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의 작명소(시와사람 서정시선 128)
정애경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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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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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것들이 예리해지고, 아름다운 것들이 상처의 언어가 되고
- 정애경 시집 『꽃들의 작명소』
강 나 루
(문학평론가)
정애경 시인의 이전 시집 『내 몸엔 모서리가 없다』의 해설에서 강경호 시인은 "시인은 사물과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 적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삶 전체를 통과한 감각과 사유로 자신만의 목소리로 세계를 다시 형상화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시인의 언어가 개성적인 까닭은 그 언어가 표현의 기술로만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한 존재가 살아오며 몸에 새긴 정서와 사상, 상처와 기억의 총체성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라는 의미라고도 했다. 그런 점에서 정애경 시의 언어는 오래전부터 감각의 밀도 있는 사유의 언어였다고 말할 수 있다. 『발칙한 봄』에서 드러났던 에로티시즘의 생명력, 『내 몸엔 모서리가 없다』에서 두드러졌던 생명성의 탐구와 존재론적 성찰은 정애경 시인의 시세계를 이루는 중요한 바탕이었다.
그런데 이번 시집 『꽃들의 작명소』에 이르러 그 감각이 한층 예리해졌다. 이전 시집에서 생명성은 주로 피어남, 몸, 사랑, 숨결, 회복의 이미지로 나타났다면,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생명을 꽃피는 순간만이 아니라 베이고, 마르고, 부서지고, 견디는 과정에서도 포착하고 있다. 이는 상처 입은 생명, 상실 이후에도 지속되는 생명, 돌봄의 피로를 견디는 생명, 역사적 불안 속에서도 자신의 도덕적 감각을 놓지 않으려는 생명의 응축으로 보인다.
정애경 시인의 서정은 현실을 미화하지 않는다. 『꽃들의 작명소』에는 꽃, 봄, 나비, 바람, 나무, 햇살 같은 자연의 어휘가 풍부하게 등장하는데, 이들은 삶을 부드럽게 덮어주거나 시련으로 등장하는 전형적인 자연의 단면을 대표하는 추상적인 속성으로 다뤄지지 않고, 삶의 상처와 버팀을 읽어내게 하는 감각의 문자 체계로써 다뤄진다.
정애경 시인이 자연을 추상적 속성이나 배경이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대상으로 바라본다는 사실은 다음의 시 「풍경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봄, 행간마다 꽃으로 흘려 쓴 자국
나비 살풋 앉았다
까슬한 바람 깃을 낚아챈다
두 다리 잃은 해묵은 의자 나비가 날개로 수평을 맞춘다
무게가 뒤틀리면 금세 주저앉아 킁킁 바람을 살핀다
민들레 씨앗에서 바람의 무게를 잰다
나비 등에 업혀 멀어지는 봄의 시간
꽃들의 약속은 엄격했고
햇살 뜨거운 입김 잰걸음 곧 몰려들 즈음
간절기 넘기는 행간에
제법 물오른 초록 잎갈피를 꽂아둔다
나비, 날개를 접고 봄날은 익어간다
- 「풍경화」 전문
시인에게 봄은 계절의 이름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시인은 "봄, 행간마다 꽃으로 흘려 쓴 자국" 같은 표현을 통해 봄의 풍경을 하나의 문장 기호처럼 제시한다. 뿐만 아니라 "두 다리 잃은 해묵은 의자" 위에 앉은 나비가 뒤틀린 무게를 수평으로 맞추는 것처럼 묘사함으로써 더 이상 나비는 가볍고 아름다운 존재로 한정되지 않는다. 즉, 정애경 시에서 작고 여린 것은 결코 약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나비, 민들레 씨앗, 꽃잎 같은 미세한 존재들은 세계의 균형을 감지하고, 무너진 시간을 건너게 하는 감각적 매개, 세계를 이해하는 문자 체계가 된다.
이러한 자연 인식은 「봄, 꽃들의 작명소」에서 제목의 의미로 구체화된다. 이 시에서 봄은 단순히 꽃이 피는 계절이 아니라 "꽃들의 작명소"이다. 꽃은 처음부터 제 이름을 완성한 존재가 아니다. "겨울을 단단히 뭉친 채 기회를 엿보는 꽃눈"이 "건조한 몸피를 뚫고 나오는 용기"를 거친 뒤에야 비로소 꽃잎을 펼치고, 그때 "본명을 알게 되는 나무 명찰"을 얻는다. 여기서 이름은 사물에 덧붙는 장식이 아니라, 한 존재가 지나온 시간을 증명하는 표지이다. 꽃의 이름은 아름다움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겨울을 견딘 시간, 몸피를 뚫고 나온 고통, 다시 피어나려는 힘이 함께 들어 있다. 그러므로 『꽃들의 작명소』라는 제목은 이 시집 전체의 시적 태도를 압축한다. 시인은 꽃에게만 이름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바람과 돌, 가시와 눈, 아버지의 부재와 엄마의 노년에도 각각의 이름을 붙인다.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오래 보아야만 알 수 있는 내력을 알아보는 일이다. 정애경 시인에게 작명은 세계를 예쁘게 부르는 일이 아니라, 세계가 지나온 상처의 시간을 읽어내는 일에 가깝다.
그러나 시인이 바라보는 자연이 마냥 평온하고 부드러운 것만은 아니다. 사람의 삶과 자연의 생명을 다르게 여기지 않는 시인의 관점은 당연스럽게 어느 순간 부드러운 것들이 예리해지고 아름다운 것들이 아프게 다가오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고, 이를 통해 상처와 소란, 자기 성찰의 문제로 연결짓고자 시도한다. 「바람의 칼날」에서 이러한 시인의 고민과 성찰이 이르는 과정을 살필 수 있다.
산에 오르면 내 몸의 반은 산이 되었다
조붓한 길도 넉넉한 품이 되고
물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만 담아왔다
산을 다녀와 누우면 내 몸에선 맑은 아카펠라 합주가 흐른다
스르륵, 꿈길에 산길에서 보았던 꽃들의 또렷한 콧노래
진달래 입술에 몽롱했던
금목서 향기에 아찔했던
찔레에 찔린 붉은 피가 굳어서 핀 동백이
흰 계절을 넘기고 있다
산을 오르지 않게 되었을 때
서서히 오염에 물들고 어지러운 소란이 징을 친다
소리는 가까운 곳에서 멀리 파동 한다
잔잔한 물결이 성난 파도가 되는 것은 바람의 장난이다
나는 그래서 바다를 좋아하지 않는다
산 그림자마저도 품고 잠든 자연의 합창에 기도를 버무려 넣는다
징 소리, 꽹과리 소리를 왕왕 내는 네 탓하는 사람아!
내 탓이오 내 탓이오 염주를 돌려라, 지문이 닳도록
산을 다시 오르면 바람의 칼날을 접을 수 있을까
- 「바람의 칼날」 전문
시인이 오래 천착해 온 사랑이라는 화두는 이번 시집에서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만, 이는 낭만이나 회상의 감미로움에만 머물지 않는다. 시인이 새롭게 주목한 사랑의 속성은 생명력을 지닌 감정인 동시에, 상처를 남기는 감정이라는 부분이다. 사랑은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무게, 가시, 향기, 손톱, 씨앗 같은 감각적 사물로 변환된다. 사랑은 달콤한 기억이면서 동시에 몸에 남은 흔적이다. 이 작품의 초반부는 자연과 몸의 합일감을 보여준다. "산에 오르면 내 몸의 반은 산이 되었다"는 진술에서 보듯, 산은 화자에게 외부의 대상이 아니라 몸 안으로 들어오는 존재다. 물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는 몸속에서 "맑은 아카펠라 합주"로 흐른다. 자연은 화자의 몸을 정화하고, 화자는 자연의 소리를 자신의 내면에 담는다.
