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아니 계셨더라면
박명수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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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해설】
가난과 외로움의 삶, 그 자전적 고백과 감사의 노래
- 위로와 평안의 따뜻한 이름, '당신'에게
조기호(시인, 아동문학가)
박명수 시인은 언제나 온화한 미소와 겸손한 태도로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자상하여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평생을 교육자로, 그리고 신앙인으로 살아옴으로써 그가 지닌 너그럽고 온화한 성품은 언제 어느 곳에서든지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맑고 따뜻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는 '사랑'이어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을 인용하여본다면 이미 그러한 그의 자질(?)은 장차 그가 '시인'으로서 살아가야 할 그의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박 시인은 이미 10년 전에 문학지 『대한문학세계(2016. 겨울호)』에 '첫눈'이라는 시로 '신인문학상'을 통하여 등단하였으며, 지금까지 한국문인협회 목포지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끊임없는 창작활동으로 문단의 많은 분들이 주목하고 있는 시인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박 시인이 몇 년 전부터(몇 번의 귀띔이 있었음) 그동안의 세월을 홀로 남모르게 써왔던 시들을 모아 소박하게나마 한 권의 시집을 내고자 한다며 그렇게 벼르던 원고 뭉치를 마침내 내미는 것이었다.
'삶이 힘들어서 시에 기대어 살아왔습니다./ 힘들면 시 한 편 읽고 위로받고/ 또 힘들면 시 한 편씩 쓰며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시와 함께 살아온 것이 내 삶이 되었습니다.// 무슨 특별한 시 쓰기 기술도 없고/ 다른 시인들에 비해서 한없이 부족하지만/ 쉬운 말로 쉽게 내 삶을 적어오다 보니/ 여기까지 왔고/ (중략) / 이 세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 내 시를 읽고 위로받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 더 바래지 않겠습니다.'('시인의 말'에서) 무엇보다도 시를 대하는 박 시인의 겸허하고 공손한 태도가 참으로 존경스러웠고, 고마웠고 그래선지 더불어 나도 즐겁고 기뻤다. 그러나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고뇌苦惱의 시詩들을 감히 내가 나서서 언급한다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망설이고 사양하였으나 시가 고통의 산물이 아니라 위로의 향기가 되기를 바라는 박 시인의 멋진 행보行步에 격려의 박수를 더 한다는 뜻으로 결국 박명수 시인의 첫 시집 『당신이 아니 계셨더라면』을 먼저 읽게 되었다는 점을 밝혀둔다.
1. 따뜻했고 다정했던, 그러나 외로웠던 가난의 꿈
시는 다만 멋지고 아름다운 감성이나, 혹은 고결한 비유나 상징으로서가 아닌 삶의 고단한 체험으로 존재하는 어떤 것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시인이 걸어온 생生의 모든 여정 속에 존재하는 각각의 체험과 우여곡절들이 때로는 시詩의 소중한 잎이 되고 가지가 되고 뿌리가 되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인의 삶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중학교 가려는 사람은 부모님께 여쭤보고 오너라."
"너도 손이나 한번 들어봐라 형편은 안 된다마는."
참깨 씨가 잘 안 나면 고민하셨죠
"아이고 뭇으로 우리 아덜 월사금 내까이."
삶을 눈물로 사시면서도 늘 꽃을 가까이하신 어머니
"장미가 빨게이 이뿌등만 금방 지는구나!"
지금도 밤이면 날마다
93세 어머니와 도란 도란 옛이야기 나누는
나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 「어머니」 전문
해마다 뻐꾸기 울 때면
생각납니다
그 옛날 산 밭에서 홀로 밭매시던
나의 어머니
사방은 온통
뻐꾸기 소리뿐인데
흰 수건에 무명저고리
푸른 보리밭 이랑에 눈물을 그렁그렁 흘리시던
그리운 나의 어머니
- 「뻐꾸기」 전문
끝내 유년의 기억 속에 떠오르는 어머니는 '산 밭에서 홀로 밭을 매시며 날마다 그렁그렁 눈물을 흘리시는 분'이었으며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처량한 목소리로 울어대는 '뻐꾸기'였음을 시인은 기억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런 '궁핍'이 슬프지 않은 것은 '중학교 가려는 사람은 부모님께 여쭤보고 오너라'라는 선생님의 말에 '너도 손이나 한번 들어봐라 형편은 안 된다마는'이라고 아픈 가슴을 쓸어안는 어머니의 자식 사랑에 있다. 어둡고 춥고 막막했을 시인의 어린 가슴에 어머니의 서글픈 그 한마디는 낙망이 아닌, 아픔이 아닌, 맑고 따뜻한 어미의 피 같은 사랑 하나가 단단히 못처럼 박혔을 것이다, 그러나 문장의 행간에서 외로운 독백처럼 여겨지는 또 다른 시들을 읽으면서 시인의 녹록하지 않았을 삶의 여정이 서서히 궁금하기도 하였다.
모든 은행대출길이 막히고
모든 사람에게서도 막히고
사방간데서 빛쟁이들은 날마다 돈 주라고 독촉하고
아 사는 것이 아니구나
눈앞이 캄캄했고
나는 그만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벌건 대낮에 나는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똑똑하다고 하는 인간도 눈 뜨고 길을 잃는 것이구나
사는 것이 고통이었습니다.
살다보면 눈앞이 캄캄할 때가 있습니다.
고통이 너무 커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아직도 가끔씩 길을 잃고 삽니다.
- 「가끔씩 길을 잃었습니다」 전문
사람들은 누구나 고난과 시련을 마주할 때면 그 황망함에 대하여 분노하고 자책하며 어떻게든 현실을 부정하고자 한다. 그러나 시인은 세속의 온갖 시달림과 고통스런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살다보면 눈앞이 캄캄할 때가 있습니다./ 아직도 가끔씩 길을 잃고 삽니다.'라고 지나간 일에 대한 회한을 굳이 회상하듯 씁쓸하게 웃는 것이다. 이것은 고난의 현실에 대해 지나치게 연연하는 태도가 아니라, 도리어 스스로를 객관적 관점에서 바라다보려는 긍정적 자세를 엿볼 수 있는데 그것은 '사랑의 언덕에 기대어 한세월 살고 싶었지만 늘 고독뿐이었다네(「풍경」에서)'라고 자신의 처지를 풍경에 비유한 그의 시에서 잘 드러난다.
그러나 그렇다 하여도 여전히 외로운 삶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어떻게 지워낼 수 있겠는가. 시인은 파란만장波瀾萬丈이라 여겨온 자신의 삶에 대하여 '어찌 특별한 사람의 삶만/ 파란만장하다 하겠는가'라는 각성(?)을 통하여 세상의 모든 삶 또한 나와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한다.
삶으로 어찌 눈물 흘리지 않는 자 있으랴
넘지 못할 산을 넘고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금방이라도 휩쓸려 버릴 것만 같이 위태로운
험한 파도를 넘고 넘어가는 인생
어찌 특별한 사람의 삶만
파란만장하다 하겠는가
- 「파란만장」 전문
산다는 것은 끊임없는 '넘어짐'과 다시 '일어섬'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그의 시 「매화 그늘에 앉아서」는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로 충만하다. 실의와 낙망과 좌절의 시간 속에서 아무에게도 위로를 받을 수 없었던 삶 위에 아침의 빛과 함께 매화의 향기가 맑은 꿈을 다시 일으킨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는 일이었으므로.
깊디 깊은 겨울잠 자는 것처럼
마음의 병이 깊어 누워있었죠
인간의 백팔번뇌를 어찌말로 다할까요
사람들은 나를 찾아와 위로의 말 건넸었죠
괜찮아 아무일 아니야 다시금 시작해봐
그러나 인간의 그 어떤 말도 나를 위로 못했어요
그런데 어디선가 환한 빛 밝아옵니다
해일처럼 밀려온 봄이 나를 손수 깨웠어요
그윽한 매화향기에 스르르 눈 떴어요
이렇게 꽃그늘에 앉아 쉬고 있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눈부시고 화사한 매화 덕분에
나는 다시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 「매화 그늘에 앉아서」 전문
시인은 '하나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바람처럼 살라한다/ 세상 모든 건 다 지나가니까(「바람재 삼거리」에서)'라는 두 줄의 시로 삶을 다독이며 산을 오른다. 그리고는 세상 속에 내려다보이는 삶을 '욕심내지 말고 하루만 살자고, 저녁 무렵이 아직도 남았다고' 드넓고 넉넉한 품으로 끌어안는 것이다,
욕심내지 말고 딱 하루씩만 살라한다
하루재를 오르면 꼭 땀이 난다
몸이 더워지고 마음이 더워진다
무기력한 몸은 역동적으로 변한다
산등성이 올라서면 서해 바다위로 붉은 석양 보인다
아 장엄하구나 참으로 눈부시구나
그렇게 붉게 그렇게 아름답게
저녁 무렵이 아직 남아있다고 말해주는 것같다
- 「승달산 하루재」 전문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꿈꿀 수 있다면 축복이다. 그것이 희망이 아니어도 좋다. 다시 몸을 일으켜 무엇을 꿈꿀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일 것이다. 시인은 그의 시 「다 지나고 나면」을 통하여 시련과 좌절에 대한 긍정적인 의미를 즐겁고 여유로운 상상으로 이미지화하고 있다. 인생을 되돌아보면 지나간 세월의 괴로운 날들도 아픔도 서러움도 다 지나가는 것이 삶의 이치가 아닐까. 또한 슬픔은 다만 사람을 불행하게 만 드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아름답게 이끄는 힘(?)이 될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 시인의 독백을 통하여 우리는 삶에 대한 긍정적 성찰과 새로운 인식으로 세상과 마주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다 지나고 나면 물끄러미 먼 하늘 바라보리라
그렇게 힘들었는데 그렇게 괴로웠는데
다 지나갔구나
아픔도 서러움도 다 지나갔구나
그래도 아름다웠다고 회상하리라
술 한잔 마시다가 물끄러미 먼 하늘 바라보는데
그때 문득 흰 눈이 펑펑 내리리라
- 「다 지나고 나면」 전문
2. 실의와 좌절의 상처를 다독이는 긍정의 노래
홀로 세상에 벼려져 내 눈에 다른 아무런 빛도 보이지 않을 때, 울면서 나 하나만을 보듬고 뒹굴어야 할 때, 그때가 지옥일 것이다. 시인은 인간관계의 갈등과 반복된 상처로부터 벗어나려고 발버둥하지만, 끝내 삶의 모순과 맞대응할 수 없는 그는 울면서 산에 오르는 것이다, 아니 울기 위해서 산에 오르는지도 모른다. 그 누구도 탓하지 않고, 그 누구에게도 짐 지우지 않으며 스스로 삶의 고통을 끌어안는 것이 결국 세상의 슬픈 모순(갈등과 상처의 삶)으로 부터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아픈 상처에 대한 용서를 통하여 긍정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찌 삶으로 울지 않은 사람 있으랴
삶의 아픔 여울지거든 산으로 가라
말 못할 사연 있거든 산으로 가라
산에 가서 나는 울었네
내 무거운 근심 내려놓고
나는 울었네
- 「산에 가서 나는 울었네」 전문
박 시인은 그동안 실의에 빠져서 스스로를 아프게 자책했던 태도를 거두고 불행이라 여겼던 모든 슬픔을 보듬으며 이제는 자신을 위로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이란 '어찌 삶으로 울지 않은 사람이 있을' 거냐며 '삶의 아픔 여울지거든', ' 말 못할 사연 있거든' 산으로 가서 마음껏 울어버리라고, 그 속마음 다 털어버리라고 노래하고 있다. 즉, 아픔이 있을지라도 굳은 마음으로 흔들리지 말고 다시 일어나 새로운 길을 걷기를 조용히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무릇, 감사란 가난한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 가질 것 다 가지고 누릴 것 다 누리는 사람에게 감사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나의 가난함과 나의 부족함과 그리고 누릴 것 없음을 기뻐하여야 한다.
