히'가 함의하는 표정을 행복한 가정으로 치환한다.
그리고 '현관', '빨래줄', '사진틀', '식탁' 등 집 안의 공간과 가구가 평범한 사물이지만, 적절한 언어 구사와 배치로 가족애를 드러내는 상관물이 되며 시적 의미가 가볍지 않게 구축되었다. 형식과 언어의 조형성에 능숙함을 짐작게 한다.
「할머니는 나를 귀찮게 해」에서는 손주를 어여삐 여기는 할머니와 이를 귀찮게 여기는 조손 관계를 통해 건강하고 활력이 넘치는 가족애를 형상화한다.
가난하게 살았던 할머니는
사람을 보면
무조건 음식을 내미신다
장사꾼이 와도
거지가 와도
밥 먹고 가라고 하신다
할머니가 내민 음식을
다 받아먹은 아빠는
자주 배탈이 나신다
내가 공부하고 있을 때도
할머니는 음식을 내미시지만
아빠처럼 배탈나기 싫어
도망을 간다
그래도 할머니는
쫓아다니면서
내 입에 음식을 들이미신다.
- 「할머니는 나를 귀찮게 해」 전문
1인칭 화자의 시점인 이 작품은 '나'로 지칭되는 화자의 시선에 의해 정서가 펼쳐진다. 제목 「할머니는 나를 귀찮게 해」가 말해주듯 아직 철이 덜 든 화자의 정서가 작품을 지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따스한 할머니의 인정 어린 마음이 엿보인다. 즉 다정하고 자상한 할머니와, 그 사랑을 부담스러워하는 '나'가 대척점에 있지만, 할머니는 할머니답고 '나'는 어린이답다. 누군가의 마음을 저울에 달 수는 없다. 이러한 구도를 통해 따스하고 행복한 가족애를 강조하는 시인의 상상력이, 시적 조화와 균형 감각이 매우 뛰어남을 보여준다.
작품 속 할머니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내밀고, 장사꾼이나 거지가 오면 밥 먹고 가라고 한다. 가난하게 살았던 할머니는 배고픔을 직접 체험했기에 집에 오는 사람들의 허기를 채워주고자 한다. 아빠에게도, 손주에게도 음식을 내민다. 아빠는 할머니의 마음을 잘 알기에 배탈이 날 것을 알면서도 받아 든다. 그러나 풍요롭게 살아온 '나'는 아빠처럼 배탈나기 싫어 도망가지만, 할머니는 따라다니며 음식을 들이민다.
할머니를 중심으로 장사꾼, 거지, 아빠, '나'가 등장하여 갈등을 빚지만, 본질적으로 이 작품은 갈등을 드러내기보다 역설적으로 할머니의 인정과 사랑을 노래한다.
가족애를 모색한 작품에서는 할머니가 자주 제재가 된다. 「할머니의 다리미질」에서는 화자가 친구들과 놀다 옷이 흙투성이·주름투성이가 되어 돌아오면 할머니는 다리미로 쓱쓱 펴주신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할머니 마음속에 주름이 드리워져 있지만, 손주인 화자가 독감에 걸려 얼굴을 찡그리면 밤새 보살핌으로 이마의 주름을 문질러 펴주신다.
강나루 시인의 동시에서 가족애를 다룬 작품들에는 할아버지도 등장한다. 삼대가 함께 살았기에 가족 공동체에서 할아버지의 존재가 자연스레 함께하기 때문이다. 「노래하는 할아버지」는 생전에 흘러간 노래와 찬송가를 잘 부르시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선산에 묻혀 심심하실 거라 생각하지만, 새가 되어 노래 경연도 하고 성가대도 만들어 하루 종일 새들과 함께 노래하실 거라 여긴다.
「할아버지의 의자」에서는 생전에 아파트 복도의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시던 할아버지의 마음을 엿보기 위해 그 의자에 앉아본다. 그리고 길 건너 종탑을 바라보셨음을 알아내고, 할아버지가 부르시던 찬송가와 학교 잘 다녀오라 손 흔들어 주시던 마음을 들여다본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랑을 이해하는 시적 화자의 새로운 인식을 통해 가족애에 대한 상상력이 빛난다.
4.
강나루 시인의 동시에는 사물이나 생명이 아닌 것의 본질과 본성을 규명하는 시편들이 다수 있다. 흔히 많은 시인이 형상화하는 것은 아동들의 삶이지만, 강나루 시인의 「세탁기」, 「신발」, 「물」, 「개발자국」, 「저수지」는 사물이 지닌 내면의 본질, 즉 또 다른 진실을 모색한다. 이것들은 생명을 가진 것들이 아니지만, 시인에 의해 생명을 얻고 인격이 부여된다. 당연히 아동의 눈높이에 알맞게 하기 위한 의인화법이 구사된다.
세탁기는 평등해요
가난한 사람의 옷
잘 사는 사람의 옷
얼굴이 잘 생긴 사람의 옷
못 생긴 사람의 옷
따지지 않는
세탁기는 사랑이어요
사이가 안 좋은 사람의 옷
사이가 좋은 사람의 옷
마음씨가 나쁜 사람의 옷
마음씨가 착한 사람의 옷
가리지 않는
세탁기는 하나가 되게 해요
서로 손을 붙잡게 해요
서로 껴안게 해요
한바탕 춤을 추게 해요
모두가 깨끗한 마음이 되게
구석구석 씻겨줘요.
- 「세탁기」 전문
시인의 상상력은 관념을 넘어설 때 비로소 새로운 언어를 낳는다. 세탁기가 빨랫감을 깨끗이 하는 기능을 가졌음을 모두가 안다. 그런데 세탁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음으로써 그 의미가 확장된다. 세탁기는 평등하고, 사랑이며, 하나가 되게 해준다고 말할 때 낯선 언어를 통해 인식이 새로워진다. 흔히 시를 말할 때 '직관(直觀)'을 들지만, 강나루 시인의 동시들은 깊은 사색의 결과로 언술된다. 세탁기가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가난한 사람", "얼굴이 잘 생긴 사람", "못 생긴 사람"을 따지지 않는다는 인식, 곧 '인간은 평등하다'는 명제에 천착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러 부류의 사람을 가리지 않고 옷을 한꺼번에 받아 씻어내는 세탁기에서 휴머니즘적 사고를 읽어낼 수 있다.