그러나 산을 오르지 않게 되었을 때 화자는 "오염"과 "어지러운 소란"을 감지한다. 바람은 잔잔한 물결을 성난 파도로 바꾸고, 소리는 징과 꽹과리처럼 왕왕 울린다. 바람은 이제 세계의 혼탁을 드러내고, 타인을 향한 비난을 되돌려 자기 성찰로 바꾸는 칼날로 변화한다. 화자가 마지막에 품는 "산을 다시 오르면 바람의 칼날을 접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바람인 동시에, 자기 안의 날 선 감각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에 대한 시인의 질문이다. 부드러운 것들이 예리해지고, 아름다운 것들이 상처의 언어로 전환되는 면모를 시인은 자연의 속성이라고 읽어내고 고민하는 것이다.
「시로 쓴 한 생」에서는 「바람의 칼날」의 예리한 감각이 시 쓰기의 문제로 옮겨간다. 화자는 "바람이 흘려쓴 시 바람으로 지우고 / 강물이 흘려쓴 시 강물로 지우고 / 꽃으로 흘려쓴 시 꽃으로 지우고"라고 말한다. 여기서 자연은 시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시를 쓰고 지우는 힘이다. 특히 "강물의 상처"와 "꽃의 핏자국"을 묻는 대목은 아름다운 자연의 배후에 이미 상처의 이력이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시란 지우면서 벼려지는 것"이라는 진술은 이 시집의 시론에 가깝다. 시는 삶을 그대로 보존하는 기록이 아니라, 상처와 흔적을 지우고 다시 벼리며 한 생을 갈무리하는 방식인 것이다.
「봄, 그렇게 왔다」는 봄과 꽃의 도래를 순한 자연 현상으로 보지 않는다. 화자는 "그냥 오니까 봄인 줄 알았다 / 그냥 피니까 꽃인 줄 알았다"고 말하지만, 곧 "혹한"과 "폭설", "긴 터널"을 통과한 시간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특히 "숱한 바람의 칼끝에 세월을 가른 시간"이라는 구절은 「바람의 칼날」과 직접 맞닿는다. 봄은 상처가 사라진 뒤에 오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통과했기 때문에 도착하는 이름이다. 따라서 "봄이 된 너 / 꽃이 된 나"라는 말은 단순한 계절의 환희가 아니라, 칼끝의 시간을 견딘 존재들이 마침내 얻은 이름으로 읽힌다.
「곶」에서는 바람의 감각이 내면의 지형으로 바뀐다. 곶은 "억겁이 깎고 깎아 마름질한 침식의 상흔"을 지닌 장소이며, 화자는 그것을 "내 마음의 곶"으로 받아들인다. 「바람의 칼날」에서 바람이 날 선 성찰의 감각이었다면, 이 시에서 바람은 마음을 깎고 마모시켜 하나의 형상을 만드는 시간의 힘이다. "칼 귀가 닳아서 뭉툭해지면 / 비로소 보이는 곳"이라는 구절은 상처가 언제나 날카로운 통증으로만 남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오래 깎이고 닳은 뒤에야 드러나는 마음의 윤곽이 있는 것이다.
이렇듯 「시로 쓴 한 생」, 「봄, 그렇게 왔다」, 「곶」은 「바람의 칼날」의 문제의식을 각각 시론, 계절 인식, 내면의 지형으로 확장한다. 정애경 시인에게 여러 '바람'들은 자연 현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쓰고 지우며, 상처를 통과시키고, 마침내 마음의 형상을 만들어내는 힘으로 기능한다.
이러한 힘을 또 다른 시선에서 조명하는 시편들도 있다. 「돌의 유골」에서는 아버지의 죽음을 말하면서도 죽음이라는 추상어에 기대지 않는다. 상실이라는 상처를 추상어로 계속 남겨둔다면 손에 쥐어 체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사라진 온기'처럼 질감을 가진 언어로 변환하여 감각화하는 시편인 것이다.
공사장, 부서지는 돌가루가 사방으로 튄다
한 개의 돌덩이가 파편으로 날릴 때
무게가 사라졌다고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 한 줌 가루
나는 돌덩이보다 더 큰 무게를 놓지 못하고
형체가 사라진 온기를 한참이나 매만졌다
바람에 마른 눈물 닦고
다독다독 돌판을 얹어 놓고 내려오는 길
발밑에 구르는 자잘한 파편, 어디서 왔을까
- 「돌의 유골」 전문
공사장에서 부서지는 돌가루의 이미지와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인 "한 줌 가루"가 겹쳐지면서, 죽음은 사라짐이 아니라 무게의 역설로 다가온다. 돌덩이는 부서져 가루가 되었지만, 화자는 오히려 "돌덩이보다 더 큰 무게"를 놓지 못한다. 형체는 사라졌으나 온기는 남아 있고, 화자는 그 "형체가 사라진 온기"를 한참 매만진다.
이 시에서 화자는 감상적으로 애도하지 않는데, 정애경 시인은 상실을 눈물이나 그리움의 언어로만 말하는 대신 돌가루, 파편, 돌판, 발밑의 조각 같은 물질적 감각으로 전환함으로써 죽음은 관념이 아니라 체감할 수 있는 실체적 감각이고, 발밑에 밟히는 파편이며, 끝내 놓을 수 없는 무게라는 점을 강조한다.
아버지의 부재는 다른 시편에서도 사물과 장소의 감각으로 되돌아온다. 「아버지의 방」에서 화자는 "오래도록 못 오시는 / 아버지를 만나러" 간다. 여기서 아버지는 추억 속의 인물로만 남아 있지 않고, "낮아진 봉분", "은행잎", "홑이불", "찬서리" 같은 이미지 속에 머문다. "마흔아홉, 한 평"이라는 표현은 죽음 이후 아버지에게 남은 공간을 매우 작고 낮은 자리로 압축한다. 그러나 그 한 평의 공간은 결코 가볍지 않다. 딸에게 그것은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다시 찾아가야 하는 장소이며, 아버지의 잠과 기침과 체온을 상상하게 하는 방이다.
「아버지의 손이 떠올랐다」에서는 아버지가 노동의 감각으로 돌아온다. 화자는 흰밥을 씹다가 "입안이 짜다"고 느끼고, 밥알마다 밴 "끈적한 땀"과 "검버섯 핀 주름골을 훔치던 손"을 떠올린다. 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아버지의 굽은 등과 손톱이 부러진 손바닥을 품은 결과물이다. 이처럼 정애경 시에서 아버지는 관념적인 그리움의 대상이 아니라, 밥의 짠맛과 손의 주름, 봉분의 낮은 높이와 돌판의 무게 속에서 다시 감각된다. 「돌의 유골」이 죽음 뒤에 남은 무게를 보여준다면, 「아버지의 방」과 「아버지의 손이 떠올랐다」는 그 무게가 장소와 음식과 노동의 기억 속에서 어떻게 되살아나는지를 보여준다. 상실은 한 번 울고 지나가는 사건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가 매일 마주치는 사물들 속에서 되풀이해 감각되는 현재이다.
이렇듯 시인은 상실이라는 추상적 감각을 무게감과 질감으로 변환하는데에서 더 나아가 가족의 시간이 또 다른 방식의 고통으로 이어지는 장면을 시편에 담아내는데, 늙어가는 부모와 그 곁을 지키는 자식의 시간을 아름답게만 말하려 하지 않는다. 「이젠, 친절하고 싶지 않아요」는 갈수록 지쳐만 가는 돌봄의 시간이 얼마나 날카로운 피로와 상처의 형식이 되는지를 날카롭게 보여준다.
