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말이 된 가슴(오늘의 시와사람 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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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 작품론
서정 미학과 휴머니티 시학의 랑데뷰
노창수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
유해상 시인은 전북 고창에서 나 고창고교를 거쳐 조선대학교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전력회사에 오래 근무했다. 고교 때부터 시 쓰기에 관심을 가졌으나 생활전선에서 몰두하다 늦깎이로 2016년 《한맥문학》으로 등단했다. 이후 한국문인협회, 광주문인협회 등에서 작품을 발표하는 순수서정파라 할 시인이다. 최근에 그는 시 창작 교실을 노크하면서부터 관련된 지식과 체험을 시에 한창 적용해 가는 중이다.
그의 시를 일람해 보니, 그에게 시란 곧 자기 존재를 되찾기 위한 새로운 청사진으로 인식하는 듯하다. 이번 시집에 수록된 작품 대부분이 자신의 태생, 가족, 사회구성, 그리고 직장 등에서 겪은바 그 서정성과 서사적 에피소드를 한사코 새로운 자세로 긍정적으로 끌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자식 같은 틀니 한 벌 아흔하고 셋 치과, 통증클리닉, 신경정신과, 안과를
한 바퀴 돌면 지친 하루가 가뭇하다 치아와 말수는 줄고 가실에 나락 가마니 쌓이듯
늘어 가는 약봉지들 멈춰 선 시간마다 깊어지는 외로움 세면대 유리컵 속에 퉁퉁 불은 틀니 한 벌, 생의 통점이 바로 여기다
이즈음 눈썹달은 요양병원 침대 맡에
쇠잔한 달빛을 읽고 있다
불러 세우지 못해 긴가민가 하는 시간
다시는 돌아 볼 수가 없다
마지막 정신 줄을 붙잡으시던 그 자태
마음이 처연해 진다
-「눈썹달」 전문
이 시는 그 흔한 하늘의 예쁜 눈썹달 모양을 미화하여 이야기한 게 아니다. 어머니의 틀니의 모양에서 가져왔다는 논리를 전개하기 때문이다. 그걸 남다르게 인식한 게 돋보이는 시다. 아흔셋 되신 어머니가 가장 아끼는 틀니는 자식과도 같다. 음식을 씹어 생명을 이어주는 틀이기에 그렇다. 그동안 날이 갈수록 어머니의 치아와 말 수는 줄어들었다. 반면 약봉지는 늘어만 갔다. 아침 세면대에서 보는 유리컵 속에 퉁퉁 불은 어머니의 틀니 한 벌, 화자는 그걸 마주할 때마다 그것이 가지런한 눈썹달과 같다고 여긴다. 소독을 위해 잠자리에 들기 전 빼놓은 틀니에는 어머니의 애틋한 마음이 서려 있지만, 그걸 보는 화자에게는 더 긴한 정을 묻혀내 보인다. 물에 잠겨 있지만 애지중지해서인지 더 퉁퉁하게도 비친다. 그렇게 보이는 것, 그건 어머니 생의 통점일 것이다. 화자는 어머니의 고생한 세월을 그냥저냥 지나쳐만 왔다. 후회되는 그의 과거를 새삼 불러세울 수도 없이 지나온 생이다. 어머니는 정신 줄을 붙잡으시려 아침이면 꼭 틀니를 찾아 끼신다. 화자는 그 반복되는 한결같음에 처연함을 느낀다. 하늘에나 가 있을 눈썹달이 밤새 어머니의 컵 속으로 내려오는 그 이치를 오버랩하여 시적 효과를 높이고 있다. 이 같은 발상은 곧 유해상의 서정이 갖는 한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툇마루 끝에 앉아
진돗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하염없이 갯가만 바라보셨다 문어잡이로 평생 노(櫓)를 놓지 않으셨던 장인은 당신 마음만 두고 우리 곁을 떠나셨다 연륙교가 개통되던 날
미동도 없이 엎드린
선창가 진돗개 한 마리
장인의 혼령이라도 씐 걸까
그 안에 나도 어우렁더우렁
넋 놓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허공 너머 넘놀던 쪽빛 바다 구름 한 폭엔 시선 가둔 채 장인은 말을 아낀다
고금대교를 오갈 때면
내리사랑이 포말처럼 부풀었지만
명절이 다가오는지 물젖은 종이배 마냥
고금(孤衾)에 덮인 치사랑이
물밑으로 가라앉는다
-「고금대교 -장인(丈人)」 전문
완도 고금도(古今島)에서 사시던 장인은 이제 이 세상에 안 계신다. 장인은 툇마루의 진돗개 머리를 쓰다듬으며 갯가를 바라보는 것으로 소일하곤 했었다. 인자한 그 모습을 화자가 못내 그리워하며 쓴 게 바로 이 시다. 화자는 장인의 혼령에나 씐 듯 그곳을 갈 때마다 넋 놓고 장인의 바다를 바라보게도 된다. 고금도를 오갈 때마다 장인이 베풀어주시던 내리사랑으로 사위는 포말처럼 마음이 부풀던 아름다운 기억을 가지고 있다. 명절 때마다 찾아가는 처가이었지만, 이제는 스스로가 물에 젖은 한 종이배가 된 듯하다고 여긴다. 고금(孤衾), 그러니까 화자 곁에 장인이 안 계시기에 장인과 함께 들던 이불을 이제는 홀로 덮는 이불에 밤을 보낸다. 평생 다정하시던 장인을 생각하며 못내 아쉬움을 안고 돌아오게 된 것이다. 장인과 사위의 옛 '내리사랑'이 이제는 오히려 사위가 그 장인을 못잊어 하며 장인과 집을 돌보는 그 '치사랑'으로 바뀐 현실에 처해 있음을 간곡히 노래한다. 그게 바로 시상이 머무는 곳이다. 화자는 그것을 고금대교에 빗대어 드러낸다. 고금대교(古今大橋)의 시작점인 고금도는 사실 완도군 소재이다. 그러나 강진 마량과 다리로 이어져 생활권은 강진에 더 가까운 곳이 되었다. 섬의 소속은 완도지만 완도를 버리고 사람들에 의해 마량과 강진에 새터를 마련한 것이다, 화자는 옛 고금도에서 정 많은 장인을 뵙던 시대를 떠나, 마량에서 고금도를 그리워하는 그 대리적 '치사랑'을 상징적으로 노래하게 된다.