아직도 내꿈은
초등학생처럼 피아노 책 담긴 가방을 들고
촐래촐래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것이다
- 「아직도 내 꿈은」 전문
삶의 아픔 위로
쇼팽의 피아노 선율이 흐른다
그렇게 순수할 수 있을까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그 순간만큼은 그 음악에 기대어
잠시 아픔도 괴로움도 내려놓는다
선율이 너무 아름다워 비판받았다는 그 곡
새벽에 가끔씩 깨어 뒤척이고 잠 못이룰 때
쇼팽의 녹턴 1번은 위로의 불빛
- 「한밤중의 쇼팽 녹턴 1번」 전문
박 시인은 매우 감성적인 사람이다. 특히 음악(음악대학원교육학과)을 전공한 까닭으로 피아노 연주에도 뛰어난 실력이 있어서 아마 그런 감성의 모든 능력들이 시인으로서의 자질을 충분히 지니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그는 지금도 '피아노 책 담긴 가방을 들고/ 촐래촐래/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꿈을 꾸기도 하는데 그것은 그가 늘 유년의 맑은 꿈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고자 하였던 것은 아닐까. 아무튼 그는 '쇼팽의 녹턴 1번'으로 마음을 비우며 '삶'이란 아픔과 실의에 매여있는 지난날로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어제를 조용히 놓아 주는 일이라는 것을 상기하는 것이다. 삶이란 한때의 순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서 이루어야 하는 일이거나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한 번의 또는 한때의 슬픔으로 허망하게 무너져서는 안된다는 삶에 대한 깨달음을 아래의 「내 인생에 황혼이 오면」이라는 시로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산모롱이를 돌아들어 살짝 가려진 곳에
스위스 오스트리아풍의 작은 집을 짓고 살았으면 좋겠네
사계절 꽃을 심어 봄이면 매화, 목련, 벚꽃이 피고
6월에는 수국, 도라지, 접시꽃이 피고 가을엔 구절초와 국화향이 은은하게
피어나고 겨울에는 뒷산에 흰눈이 내리는 곳이면 좋겠네
아침이면 일어나 꽃밭을 둘러본 뒤 무심히 산책하고
저녁무렵이면 쇼팽의 이별의 노래를 연주하면 좋겠네
- 중략-
세월이 흐르고 또 흐르다보면 그 많은 번뇌도 좀 내려놔지겠지
밤이면 창가에서 시를 읽고 어두워진 산의 실루엣도 바라보고
별이 뜨는 밤이면 밤하늘을 오래 올려다보겠네
겨울에는 벽난로를 피워 옛 생각을 하며 고구마를 구워 먹으면 좋겠네
그렇게 살다보면 어느새 황혼도 깊어가고
솔숲을 흔들던 바람이 산을 넘어가면 나도 그때는 고요해지려나
- 「내 인생에 황혼이 오면」 일부
돌이켜보면 지난 세월, 황량한 벌판에서, 가파른 벼랑에서, 또는 깊은 낭떠러지에서 외로움으로 떨어야 했던 그의 고충이 그럼에도 부질없는 한탄과 푸념으로 시들지 않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즉 잃어버린 기쁨의 새날을 다시 기다리는 시인의 갈망이 은근한 다짐으로 서서히 다져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아니 자신의 삶을 응대하는 방식이 매우 긍정적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황량한 폐허의 땅에서 새 생명의 싹들이 생기를 띄며 돋아나는 봄의 기운처럼 그의 사색과 통찰이 푸르러 지고 있다는 증표일 것이다.
달랠 길 없는 가슴을 위로한 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날마다 날마다 가만 가만 나를 위로해준 건
시였습니다
시가 아니었더라면
내 아픈 가슴 어디서 위로받았을까
- 「시」 전문
정작, 상처 깊은 가슴을 위로하는 건 사람이 아니었다. 박 시인에게 고난을 피하여 달아나려 했던 과거의 기억을 털어버리고 불어오는 어떤 시련과도 새로운 마음으로 단호하게 맞을 각오를 선언하게 한 것은 바로 '시詩'였다. 마음이 따라주지 못하였던, 그래서 늘 부족하였고 채울 수 없었고 안타깝고 힘들었던 고통의 상처들을 보듬어주고 위로해 준 것은 다른 그 무엇이 아닌 몇 줄의 글들, 아니 통절한 눈물로 얼룩진 '시詩',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과감하게 모순과 마주하는 일, 비굴하게 도망치지 않는 일, 넘어지고 또 넘어지는 일, 끝까지 달려가는 일, 그리고 매사에 감사하며 긍정으로 살아가는 일…, 그 모두가 한동안 실의와 좌절 속에 빠져있던 시인의 쓸쓸한 가슴에 서서히 파릇한 새 아침의 빛으로 돋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3. 외로움을 껴안는 신앙적 깨우침과 열망의 시
누군가 내 편이 되어주는 한 사람이 내 곁에 있다면 세상은 살아갈 만할 것이다. 사람들의 상처란 한 마디의 위로와 위안으로도 치유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게 단 한 사람의 위로자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시인에게는 외롭고 망막한 시간들과 마주칠 때마다 홀로 길을 물어야 했던 산이 있었고, 보이지 않는 그 산 너머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을 그의 '당신'들이 있었을 것이다.
외로워 마라
가까이 있지 않아도 함께 있는 것이다.
조금 멀리 있어도 마음만 있으면
함께 있는 것이다.
진짜 외로움은 아무것도 없는 것
나무가 있고 꽃이 있고
나의 지인들이 있지 않은가
가까이 있지 않아도 함께 있는 것
외로워 마라
- 「외로워 마라」 전문
그렇지만 끝내 아무런 대답이 없는 내 마음의 뒤안길에서 시인은 생각하는 것이다. '몸이 아프고/ 잠 못 이루고/ 그토록 불안했던 것'은 '가을이 오려고, 그리고 아름다운 억새를 보려는' 것이었다는 그의 고백에는 사람들이 지닌 '외로움'이라는 것들이 어쩌면 하나의 '욕심'으로부터 생겨난 일종의 허물이 아니었는지를. 그리고는 이내 '힘든 날을 지나 이렇게 꽃을 피웠다'는 자신에 대한 성찰을 통하여, 산다는 것이란 부요하게 채우는 것이 아니라 넉넉하게 존재한다는 의미를 깨닫는 것이다.
그토록 몸이 아프고
그토록 잠못 이루고
그토록 불안했는데
가을이 오려고 그랬나보다
오늘 이 아름다운 가을 억새를 보려고 그랬나보다
바람에 출렁이는 은빛 억새 물결 아름답구나
나도 힘든 날을 지나 이렇게 꽃피웠다고 그러는 것 같다
- 「가을 억새」 전문
그런 시인의 마음에 이제와 서서히 불타오르는 것이 생겨난 듯하다. 그동안의 고난과 외로움 속에 흔들리고 침체 되었던 그의 시적 열망들이 혹독했던 계절을 이겨내고 솟아오르는 것이다. 아니, 그의 눈빛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칼날보다 더 예리한 감성으로/ 슬픔이 많았고 고독이 깊었던 사람' 바로 불멸의 삶을 살다간 베토벤의 그것처럼 뜨겁고 강렬하다.
