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서의 만찬(오늘의 시와사람 181)
주병도 제2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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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 작품론
| 평설 |
주병도 시인의 제2시집
출간을 축하하며
박 덕 은
(문학박사, 전 전남대학교 교수,
문학평론가, 광주특별시문인협회 회장)
주병도 시인은 1968년 2월 25일 전남 고흥에서 아버지 주진문 씨와 어머니 임임순 씨 사이에서 6남 1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그는 고흥에서 고흥남 초등학교, 고흥 중학교를 거쳐, 광주로 올라와 광주사레지오 고등학교를 다녔고, 조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3년에 김혜영과 결혼했으나, 아직 슬하에 자녀가 없다.
한동안 수많은 방황과 노동자 생활을 하다가, 친형의 권유로 학원 강사 활동을 수년간 했다.
그는 월간지 《문학공간》에 「보라색 물감」 외 4편으로 신인문학상을 수상하여 문단에 데뷔를 했다.
2024년에 첫 시집 『나는 분수처럼 자각한다』를 출간했다.
그의 인생관은 '어떠한 경우에도 살자'이다.
어느 날, 그는 이렇게 인생 목표를 세웠다.
"시로써 우뚝 서는 시인이 되자."
자, 그러면 지금부터 주병도 시인의 시 세계를 탐구해 보기로 하자.
그의 시 「수평선에 눈을 베였다」, 「시의 문」, 「벽」, 「어떤 피」, 「그림」 등은 고통스러운 성찰을 통해 도달한 예술적 구도와 영적 변이의 과정을 시적 언어로 형상화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날카로운 자연의 경계에서 얻은 상처를 시작으로, 자신의 영혼을 시와 맞바꾸는 결단을 내림으로써, 우주적 진리를 받아적은 전령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내부의 자아를 침잠시키고 침묵과 비움을 선택한 끝에, 세상은 거꾸로 뒤집힌 그림처럼 낯설고도 선명한 초월적 심연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드러나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의 시들은 고독한 사유의 벽을 넘어 보이지 않는 실재를 감각적으로 포착하려는 구도자적 고백이라 할 수 있다.
그중에서 「시詩의 문」을 살펴보자.
시의 문이 열린 것 같다
문을 알아내기까지
반백 년이 흘렀다
시는 나에게 영혼을 바꾸자 했다
그래 허락했다
오늘도 말을 걸어온다
받아 적으라고
나를 통과하여 우주로 나간다
영혼을 바꾸길 잘했다
시는 유성처럼 떨어진다
가슴에 내려앉아 말한다
받아 적으라고.
- 「시詩의 문」 전문
이 시에서 보는 바처럼, 시적 화자는 평생의 기다림 끝에 마침내 시적 영감의 문을 열게 된 경이로운 순간을 노래하고 있다. 시는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리도 강렬한 것일까. 먹고 사는 일도 아닌데 시를 쓰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는 사람들. 기억과 감각의 심층으로 들어가면 저마다 어떤 무늬들이 살아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유년의 머리맡에서 발화하는 시적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이다. 그 오래된 풍경은 아득하고 다정한 인기척을 낸다. 그 인기척에 반응하는 사람들이 시인인 것이다.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에,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시인은 서 있다. 때로는 식물의 유전자를 대물림한 꽃과 나무의 표정으로, 때로는 기후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구름의 목소리로 시인은 다가간다. 그래서일까, 시적 화자는 "시는 나에게 영혼을 바꾸자 했다/ 그래 허락했다"라고 말한다. 시를 향한 강렬한 이끌림이 느껴진다. 더불어 시인의 내일이 기대가 된다.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영혼을 시와 바꾸기를 잘했다는 시적 화자. 이 자세로 나아간다면 분명 좋은 시를 만날 것이다. 감각을 채집하고 사유의 함량을 늘리며 자신만의 시적 궤적을 만들면 된다. 시적 화자는 자신의 영혼을 시와 맞바꿈으로써 자아를 비우고, 그 비워진 내면을 통해 우주의 언어가 흐르도록 허락하는 통로가 되기를 자처하고 있다. 쉼 없이 들려오는 존재의 목소리를 겸허히 받아적은 행위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영혼의 전이와 초월적인 소통을 상징하고 있다. 결국 이 시는 시 쓰기란 인위적인 창작이 아니라 가슴으로 떨어지는 별똥별 같은 계시를 온몸으로 수용하는 신성한 과정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시 「하늘 그물」, 「파도의 오진」, 「빛과 어둠에 관하여」, 「거미그물」, 「관념의 시」 등은 존재의 근원적인 고립과 삶의 모순을 탐구하는 시적 성찰을 하고 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굴레를 상징한 '그물'의 이미지를 핵심 구조로 사용하고 있다. 시인은 자연 현상과 사물 속에서 발견한 단절과 소멸의 징후를 포착하여, 인간이 겪는 존재론적 허무와 미로 같은 삶의 질서를 감각적인 언어로 묘사해 놓고 있다. 특히, 사계절의 순환이나 나뭇잎의 바스락거림 같은 찰나의 순간을 통해 인생의 유한성을 고백하며, 풀리지 않는 삶의 의문들을 시 쓰기라는 행위로 승화하려는 구도자적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결국 그의 시들은 세상의 이치를 다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끊임없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시인의 숙명과 내면적 갈등을 우아하고도 서글픈 어조로 담아내고 있다.
