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표절하고파(오늘의 시와사람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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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본문 몇 편
도로 위 술파티
취객처럼 비틀거리던 화물차
중심 잃고
와르르 무너져 내리며
순식간에 술에 취해
도로를 점령한다
속도에 굶주린
건방지고 취기 어린 바퀴가
끌려다니다가
끝내 사고로 이어진
저 궁색한 도수들
잠시 후
사이렌 경적 울리며
달려온 수습 대원들
널브러진 상황에 눈앞이 캄캄해
정신 뒤죽박죽이고
눈물 적시는 취기에
헛발질하는 오후 다섯 시는
해 질 녘으로 가는 차에
무임 승차하고
지지배배 지지배배 노래하는
취객들도 올라탄다
통성명도 하지 않는
불콰한 술의 감정들이
길바닥 벌컥벌컥 들이키며
곤드레만드레
도로 정리 끝났지만
술 냄새는 여전히
바닥을 서성거리고 있다
바다가 손짓하는 여름
짠내 나는 그늘 맛이 좋아
파랗고 노랗고 붉은 여름의 생각들이
제 몸에 맞는 그림자를 펼치는
비치파라솔에서 마주 앉은 연인
커피잔에 얼음 사탕 등장에
오후의 태양
이맛살 찡그리며 물러선다
가파른 허공의 물살에 길을 놓칠까 봐
비릿한 입술 앙다물고
맑은 지느러미 파닥거리며 달려온
한 무더기 갯바람
해물 한 동이 퍼다 부으며
탕 집 재촉하고
바다 가까이 별장 한 채
시큼한 감정 뚝뚝 흐르는 절정이
푸른 문장으로 자라는 청포도 한 그루
사생활 보호하는 유전자가 제 키 늘리더니
담장 너머 까치발 디디고
바깥 훔쳐보며
갈매기 울음 파도 소리에
탱글탱글 곱게 익어간다
서성거리는 불면 속에서
날 선 의식의 끝자락 붙잡고
꽃피는 이력도 없이 잃어버린 그리움
한 소절 이어준 낙서 같은
잊지 못할 추억 한 페이지
친구
평온이 찰랑대는 커피 한 잔
탁자에 마주앉는다
정리되지 않는 기분
콧속 스치는 그 한 모금
마음은 하늘가 구름 위 맴도는
백조 한 마리
귓가 스치는 고운 말 주워 모아
머릿속 저장하고
눈에 보이는 예쁜 사물 마음에 담아
여물어 가는 오늘 하루 잔 속에 띄운다
더욱 산뜻하고 품격 높은 맛
기분은 한 차원 널뛰기하며
까마득히 멀어져간 추억들이
우우 되살아나
시야는 구절초밭에 머문다
단풍잎 막무가내로 흩날리던 그날
이 마음 두어 점 고명 얹어
홀짝거리는데
느닷없이 쏟아내리는 청춘 부스러기
학창 시절 소환한 짜릿한 마음
커피 한 잔이 가져다준 마음의 변화
행운 한 움큼 떠안은 기분이다.
버드나무
짱짱한 햇살 욕심껏 끌어안고
시냇물에 찰랑찰랑 발 씻는 품새
어쩜 저리 막내딸 머릿결인지
미세 바람에도 온몸 흔들어대는
저 호리호리한 허리
지조 있어 태풍에도 부러지는 일 없다
심심할 때면 노랑 블라우스
파란 망토 신사 불러
아름다운 곡조 맞춰 맘대로 나대고
보는 안목 높아
자질구레한 친구와는 상대하지 않는
거만한 자
맞은편 한 쌍의 연인
단물에 풍덩 빠져 갱엿 되어가는데
휘파람으로 유혹하는 음흉한 속셈
겉으론 여리디여린
순진덩이로 보이지만
까발리면 풀어내지 못할
스무고개 한가득
여름 하루가 오밀조밀
알찬 글감 선물하며 무게 잡고 지나간다.
봄 연가
모란이 오월 손 내미는 계절
풀 향기 제철 만나
푸른 하늘과 견주고
꽃잎 한 잎 한 잎 주워 모으며
지나버린 추억 더듬는다
문설주 따라온 발그레한 웃음
제비꽃 향해 기쁨 나누고
사색 깊이 파고드는 이 순간
푸른 가슴 초원 향해
한 마리 양이 되어간다
여기는 어디인지
한순간 초동 행세로 본심 잃어
어리굴젓처럼 흐물흐물
몸은 허물어져 간 초가인데
마음은
수억대 영화 속 별장.
평설
임금남 시인의 제8시집 출간을 축하하며
박 덕 은
(문학박사, 전 전남대학교 교수, 문학평론가)
임금남 시인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임곡동에서 1948년에 아버지 임창묵 씨와 어머니 홍양순 씨 사이에서 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녀는 임곡 남초등학교, 임곡 중학교를 거쳐, 중앙여고를 졸업했다.
월간지 《문학공간》 시 부문 신인문학상 수상, 계간지 《아시아서석문학》 시, 수필 신인문학상 수상, 《강원시조》 시조 부문 문학상 수상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문학상으로는, 박덕은 미술관 디카시 작품상, 포랜컬쳐 문학상, 치유문학상 시조 부문, 치유문학상 수필 부문 우수상, 커피 문학상 동상, 삼행시 문학상, 신정문학상 동시 부문, 토방구리 문학상 본상, 김해 시화전 문학상 작품상, 남명문화제 시화문학상 김해예총상, 아시아 서석문학 작품상, 포랜컬쳐 문인협회 작품상, 제2회 '박덕은 미술관' 전국 디카시 공모전 수상, 제5회 완전공감단시조문학상 차상, 제2회 히말라야 문학상 성북구청장상, 제14회 현대시 문학 삼행시 문학상 금상, 문화앤피플 4월의 작가상, 윤동주 별문학상, 제2회 갈마 문학상, 제42회 빛창공모전 '가을편' 가작, 제6회 꽃다리 문학상 우수상, 제2회 반려동물 디카시 공모전 최우수상, 제15회 대한민국 독도 문예대전 특선 등을 수상한 바 있다.
문단에서는, Asia 서석문학 이사, 광주시인협회 이사, 광주문인협회 이사, 서울문인협회 회원, 화순문인협회 회원, 문학공간 회원, 한실문예창작 회원, 화순군민신문 전속 시인, 한국문인협회 회원, 김현승시인기념사업회 이사, 현대문예 회원, 충장문학 회원, 광산문학 회원, 한국사이버문예 회원, 문화앤피플 회원, 방그레 문학회 회장 등으로 활약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1시집 『보름달을 삼키다』, 제2시집 『노을을 품다』, 제3시집 『나들이 나온 바람』, 제4시집 『어찌나 예쁜지』, 제5디카시집 『기분 좋은 날』, 제6시집 『모란꽃 필 때면』, 제7시집 『시인의 길』이 있다.
어느 날 그녀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삶을 회고했다.
"살아온 제 삶은 호사보다는 허접한 생활이었다. 가난한 집에 시집와, 남편의 변변치 않는 직업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생활이었으니까. 9남매의 장손 며느리라, 너무나 버거웠다. 시동생과 자식들 모두 결혼하고 난 지금에 와서야 다소 여유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
"한문 학원 1년 다니면서 한자 2,000자를 배웠고, 농협중앙회에서 표창장을 받았고, 남편 회사에서 저의 일거일동을 모두 지켜본 후에 준 알뜰 주부 표창장과 금반지를 받은 바 있다. 그밖에 자랑할 만한 것이라고는 남편 환갑 때 미국 관광 다녀오고, 내 환갑 때 유럽 5개국을 구경했다는 것뿐이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임금남 시인의 시 세계를 향긋이 탐색해 보기로 하자.
입안에 잠복한 거짓말 게워내고
진실 속에서 우러나온 참말 꺼내어
노송 백학 도자기에 담는다
품격 갖춘 장식대에 자리잡은 우아함
한 점 정물화로 환생 되어
고상한 이미지 끌어당긴다
지나간 바람 붙잡아
삼삼하게 간 맞추고
구름 한 점 끌어와 진달래 꽃잎 물들여
예쁘게 고명 얹는다
연분홍 천리향 맘대로 퍼져
아씨방 향내음 가득 채우고
사랑채 글 읽는 소리 가득하다
시간은 또각또각 채 썰어
해름참 따라나서고
하루 탕진한 태양은
느슨해진 나사처럼 탄력 잃어
저녁 손님에게 자리 반납한다.
- 「하루를 돌아보며」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성찰의 시간을 우아하게 그려내고 있다. 하루를 성찰하고 그 힘으로 다시 한 달을 살피고 일 년을 돌아볼 줄 안다면 우리는 성장하고 성숙할 것이다. 시적 화자는 "입안에 잠복한 거짓말 게워내고/ 진실 속에서 우러나온 참말 꺼내어/ 노송 백학 도자기에 담"고 있다. 일기장에 쓰는 게 아니라 노송 백학 도자기에 담는다니, 놀랍고 멋지다. 시인의 상상력에 박수를 보낸다. 노송 백학 도자기에 "진실 속에서 우러나온 참말"을 담는다는 것이다. 하루를 성찰하는 그 진실성이 엿보인다. 도자기에 담았으니 그 안에 담긴 참말을 얼마나 귀하게 여길까. 우리도 하루의 성찰을 진실되게 한다면 우리의 내일은 분명 빛날 것이다. 그 도자기는 "품격 갖춘 장식대에 자리잡은 우아함/ 한 점 정물화로 환생 되"고 있다. 상상의 폭이 넓다. 시는 이렇듯 톡톡 튀는 상상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지루하지 않게 긴장감 있게 시상을 전개해야 한다. 도자기는 이제 한 점 정물화로 변신하여 고상한 이미지를 끌어당기고 있다. "지나간 바람 붙잡아/ 삼삼하게 간 맞추고/ 구름 한 점 끌어와 진달래 꽃잎 물들여/ 예쁘게 고명 얹"고 있다. 지나온 하루를 되돌아보며 자신의 발걸음을 짚어볼 필요도 있지만 내일로 나아가는 걸음의 방향을 잡아봐야 한다. "진달래 꽃잎"에서 희망과 꿈으로 나아가는 걸음이 엿보인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지나온 시간의 성찰이 깊어져 "연분홍 천리향 맘대로 퍼져/ 아씨방 향내음 가득 채우"고 있다. 향기로 천리를 간다는 천리향처럼 시적 화자의 내일과 먼먼 훗날은 향기로울 것 같다. 오후는 훌쩍 흘러 "시간은 또각또각 채 썰어/ 해름참 따라나서고" 있다. 시간적 배경을 이렇게 멋지게 표현하다니, 놀랍다. 시인의 내일이 기대된다. "하루 탕진한 태양은/ 느슨해진 나사처럼 탄력 잃어/ 저녁 손님에게 자리 반납"하며 기울고 있다. 표현이 신선하다.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먼저 내면의 거짓을 토해내고 진실된 말을 귀한 도자기에 담아내며, 이를 품격 있는 정물화처럼 고상하게 승화시키는 자기 정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과거의 순간과 자연의 요소를 붙잡아 섬세하게 조화시키고 아름다운 색을 입히는 행위는 일상에 미적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시간이 썰물처럼 흘러 하루를 탕진한 태양이 힘을 잃고 저녁에게 자리를 내주는 모습을 통해, 고요한 공간 속에 깊은 사색과 함께 하루의 소멸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짠내 나는 그늘 맛이 좋아
파랗고 노랗고 붉은 여름의 생각들이
제 몸에 맞는 그림자를 펼치는
비치파라솔에서 마주 앉은 연인
커피잔에 얼음 사탕 등장에
오후의 태양
이맛살 찡그리며 물러선다
가파른 허공의 물살에 길을 놓칠까 봐
비릿한 입술 앙다물고
맑은 지느러미 파닥거리며 달려온
한 무더기 갯바람
해물 한 동이 퍼다 부으며
탕 집 재촉하고
바다 가까이 별장 한 채
시큼한 감정 뚝뚝 흐르는 절정이
푸른 문장으로 자라는 청포도 한 그루
사생활 보호하는 유전자가 제 키 늘리더니
담장 너머 까치발 디디고
바깥 훔쳐보며
갈매기 울음 파도 소리에
탱글탱글 곱게 익어간다
서성거리는 불면 속에서
날 선 의식의 끝자락 붙잡고
꽃피는 이력도 없이 잃어버린 그리움
한 소절 이어준 낙서 같은
잊지 못할 추억 한 페이지
- 「바다가 손짓하는 여름」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뜨거운 여름날 바닷가에서 경험하는 다채로운 감각과 추억을 몽환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어느 휴양지 바닷가에는 "한여름 무덕무덕 쌓여가"는 야자수 그늘이 파도소리와 함께 즐비하게 펼쳐져 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백사장 찜질하는 야리야리한 여인"들이 "수영복 차림에 썬글라스"를 착용하고 있다. 그곳은 "호기심 많은 양떼구름과 함께/ 지상으로 귀향하기 위해/ 천길 벼랑 끝에서 뛰어내린" 하늘빛이 내려앉은 곳이다. 시어로 그림이 그려진 바닷가가 참으로 아름답다. 시는 이렇듯 눈에 보이게 손에 잡히게 시어로 행과 행을 엮어가야 한다. 그곳에는 "짠내 나는 그늘맛이 좋아/ 파랗고 노랗고 붉은 여름의 생각들이/ 제 몸에 맞는 그림자를 펼치는/ 비치파라솔"이 놓여 있다. 낯설기 하기를 통해 비치파라솔을 개성 있게 표현하고 있다. 비치파라솔의 화려함이 주는 이미지를 잘 그려내고 있다. 시는 이렇듯 시적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두되 다양한 감각를 활용해 새롭게 탄생시키며 구체화시켜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새로운 의미를 구축해 가며 시상을 전개해야 한다. 시가 지나치게 안정적이면 안 된다. 때로는 도발로 때로는 충돌로 다가가야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다. 시에 탄력이 있고 개성이 돋보여야 시적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비치파라솔이 놓여 있는 바닷가로 바닷바람이 불어온다. 그 바람은 "가파른 허공의 물살에 길을 놓칠까 봐/ 비릿한 입술 앙다물고/ 맑은 지느러미 퍼득거리며 달려"오고 있다. 바닷바람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표현들이다. "가파른 허공의 물살", "비릿한 입술", "맑은 지느러미"에서 바다의 이미지를 잘 포착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바다에서 가까운 별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곳은 "시큼한 감정 뚝뚝 흐르는 절정이/ 푸른 문장으로 자라는 청포도 한 그루"가 있다. 청포도의 신맛이 "시큼한 감정 뚝뚝 흐르는 절정"으로 표현되어 있어, 연결성이 좋다. 별장이 있는 그곳의 담장은 "사생활 보호하는 유전자가 제 키 늘리"고 있기에 담장 안에서의 생활은 자유롭다. 시적 화자는 비치파라솔과 바닷가와 별장의 이야기가 한여름밤 서성거리는 불면 속에서 떠오르는 것들이었다며 시를 마무리하고 있다. 이 시에서 '하늘빛 내려앉은 바닷가 야자수 그늘' 아래에서 수영복 차림의 여인과 파라솔 아래 연인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은 평화로운 정경을 연출하고 있다. '짠내 나는 그늘맛'과 '비릿한 입술 앙다물고 달려온 갯바람' 등 생생하고 선명한 감각적 묘사를 통해, 여름날의 분위기를 고조시켜 놓고 있다. 이러한 시적 화자의 경험들은 결국 잊지 못할 추억의 한 페이지를 완성하며 독자들에게 깊은 향수와 여운을 남기고 있다.