세탁기를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기능성을 넘어설 때 가능하다. "사이가 안 좋은 사람", "사이가 좋은 사람", "마음씨가 나쁜 사람", "마음씨가 착한 사람"을 가리지 않는 세탁기의 긍정성 때문이다. 이러한 또 다른 본질 인식은 직관만이 아니라 휴머니즘적 상상력으로 가능해진다.
결과적으로 "세탁기는 하나가 되게 해요"라는 진술이 설득력을 얻는다. 서로 하나가 되어 춤추고, 정화되어 모두가 깨끗한 마음이 되게 하는 조화로운 공동체의 꿈을 도출하게 한다.
다음의 「개발자국」은 사라진 실체 뒤에 남은 '흔적'을 통해 '오래된 시간'과 흔적을 남긴 '주체의 행방'을 사색하게 하는 작품이다.
아주 오래 전
시멘트 바닥에
대문 밖으로 뛰어간
개 발자국 찍혀 있어요
쥬라기 지층의
공룡발자국 화석에서
어디론가로 걸어갔던
공룡의 그 때 그 시간을
떠오르게 하듯이
마당에 시멘트 바르던 날
눈치없이 무른 시멘트 바닥에 걸어가
굳어버린 개 발자국
그때의 개 행방을 알 수 없지만
이 땅에서 살았던
개의 모습을 기억하게 합니다.
- 「개발자국」 전문
이 작품은 시멘트 바닥에 찍힌 개 발자국과 공룡 발자국을 통해 상상력을 발현한다.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흔적에서 '오래된 시간'을 발견하고, 발자국을 남긴 존재의 행방을 유추하며 그 순간을 되살린다. 그리고 '발자국'이라는 흔적을 통해 오래전의 개와 공룡의 생명성과 지속성을 현재의 화자를 포함한 존재들에게 '영원'이라는 동시성(同時性)을 메시지로 전한다. 즉 "아주 오래 전/ 시멘트 바닥에/ 대문 밖으로 뛰어간/ 개"와 쥐라기 시대에 "어디론가로 걸어갔던/ 공룡"을 떠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흔적과 현재의 간극에 주목한다. 오랜 시간을 견디며 남은 발자국이 존재를 환기한다는 점이 시인의 마음에 각인되었을 것이다. 만약 그 흔적이 남지 않았다면 존재 또한 잊혔을 터인데, 남아 있음으로써 존재를 규명하게 한다는 사실을 바라본다. 의미를 확장해 보면 '오랜 시간', 즉 '영원'에 이르게 하는 것은 존재를 인식시키는 흔적이며, 그 흔적은 시간을 견뎌온 힘이다. 이러한 통찰은 오늘 우리에게도 적용되어 동시성의 가치를 말해준다.
강나루 시인의 시는 메시지가 묵직하여 다양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미덕이 있다. 이는 우리 아동문학의 경박함을 극복하게 하는 새로운 처방이 될 것으로 믿는다.
「물」은 산속의 옹달샘에서 시작된 산골물이 마침내 넓은 강이 되고 바다에 이르는 여정을 노래한다. 그러나 그 과정만 형상화했다면 뻔한 동시가 되고 말 것이다. 길을 나선 옹달샘 물이 바위에 부딪히고 온갖 시련을 겪은 뒤 넓은 강에 이르러 물풀과 물고기, 조개를 키우고 목마른 들판을 적신다. "더 깊고 넓어진 마음"이 끝내 바다에 이르러 "소금을 머금은 바다"가 된다는 전개를 통해 인간 삶이 지향하는 본질을 묘파하며 시적 깊이와 무게를 획득한다.
「빈 저수지」는 생태학적 상상력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늦가을 빈 저수지의 모습을 통해 모성성을 구현한다. 흔한 풍경이지만 상관물이 지닌 근원적·본질적 생명성을 모색함으로써 우리 아동문학의 불모성을 극복하는 데 힘을 보탤 것으로 믿는다.
「머리카락」 또한 신체의 일부를 아동의 시선으로 의미를 확장해 시인만의 목소리로 해석한다. "머리카락을 보면/ 마음이 보"인다고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고 "푸른 머리카락", "붉은 머리카락", "노란 머리카락", "생머리", "새하얀 머리카락" 등 익숙한 색채를 통해 "씩씩한 오빠", "꿈이 많은 언니", "착한 동생", "점잖은 나", "마음씨 좋은 우리 할머니"를 노래한다. 단순한 색채 이미지이지만 이를 내면의 표지로 환유하는 능력이 돋보인다.
5.
강나루 시인의 동시가 지닌 또 다른 미덕은 자연을 감정을 지닌 존재로 인식하고 시적으로 형상화한 점이다. '해', '바다', '눈'은 우주적이고 자연을 나타내는 대표적 표지로 읽힌다. 시의 중심에는 대개 인간의 모습이 담기지만, 강나루 시인은 '해', '바다' 같은 거대한 자연을 인간처럼 감정을 지닌 존재로 인식시켜 인간과의 친화력을 갖게 한다. '눈' 또한 우주적 자연물이지만, 인간 세계에 깊숙이 들어와 함께하는 상관물로 인식되며 표정과 감정이 빼어나게 형상화된다. 이렇듯 기존 동시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는 시인의 패기가 주목된다.
수억 년 지구를 비춰온 해님도
일년에 두 번
가장 무더운 여름과
가장 추운 겨울
독감에 시달려요
뜨거운 여름
땀을 뻘뻘 흘리는 해님이
하루종일 열이 펄펄 끓다가
밤에도 열대야에 머리가 아파요
사람들이 빨리 해가 지기를 바라지만
콜록콜록 기침하는 해님이
정신을 못 차려요
추운 겨울
옷깃을 파고드는 한기에
하루 종일 오한에 덜덜 떨다가
밤이 되면 온몸이 꽁꽁 얼어 버려요
나무들이 조금만 더 해가 떠있기를 바라지만
콧물 질질 흘리는 해님이
좀 쉬어야겠다고 집으로 가버려요.