그중에서 「관념의 시」를 살펴보자.
사계절은
내가 간절히 원했기에
가고 오는 것
하늘과 땅의 이치를
이해 못 해
시를 쓰는가 보다
삶, 나뭇잎 같이
종국엔 바삭거리며 부서져
뒹구는 것을
내 머리는
오래전부터
의문으로 가득 차 있다.
- 「관념의 시」 전문
이 시에서 보는 바처럼, 시적 화자는 인간의 유한한 운명과 세상의 섭리를 탐구하려는 철학적 성찰을 담아내고 있다. 시인은 세상에게 자신에게 '질문'을 던질 줄 알아야 한다. 그 질문을 부여잡고 사유가 깊어져야 한다. 한 편의 시는 시인이 던진 질문과 그 질문에 대한 깊은 이해와 깨달음이다. 시를 접하고 책을 읽는 이유도 저자가 던진 질문과 이해를 들여다보는 작업인 것이다. 질문을 하며 깊은 이해에 다다르는 걸음이 시다. 릴케는 "쓰지 않고는 죽어도 못 배길 속마음이 우러나올 때 비로소 시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 속마음이 이 시에서 느껴진다. 시적 화자는 "하늘과 땅의 이치를/ 이해 못 해/ 시를 쓰는가 보다"고 고백한다. 그 담백한 고백 속에 출렁이는 질문들이 보인다. "내 머리는/ 오래전부터/ 의문으로 가득 차 있"다는 시적 화자는 반드시 좋은 시를 쓸 것이다. 시적 화자는 자연의 순환이 개인의 염원에서 비롯된다는 객관적 진리 사이의 간극을 시 쓰기를 통해 메우려 하고 있다. 특히 나뭇잎처럼 바스러져 결국 소멸하고 마는 존재의 덧없음을 강조하고 있으며, 해결되지 않는 근원적인 의문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시는 우주의 이치를 온전히 깨닫지 못한 인간이 겪는 지적 고뇌와 실존적 탐색의 과정을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게 묘사하고 있다.
그의 시 「오류로부터」, 「고독」, 「고독의 확신」, 「꿈속의 꿈」, 「나로부터의 세계」 등은 존재의 근원적인 고독과 비정상적인 감각이 지배하는 내면의 풍경을 감각적인 언어로 재구성하고 있다. 시인은 탄생보다 종결이 앞서고 사물이 거꾸로 뒤집히는 전도된 세계관을 통해, 삶의 안온함 대신 파괴되고 해부되는 자아의 고통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특히 현실과 꿈의 경계가 무너진 공간에서 시적 화자는 자신을 한낱 먼지나 고깃덩이로 치환하며, 소멸조차 마음대로 이룰 수 없는 지독한 실존적 허무를 탐구하고 있다. 결국 그의 시들은 파편화된 이미지들을 연결하여, 빛이 보이지 않는 새벽과 황량한 벌판 속에 홀로 던져진 인간의 고립된 본질을 시적 형상화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는 듯하다.
그중에서 「고독」을 만나 보자.
낙인이 찍힌 새벽
단단한 잠 부순다
방안엔 늙은 거미가 산다
취해 거꾸로 나는 새
창문에 부딪히고
이미 창밖엔
동트는 소리가 와 있는데
들리지 않는다
침묵의 음성이 새벽새 울음에 잠긴다.