취객처럼 비틀거리던 화물차
중심 잃고
와르르 무너져 내리며
순식간에 술에 취해
도로를 점령한다
속도에 굶주린
건방지고 취기 어린 바퀴가
끌려다니다가
끝내 사고로 이어진
저 궁색한 도수들
잠시 후
사이렌 경적 울리며
달려온 수습 대원들
널브러진 상황에 눈앞이 캄캄해
정신 뒤죽박죽이고
눈물 적시는 취기에
헛발질하는 오후 다섯 시는
해 질 녘으로 가는 차에
무임 승차하고
지지배배 지지배배 노래하는
취객들도 올라탄다
통성명도 하지 않는
불콰한 술의 감정들이
길바닥 벌컥벌컥 들이키며
곤드레만드레
도로 정리 끝났지만
술 냄새는 여전히
바닥을 서성거리고 있다
- 「도로 위 술파티」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화물차 사고로 인해 짐칸에 실려 있던 막걸리 병들이 깨져 술이 도로 위로 쏟아지는 상황을 의인화하여 표현하고 있다. 사고의 원인을 시적 화자는 "속도에 굶주린/ 건방지고 치기 어린 바퀴에/ 끌려다니다가 끝내 넘어"졌다고 한다. 과속을 했다는 것이다. 짐칸의 막걸리와 운전자가 "건방지고 치기 어린 바퀴"에 끌려다녀서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표현이다. "건방지고 치기 어린 바퀴"에서 운전자가 젊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시는 이렇듯 에둘러서 표현해야 한다. 시적 대상의 특징을 잘 파악해 그에 적절한 비유로 빗대어서 표현해야 한다. 그러려면 치밀한 시적 전략으로 다가가야 한다. 시적 대상과의 경계를 허물면서 감정을 이입하며 상상의 공간 속에서 동일시하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시는 눈길을 끌고 있다. 화물차는 사고가 나 순식간에 도로 위로 막걸리병이 나뒹굴고 있다. 그 모습을 "바닥으로 쏟아지며/ 대작對酌이 필요 없는/ 저 궁색한 도수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보통 막걸리는 상대방과 대작對酌을 하며 마시는데 바닥으로 쏟아졌으니 그런 대작이 필요가 없단다. 어쩔 수 없이 혼술을 하는 "궁색한 도수들"이 된 것이다. 도로에 널브러진 막걸리병을 보며 운전자는 치우고 정리할 일이 막막해 한숨을 내쉰다. 그나마 다행히도 어디선가 "사이렌 경적 울리며/ 달려온 수습 대원들"이 도착한다. 수습 대원들과 함께 운전자는 도로를 점령한 막걸리병을 치우고 있는데 오후 5시가 되어 가고 있다. 오후 5시라는 시간적 배경을 "눈을 적시는 취기에/ 헛발질하"는 시간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또 "해 질 녘으로 가는 차에 무임승차"하는 시간이라고 말하고 있다. 오후 5시에 대한 해석이 다양해서 시의 맛이 있다. 해거름으로 가는 그 차에 "지지배배 지지배배 노래하는/ 취객들도 올라"타고 있다. 시에서 유머가 느껴진다. 시는 이렇듯 큰 물줄기로 흘러가되 곳곳에 잔재미를 주면 시를 읽는 재미가 더해진다. 이번에는 도로를 점령한 막걸리를 "게거품 물고 피어오르는 하얀 꽃"이라고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하나의 관점으로만 보지 않고 다양한 시야로 살피고 들여다보고 있어 멋지다. 막걸리병이 깨지며 바닥에 쏟아진 상황을 "통성명도 하지 않은/ 불콰한 술의 감정들이/ 길바닥 벌컥벌컥 들이켜서/ 귀를 적시는 술주정이/ 널브러져 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마치 술에 취한 사람이 술주정을 하다 길바닥에 쓰러진 모습처럼 표현하고 있다. 이 시에서 사고 현장은 마치 술에 취한 듯 혼란스러운데, 굴러다니는 막걸리를 '도로 위로 나뒹구는 취객'에 비유하고, 이로 인해 아수라장이 된 상황을 '눈을 적시는 취기'로 묘사해 놓고 있다. 수습 대원들이 현장을 정리하지만, '불콰한 술의 감정들'과 '귀를 적시는 술주정'처럼 술내음과 혼란의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고 길바닥에 서성거리고 있다. 이 시는 단순한 교통사고 이상의 강렬한 이미지와 감각적인 비유를 통해, 현장의 난감한 분위기를 잘 전달하고 있다.
반쯤 해체된 오후가 고요를 만지작거리는
해변가 모퉁이
얼키설키 집 한 채 위태롭다
어둠과 바람에 상처난 시간을
절반의 낮과 절반의 밤으로 싸매주다가
푸르탱탱 늙어버린 철대문 녹슨 무늬
무뚝뚝한 철의 얼굴이 삐거덕대자
귓가에 붐비는 뜨거운 적막,
그 안으로 들어서니
생의 뒤안길도 모두 꽃시절이었다며
붉은 화인으로 찍혀 있는 능소화
함박웃음으로 맞이한다
폭염의 치명 속으로 몸 던지는
손바닥만 한 판자 쪼가리엔
하룻밤의 안전을 주석으로 달고 있는
'방 있음'이 낙서처럼 적혀 있다
몽유의 시간 주우며 한참 기다려도
주인장은 보이지 않고
짙은 파도소리만 담장 넘나든다
빙하기 건너온 바다의 생전 말씀 같은
소금기 어린 지붕은
햇빛에 반사되어 금빛 수놓고
허공 가로지른 수평의 방식 추구하되
게으르거나 나태한 법이 없는
저 빨랫줄에는
갈매기 울음이 악보처럼 매달려
한 곡 부추긴다
연주 맞춰 백갈매기 노래 한 곡 흥얼거릴 때
몸뚱이 보따리 반반으로
사람인지 괴물인지 헷갈린 순간
나이 많은 집의 내력을 알고 있는
그늘이 시원한 궁뎅이 들이민
쪽마루에 걸터앉아 짐 풀어놓고
길게 내쉬는 한숨
뜨락까지 내려앉는다
이제나저제나
쪼글쪼글 주름져 한쪽 귀가 닳은
마당의 말문 터지기를 기다리다
지쳐 돌아설 때쯤
"방 있응게, 들어가 짐 푸슈"
일어서는 데 5분
안내하는 데 10분
거북이 애벌레 느리다지만
할머니 움직이는 모습은
성질 급한 사람 볼 수 없는 동작
쓸쓸한 내일의 안색 같은
미래의 내 모습이려니 체념하고
허전한 말투 뱉어내는
퀘퀘한 냄새와 비릿함이 어우러진
방바닥에 짐 풀고 하룻밤 신세 진다.
- 「여행 단상」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바닷가 낡은 집에 머물게 되는 여정을 섬세한 감각으로 그려놓고 있다. 시적 화자는 바닷가 어느 여행지에서 숙박을 하기 위해 방을 알아보고 있다. 눈에 띄는 민박집에 들어가는데 그 집의 철대문을 "어둠과 바람에 상처난 시간을/ 절반의 낮과 절반의 밤으로 싸매주다가/ 푸르탱탱 늙어버린 철대문 녹슨 무늬"를 하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오래되어 낡은 철대문에 어떤 이야기를 입혀서 표현하고 있다. 저 철대문도 주인장처럼 상처난 시간을 싸매주고 다독거리다 푸르탱탱하게 녹이 슬며 늙어 버렸을 것이다. 시적 화자는 그 집의 철대문 여는 모습을 "무뚝뚝한 철의 얼굴이 삐거덕대자/ 귓가에 붐비는 뜨거운 적막"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뜨거운 적막을 통해서 계절이 여름임을 알 수 있다. 묵직한 철대문의 소리와 무더운 더위를 감각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생의 뒤안길도 모두 꽃시절이었다며/ 붉은 화인으로 찍혀 있는 능소화"가 반기고 있다. 여행지에서의 감성이 꽃시절이라는 생의 뒤안길로 다가온 것일까. 생의 뒤안길이 어찌 모두 꽃시절이었겠는가.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생의 뒤안길은 모두 꽃시절이었다. 뒤돌아보면 인생은 소풍이었고 축제였다. 그 깨달음을 얻는 시간이 여행이다. 마당 한쪽엔 작은 팻말이 걸려 있는데 "폭염의 치명 속으로 몸 던지는/ 손바닥만 한 판자 쪼가리엔/ 하룻밤의 안전을 주석으로 달고 있는/ '방 있음'이 낙서처럼 적혀 있"다. 저 팻말은 바람에 흔들거리며 철대문만큼이나 늙어가며 여행객을 맞이했을 것이다. 문득 판자로 만든 팻말에서 삐뚤빼뚤 '방 있음'이라고 적혀 있어 사람 냄새가 난다. 근사한 호텔은 아니지만 낭만이 느껴진다. 시적 화자는 민박집 마당에서 "몽유의 시간 주우며 한참 기다"리는데도 주인은 보이지 않고 "짙은 파도소리만 담장 넘나"들고 있다. 주인이 보이지 않는다고 서둘러 그 민박집을 떠나지 않고 몽유의 시간을 줍다니, 삶을 대하는 자세가 긍정적이고 여유롭다. 그런 자세로 살아왔기에 시적 화자의 생의 뒤안길은 모두 꽃시절이었던 것이다. 눈을 들어 지붕을 바라보다가 빨랫줄에 눈길이 간다. 그 빨랫줄은 "허공 가로지른 수평의 방식 추구하되/ 게으르거나 나태한 법이 없"단다. 빨랫줄에 "갈매기 울음이 악보처럼 매달려/ 한 곡 부추"기고 있다. 시적 화자의 저 여유로운 시선이 멋지고 부럽다. 조급해하지 않고 삶을 느긋하게 대하고 있다. 어찌 보면 우리는 저와 같은 삶의 시선을 갖고자 여행을 떠나는지도 모른다. 일상의 분주함을 벗어던지고 싶어서 나만의 여행을 간다. 시적 화자는 기다림에 지쳤는지 쪽마루에 걸터앉아 짐을 내려놓는다. 그 쪽마루엔 시적 화자 말고 "나이 많은 집의 내력을 알고 있는/ 그늘"이 시원하고 캄캄한 궁뎅이를 들이밀고 있는 곳이다. 그러니까 쪽마루에는 시적 화자와 그늘이 함께 앉아 있는 것이다. 재밌는 표현이다. 한참을 기다려도 주인장은 오지 않기에 민박집을 나오려고 하는데 주인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위태롭게 서 있는 집의 낡고 녹슨 모습에서 오랜 세월의 흔적을 발견하며, 뜨거운 적막 속 능소화를 통해 삶의 꽃시절을 되돌아보고 있다. 주인 없는 듯한 고요 속에서 파도소리와 갈매기 울음소리가 배경을 이루고 있다. 마침내 느린 동작의 할머니가 나타나 하룻밤의 안전을 제공하는 방으로 안내하며 여정을 마무리하고 있다. 그러면서 삶의 속도를 줄이며 느림의 세계로 독자를 안내하고 있다.