영혼을 온통 어둠속으로 던져버린 한 가난한 사나이
익숙한 옷차림처럼 언제나 그의 뒤를 따르던 비운과 청력상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칼날보다 더 예리한 감성으로
오직 음악의 길만 달려간 사람
-중략-
촛불과 같이 흔들리는 위태로운 순간마다
삶의 배반에 무릎 꿇지 않을 수 있는 강건한 힘을 준 것은
오로지 음악이었으니
오랜 세월의 초인적 분투와 용기로
불멸을 향한 불안한 외줄타기를 끝냈을 때
한 세계를 지배한 영웅으로 거듭난 사람
그 이름 루드비히 반 베토벤
- 「불멸을 향해 걸어간 사람」 전문
그런 박 시인의 시에 대한 의지는 간단명료하다. 다른 더 이상의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 단호함을 보여준다 '슬픔으로/ 고독으로/ 번민과 괴로움으로/ 실패로 얼룩진 몸으로' 그렇게 온몸으로 느끼며 부딪히는 모든 아픔들을 함께 끌어안고 뒹구는 그런 인내와 몸부림을 익힐 수 있기를 스스로에게 권하는 시인의 단단한 시작詩作 태도가 엿보이는 대목은 다음의 시詩에 나타난다.
사랑의 슬픔을 모르고
어찌 시인일 수 있으랴
고독을 모르고
어찌 시인일 수 있으랴
번민의 괴로움을 모르고서
어찌 시인일 수 있으랴
실패로 얼룩진 몸은 인생의 눈밭에 퍽퍽 쓰러졌지만
모두가 내 인생이었고 시인의 길이었었지
- 「시인의 길」 전문
시인이란 '자신을 스스로 알리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서 알려지는 사람이다. 결코 자기를 선전하는 자가 아니라 아름다운 꽃처럼 누군가에 의해서 발견되는 자(오세영 시인)'라고 하였다. 시인 또한 자신의 시에 대해 날마다 두려움으로 고심하지만 그럼에도 따스하게 찾아오는 봄처럼 피어나기를 기대하곤 한다. '어떤 어려움도 끝이 있다는 것/ 겨울이 깊으면 봄이 온다는 것/ 사람의 말로는 치유되지 않는 것을/ 봄은 일시에 회복하는 능력이 있'기를 바라는 소박한 마음이 간절한 것이다. 그러므로 날마다 끊임없이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의 노력을 통하여 진정한 시詩를 쓰고 싶은 것이 그의 마음일 것이다.
아 이 놀라운 생명의 꿈틀거림!
봄이 오고 있습니다
희망이 오고 있습니다
아직은 추운데 매화는 벌써 알고 있습니다
봄이 온다는 것을 봄을 알려야한다는 것을
어떤 어려움도 끝이 있다는 것
겨울이 깊으면 봄이 온다는 것
사람의 말로는 치유되지 않는 것을
봄은 일시에 회복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 「곧 매화가 피려 하고 있습니다」 전문
열망이 다시 생겼다는 것은 상처 회복의 증표다. 시인은 그동안의 아픔들을 모아 그렇게 밤을 지새우며 삶의 고뇌와 번민으로 얼마나 괴로웠을 것인가, 거기에는 남모르는 참회와 용서와 기도가 있었을 것이며, 그러므로 그의 시詩는 놀라운 신앙의 열매로써 하늘에 감사드리는 찬양의 노래이기도 할 것이다. 사랑과 감사, 그리고 회개와 용서를 통한 구원救援의 의미가 시편 곳곳에 드런난 까닭이기도 하다, 어쨌든 지난날의 슬픔을 떨쳐내고 새로운 마음으로 열정적인 희망의 삶을 가꾸어가는데 그의 시詩들이 큰 몫을 했다는 점이 감사할 따름인 것이다.
불안과 고통의 날들은 끝이 났다
절망의 말들도 끝이 났다
홧병 나 미쳐버릴것만 같던 날
가슴이 터져버릴것만 같은 울화통도 끝이 났다
오 놀라운 구세주 나의 하나님 여호와
그 이름이 나를 살렸네
오 놀라운 기적이여
주님의 놀라운 능력을 찬양합니다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찬양합니다
- 「긴 터널에서 빠져나온 날」 전문
아프지 않은 삶은 없다. 꽃도 다 아프게 피어나고, 봄도 사납고 추운 겨울을 견디고서 찾아오는 것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내 꿈과 내 바람과 내 사랑이 모조리 실종되어버린 그때, 시인의 삶이란 어떠했겠는가, 그저 하루하루의 고통 속에서 쓰러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다만 아프지 않기만을 기도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시詩는
그를 구원한 생명과도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과거를 떨쳐내며 이제 겸허한 마음으로 산과 강을 바라보는 그의 태도는 새로운 꿈과 행복에 대한 무한한 긍정의 예언豫言인 것이다. 따라서 '지금 이대로도 괜찮습니다'는 표현이야말로. 어떠한 고난에도 오롯이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삶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다는 자기 삶에 대한 경건한 선언이기도 한 것이다.
조금 외롭기도 하고
조금 우울하기도 하지만
조금 부족한 것이 좋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내게 있는 것에 감사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이룬 것에 감사하겠습니다.
날마다 섬진강물 흐르고
날마다 무등산 푸르니
조금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이미 다 가졌으면서
불평하지 않게 하소서
- 「지금 이대로도 괜찮습니다」 전문
4. 시련 속에 얻은 따뜻한 평안의 이름, '당신'에게
시련이란 끊임없이 삶을 흔들고 괴롭히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 삶을 단련시키는 힘이었을지도 모른다. 거칠고 험난한 격랑을 헤쳐온 사람들이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까닭이 또한 그러할진대 그러므로 우리는 시련을 당할 때 도리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도 모를 일인 것이다.
박 시인의 '봄'에 대한 사색은 수없이 많은 갈래 속에서 피어나기도 하고 저물기도 한다. 한때는 꿈이었다가 어느 때는 탄식이 되기도 하였지만 이제는 '연두빛 새잎'과 '가슴까지 차오르는 초록의 봄'을 고요한 침묵으로 직시하는 것이다. '이미 아는 것들은 다 알고 고요히 침묵합니다/ 나무는 고요하고 숲은 말이 없습니다/꽃잎 뒤에 숨어 자라는 작은 열매는 희망으로 가득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시인의 마음에는 내 안에 간절한 그리움이 있다면 어떠한 역경 속일지라도 정녕 바라던 봄이 온다는 것을, 그리고 봄을 맞기 위해서는 반드시 겨울을 통과하여야 한다는 세상의 아름다운 순리를 그의 시詩 '봄날'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떠나는 꽃을 보지 못하고 잠이 듭니다
꽃잎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봄이 간 것 아닙니다
사람들의 허전한 가슴 달래려고 연둣빛 새잎이 나옵니다
눈빛을 멀리 보내 초록이 물드는 봄을 바라봅니다
거침없이 달려오는 초록을 안고
나도 그만 초록으로 물들어버립니다
가슴까지 차오르는 봄물을 어찌할까요
이미 아는 것들은 다 알고 고요히 침묵합니다
나무는 고요하고 숲은 말이 없습니다
꽃잎 뒤에 숨어 자라는 작은 열매는 희망으로 가득합니다
봄에는 한순간도 축제 아닌 날이 없습니다
순수한 영혼만이 황홀한 봄의 순간 속에 있습니다
- 「봄날」 전문
세상에는 시련이나 역경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닌지 모른다. 아니 세상 사람 누구에게나 주어져서 그것이 아픔(시련과 역경)이나 슬픔이 아니라 극복하여야 하는 삶의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그 고통을 스스로 감당하며 이겨낼 힘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시련이나 역경이라고 여기는 그 일들을 통하여 참되고 굳건한 삶을 실천해 나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어야 한다는 시인의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적 순명順命의 태도가 굳건해 보인다. 나아가 '지금 내 인생을 이해할 수 없다/ 그래도 절망하지 말자/ 어떠한 고난이 와도 결코 낙심하지 말자/ 하나님께서 더 좋은 계획을 갖고 계신다고 믿고 나가기' 위하여', '내 인생을 더욱 사랑해야' 한다는 솔직하고 담백한 소망, 또한 얼마나 인간적인가,
물소리 새소리에 내 나머지 삶을 맡기려 했다
무릉도원의 달빛과 별빛에 내 남은 인생을 맡기려 했다
적막과 고요 속에서 살고 싶었다
여기서 평생 꽃과 텃밭 가꾸며 시 쓰고 작곡하려 했다
여기서 내 인생의 황혼을 보내려 했다
-중략-
지금 내 인생을 이해할 수 없다
그래도 절망하지 말자
어떠한 고난이 와도 결코 낙심하지 말자
하나님께서 더 좋은 계획을 갖고 계신다고 믿고 나가자
고통도 죽음까지도 내 인생인 것을
어떤 운명이 몰아쳐 와도 겁내지 말고
의연히 뚜벅뚜벅 걸어 나가자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내 인생을 더욱 사랑해야지
- 「아모르파티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 부분
삶의 기쁨이란, 아니 우리가 오늘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란 어쩌면 '위로와 평안'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감사함'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깜깜하게 암흑으로 덮힌 터널 속에서 밖을 향해 달려가는 문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 찬란한 햇살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햇살(위로와 평안)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것은 '당신의 사랑이 나를 지킵니다/ 당신의 따뜻한 마음이 나를 살게 합니다' 라는 고백과 더불어 '나무가 하늘 보며 천년을 살아가듯이/ 우리도 천년을 향해/ 살아가자'는 심중의 고백으로 드러난다. 즉,그 '위로와 평안'은 어느 하나의 빛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나약한 일상을 강건하게 버텨올 수 있도록 끊임없이 나를 단련시켰던 지난날의 '아픈 시련과 상처'가 그것이었을 것이고, 삶의 허허로운 벌판에서 넘어지고 지쳐 쓰러졌을 때 죄를 용서하시고 사랑으로 보살펴주신 '내 영혼의 하나님'이셨으며, 그리고 오직 나 하나의 사람으로서 영원토록 함께할 사랑하는 아내(김현정 여사)'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모두가 '당신'라는 이름으로 감사드릴 '그대'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대 있어 천년을 산다고 고백하지 못할지라도
지금은 오직 그대 사랑으로 삽니다
눈물 나게 감사합니다
아무리 험한 눈보라 몰아쳐 와도
당신과 함께라면 다 견딜 수 있습니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오고
겨울이 깊으면 봄이 오듯이
언젠가는 좋은 날 올 것입니다
당신이 끓여주는 된장국이 나를 살립니다
속이 불편하거나 안정이 안 될 때 된장국을 먹으면
다시 내 속은 평안 해집니다
당신의 사랑이 나를 지킵니다
당신의 따뜻한 마음이 나를 살게 합니다
늘 내 곁에서 도란도란 대화 나누고
내가 힘들 때 나를 위로해줍니다
나무가 하늘 보며 천년을 살아가듯이
우리도 천년을 향해
살아갑시다
- 「그대 있어」 전문
마침내 시인은 설레는 마음으로 또 하나의 출발을 위해서 그동안에 간직하고 있었던 꿈을 펼치기 위해 그동안의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아니, 새로운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위로와 평안의 보금자리, '봄이면 매화와 배꽃에 둘러 쌓인 아름다운 풍경이 보이고/ 오월에는 산에서 향기가 내려오는' 섬진강 변에 물소리와 풀벌레소리 가득한 '아름다운 우리 집'을 짓고, 시인은 드디어 '행복'이라는 언덕에 몸을 누이며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이다
섬진강이 좋았습니다.