가스통 바슐라르(G.Bachelard)는 그의 저서 『공기와 꿈』에서 구름, 바람, 나무 등에 대한 이미지에 대한 상상력은 그들의 움직임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더욱 선명해진다고 했다. 그때 내면의 울림도 함께 획득하게 됨을 말한 바 있다. 화자는 예전을 일깨운 장인의 사랑에 대해, 그 교호감(交互感)으로 또다른 형태의 추억을 갖는 게 바로 대리적 작용점일 터이다. 이 시에서 장인은 원래 고금도로부터 이어온 삶, 그러니까 바슐라르의 설명대로 다른 이미지의 형태로 나아가는 그 서정적 역동력을 작동시키고 있는 것이다.
마른 새벽 부시시 눈을 뜨지만
정적을 깨뜨리는 게 아니다
낯익은 커피 향이
서성대는 어둠을 문밖으로 밀어낸다
혼자만의 여유로운 시간에 흠뻑 젖어
할 일을 메모하고 묵상을 한다
소소한 일들이 잘 풀릴 것만 같다
희망은 반드시 찾아올 거라고
넌지시 귀띔을 하는 부푼 태양
식어버린 추억들은
수직으로 솟구치는 우듬지
삶의 레일을 탈선한 회전문이 멈추어 선다
하지만,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초바늘처럼 줄곧 움직여야 한다
쫓기는 일상에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게 있다면
바로 '지금'이다
-「골든타임」 전문
'골든타임'이란 한 생명이 마지막 위기에 처했을 때 구하고자 하는 절박한 시간을 대신하여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그런 '골든타임'을 노래하지는 않는다. 매사 일상적인 그는 마른 새벽부터 눈을 뜨자 곧 일을 시작한다. 그 시간에 정적을 깨뜨리는 건 없다. 여느 때처럼 익숙한 커피향이 풍기는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는 것이다. 그는 하루의 일과를 메모하고 성실한 자신을 세우기 위해 묵상한다. 그가 스스로에게 변함없이 약속하듯 오늘도 태양은 희망차게 솟아오른다. 이처럼 그의 일상은 수직으로 솟는 우듬지처럼 곧다. 순간, 삶의 레일을 탈선한 회전문이 멈추는 걸 상상해 보기도 한다. 그래서 쫓기는 일상에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정작 '지금'이란 소중하고도 막중한 시간임을 새삼 깨닫는다. '지금'의 이 시간을 어느 만큼 충실히 살고 있는가 하는 그 돌아봄, 그게 그만의 '골든타임'이란 것이다. 그러니, 사실 골든타임에 대한 가장 올바른 정의를 한 시라고 할 수 있겠다.
2.
다음으로 그의 직업과 관련한 시를 한 편 읽어 보기로 한다. 그는 공사장에서 일한다. 함에도 공사 감독도 현장 인부도 아님을 그가 천명하며, 자신의 직업적 소이연을 형상화해 밝히고 있다. 그 전개 방식이 시의 기승전결을 따르는 절차를 따르기에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효과도 있다.
그는 공사 감독도 아니고
현장을 뛰는 인부도 아니다
이리저리 떠도는 뭉게구름처럼
공사 현장을 떠도는 '공사 감리'다
작업 전 안전교육 사진이나 찍히는
솔리타리 맨(solitary-man)
인부들이나 신호수처럼
마냥 몸을 쓸 수도 없고
감독처럼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모니터링만 할 수도 없다
현장을 오가지만
몸은 얼어붙고 마음마저 식어버려
연어처럼 자꾸만 과거로 회귀한다
식사 시간만 기다리는 그는
앞 못 보는 장님처럼 이역만리를 본다
춥고 배고프고 졸리기만 한데
북두칠성은 눈에서 멀어지고
별똥별만 주위에 몰려든다
오늘도 서류 파일을 들고
작업 현장을 빙빙 거린다
생계형 보다는생활형 인간이기에 안도의 숨을 내쉰다
여기까지 힘껏 밀어준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소리쳐 보지만
닿지 못하는 곳까지
희망의 촉수를 세우는 게 버겁다
뭉게구름도 들이 댈 곳을 찾는다
-「뭉게구름의 실상 -감리의 세태」 전문
앞서 말한바 화자의 직업적 상황을 오롯 반영한 작품이다. 얼핏 겉으로 보면 그는 공사 감독이나 현장 인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보아하니 그렇지가 않다. 공사 현장을 돌아다니며 일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권면 또는 지적하여 미연의 사태를 예방하기 때문이다. 그건 '감리'라는 직업이다. 현장을 뜬구름과 같이 뭉쳐 몰려다니며 처리하고 해결하기에 그는 '뭉게구름'을 닮았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그의 일은 정작 뭉게구름처럼 돈이 마구 피어오르는 건 아니다. 실상은 고단하고 주도면밀하게 추진해야 할 뿐이다. 현장 인부들에게 안전수칙을 지키도록 교육하는 일, 그리고 합리적 진행 등의 중요한 업무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안전교육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는 솔리타리 맨(solitary-man)이기도 하다. 매사 현장을 오가며 시행하기에 '연어'처럼 회귀해 가는 게 그의 동선(動線)이라고 말한다. 춥고 배고프고 졸리기만 하여 지침을 삼는 '북두칠성'도 그 눈에서 자주 멀어질 만큼 고되다. 그만큼 퇴근도 늦다. 그는 서류 파일을 들고 현장을 주기적으로 돈다. 이 '감리'라는 게 '생계형'이라기 보다는 '생활형'이어서 다소 안도하기도 한다. 안전이 공사의 최우선이어서 닿지 않은 곳까지 버겁게 제 촉수처럼 세우는 것, 시종의 희망이자 조치할 일이다. 사뭇 시적이지 않은 기술자란 직업적 소재를 시로 형상화한 것이다. 그의 이런 시적 능변은 서서를 서정에 대입하는 시법으로 주요 특징을 이룬다.