- 「해님도 아플 때가 있어요」 전문
이 작품은 표제작으로, 해를 인간적인 모습으로 치환한 발상이 참신하다. 흔히 해는 우주의 가장 강력한 존재로 인식된다. 실제로 태양계의 유일한 항성이자 좌장 격이며, 지구가 푸른 별일 수 있도록 생명의 원천을 제공한다. 이렇듯 우주적 절대성을 지닌 해를 강나루 시인의 동심적 상상력은 "일년에 두 번/ 가장 무더운 여름과/ 가장 추운 겨울/ 독감에 시달"린다고 하여 인간을 닮은 모습으로 그려낸다. 궁극적으로 이 작품은 해와 인간의 관계를 동일성의 시각으로 바라본다. 한여름엔 땀을 뻘뻘 흘리고 열이 펄펄 끓으며, 열대야에 머리가 아프고, 겨울엔 하루 종일 오한에 떨다가 밤에는 꽁꽁 얼고, 콧물을 질질 흘린다. 그러므로 하루 종일 추위에 시달린 해도 "좀 쉬어야겠다고 집으로 가버려요."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살펴보았듯이 해를 인간의 모습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우주적 권위가 아니라 땀을 흘리고 추위에 시달리는 친화적 존재로 만들며 그 힘을 잘 보여 준다.
「눈을 밟으면」은 하늘에서 지상으로 하강하여 우주와 지상의 고리를 잇는 '눈'을 인간의 모습으로 치환해, 우주적 존재가 아닌 인간적 표정과 감정을 지닌 존재로 드러낸다.
모두가 하얀 교복으로 갈아입고
하늘에서 세상으로 놀러 온
마음 착한 눈송이들
아이들이 눈송이와 함께 놀면
기분이 좋다고
뽀드득 뽀드득
즐거운 노래를 부르다가도
짓궂게 자꾸만 놀자고 하면
울그락불그락 화가 난 친구처럼
반질반질한 얼굴빛을 하며
아이들 발목을 걸어 넘어뜨린다.
- 「눈을 밟으면」 전문
강나루 시인은 경험 미학을 새롭게 형상화하는 데 능숙하다. 경험을 통해 학습된 정서적 사건들을 관념화하지 않고 해체한 뒤 낯선 방식으로 재구성하여 시인만의 메시지와 정서를 이끌어낸다. 이 작품에서 '눈'의 색채 이미지를 "하얀 교복"이라 하고, "마음 착한 눈송이"라 해석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눈송이와 함께 놀면/ 기분이 좋다고/ 뽀드득 뽀드득/ 즐거운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눈송이라는 색채 이미지와 "뽀드득 뽀드득"이라는 청각 이미지가 충돌하며 공감각을 일으켜 "즐거운 노래"가 된다. 그러다가 독자의 예상을 뒤집는 반전을 시도해 전개에 변화를 주고 역동적 활력을 불러일으킨다. 아이들이 눈을 자꾸 밟으면, 즐거운 노래도 "울그락불그락 화가 난 친구처럼/ 반질반질한 얼굴빛을 하며/ 아이들 발목을 걸어 넘어뜨린다." 하얀 교복을 입고 하늘에서 놀러 온 마음 착한 눈송이를 자꾸 괴롭히면 결국 화를 입는다는 메시지다. 눈은 본래 부드럽고 순수하지만, 자꾸 밟으면 미끄러워져 밟는 사람을 쓰러뜨린다는 경험을 미학적으로 재구성하여 전혀 새로운 결과를 내놓는다. 그 중심에는 '눈'이 감정을 지닌 대상으로 인식하는 시인의 시선이 깃들어 있다.
「바다도 감정이 있다」 역시 바다를 인간의 모습으로 치환해 감정을 이입한 작품이다. 해가 따스하게 비추면 강아지처럼 졸음에 겨워 바다가 잔잔해지고, 비바람이 불면 독감에 걸린 멧돼지처럼 파도를 친다. 동심의 눈으로 바다를 바라보면, 아이들이 바다 품에 안겨 해수욕을 즐길 때 "기분 좋아진 바다는/ 아이들을 목마 태우고/ 남실남실 춤을 춘다." 때로는 거칠어도 아이들을 대하는 부드러운 바다의 감정을 읽을 수 있다. 시인의 정신과 감정의 표정이 바다의 감정 속으로 이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생의 본질을 깨우쳐주는 생각하는 동시
강경호(시인, 한국문인협회 평론분과회장)
1.
동시 문학은 아동이 성장하는 데 올바르게 안내하기 위해 아동의 정서 체계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게 하는 문학적 효용성이 있다. 심성을 올곧고 풍성하게 하고 인간적인 기초를 다지게 하는 역할이 있다.
변모하는 현실과 맞물려 사랑과 꿈을 추구하는 동시 문학 역시 언어의 변모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환경 파괴와 인간성 상실, 그리고 인간의 탐욕에 대응하는 생태학적 상상력의 동시와 인문주의가 여전히 유효한 때이다. 또한 첨단 디지털 사회를 살아가는 새로운 동심의 표정에도 시선을 돌려야 한다. 세계와 소통하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한 동심주의, 존재 변환의 시적 태도로 오늘 우리 동시는 도전받고 있다.
오늘날 우리 동시의 한켠에는 여전히 '동심천사주의'와 '생활동시'가 독자들을 외면하게 하는 지점이 있어 아쉽다. 아동들에게 사랑과 꿈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어린이들의 삶을 미화하고 보이는 것만 형상화하는 기존의 매너리즘에서 벗어나야 하는 과제가 있다.
강나루 시인의 동시는 기존 동시의 문법을 벗어나 신인으로서의 패기와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그의 가장 큰 미덕은 현실과 환상을 균형 있게 조화시키는 점이다. 시적 발화를 아동의 시선에서 하되, 현실을 뛰어넘어 환상성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상상력을 확장한다. 그러므로 그의 동시는 다양한 메시지를 담아 흥미를 유발하고 현실을 뛰어넘는 이상성을 지향한다. 진정한 동심의 세계로 시를 이끌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시적 형식은 첫 동시집인 『백화점에 여우가 나타났어요』에서 줄곧 보여준 강나루 시인만의 독창성으로, 두 번째 동시집인 『해님도 아플 때가 있어요』에서 더욱 내밀하게 펼쳐지고 있다.
첫 동시집은 생태학적 상상력에 기반한 작품들로, 인간의 탐욕으로 파괴되고 왜곡된 자연의 모습, 생명의 아름다움, 생명을 가진 것들에 대한 연민에 천착하였다. 그러나 이번 동시집에서는 성장성, 가족애, 사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 사물의 의인화를 통한 감각화, 생명성 탐구 등 다양한 시적 프리즘을 보여준다.