윤기 자르르
검정 드레스 차림에 우아한 자태
들과 바다의 만남
그 누구도 거절할 수 없는
신선한 김밥
다정한 간격으로 동글동글 뭉쳐져
온전한 표정 얻기 위해
하얗고 까만 일생이
곡선의 배경으로 자리하며
한 겹 한 겹 마는 일에 집중한다
혼자서는
세상으로 나갈 수 없어
앞과 뒤 옆에
우리의 체온 알록달록 나열하고
내일의 안색 견인할 수 있도록
고소함의 자세 바른 저 태도
울긋불긋 꽃송이 활짝 피어나
방실방실 웃는 모습
어찌 저리 곱고 예쁠까
고객 식성 따라 많게 또는 적은 숫자 출동
서걱서걱 칼날 밀어도 간이 맞는 애들은
서로를 끌어당기며
쫀득한 연대로 이어 나가
속이 꽉 찬 동그라미 한 생으로
전국 미식가들을 사로잡는 대단한 별식
- 「하나로 뭉쳐진 진미」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한국의 대표적인 음식인 김밥을 의인화하여, 김밥을 만드는 과정과 의미를 아름답게 묘사해 놓고 있다. K팝에서 시작된 열풍이 K푸드로 확산되어 김밥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김밥의 재료인 '김'이 외국에 알려지지 않았을 때는 검정색 종이 같은 것을 동양인이 먹는다며 외국의 경찰서에 신고도 당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 김밥을 먹기 위해 외국인들이 줄을 서고 있다. 완성된 김밥의 모습을 "다정한 간격으로 동글동글 뭉쳐진/ 온전한 표정"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소풍이나 나들이를 가서 김밥의 저 온전한 표정을 지인들과 나눠 먹곤 했다. 다정한 간격으로 동글동글 말아져서인지 주고받은 대화도 다정했다. 김을 반듯하게 펼쳐 갓 지은 밥을 올리고 속재료를 넣은 후 둥글게 마는 동작을 "하얗고 까만 일생이/ 곡선의 배경으로 자리하며/ 한 겹 한 겹 마는 일에 집중"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곡선의 배경"이라는 표현이 눈길을 끈다. 둥글게 말아진 김밥을 일정한 크기로 잘라 접시에 담긴 모습을 "앞과 뒤와 옆에/ 우리의 체온 알록달록 나열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게 접시에 담은 이유는 "혼자서는/ 세상으로 나아갈 수 없어" 그랬단다. 또 "내일의 안색 견인할 수 있도록/ 고소함의 자세 바른 저 태도"를 갖기 위해 그랬단다. 삶을 대하는 시적 화자의 마음가짐이 멋지다. 불안한 내일일지라도 밝고 희망차게 다가가겠다는 긍정이 엿보인다. 시는 이처럼 삶의 자세를 다시 재정비하는 일이다. 둥글게 말린 김밥을 칼로 썰지만 "간이 맞은 꿈들은/ 서로를 끌어당기는/ 쫀득한 연대가 있어" 부서지거나 터지지 않는다. 살면서 감당하기 힘든 아픔이 와도 꿈과 열정과 의지가 있다면 그 아픔을 이겨낼 수 있다고 에둘러서 말하고 있는 듯하다. "간이 맞은 꿈"과 "쫀득한 연대"의 연결성이 좋다. 그렇게 "속이 꽉 찬 동그라미 한 생은 맛있"다며 우리도 속이 꽉 찬 한 생을 만들어가자고 권유하고 있다. 밥과 속재료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완전한 하나의 형태를 이루는 모습은 마치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서로 협력하는 삶의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 얇게 썬 김밥이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과정은 서로를 끌어당기는 끈끈한 연대를 통해 탄생한 결과물이며, 이는 손님에게 큰 만족감을 선사하며 성공적인 하루를 만들어낸다는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은둔을 벗은 밀고자의 얼굴로
커피잔에서 튀어나온
한 움큼의 수다가
입가에 붙어 있는 부스러기 말들을
손으로 떼어내며 서로에게 건네는
번화가 커피숍
한때의 청춘 같은
장미향 지나 이마에
세월 훈장 새겨진 여인들
잠자리 날개 원피스에
명품백이 마님 곁에
비서로 앉아 품격 높여 준다
푸념과 환상과 어제가
나불나불 풀려나오는 입술에서는
자식 자랑하느라 숨 쉴 새 없고
너절한 얘기 서로 먼저 쏟아내느라 바쁜
혼성 합창단
부러움과 물음표와 말줄임표가
커피향으로 뒤섞이며 낮게 깔리고
속도 높이는 맹목의 말투는
어지럼증도 없는지 끝도 없이 달려
수다의 전성기가 열린다
한낮의 결핍
그 바닥 드러나도록 잡거리 장사 끝내고
오랜만에 무거운 엉덩이 이동
누에고치 실타래 무리
다음 목적지 어디일까
수다 깔고 앉은 저 오후는
와글와글 빛나고
침까지 튀기는 발그레한 안색
그 왁자한 말맛으로
배가 부른 이야기는 쌓여간다
펄럭이는 돈냄새 나는 스타일
낭만을 소비하는 꽃나비 날아들고
지루한 하루해 서산 너머
달빛 마중 나오는 저들의 하루.
- 「봄바람」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번화가의 커피숍을 배경으로, 그곳에서 대화를 나누는 중년 여성들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시적 화자는 커피숍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은둔을 벗은 밀고자의 얼굴로/ 커피잔에서 튀어나온/ 한 움큼의 수다가/ 입가에 붙어 있는 부스러기 말들을/ 손으로 떼어내며 서로에게 건네"고 있다. 마음 통한 지인과의 만남이 "은둔을 벗은 밀고자의 얼굴"로 형상화되어 있다. 어떤 말을 해도 서로 이해하며 통한다고 생각하니 그동안의 은둔을 벗고 상대에게 속엣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은둔과 밀고자에서 서로를 향한 친밀감이 엿보인다. 커피숍을 찾은 여인들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었는데 그 모습을 "한때의 청춘 같은/ 장미향 지나 이마에/ 세월 훈장 새"긴 여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장미향에서 여인들의 청춘이 아름다웠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여인들의 곁에는 비서처럼 명품백이 앉아 있다. 유머가 느껴진다. 그간의 얘기를 꺼내놓느라 "푸념과 환상과 어제가/ 나불나불 풀려나오는 입술"은 바빠진다. 하고픈 말이 얼마나 많았으면 "너절한 얘기 서로 먼저 쏟아내느라 바쁜/ 혼성 합창단" 같다고 했을까. 몇몇은 상대방의 얘기를 듣고 부러움도 느끼며 같이 아파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 상황을 "부러움과 물음표와 말줄임표가/ 커피향으로 뒤섞이며 낮게 깔리고" 있다로 표현하고 있다. 말줄임표에는 많은 감정과 생각들이 함축되어 있다. 슬픔으로 가슴 저미는 말줄임표일 수도 있고 부러움이 스며들어 위축되는 말줄임표일 수도 있다. 서로의 얘기를 마구잡이로 꺼내놓으며 "속도 높이는 맹목의 말투는/ 어지럼증도 없는지 끝도 없이 달려/ 수다의 전성기"를 열고 있다. 그렇게 한참 수다를 떨어 "오후는/ 와글와글 빛나고/ 침까지 튀기는 발그레한 안색/ 그 왁자한 말맛으로/ 배가 부른 이야기는 쌓여"가고 있다. 표현들이 신선하고 통통 튀는 맛이 있다.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시어로 귀맛이 좋게 하고 있다. 그런데 시의 마지막에서 이 모든 게 "펄럭이는 돈냄새 나는 스타일/ 낭만을 소비하는 꽃나비"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마치 어떤 허기를 채우기 위해 수다를 떨었던 것이라며 에둘러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이 시에서는 세월의 흔적이 엿보이는 여성들이 명품 가방과 화려한 옷차림으로 자신의 품격을 높이며, 마치 혼성 합창단처럼 푸념, 환상, 그리고 자식 자랑이 뒤섞인 수다의 전성기를 열고 있다. 이들은 일상의 결핍을 잊고자 무거운 몸을 이끌면서 모여, 맹목적인 말투로 끝없이 이야기를 쏟아내며 그 왁자한 말맛으로 배를 채우는 듯한 역동적인 오후를 보내고 있다. 결국, 이들의 만남은 지루한 하루를 달래고 낭만을 소비하는, 돈 냄새와 수다가 뒤섞인 결핍을 채우는 행위임을 암시하고 있다.
빈집 같은 쌀쌀한 바람
앞에 두고
커피 한 잔 마신다
인연 다한
낙엽의 발소리 하나둘 휘감기고
커피향 배어 있는 우리의 이야기에
쓴맛이 감돈다
빼꼼히 열린 틈새로
바람 우체부가 보내온
그 시절의 알록달록한 편지
아직도 달콤하다
당신은 식물성 크림만 고집하고
나는 설탕만 고집하며
위기로 치달아 간다
아픔과 아픔이 맞물리며
가을이 깊어가듯
오늘은 에스프레소
내일은 커피믹스
독특한 서로의 향으로
뒤섞이며 다가간다.
- 「가을 앞에서」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쌀쌀한 바람이 부는 가운데 커피를 마시며 지나간 인연과 현재의 복잡한 감정을 깊이 성찰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가을 바람이 부는데 커피를 마시고 있다. 그 바람은 "빈집 같은 쌀쌀한 바람"이다. 이를 통해 시적 화자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어려움은 "커피향 배어 있는 우리의 이야기에/ 쓴맛이 감"돈다로 표현되어 있고, "당신은 식물성 크림만 고집하고/ 나는 설탕만 고집하며"에서도 느껴진다. 커피의 특성에 시적 화자의 어려움을 잘 녹여내고 있다. 시는 이렇듯 낯설게 하기를 해야 하지만, 시적 대상에 잘 녹여내야 한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그래도 "그 시절의 알록달록한 편지/ 아직도 달콤하"기에 인연을 더 이어가고 싶어한다. 살아왔던 삶의 배경도 다르고 성격도 다 다르기에 "당신은 식물성 크림만 고집하고/ 나는 설탕만 고집"하며 충돌이 일고 서로에게 등을 돌리기도 했을 것이다. 둘 다 한 목소리로 식물성 크림을 원하면 될 텐데 시적 화자는 식물성 크림은 싫기에 설탕을 고집한다. 하나의 파격으로 사랑이라는 계절을 완성해야 하는데, 마음처럼 쉽지 않다. 오해와 서운함이 뒤섞이며 당신은 당신의 생각을, 나는 나의 감정을 주장하며 서로에게 다가가지 못해 지금 서로 아파하고 있는 것이다. 둘의 감정이 배려와 공감과 사랑으로 연결되어 연리지의 계절을 만들어야 하는데, 서로가 상대방 때문에 아프다고 하고 있다. 아픔과 슬픔은 덧나기 쉬운 체질이기에 시적 화자는 그 상처를 다독이기 위해 커피를 마시고 있는 것이다. 커피를 마시며 어떤 깨달음에 다다른 것인지 "아픔과 아픔이 맞물리며/ 가을이 깊어가듯/ 오늘은 에스프레소/ 내일은 커피믹스"라며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존중한다. 부딪히고 깨치면 상처 입기 싫어 이별을 선택하는데, 그 다름을 "독특한 서로의 향으로/ 뒤섞이며 다가"가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을 존중하며 나아가겠다는 다짐을 커피에 잘 녹여내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 시에서 떨어지는 낙엽 소리가 인연 다한 과거를 상징하는 가운데, 커피에 배어든 이야기에서는 쓴맛이 느껴지지만,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바람 우체부가 보낸 편지)은 여전히 달콤하다며, 두 이미지를 대비시켜 놓고 있다. 설탕과 크림처럼 서로 다른 취향을 고집하는 두 사람의 관계는 위기로 치달아 가지만, 아픔이 맞물려 가을이 깊어지듯, 에스프레소와 커피믹스처럼 독특한 서로의 향으로 뒤섞이며 다가가는 현재의 모습을 통해, 관계의 복잡하고도 필연적인 조화를 보여 주고 있다.