- 「고독」 전문
이 시에서 보는 바처럼, 시적 화자는 고립되어 맞이하는 새벽의 정적과 감각적 단절을 한 폭의 그림처럼 묘사하고 있다. 감각의 서식처에서 만나는 고독이 늙은 거미, 새벽, 침묵으로 이어지며 아름다운 파동을 일으키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을 눈에 보이는 구상으로 시적 형상화하기까지 시인은 시적 대상에 접근하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호명해야 한다.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는 시어와 시어 사이를 오가며 시의 골조를 세워야 한다. 기초를 다지며 시의 기둥을 세워 최대치의 효과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 쓰기는 고독이라는 존재에게 외로움이라는 존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거는 작업이다.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새벽이라는 공간에 주저앉아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돌보지 않고 방치한 감성, 그 고독이 시적 화자에게 말을 걸고 있다. "낙인이 찍힌 새벽/ 단단한 잠 부"수고 있다. 잠들지 못한 새벽을 낙인이 찍혀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낙인은 심리학적으로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부정적인 꼬리표를 붙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일까, 낙인이 찍힌 새벽의 이미지가 고독의 의미를 더 증폭시키고 있다. 단단한 잠에서 깨어난 시적 화자는 거미와 비틀거리는 새라는 이미지를 통해 내면의 고독과 정체된 시간을 드러내며, 외부 세계와의 연결이 끊어진 소외감을 투영하고 있다. 특히, 창밖에서는 이미 아침이 밝아오고 있음에도 정작 시적 화자에게는 그 소리가 닿지 않는다는 표현을 통해, 소통이 부재한 침묵의 무게를 극대화시켜 놓고 있다. 결국 이 시는 고독의 굴레에 갇힌 개인이 겪는 실존적인 허무와 고립된 의식을 감각적인 이미지로 시적 형상화해 놓고 있다.
그의 시 「생각의 모양」, 「영원」, 「기억의 습관」, 「사람의 함량」, 「바람의 자화상」 등은 인간의 내면세계를 이루는 사유의 시간, 기억과 자아에 관한 시적 성찰을 담아내고 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생각의 역동성을 강조하며 삶의 유연함 속에서 영원을 탐구하는 인간의 겸손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기억이 온몸에 각인되는 습관적인 과정과 타인을 판단하지 않고 존재 자체로 수용하려는 깊은 성찰이 핵심적인 정서로 흐르고 있다. 결국 외부의 바람조차 자아의 투영임을 깨닫는 과정을 통해, 시적 화자는 고통스러운 직면을 넘어 자기 자신을 구원하고 이해하는 일의 숭고함을 전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중에서 「바람의 자화상」을 탐구해 보자.
거울을 깬 자 침묵을 신고
창으로 들이닥친
바람의 고뇌
팔짱을 낀 채 거울 조각이 뒹구는
이유를 감식하며
나의 언어로 인해 바람은 방향을 잃고
창을 들이받았다
바람의 고뇌는 먼 데서 오는 내가
풀어줘야 할
나 자신이었다.
- 「바람의 자화상」 전문
이 시에서 보는 바처럼, 시적 화자는 거울이라는 매개체를 깨뜨리며 시작되는 자기 성찰의 과정을 감각적인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문학에서 자화상은 언어를 통해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고, 내면의 본성과 양심, 지난 삶을 성찰하는 자기 고백적 작품을 의미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명제처럼, 작가는 자화상을 통해 "나는 나를 그린다, 고로 존재한다"를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일이기도 하다.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관점에서 보면, 자화상은 자신의 본질을 외부의 시선(타자의 눈)으로 객관화하려는 시도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 시는 눈길을 끈다. "바람의 고뇌는 먼 데서 오는 내가/ 풀어줘야 할/ 나 자신"이다. 사회적 가면을 쓴 '나'의 안쪽에서 웅크려 있는 '나'를 자유롭게 해주고 싶어한다. 타인의 시선에 갇혀 있지 말고 본래적인 자신을 만나라는 실존적 투쟁을 시적 화자는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가면을 쓴다. 시적 화자는 "나의 언어로 인해 바람은 방향을 잃고/ 창을 들이받았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 지점에서 어떤 방향을 잡으려고 한다. 시적 화자는 산산조각 난 거울 조각을 응시하며 내면의 갈등을 상징하는 바람의 고뇌를 마주하고, 자신의 언어가 지닌 한계로 인해 방황하는 자아의 모습을 발견하고 있다. 결국 외부의 소음처럼 느껴졌던 바람의 실체는 타자가 아닌 멀리서 찾아온 자기 자신이었음을 깨달으며 깊은 존재론적 성찰에 도달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파편화된 자아를 직시함으로써, 진정한 내면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구도자적 여정을 담아내고 있다.