3.
그의 시에는 희구하는 휴머니티가 내포된 작품이 상당하다. 그런 작품에서 다음 몇 편을 골라 읽는다. 시가 스스로 향유하는 인간적인 정서란 그가 견뎌온 생활의 품성에서 비롯되는 일이다. 작물에 '북'을 돋궈주는 농부의 마음에서 사람과 이웃을 살피는 휴머니티 정분을 드러낸 다음 작품을 우선 살펴본다.
얼마나 많은 그늘을 지나왔을까
아파트 청약하러 이리저리 몰려가는 사람들
떼 지어 나뒹구는 낙엽 같다
돈만을 찾아 쫓기는 삶이었지만
열정을 다 바쳐 햇살을 만들었지
지금은 중환자실의 환자들처럼
링거를 달고 마른 몸으로 이별을 준비한다
햇살은 그늘에서 뼈다귀로 남았지만
외로운 노후, 수족을 잘리는 아픔도 받아들여야 한다
겨울이 다가오니
그늘진 일들이 눈송이처럼 불어난다
겉옷을 벗은 나무뿌리에
두둑한 북*을 북돋아 주어야겠다
소슬바람이 불어온다
불알친구에게 걸려 온,
안부 전화 한통 포근한 햇살인 양 시린 마음이 녹는다
*북 : 식물의 뿌리를 싸고 있는 흙
-「북을 돋다 -퇴직 이후」 전문
이 시는 퇴직 이후 화자가 행하는 일상을 풍자적으로 노래한다. 시종여일 바쁜 삶 속에 살아왔듯 밝은 햇빛의 길보다는 음습한 그늘의 삶을 더 많이 지나도 왔다. 한때 주택을 마련하기 위해 아파트 청약에 기를 써서 몰려다니거나 돈만을 쫓는 삶을 살기도 했음에서다. 하지만 열정을 다한 최선의 삶이었을 것이다. 음울한 그늘에서 벗어나 밝은 햇살의 환경을 만들려고 애쓴 지난 날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노년, 중환자처럼 링거를 달고 비쩍 마른채 생의 이별을 준비하는 시기가 다가올 것이다. 외로운 노후에 이르는 아픔 또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구나 햇볕의 양이 적은 겨울이 다가오듯 생에 추위와 그늘은 밀려올 터이다. 겨울 채비로 정원사는 겉옷을 벗은 나목의 뿌리에게 '북'을 돋워주기에 바쁘다. 이때, 마침 옛 '불알 친구'로부터 만나자는 안부 전화가 온다. 문득 시린 마음을 덥혀 주듯 그의 각박한 삶에 햇살이 비쳐 지기도 한다.
이처럼 나무에 '북'을 주는 정원사처럼 또는 그 아래 햇빛처럼 다정하고도 따스한 휴머니티가 그의 시에 흐른다. 생의 그늘이라는 냉기류 속에서도 밝아지는 한 틈을 발견하고 그걸 인정의 구절로 옮겨오는 것이다.
어릴 적, 그이가 즐겨 신던 신발은
바닥이 늘 차가웠습니다
낡아져 볼품은 없을지언정
아버님 신발보다는 훨씬 좋습니다
큰딸 마냥 정이 새록새록 한
다 닳은 구두가 세월을 기웃거립니다
지나온 세월에 짝발이 되었는지
뒷축이 한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자기 기준을 맞추려는 새것보다는
마음을 헤아려 주는 애틋함일까요
몰래 버릴까 봐 신발장 안에 숨겨둔
빛바랜 구두를 사랑합니다
-「빛바랜 구두」 전문
세월이 지나면 육체는 물론 그에 수반되는 옷이나 구두도 어김없이 낡아간다. 닳아져 더 이상 신지 않은 구두는 신장 안 저 구석에 뻣뻣하게 굳어지며 빛 바랜 채 앉아 있다. 한때, 애지중지 살펴 길렀으나 이젠 다 자라 아빠의 미쁜 정이 고스란히 스민 그 큰딸처럼 구두를 들여다 보는 정 또한 새록새록 끼쳐온다. 화자의 구두는 짝발 탓인지 뒷축이 기울어 닳아있다. 언제쯤은 하마 식구들이 그가 모르게 버릴까 봐 신발장 안쪽 깊이 숨겨두기도 한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신발장 안에 고스란히 있음을 확인해 본다. 빛바랜 그 구두를 식구들 몰래 사랑할 수 있어 다행이라 여기는 것이다.
이 시는 남몰래 아끼는 물건에 대해 살피는 버릇을 감춰두고 스스로가 안도하는 심리가 잘 전해지는 작품이다. 구두라는 존재가 갖는 생태적 다행함이기도 하겠지만, 그 구두에 대한 애정과 화자의 안도감이 더 절실히 전해지기에 색다른 그 사람다운 온기를 느낄 수 있다.