이른바 성장시라 할 수 있는 시편들에서는 성장 과정의 내적 경험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의 이행을 형상화하였다. 여기에는 반드시 도전과 모험이 수반되기 때문에 용기 있는 동심의 세계가 그 바탕이 된다.
가족애를 그린 작품들에서는 사랑과 연민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과 가치를 일깨우고, 시적 대상을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에서 시인이 지향하는 따스함이 느껴진다.
강나루 시인의 시적 특질인 사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감각화는 사물에 생명성을 부여한다. 이때 시적 장치는 의인화법으로, 대상을 인격을 가진 존재로 탈바꿈시킨다.
2.
인간은 끊임없이 성장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더 나은 세계를 지향하며 인간이 마땅히 지녀야 할 다양한 덕목을 통해 내적 결핍을 채워 간다. 특히 아동은 마라토너처럼 멀고 힘겨운 길을 가야 하므로 인간다운 품성과 정신적 근육을 길러야 무사히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아동기의 정서적 체험과 경험 미학을 올곧게 세우고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성숙한 존재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양식인 정신성을 지녀야 한다.
동시는 동심(童心)을 질료로 한 문학 형식이다. 모든 예술의 가장 밑바탕에 있는 동심이 역사 시대에 들어서며 본격적으로 상실되었고, 그 동심을 회복하는 일은 요원하다. '선(善)과 악(惡)'의 대립 구도로 이어져 온 역사는 오늘날 효율성과 성과주의의 도구로 인간을 전락시켰다. 이러한 시대에 아동들도 자본주의에 잘 적응하는 도구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인문주의를 바탕으로 꿈과 용기, 패기를 지닌 바른 인간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그 에너지가 되어주는 동심이 간절하다.
연을 띄우면
내 마음도 둥둥 뜬다
바람이 거셀수록
연줄을 쥔
손에 힘이 간다
연이 나를 잡아끌수록
올챙이처럼 꼬리를 흔들며
연은 높이 오른다
비행기
타 보지 못했지만
내가 만든 연
내가 띄운 연
비행기가 된다
나도 하늘을 난다
세상이 내려다 보인다
산과 들판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어느새
나도 연이 된다.
- 「연」 전문
이 작품은 아동들의 생체험에 환상성이 접목되어 강나루 시인의 시적 특성을 잘 보여준다. 시적 화자인 아동이 연을 띄우고 있다. "바람이 거셀수록" 연줄에 더 강한 힘이 느껴진다. 연과 화자를 잇는 연줄이 둘 사이의 연결 고리이면서 바람이라는 또 다른 힘이 작동한다. 그러므로 연과 화자, 그리고 바람이 서로 조응하며 연이 비상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공간이 '하늘'이다. '하늘'은 연이 존재할 수 있는 터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늘은 연과 화자의 역학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으로 이 작품의 배경이 된다. '하늘'은 비행기가 이동하는 길이며, 동시에 세상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연을 띄우면/ 내 마음도 둥둥" 뜨는 이유는 연이 바람을 타고 높이 오르기 때문인데, "바람이 거셀수록/ 연줄을 쥔/ 손에 힘이" 가는 역학 작용은 갈등이 아니라, 화자의 꿈을 싣는 시적 상관물로 작동하여 결과적으로 연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한다. 연이 높이 오르는 상황을 화자는 "내가 만든 연/ 내가 띄운 연/ 비행기가 된다"고 비약한다.
비행기를 타 보지 못한 화자는 마침내 비행기가 되어 세상을 내려봄으로써 꿈을 이룬다. 화자가 서 있는 곳은 지상이지만 연을 하늘에 띄워 하늘 높이 오르게 함으로써 자신의 꿈을 구현한다. 그 과정에서 주목되는 환상성의 비유 방식이 화자의 의지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강나루 시인의 시적 개성이 드러난다.
친구들이 자전거를 타고
골목길을 씽씽
잘도 가는데
나는 자전거 타는 일이 무섭다
아빠가 자전거 뒤에서 잡아줘도
엉덩이와 자전거가 따로 놀아
자꾸 넘어진다
무릎이 깨지고
팔꿈치에 멍이 들어
다시는 자전거 타지 않을래
다짐을 하다가
죽기 아니면 살기다
페달을 밟으니
어어, 하늘이 출렁이고
자꾸만 길들이
내게로 달려온다.
- 「처음 자전거 탄 날」 전문
이 작품 또한 화자의 용기와 꿈을 발현하고 있어 주목된다. 자전거 타기는 보편화된 일상으로 누구에게나 통과 의례적인 과정이다. 그러나 자전거를 배우는 일은 쉽지 않다. 용기와 의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자전거를 타고/ 골목길을 씽씽/ 잘도 가는데/ 나는 자전거 타는 일이 무섭다"고 한다. 둥근 바퀴로 움직이기 때문에 넘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연습할 때 "아빠가 자전거 뒤에서 잡아" 준다. 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엉덩이와 자전거가 따로 놀아/ 자꾸 넘어진다". 그러므로 "무릎이 깨지고/ 팔꿈치에 멍이 들어" 포기하려 한다. 그러나 "죽기 아니면 살기다/ 페달을 밟"는다.
인간의 삶은 모험과 실패의 연속이다. 꿈을 이뤄 가는 과정이 순탄하지 않기에 성취감이 더욱 크고 보람차다. 이 작품에서 '아빠'는 보다 안전하게 자전거를 배울 수 있도록 돕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화자의 용기와 의지다. "죽기 아니면 살기다"에 함축된 의지에 의해 마침내 "어어, 하늘이 출렁이고/ 자꾸만 길들이/ 내게로 달려온다." 스스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상황에 이른다. 마지막 연에는 결의를 다지는 결기가 깃들어 있으며 "하늘이 출렁이고" "길들이/ 내게로 달려온다"에서 보듯 매우 감각적이다. 자전거가 질주하는 동세를 역동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극적인 시적 효과를 강조한다.
이밖에 성장성을 노래한 동시는 「연과 물고기처럼」, 「다짐」 등 여러 편이 있다. 「연과 물고기처럼」에서는 바람을 피하지 않고 거슬러 하늘로 올라가는 연과 '물길이 세찰수록 더욱 힘이 세져 물길을 오르는' 물고기의 역설이 지닌 강인한 투지와 정신성을 통해 화자의 의지가 드러난다.