엄마가 가시를 뱉어내면 돋친 말의 냉기를 입에 물고 흐린 하늘은 구름을 덮고 누워버린다
흘릴 듯 말 듯 쏟아낼 듯 말 듯
그렁그렁 일그러진 뺨 위에 노는 물기들
천둥이 입술을 열고 튀어나오면 귀를 막은 수화기가 달팽이관을 후벼판다
그곳은 엄마의 가시 돋친 말씨 하나가 박혀있다
스스로 물을 끼얹고 빛줄기를 붙잡고 방향을 찾아 나선 민들레 풀씨 같은 나의 과거를 모른 체 하는데
와락, 맺힌 물방울이 바늘귀를 뚫고 빠져나온다
받쳐줄 웅덩이는 없지만 봇물 터지듯 물줄기는 바늘구멍을 막을 길 없다
건조한 가시가 건조한 목구멍을 건드릴 때마다
쇳가루 달라붙은 쉰소리가 과거를 갉아 후벼판다
엄마의 취미는 늘 한숨 엮어 흐린 하늘 짓는 일,
나는 홀로 넝쿨을 감아 나팔꽃을 피워 노래를 부르는데 엄마의 아픈 손가락 하나 때문에 넋두리를 받아주는 친절한 딸을 그만하고 싶다
벌써 환갑이 지났다, 아픈 손가락도 나도
- 「이젠, 친절하고 싶지 않아요」 전문
화자에게 어머니의 말은 가시가 되어 박혀 오는데, 이를 말의 냉기는 "입에 물"리고, 수화기는 "달팽이관을 후벼판다."며 어머니의 가시 돋친 말씨가 자신의 귀와 몸 안에 박혀 있음을 느낀다. 봉양하는 화자와 엄마의 관계는 따뜻한 위로의 장면으로만 제시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고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데, 어머니의 한숨은 흐린 하늘을 짓고, 딸은 그 넋두리를 받아주는 "친절한 딸"의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한다. 더구나 그 딸 역시 "벌써 환갑"을 지났다. "아픈 손가락도 나도"라는 말미의 병치는 아픈 것은 어머니만이 아니라 돌보는 자도 아프다는 현실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이 시의 저력은 불편한 진실을 회피하지 않는 데에 있다. 가족은 사랑의 이름으로 묶인 관계이지만, 그 사랑은 때로 상처와 피로의 형식으로 지속된다. 정애경 시인은 부모를 향한 연민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자식의 소진을 숨기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젠, 친절하고 싶지 않아요」는 원망에 머무는 시가 아니라 늙은 부모를 봉양하는 자식이라는 관계를 다시 묻는 성찰의 시로 읽힌다. 사랑이 있다고 해서 피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어서, 오히려 사랑하기 때문에 더 오래 견디고, 더 깊게 다친다. 시인은 그 견딤의 내면을 가시, 쇳가루, 바늘귀, 흐린 하늘의 이미지로 날카롭게 형상화한 것이다.
「이젠, 친절하고 싶지 않아요」에서 엄마의 말이 가시가 되고 딸의 귀와 몸을 후벼팠다면, 「엄마의 계절」 시에서 엄마는 이미 말라가는 가을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화자는 "엄마의 가을이 말라가고 있다"며 엄마의 생명과 계절의 쇠락을 동렬로 인식한다. 화자가 생각하는 나이 듦은 "골다공증 빠져나온 통증이 먼저 앓는/ 감나무집"처럼 생명의 "계절이 비틀어지"는 과정이다.
그런가하면 「고작, 몇 년」에서 화자는 엄마의 남은 시간을 구체적인 생활의 장면 속에서 감각하는데, "엄마가 나보다 크셨는데 점점 작아진 키에/ 근육 빠진 쪼그라든 체형"을 체감하면서 부모와 자식의 시간이 교차하고 있음을 눈에 드러나는 증거를 통해 말하고 있다. 마치 부모님의 회초리가 더 이상 아프지 않음에 슬퍼했다는 고사에서처럼 가족 내에서 부모자식간에 흐르는 시간이 불균형함을 깨닫는 순간을 자식이 슬퍼하는 까닭은 그간의 무심함을 깨닫는 반성의 순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바람도 없는데 가슴이 차고 아"린 것은 엄마를 향한 연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위해 떠나야 하는 현실의 탓이다. 「고작, 몇 년」은 이렇듯 사랑은 충분히 표현할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순간의 깨달음이 현실감에 밀려 스러지곤 하는 평범한 일상을 보여준다.
「독거」에서는 '찬밥'의 이미지가 시선을 끄는데, "와글와글 식탁"의 따뜻했던 시간을 지나친 '찬밥'의 신세에 비해 어째서 화자가 자신을 "찬밥 신세"라고 여기는지 쉽사리 연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곧 "힘줄을 당겨보지만 이끄는 햇살 줄기는 저만치 앞서가"면서 "와글와글 식탁"의 따뜻했던 시간이 돌아오지 않는 모습을 통해 '찬밥'과 화자는 따뜻했던 때를 지나쳐버린 존재로서 이미지의 합일을 이룬다. '찬밥'과 화자의 이미지 동기화는 한때 있던 온기의 결핍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엄마의 "혼잣말만 귀청 아프게 뱉"은 전화를 화자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능이버섯삼계탕'을 사들고 엄마를 찾아가려 한다. 화자는 '독거'라는 결핍의 상태를 해소하지 못했지만, 가족 간의 돌봄을 통해 일시적으로 봉합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이젠, 친절하고 싶지 않아요」, 「엄마의 계절」, 「고작, 몇 년」, 「독거」 등의 시편을 통해 시인은 어느 한쪽의 잘못이나 희생으로 단순화하여 선악의 구도로 쉽고 편하게 말하는 대신 사랑과 피로, 연민과 상처가 동시에 존재하는 가족의 시간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때로는 서로 닿거나 어긋나고, 안도하고 미안해하고 연민하는 가족 간의 돌봄은 거창한 헌신이나 숭고한 희생이 아니기 때문에 피로와 상처를 주고받기도 하지만, 또 다른 각도에서 보완하고 봉합하는 '일상'인 것이다.
다음의 시 「그날」은 「이젠, 친절하고 싶지 않아요」에서 보았던 상처의 감각이 개인의 기억을 넘어 공동체의 기억으로 확장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그날 눈이 내렸다
계엄 앞에서 뒤섞인 호흡들
찰나, 가파진 호흡 월담을 하고
피를 장착한 무기는 냉혈 앞에 냉철했다
눈보라에 흔들리는 눈빛 이성을 삼키고
시민의 저항은 탱크도 멈췄다
눈을 집어삼킨 칼바람이 뜨거웠다
벌떼처럼 날아와 들불처럼 번져가는 함성
흰 눈이 시야를 덮을 때
무장해제 자막이 화면을 채웠다
누가 시간을 돌려놓았나
새벽을 타고 내리는 얼룩진 그날의 명령,
쓸어내려야만 했던 철렁했던 순간
철철 흐를 뻔 아찔했던 선혈 간극의 찰나
귀를 후벼파는 그날 기습, 오늘이 그날
- 「그날」 전문
"계엄", "시민의 저항", "탱크", "무장해제", "선혈" 등의 단어를 통해 화자는 공동체가 겪은 위기의 순간을 감각한다. "그날" 내린 눈은 순결한 백색의 풍경이 아니라, 폭력과 저항, 공포와 함성의 순간을 덮는 역사를 회상하는 매개로 작동한다. 그런가하면 마지막에 "오늘이 그날"이라는 진술을 통해 과거를 회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나간 사건이 여전히 현재를 기습하고 있음을 말하는데, 이는 역사적 상처가 완전히 과거로만 남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적 상처는 언제든지 어느 날의 화면, 어느 순간의 자막, 어느 새벽의 명령처럼 되돌아와 현재의 귀를 후벼팔 수 있는 것으로 표현된다. 상처의 감각이 개인의 삶에서 역사의 상처로 전이됨으로써 지금껏 시인이 살펴본 상처의 감각은 개인에게 한정된 특수한 사건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는 보편적 경험으로 확장된다.