물 밑을 허정거리는 달그림자
살이 차오르기 전
구름에 가려 빛도 못 본채 생을 마감했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의 마음
해 질 무렵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왔지만
현관 번호 키를 누르는 소리마저
'살려 달라' 울부짖는 환청으로 들렸다
차디찬 달빛에 물 머금은 객선은
잔별 눈동자에 실금 물결뿐
만월이 되지 못한 채 떠도는 영혼들이
어두운 팽목항에서 서성이고 있다
세월의 침묵마저 도용당한 저 아득한 곳
-「상현달」 전문
상현달로 상징되는 세월호에서 '살이 차오르기 전 구름에 가려 빛도 못 본채 생을 마감'한 젊은 영혼들을 다시 소환해 낸 시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는 '해 질 무렵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왔지만' 순간 '번호키 앞 소리에서 환청'으로 아이의 소리를 듣고 절망한다
정치적으로 거듭되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진실에 다가가 이어져가기를 소망한다. 그건 살아있는 자들의 하소연이기도 하겠지만 진실은 민주주의의 국가가 마지막으로 지탱할 기둥이다. 가버린 세월로 그 '침묵마저 도용당한 아득한 곳'이 지금도 용암처럼 끓어 우리를 흔들고 있다.
현상학적 문학을 체계화한 폴란드의 비평가 로만·인가르텐(Roman Ingarden)은, 한 편의 시는 '화자가 지나온 이력'을 지니는데 여기에는 '성층'의 체계를 가진다고 설명한 바 있다. 즉 그건 (1)'소리의 성층(成層)', (2)'의미의 성층' (3)'양층의 중첩적 성층'으로 이미지 층위를 설정함이 그것이었다. 이 같은 과정 즉 인가르덴의 성층에 이 시의 이미지들을 대입해 보면,
(1) 소리 성층 : 〈집 현관의 번호키 소리, '살려달라' 울부짖는 환청〉으로
(2) 의미 성층 : 〈만월이 되지 못한 채 떠도는, 팽목항에서 서성이는 영혼〉으로 나타나고,
(3) 양층(중첩) 성층 : 〈세월의 침묵마저 도용당한 아득한 곳〉로 각각 연몌(連袂)를 지을 수 있겠다.
따라서 이 시는 신심리주의 시학임을 기대어 볼 만하다. 우리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를 통해 질곡의 사연과 연민을 통과하며 시대와 역사의 험난한 길목을 지나왔다. 자칫 잊어버리고 마는 진실을 기억하기 위해 고난과 고통의 층을 무수히도 쌓아왔다. 이 시는 그것을 묵묵한 성층으로 대변해 주고 있다.
4.
시가 성립되는 지점은 상식적인 소재를 저절로 엮어가는 절차, 그리고 늘 바라볼 수 있는 성격의 그 내용에 있지 않다. 이와 구별되듯, 유해상의 시의 수직에는 서정의 미학이 우듬지의 나목으로 향해 있음을 보인다. 그리고 더불어 추구하는 수평선 멀리에는 휴머니티의 배가 보인다. 전개하는 바 서정성이 그 시의 향발이라면, 휴머니즘은 목적지로 가는 시인의 이상향으로도 읽힌다.
시집 출간을 축하하며, 부디 시의 간절함과 간구를 위해 늘 깨어있는 시인이기를 희망한다.
서정 미학과 휴머니티 시학의 랑데뷰
노창수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
유해상 시인은 전북 고창에서 나 고창고교를 거쳐 조선대학교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전력회사에 오래 근무했다. 고교 때부터 시 쓰기에 관심을 가졌으나 생활전선에서 몰두하다 늦깎이로 2016년 《한맥문학》으로 등단했다. 이후 한국문인협회, 광주문인협회 등에서 작품을 발표하는 순수서정파라 할 시인이다. 최근에 그는 시 창작 교실을 노크하면서부터 관련된 지식과 체험을 시에 한창 적용해 가는 중이다.