커피향이 식을 때까지
기다려도 오지 않는 첫사랑
창문 기웃거리던 보름달
이별은 사소한 거라며
찻잔 속에 빠져
달빛으로 자라난 물무늬 일으킨다
당신이 앉았던
자리의 따스함도 식어
꽃 지는 소리만 만지작거린다
건방진 이별이
무심히 익숙해질 때까지
온종일 기다려 준
한 잔의 커피
쓴맛 나는 아픔이 무색하지 않게
블랙커피로 앉아 있다
말줄임표로 건너뛰는 저녁이
오늘도 내일도 외롭지 않게
곁을 지키고 있다.
- 「약속」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떠나간 첫사랑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고독한 시간을 커피 한 잔에 투영하여 그려놓고 있다. 첫사랑만큼 가슴 뜨거운 사랑이 어디 또 있을까. 사랑이 뭔지도 모르고 시작한 첫사랑이기에 어떻게 갈등을 해결할지도 모르고 어떻게 서로에게 다가가며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지도 몰라 당황한다. 처음에는 뜨거운 감정으로 시작하지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해 상처를 던지고 상처를 입는다. 하지만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그 첫사랑을 다시 이어가고 싶어한다. 시적 화자는 커피숍에서 첫사랑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커피향이 식을 때까지/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의자에 앉아 기다리면서 어떤 말을 건넬까, 어떤 질문을 던질까, 어떻게 안부를 물을까 고심을 하며 기다렸을 텐데 끝내 첫사랑은 오지 않는다. 시적 화자는 오지 않는 첫사랑으로 인해 상처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 괜찮다며 다독인다. "창문 기웃거리던 보름달/ 이별은 사소한 거라며/ 찻잔 속에 빠져/ 달빛으로 자라난 물무늬 일으"키지만 정작 마음은 아프고 불편하다. 이별 앞에서 담담하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저 보름달처럼 찻잔 속에서 물무늬 일으키며 이별 같은 것은 신경쓰지 않는다고 행동하면 좋을 텐데 사람 마음은 그렇지가 못하다. 뜨겁게 사랑했던 추억이 있기에 달콤하게 속삭였던 그날이 있었기에 자꾸만 아프다. 첫사랑은 영영 떠나 "당신이 앉았던/ 자리의 따스함도 식어/ 꽃 지는 소리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심장에 쿵, 하고 들리는 "꽃 지는 소리"가 아프다. 저 꽃도 한때는 설렘의 꽃망울로 맺혀 필까 말까 은밀하게 밀당을 하다가 꽃잎 활짝 열어 사랑의 길로 들어섰을 텐데, 이제는 꽃이 지는 소리만 만지작거려야 한다. 첫사랑이 약속 시간에 오지 않으면 미련을 버리고 찻집을 나와야 하는데 무작정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왜 머물렀을까. "건방진 이별이/ 무심히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렸을까. 아닐 것이다. 마음속으로는 첫사랑이 늦게라도 오기를 소망했을 것이다. 다행히 한 잔의 커피도 화자의 곁에서 기다려준다. 그 커피는 "쓴맛 나는 아픔이 무색하지 않게/ 블랙커피로 앉아 있"어 준다.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며 쓴맛을 혀끝으로 굴리며 이별을 견디는 화자의 쓸쓸한 뒷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시간은 흘러 저녁에 가닿는데 그 저녁이 "오늘도 내일도 외롭지 않게/ 곁을 지키고 있"다. 첫사랑의 아픔으로 힘들지만 무너지지는 않겠다고 한다. 어떻게든 아픔을 견디겠다고 한다. "약속"이라는 제목은 표면상으로는 첫사랑과의 만남의 약속이기도 하지만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아프더라도 다시 일어서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뜻하기도 한다. 이 시에서 식어가는 커피향 속에서 오지 않는 연인을 기다리는 시적 화자는, 이별이 사소하다는 듯 찻잔 속 달빛으로 물결치는 물무늬를 바라보고 있다. 연인이 앉았던 자리의 온기마저 사라지고 이별의 쓴맛이 익숙해질 때까지, 블랙커피처럼 묵묵이 그 자리에 앉아 지켜주는 기다림의 정서를 통해 외로움을 견디는 모습을 우아하게 담아내고 있다.
홍 드레스 하늘하늘
나들이 부산하고
줄줄이 따라나선
울긋불긋 시녀 행렬
가지 말라 애원해도
뒤돌아보지도 않고 훨훨
한때 태양 주름 잡던 청춘 시절
저 서러움 아는지 모르는지
하늘은 울먹거리며
소복 차림 부산하고
저기 우뚝 솟아오른 한라산
사철 산하 굽어보며
우리와 교신한 평생지기 동반자
눈 쌓인 봉우리마다
질펀히 깔아 놓은 산 교육장
화가에겐 눈부신 작품을
작가에겐 새로운 시의 종자를
가수에겐 색다른 작사 작곡을
원하는 자 모두에게
기회 주는 무일푼 제공자
언제나 두 팔 벌려 품어준
따스한 어머니 품속 같은 산
- 「신비로운 산」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과거의 화려했던 시절을 뒤로하고 떠나는 듯한 '홍 드레스'와 '시녀 행렬'의 이미지를 통해, 인생의 덧없음과 서러움을 묘사하고 있다. 계절은 늦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어 낙엽이 지고 있다. 떨어지는 낙엽을 아쉬워하며 "줄줄이 따라나선/ 울긋불긋 시녀 행렬/ 가지 말라 애원해도/ 뒤돌아보지도 않고 훨훨" 흩어지고 있다. 생로병사를 사람이 어찌할 수는 없지만 인연이 다해 그 인연을 놓아주는 일은 쉽지 않다. 한때 무지갯빛 이름으로 서로를 불러주며 추억을 쌓았을 텐데, 이별로 인한 빈자리가 얼마나 클까. 부재와 쓸쓸함을 견디며 불면의 밤을 건너야 하는데, 새벽은 멀고 적막은 가까워 주저앉은 날이 많았을 것이다. 밤의 눈물이 다급하게 흘러내리고 달빛도 없는 어둠을 견디어야 한다. "한때 태양 주름 잡던 청춘 시절/ 저 서러움 아는지 모르는지/ 하늘은 울먹"거리고 있다. 이별로 인한 아픔과 서러움이 가슴에 와닿는다. 시적 화자는 위태로운 상실에만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고 여겼는지 눈을 들어 "저기 우뚝 솟아오른 한라산"을 바라본다. 그 산은 "사철 산하 굽어보며/ 우리와 교신한 평생지기 동반자"였음을 깨닫는다. 슬픔이 다가올 때 우리는 그 슬픔을 견디지 못해 눈물로 밤을 지샌다. 하지만 날마다 울 수는 없다. 자신을 객관화하여 바라보며 방향을 잡아야 한다. 시적 화자는 한라산을 바라보며 삶의 방향을 재정비하고 있다. "우리와 교신한 평생지기 동반자"인 한라산과 시적 화자는 어떤 교감을 나누고 있다. 산이 다독여주는 위로에 마음을 기대며 우리는 다시 내일로 희망으로 꿈으로 성큼성큼 나아가야 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산은 "눈 쌓인 봉우리마다/ 질펀히 깔아 놓은 산 교육장"이다. 사람들은 산의 말씀에 귀기울였기에 "화가에겐 눈부신 작품을/ 작가에겐 새로운 시의 종자를/ 가수에겐 색다른 작사 작곡을" 주었던 것이다. 산의 넉넉한 품에 감사드리고 있다. 결국 시적 화자는 '한라산'은 사계절 동안 우리 삶을 굽어보는 '평생지기 동반자'이자 따스한 '어머니 품속 같은 산'으로 정의하고 있다. 한라산은 예술가에게는 영감을, 모든 이에게는 '산 교육장'이자, '기회 주는 무일푼 제공자'로서, 변함없는 위안과 가치를 제공하는 신비로운 존재임을 노래하고 있다.
아카시아 꽃잎 닮은 희디흰 살결
나들이길 나서는 저 요염한 멋쟁이
바람이 끌어당긴 치맛자락은
하늘 날고파 바둥거리고
모란꽃 활짝 핀 머플러는
임 만나러 가자 칭얼댄다
아슬아슬 반짝인 하이힐
굽소리 요란한데
어디를 언제까지 걸을 건지
발걸음이 불편하다 투정 부려도
무조건 직진한다
금빛 머리카락 사이로
노을 곱게 물들고
보랏빛 숄더백은
깨끗한 이미지 구겨진다며
어지간히 걷자 귀가 독촉한다
뒤뚱뒤뚱 아가씨
승용차는 왜 타지 않고
두 발 걸음일까
맙소사 내 그럴 줄 알았지
발굽이 성질나 오기 덩어리가
한 움큼 뭉쳤네
고생 좀 허겄다.
- 「당신을 표절하고파」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봄날 외출에 나선 한 매력적인 여인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포착해 놓고 있다. 표절의 사전적인 뜻은 시나 글, 음악 따위를 지을 때, 남의 작품의 일부를 자기 것인 양 몰래 따서 씀을 뜻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당신을 표절하고파"는 무슨 뜻일까. "아카시아
도로 위 술파티
취객처럼 비틀거리던 화물차
중심 잃고
와르르 무너져 내리며
순식간에 술에 취해
도로를 점령한다
속도에 굶주린
건방지고 취기 어린 바퀴가
끌려다니다가
끝내 사고로 이어진
저 궁색한 도수들
잠시 후
사이렌 경적 울리며
달려온 수습 대원들
널브러진 상황에 눈앞이 캄캄해
정신 뒤죽박죽이고
눈물 적시는 취기에
헛발질하는 오후 다섯 시는
해 질 녘으로 가는 차에
무임 승차하고
지지배배 지지배배 노래하는
취객들도 올라탄다
통성명도 하지 않는
불콰한 술의 감정들이
길바닥 벌컥벌컥 들이키며
곤드레만드레
도로 정리 끝났지만
술 냄새는 여전히
바닥을 서성거리고 있다
바다가 손짓하는 여름
짠내 나는 그늘 맛이 좋아
파랗고 노랗고 붉은 여름의 생각들이
제 몸에 맞는 그림자를 펼치는
비치파라솔에서 마주 앉은 연인
커피잔에 얼음 사탕 등장에
오후의 태양
이맛살 찡그리며 물러선다
가파른 허공의 물살에 길을 놓칠까 봐
비릿한 입술 앙다물고
맑은 지느러미 파닥거리며 달려온
한 무더기 갯바람
해물 한 동이 퍼다 부으며
탕 집 재촉하고
바다 가까이 별장 한 채
시큼한 감정 뚝뚝 흐르는 절정이
푸른 문장으로 자라는 청포도 한 그루
사생활 보호하는 유전자가 제 키 늘리더니
담장 너머 까치발 디디고
바깥 훔쳐보며
갈매기 울음 파도 소리에
탱글탱글 곱게 익어간다
서성거리는 불면 속에서
날 선 의식의 끝자락 붙잡고
꽃피는 이력도 없이 잃어버린 그리움
한 소절 이어준 낙서 같은
잊지 못할 추억 한 페이지
친구
평온이 찰랑대는 커피 한 잔
탁자에 마주앉는다
정리되지 않는 기분
콧속 스치는 그 한 모금
마음은 하늘가 구름 위 맴도는
백조 한 마리
귓가 스치는 고운 말 주워 모아
머릿속 저장하고
눈에 보이는 예쁜 사물 마음에 담아
여물어 가는 오늘 하루 잔 속에 띄운다
더욱 산뜻하고 품격 높은 맛
기분은 한 차원 널뛰기하며
까마득히 멀어져간 추억들이
우우 되살아나
시야는 구절초밭에 머문다
단풍잎 막무가내로 흩날리던 그날
이 마음 두어 점 고명 얹어
홀짝거리는데
느닷없이 쏟아내리는 청춘 부스러기
학창 시절 소환한 짜릿한 마음
커피 한 잔이 가져다준 마음의 변화
행운 한 움큼 떠안은 기분이다.
버드나무
짱짱한 햇살 욕심껏 끌어안고
시냇물에 찰랑찰랑 발 씻는 품새
어쩜 저리 막내딸 머릿결인지
미세 바람에도 온몸 흔들어대는
저 호리호리한 허리
지조 있어 태풍에도 부러지는 일 없다
심심할 때면 노랑 블라우스
파란 망토 신사 불러
아름다운 곡조 맞춰 맘대로 나대고
보는 안목 높아
자질구레한 친구와는 상대하지 않는
거만한 자
맞은편 한 쌍의 연인
단물에 풍덩 빠져 갱엿 되어가는데
휘파람으로 유혹하는 음흉한 속셈
겉으론 여리디여린
순진덩이로 보이지만
까발리면 풀어내지 못할
스무고개 한가득
여름 하루가 오밀조밀
알찬 글감 선물하며 무게 잡고 지나간다.