섬진강 변의 봄꽃이 좋았습니다.
-중략-
지금도 저는 쉽게 잠들지 못합니다.
마당에서 한참이나 왔다갔다 하며
물소리 듣다가 하늘의 별 보다가 풀벌레 소리 듣다가
강건너 산 능선과 그 위 하늘 쳐다보다가 잡니다
아 하늘아래 이렇게 아름다운 우리집을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 「아름다운 우리집」 부분
일체의 소란함을 가라앉히고 눈을 감으면 차분하게 정돈된 마음 속에 구차한 변명이나 설명이 필요치 않은 심중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슬펐던 지난날들이 다만 한스러운 것만은 아니라는 걸, 세상의 기쁨도 슬픔도 모두가 다 한 번쯤 가져봤던 한때의 일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삶이란 과거도 미래도 아닌 바로 '지금의 때'를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일까, 그는 그의 시詩,'고요'를 통해서 강 건너 마을의 고요에 귀를 기울이며 가만히 생각에 잠기는 것이다. 여전히 묘연한 삶의 길에서 그럼에도 하루 하루를 끝끝내 살아내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흔들의자에 앉아 강 건너를 바라다본다
산은 어둠에 잠겨있는데 그 위로 하늘이 희멀겋다
강건너 마을에는 불빛들이 깜빡인다
가을이 오려는지
사방은 풀벌레 울음소리 가득하다
시냇물 소리는 밤까지 끊이지 않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인간의 시름 소리
아 삶을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 「고요」 전문
생각건대, 그동안의 아픔과 상처들이란 나를 일으킨 '힘'이었으며 그리고 그 시련과 고난의 날들 또한 '위로와 평안'의 삶에 이르기 위한 하나의 도정道程이었음을 깨닫는 것이다. 시인은 이러한 모든 길이 정작 자신에게 주어진 '순명의 길'이었음을 감사히 받아들이며 경건한 마음으로 조용히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시인의 시심詩心 속에 간직한 한 줄의 노래는 '당신'에 대한 감사와 찬양으로 귀결된다. 좌절과 실의 속에서 수없이 고통스런 밤을 지새운 시인은 다행히도 애통함과 탄식으로부터 깨어나 삶에 대한 '긍정'으로 상처를 극복해 나가는 힘을 얻게 되는데 그것은 곧 기적처럼 사랑의 빛으로 온 위로와 평안의 '당신'이었다. '나를 괴롭혔던 모든 고통과 슬픔들'과,' 나를 구원해 주신 내 영혼의 하나님'과 그리고' 오직 나 하나의 사람, 내 영원한 반려자(김현정 여사)'께 드리는 감사가 소박하면서도 절절한 까닭이다.
당신이 아니 계셨더라면
내 인생 얼마나 가난했을까요
당신이 아니 계셨더라면
내 인생 얼마나 고독했을까요
당신의 사랑이 없었더라면
내 인생 얼마나 황량했을까요
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사랑이 없이는
결코 한 세상 넉넉히 살 수 없다는 것을
사랑이 없이는 그 무엇도 다 헛되며
망망대해의 조각배처럼
그 인생 쓸쓸히 표류해 버린다는 것을
사랑이 없이는
미래의 꿈도 다 부질없으며
종국에는
존재의 이유마저 상실된다는 것을
- 「당신이 아니 계셨더라면」 전문
이제까지 나는 박명수 시인의 삶의 여정을 따라 걷듯 각 편의 시를 통해서 시인의 가슴에 내재된 삶에 대한 의식과 감정에 주목하여 감상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런 점에서 박명수 시인의 시집 『당신이 아니 계셨더라면』에 실린 각각의 시편들은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지난至難했던 세월과 시간 속에 머물렀던 고난과 시련에 대한 일종의 자전적 고백 형식의 시詩이기도 하다고 생각되었다.
시詩란 생의 희로애락, 즉 삶의 고통과 상처와 슬픔을 압축하여 언어로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 까닭에, 사람들이 어떻게 아픔과 상처를 견디면서 단련되고 단단하게 성숙해 가는지, 그리고 삶에 대한 태도는 어떠해야 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 주로 살펴보고자 하였으므로 시의 구성과 발상, 주제, 의식구조, 비유와 묘사, 서술 등의 기법이나 기술에 대해서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두었음을 말씀드린다. 다행히도 박 시인의 시는 대체로 시적 전개과정과 의식의 구조 및 비유와 묘사 등에 있어서 난해한 표현들이 잘 걸러지고 문장의 표현도 일상적인 쉬운 언어들로 구성되어 독자들에 대한 의미 전달이 어렵지 않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시가 혼자만의 감상이나 허황한 독백이 되지 않아야 할 까닭은 공감共感에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문장과 멋진 수사와 묘사가 있을지라도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 시詩란 조금 읽기에 난감할 것이다. 감히 바라건대, 부디 독자들의 가슴에 항상 깊은 감동을 전하는 건강하고 탄탄한 자기만의 시 세계를 더욱 활기차게 펼쳐 나아가기를 기원드린다.
끝으로, '이 세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내 시를 읽고 위로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는 박 시인의 겸손한 삶 속에 오늘도 '지난날의 모든 시련과 상처와, 내 영혼의 하나님과, 나의 영원한 반려자'로서 〈위로와 평안〉이 되는 따뜻한 이름으로 존재하는, 그 감사한 '당신'께 박수를 보낼 따름이다. 아무쪼록 아름다운 첫 시집 『당신이 아니 계셨더라면』을 세상에 내놓는 박 시인에게도 진심 어린 축하의 말씀을 전한다.
가난과 외로움의 삶, 그 자전적 고백과 감사의 노래
- 위로와 평안의 따뜻한 이름, '당신'에게
조기호(시인, 아동문학가)
박명수 시인은 언제나 온화한 미소와 겸손한 태도로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자상하여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평생을 교육자로, 그리고 신앙인으로 살아옴으로써 그가 지닌 너그럽고 온화한 성품은 언제 어느 곳에서든지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맑고 따뜻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는 '사랑'이어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을 인용하여본다면 이미 그러한 그의 자질(?)은 장차 그가 '시인'으로서 살아가야 할 그의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박 시인은 이미 10년 전에 문학지 『대한문학세계(2016. 겨울호)』에 '첫눈'이라는 시로 '신인문학상'을 통하여 등단하였으며, 지금까지 한국문인협회 목포지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끊임없는 창작활동으로 문단의 많은 분들이 주목하고 있는 시인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박 시인이 몇 년 전부터(몇 번의 귀띔이 있었음) 그동안의 세월을 홀로 남모르게 써왔던 시들을 모아 소박하게나마 한 권의 시집을 내고자 한다며 그렇게 벼르던 원고 뭉치를 마침내 내미는 것이었다.
'삶이 힘들어서 시에 기대어 살아왔습니다./ 힘들면 시 한 편 읽고 위로받고/ 또 힘들면 시 한 편씩 쓰며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시와 함께 살아온 것이 내 삶이 되었습니다.// 무슨 특별한 시 쓰기 기술도 없고/ 다른 시인들에 비해서 한없이 부족하지만/ 쉬운 말로 쉽게 내 삶을 적어오다 보니/ 여기까지 왔고/ (중략) / 이 세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 내 시를 읽고 위로받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 더 바래지 않겠습니다.'('시인의 말'에서) 무엇보다도 시를 대하는 박 시인의 겸허하고 공손한 태도가 참으로 존경스러웠고, 고마웠고 그래선지 더불어 나도 즐겁고 기뻤다. 그러나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고뇌苦惱의 시詩들을 감히 내가 나서서 언급한다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망설이고 사양하였으나 시가 고통의 산물이 아니라 위로의 향기가 되기를 바라는 박 시인의 멋진 행보行步에 격려의 박수를 더 한다는 뜻으로 결국 박명수 시인의 첫 시집 『당신이 아니 계셨더라면』을 먼저 읽게 되었다는 점을 밝혀둔다.
1. 따뜻했고 다정했던, 그러나 외로웠던 가난의 꿈
시는 다만 멋지고 아름다운 감성이나, 혹은 고결한 비유나 상징으로서가 아닌 삶의 고단한 체험으로 존재하는 어떤 것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시인이 걸어온 생生의 모든 여정 속에 존재하는 각각의 체험과 우여곡절들이 때로는 시詩의 소중한 잎이 되고 가지가 되고 뿌리가 되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인의 삶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중학교 가려는 사람은 부모님께 여쭤보고 오너라."