그의 시를 일람해 보니, 그에게 시란 곧 자기 존재를 되찾기 위한 새로운 청사진으로 인식하는 듯하다. 이번 시집에 수록된 작품 대부분이 자신의 태생, 가족, 사회구성, 그리고 직장 등에서 겪은바 그 서정성과 서사적 에피소드를 한사코 새로운 자세로 긍정적으로 끌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자식 같은 틀니 한 벌 아흔하고 셋 치과, 통증클리닉, 신경정신과, 안과를
한 바퀴 돌면 지친 하루가 가뭇하다 치아와 말수는 줄고 가실에 나락 가마니 쌓이듯
늘어 가는 약봉지들 멈춰 선 시간마다 깊어지는 외로움 세면대 유리컵 속에 퉁퉁 불은 틀니 한 벌, 생의 통점이 바로 여기다
이즈음 눈썹달은 요양병원 침대 맡에
쇠잔한 달빛을 읽고 있다
불러 세우지 못해 긴가민가 하는 시간
다시는 돌아 볼 수가 없다
마지막 정신 줄을 붙잡으시던 그 자태
마음이 처연해 진다
-「눈썹달」 전문
이 시는 그 흔한 하늘의 예쁜 눈썹달 모양을 미화하여 이야기한 게 아니다. 어머니의 틀니의 모양에서 가져왔다는 논리를 전개하기 때문이다. 그걸 남다르게 인식한 게 돋보이는 시다. 아흔셋 되신 어머니가 가장 아끼는 틀니는 자식과도 같다. 음식을 씹어 생명을 이어주는 틀이기에 그렇다. 그동안 날이 갈수록 어머니의 치아와 말 수는 줄어들었다. 반면 약봉지는 늘어만 갔다. 아침 세면대에서 보는 유리컵 속에 퉁퉁 불은 어머니의 틀니 한 벌, 화자는 그걸 마주할 때마다 그것이 가지런한 눈썹달과 같다고 여긴다. 소독을 위해 잠자리에 들기 전 빼놓은 틀니에는 어머니의 애틋한 마음이 서려 있지만, 그걸 보는 화자에게는 더 긴한 정을 묻혀내 보인다. 물에 잠겨 있지만 애지중지해서인지 더 퉁퉁하게도 비친다. 그렇게 보이는 것, 그건 어머니 생의 통점일 것이다. 화자는 어머니의 고생한 세월을 그냥저냥 지나쳐만 왔다. 후회되는 그의 과거를 새삼 불러세울 수도 없이 지나온 생이다. 어머니는 정신 줄을 붙잡으시려 아침이면 꼭 틀니를 찾아 끼신다. 화자는 그 반복되는 한결같음에 처연함을 느낀다. 하늘에나 가 있을 눈썹달이 밤새 어머니의 컵 속으로 내려오는 그 이치를 오버랩하여 시적 효과를 높이고 있다. 이 같은 발상은 곧 유해상의 서정이 갖는 한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툇마루 끝에 앉아
진돗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하염없이 갯가만 바라보셨다 문어잡이로 평생 노(櫓)를 놓지 않으셨던 장인은 당신 마음만 두고 우리 곁을 떠나셨다 연륙교가 개통되던 날
미동도 없이 엎드린
선창가 진돗개 한 마리
장인의 혼령이라도 씐 걸까
그 안에 나도 어우렁더우렁
넋 놓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허공 너머 넘놀던 쪽빛 바다 구름 한 폭엔 시선 가둔 채 장인은 말을 아낀다
고금대교를 오갈 때면
내리사랑이 포말처럼 부풀었지만
명절이 다가오는지 물젖은 종이배 마냥
고금(孤衾)에 덮인 치사랑이
물밑으로 가라앉는다
-「고금대교 -장인(丈人)」 전문
완도 고금도(古今島)에서 사시던 장인은 이제 이 세상에 안 계신다. 장인은 툇마루의 진돗개 머리를 쓰다듬으며 갯가를 바라보는 것으로 소일하곤 했었다. 인자한 그 모습을 화자가 못내 그리워하며 쓴 게 바로 이 시다. 화자는 장인의 혼령에나 씐 듯 그곳을 갈 때마다 넋 놓고 장인의 바다를 바라보게도 된다. 고금도를 오갈 때마다 장인이 베풀어주시던 내리사랑으로 사위는 포말처럼 마음이 부풀던 아름다운 기억을 가지고 있다. 명절 때마다 찾아가는 처가이었지만, 이제는 스스로가 물에 젖은 한 종이배가 된 듯하다고 여긴다. 고금(孤衾), 그러니까 화자 곁에 장인이 안 계시기에 장인과 함께 들던 이불을 이제는 홀로 덮는 이불에 밤을 보낸다. 평생 다정하시던 장인을 생각하며 못내 아쉬움을 안고 돌아오게 된 것이다. 장인과 사위의 옛 '내리사랑'이 이제는 오히려 사위가 그 장인을 못잊어 하며 장인과 집을 돌보는 그 '치사랑'으로 바뀐 현실에 처해 있음을 간곡히 노래한다. 그게 바로 시상이 머무는 곳이다. 화자는 그것을 고금대교에 빗대어 드러낸다. 고금대교(古今大橋)의 시작점인 고금도는 사실 완도군 소재이다. 그러나 강진 마량과 다리로 이어져 생활권은 강진에 더 가까운 곳이 되었다. 섬의 소속은 완도지만 완도를 버리고 사람들에 의해 마량과 강진에 새터를 마련한 것이다, 화자는 옛 고금도에서 정 많은 장인을 뵙던 시대를 떠나, 마량에서 고금도를 그리워하는 그 대리적 '치사랑'을 상징적으로 노래하게 된다.
가스통 바슐라르(G.Bachelard)는 그의 저서 『공기와 꿈』에서 구름, 바람, 나무 등에 대한 이미지에 대한 상상력은 그들의 움직임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더욱 선명해진다고 했다. 그때 내면의 울림도 함께 획득하게 됨을 말한 바 있다. 화자는 예전을 일깨운 장인의 사랑에 대해, 그 교호감(交互感)으로 또다른 형태의 추억을 갖는 게 바로 대리적 작용점일 터이다. 이 시에서 장인은 원래 고금도로부터 이어온 삶, 그러니까 바슐라르의 설명대로 다른 이미지의 형태로 나아가는 그 서정적 역동력을 작동시키고 있는 것이다.