봄 연가
모란이 오월 손 내미는 계절
풀 향기 제철 만나
푸른 하늘과 견주고
꽃잎 한 잎 한 잎 주워 모으며
지나버린 추억 더듬는다
문설주 따라온 발그레한 웃음
제비꽃 향해 기쁨 나누고
사색 깊이 파고드는 이 순간
푸른 가슴 초원 향해
한 마리 양이 되어간다
여기는 어디인지
한순간 초동 행세로 본심 잃어
어리굴젓처럼 흐물흐물
몸은 허물어져 간 초가인데
마음은
수억대 영화 속 별장.
평설
임금남 시인의 제8시집 출간을 축하하며
박 덕 은
(문학박사, 전 전남대학교 교수, 문학평론가)
임금남 시인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임곡동에서 1948년에 아버지 임창묵 씨와 어머니 홍양순 씨 사이에서 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녀는 임곡 남초등학교, 임곡 중학교를 거쳐, 중앙여고를 졸업했다.
월간지 《문학공간》 시 부문 신인문학상 수상, 계간지 《아시아서석문학》 시, 수필 신인문학상 수상, 《강원시조》 시조 부문 문학상 수상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문학상으로는, 박덕은 미술관 디카시 작품상, 포랜컬쳐 문학상, 치유문학상 시조 부문, 치유문학상 수필 부문 우수상, 커피 문학상 동상, 삼행시 문학상, 신정문학상 동시 부문, 토방구리 문학상 본상, 김해 시화전 문학상 작품상, 남명문화제 시화문학상 김해예총상, 아시아 서석문학 작품상, 포랜컬쳐 문인협회 작품상, 제2회 '박덕은 미술관' 전국 디카시 공모전 수상, 제5회 완전공감단시조문학상 차상, 제2회 히말라야 문학상 성북구청장상, 제14회 현대시 문학 삼행시 문학상 금상, 문화앤피플 4월의 작가상, 윤동주 별문학상, 제2회 갈마 문학상, 제42회 빛창공모전 '가을편' 가작, 제6회 꽃다리 문학상 우수상, 제2회 반려동물 디카시 공모전 최우수상, 제15회 대한민국 독도 문예대전 특선 등을 수상한 바 있다.
문단에서는, Asia 서석문학 이사, 광주시인협회 이사, 광주문인협회 이사, 서울문인협회 회원, 화순문인협회 회원, 문학공간 회원, 한실문예창작 회원, 화순군민신문 전속 시인, 한국문인협회 회원, 김현승시인기념사업회 이사, 현대문예 회원, 충장문학 회원, 광산문학 회원, 한국사이버문예 회원, 문화앤피플 회원, 방그레 문학회 회장 등으로 활약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1시집 『보름달을 삼키다』, 제2시집 『노을을 품다』, 제3시집 『나들이 나온 바람』, 제4시집 『어찌나 예쁜지』, 제5디카시집 『기분 좋은 날』, 제6시집 『모란꽃 필 때면』, 제7시집 『시인의 길』이 있다.
어느 날 그녀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삶을 회고했다.
"살아온 제 삶은 호사보다는 허접한 생활이었다. 가난한 집에 시집와, 남편의 변변치 않는 직업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생활이었으니까. 9남매의 장손 며느리라, 너무나 버거웠다. 시동생과 자식들 모두 결혼하고 난 지금에 와서야 다소 여유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
"한문 학원 1년 다니면서 한자 2,000자를 배웠고, 농협중앙회에서 표창장을 받았고, 남편 회사에서 저의 일거일동을 모두 지켜본 후에 준 알뜰 주부 표창장과 금반지를 받은 바 있다. 그밖에 자랑할 만한 것이라고는 남편 환갑 때 미국 관광 다녀오고, 내 환갑 때 유럽 5개국을 구경했다는 것뿐이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임금남 시인의 시 세계를 향긋이 탐색해 보기로 하자.
입안에 잠복한 거짓말 게워내고
진실 속에서 우러나온 참말 꺼내어
노송 백학 도자기에 담는다
품격 갖춘 장식대에 자리잡은 우아함
한 점 정물화로 환생 되어
고상한 이미지 끌어당긴다
지나간 바람 붙잡아
삼삼하게 간 맞추고
구름 한 점 끌어와 진달래 꽃잎 물들여
예쁘게 고명 얹는다
연분홍 천리향 맘대로 퍼져
아씨방 향내음 가득 채우고
사랑채 글 읽는 소리 가득하다
시간은 또각또각 채 썰어
해름참 따라나서고
하루 탕진한 태양은
느슨해진 나사처럼 탄력 잃어
저녁 손님에게 자리 반납한다.
- 「하루를 돌아보며」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성찰의 시간을 우아하게 그려내고 있다. 하루를 성찰하고 그 힘으로 다시 한 달을 살피고 일 년을 돌아볼 줄 안다면 우리는 성장하고 성숙할 것이다. 시적 화자는 "입안에 잠복한 거짓말 게워내고/ 진실 속에서 우러나온 참말 꺼내어/ 노송 백학 도자기에 담"고 있다. 일기장에 쓰는 게 아니라 노송 백학 도자기에 담는다니, 놀랍고 멋지다. 시인의 상상력에 박수를 보낸다. 노송 백학 도자기에 "진실 속에서 우러나온 참말"을 담는다는 것이다. 하루를 성찰하는 그 진실성이 엿보인다. 도자기에 담았으니 그 안에 담긴 참말을 얼마나 귀하게 여길까. 우리도 하루의 성찰을 진실되게 한다면 우리의 내일은 분명 빛날 것이다. 그 도자기는 "품격 갖춘 장식대에 자리잡은 우아함/ 한 점 정물화로 환생 되"고 있다. 상상의 폭이 넓다. 시는 이렇듯 톡톡 튀는 상상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지루하지 않게 긴장감 있게 시상을 전개해야 한다. 도자기는 이제 한 점 정물화로 변신하여 고상한 이미지를 끌어당기고 있다. "지나간 바람 붙잡아/ 삼삼하게 간 맞추고/ 구름 한 점 끌어와 진달래 꽃잎 물들여/ 예쁘게 고명 얹"고 있다. 지나온 하루를 되돌아보며 자신의 발걸음을 짚어볼 필요도 있지만 내일로 나아가는 걸음의 방향을 잡아봐야 한다. "진달래 꽃잎"에서 희망과 꿈으로 나아가는 걸음이 엿보인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지나온 시간의 성찰이 깊어져 "연분홍 천리향 맘대로 퍼져/ 아씨방 향내음 가득 채우"고 있다. 향기로 천리를 간다는 천리향처럼 시적 화자의 내일과 먼먼 훗날은 향기로울 것 같다. 오후는 훌쩍 흘러 "시간은 또각또각 채 썰어/ 해름참 따라나서고" 있다. 시간적 배경을 이렇게 멋지게 표현하다니, 놀랍다. 시인의 내일이 기대된다. "하루 탕진한 태양은/ 느슨해진 나사처럼 탄력 잃어/ 저녁 손님에게 자리 반납"하며 기울고 있다. 표현이 신선하다.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먼저 내면의 거짓을 토해내고 진실된 말을 귀한 도자기에 담아내며, 이를 품격 있는 정물화처럼 고상하게 승화시키는 자기 정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과거의 순간과 자연의 요소를 붙잡아 섬세하게 조화시키고 아름다운 색을 입히는 행위는 일상에 미적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시간이 썰물처럼 흘러 하루를 탕진한 태양이 힘을 잃고 저녁에게 자리를 내주는 모습을 통해, 고요한 공간 속에 깊은 사색과 함께 하루의 소멸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짠내 나는 그늘 맛이 좋아
파랗고 노랗고 붉은 여름의 생각들이
제 몸에 맞는 그림자를 펼치는
비치파라솔에서 마주 앉은 연인
커피잔에 얼음 사탕 등장에
오후의 태양
이맛살 찡그리며 물러선다
가파른 허공의 물살에 길을 놓칠까 봐
비릿한 입술 앙다물고
맑은 지느러미 파닥거리며 달려온
한 무더기 갯바람
해물 한 동이 퍼다 부으며
탕 집 재촉하고
바다 가까이 별장 한 채
시큼한 감정 뚝뚝 흐르는 절정이
푸른 문장으로 자라는 청포도 한 그루
사생활 보호하는 유전자가 제 키 늘리더니
담장 너머 까치발 디디고
바깥 훔쳐보며
갈매기 울음 파도 소리에
탱글탱글 곱게 익어간다
서성거리는 불면 속에서
날 선 의식의 끝자락 붙잡고
꽃피는 이력도 없이 잃어버린 그리움
한 소절 이어준 낙서 같은
잊지 못할 추억 한 페이지
- 「바다가 손짓하는 여름」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뜨거운 여름날 바닷가에서 경험하는 다채로운 감각과 추억을 몽환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어느 휴양지 바닷가에는 "한여름 무덕무덕 쌓여가"는 야자수 그늘이 파도소리와 함께 즐비하게 펼쳐져 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백사장 찜질하는 야리야리한 여인"들이 "수영복 차림에 썬글라스"를 착용하고 있다. 그곳은 "호기심 많은 양떼구름과 함께/ 지상으로 귀향하기 위해/ 천길 벼랑 끝에서 뛰어내린" 하늘빛이 내려앉은 곳이다. 시어로 그림이 그려진 바닷가가 참으로 아름답다. 시는 이렇듯 눈에 보이게 손에 잡히게 시어로 행과 행을 엮어가야 한다. 그곳에는 "짠내 나는 그늘맛이 좋아/ 파랗고 노랗고 붉은 여름의 생각들이/ 제 몸에 맞는 그림자를 펼치는/ 비치파라솔"이 놓여 있다. 낯설기 하기를 통해 비치파라솔을 개성 있게 표현하고 있다. 비치파라솔의 화려함이 주는 이미지를 잘 그려내고 있다. 시는 이렇듯 시적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두되 다양한 감각를 활용해 새롭게 탄생시키며 구체화시켜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새로운 의미를 구축해 가며 시상을 전개해야 한다. 시가 지나치게 안정적이면 안 된다. 때로는 도발로 때로는 충돌로 다가가야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다. 시에 탄력이 있고 개성이 돋보여야 시적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비치파라솔이 놓여 있는 바닷가로 바닷바람이 불어온다. 그 바람은 "가파른 허공의 물살에 길을 놓칠까 봐/ 비릿한 입술 앙다물고/ 맑은 지느러미 퍼득거리며 달려"오고 있다. 바닷바람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표현들이다. "가파른 허공의 물살", "비릿한 입술", "맑은 지느러미"에서 바다의 이미지를 잘 포착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바다에서 가까운 별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곳은 "시큼한 감정 뚝뚝 흐르는 절정이/ 푸른 문장으로 자라는 청포도 한 그루"가 있다. 청포도의 신맛이 "시큼한 감정 뚝뚝 흐르는 절정"으로 표현되어 있어, 연결성이 좋다. 별장이 있는 그곳의 담장은 "사생활 보호하는 유전자가 제 키 늘리"고 있기에 담장 안에서의 생활은 자유롭다. 시적 화자는 비치파라솔과 바닷가와 별장의 이야기가 한여름밤 서성거리는 불면 속에서 떠오르는 것들이었다며 시를 마무리하고 있다. 이 시에서 '하늘빛 내려앉은 바닷가 야자수 그늘' 아래에서 수영복 차림의 여인과 파라솔 아래 연인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은 평화로운 정경을 연출하고 있다. '짠내 나는 그늘맛'과 '비릿한 입술 앙다물고 달려온 갯바람' 등 생생하고 선명한 감각적 묘사를 통해, 여름날의 분위기를 고조시켜 놓고 있다. 이러한 시적 화자의 경험들은 결국 잊지 못할 추억의 한 페이지를 완성하며 독자들에게 깊은 향수와 여운을 남기고 있다.