"너도 손이나 한번 들어봐라 형편은 안 된다마는."
참깨 씨가 잘 안 나면 고민하셨죠
"아이고 뭇으로 우리 아덜 월사금 내까이."
삶을 눈물로 사시면서도 늘 꽃을 가까이하신 어머니
"장미가 빨게이 이뿌등만 금방 지는구나!"
지금도 밤이면 날마다
93세 어머니와 도란 도란 옛이야기 나누는
나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 「어머니」 전문
해마다 뻐꾸기 울 때면
생각납니다
그 옛날 산 밭에서 홀로 밭매시던
나의 어머니
사방은 온통
뻐꾸기 소리뿐인데
흰 수건에 무명저고리
푸른 보리밭 이랑에 눈물을 그렁그렁 흘리시던
그리운 나의 어머니
- 「뻐꾸기」 전문
끝내 유년의 기억 속에 떠오르는 어머니는 '산 밭에서 홀로 밭을 매시며 날마다 그렁그렁 눈물을 흘리시는 분'이었으며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처량한 목소리로 울어대는 '뻐꾸기'였음을 시인은 기억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런 '궁핍'이 슬프지 않은 것은 '중학교 가려는 사람은 부모님께 여쭤보고 오너라'라는 선생님의 말에 '너도 손이나 한번 들어봐라 형편은 안 된다마는'이라고 아픈 가슴을 쓸어안는 어머니의 자식 사랑에 있다. 어둡고 춥고 막막했을 시인의 어린 가슴에 어머니의 서글픈 그 한마디는 낙망이 아닌, 아픔이 아닌, 맑고 따뜻한 어미의 피 같은 사랑 하나가 단단히 못처럼 박혔을 것이다, 그러나 문장의 행간에서 외로운 독백처럼 여겨지는 또 다른 시들을 읽으면서 시인의 녹록하지 않았을 삶의 여정이 서서히 궁금하기도 하였다.
모든 은행대출길이 막히고
모든 사람에게서도 막히고
사방간데서 빛쟁이들은 날마다 돈 주라고 독촉하고
아 사는 것이 아니구나
눈앞이 캄캄했고
나는 그만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벌건 대낮에 나는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똑똑하다고 하는 인간도 눈 뜨고 길을 잃는 것이구나
사는 것이 고통이었습니다.
살다보면 눈앞이 캄캄할 때가 있습니다.
고통이 너무 커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아직도 가끔씩 길을 잃고 삽니다.
- 「가끔씩 길을 잃었습니다」 전문
사람들은 누구나 고난과 시련을 마주할 때면 그 황망함에 대하여 분노하고 자책하며 어떻게든 현실을 부정하고자 한다. 그러나 시인은 세속의 온갖 시달림과 고통스런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살다보면 눈앞이 캄캄할 때가 있습니다./ 아직도 가끔씩 길을 잃고 삽니다.'라고 지나간 일에 대한 회한을 굳이 회상하듯 씁쓸하게 웃는 것이다. 이것은 고난의 현실에 대해 지나치게 연연하는 태도가 아니라, 도리어 스스로를 객관적 관점에서 바라다보려는 긍정적 자세를 엿볼 수 있는데 그것은 '사랑의 언덕에 기대어 한세월 살고 싶었지만 늘 고독뿐이었다네(「풍경」에서)'라고 자신의 처지를 풍경에 비유한 그의 시에서 잘 드러난다.
그러나 그렇다 하여도 여전히 외로운 삶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어떻게 지워낼 수 있겠는가. 시인은 파란만장波瀾萬丈이라 여겨온 자신의 삶에 대하여 '어찌 특별한 사람의 삶만/ 파란만장하다 하겠는가'라는 각성(?)을 통하여 세상의 모든 삶 또한 나와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한다.
삶으로 어찌 눈물 흘리지 않는 자 있으랴
넘지 못할 산을 넘고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금방이라도 휩쓸려 버릴 것만 같이 위태로운
험한 파도를 넘고 넘어가는 인생
어찌 특별한 사람의 삶만
파란만장하다 하겠는가
- 「파란만장」 전문
산다는 것은 끊임없는 '넘어짐'과 다시 '일어섬'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그의 시 「매화 그늘에 앉아서」는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로 충만하다. 실의와 낙망과 좌절의 시간 속에서 아무에게도 위로를 받을 수 없었던 삶 위에 아침의 빛과 함께 매화의 향기가 맑은 꿈을 다시 일으킨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는 일이었으므로.
깊디 깊은 겨울잠 자는 것처럼
마음의 병이 깊어 누워있었죠
인간의 백팔번뇌를 어찌말로 다할까요
사람들은 나를 찾아와 위로의 말 건넸었죠
괜찮아 아무일 아니야 다시금 시작해봐
그러나 인간의 그 어떤 말도 나를 위로 못했어요
그런데 어디선가 환한 빛 밝아옵니다
해일처럼 밀려온 봄이 나를 손수 깨웠어요
그윽한 매화향기에 스르르 눈 떴어요
이렇게 꽃그늘에 앉아 쉬고 있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눈부시고 화사한 매화 덕분에
나는 다시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 「매화 그늘에 앉아서」 전문
시인은 '하나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바람처럼 살라한다/ 세상 모든 건 다 지나가니까(「바람재 삼거리」에서)'라는 두 줄의 시로 삶을 다독이며 산을 오른다. 그리고는 세상 속에 내려다보이는 삶을 '욕심내지 말고 하루만 살자고, 저녁 무렵이 아직도 남았다고' 드넓고 넉넉한 품으로 끌어안는 것이다,
욕심내지 말고 딱 하루씩만 살라한다
하루재를 오르면 꼭 땀이 난다
몸이 더워지고 마음이 더워진다
무기력한 몸은 역동적으로 변한다
산등성이 올라서면 서해 바다위로 붉은 석양 보인다
아 장엄하구나 참으로 눈부시구나
그렇게 붉게 그렇게 아름답게
저녁 무렵이 아직 남아있다고 말해주는 것같다
- 「승달산 하루재」 전문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꿈꿀 수 있다면 축복이다. 그것이 희망이 아니어도 좋다. 다시 몸을 일으켜 무엇을 꿈꿀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일 것이다. 시인은 그의 시 「다 지나고 나면」을 통하여 시련과 좌절에 대한 긍정적인 의미를 즐겁고 여유로운 상상으로 이미지화하고 있다. 인생을 되돌아보면 지나간 세월의 괴로운 날들도 아픔도 서러움도 다 지나가는 것이 삶의 이치가 아닐까. 또한 슬픔은 다만 사람을 불행하게 만 드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아름답게 이끄는 힘(?)이 될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 시인의 독백을 통하여 우리는 삶에 대한 긍정적 성찰과 새로운 인식으로 세상과 마주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다 지나고 나면 물끄러미 먼 하늘 바라보리라
그렇게 힘들었는데 그렇게 괴로웠는데
다 지나갔구나
아픔도 서러움도 다 지나갔구나
그래도 아름다웠다고 회상하리라
술 한잔 마시다가 물끄러미 먼 하늘 바라보는데
그때 문득 흰 눈이 펑펑 내리리라
- 「다 지나고 나면」 전문
2. 실의와 좌절의 상처를 다독이는 긍정의 노래
홀로 세상에 벼려져 내 눈에 다른 아무런 빛도 보이지 않을 때, 울면서 나 하나만을 보듬고 뒹굴어야 할 때, 그때가 지옥일 것이다. 시인은 인간관계의 갈등과 반복된 상처로부터 벗어나려고 발버둥하지만, 끝내 삶의 모순과 맞대응할 수 없는 그는 울면서 산에 오르는 것이다, 아니 울기 위해서 산에 오르는지도 모른다. 그 누구도 탓하지 않고, 그 누구에게도 짐 지우지 않으며 스스로 삶의 고통을 끌어안는 것이 결국 세상의 슬픈 모순(갈등과 상처의 삶)으로 부터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아픈 상처에 대한 용서를 통하여 긍정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찌 삶으로 울지 않은 사람 있으랴
삶의 아픔 여울지거든 산으로 가라
말 못할 사연 있거든 산으로 가라
산에 가서 나는 울었네
내 무거운 근심 내려놓고
나는 울었네
- 「산에 가서 나는 울었네」 전문
박 시인은 그동안 실의에 빠져서 스스로를 아프게 자책했던 태도를 거두고 불행이라 여겼던 모든 슬픔을 보듬으며 이제는 자신을 위로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이란 '어찌 삶으로 울지 않은 사람이 있을' 거냐며 '삶의 아픔 여울지거든', ' 말 못할 사연 있거든' 산으로 가서 마음껏 울어버리라고, 그 속마음 다 털어버리라고 노래하고 있다. 즉, 아픔이 있을지라도 굳은 마음으로 흔들리지 말고 다시 일어나 새로운 길을 걷기를 조용히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무릇, 감사란 가난한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 가질 것 다 가지고 누릴 것 다 누리는 사람에게 감사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나의 가난함과 나의 부족함과 그리고 누릴 것 없음을 기뻐하여야 한다.