「다짐」은 "엄마 아빠 말씀 잘 듣고/ 동생과 싸우지 않고/ 친구들과 잘 지내겠다는 다짐"을 일기장이나 편지에 썼다가 "오늘 학교에서/ 부모님께 쓰는 편지에" "착한 사람이 되겠다고 쓰려다가/ 자꾸만 어기는 약속 때문에/ 마음속으로만 다짐"한다. 지금까지 지키지 못한 다짐을 또다시 편지에 쓰려다 그만둠으로써 시적 진정성을 획득하고 설득력을 얻게 된다.
살펴보았듯이 강나루 시인의 동시는 기존의 말하는 방식을 거부하고 보다 내밀한 주제의 본질을 잘 드러낸다.
3.
아동에게 가족은 세계로 향한 출발이면서 세계를 바라보는 창구이다. 더불어 세계의 전부일 수 있다. 그러므로 유년의 정서적 체험은 일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자양분을 축적하는 계기가 된다. 오늘날 자본 문명이 극도로 발호하는 시대에 가족의 개념도 변화하였고, 전통적인 가족 구성이 붕괴되며 1인 가구가 보편화되고 있다. 이러한 때일수록 혈연을 중심으로 관계를 맺고 살던 농경 사회의 미덕들이 그리워진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작동하는 현대에 이르러 청년들이 살기에는 팍팍해진 사회 구조 속에서 인문주의적 휴머니즘도 아쉽고, 탈근대를 꿈꾸기조차 어려운 토대가 청년들을 불모지대로 내모는 것도 사실이다.
강나루 시인은 유년부터 조부모와 부모를 포함한 삼대가 모여 사는 대가족제에서 성장하여, 가족애가 온몸은 물론 정신 속에 배어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그의 동시는 생체험적 발화를 하기 때문에 가족애의 감각이 설득력과 진정성을 갖는다.
우리집 현관에
엄마 아빠 신발과
나와 동생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어요
우리집 빨래줄에
엄마 아빠 옷과
나와 동생의 옷이
사이좋게 펄럭이고 있어요
우리집 사진틀에
엄마 아빠 결혼사진과
나와 동생의 돌 사진이
정답게 웃고 있어요
아침 저녁 식탁 앞에
엄마 아빠 숟가락과 젓가락
나와 동생의 숟가락과 젓가락이
나란히 놓여 있어요.
-「가족」전문
단란한 가족관계를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어요", 옷이 "사이좋게 펄럭이고 있어요", 돌 사진이 "정답게 웃고 있어요", 젓가락이 "나란히 놓여 있어요"라고 정황만 보여주는 이 작품은 시적 형상 능력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특히 우리 동시단의 많은 동시가 정제되지 않은 언어로 장황하게 설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현관에/ 엄마 아빠 신발과/ 나와 동생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거나, "빨래줄에/ 엄마 아빠 옷과/ 나와 동생의 옷이/ 사이좋게 펄럭이고 있"다고 함으로써 '행복한 가족'임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메시지를 전달한다.
결혼사진, 돌사진이 정답게 웃고, 식탁에 온 가족의 숟가락과 젓가락이 나란히 놓여 있는 모습에서도 건강하고 아름다운 가족의 모습이 선명하다. 즉 이 작품은 '신발', '옷', '사진', '숟가락·젓가락'의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가지런히', '사이좋게', '정답게', '나란히'가 함의하는 표정을 행복한 가정으로 치환한다.
그리고 '현관', '빨래줄', '사진틀', '식탁' 등 집 안의 공간과 가구가 평범한 사물이지만, 적절한 언어 구사와 배치로 가족애를 드러내는 상관물이 되며 시적 의미가 가볍지 않게 구축되었다. 형식과 언어의 조형성에 능숙함을 짐작게 한다.
「할머니는 나를 귀찮게 해」에서는 손주를 어여삐 여기는 할머니와 이를 귀찮게 여기는 조손 관계를 통해 건강하고 활력이 넘치는 가족애를 형상화한다.
가난하게 살았던 할머니는
사람을 보면
무조건 음식을 내미신다
장사꾼이 와도
거지가 와도
밥 먹고 가라고 하신다
할머니가 내민 음식을
다 받아먹은 아빠는
자주 배탈이 나신다
내가 공부하고 있을 때도
할머니는 음식을 내미시지만
아빠처럼 배탈나기 싫어
도망을 간다
그래도 할머니는
쫓아다니면서
내 입에 음식을 들이미신다.
- 「할머니는 나를 귀찮게 해」 전문
1인칭 화자의 시점인 이 작품은 '나'로 지칭되는 화자의 시선에 의해 정서가 펼쳐진다. 제목 「할머니는 나를 귀찮게 해」가 말해주듯 아직 철이 덜 든 화자의 정서가 작품을 지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따스한 할머니의 인정 어린 마음이 엿보인다. 즉 다정하고 자상한 할머니와, 그 사랑을 부담스러워하는 '나'가 대척점에 있지만, 할머니는 할머니답고 '나'는 어린이답다. 누군가의 마음을 저울에 달 수는 없다. 이러한 구도를 통해 따스하고 행복한 가족애를 강조하는 시인의 상상력이, 시적 조화와 균형 감각이 매우 뛰어남을 보여준다.
작품 속 할머니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내밀고, 장사꾼이나 거지가 오면 밥 먹고 가라고 한다. 가난하게 살았던 할머니는 배고픔을 직접 체험했기에 집에 오는 사람들의 허기를 채워주고자 한다. 아빠에게도, 손주에게도 음식을 내민다. 아빠는 할머니의 마음을 잘 알기에 배탈이 날 것을 알면서도 받아 든다. 그러나 풍요롭게 살아온 '나'는 아빠처럼 배탈나기 싫어 도망가지만, 할머니는 따라다니며 음식을 들이민다.
할머니를 중심으로 장사꾼, 거지, 아빠, '나'가 등장하여 갈등을 빚지만, 본질적으로 이 작품은 갈등을 드러내기보다 역설적으로 할머니의 인정과 사랑을 노래한다.
가족애를 모색한 작품에서는 할머니가 자주 제재가 된다. 「할머니의 다리미질」에서는 화자가 친구들과 놀다 옷이 흙투성이·주름투성이가 되어 돌아오면 할머니는 다리미로 쓱쓱 펴주신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할머니 마음속에 주름이 드리워져 있지만, 손주인 화자가 독감에 걸려 얼굴을 찡그리면 밤새 보살핌으로 이마의 주름을 문질러 펴주신다.