마른 새벽 부시시 눈을 뜨지만
정적을 깨뜨리는 게 아니다
낯익은 커피 향이
서성대는 어둠을 문밖으로 밀어낸다
혼자만의 여유로운 시간에 흠뻑 젖어
할 일을 메모하고 묵상을 한다
소소한 일들이 잘 풀릴 것만 같다
희망은 반드시 찾아올 거라고
넌지시 귀띔을 하는 부푼 태양
식어버린 추억들은
수직으로 솟구치는 우듬지
삶의 레일을 탈선한 회전문이 멈추어 선다
하지만,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초바늘처럼 줄곧 움직여야 한다
쫓기는 일상에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게 있다면
바로 '지금'이다
-「골든타임」 전문
'골든타임'이란 한 생명이 마지막 위기에 처했을 때 구하고자 하는 절박한 시간을 대신하여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그런 '골든타임'을 노래하지는 않는다. 매사 일상적인 그는 마른 새벽부터 눈을 뜨자 곧 일을 시작한다. 그 시간에 정적을 깨뜨리는 건 없다. 여느 때처럼 익숙한 커피향이 풍기는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는 것이다. 그는 하루의 일과를 메모하고 성실한 자신을 세우기 위해 묵상한다. 그가 스스로에게 변함없이 약속하듯 오늘도 태양은 희망차게 솟아오른다. 이처럼 그의 일상은 수직으로 솟는 우듬지처럼 곧다. 순간, 삶의 레일을 탈선한 회전문이 멈추는 걸 상상해 보기도 한다. 그래서 쫓기는 일상에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정작 '지금'이란 소중하고도 막중한 시간임을 새삼 깨닫는다. '지금'의 이 시간을 어느 만큼 충실히 살고 있는가 하는 그 돌아봄, 그게 그만의 '골든타임'이란 것이다. 그러니, 사실 골든타임에 대한 가장 올바른 정의를 한 시라고 할 수 있겠다.
2.
다음으로 그의 직업과 관련한 시를 한 편 읽어 보기로 한다. 그는 공사장에서 일한다. 함에도 공사 감독도 현장 인부도 아님을 그가 천명하며, 자신의 직업적 소이연을 형상화해 밝히고 있다. 그 전개 방식이 시의 기승전결을 따르는 절차를 따르기에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효과도 있다.
그는 공사 감독도 아니고
현장을 뛰는 인부도 아니다
이리저리 떠도는 뭉게구름처럼
공사 현장을 떠도는 '공사 감리'다
작업 전 안전교육 사진이나 찍히는
솔리타리 맨(solitary-man)
인부들이나 신호수처럼
마냥 몸을 쓸 수도 없고
감독처럼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모니터링만 할 수도 없다
현장을 오가지만
몸은 얼어붙고 마음마저 식어버려
연어처럼 자꾸만 과거로 회귀한다
식사 시간만 기다리는 그는
앞 못 보는 장님처럼 이역만리를 본다
춥고 배고프고 졸리기만 한데
북두칠성은 눈에서 멀어지고
별똥별만 주위에 몰려든다
오늘도 서류 파일을 들고
작업 현장을 빙빙 거린다
생계형 보다는생활형 인간이기에 안도의 숨을 내쉰다
여기까지 힘껏 밀어준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소리쳐 보지만
닿지 못하는 곳까지
희망의 촉수를 세우는 게 버겁다
뭉게구름도 들이 댈 곳을 찾는다
-「뭉게구름의 실상 -감리의 세태」 전문
앞서 말한바 화자의 직업적 상황을 오롯 반영한 작품이다. 얼핏 겉으로 보면 그는 공사 감독이나 현장 인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보아하니 그렇지가 않다. 공사 현장을 돌아다니며 일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권면 또는 지적하여 미연의 사태를 예방하기 때문이다. 그건 '감리'라는 직업이다. 현장을 뜬구름과 같이 뭉쳐 몰려다니며 처리하고 해결하기에 그는 '뭉게구름'을 닮았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그의 일은 정작 뭉게구름처럼 돈이 마구 피어오르는 건 아니다. 실상은 고단하고 주도면밀하게 추진해야 할 뿐이다. 현장 인부들에게 안전수칙을 지키도록 교육하는 일, 그리고 합리적 진행 등의 중요한 업무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안전교육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는 솔리타리 맨(solitary-man)이기도 하다. 매사 현장을 오가며 시행하기에 '연어'처럼 회귀해 가는 게 그의 동선(動線)이라고 말한다. 춥고 배고프고 졸리기만 하여 지침을 삼는 '북두칠성'도 그 눈에서 자주 멀어질 만큼 고되다. 그만큼 퇴근도 늦다. 그는 서류 파일을 들고 현장을 주기적으로 돈다. 이 '감리'라는 게 '생계형'이라기 보다는 '생활형'이어서 다소 안도하기도 한다. 안전이 공사의 최우선이어서 닿지 않은 곳까지 버겁게 제 촉수처럼 세우는 것, 시종의 희망이자 조치할 일이다. 사뭇 시적이지 않은 기술자란 직업적 소재를 시로 형상화한 것이다. 그의 이런 시적 능변은 서서를 서정에 대입하는 시법으로 주요 특징을 이룬다.
3.
그의 시에는 희구하는 휴머니티가 내포된 작품이 상당하다. 그런 작품에서 다음 몇 편을 골라 읽는다. 시가 스스로 향유하는 인간적인 정서란 그가 견뎌온 생활의 품성에서 비롯되는 일이다. 작물에 '북'을 돋궈주는 농부의 마음에서 사람과 이웃을 살피는 휴머니티 정분을 드러낸 다음 작품을 우선 살펴본다.