그의 시 「지석강」, 「장례식장」, 「고소공포」, 「바람과 통하다」, 「비정한 도시에서 살아내는 법」 등은 삶과 죽음의 경계, 그리고 삭막한 현대사회 속에서 느끼는 고독한 성찰을 연작의 형태로 담아내고 있다. 시인은 강을 건너는 망자나 이름 모를 조문객들의 정경을 통해 인생의 허무함을 응시하면서도, 끝없는 욕망이 들끓는 높은 곳 대신 낮은 곳의 평화를 택하며 세상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 특히, 인간을 외면한 바람이나 차가운 도시의 비정함을 묘사함으로써, 존재의 본질을 잃어가는 세태에 대한 비극적 인식과 실존적 고뇌를 차분하고도 서늘한 문체로 엮어내고 있다.
그중에서 「바람과 통하다」와 대화를 나눠 보자.
바람을 붙잡고 심문하듯 묻는다
여기까지 오면서
무엇을 보았으며 어떤 걸 들었는지
바람은 그만 울어버린다
잠겼던 입을 연다
세상 끝에서 왔지만
사람에 대해선 침묵하겠다고
사람들이 모르는 사이
바람이 사람들을 버렸다.
- 「바람과 통하다」 전문
이 시에서 보는 바처럼, 진실을 갈구하는 시적 화자가 바람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세상의 소식을 듣고자 시도하는 긴장감 넘치는 대화를 담고 있다. 시적 화자는 바람에게 무엇이 궁금해 심문하듯 묻는 것일까. 단순한 질문이 아닌 '심문하듯'에서 어떤 간절함과 집요함이 느껴진다. 바람은 시적 화자가 모르는 생의 외곽까지 찾아가 그 삶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귓속에 담았을 것이다. 꽃이 피는 내력과 물결의 떨림까지 낱낱이 기록하며 왔을 것이다. 그런데 시적 화자의 질문에 바람은 울며 주저하며 망설이다가 침묵을 선택한다. 바람의 침묵 속에서 시적 화자의 아픔이 느껴진다. 바람에게 어떤 명쾌한 대답을 듣고 싶었을 텐데, 바람은 끝내 침묵한다. 바람은 기후 위기, 기후 재앙을 사람들이 불러왔다며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바람에게 질문하듯 시적 화자가 우리에게 던진 화두가 결코 가볍지 않다. 짧지만 강렬한 느낌의 시다. "사람들이 모르는 사이/ 바람이 사람들을 버렸다"가 내내 가슴에 남는다. 끈질긴 추궁 끝에 마침내 입을 연 바람은 세상을 두루 살피고 돌아왔으나, 정작 인간의 실상에 대해서는 침묵하기로 결심했다는 비극적인 선언을 내놓고 있다. 결국 이 시는 인간 소외와 단절이라는 주제를 심화하며,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자연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고 버려진 인류의 고독한 처지를 서늘하고도 우아하게 고발하고 있다.
그의 시 「황사」, 「마른 천둥」, 「소리.2」, 「겨울의 강」, 「창」 등은 황사와 소음, 그리고 차가운 겨울 강과 같은 황폐한 현대적 정경을 통해 단절되고 상처 입은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시인은 폭력적인 문명의 속도감과 소외된 개인의 고통을 감각적인 이미지와 날카로운 언어로 시적 형상화하며, 소통이 부재한 세상에서 느끼는 실존적 비애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안과 밖을 가르는 '창'의 비유를 통해 경계에 선 존재의 고독을 탐구하고, 치유되지 않는 상처 속에서도 끝내 마주해야 하는 서늘한 현실을 투영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의 시들은 메마른 일상 속에서 파편화된 자아의 정체성을 되묻고, 차단된 세계로 인해 방황하는 인간의 비극적 정서를 우아하게 압축해 놓고 있다.
그중에서 「소리 2」를 탐구해 보도록 하자.
유년의 기억조차 토하게 하는
아이 부르는 소리
지린내 나는 담벼락에 쫓겨가는
바람 소리
뉘 집 허술한 문 사이로
달력에만 있는
내일이 찢겨 나간다
귀를 막아도 귀를 잘라버려도
기어이 파고드는
저들의 비웃는 얼굴
가만히 있기에 숨이 차올라
사내의 심장에
금이 간다
금간 심장을 때움질하는
산소 용접기
발광하는 소리에 눈이 따갑다.