강나루 시인의 동시에서 가족애를 다룬 작품들에는 할아버지도 등장한다. 삼대가 함께 살았기에 가족 공동체에서 할아버지의 존재가 자연스레 함께하기 때문이다. 「노래하는 할아버지」는 생전에 흘러간 노래와 찬송가를 잘 부르시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선산에 묻혀 심심하실 거라 생각하지만, 새가 되어 노래 경연도 하고 성가대도 만들어 하루 종일 새들과 함께 노래하실 거라 여긴다.
「할아버지의 의자」에서는 생전에 아파트 복도의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시던 할아버지의 마음을 엿보기 위해 그 의자에 앉아본다. 그리고 길 건너 종탑을 바라보셨음을 알아내고, 할아버지가 부르시던 찬송가와 학교 잘 다녀오라 손 흔들어 주시던 마음을 들여다본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랑을 이해하는 시적 화자의 새로운 인식을 통해 가족애에 대한 상상력이 빛난다.
4.
강나루 시인의 동시에는 사물이나 생명이 아닌 것의 본질과 본성을 규명하는 시편들이 다수 있다. 흔히 많은 시인이 형상화하는 것은 아동들의 삶이지만, 강나루 시인의 「세탁기」, 「신발」, 「물」, 「개발자국」, 「저수지」는 사물이 지닌 내면의 본질, 즉 또 다른 진실을 모색한다. 이것들은 생명을 가진 것들이 아니지만, 시인에 의해 생명을 얻고 인격이 부여된다. 당연히 아동의 눈높이에 알맞게 하기 위한 의인화법이 구사된다.
세탁기는 평등해요
가난한 사람의 옷
잘 사는 사람의 옷
얼굴이 잘 생긴 사람의 옷
못 생긴 사람의 옷
따지지 않는
세탁기는 사랑이어요
사이가 안 좋은 사람의 옷
사이가 좋은 사람의 옷
마음씨가 나쁜 사람의 옷
마음씨가 착한 사람의 옷
가리지 않는
세탁기는 하나가 되게 해요
서로 손을 붙잡게 해요
서로 껴안게 해요
한바탕 춤을 추게 해요
모두가 깨끗한 마음이 되게
구석구석 씻겨줘요.
- 「세탁기」 전문
시인의 상상력은 관념을 넘어설 때 비로소 새로운 언어를 낳는다. 세탁기가 빨랫감을 깨끗이 하는 기능을 가졌음을 모두가 안다. 그런데 세탁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음으로써 그 의미가 확장된다. 세탁기는 평등하고, 사랑이며, 하나가 되게 해준다고 말할 때 낯선 언어를 통해 인식이 새로워진다. 흔히 시를 말할 때 '직관(直觀)'을 들지만, 강나루 시인의 동시들은 깊은 사색의 결과로 언술된다. 세탁기가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가난한 사람", "얼굴이 잘 생긴 사람", "못 생긴 사람"을 따지지 않는다는 인식, 곧 '인간은 평등하다'는 명제에 천착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러 부류의 사람을 가리지 않고 옷을 한꺼번에 받아 씻어내는 세탁기에서 휴머니즘적 사고를 읽어낼 수 있다.
세탁기를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기능성을 넘어설 때 가능하다. "사이가 안 좋은 사람", "사이가 좋은 사람", "마음씨가 나쁜 사람", "마음씨가 착한 사람"을 가리지 않는 세탁기의 긍정성 때문이다. 이러한 또 다른 본질 인식은 직관만이 아니라 휴머니즘적 상상력으로 가능해진다.
결과적으로 "세탁기는 하나가 되게 해요"라는 진술이 설득력을 얻는다. 서로 하나가 되어 춤추고, 정화되어 모두가 깨끗한 마음이 되게 하는 조화로운 공동체의 꿈을 도출하게 한다.
다음의 「개발자국」은 사라진 실체 뒤에 남은 '흔적'을 통해 '오래된 시간'과 흔적을 남긴 '주체의 행방'을 사색하게 하는 작품이다.
아주 오래 전
시멘트 바닥에
대문 밖으로 뛰어간
개 발자국 찍혀 있어요
쥬라기 지층의
공룡발자국 화석에서
어디론가로 걸어갔던
공룡의 그 때 그 시간을
떠오르게 하듯이
마당에 시멘트 바르던 날
눈치없이 무른 시멘트 바닥에 걸어가
굳어버린 개 발자국
그때의 개 행방을 알 수 없지만
이 땅에서 살았던
개의 모습을 기억하게 합니다.
- 「개발자국」 전문
이 작품은 시멘트 바닥에 찍힌 개 발자국과 공룡 발자국을 통해 상상력을 발현한다.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흔적에서 '오래된 시간'을 발견하고, 발자국을 남긴 존재의 행방을 유추하며 그 순간을 되살린다. 그리고 '발자국'이라는 흔적을 통해 오래전의 개와 공룡의 생명성과 지속성을 현재의 화자를 포함한 존재들에게 '영원'이라는 동시성(同時性)을 메시지로 전한다. 즉 "아주 오래 전/ 시멘트 바닥에/ 대문 밖으로 뛰어간/ 개"와 쥐라기 시대에 "어디론가로 걸어갔던/ 공룡"을 떠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흔적과 현재의 간극에 주목한다. 오랜 시간을 견디며 남은 발자국이 존재를 환기한다는 점이 시인의 마음에 각인되었을 것이다. 만약 그 흔적이 남지 않았다면 존재 또한 잊혔을 터인데, 남아 있음으로써 존재를 규명하게 한다는 사실을 바라본다. 의미를 확장해 보면 '오랜 시간', 즉 '영원'에 이르게 하는 것은 존재를 인식시키는 흔적이며, 그 흔적은 시간을 견뎌온 힘이다. 이러한 통찰은 오늘 우리에게도 적용되어 동시성의 가치를 말해준다.
강나루 시인의 시는 메시지가 묵직하여 다양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미덕이 있다. 이는 우리 아동문학의 경박함을 극복하게 하는 새로운 처방이 될 것으로 믿는다.