이때 상처는 한 개인의 내면에 갇힌 감정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감각해야 할 기억의 형식으로 확장된다. 「응징」은 그 기억이 어떤 윤리적 반응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시인은 "슬픔보다 미움이 짓밟히길" 바라고, "불의를 불태울 입술"을 말한다. 여기서 응징은 단순한 복수심이 아니다. "다 쓸어버린 나무에 정직한 꽃이 피기만을" 바라는 마음처럼, 부정한 것을 태운 자리에 다시 정직한 생명이 피어나기를 바라는 태도에 가깝다. "바람의 칼날에 베어본 것들은 알지"라는 구절은 앞서 살펴본 바람의 감각과도 연결된다. 바람의 칼날에 베인 자만이 불의와 상처의 실감을 안다. 그러므로 이 시에서 응징은 분노의 표출이면서 동시에 정직한 꽃을 기다리는 마음이다.
「말모이」는 그 윤리적 감각을 언어의 문제로 옮긴다. 시인은 "오늘 빚어낼 말을 고르려 말모이를 펼"친다고 말한다. 말을 고른다는 것은 단순한 표현의 선택이 아니다. 어떤 말을 입술에 올릴 것인가, 어떤 말을 삼키고 어떤 말을 내보낼 것인가를 묻는 일이다. 화자는 "후회의 말을 날카롭게 베어" 물면서 칼날의 감각을 얻지만, 타인을 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말 속에 남은 후회와 가시를 베어내고, "이슬에 씻은 입술"로 다시 말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가시도 곰삭아 사그라지겠지"라는 기대가 가능하다. 정애경 시인은 상처를 말하지만, 상처를 그대로 방치하지 않는다. 시인은 상처를 말로 고르고, 베고, 씻고, 다시 부르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다른 상태로 옮겨 놓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시집 『꽃들의 작명소』에서 붙이는 이름들은 아무렇게나 붙는 것이 아니라, 오래 앓은 말들이 지나간 뒤에 가까스로 붙는 것이다.
정애경 시의 감각성은 이번 시집에서도 여전히 인상 깊지만, 이전의 원초적 생명력이나 에로티시즘의 활력에만 기대지 않는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번 시집에서 다룬 감각들은 대신, 더 많이 아프고, 더 깊이 늙고, 더 오래 기억하는 것이어서 이번 시편들에서 꽃들은 쉽게 피지 않는다. 봄이 왔기 때문에 피는 것이 아니라, 겨울의 거친 바람과 메마른 시간을 지나왔기 때문에 핀다. 그러므로 정애경 시인에게 꽃은 아름다움의 이름이면서 동시에 견딤의 증명이다. 이처럼 시인이 노래하는 거의 모든 자연물은 풍경을 이루는 사물이 아니라 한 사람이 살아오며 겪은 시간의 다른 이름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시집 『꽃들의 작명소』에서 꽃은 가장 자주 등장하는 이미지이지만, 그 꽃들은 쉽게 피지 않는다. 「봄, 그렇게 왔다」에서처럼 봄과 꽃은 혹한과 폭설, 긴 터널과 바람의 칼끝을 통과한 뒤에야 도착한다. 「봄, 꽃들의 작명소」에서 꽃은 몸피를 뚫고 나온 뒤에야 본명을 얻는다. 「꽃묘」에서 꽃 핀 자리는 날카롭게 베였던 상처가 아물어가는 자리이고, 「애도의 꽃」에서 화려한 우산은 "물에 대한 애도의 꽃"이 된다. 이처럼 정애경 시인에게 꽃은 아름다움의 결과라기보다 견딤의 결과에 가깝다. 꽃은 상처를 지운 자리에 피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지나온 자리에 피어난다.
그래서 이 시집의 제목은 밝고 화사한 인상과 달리 가볍지 않다. 작명소는 이름을 붙이는 곳이지만, 정애경 시인은 사물을 새 이름으로 꾸미지 않는다. 그는 오래 바라본 뒤에야 보이는 사물의 이면을 이름으로 불러낸다. 봄에는 혹한을, 꽃에는 핏자국을, 돌에는 유골의 무게를, 가시에는 가족의 말을, 눈에는 역사의 기습을 붙인다. 그렇게 붙은 이름들은 예쁜 별칭이 아니라 삶이 겪어온 시간의 요약이다. 그러므로 『꽃들의 작명소』는 꽃을 노래하는 시집이면서, 꽃의 이름만으로는 다 말할 수 없는 삶의 안쪽을 함께 들여다보는 시집이다. 시인은 삶을 쉽게 위로하지 않는다. 다만 그 삶이 남긴 통증을 하나씩 불러보고, 그 이름을 통해 다시 견딜 힘을 얻으려 한다.
- 정애경 시집 『꽃들의 작명소』
강 나 루
(문학평론가)
정애경 시인의 이전 시집 『내 몸엔 모서리가 없다』의 해설에서 강경호 시인은 "시인은 사물과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 적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삶 전체를 통과한 감각과 사유로 자신만의 목소리로 세계를 다시 형상화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시인의 언어가 개성적인 까닭은 그 언어가 표현의 기술로만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한 존재가 살아오며 몸에 새긴 정서와 사상, 상처와 기억의 총체성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라는 의미라고도 했다. 그런 점에서 정애경 시의 언어는 오래전부터 감각의 밀도 있는 사유의 언어였다고 말할 수 있다. 『발칙한 봄』에서 드러났던 에로티시즘의 생명력, 『내 몸엔 모서리가 없다』에서 두드러졌던 생명성의 탐구와 존재론적 성찰은 정애경 시인의 시세계를 이루는 중요한 바탕이었다.
그런데 이번 시집 『꽃들의 작명소』에 이르러 그 감각이 한층 예리해졌다. 이전 시집에서 생명성은 주로 피어남, 몸, 사랑, 숨결, 회복의 이미지로 나타났다면,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생명을 꽃피는 순간만이 아니라 베이고, 마르고, 부서지고, 견디는 과정에서도 포착하고 있다. 이는 상처 입은 생명, 상실 이후에도 지속되는 생명, 돌봄의 피로를 견디는 생명, 역사적 불안 속에서도 자신의 도덕적 감각을 놓지 않으려는 생명의 응축으로 보인다.
정애경 시인의 서정은 현실을 미화하지 않는다. 『꽃들의 작명소』에는 꽃, 봄, 나비, 바람, 나무, 햇살 같은 자연의 어휘가 풍부하게 등장하는데, 이들은 삶을 부드럽게 덮어주거나 시련으로 등장하는 전형적인 자연의 단면을 대표하는 추상적인 속성으로 다뤄지지 않고, 삶의 상처와 버팀을 읽어내게 하는 감각의 문자 체계로써 다뤄진다.