아직도 내꿈은
초등학생처럼 피아노 책 담긴 가방을 들고
촐래촐래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것이다
- 「아직도 내 꿈은」 전문
삶의 아픔 위로
쇼팽의 피아노 선율이 흐른다
그렇게 순수할 수 있을까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그 순간만큼은 그 음악에 기대어
잠시 아픔도 괴로움도 내려놓는다
선율이 너무 아름다워 비판받았다는 그 곡
새벽에 가끔씩 깨어 뒤척이고 잠 못이룰 때
쇼팽의 녹턴 1번은 위로의 불빛
- 「한밤중의 쇼팽 녹턴 1번」 전문
박 시인은 매우 감성적인 사람이다. 특히 음악(음악대학원교육학과)을 전공한 까닭으로 피아노 연주에도 뛰어난 실력이 있어서 아마 그런 감성의 모든 능력들이 시인으로서의 자질을 충분히 지니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그는 지금도 '피아노 책 담긴 가방을 들고/ 촐래촐래/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꿈을 꾸기도 하는데 그것은 그가 늘 유년의 맑은 꿈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고자 하였던 것은 아닐까. 아무튼 그는 '쇼팽의 녹턴 1번'으로 마음을 비우며 '삶'이란 아픔과 실의에 매여있는 지난날로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어제를 조용히 놓아 주는 일이라는 것을 상기하는 것이다. 삶이란 한때의 순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서 이루어야 하는 일이거나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한 번의 또는 한때의 슬픔으로 허망하게 무너져서는 안된다는 삶에 대한 깨달음을 아래의 「내 인생에 황혼이 오면」이라는 시로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산모롱이를 돌아들어 살짝 가려진 곳에
스위스 오스트리아풍의 작은 집을 짓고 살았으면 좋겠네
사계절 꽃을 심어 봄이면 매화, 목련, 벚꽃이 피고
6월에는 수국, 도라지, 접시꽃이 피고 가을엔 구절초와 국화향이 은은하게
피어나고 겨울에는 뒷산에 흰눈이 내리는 곳이면 좋겠네
아침이면 일어나 꽃밭을 둘러본 뒤 무심히 산책하고
저녁무렵이면 쇼팽의 이별의 노래를 연주하면 좋겠네
- 중략-
세월이 흐르고 또 흐르다보면 그 많은 번뇌도 좀 내려놔지겠지
밤이면 창가에서 시를 읽고 어두워진 산의 실루엣도 바라보고
별이 뜨는 밤이면 밤하늘을 오래 올려다보겠네
겨울에는 벽난로를 피워 옛 생각을 하며 고구마를 구워 먹으면 좋겠네
그렇게 살다보면 어느새 황혼도 깊어가고
솔숲을 흔들던 바람이 산을 넘어가면 나도 그때는 고요해지려나
- 「내 인생에 황혼이 오면」 일부
돌이켜보면 지난 세월, 황량한 벌판에서, 가파른 벼랑에서, 또는 깊은 낭떠러지에서 외로움으로 떨어야 했던 그의 고충이 그럼에도 부질없는 한탄과 푸념으로 시들지 않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즉 잃어버린 기쁨의 새날을 다시 기다리는 시인의 갈망이 은근한 다짐으로 서서히 다져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아니 자신의 삶을 응대하는 방식이 매우 긍정적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황량한 폐허의 땅에서 새 생명의 싹들이 생기를 띄며 돋아나는 봄의 기운처럼 그의 사색과 통찰이 푸르러 지고 있다는 증표일 것이다.
달랠 길 없는 가슴을 위로한 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날마다 날마다 가만 가만 나를 위로해준 건
시였습니다
시가 아니었더라면
내 아픈 가슴 어디서 위로받았을까
- 「시」 전문
정작, 상처 깊은 가슴을 위로하는 건 사람이 아니었다. 박 시인에게 고난을 피하여 달아나려 했던 과거의 기억을 털어버리고 불어오는 어떤 시련과도 새로운 마음으로 단호하게 맞을 각오를 선언하게 한 것은 바로 '시詩'였다. 마음이 따라주지 못하였던, 그래서 늘 부족하였고 채울 수 없었고 안타깝고 힘들었던 고통의 상처들을 보듬어주고 위로해 준 것은 다른 그 무엇이 아닌 몇 줄의 글들, 아니 통절한 눈물로 얼룩진 '시詩',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과감하게 모순과 마주하는 일, 비굴하게 도망치지 않는 일, 넘어지고 또 넘어지는 일, 끝까지 달려가는 일, 그리고 매사에 감사하며 긍정으로 살아가는 일…, 그 모두가 한동안 실의와 좌절 속에 빠져있던 시인의 쓸쓸한 가슴에 서서히 파릇한 새 아침의 빛으로 돋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3. 외로움을 껴안는 신앙적 깨우침과 열망의 시
누군가 내 편이 되어주는 한 사람이 내 곁에 있다면 세상은 살아갈 만할 것이다. 사람들의 상처란 한 마디의 위로와 위안으로도 치유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게 단 한 사람의 위로자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시인에게는 외롭고 망막한 시간들과 마주칠 때마다 홀로 길을 물어야 했던 산이 있었고, 보이지 않는 그 산 너머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을 그의 '당신'들이 있었을 것이다.
외로워 마라
가까이 있지 않아도 함께 있는 것이다.
조금 멀리 있어도 마음만 있으면
함께 있는 것이다.
진짜 외로움은 아무것도 없는 것
나무가 있고 꽃이 있고
나의 지인들이 있지 않은가
가까이 있지 않아도 함께 있는 것
외로워 마라
- 「외로워 마라」 전문
그렇지만 끝내 아무런 대답이 없는 내 마음의 뒤안길에서 시인은 생각하는 것이다. '몸이 아프고/ 잠 못 이루고/ 그토록 불안했던 것'은 '가을이 오려고, 그리고 아름다운 억새를 보려는' 것이었다는 그의 고백에는 사람들이 지닌 '외로움'이라는 것들이 어쩌면 하나의 '욕심'으로부터 생겨난 일종의 허물이 아니었는지를. 그리고는 이내 '힘든 날을 지나 이렇게 꽃을 피웠다'는 자신에 대한 성찰을 통하여, 산다는 것이란 부요하게 채우는 것이 아니라 넉넉하게 존재한다는 의미를 깨닫는 것이다.
그토록 몸이 아프고
그토록 잠못 이루고
그토록 불안했는데
가을이 오려고 그랬나보다
오늘 이 아름다운 가을 억새를 보려고 그랬나보다
바람에 출렁이는 은빛 억새 물결 아름답구나
나도 힘든 날을 지나 이렇게 꽃피웠다고 그러는 것 같다
- 「가을 억새」 전문
그런 시인의 마음에 이제와 서서히 불타오르는 것이 생겨난 듯하다. 그동안의 고난과 외로움 속에 흔들리고 침체 되었던 그의 시적 열망들이 혹독했던 계절을 이겨내고 솟아오르는 것이다. 아니, 그의 눈빛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칼날보다 더 예리한 감성으로/ 슬픔이 많았고 고독이 깊었던 사람' 바로 불멸의 삶을 살다간 베토벤의 그것처럼 뜨겁고 강렬하다.
영혼을 온통 어둠속으로 던져버린 한 가난한 사나이
익숙한 옷차림처럼 언제나 그의 뒤를 따르던 비운과 청력상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칼날보다 더 예리한 감성으로
오직 음악의 길만 달려간 사람
-중략-
촛불과 같이 흔들리는 위태로운 순간마다
삶의 배반에 무릎 꿇지 않을 수 있는 강건한 힘을 준 것은
오로지 음악이었으니
오랜 세월의 초인적 분투와 용기로
불멸을 향한 불안한 외줄타기를 끝냈을 때
한 세계를 지배한 영웅으로 거듭난 사람
그 이름 루드비히 반 베토벤
- 「불멸을 향해 걸어간 사람」 전문
그런 박 시인의 시에 대한 의지는 간단명료하다. 다른 더 이상의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 단호함을 보여준다 '슬픔으로/ 고독으로/ 번민과 괴로움으로/ 실패로 얼룩진 몸으로' 그렇게 온몸으로 느끼며 부딪히는 모든 아픔들을 함께 끌어안고 뒹구는 그런 인내와 몸부림을 익힐 수 있기를 스스로에게 권하는 시인의 단단한 시작詩作 태도가 엿보이는 대목은 다음의 시詩에 나타난다.
사랑의 슬픔을 모르고
어찌 시인일 수 있으랴
고독을 모르고
어찌 시인일 수 있으랴
번민의 괴로움을 모르고서
어찌 시인일 수 있으랴
실패로 얼룩진 몸은 인생의 눈밭에 퍽퍽 쓰러졌지만
모두가 내 인생이었고 시인의 길이었었지
- 「시인의 길」 전문
시인이란 '자신을 스스로 알리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서 알려지는 사람이다. 결코 자기를 선전하는 자가 아니라 아름다운 꽃처럼 누군가에 의해서 발견되는 자(오세영 시인)'라고 하였다. 시인 또한 자신의 시에 대해 날마다 두려움으로 고심하지만 그럼에도 따스하게 찾아오는 봄처럼 피어나기를 기대하곤 한다. '어떤 어려움도 끝이 있다는 것/ 겨울이 깊으면 봄이 온다는 것/ 사람의 말로는 치유되지 않는 것을/ 봄은 일시에 회복하는 능력이 있'기를 바라는 소박한 마음이 간절한 것이다. 그러므로 날마다 끊임없이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의 노력을 통하여 진정한 시詩를 쓰고 싶은 것이 그의 마음일 것이다.
아 이 놀라운 생명의 꿈틀거림!
봄이 오고 있습니다
희망이 오고 있습니다
아직은 추운데 매화는 벌써 알고 있습니다
봄이 온다는 것을 봄을 알려야한다는 것을
어떤 어려움도 끝이 있다는 것
겨울이 깊으면 봄이 온다는 것
사람의 말로는 치유되지 않는 것을
봄은 일시에 회복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 「곧 매화가 피려 하고 있습니다」 전문
열망이 다시 생겼다는 것은 상처 회복의 증표다. 시인은 그동안의 아픔들을 모아 그렇게 밤을 지새우며 삶의 고뇌와 번민으로 얼마나 괴로웠을 것인가, 거기에는 남모르는 참회와 용서와 기도가 있었을 것이며, 그러므로 그의 시詩는 놀라운 신앙의 열매로써 하늘에 감사드리는 찬양의 노래이기도 할 것이다. 사랑과 감사, 그리고 회개와 용서를 통한 구원救援의 의미가 시편 곳곳에 드런난 까닭이기도 하다, 어쨌든 지난날의 슬픔을 떨쳐내고 새로운 마음으로 열정적인 희망의 삶을 가꾸어가는데 그의 시詩들이 큰 몫을 했다는 점이 감사할 따름인 것이다.