「물」은 산속의 옹달샘에서 시작된 산골물이 마침내 넓은 강이 되고 바다에 이르는 여정을 노래한다. 그러나 그 과정만 형상화했다면 뻔한 동시가 되고 말 것이다. 길을 나선 옹달샘 물이 바위에 부딪히고 온갖 시련을 겪은 뒤 넓은 강에 이르러 물풀과 물고기, 조개를 키우고 목마른 들판을 적신다. "더 깊고 넓어진 마음"이 끝내 바다에 이르러 "소금을 머금은 바다"가 된다는 전개를 통해 인간 삶이 지향하는 본질을 묘파하며 시적 깊이와 무게를 획득한다.
「빈 저수지」는 생태학적 상상력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늦가을 빈 저수지의 모습을 통해 모성성을 구현한다. 흔한 풍경이지만 상관물이 지닌 근원적·본질적 생명성을 모색함으로써 우리 아동문학의 불모성을 극복하는 데 힘을 보탤 것으로 믿는다.
「머리카락」 또한 신체의 일부를 아동의 시선으로 의미를 확장해 시인만의 목소리로 해석한다. "머리카락을 보면/ 마음이 보"인다고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고 "푸른 머리카락", "붉은 머리카락", "노란 머리카락", "생머리", "새하얀 머리카락" 등 익숙한 색채를 통해 "씩씩한 오빠", "꿈이 많은 언니", "착한 동생", "점잖은 나", "마음씨 좋은 우리 할머니"를 노래한다. 단순한 색채 이미지이지만 이를 내면의 표지로 환유하는 능력이 돋보인다.
5.
강나루 시인의 동시가 지닌 또 다른 미덕은 자연을 감정을 지닌 존재로 인식하고 시적으로 형상화한 점이다. '해', '바다', '눈'은 우주적이고 자연을 나타내는 대표적 표지로 읽힌다. 시의 중심에는 대개 인간의 모습이 담기지만, 강나루 시인은 '해', '바다' 같은 거대한 자연을 인간처럼 감정을 지닌 존재로 인식시켜 인간과의 친화력을 갖게 한다. '눈' 또한 우주적 자연물이지만, 인간 세계에 깊숙이 들어와 함께하는 상관물로 인식되며 표정과 감정이 빼어나게 형상화된다. 이렇듯 기존 동시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는 시인의 패기가 주목된다.
수억 년 지구를 비춰온 해님도
일년에 두 번
가장 무더운 여름과
가장 추운 겨울
독감에 시달려요
뜨거운 여름
땀을 뻘뻘 흘리는 해님이
하루종일 열이 펄펄 끓다가
밤에도 열대야에 머리가 아파요
사람들이 빨리 해가 지기를 바라지만
콜록콜록 기침하는 해님이
정신을 못 차려요
추운 겨울
옷깃을 파고드는 한기에
하루 종일 오한에 덜덜 떨다가
밤이 되면 온몸이 꽁꽁 얼어 버려요
나무들이 조금만 더 해가 떠있기를 바라지만
콧물 질질 흘리는 해님이
좀 쉬어야겠다고 집으로 가버려요.
- 「해님도 아플 때가 있어요」 전문
이 작품은 표제작으로, 해를 인간적인 모습으로 치환한 발상이 참신하다. 흔히 해는 우주의 가장 강력한 존재로 인식된다. 실제로 태양계의 유일한 항성이자 좌장 격이며, 지구가 푸른 별일 수 있도록 생명의 원천을 제공한다. 이렇듯 우주적 절대성을 지닌 해를 강나루 시인의 동심적 상상력은 "일년에 두 번/ 가장 무더운 여름과/ 가장 추운 겨울/ 독감에 시달"린다고 하여 인간을 닮은 모습으로 그려낸다. 궁극적으로 이 작품은 해와 인간의 관계를 동일성의 시각으로 바라본다. 한여름엔 땀을 뻘뻘 흘리고 열이 펄펄 끓으며, 열대야에 머리가 아프고, 겨울엔 하루 종일 오한에 떨다가 밤에는 꽁꽁 얼고, 콧물을 질질 흘린다. 그러므로 하루 종일 추위에 시달린 해도 "좀 쉬어야겠다고 집으로 가버려요."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살펴보았듯이 해를 인간의 모습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우주적 권위가 아니라 땀을 흘리고 추위에 시달리는 친화적 존재로 만들며 그 힘을 잘 보여 준다.
「눈을 밟으면」은 하늘에서 지상으로 하강하여 우주와 지상의 고리를 잇는 '눈'을 인간의 모습으로 치환해, 우주적 존재가 아닌 인간적 표정과 감정을 지닌 존재로 드러낸다.
모두가 하얀 교복으로 갈아입고
하늘에서 세상으로 놀러 온
마음 착한 눈송이들
아이들이 눈송이와 함께 놀면
기분이 좋다고
뽀드득 뽀드득
즐거운 노래를 부르다가도
짓궂게 자꾸만 놀자고 하면
울그락불그락 화가 난 친구처럼
반질반질한 얼굴빛을 하며
아이들 발목을 걸어 넘어뜨린다.
- 「눈을 밟으면」 전문
강나루 시인은 경험 미학을 새롭게 형상화하는 데 능숙하다. 경험을 통해 학습된 정서적 사건들을 관념화하지 않고 해체한 뒤 낯선 방식으로 재구성하여 시인만의 메시지와 정서를 이끌어낸다. 이 작품에서 '눈'의 색채 이미지를 "하얀 교복"이라 하고, "마음 착한 눈송이"라 해석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눈송이와 함께 놀면/ 기분이 좋다고/ 뽀드득 뽀드득/ 즐거운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눈송이라는 색채 이미지와 "뽀드득 뽀드득"이라는 청각 이미지가 충돌하며 공감각을 일으켜 "즐거운 노래"가 된다. 그러다가 독자의 예상을 뒤집는 반전을 시도해 전개에 변화를 주고 역동적 활력을 불러일으킨다. 아이들이 눈을 자꾸 밟으면, 즐거운 노래도 "울그락불그락 화가 난 친구처럼/ 반질반질한 얼굴빛을 하며/ 아이들 발목을 걸어 넘어뜨린다." 하얀 교복을 입고 하늘에서 놀러 온 마음 착한 눈송이를 자꾸 괴롭히면 결국 화를 입는다는 메시지다. 눈은 본래 부드럽고 순수하지만, 자꾸 밟으면 미끄러워져 밟는 사람을 쓰러뜨린다는 경험을 미학적으로 재구성하여 전혀 새로운 결과를 내놓는다. 그 중심에는 '눈'이 감정을 지닌 대상으로 인식하는 시인의 시선이 깃들어 있다.