정애경 시인이 자연을 추상적 속성이나 배경이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대상으로 바라본다는 사실은 다음의 시 「풍경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봄, 행간마다 꽃으로 흘려 쓴 자국
나비 살풋 앉았다
까슬한 바람 깃을 낚아챈다
두 다리 잃은 해묵은 의자 나비가 날개로 수평을 맞춘다
무게가 뒤틀리면 금세 주저앉아 킁킁 바람을 살핀다
민들레 씨앗에서 바람의 무게를 잰다
나비 등에 업혀 멀어지는 봄의 시간
꽃들의 약속은 엄격했고
햇살 뜨거운 입김 잰걸음 곧 몰려들 즈음
간절기 넘기는 행간에
제법 물오른 초록 잎갈피를 꽂아둔다
나비, 날개를 접고 봄날은 익어간다
- 「풍경화」 전문
시인에게 봄은 계절의 이름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시인은 "봄, 행간마다 꽃으로 흘려 쓴 자국" 같은 표현을 통해 봄의 풍경을 하나의 문장 기호처럼 제시한다. 뿐만 아니라 "두 다리 잃은 해묵은 의자" 위에 앉은 나비가 뒤틀린 무게를 수평으로 맞추는 것처럼 묘사함으로써 더 이상 나비는 가볍고 아름다운 존재로 한정되지 않는다. 즉, 정애경 시에서 작고 여린 것은 결코 약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나비, 민들레 씨앗, 꽃잎 같은 미세한 존재들은 세계의 균형을 감지하고, 무너진 시간을 건너게 하는 감각적 매개, 세계를 이해하는 문자 체계가 된다.
이러한 자연 인식은 「봄, 꽃들의 작명소」에서 제목의 의미로 구체화된다. 이 시에서 봄은 단순히 꽃이 피는 계절이 아니라 "꽃들의 작명소"이다. 꽃은 처음부터 제 이름을 완성한 존재가 아니다. "겨울을 단단히 뭉친 채 기회를 엿보는 꽃눈"이 "건조한 몸피를 뚫고 나오는 용기"를 거친 뒤에야 비로소 꽃잎을 펼치고, 그때 "본명을 알게 되는 나무 명찰"을 얻는다. 여기서 이름은 사물에 덧붙는 장식이 아니라, 한 존재가 지나온 시간을 증명하는 표지이다. 꽃의 이름은 아름다움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겨울을 견딘 시간, 몸피를 뚫고 나온 고통, 다시 피어나려는 힘이 함께 들어 있다. 그러므로 『꽃들의 작명소』라는 제목은 이 시집 전체의 시적 태도를 압축한다. 시인은 꽃에게만 이름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바람과 돌, 가시와 눈, 아버지의 부재와 엄마의 노년에도 각각의 이름을 붙인다.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오래 보아야만 알 수 있는 내력을 알아보는 일이다. 정애경 시인에게 작명은 세계를 예쁘게 부르는 일이 아니라, 세계가 지나온 상처의 시간을 읽어내는 일에 가깝다.
그러나 시인이 바라보는 자연이 마냥 평온하고 부드러운 것만은 아니다. 사람의 삶과 자연의 생명을 다르게 여기지 않는 시인의 관점은 당연스럽게 어느 순간 부드러운 것들이 예리해지고 아름다운 것들이 아프게 다가오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고, 이를 통해 상처와 소란, 자기 성찰의 문제로 연결짓고자 시도한다. 「바람의 칼날」에서 이러한 시인의 고민과 성찰이 이르는 과정을 살필 수 있다.
산에 오르면 내 몸의 반은 산이 되었다
조붓한 길도 넉넉한 품이 되고
물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만 담아왔다
산을 다녀와 누우면 내 몸에선 맑은 아카펠라 합주가 흐른다
스르륵, 꿈길에 산길에서 보았던 꽃들의 또렷한 콧노래
진달래 입술에 몽롱했던
금목서 향기에 아찔했던
찔레에 찔린 붉은 피가 굳어서 핀 동백이
흰 계절을 넘기고 있다
산을 오르지 않게 되었을 때
서서히 오염에 물들고 어지러운 소란이 징을 친다
소리는 가까운 곳에서 멀리 파동 한다
잔잔한 물결이 성난 파도가 되는 것은 바람의 장난이다
나는 그래서 바다를 좋아하지 않는다
산 그림자마저도 품고 잠든 자연의 합창에 기도를 버무려 넣는다
징 소리, 꽹과리 소리를 왕왕 내는 네 탓하는 사람아!
내 탓이오 내 탓이오 염주를 돌려라, 지문이 닳도록
산을 다시 오르면 바람의 칼날을 접을 수 있을까
- 「바람의 칼날」 전문
시인이 오래 천착해 온 사랑이라는 화두는 이번 시집에서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만, 이는 낭만이나 회상의 감미로움에만 머물지 않는다. 시인이 새롭게 주목한 사랑의 속성은 생명력을 지닌 감정인 동시에, 상처를 남기는 감정이라는 부분이다. 사랑은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무게, 가시, 향기, 손톱, 씨앗 같은 감각적 사물로 변환된다. 사랑은 달콤한 기억이면서 동시에 몸에 남은 흔적이다. 이 작품의 초반부는 자연과 몸의 합일감을 보여준다. "산에 오르면 내 몸의 반은 산이 되었다"는 진술에서 보듯, 산은 화자에게 외부의 대상이 아니라 몸 안으로 들어오는 존재다. 물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는 몸속에서 "맑은 아카펠라 합주"로 흐른다. 자연은 화자의 몸을 정화하고, 화자는 자연의 소리를 자신의 내면에 담는다.
그러나 산을 오르지 않게 되었을 때 화자는 "오염"과 "어지러운 소란"을 감지한다. 바람은 잔잔한 물결을 성난 파도로 바꾸고, 소리는 징과 꽹과리처럼 왕왕 울린다. 바람은 이제 세계의 혼탁을 드러내고, 타인을 향한 비난을 되돌려 자기 성찰로 바꾸는 칼날로 변화한다. 화자가 마지막에 품는 "산을 다시 오르면 바람의 칼날을 접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바람인 동시에, 자기 안의 날 선 감각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에 대한 시인의 질문이다. 부드러운 것들이 예리해지고, 아름다운 것들이 상처의 언어로 전환되는 면모를 시인은 자연의 속성이라고 읽어내고 고민하는 것이다.
「시로 쓴 한 생」에서는 「바람의 칼날」의 예리한 감각이 시 쓰기의 문제로 옮겨간다. 화자는 "바람이 흘려쓴 시 바람으로 지우고 / 강물이 흘려쓴 시 강물로 지우고 / 꽃으로 흘려쓴 시 꽃으로 지우고"라고 말한다. 여기서 자연은 시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시를 쓰고 지우는 힘이다. 특히 "강물의 상처"와 "꽃의 핏자국"을 묻는 대목은 아름다운 자연의 배후에 이미 상처의 이력이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시란 지우면서 벼려지는 것"이라는 진술은 이 시집의 시론에 가깝다. 시는 삶을 그대로 보존하는 기록이 아니라, 상처와 흔적을 지우고 다시 벼리며 한 생을 갈무리하는 방식인 것이다.
「봄, 그렇게 왔다」는 봄과 꽃의 도래를 순한 자연 현상으로 보지 않는다. 화자는 "그냥 오니까 봄인 줄 알았다 / 그냥 피니까 꽃인 줄 알았다"고 말하지만, 곧 "혹한"과 "폭설", "긴 터널"을 통과한 시간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특히 "숱한 바람의 칼끝에 세월을 가른 시간"이라는 구절은 「바람의 칼날」과 직접 맞닿는다. 봄은 상처가 사라진 뒤에 오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통과했기 때문에 도착하는 이름이다. 따라서 "봄이 된 너 / 꽃이 된 나"라는 말은 단순한 계절의 환희가 아니라, 칼끝의 시간을 견딘 존재들이 마침내 얻은 이름으로 읽힌다.