불안과 고통의 날들은 끝이 났다
절망의 말들도 끝이 났다
홧병 나 미쳐버릴것만 같던 날
가슴이 터져버릴것만 같은 울화통도 끝이 났다
오 놀라운 구세주 나의 하나님 여호와
그 이름이 나를 살렸네
오 놀라운 기적이여
주님의 놀라운 능력을 찬양합니다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찬양합니다
- 「긴 터널에서 빠져나온 날」 전문
아프지 않은 삶은 없다. 꽃도 다 아프게 피어나고, 봄도 사납고 추운 겨울을 견디고서 찾아오는 것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내 꿈과 내 바람과 내 사랑이 모조리 실종되어버린 그때, 시인의 삶이란 어떠했겠는가, 그저 하루하루의 고통 속에서 쓰러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다만 아프지 않기만을 기도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시詩는
그를 구원한 생명과도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과거를 떨쳐내며 이제 겸허한 마음으로 산과 강을 바라보는 그의 태도는 새로운 꿈과 행복에 대한 무한한 긍정의 예언豫言인 것이다. 따라서 '지금 이대로도 괜찮습니다'는 표현이야말로. 어떠한 고난에도 오롯이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삶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다는 자기 삶에 대한 경건한 선언이기도 한 것이다.
조금 외롭기도 하고
조금 우울하기도 하지만
조금 부족한 것이 좋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내게 있는 것에 감사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이룬 것에 감사하겠습니다.
날마다 섬진강물 흐르고
날마다 무등산 푸르니
조금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이미 다 가졌으면서
불평하지 않게 하소서
- 「지금 이대로도 괜찮습니다」 전문
4. 시련 속에 얻은 따뜻한 평안의 이름, '당신'에게
시련이란 끊임없이 삶을 흔들고 괴롭히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 삶을 단련시키는 힘이었을지도 모른다. 거칠고 험난한 격랑을 헤쳐온 사람들이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까닭이 또한 그러할진대 그러므로 우리는 시련을 당할 때 도리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도 모를 일인 것이다.
박 시인의 '봄'에 대한 사색은 수없이 많은 갈래 속에서 피어나기도 하고 저물기도 한다. 한때는 꿈이었다가 어느 때는 탄식이 되기도 하였지만 이제는 '연두빛 새잎'과 '가슴까지 차오르는 초록의 봄'을 고요한 침묵으로 직시하는 것이다. '이미 아는 것들은 다 알고 고요히 침묵합니다/ 나무는 고요하고 숲은 말이 없습니다/꽃잎 뒤에 숨어 자라는 작은 열매는 희망으로 가득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시인의 마음에는 내 안에 간절한 그리움이 있다면 어떠한 역경 속일지라도 정녕 바라던 봄이 온다는 것을, 그리고 봄을 맞기 위해서는 반드시 겨울을 통과하여야 한다는 세상의 아름다운 순리를 그의 시詩 '봄날'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떠나는 꽃을 보지 못하고 잠이 듭니다
꽃잎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봄이 간 것 아닙니다
사람들의 허전한 가슴 달래려고 연둣빛 새잎이 나옵니다
눈빛을 멀리 보내 초록이 물드는 봄을 바라봅니다
거침없이 달려오는 초록을 안고
나도 그만 초록으로 물들어버립니다
가슴까지 차오르는 봄물을 어찌할까요
이미 아는 것들은 다 알고 고요히 침묵합니다
나무는 고요하고 숲은 말이 없습니다
꽃잎 뒤에 숨어 자라는 작은 열매는 희망으로 가득합니다
봄에는 한순간도 축제 아닌 날이 없습니다
순수한 영혼만이 황홀한 봄의 순간 속에 있습니다
- 「봄날」 전문
세상에는 시련이나 역경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닌지 모른다. 아니 세상 사람 누구에게나 주어져서 그것이 아픔(시련과 역경)이나 슬픔이 아니라 극복하여야 하는 삶의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그 고통을 스스로 감당하며 이겨낼 힘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시련이나 역경이라고 여기는 그 일들을 통하여 참되고 굳건한 삶을 실천해 나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어야 한다는 시인의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적 순명順命의 태도가 굳건해 보인다. 나아가 '지금 내 인생을 이해할 수 없다/ 그래도 절망하지 말자/ 어떠한 고난이 와도 결코 낙심하지 말자/ 하나님께서 더 좋은 계획을 갖고 계신다고 믿고 나가기' 위하여', '내 인생을 더욱 사랑해야' 한다는 솔직하고 담백한 소망, 또한 얼마나 인간적인가,
물소리 새소리에 내 나머지 삶을 맡기려 했다
무릉도원의 달빛과 별빛에 내 남은 인생을 맡기려 했다
적막과 고요 속에서 살고 싶었다
여기서 평생 꽃과 텃밭 가꾸며 시 쓰고 작곡하려 했다
여기서 내 인생의 황혼을 보내려 했다
-중략-
지금 내 인생을 이해할 수 없다
그래도 절망하지 말자
어떠한 고난이 와도 결코 낙심하지 말자
하나님께서 더 좋은 계획을 갖고 계신다고 믿고 나가자
고통도 죽음까지도 내 인생인 것을
어떤 운명이 몰아쳐 와도 겁내지 말고
의연히 뚜벅뚜벅 걸어 나가자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내 인생을 더욱 사랑해야지
- 「아모르파티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 부분
삶의 기쁨이란, 아니 우리가 오늘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란 어쩌면 '위로와 평안'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감사함'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깜깜하게 암흑으로 덮힌 터널 속에서 밖을 향해 달려가는 문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 찬란한 햇살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햇살(위로와 평안)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것은 '당신의 사랑이 나를 지킵니다/ 당신의 따뜻한 마음이 나를 살게 합니다' 라는 고백과 더불어 '나무가 하늘 보며 천년을 살아가듯이/ 우리도 천년을 향해/ 살아가자'는 심중의 고백으로 드러난다. 즉,그 '위로와 평안'은 어느 하나의 빛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나약한 일상을 강건하게 버텨올 수 있도록 끊임없이 나를 단련시켰던 지난날의 '아픈 시련과 상처'가 그것이었을 것이고, 삶의 허허로운 벌판에서 넘어지고 지쳐 쓰러졌을 때 죄를 용서하시고 사랑으로 보살펴주신 '내 영혼의 하나님'이셨으며, 그리고 오직 나 하나의 사람으로서 영원토록 함께할 사랑하는 아내(김현정 여사)'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모두가 '당신'라는 이름으로 감사드릴 '그대'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대 있어 천년을 산다고 고백하지 못할지라도
지금은 오직 그대 사랑으로 삽니다
눈물 나게 감사합니다
아무리 험한 눈보라 몰아쳐 와도
당신과 함께라면 다 견딜 수 있습니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오고
겨울이 깊으면 봄이 오듯이
언젠가는 좋은 날 올 것입니다
당신이 끓여주는 된장국이 나를 살립니다
속이 불편하거나 안정이 안 될 때 된장국을 먹으면
다시 내 속은 평안 해집니다
당신의 사랑이 나를 지킵니다
당신의 따뜻한 마음이 나를 살게 합니다
늘 내 곁에서 도란도란 대화 나누고
내가 힘들 때 나를 위로해줍니다
나무가 하늘 보며 천년을 살아가듯이
우리도 천년을 향해
살아갑시다
- 「그대 있어」 전문
마침내 시인은 설레는 마음으로 또 하나의 출발을 위해서 그동안에 간직하고 있었던 꿈을 펼치기 위해 그동안의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아니, 새로운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위로와 평안의 보금자리, '봄이면 매화와 배꽃에 둘러 쌓인 아름다운 풍경이 보이고/ 오월에는 산에서 향기가 내려오는' 섬진강 변에 물소리와 풀벌레소리 가득한 '아름다운 우리 집'을 짓고, 시인은 드디어 '행복'이라는 언덕에 몸을 누이며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이다
섬진강이 좋았습니다.
섬진강 변의 봄꽃이 좋았습니다.
-중략-
지금도 저는 쉽게 잠들지 못합니다.
마당에서 한참이나 왔다갔다 하며
물소리 듣다가 하늘의 별 보다가 풀벌레 소리 듣다가
강건너 산 능선과 그 위 하늘 쳐다보다가 잡니다
아 하늘아래 이렇게 아름다운 우리집을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 「아름다운 우리집」 부분
일체의 소란함을 가라앉히고 눈을 감으면 차분하게 정돈된 마음 속에 구차한 변명이나 설명이 필요치 않은 심중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슬펐던 지난날들이 다만 한스러운 것만은 아니라는 걸, 세상의 기쁨도 슬픔도 모두가 다 한 번쯤 가져봤던 한때의 일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삶이란 과거도 미래도 아닌 바로 '지금의 때'를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일까, 그는 그의 시詩,'고요'를 통해서 강 건너 마을의 고요에 귀를 기울이며 가만히 생각에 잠기는 것이다. 여전히 묘연한 삶의 길에서 그럼에도 하루 하루를 끝끝내 살아내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흔들의자에 앉아 강 건너를 바라다본다
산은 어둠에 잠겨있는데 그 위로 하늘이 희멀겋다
강건너 마을에는 불빛들이 깜빡인다
가을이 오려는지
사방은 풀벌레 울음소리 가득하다
시냇물 소리는 밤까지 끊이지 않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인간의 시름 소리
아 삶을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 「고요」 전문
생각건대, 그동안의 아픔과 상처들이란 나를 일으킨 '힘'이었으며 그리고 그 시련과 고난의 날들 또한 '위로와 평안'의 삶에 이르기 위한 하나의 도정道程이었음을 깨닫는 것이다. 시인은 이러한 모든 길이 정작 자신에게 주어진 '순명의 길'이었음을 감사히 받아들이며 경건한 마음으로 조용히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시인의 시심詩心 속에 간직한 한 줄의 노래는 '당신'에 대한 감사와 찬양으로 귀결된다. 좌절과 실의 속에서 수없이 고통스런 밤을 지새운 시인은 다행히도 애통함과 탄식으로부터 깨어나 삶에 대한 '긍정'으로 상처를 극복해 나가는 힘을 얻게 되는데 그것은 곧 기적처럼 사랑의 빛으로 온 위로와 평안의 '당신'이었다. '나를 괴롭혔던 모든 고통과 슬픔들'과,' 나를 구원해 주신 내 영혼의 하나님'과 그리고' 오직 나 하나의 사람, 내 영원한 반려자(김현정 여사)'께 드리는 감사가 소박하면서도 절절한 까닭이다.