취객처럼 비틀거리던 화물차
중심 잃고
와르르 무너져 내리며
순식간에 술에 취해
도로를 점령한다
속도에 굶주린
건방지고 취기 어린 바퀴가
끌려다니다가
끝내 사고로 이어진
저 궁색한 도수들
잠시 후
사이렌 경적 울리며
달려온 수습 대원들
널브러진 상황에 눈앞이 캄캄해
정신 뒤죽박죽이고
눈물 적시는 취기에
헛발질하는 오후 다섯 시는
해 질 녘으로 가는 차에
무임 승차하고
지지배배 지지배배 노래하는
취객들도 올라탄다
통성명도 하지 않는
불콰한 술의 감정들이
길바닥 벌컥벌컥 들이키며
곤드레만드레
도로 정리 끝났지만
술 냄새는 여전히
바닥을 서성거리고 있다
- 「도로 위 술파티」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화물차 사고로 인해 짐칸에 실려 있던 막걸리 병들이 깨져 술이 도로 위로 쏟아지는 상황을 의인화하여 표현하고 있다. 사고의 원인을 시적 화자는 "속도에 굶주린/ 건방지고 치기 어린 바퀴에/ 끌려다니다가 끝내 넘어"졌다고 한다. 과속을 했다는 것이다. 짐칸의 막걸리와 운전자가 "건방지고 치기 어린 바퀴"에 끌려다녀서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표현이다. "건방지고 치기 어린 바퀴"에서 운전자가 젊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시는 이렇듯 에둘러서 표현해야 한다. 시적 대상의 특징을 잘 파악해 그에 적절한 비유로 빗대어서 표현해야 한다. 그러려면 치밀한 시적 전략으로 다가가야 한다. 시적 대상과의 경계를 허물면서 감정을 이입하며 상상의 공간 속에서 동일시하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시는 눈길을 끌고 있다. 화물차는 사고가 나 순식간에 도로 위로 막걸리병이 나뒹굴고 있다. 그 모습을 "바닥으로 쏟아지며/ 대작對酌이 필요 없는/ 저 궁색한 도수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보통 막걸리는 상대방과 대작對酌을 하며 마시는데 바닥으로 쏟아졌으니 그런 대작이 필요가 없단다. 어쩔 수 없이 혼술을 하는 "궁색한 도수들"이 된 것이다. 도로에 널브러진 막걸리병을 보며 운전자는 치우고 정리할 일이 막막해 한숨을 내쉰다. 그나마 다행히도 어디선가 "사이렌 경적 울리며/ 달려온 수습 대원들"이 도착한다. 수습 대원들과 함께 운전자는 도로를 점령한 막걸리병을 치우고 있는데 오후 5시가 되어 가고 있다. 오후 5시라는 시간적 배경을 "눈을 적시는 취기에/ 헛발질하"는 시간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또 "해 질 녘으로 가는 차에 무임승차"하는 시간이라고 말하고 있다. 오후 5시에 대한 해석이 다양해서 시의 맛이 있다. 해거름으로 가는 그 차에 "지지배배 지지배배 노래하는/ 취객들도 올라"타고 있다. 시에서 유머가 느껴진다. 시는 이렇듯 큰 물줄기로 흘러가되 곳곳에 잔재미를 주면 시를 읽는 재미가 더해진다. 이번에는 도로를 점령한 막걸리를 "게거품 물고 피어오르는 하얀 꽃"이라고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하나의 관점으로만 보지 않고 다양한 시야로 살피고 들여다보고 있어 멋지다. 막걸리병이 깨지며 바닥에 쏟아진 상황을 "통성명도 하지 않은/ 불콰한 술의 감정들이/ 길바닥 벌컥벌컥 들이켜서/ 귀를 적시는 술주정이/ 널브러져 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마치 술에 취한 사람이 술주정을 하다 길바닥에 쓰러진 모습처럼 표현하고 있다. 이 시에서 사고 현장은 마치 술에 취한 듯 혼란스러운데, 굴러다니는 막걸리를 '도로 위로 나뒹구는 취객'에 비유하고, 이로 인해 아수라장이 된 상황을 '눈을 적시는 취기'로 묘사해 놓고 있다. 수습 대원들이 현장을 정리하지만, '불콰한 술의 감정들'과 '귀를 적시는 술주정'처럼 술내음과 혼란의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고 길바닥에 서성거리고 있다. 이 시는 단순한 교통사고 이상의 강렬한 이미지와 감각적인 비유를 통해, 현장의 난감한 분위기를 잘 전달하고 있다.
반쯤 해체된 오후가 고요를 만지작거리는
해변가 모퉁이
얼키설키 집 한 채 위태롭다
어둠과 바람에 상처난 시간을
절반의 낮과 절반의 밤으로 싸매주다가
푸르탱탱 늙어버린 철대문 녹슨 무늬
무뚝뚝한 철의 얼굴이 삐거덕대자
귓가에 붐비는 뜨거운 적막,
그 안으로 들어서니
생의 뒤안길도 모두 꽃시절이었다며
붉은 화인으로 찍혀 있는 능소화
함박웃음으로 맞이한다
폭염의 치명 속으로 몸 던지는
손바닥만 한 판자 쪼가리엔
하룻밤의 안전을 주석으로 달고 있는
'방 있음'이 낙서처럼 적혀 있다
몽유의 시간 주우며 한참 기다려도
주인장은 보이지 않고
짙은 파도소리만 담장 넘나든다
빙하기 건너온 바다의 생전 말씀 같은
소금기 어린 지붕은
햇빛에 반사되어 금빛 수놓고
허공 가로지른 수평의 방식 추구하되
게으르거나 나태한 법이 없는
저 빨랫줄에는
갈매기 울음이 악보처럼 매달려
한 곡 부추긴다
연주 맞춰 백갈매기 노래 한 곡 흥얼거릴 때
몸뚱이 보따리 반반으로
사람인지 괴물인지 헷갈린 순간
나이 많은 집의 내력을 알고 있는
그늘이 시원한 궁뎅이 들이민
쪽마루에 걸터앉아 짐 풀어놓고
길게 내쉬는 한숨
뜨락까지 내려앉는다
이제나저제나
쪼글쪼글 주름져 한쪽 귀가 닳은
마당의 말문 터지기를 기다리다
지쳐 돌아설 때쯤
"방 있응게, 들어가 짐 푸슈"
일어서는 데 5분
안내하는 데 10분
거북이 애벌레 느리다지만
할머니 움직이는 모습은
성질 급한 사람 볼 수 없는 동작
쓸쓸한 내일의 안색 같은
미래의 내 모습이려니 체념하고
허전한 말투 뱉어내는
퀘퀘한 냄새와 비릿함이 어우러진
방바닥에 짐 풀고 하룻밤 신세 진다.
- 「여행 단상」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바닷가 낡은 집에 머물게 되는 여정을 섬세한 감각으로 그려놓고 있다. 시적 화자는 바닷가 어느 여행지에서 숙박을 하기 위해 방을 알아보고 있다. 눈에 띄는 민박집에 들어가는데 그 집의 철대문을 "어둠과 바람에 상처난 시간을/ 절반의 낮과 절반의 밤으로 싸매주다가/ 푸르탱탱 늙어버린 철대문 녹슨 무늬"를 하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오래되어 낡은 철대문에 어떤 이야기를 입혀서 표현하고 있다. 저 철대문도 주인장처럼 상처난 시간을 싸매주고 다독거리다 푸르탱탱하게 녹이 슬며 늙어 버렸을 것이다. 시적 화자는 그 집의 철대문 여는 모습을 "무뚝뚝한 철의 얼굴이 삐거덕대자/ 귓가에 붐비는 뜨거운 적막"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뜨거운 적막을 통해서 계절이 여름임을 알 수 있다. 묵직한 철대문의 소리와 무더운 더위를 감각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생의 뒤안길도 모두 꽃시절이었다며/ 붉은 화인으로 찍혀 있는 능소화"가 반기고 있다. 여행지에서의 감성이 꽃시절이라는 생의 뒤안길로 다가온 것일까. 생의 뒤안길이 어찌 모두 꽃시절이었겠는가.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생의 뒤안길은 모두 꽃시절이었다. 뒤돌아보면 인생은 소풍이었고 축제였다. 그 깨달음을 얻는 시간이 여행이다. 마당 한쪽엔 작은 팻말이 걸려 있는데 "폭염의 치명 속으로 몸 던지는/ 손바닥만 한 판자 쪼가리엔/ 하룻밤의 안전을 주석으로 달고 있는/ '방 있음'이 낙서처럼 적혀 있"다. 저 팻말은 바람에 흔들거리며 철대문만큼이나 늙어가며 여행객을 맞이했을 것이다. 문득 판자로 만든 팻말에서 삐뚤빼뚤 '방 있음'이라고 적혀 있어 사람 냄새가 난다. 근사한 호텔은 아니지만 낭만이 느껴진다. 시적 화자는 민박집 마당에서 "몽유의 시간 주우며 한참 기다"리는데도 주인은 보이지 않고 "짙은 파도소리만 담장 넘나"들고 있다. 주인이 보이지 않는다고 서둘러 그 민박집을 떠나지 않고 몽유의 시간을 줍다니, 삶을 대하는 자세가 긍정적이고 여유롭다. 그런 자세로 살아왔기에 시적 화자의 생의 뒤안길은 모두 꽃시절이었던 것이다. 눈을 들어 지붕을 바라보다가 빨랫줄에 눈길이 간다. 그 빨랫줄은 "허공 가로지른 수평의 방식 추구하되/ 게으르거나 나태한 법이 없"단다. 빨랫줄에 "갈매기 울음이 악보처럼 매달려/ 한 곡 부추"기고 있다. 시적 화자의 저 여유로운 시선이 멋지고 부럽다. 조급해하지 않고 삶을 느긋하게 대하고 있다. 어찌 보면 우리는 저와 같은 삶의 시선을 갖고자 여행을 떠나는지도 모른다. 일상의 분주함을 벗어던지고 싶어서 나만의 여행을 간다. 시적 화자는 기다림에 지쳤는지 쪽마루에 걸터앉아 짐을 내려놓는다. 그 쪽마루엔 시적 화자 말고 "나이 많은 집의 내력을 알고 있는/ 그늘"이 시원하고 캄캄한 궁뎅이를 들이밀고 있는 곳이다. 그러니까 쪽마루에는 시적 화자와 그늘이 함께 앉아 있는 것이다. 재밌는 표현이다. 한참을 기다려도 주인장은 오지 않기에 민박집을 나오려고 하는데 주인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위태롭게 서 있는 집의 낡고 녹슨 모습에서 오랜 세월의 흔적을 발견하며, 뜨거운 적막 속 능소화를 통해 삶의 꽃시절을 되돌아보고 있다. 주인 없는 듯한 고요 속에서 파도소리와 갈매기 울음소리가 배경을 이루고 있다. 마침내 느린 동작의 할머니가 나타나 하룻밤의 안전을 제공하는 방으로 안내하며 여정을 마무리하고 있다. 그러면서 삶의 속도를 줄이며 느림의 세계로 독자를 안내하고 있다.
윤기 자르르
검정 드레스 차림에 우아한 자태
들과 바다의 만남
그 누구도 거절할 수 없는
신선한 김밥
다정한 간격으로 동글동글 뭉쳐져
온전한 표정 얻기 위해
하얗고 까만 일생이
곡선의 배경으로 자리하며
한 겹 한 겹 마는 일에 집중한다
혼자서는
세상으로 나갈 수 없어
앞과 뒤 옆에
우리의 체온 알록달록 나열하고
내일의 안색 견인할 수 있도록
고소함의 자세 바른 저 태도
울긋불긋 꽃송이 활짝 피어나
방실방실 웃는 모습
어찌 저리 곱고 예쁠까
고객 식성 따라 많게 또는 적은 숫자 출동
서걱서걱 칼날 밀어도 간이 맞는 애들은
서로를 끌어당기며
쫀득한 연대로 이어 나가
속이 꽉 찬 동그라미 한 생으로
전국 미식가들을 사로잡는 대단한 별식
- 「하나로 뭉쳐진 진미」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한국의 대표적인 음식인 김밥을 의인화하여, 김밥을 만드는 과정과 의미를 아름답게 묘사해 놓고 있다. K팝에서 시작된 열풍이 K푸드로 확산되어 김밥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김밥의 재료인 '김'이 외국에 알려지지 않았을 때는 검정색 종이 같은 것을 동양인이 먹는다며 외국의 경찰서에 신고도 당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 김밥을 먹기 위해 외국인들이 줄을 서고 있다. 완성된 김밥의 모습을 "다정한 간격으로 동글동글 뭉쳐진/ 온전한 표정"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소풍이나 나들이를 가서 김밥의 저 온전한 표정을 지인들과 나눠 먹곤 했다. 다정한 간격으로 동글동글 말아져서인지 주고받은 대화도 다정했다. 김을 반듯하게 펼쳐 갓 지은 밥을 올리고 속재료를 넣은 후 둥글게 마는 동작을 "하얗고 까만 일생이/ 곡선의 배경으로 자리하며/ 한 겹 한 겹 마는 일에 집중"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곡선의 배경"이라는 표현이 눈길을 끈다. 둥글게 말아진 김밥을 일정한 크기로 잘라 접시에 담긴 모습을 "앞과 뒤와 옆에/ 우리의 체온 알록달록 나열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게 접시에 담은 이유는 "혼자서는/ 세상으로 나아갈 수 없어" 그랬단다. 또 "내일의 안색 견인할 수 있도록/ 고소함의 자세 바른 저 태도"를 갖기 위해 그랬단다. 삶을 대하는 시적 화자의 마음가짐이 멋지다. 불안한 내일일지라도 밝고 희망차게 다가가겠다는 긍정이 엿보인다. 시는 이처럼 삶의 자세를 다시 재정비하는 일이다. 둥글게 말린 김밥을 칼로 썰지만 "간이 맞은 꿈들은/ 서로를 끌어당기는/ 쫀득한 연대가 있어" 부서지거나 터지지 않는다. 살면서 감당하기 힘든 아픔이 와도 꿈과 열정과 의지가 있다면 그 아픔을 이겨낼 수 있다고 에둘러서 말하고 있는 듯하다. "간이 맞은 꿈"과 "쫀득한 연대"의 연결성이 좋다. 그렇게 "속이 꽉 찬 동그라미 한 생은 맛있"다며 우리도 속이 꽉 찬 한 생을 만들어가자고 권유하고 있다. 밥과 속재료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완전한 하나의 형태를 이루는 모습은 마치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서로 협력하는 삶의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 얇게 썬 김밥이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과정은 서로를 끌어당기는 끈끈한 연대를 통해 탄생한 결과물이며, 이는 손님에게 큰 만족감을 선사하며 성공적인 하루를 만들어낸다는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은둔을 벗은 밀고자의 얼굴로
커피잔에서 튀어나온
한 움큼의 수다가
입가에 붙어 있는 부스러기 말들을
손으로 떼어내며 서로에게 건네는
번화가 커피숍
한때의 청춘 같은
장미향 지나 이마에
세월 훈장 새겨진 여인들
잠자리 날개 원피스에
명품백이 마님 곁에
비서로 앉아 품격 높여 준다
푸념과 환상과 어제가
나불나불 풀려나오는 입술에서는
자식 자랑하느라 숨 쉴 새 없고
너절한 얘기 서로 먼저 쏟아내느라 바쁜
혼성 합창단
부러움과 물음표와 말줄임표가
커피향으로 뒤섞이며 낮게 깔리고
속도 높이는 맹목의 말투는
어지럼증도 없는지 끝도 없이 달려
수다의 전성기가 열린다
한낮의 결핍
그 바닥 드러나도록 잡거리 장사 끝내고
오랜만에 무거운 엉덩이 이동
누에고치 실타래 무리
다음 목적지 어디일까
수다 깔고 앉은 저 오후는
와글와글 빛나고
침까지 튀기는 발그레한 안색
그 왁자한 말맛으로
배가 부른 이야기는 쌓여간다
펄럭이는 돈냄새 나는 스타일
낭만을 소비하는 꽃나비 날아들고
지루한 하루해 서산 너머
달빛 마중 나오는 저들의 하루.