「곶」에서는 바람의 감각이 내면의 지형으로 바뀐다. 곶은 "억겁이 깎고 깎아 마름질한 침식의 상흔"을 지닌 장소이며, 화자는 그것을 "내 마음의 곶"으로 받아들인다. 「바람의 칼날」에서 바람이 날 선 성찰의 감각이었다면, 이 시에서 바람은 마음을 깎고 마모시켜 하나의 형상을 만드는 시간의 힘이다. "칼 귀가 닳아서 뭉툭해지면 / 비로소 보이는 곳"이라는 구절은 상처가 언제나 날카로운 통증으로만 남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오래 깎이고 닳은 뒤에야 드러나는 마음의 윤곽이 있는 것이다.
이렇듯 「시로 쓴 한 생」, 「봄, 그렇게 왔다」, 「곶」은 「바람의 칼날」의 문제의식을 각각 시론, 계절 인식, 내면의 지형으로 확장한다. 정애경 시인에게 여러 '바람'들은 자연 현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쓰고 지우며, 상처를 통과시키고, 마침내 마음의 형상을 만들어내는 힘으로 기능한다.
이러한 힘을 또 다른 시선에서 조명하는 시편들도 있다. 「돌의 유골」에서는 아버지의 죽음을 말하면서도 죽음이라는 추상어에 기대지 않는다. 상실이라는 상처를 추상어로 계속 남겨둔다면 손에 쥐어 체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사라진 온기'처럼 질감을 가진 언어로 변환하여 감각화하는 시편인 것이다.
공사장, 부서지는 돌가루가 사방으로 튄다
한 개의 돌덩이가 파편으로 날릴 때
무게가 사라졌다고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 한 줌 가루
나는 돌덩이보다 더 큰 무게를 놓지 못하고
형체가 사라진 온기를 한참이나 매만졌다
바람에 마른 눈물 닦고
다독다독 돌판을 얹어 놓고 내려오는 길
발밑에 구르는 자잘한 파편, 어디서 왔을까
- 「돌의 유골」 전문
공사장에서 부서지는 돌가루의 이미지와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인 "한 줌 가루"가 겹쳐지면서, 죽음은 사라짐이 아니라 무게의 역설로 다가온다. 돌덩이는 부서져 가루가 되었지만, 화자는 오히려 "돌덩이보다 더 큰 무게"를 놓지 못한다. 형체는 사라졌으나 온기는 남아 있고, 화자는 그 "형체가 사라진 온기"를 한참 매만진다.
이 시에서 화자는 감상적으로 애도하지 않는데, 정애경 시인은 상실을 눈물이나 그리움의 언어로만 말하는 대신 돌가루, 파편, 돌판, 발밑의 조각 같은 물질적 감각으로 전환함으로써 죽음은 관념이 아니라 체감할 수 있는 실체적 감각이고, 발밑에 밟히는 파편이며, 끝내 놓을 수 없는 무게라는 점을 강조한다.
아버지의 부재는 다른 시편에서도 사물과 장소의 감각으로 되돌아온다. 「아버지의 방」에서 화자는 "오래도록 못 오시는 / 아버지를 만나러" 간다. 여기서 아버지는 추억 속의 인물로만 남아 있지 않고, "낮아진 봉분", "은행잎", "홑이불", "찬서리" 같은 이미지 속에 머문다. "마흔아홉, 한 평"이라는 표현은 죽음 이후 아버지에게 남은 공간을 매우 작고 낮은 자리로 압축한다. 그러나 그 한 평의 공간은 결코 가볍지 않다. 딸에게 그것은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다시 찾아가야 하는 장소이며, 아버지의 잠과 기침과 체온을 상상하게 하는 방이다.
「아버지의 손이 떠올랐다」에서는 아버지가 노동의 감각으로 돌아온다. 화자는 흰밥을 씹다가 "입안이 짜다"고 느끼고, 밥알마다 밴 "끈적한 땀"과 "검버섯 핀 주름골을 훔치던 손"을 떠올린다. 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아버지의 굽은 등과 손톱이 부러진 손바닥을 품은 결과물이다. 이처럼 정애경 시에서 아버지는 관념적인 그리움의 대상이 아니라, 밥의 짠맛과 손의 주름, 봉분의 낮은 높이와 돌판의 무게 속에서 다시 감각된다. 「돌의 유골」이 죽음 뒤에 남은 무게를 보여준다면, 「아버지의 방」과 「아버지의 손이 떠올랐다」는 그 무게가 장소와 음식과 노동의 기억 속에서 어떻게 되살아나는지를 보여준다. 상실은 한 번 울고 지나가는 사건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가 매일 마주치는 사물들 속에서 되풀이해 감각되는 현재이다.
이렇듯 시인은 상실이라는 추상적 감각을 무게감과 질감으로 변환하는데에서 더 나아가 가족의 시간이 또 다른 방식의 고통으로 이어지는 장면을 시편에 담아내는데, 늙어가는 부모와 그 곁을 지키는 자식의 시간을 아름답게만 말하려 하지 않는다. 「이젠, 친절하고 싶지 않아요」는 갈수록 지쳐만 가는 돌봄의 시간이 얼마나 날카로운 피로와 상처의 형식이 되는지를 날카롭게 보여준다.
엄마가 가시를 뱉어내면 돋친 말의 냉기를 입에 물고 흐린 하늘은 구름을 덮고 누워버린다
흘릴 듯 말 듯 쏟아낼 듯 말 듯
그렁그렁 일그러진 뺨 위에 노는 물기들
천둥이 입술을 열고 튀어나오면 귀를 막은 수화기가 달팽이관을 후벼판다
그곳은 엄마의 가시 돋친 말씨 하나가 박혀있다
스스로 물을 끼얹고 빛줄기를 붙잡고 방향을 찾아 나선 민들레 풀씨 같은 나의 과거를 모른 체 하는데
와락, 맺힌 물방울이 바늘귀를 뚫고 빠져나온다
받쳐줄 웅덩이는 없지만 봇물 터지듯 물줄기는 바늘구멍을 막을 길 없다
건조한 가시가 건조한 목구멍을 건드릴 때마다
쇳가루 달라붙은 쉰소리가 과거를 갉아 후벼판다
엄마의 취미는 늘 한숨 엮어 흐린 하늘 짓는 일,
나는 홀로 넝쿨을 감아 나팔꽃을 피워 노래를 부르는데 엄마의 아픈 손가락 하나 때문에 넋두리를 받아주는 친절한 딸을 그만하고 싶다
벌써 환갑이 지났다, 아픈 손가락도 나도
- 「이젠, 친절하고 싶지 않아요」 전문
화자에게 어머니의 말은 가시가 되어 박혀 오는데, 이를 말의 냉기는 "입에 물"리고, 수화기는 "달팽이관을 후벼판다."며 어머니의 가시 돋친 말씨가 자신의 귀와 몸 안에 박혀 있음을 느낀다. 봉양하는 화자와 엄마의 관계는 따뜻한 위로의 장면으로만 제시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고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데, 어머니의 한숨은 흐린 하늘을 짓고, 딸은 그 넋두리를 받아주는 "친절한 딸"의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한다. 더구나 그 딸 역시 "벌써 환갑"을 지났다. "아픈 손가락도 나도"라는 말미의 병치는 아픈 것은 어머니만이 아니라 돌보는 자도 아프다는 현실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이 시의 저력은 불편한 진실을 회피하지 않는 데에 있다. 가족은 사랑의 이름으로 묶인 관계이지만, 그 사랑은 때로 상처와 피로의 형식으로 지속된다. 정애경 시인은 부모를 향한 연민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자식의 소진을 숨기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젠, 친절하고 싶지 않아요」는 원망에 머무는 시가 아니라 늙은 부모를 봉양하는 자식이라는 관계를 다시 묻는 성찰의 시로 읽힌다. 사랑이 있다고 해서 피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어서, 오히려 사랑하기 때문에 더 오래 견디고, 더 깊게 다친다. 시인은 그 견딤의 내면을 가시, 쇳가루, 바늘귀, 흐린 하늘의 이미지로 날카롭게 형상화한 것이다.