당신이 아니 계셨더라면
내 인생 얼마나 가난했을까요
당신이 아니 계셨더라면
내 인생 얼마나 고독했을까요
당신의 사랑이 없었더라면
내 인생 얼마나 황량했을까요
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사랑이 없이는
결코 한 세상 넉넉히 살 수 없다는 것을
사랑이 없이는 그 무엇도 다 헛되며
망망대해의 조각배처럼
그 인생 쓸쓸히 표류해 버린다는 것을
사랑이 없이는
미래의 꿈도 다 부질없으며
종국에는
존재의 이유마저 상실된다는 것을
- 「당신이 아니 계셨더라면」 전문
이제까지 나는 박명수 시인의 삶의 여정을 따라 걷듯 각 편의 시를 통해서 시인의 가슴에 내재된 삶에 대한 의식과 감정에 주목하여 감상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런 점에서 박명수 시인의 시집 『당신이 아니 계셨더라면』에 실린 각각의 시편들은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지난至難했던 세월과 시간 속에 머물렀던 고난과 시련에 대한 일종의 자전적 고백 형식의 시詩이기도 하다고 생각되었다.
시詩란 생의 희로애락, 즉 삶의 고통과 상처와 슬픔을 압축하여 언어로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 까닭에, 사람들이 어떻게 아픔과 상처를 견디면서 단련되고 단단하게 성숙해 가는지, 그리고 삶에 대한 태도는 어떠해야 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 주로 살펴보고자 하였으므로 시의 구성과 발상, 주제, 의식구조, 비유와 묘사, 서술 등의 기법이나 기술에 대해서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두었음을 말씀드린다. 다행히도 박 시인의 시는 대체로 시적 전개과정과 의식의 구조 및 비유와 묘사 등에 있어서 난해한 표현들이 잘 걸러지고 문장의 표현도 일상적인 쉬운 언어들로 구성되어 독자들에 대한 의미 전달이 어렵지 않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시가 혼자만의 감상이나 허황한 독백이 되지 않아야 할 까닭은 공감共感에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문장과 멋진 수사와 묘사가 있을지라도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 시詩란 조금 읽기에 난감할 것이다. 감히 바라건대, 부디 독자들의 가슴에 항상 깊은 감동을 전하는 건강하고 탄탄한 자기만의 시 세계를 더욱 활기차게 펼쳐 나아가기를 기원드린다.
끝으로, '이 세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내 시를 읽고 위로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는 박 시인의 겸손한 삶 속에 오늘도 '지난날의 모든 시련과 상처와, 내 영혼의 하나님과, 나의 영원한 반려자'로서 〈위로와 평안〉이 되는 따뜻한 이름으로 존재하는, 그 감사한 '당신'께 박수를 보낼 따름이다. 아무쪼록 아름다운 첫 시집 『당신이 아니 계셨더라면』을 세상에 내놓는 박 시인에게도 진심 어린 축하의 말씀을 전한다.
목차
목차
당신이 아니 계셨더라면 /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당신이 아니 계셨더라면
당신이 아니 계셨더라면
山頂에 부는 바람
첫눈
사랑
어머니
다 지나고 나면
매화 그늘에 앉아
간이역
맥문동
월출산 천황봉
바람재 삼거리
뻐꾸기
자귀나무
지배
인생
파란만장
쿠바 거리의 악사
승달산 하루재
저녁 무렵 1
제2부 산에 가서 울었네
행복
산에 가서 울었네
장애우 ○○이 엄마
한밤중의 쇼팽 녹턴 1번
아직도 내 꿈은
검은 산 실루엣
무인도
쓸쓸한 봄풍경
오월 이팝꽃
죽어불먼 말아불제
송공산에 올라
저녁노을 펜션
흔들리는 원추리
시
아름다운 학교
나폴리 카프리섬에서
제랴늄이 있는 집
외로워마라
발레부스카
제3부 시인의 길
3월 15일
가을 억새
불멸을 향해 걸어간 사람
시인의 길
해질녘 승달산에 서서
매향梅香천리 섬진강변 다압의 노래
긴 터널에서 빠져나온 날
삶
여린 꽃잎 어이할거나
매향에 길을 잃다
절정
호로곡의 소나기
나비같은 평화
가곡 동심초를 들으며
섬진강변 나그네 창
꽃들에게 말 거는 사람
매향에 취해
꿩을 키우는 사람
그 말
제4부 봄날
홍도의 소나무
모과
봄 날
삶
끝까지 가보기 전에는
오월
아모르파티
꽃의 신비
이제는 주님 인도하시는대로
꽃들에게 물었네
어머님의 말씀들
아름다운 우리집
풍경
고난을 견딘다는 것
가만히 앉아있기
왜 몰랐을까
기다림
지금 비록 우울할지라도
제5부 회상
도연명 시인이 되어
저녁 무렵 2
고난과 아름다움
검은 산 산마루
겨울밤 섬진강 산책길에서
지난 세월 뒤돌아보니
기도
눈보라
동백꽃잎이 피었다 지듯
번민의 온도를 낮추는 것들
술
봄을 알리는 소리
회상
고요
봄의 힘
고구마를 구우며
가끔씩 길을 잃었습니다
저녁 무렵 3
지금 이대로도 괜찮습니다
시인의 집
아직도 내가슴에 눈물이
꽃 속에 갇힌 그대
곧 매화가 피려하고있습니다
그대 있어
내 인생에 황혼이 오면
해설
가난과 외로움의 삶, 그 자전적 고백과 감사의 노래 / 조기호
□시인의 말
제1부 당신이 아니 계셨더라면
당신이 아니 계셨더라면
山頂에 부는 바람
첫눈
사랑
어머니
다 지나고 나면
매화 그늘에 앉아
간이역
맥문동
월출산 천황봉
바람재 삼거리
뻐꾸기
자귀나무
지배
인생
파란만장
쿠바 거리의 악사
승달산 하루재
저녁 무렵 1
제2부 산에 가서 울었네
행복
산에 가서 울었네
장애우 ○○이 엄마
한밤중의 쇼팽 녹턴 1번
아직도 내 꿈은
검은 산 실루엣
무인도
쓸쓸한 봄풍경
오월 이팝꽃
죽어불먼 말아불제
송공산에 올라
저녁노을 펜션
흔들리는 원추리
시
아름다운 학교
나폴리 카프리섬에서
제랴늄이 있는 집
외로워마라
발레부스카
제3부 시인의 길
3월 15일
가을 억새
불멸을 향해 걸어간 사람
시인의 길
해질녘 승달산에 서서
매향梅香천리 섬진강변 다압의 노래
긴 터널에서 빠져나온 날
삶
여린 꽃잎 어이할거나
매향에 길을 잃다
절정
호로곡의 소나기
나비같은 평화
가곡 동심초를 들으며
섬진강변 나그네 창
꽃들에게 말 거는 사람
매향에 취해
꿩을 키우는 사람
그 말
제4부 봄날
홍도의 소나무
모과
봄 날
삶
끝까지 가보기 전에는
오월
아모르파티
꽃의 신비
이제는 주님 인도하시는대로
꽃들에게 물었네
어머님의 말씀들
아름다운 우리집
풍경
고난을 견딘다는 것
가만히 앉아있기
왜 몰랐을까
기다림
지금 비록 우울할지라도
제5부 회상
도연명 시인이 되어
저녁 무렵 2
고난과 아름다움
검은 산 산마루
겨울밤 섬진강 산책길에서
지난 세월 뒤돌아보니
기도
눈보라
동백꽃잎이 피었다 지듯
번민의 온도를 낮추는 것들
술
봄을 알리는 소리
회상
고요
봄의 힘
고구마를 구우며
가끔씩 길을 잃었습니다
저녁 무렵 3
지금 이대로도 괜찮습니다
시인의 집
아직도 내가슴에 눈물이
꽃 속에 갇힌 그대
곧 매화가 피려하고있습니다
그대 있어
내 인생에 황혼이 오면
해설
가난과 외로움의 삶, 그 자전적 고백과 감사의 노래 / 조기호
저자
저자
박명수 (朴命洙)
· 호 晩江
· 1964년 출생
· 2002년 한국교원대학교대학원 음악교육과 졸업
· 2016년 《대한문학세계》 겨울호 「첫눈」으로 등단
· 한국문인협회 목포지부 회원
· 동시집 『아름다운 봄꽃들이 내맘에도 피었네』
· 시집 『당신이 아니 계셨더라면』
· 호 晩江
· 1964년 출생
· 2002년 한국교원대학교대학원 음악교육과 졸업
· 2016년 《대한문학세계》 겨울호 「첫눈」으로 등단
· 한국문인협회 목포지부 회원
· 동시집 『아름다운 봄꽃들이 내맘에도 피었네』
· 시집 『당신이 아니 계셨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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