- 「봄바람」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번화가의 커피숍을 배경으로, 그곳에서 대화를 나누는 중년 여성들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시적 화자는 커피숍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은둔을 벗은 밀고자의 얼굴로/ 커피잔에서 튀어나온/ 한 움큼의 수다가/ 입가에 붙어 있는 부스러기 말들을/ 손으로 떼어내며 서로에게 건네"고 있다. 마음 통한 지인과의 만남이 "은둔을 벗은 밀고자의 얼굴"로 형상화되어 있다. 어떤 말을 해도 서로 이해하며 통한다고 생각하니 그동안의 은둔을 벗고 상대에게 속엣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은둔과 밀고자에서 서로를 향한 친밀감이 엿보인다. 커피숍을 찾은 여인들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었는데 그 모습을 "한때의 청춘 같은/ 장미향 지나 이마에/ 세월 훈장 새"긴 여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장미향에서 여인들의 청춘이 아름다웠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여인들의 곁에는 비서처럼 명품백이 앉아 있다. 유머가 느껴진다. 그간의 얘기를 꺼내놓느라 "푸념과 환상과 어제가/ 나불나불 풀려나오는 입술"은 바빠진다. 하고픈 말이 얼마나 많았으면 "너절한 얘기 서로 먼저 쏟아내느라 바쁜/ 혼성 합창단" 같다고 했을까. 몇몇은 상대방의 얘기를 듣고 부러움도 느끼며 같이 아파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 상황을 "부러움과 물음표와 말줄임표가/ 커피향으로 뒤섞이며 낮게 깔리고" 있다로 표현하고 있다. 말줄임표에는 많은 감정과 생각들이 함축되어 있다. 슬픔으로 가슴 저미는 말줄임표일 수도 있고 부러움이 스며들어 위축되는 말줄임표일 수도 있다. 서로의 얘기를 마구잡이로 꺼내놓으며 "속도 높이는 맹목의 말투는/ 어지럼증도 없는지 끝도 없이 달려/ 수다의 전성기"를 열고 있다. 그렇게 한참 수다를 떨어 "오후는/ 와글와글 빛나고/ 침까지 튀기는 발그레한 안색/ 그 왁자한 말맛으로/ 배가 부른 이야기는 쌓여"가고 있다. 표현들이 신선하고 통통 튀는 맛이 있다.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시어로 귀맛이 좋게 하고 있다. 그런데 시의 마지막에서 이 모든 게 "펄럭이는 돈냄새 나는 스타일/ 낭만을 소비하는 꽃나비"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마치 어떤 허기를 채우기 위해 수다를 떨었던 것이라며 에둘러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이 시에서는 세월의 흔적이 엿보이는 여성들이 명품 가방과 화려한 옷차림으로 자신의 품격을 높이며, 마치 혼성 합창단처럼 푸념, 환상, 그리고 자식 자랑이 뒤섞인 수다의 전성기를 열고 있다. 이들은 일상의 결핍을 잊고자 무거운 몸을 이끌면서 모여, 맹목적인 말투로 끝없이 이야기를 쏟아내며 그 왁자한 말맛으로 배를 채우는 듯한 역동적인 오후를 보내고 있다. 결국, 이들의 만남은 지루한 하루를 달래고 낭만을 소비하는, 돈 냄새와 수다가 뒤섞인 결핍을 채우는 행위임을 암시하고 있다.
빈집 같은 쌀쌀한 바람
앞에 두고
커피 한 잔 마신다
인연 다한
낙엽의 발소리 하나둘 휘감기고
커피향 배어 있는 우리의 이야기에
쓴맛이 감돈다
빼꼼히 열린 틈새로
바람 우체부가 보내온
그 시절의 알록달록한 편지
아직도 달콤하다
당신은 식물성 크림만 고집하고
나는 설탕만 고집하며
위기로 치달아 간다
아픔과 아픔이 맞물리며
가을이 깊어가듯
오늘은 에스프레소
내일은 커피믹스
독특한 서로의 향으로
뒤섞이며 다가간다.
- 「가을 앞에서」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쌀쌀한 바람이 부는 가운데 커피를 마시며 지나간 인연과 현재의 복잡한 감정을 깊이 성찰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가을 바람이 부는데 커피를 마시고 있다. 그 바람은 "빈집 같은 쌀쌀한 바람"이다. 이를 통해 시적 화자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어려움은 "커피향 배어 있는 우리의 이야기에/ 쓴맛이 감"돈다로 표현되어 있고, "당신은 식물성 크림만 고집하고/ 나는 설탕만 고집하며"에서도 느껴진다. 커피의 특성에 시적 화자의 어려움을 잘 녹여내고 있다. 시는 이렇듯 낯설게 하기를 해야 하지만, 시적 대상에 잘 녹여내야 한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그래도 "그 시절의 알록달록한 편지/ 아직도 달콤하"기에 인연을 더 이어가고 싶어한다. 살아왔던 삶의 배경도 다르고 성격도 다 다르기에 "당신은 식물성 크림만 고집하고/ 나는 설탕만 고집"하며 충돌이 일고 서로에게 등을 돌리기도 했을 것이다. 둘 다 한 목소리로 식물성 크림을 원하면 될 텐데 시적 화자는 식물성 크림은 싫기에 설탕을 고집한다. 하나의 파격으로 사랑이라는 계절을 완성해야 하는데, 마음처럼 쉽지 않다. 오해와 서운함이 뒤섞이며 당신은 당신의 생각을, 나는 나의 감정을 주장하며 서로에게 다가가지 못해 지금 서로 아파하고 있는 것이다. 둘의 감정이 배려와 공감과 사랑으로 연결되어 연리지의 계절을 만들어야 하는데, 서로가 상대방 때문에 아프다고 하고 있다. 아픔과 슬픔은 덧나기 쉬운 체질이기에 시적 화자는 그 상처를 다독이기 위해 커피를 마시고 있는 것이다. 커피를 마시며 어떤 깨달음에 다다른 것인지 "아픔과 아픔이 맞물리며/ 가을이 깊어가듯/ 오늘은 에스프레소/ 내일은 커피믹스"라며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존중한다. 부딪히고 깨치면 상처 입기 싫어 이별을 선택하는데, 그 다름을 "독특한 서로의 향으로/ 뒤섞이며 다가"가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을 존중하며 나아가겠다는 다짐을 커피에 잘 녹여내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 시에서 떨어지는 낙엽 소리가 인연 다한 과거를 상징하는 가운데, 커피에 배어든 이야기에서는 쓴맛이 느껴지지만,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바람 우체부가 보낸 편지)은 여전히 달콤하다며, 두 이미지를 대비시켜 놓고 있다. 설탕과 크림처럼 서로 다른 취향을 고집하는 두 사람의 관계는 위기로 치달아 가지만, 아픔이 맞물려 가을이 깊어지듯, 에스프레소와 커피믹스처럼 독특한 서로의 향으로 뒤섞이며 다가가는 현재의 모습을 통해, 관계의 복잡하고도 필연적인 조화를 보여 주고 있다.
커피향이 식을 때까지
기다려도 오지 않는 첫사랑
창문 기웃거리던 보름달
이별은 사소한 거라며
찻잔 속에 빠져
달빛으로 자라난 물무늬 일으킨다
당신이 앉았던
자리의 따스함도 식어
꽃 지는 소리만 만지작거린다
건방진 이별이
무심히 익숙해질 때까지
온종일 기다려 준
한 잔의 커피
쓴맛 나는 아픔이 무색하지 않게
블랙커피로 앉아 있다
말줄임표로 건너뛰는 저녁이
오늘도 내일도 외롭지 않게
곁을 지키고 있다.
- 「약속」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떠나간 첫사랑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고독한 시간을 커피 한 잔에 투영하여 그려놓고 있다. 첫사랑만큼 가슴 뜨거운 사랑이 어디 또 있을까. 사랑이 뭔지도 모르고 시작한 첫사랑이기에 어떻게 갈등을 해결할지도 모르고 어떻게 서로에게 다가가며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지도 몰라 당황한다. 처음에는 뜨거운 감정으로 시작하지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해 상처를 던지고 상처를 입는다. 하지만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그 첫사랑을 다시 이어가고 싶어한다. 시적 화자는 커피숍에서 첫사랑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커피향이 식을 때까지/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의자에 앉아 기다리면서 어떤 말을 건넬까, 어떤 질문을 던질까, 어떻게 안부를 물을까 고심을 하며 기다렸을 텐데 끝내 첫사랑은 오지 않는다. 시적 화자는 오지 않는 첫사랑으로 인해 상처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 괜찮다며 다독인다. "창문 기웃거리던 보름달/ 이별은 사소한 거라며/ 찻잔 속에 빠져/ 달빛으로 자라난 물무늬 일으"키지만 정작 마음은 아프고 불편하다. 이별 앞에서 담담하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저 보름달처럼 찻잔 속에서 물무늬 일으키며 이별 같은 것은 신경쓰지 않는다고 행동하면 좋을 텐데 사람 마음은 그렇지가 못하다. 뜨겁게 사랑했던 추억이 있기에 달콤하게 속삭였던 그날이 있었기에 자꾸만 아프다. 첫사랑은 영영 떠나 "당신이 앉았던/ 자리의 따스함도 식어/ 꽃 지는 소리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심장에 쿵, 하고 들리는 "꽃 지는 소리"가 아프다. 저 꽃도 한때는 설렘의 꽃망울로 맺혀 필까 말까 은밀하게 밀당을 하다가 꽃잎 활짝 열어 사랑의 길로 들어섰을 텐데, 이제는 꽃이 지는 소리만 만지작거려야 한다. 첫사랑이 약속 시간에 오지 않으면 미련을 버리고 찻집을 나와야 하는데 무작정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왜 머물렀을까. "건방진 이별이/ 무심히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렸을까. 아닐 것이다. 마음속으로는 첫사랑이 늦게라도 오기를 소망했을 것이다. 다행히 한 잔의 커피도 화자의 곁에서 기다려준다. 그 커피는 "쓴맛 나는 아픔이 무색하지 않게/ 블랙커피로 앉아 있"어 준다.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며 쓴맛을 혀끝으로 굴리며 이별을 견디는 화자의 쓸쓸한 뒷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시간은 흘러 저녁에 가닿는데 그 저녁이 "오늘도 내일도 외롭지 않게/ 곁을 지키고 있"다. 첫사랑의 아픔으로 힘들지만 무너지지는 않겠다고 한다. 어떻게든 아픔을 견디겠다고 한다. "약속"이라는 제목은 표면상으로는 첫사랑과의 만남의 약속이기도 하지만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아프더라도 다시 일어서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뜻하기도 한다. 이 시에서 식어가는 커피향 속에서 오지 않는 연인을 기다리는 시적 화자는, 이별이 사소하다는 듯 찻잔 속 달빛으로 물결치는 물무늬를 바라보고 있다. 연인이 앉았던 자리의 온기마저 사라지고 이별의 쓴맛이 익숙해질 때까지, 블랙커피처럼 묵묵이 그 자리에 앉아 지켜주는 기다림의 정서를 통해 외로움을 견디는 모습을 우아하게 담아내고 있다.