「바다도 감정이 있다」 역시 바다를 인간의 모습으로 치환해 감정을 이입한 작품이다. 해가 따스하게 비추면 강아지처럼 졸음에 겨워 바다가 잔잔해지고, 비바람이 불면 독감에 걸린 멧돼지처럼 파도를 친다. 동심의 눈으로 바다를 바라보면, 아이들이 바다 품에 안겨 해수욕을 즐길 때 "기분 좋아진 바다는/ 아이들을 목마 태우고/ 남실남실 춤을 춘다." 때로는 거칠어도 아이들을 대하는 부드러운 바다의 감정을 읽을 수 있다. 시인의 정신과 감정의 표정이 바다의 감정 속으로 이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목차
목차
해님도 아플 때가 있어요 _ 차 례
시인의 말
1 할아버지, 어딜 가셨나
세탁기 ㆍ 18
할머니의 다리미질 ㆍ 20
가족 ㆍ 22
다짐 ㆍ 24
머리카락 ㆍ 26
노래하는 할아버지 ㆍ 27
할머니는 나를 귀찮게 해 ㆍ 28
할아버지의 의자 ㆍ 30
할아버지, 어딜 가셨나 ㆍ 32
아이가 된 할머니 ㆍ 34
신발 ㆍ 35
2 산과 강이 울고 있어요
약오르지 ㆍ 38
사라진 스님 ㆍ 40
산과 강이 울고 있어요 ㆍ 42
풍경화를 그리는 하느님 ㆍ 44
사람들은 자꾸만 길을 내요 ㆍ 46
해님도 아플 때가 있어요 ㆍ 48
폭포는 소리의 어머니 ㆍ 50
개발자국 ㆍ 52
산불 ㆍ 53
물 ㆍ 54
3 봄날, 오후 세 시 무렵
처음 자전거 탄 날 ㆍ 58
봄날, 오후 세 시 무렵 ㆍ 60
눈을 밟으면 ㆍ 62
부활절 ㆍ 64
큰 그릇 ㆍ 65
만국기처럼 ㆍ 66
연과 물고기처럼 ㆍ 68
연 ㆍ 70
수도 ㆍ 72
바다도 감정이 있다 ㆍ 74
4 아이를 찾고 있어요
아이를 찾고 있어요 ㆍ 78
큰 산 ㆍ 80
들밥 ㆍ 82
빈 저수지 ㆍ 84
어느 날 갑자기 ㆍ 86
우리나라 이야기꾼 ㆍ 88
옛날 이야기책을 읽고 ㆍ 90
1년의 자식들 ㆍ 92
문무대왕 ㆍ 96
| 작품론 |
생의 본질을 깨우쳐주는 생각하는 동시 /강경호 ㆍ 100
시인의 말
1 할아버지, 어딜 가셨나
세탁기 ㆍ 18
할머니의 다리미질 ㆍ 20
가족 ㆍ 22
다짐 ㆍ 24
머리카락 ㆍ 26
노래하는 할아버지 ㆍ 27
할머니는 나를 귀찮게 해 ㆍ 28
할아버지의 의자 ㆍ 30
할아버지, 어딜 가셨나 ㆍ 32
아이가 된 할머니 ㆍ 34
신발 ㆍ 35
2 산과 강이 울고 있어요
약오르지 ㆍ 38
사라진 스님 ㆍ 40
산과 강이 울고 있어요 ㆍ 42
풍경화를 그리는 하느님 ㆍ 44
사람들은 자꾸만 길을 내요 ㆍ 46
해님도 아플 때가 있어요 ㆍ 48
폭포는 소리의 어머니 ㆍ 50
개발자국 ㆍ 52
산불 ㆍ 53
물 ㆍ 54
3 봄날, 오후 세 시 무렵
처음 자전거 탄 날 ㆍ 58
봄날, 오후 세 시 무렵 ㆍ 60
눈을 밟으면 ㆍ 62
부활절 ㆍ 64
큰 그릇 ㆍ 65
만국기처럼 ㆍ 66
연과 물고기처럼 ㆍ 68
연 ㆍ 70
수도 ㆍ 72
바다도 감정이 있다 ㆍ 74
4 아이를 찾고 있어요
아이를 찾고 있어요 ㆍ 78
큰 산 ㆍ 80
들밥 ㆍ 82
빈 저수지 ㆍ 84
어느 날 갑자기 ㆍ 86
우리나라 이야기꾼 ㆍ 88
옛날 이야기책을 읽고 ㆍ 90
1년의 자식들 ㆍ 92
문무대왕 ㆍ 96
| 작품론 |
생의 본질을 깨우쳐주는 생각하는 동시 /강경호 ㆍ 100
저자
저자
강나루
· 1989년 서울 출생
· 조선대학교 국어교육학과 졸업
· 동신대학교 대학원 한국어교육학과 졸업
·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재학중
· 2020년 《아동문학세상》 동시 등단
· 2020년 《에세이스트》 수필 등단
· 2020년 《시와사람》 시 등단
· 2025년 《월간문학》 문학평론 등단
· 김현승 젊은시인상 수상
· 전국계간문예지 작품상 수상
· 시집 『감자가 눈을 뜰 때』
· 에세이집 『낮은 대문이 내게 건네는 말』
· 동시집 『백화점에 여우가 나타났어요』
『해님도 아플 때가 있어요』
· 연구서 『휴머니즘과 자연의 수사학』
· 현재 《시와사람》 부주간 겸 편집장
· 조선대학교 국어교육학과 졸업
· 동신대학교 대학원 한국어교육학과 졸업
·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재학중
· 2020년 《아동문학세상》 동시 등단
· 2020년 《에세이스트》 수필 등단
· 2020년 《시와사람》 시 등단
· 2025년 《월간문학》 문학평론 등단
· 김현승 젊은시인상 수상
· 전국계간문예지 작품상 수상
· 시집 『감자가 눈을 뜰 때』
· 에세이집 『낮은 대문이 내게 건네는 말』
· 동시집 『백화점에 여우가 나타났어요』
『해님도 아플 때가 있어요』
· 연구서 『휴머니즘과 자연의 수사학』
· 현재 《시와사람》 부주간 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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