「이젠, 친절하고 싶지 않아요」에서 엄마의 말이 가시가 되고 딸의 귀와 몸을 후벼팠다면, 「엄마의 계절」 시에서 엄마는 이미 말라가는 가을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화자는 "엄마의 가을이 말라가고 있다"며 엄마의 생명과 계절의 쇠락을 동렬로 인식한다. 화자가 생각하는 나이 듦은 "골다공증 빠져나온 통증이 먼저 앓는/ 감나무집"처럼 생명의 "계절이 비틀어지"는 과정이다.
그런가하면 「고작, 몇 년」에서 화자는 엄마의 남은 시간을 구체적인 생활의 장면 속에서 감각하는데, "엄마가 나보다 크셨는데 점점 작아진 키에/ 근육 빠진 쪼그라든 체형"을 체감하면서 부모와 자식의 시간이 교차하고 있음을 눈에 드러나는 증거를 통해 말하고 있다. 마치 부모님의 회초리가 더 이상 아프지 않음에 슬퍼했다는 고사에서처럼 가족 내에서 부모자식간에 흐르는 시간이 불균형함을 깨닫는 순간을 자식이 슬퍼하는 까닭은 그간의 무심함을 깨닫는 반성의 순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바람도 없는데 가슴이 차고 아"린 것은 엄마를 향한 연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위해 떠나야 하는 현실의 탓이다. 「고작, 몇 년」은 이렇듯 사랑은 충분히 표현할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순간의 깨달음이 현실감에 밀려 스러지곤 하는 평범한 일상을 보여준다.
「독거」에서는 '찬밥'의 이미지가 시선을 끄는데, "와글와글 식탁"의 따뜻했던 시간을 지나친 '찬밥'의 신세에 비해 어째서 화자가 자신을 "찬밥 신세"라고 여기는지 쉽사리 연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곧 "힘줄을 당겨보지만 이끄는 햇살 줄기는 저만치 앞서가"면서 "와글와글 식탁"의 따뜻했던 시간이 돌아오지 않는 모습을 통해 '찬밥'과 화자는 따뜻했던 때를 지나쳐버린 존재로서 이미지의 합일을 이룬다. '찬밥'과 화자의 이미지 동기화는 한때 있던 온기의 결핍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엄마의 "혼잣말만 귀청 아프게 뱉"은 전화를 화자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능이버섯삼계탕'을 사들고 엄마를 찾아가려 한다. 화자는 '독거'라는 결핍의 상태를 해소하지 못했지만, 가족 간의 돌봄을 통해 일시적으로 봉합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이젠, 친절하고 싶지 않아요」, 「엄마의 계절」, 「고작, 몇 년」, 「독거」 등의 시편을 통해 시인은 어느 한쪽의 잘못이나 희생으로 단순화하여 선악의 구도로 쉽고 편하게 말하는 대신 사랑과 피로, 연민과 상처가 동시에 존재하는 가족의 시간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때로는 서로 닿거나 어긋나고, 안도하고 미안해하고 연민하는 가족 간의 돌봄은 거창한 헌신이나 숭고한 희생이 아니기 때문에 피로와 상처를 주고받기도 하지만, 또 다른 각도에서 보완하고 봉합하는 '일상'인 것이다.
다음의 시 「그날」은 「이젠, 친절하고 싶지 않아요」에서 보았던 상처의 감각이 개인의 기억을 넘어 공동체의 기억으로 확장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그날 눈이 내렸다
계엄 앞에서 뒤섞인 호흡들
찰나, 가파진 호흡 월담을 하고
피를 장착한 무기는 냉혈 앞에 냉철했다
눈보라에 흔들리는 눈빛 이성을 삼키고
시민의 저항은 탱크도 멈췄다
눈을 집어삼킨 칼바람이 뜨거웠다
벌떼처럼 날아와 들불처럼 번져가는 함성
흰 눈이 시야를 덮을 때
무장해제 자막이 화면을 채웠다
누가 시간을 돌려놓았나
새벽을 타고 내리는 얼룩진 그날의 명령,
쓸어내려야만 했던 철렁했던 순간
철철 흐를 뻔 아찔했던 선혈 간극의 찰나
귀를 후벼파는 그날 기습, 오늘이 그날
- 「그날」 전문
"계엄", "시민의 저항", "탱크", "무장해제", "선혈" 등의 단어를 통해 화자는 공동체가 겪은 위기의 순간을 감각한다. "그날" 내린 눈은 순결한 백색의 풍경이 아니라, 폭력과 저항, 공포와 함성의 순간을 덮는 역사를 회상하는 매개로 작동한다. 그런가하면 마지막에 "오늘이 그날"이라는 진술을 통해 과거를 회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나간 사건이 여전히 현재를 기습하고 있음을 말하는데, 이는 역사적 상처가 완전히 과거로만 남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적 상처는 언제든지 어느 날의 화면, 어느 순간의 자막, 어느 새벽의 명령처럼 되돌아와 현재의 귀를 후벼팔 수 있는 것으로 표현된다. 상처의 감각이 개인의 삶에서 역사의 상처로 전이됨으로써 지금껏 시인이 살펴본 상처의 감각은 개인에게 한정된 특수한 사건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는 보편적 경험으로 확장된다.
이때 상처는 한 개인의 내면에 갇힌 감정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감각해야 할 기억의 형식으로 확장된다. 「응징」은 그 기억이 어떤 윤리적 반응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시인은 "슬픔보다 미움이 짓밟히길" 바라고, "불의를 불태울 입술"을 말한다. 여기서 응징은 단순한 복수심이 아니다. "다 쓸어버린 나무에 정직한 꽃이 피기만을" 바라는 마음처럼, 부정한 것을 태운 자리에 다시 정직한 생명이 피어나기를 바라는 태도에 가깝다. "바람의 칼날에 베어본 것들은 알지"라는 구절은 앞서 살펴본 바람의 감각과도 연결된다. 바람의 칼날에 베인 자만이 불의와 상처의 실감을 안다. 그러므로 이 시에서 응징은 분노의 표출이면서 동시에 정직한 꽃을 기다리는 마음이다.
「말모이」는 그 윤리적 감각을 언어의 문제로 옮긴다. 시인은 "오늘 빚어낼 말을 고르려 말모이를 펼"친다고 말한다. 말을 고른다는 것은 단순한 표현의 선택이 아니다. 어떤 말을 입술에 올릴 것인가, 어떤 말을 삼키고 어떤 말을 내보낼 것인가를 묻는 일이다. 화자는 "후회의 말을 날카롭게 베어" 물면서 칼날의 감각을 얻지만, 타인을 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말 속에 남은 후회와 가시를 베어내고, "이슬에 씻은 입술"로 다시 말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가시도 곰삭아 사그라지겠지"라는 기대가 가능하다. 정애경 시인은 상처를 말하지만, 상처를 그대로 방치하지 않는다. 시인은 상처를 말로 고르고, 베고, 씻고, 다시 부르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다른 상태로 옮겨 놓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시집 『꽃들의 작명소』에서 붙이는 이름들은 아무렇게나 붙는 것이 아니라, 오래 앓은 말들이 지나간 뒤에 가까스로 붙는 것이다.