홍 드레스 하늘하늘
나들이 부산하고
줄줄이 따라나선
울긋불긋 시녀 행렬
가지 말라 애원해도
뒤돌아보지도 않고 훨훨
한때 태양 주름 잡던 청춘 시절
저 서러움 아는지 모르는지
하늘은 울먹거리며
소복 차림 부산하고
저기 우뚝 솟아오른 한라산
사철 산하 굽어보며
우리와 교신한 평생지기 동반자
눈 쌓인 봉우리마다
질펀히 깔아 놓은 산 교육장
화가에겐 눈부신 작품을
작가에겐 새로운 시의 종자를
가수에겐 색다른 작사 작곡을
원하는 자 모두에게
기회 주는 무일푼 제공자
언제나 두 팔 벌려 품어준
따스한 어머니 품속 같은 산
- 「신비로운 산」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과거의 화려했던 시절을 뒤로하고 떠나는 듯한 '홍 드레스'와 '시녀 행렬'의 이미지를 통해, 인생의 덧없음과 서러움을 묘사하고 있다. 계절은 늦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어 낙엽이 지고 있다. 떨어지는 낙엽을 아쉬워하며 "줄줄이 따라나선/ 울긋불긋 시녀 행렬/ 가지 말라 애원해도/ 뒤돌아보지도 않고 훨훨" 흩어지고 있다. 생로병사를 사람이 어찌할 수는 없지만 인연이 다해 그 인연을 놓아주는 일은 쉽지 않다. 한때 무지갯빛 이름으로 서로를 불러주며 추억을 쌓았을 텐데, 이별로 인한 빈자리가 얼마나 클까. 부재와 쓸쓸함을 견디며 불면의 밤을 건너야 하는데, 새벽은 멀고 적막은 가까워 주저앉은 날이 많았을 것이다. 밤의 눈물이 다급하게 흘러내리고 달빛도 없는 어둠을 견디어야 한다. "한때 태양 주름 잡던 청춘 시절/ 저 서러움 아는지 모르는지/ 하늘은 울먹"거리고 있다. 이별로 인한 아픔과 서러움이 가슴에 와닿는다. 시적 화자는 위태로운 상실에만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고 여겼는지 눈을 들어 "저기 우뚝 솟아오른 한라산"을 바라본다. 그 산은 "사철 산하 굽어보며/ 우리와 교신한 평생지기 동반자"였음을 깨닫는다. 슬픔이 다가올 때 우리는 그 슬픔을 견디지 못해 눈물로 밤을 지샌다. 하지만 날마다 울 수는 없다. 자신을 객관화하여 바라보며 방향을 잡아야 한다. 시적 화자는 한라산을 바라보며 삶의 방향을 재정비하고 있다. "우리와 교신한 평생지기 동반자"인 한라산과 시적 화자는 어떤 교감을 나누고 있다. 산이 다독여주는 위로에 마음을 기대며 우리는 다시 내일로 희망으로 꿈으로 성큼성큼 나아가야 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산은 "눈 쌓인 봉우리마다/ 질펀히 깔아 놓은 산 교육장"이다. 사람들은 산의 말씀에 귀기울였기에 "화가에겐 눈부신 작품을/ 작가에겐 새로운 시의 종자를/ 가수에겐 색다른 작사 작곡을" 주었던 것이다. 산의 넉넉한 품에 감사드리고 있다. 결국 시적 화자는 '한라산'은 사계절 동안 우리 삶을 굽어보는 '평생지기 동반자'이자 따스한 '어머니 품속 같은 산'으로 정의하고 있다. 한라산은 예술가에게는 영감을, 모든 이에게는 '산 교육장'이자, '기회 주는 무일푼 제공자'로서, 변함없는 위안과 가치를 제공하는 신비로운 존재임을 노래하고 있다.
아카시아 꽃잎 닮은 희디흰 살결
나들이길 나서는 저 요염한 멋쟁이
바람이 끌어당긴 치맛자락은
하늘 날고파 바둥거리고
모란꽃 활짝 핀 머플러는
임 만나러 가자 칭얼댄다
아슬아슬 반짝인 하이힐
굽소리 요란한데
어디를 언제까지 걸을 건지
발걸음이 불편하다 투정 부려도
무조건 직진한다
금빛 머리카락 사이로
노을 곱게 물들고
보랏빛 숄더백은
깨끗한 이미지 구겨진다며
어지간히 걷자 귀가 독촉한다
뒤뚱뒤뚱 아가씨
승용차는 왜 타지 않고
두 발 걸음일까
맙소사 내 그럴 줄 알았지
발굽이 성질나 오기 덩어리가
한 움큼 뭉쳤네
고생 좀 허겄다.
- 「당신을 표절하고파」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봄날 외출에 나선 한 매력적인 여인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포착해 놓고 있다. 표절의 사전적인 뜻은 시나 글, 음악 따위를 지을 때, 남의 작품의 일부를 자기 것인 양 몰래 따서 씀을 뜻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당신을 표절하고파"는 무슨 뜻일까. "아카시아
목차
목차
당신을 표절하고파 / 차례
□시인의 말·
□축시/ 박덕은·
제1부 밤을 품에 안고
도로 위 술파티
바다가 손짓하는 여름
친구
버드나무
봄 연가
여행 단상
익어가는 과정
적막 속 작품
이별
수박
밤을 품에 안고
홍시
꿈은 먼 곳에
시 세계 탐색 중
편백숲
통일을 그리워하며
산행 일기
고생 담긴 뒷이야기
잠겼던 시 오픈 중
단란한 가정
초가을
해님 정체
특별한 자가 되려면
용도 변경
축복받는 날
제2부 설경 앞세우고
설경 앞세우고
어둠 속에 환한 길
언덕에 올라
뒤집힌 상황
봄 내음
독서하는 날
하나로 뭉쳐진 진미
출세를 꿈꾸며
홍매화
새 시대
노송
하늘 날고파
양귀비
정들면 고향
아물지 않는 상처
밤하늘 무대
봄바람
봄 엽서
한 알이 적을까
아침 인사
가을밤 향수
관찰
감기
가을 앞에서
풍년 세월
제3부 아지랑이 꽃길 따라
내 몫에 만족하자
원인 파악 중
산책로에서
끈기
백두산
어류 시장
아지랑이 꽃길 따라
향기 풍기는 뜨락
안개의 비밀
신비로운 산
정답은 저 멀리
아수라장
인간 극장
신발의 소중함
잠자는 것이 꽃밭
바람
오리무중
겨울 준비
산행길
게으른 눈과 빛을 내는 손길
방랑자
약속
상사화
가장 소중한 이름
이색 씨앗 찾아
도전
구름 따라 두둥실
제4부 당신을 표절하고파
계절에 묻는다
집착
당신을 표절하고파
신기록
새 생명 숨쉬는 소리
꽃길을 날아
각기 다른 분야
내 건강 내가 지키자
인생 통장
무엇이든 알맞게
숲속 관찰
백조가 된 하루
빵
결혼 성숙기
박덕은 미술관 진풍경
실업자
베스트셀러
그해 여름은 지나고
비의 존재
가을 향수
바다 풍경
봄 뉴스
풍경에 취해
하루를 돌아보며
그림자
너 잘났다
은근슬쩍
남쪽 손님
고양이
새벽 산책
씨앗
고마운 존재
임금남 시인의 제8시집 출간을 축하하며 / 박덕은
□시인의 말·
□축시/ 박덕은·
제1부 밤을 품에 안고
도로 위 술파티
바다가 손짓하는 여름
친구
버드나무
봄 연가
여행 단상
익어가는 과정
적막 속 작품
이별
수박
밤을 품에 안고
홍시
꿈은 먼 곳에
시 세계 탐색 중
편백숲
통일을 그리워하며
산행 일기
고생 담긴 뒷이야기
잠겼던 시 오픈 중
단란한 가정
초가을
해님 정체
특별한 자가 되려면
용도 변경
축복받는 날
제2부 설경 앞세우고
설경 앞세우고
어둠 속에 환한 길
언덕에 올라
뒤집힌 상황
봄 내음
독서하는 날
하나로 뭉쳐진 진미
출세를 꿈꾸며
홍매화
새 시대
노송
하늘 날고파
양귀비
정들면 고향
아물지 않는 상처
밤하늘 무대
봄바람
봄 엽서
한 알이 적을까
아침 인사
가을밤 향수
관찰
감기
가을 앞에서
풍년 세월
제3부 아지랑이 꽃길 따라
내 몫에 만족하자
원인 파악 중
산책로에서
끈기
백두산
어류 시장
아지랑이 꽃길 따라
향기 풍기는 뜨락
안개의 비밀
신비로운 산
정답은 저 멀리
아수라장
인간 극장
신발의 소중함
잠자는 것이 꽃밭
바람
오리무중
겨울 준비
산행길
게으른 눈과 빛을 내는 손길
방랑자
약속
상사화
가장 소중한 이름
이색 씨앗 찾아
도전
구름 따라 두둥실
제4부 당신을 표절하고파
계절에 묻는다
집착
당신을 표절하고파
신기록
새 생명 숨쉬는 소리
꽃길을 날아
각기 다른 분야
내 건강 내가 지키자
인생 통장
무엇이든 알맞게
숲속 관찰
백조가 된 하루
빵
결혼 성숙기
박덕은 미술관 진풍경
실업자
베스트셀러
그해 여름은 지나고
비의 존재
가을 향수
바다 풍경
봄 뉴스
풍경에 취해
하루를 돌아보며
그림자
너 잘났다
은근슬쩍
남쪽 손님
고양이
새벽 산책
씨앗
고마운 존재
임금남 시인의 제8시집 출간을 축하하며 / 박덕은
저자
저자
임금남
ㆍ등단 및 등단 연도: Asia 서석문학(2018년), 문화앤피플(2025년)
ㆍ활동 이력: Asia 서석문학 이사, 광주시인협회 이사, 광주문인협회 이사, 서울문인협회 회원, 화순문인협회 회원, 문학공간 회원, 한실문예 창작반, 화순군민신문 전속 시인
ㆍ수상 이력: 아시아 서석문학 작품상, 포렌컬쳐 목판상, 포렌컬쳐 문인협회 작품상, 제2회 '박덕은 미술관' 전국 디카시 공모 수상, 제5회 완전공감단시조문학상 차상, 제2회 히말라야 문학상 성북구청장상, 제14회 현대시 문학 삼행시문학상 금상, 문화앤피플 4월의 작가상, 윤동주 별문학상, 제2회 갈마 문학상, 제42회 빛창공모 '가을편' 가작, 제6회 꽃다리 문학상 우수상, 제2회 반려동물 디카시 공모 최우수상, 제15회 대한민국 독도 문예대전 특선
ㆍ시집: 『보름달을 삼키다』 『노을을 품다』 『나들이 나온 바람』 『어찌나 이쁜지』 『기분 좋은 날』 『모란꽃 필 때면』 『시인의 길』 『당신을 표절하고파』
ㆍ활동 이력: Asia 서석문학 이사, 광주시인협회 이사, 광주문인협회 이사, 서울문인협회 회원, 화순문인협회 회원, 문학공간 회원, 한실문예 창작반, 화순군민신문 전속 시인
ㆍ수상 이력: 아시아 서석문학 작품상, 포렌컬쳐 목판상, 포렌컬쳐 문인협회 작품상, 제2회 '박덕은 미술관' 전국 디카시 공모 수상, 제5회 완전공감단시조문학상 차상, 제2회 히말라야 문학상 성북구청장상, 제14회 현대시 문학 삼행시문학상 금상, 문화앤피플 4월의 작가상, 윤동주 별문학상, 제2회 갈마 문학상, 제42회 빛창공모 '가을편' 가작, 제6회 꽃다리 문학상 우수상, 제2회 반려동물 디카시 공모 최우수상, 제15회 대한민국 독도 문예대전 특선
ㆍ시집: 『보름달을 삼키다』 『노을을 품다』 『나들이 나온 바람』 『어찌나 이쁜지』 『기분 좋은 날』 『모란꽃 필 때면』 『시인의 길』 『당신을 표절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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