얼마나 많은 그늘을 지나왔을까
아파트 청약하러 이리저리 몰려가는 사람들
떼 지어 나뒹구는 낙엽 같다
돈만을 찾아 쫓기는 삶이었지만
열정을 다 바쳐 햇살을 만들었지
지금은 중환자실의 환자들처럼
링거를 달고 마른 몸으로 이별을 준비한다
햇살은 그늘에서 뼈다귀로 남았지만
외로운 노후, 수족을 잘리는 아픔도 받아들여야 한다
겨울이 다가오니
그늘진 일들이 눈송이처럼 불어난다
겉옷을 벗은 나무뿌리에
두둑한 북*을 북돋아 주어야겠다
소슬바람이 불어온다
불알친구에게 걸려 온,
안부 전화 한통 포근한 햇살인 양 시린 마음이 녹는다
*북 : 식물의 뿌리를 싸고 있는 흙
-「북을 돋다 -퇴직 이후」 전문
이 시는 퇴직 이후 화자가 행하는 일상을 풍자적으로 노래한다. 시종여일 바쁜 삶 속에 살아왔듯 밝은 햇빛의 길보다는 음습한 그늘의 삶을 더 많이 지나도 왔다. 한때 주택을 마련하기 위해 아파트 청약에 기를 써서 몰려다니거나 돈만을 쫓는 삶을 살기도 했음에서다. 하지만 열정을 다한 최선의 삶이었을 것이다. 음울한 그늘에서 벗어나 밝은 햇살의 환경을 만들려고 애쓴 지난 날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노년, 중환자처럼 링거를 달고 비쩍 마른채 생의 이별을 준비하는 시기가 다가올 것이다. 외로운 노후에 이르는 아픔 또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구나 햇볕의 양이 적은 겨울이 다가오듯 생에 추위와 그늘은 밀려올 터이다. 겨울 채비로 정원사는 겉옷을 벗은 나목의 뿌리에게 '북'을 돋워주기에 바쁘다. 이때, 마침 옛 '불알 친구'로부터 만나자는 안부 전화가 온다. 문득 시린 마음을 덥혀 주듯 그의 각박한 삶에 햇살이 비쳐 지기도 한다.
이처럼 나무에 '북'을 주는 정원사처럼 또는 그 아래 햇빛처럼 다정하고도 따스한 휴머니티가 그의 시에 흐른다. 생의 그늘이라는 냉기류 속에서도 밝아지는 한 틈을 발견하고 그걸 인정의 구절로 옮겨오는 것이다.
어릴 적, 그이가 즐겨 신던 신발은
바닥이 늘 차가웠습니다
낡아져 볼품은 없을지언정
아버님 신발보다는 훨씬 좋습니다
큰딸 마냥 정이 새록새록 한
다 닳은 구두가 세월을 기웃거립니다
지나온 세월에 짝발이 되었는지
뒷축이 한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자기 기준을 맞추려는 새것보다는
마음을 헤아려 주는 애틋함일까요
몰래 버릴까 봐 신발장 안에 숨겨둔
빛바랜 구두를 사랑합니다
-「빛바랜 구두」 전문
세월이 지나면 육체는 물론 그에 수반되는 옷이나 구두도 어김없이 낡아간다. 닳아져 더 이상 신지 않은 구두는 신장 안 저 구석에 뻣뻣하게 굳어지며 빛 바랜 채 앉아 있다. 한때, 애지중지 살펴 길렀으나 이젠 다 자라 아빠의 미쁜 정이 고스란히 스민 그 큰딸처럼 구두를 들여다 보는 정 또한 새록새록 끼쳐온다. 화자의 구두는 짝발 탓인지 뒷축이 기울어 닳아있다. 언제쯤은 하마 식구들이 그가 모르게 버릴까 봐 신발장 안쪽 깊이 숨겨두기도 한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신발장 안에 고스란히 있음을 확인해 본다. 빛바랜 그 구두를 식구들 몰래 사랑할 수 있어 다행이라 여기는 것이다.
이 시는 남몰래 아끼는 물건에 대해 살피는 버릇을 감춰두고 스스로가 안도하는 심리가 잘 전해지는 작품이다. 구두라는 존재가 갖는 생태적 다행함이기도 하겠지만, 그 구두에 대한 애정과 화자의 안도감이 더 절실히 전해지기에 색다른 그 사람다운 온기를 느낄 수 있다.
물 밑을 허정거리는 달그림자
살이 차오르기 전
구름에 가려 빛도 못 본채 생을 마감했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의 마음
해 질 무렵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왔지만
현관 번호 키를 누르는 소리마저
'살려 달라' 울부짖는 환청으로 들렸다
차디찬 달빛에 물 머금은 객선은
잔별 눈동자에 실금 물결뿐
만월이 되지 못한 채 떠도는 영혼들이
어두운 팽목항에서 서성이고 있다
세월의 침묵마저 도용당한 저 아득한 곳
-「상현달」 전문
상현달로 상징되는 세월호에서 '살이 차오르기 전 구름에 가려 빛도 못 본채 생을 마감'한 젊은 영혼들을 다시 소환해 낸 시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는 '해 질 무렵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왔지만' 순간 '번호키 앞 소리에서 환청'으로 아이의 소리를 듣고 절망한다
정치적으로 거듭되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진실에 다가가 이어져가기를 소망한다. 그건 살아있는 자들의 하소연이기도 하겠지만 진실은 민주주의의 국가가 마지막으로 지탱할 기둥이다. 가버린 세월로 그 '침묵마저 도용당한 아득한 곳'이 지금도 용암처럼 끓어 우리를 흔들고 있다.
현상학적 문학을 체계화한 폴란드의 비평가 로만·인가르텐(Roman Ingarden)은, 한 편의 시는 '화자가 지나온 이력'을 지니는데 여기에는 '성층'의 체계를 가진다고 설명한 바 있다. 즉 그건 (1)'소리의 성층(成層)', (2)'의미의 성층' (3)'양층의 중첩적 성층'으로 이미지 층위를 설정함이 그것이었다. 이 같은 과정 즉 인가르덴의 성층에 이 시의 이미지들을 대입해 보면,
(1) 소리 성층 : 〈집 현관의 번호키 소리, '살려달라' 울부짖는 환청〉으로
(2) 의미 성층 : 〈만월이 되지 못한 채 떠도는, 팽목항에서 서성이는 영혼〉으로 나타나고,
(3) 양층(중첩) 성층 : 〈세월의 침묵마저 도용당한 아득한 곳〉로 각각 연몌(連袂)를 지을 수 있겠다.