정애경 시의 감각성은 이번 시집에서도 여전히 인상 깊지만, 이전의 원초적 생명력이나 에로티시즘의 활력에만 기대지 않는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번 시집에서 다룬 감각들은 대신, 더 많이 아프고, 더 깊이 늙고, 더 오래 기억하는 것이어서 이번 시편들에서 꽃들은 쉽게 피지 않는다. 봄이 왔기 때문에 피는 것이 아니라, 겨울의 거친 바람과 메마른 시간을 지나왔기 때문에 핀다. 그러므로 정애경 시인에게 꽃은 아름다움의 이름이면서 동시에 견딤의 증명이다. 이처럼 시인이 노래하는 거의 모든 자연물은 풍경을 이루는 사물이 아니라 한 사람이 살아오며 겪은 시간의 다른 이름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시집 『꽃들의 작명소』에서 꽃은 가장 자주 등장하는 이미지이지만, 그 꽃들은 쉽게 피지 않는다. 「봄, 그렇게 왔다」에서처럼 봄과 꽃은 혹한과 폭설, 긴 터널과 바람의 칼끝을 통과한 뒤에야 도착한다. 「봄, 꽃들의 작명소」에서 꽃은 몸피를 뚫고 나온 뒤에야 본명을 얻는다. 「꽃묘」에서 꽃 핀 자리는 날카롭게 베였던 상처가 아물어가는 자리이고, 「애도의 꽃」에서 화려한 우산은 "물에 대한 애도의 꽃"이 된다. 이처럼 정애경 시인에게 꽃은 아름다움의 결과라기보다 견딤의 결과에 가깝다. 꽃은 상처를 지운 자리에 피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지나온 자리에 피어난다.
그래서 이 시집의 제목은 밝고 화사한 인상과 달리 가볍지 않다. 작명소는 이름을 붙이는 곳이지만, 정애경 시인은 사물을 새 이름으로 꾸미지 않는다. 그는 오래 바라본 뒤에야 보이는 사물의 이면을 이름으로 불러낸다. 봄에는 혹한을, 꽃에는 핏자국을, 돌에는 유골의 무게를, 가시에는 가족의 말을, 눈에는 역사의 기습을 붙인다. 그렇게 붙은 이름들은 예쁜 별칭이 아니라 삶이 겪어온 시간의 요약이다. 그러므로 『꽃들의 작명소』는 꽃을 노래하는 시집이면서, 꽃의 이름만으로는 다 말할 수 없는 삶의 안쪽을 함께 들여다보는 시집이다. 시인은 삶을 쉽게 위로하지 않는다. 다만 그 삶이 남긴 통증을 하나씩 불러보고, 그 이름을 통해 다시 견딜 힘을 얻으려 한다.
목차
목차
시인의 말 · 5
제1부 풍경화
풍경화
꽃묘
봄 예찬
목련
삼월, 보리밭 희망
봄마중
너였다
벌교 꼬막
나무의 여유에서
돌의 유골
새벽별
공정한 시간의 결과
쓰레기통을 나온 고구마
배롱나무
나뭇가지가 지상으로 내려오는 이유
신고식
발기부전 치료제, 봄
봄의 추격
승리
봄의 소리
봄, 그렇게 왔다
집시의 나침반
이유
매미와 국화
제2부 사랑했던 날
사랑했던 날
거미줄에 걸린 첫눈
곁에서 깃을 여미고
황혼의 만추
낙엽처럼
신께 한 마지막 말
만추
에델바이스
시월이 갈수록
세량지에 담긴 하늘
등대
자귀 꽃
능소화
회개의 꽃
감정 무게
사랑 예보
눈먼 가시
사랑은 어디에서 오는가
꽃 파티에 봄바람 불면
성삼재 가는 길
할미꽃 당신
흑백 신호등
심리 게임
제3부 바람의 칼날
바람의 칼날
시로 쓴 한 생
한 번쯤
愛심
봄, 꽃들의 작명소
나만의 꽃
일요일, 별다방 시금치 맛
자연방사
이쯤 해서
명경
썩은 사과로 살기로 했어
어떤 날
새벽별
갈대 역
길
공정한 시간의 결과
낭만의 계절
곶
벌써 여기에
희망이 된 위로
낙화
불꽃놀이
목욕탕 보따리
거기 너 있니?
제4부 엄마의 시간
엄마의 시간
엄마 나무
이젠, 친절하고 싶지 않아요
엄마의 계절
고작, 몇 년
아버지의 방
부모란 버팀목
독거
아버지의 손이 떠올랐다
라떼 한 잔 주세요
사막 모래 소개서
달의 혀
나는 해를 공짜로 백년을 먹었다
검은 것에 오독
그날
응징
말모이
운명
갈대 역
퇴근길, 한 잔 했어요
하얀 고백
우수한 성적표
허수아비네 금테크
민들레
은행나무 옹알이
애도의 꽃
집, 한 채
작품론
부드러운 것들이 예리해지고, 아름다운 것들이 상처의 언어가 되고 / 강나루
제1부 풍경화
풍경화
꽃묘
봄 예찬
목련
삼월, 보리밭 희망
봄마중
너였다
벌교 꼬막
나무의 여유에서
돌의 유골
새벽별
공정한 시간의 결과
쓰레기통을 나온 고구마
배롱나무
나뭇가지가 지상으로 내려오는 이유
신고식
발기부전 치료제, 봄
봄의 추격
승리
봄의 소리
봄, 그렇게 왔다
집시의 나침반
이유
매미와 국화
제2부 사랑했던 날
사랑했던 날
거미줄에 걸린 첫눈
곁에서 깃을 여미고
황혼의 만추
낙엽처럼
신께 한 마지막 말
만추
에델바이스
시월이 갈수록
세량지에 담긴 하늘
등대
자귀 꽃
능소화
회개의 꽃
감정 무게
사랑 예보
눈먼 가시
사랑은 어디에서 오는가
꽃 파티에 봄바람 불면
성삼재 가는 길
할미꽃 당신
흑백 신호등
심리 게임
제3부 바람의 칼날
바람의 칼날
시로 쓴 한 생
한 번쯤
愛심
봄, 꽃들의 작명소
나만의 꽃
일요일, 별다방 시금치 맛
자연방사
이쯤 해서
명경
썩은 사과로 살기로 했어
어떤 날
새벽별
갈대 역
길
공정한 시간의 결과
낭만의 계절
곶
벌써 여기에
희망이 된 위로
낙화
불꽃놀이
목욕탕 보따리
거기 너 있니?
제4부 엄마의 시간
엄마의 시간
엄마 나무
이젠, 친절하고 싶지 않아요
엄마의 계절
고작, 몇 년
아버지의 방
부모란 버팀목
독거
아버지의 손이 떠올랐다
라떼 한 잔 주세요
사막 모래 소개서
달의 혀
나는 해를 공짜로 백년을 먹었다
검은 것에 오독
그날
응징
말모이
운명
갈대 역
퇴근길, 한 잔 했어요
하얀 고백
우수한 성적표
허수아비네 금테크
민들레
은행나무 옹알이
애도의 꽃
집, 한 채
작품론
부드러운 것들이 예리해지고, 아름다운 것들이 상처의 언어가 되고 / 강나루
저자
저자
정애경 전남 순천 출생.
2022년 《시와사람》 신인상 수상.
시집으로 『향기 나는 입술』, 『도둑고양이가 물고 간 신발 두 짝』, 『발칙한 봄』, 『내 몸엔 모서리가 없다』 『꽃들의 작명소』 등이 있다.
〈시 나무〉 동인.
〈시와사람시학회 시목〉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광양시에 거주하고 있다.
2022년 《시와사람》 신인상 수상.
시집으로 『향기 나는 입술』, 『도둑고양이가 물고 간 신발 두 짝』, 『발칙한 봄』, 『내 몸엔 모서리가 없다』 『꽃들의 작명소』 등이 있다.
〈시 나무〉 동인.
〈시와사람시학회 시목〉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광양시에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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