따라서 이 시는 신심리주의 시학임을 기대어 볼 만하다. 우리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를 통해 질곡의 사연과 연민을 통과하며 시대와 역사의 험난한 길목을 지나왔다. 자칫 잊어버리고 마는 진실을 기억하기 위해 고난과 고통의 층을 무수히도 쌓아왔다. 이 시는 그것을 묵묵한 성층으로 대변해 주고 있다.
4.
시가 성립되는 지점은 상식적인 소재를 저절로 엮어가는 절차, 그리고 늘 바라볼 수 있는 성격의 그 내용에 있지 않다. 이와 구별되듯, 유해상의 시의 수직에는 서정의 미학이 우듬지의 나목으로 향해 있음을 보인다. 그리고 더불어 추구하는 수평선 멀리에는 휴머니티의 배가 보인다. 전개하는 바 서정성이 그 시의 향발이라면, 휴머니즘은 목적지로 가는 시인의 이상향으로도 읽힌다.
시집 출간을 축하하며, 부디 시의 간절함과 간구를 위해 늘 깨어있는 시인이기를 희망한다.
목차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사랑보다는 관심이야
눈썹달
곤포 사일리지
고금대교
교대 근무자
노숙자
갯가를 들추다
사랑보다는 관심이야
뒷전으로 밀린 가이아
러닝 머신
노모의 바램
가슴 쓸어내린 생채기
각개 전투
그리운 사람 냄새
고귀한 선물
제2부 그리움 한 포기
고독한 영혼
그루잠에 취하다
그리움 한 포기
끼
낙엽
낯선 살풀이
골든타임
낯선 설렘
능숙한 피날레finale
다가선 일상
대가 없는 고통
동녘의 희망
땔거리 하러 가다
때 늦은 후회
제3부 마음을 닦다
마실 나온 갯장어
마음을 닦다
막내의 멘토
망각된 숫자
모정의 인습
목마른 사슴
뭉게구름의 실상
뭉개진 세월
밀당의 달인
바람에 관하여
변해야 합니다
북을 돋다
비누
빛바랜 구두
제4부 세월과 옹알이하다
뻘밭에서 희망을 캐다
상처를 깁다
상현달
서툰 미소
서툰 일상
성숙된 아픔
선불이 된 하회탈
세월과 옹알이하다
세월의 체취
소박한 바램
쇠잔해진 아날로그
스치는 일상
슬거운 친구들
제5부 우듬지에 매단 둥지
아카시아
어머니의 손맛
어머니의 체취
어머니의 품
어버이 날에
엇박자 시즌
외길 인생
외도外島
외로움의 체취
외투를 벗다
우듬지에 매단 둥지
이지러진 하현달
장모님의 사랑
제6부 황혼을 엿듣다
잿빛 하늘
첫 세상 구경
전복全鰒
타워크레인의 사투
황혼을 엿듣다
회전문
10.29 영혼
| 발문 |
서정 미학과 휴머니티 시학의 랑데뷰 / 노창수
제1부 사랑보다는 관심이야
눈썹달
곤포 사일리지
고금대교
교대 근무자
노숙자
갯가를 들추다
사랑보다는 관심이야
뒷전으로 밀린 가이아
러닝 머신
노모의 바램
가슴 쓸어내린 생채기
각개 전투
그리운 사람 냄새
고귀한 선물
제2부 그리움 한 포기
고독한 영혼
그루잠에 취하다
그리움 한 포기
끼
낙엽
낯선 살풀이
골든타임
낯선 설렘
능숙한 피날레finale
다가선 일상
대가 없는 고통
동녘의 희망
땔거리 하러 가다
때 늦은 후회
제3부 마음을 닦다
마실 나온 갯장어
마음을 닦다
막내의 멘토
망각된 숫자
모정의 인습
목마른 사슴
뭉게구름의 실상
뭉개진 세월
밀당의 달인
바람에 관하여
변해야 합니다
북을 돋다
비누
빛바랜 구두
제4부 세월과 옹알이하다
뻘밭에서 희망을 캐다
상처를 깁다
상현달
서툰 미소
서툰 일상
성숙된 아픔
선불이 된 하회탈
세월과 옹알이하다
세월의 체취
소박한 바램
쇠잔해진 아날로그
스치는 일상
슬거운 친구들
제5부 우듬지에 매단 둥지
아카시아
어머니의 손맛
어머니의 체취
어머니의 품
어버이 날에
엇박자 시즌
외길 인생
외도外島
외로움의 체취
외투를 벗다
우듬지에 매단 둥지
이지러진 하현달
장모님의 사랑
제6부 황혼을 엿듣다
잿빛 하늘
첫 세상 구경
전복全鰒
타워크레인의 사투
황혼을 엿듣다
회전문
10.29 영혼
| 발문 |
서정 미학과 휴머니티 시학의 랑데뷰 / 노창수
저자
저자
유해상
ㆍ전북 고창 출생
ㆍ조선대학교 전기공학과 졸업
ㆍ2016년 《한맥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ㆍ사)한국문인협회 회원
ㆍ사)서은 문병란 문학연구소 이사
ㆍ전)광주문협 이사
ㆍ현)금강엔지니어링(주) 이사
ㆍ조선대학교 전기공학과 졸업
ㆍ2016년 《한맥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ㆍ사)한국문인협회 회원
ㆍ사)서은 문병란 문학연구소 이사
ㆍ전)광주문협 이사
ㆍ현)금강엔지니어링(주)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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