- 「소리 2」 전문
이 시에서 보는 바처럼, 시적 화자는 유년기의 고통스러운 기억과 거친 산업 현장의 소음을 결합하여 현대인의 상처받은 내면을 감각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시적 화자의 내면에 어떤 상처가 있길래 "유년의 기억조차 토하게 하는/ 아이 부르는 소리"가 자리하고 있는 것일까. 무슨 사연이 있길래 "귀를 막아도 귀를 잘라버려도/ 기어이 파고드는/ 저들의 비웃는 얼굴"이 밀려드는 것일까. 성인도 아니고 아이가 그 아픔을 어떻게 견디며 여기까지 걸어왔을까. 사연과 상처를 정확히 알리지 않고 시의 모호성으로 두고 있기에 우리도 시 속에서 우리의 상처를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시는 심장과 혈관을 들쑤시며 온몸을 돌아나온 내상內傷 같은 것이다. 겉으로는 멀쩡하나 작은 통증에도 비명을 지른다. 시적 화자는 기억의 지층에 숨어 있던 슬픔을 길어 올려 붉게 터뜨리는데 "숨이 차올라/ 사내의 심장에/ 금이 간"다. 먼먼 기억이 이제는 가깝고 뜨겁게 사내를 아프게 하고 있다. 다행히도 "금간 심장을 때움질하는/ 산소 용접기/ 발광하는 소리"가 들린다. 시각과 청각 이미지의 날카로운 결합을 통해 희망 없는 내일이 부정당하는 비극적 정서를 전달하며, 분열된 자아의 고통을 '금간 심장'이라는 강렬한 비유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소리를 물리적인 통증으로 치환함으로써, 소외된 개인이 느끼는 실존적 위기감과 질식할 듯한 압박감을 생생하게 시적 형상화해 놓고 있다. 결국 이 시는 파괴된 인간성을 복구하려 애쓰는 현대인의 처절한 몸부림을 응축하여 보여주고 있다.
그의 시 「창 너머」, 「세상을 향한 변명」, 「아직 쓰이지 않은 시」, 「다짐이 웃으며 거기에 있었다」, 「생의 비밀」 등은 고단한 노동의 현실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예술적 성찰을 담담하면서도 깊이 있는 어조로 그려내고 있다. 시인은 창밖으로 흐르는 타인의 삶을 관찰하며 세상을 마주하는 도구로서 시 쓰기의 가치를 탐구하고 있고, 고된 일과 끝에 마시는 술 한 잔으로 생의 비애와 의지를 동시에 녹여내고 있다. 특히, 스스로를 찾아가는 과정으로서의 창작 활동을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숭고한 일로 정의하며, 육체적 고통이 수반되는 일상 속에서도 꿋꿋이 자아를 지키려는 결연한 다짐을 보여주고 있다.
그중에서 「생生의 비밀」의 의미를 탐색해 보자.
산다는 건 농주農酒를 마시고
가슴을 데우는 거지
하루가 쌓여 세월이 되는 걸
비밀로 하면
언젠간 떠난다는 게 이해되지 않지
성벽 너머
생이 궁금해지면
떠날 때가 온 것
성근 그물을 비껴가고
내 몫이 거의 소멸해 버리고
생의 비밀은
아려오는 하루
농주로 가슴을 데우는 거지.
- 「생生의 비밀」 전문
이 시에서 보는 바처럼, 시적 화자는 인간의 삶을 농주로 가슴을 데우는 행위에 비유하여, 유한한 생명의 본질을 소박하면서도 깊이 있게 성찰하고 있다. 농주農酒는 고된 농사일의 피로를 풀어주고 허기를 채워주던 막걸리를 의미한다. 한국 문학 속에서는 서민의 애환, 연대감, 한국적 정서를 상징하기 위해 다루어져 왔다. 천상병 시인의 「막걸리」 에서는 가난하고 고달픈 삶 속에서도 막걸리를 통해 인생의 여유와 달관, 소박한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신경림 시인의 「농무農舞」 에서는 고된 노동의 끝이자 울분을 달래는 매개체로 농주가 등장해, 농촌 공동체의 연대감과 시대적 아픔을 보여준다. 이 시에서의 농주는 시적 화자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매개체로서 끈질긴 생명력과 맞닿아 있다. 그 생명력에 대해 "산다는 건 농주農酒를 마시고/ 가슴을 데우는 거지"라고 말하며 시의 문을 열고 있다. 시의 문을 닫으면서도 "생의 비밀은/ 아려오는 하루/ 농주로 가슴을 데우는 거지"라고 말하며 마침표를 찍고 있다. 생의 시작과 끝을 농주와 함께하고 싶은 시인은 세월이 쌓여 결국 죽음에 이른다는 소멸의 질서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존재의 신비가 풀린다고 역설하며, 삶의 끝자락에서 느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이별의 신호로 정의하고 있다. 결국 생의 비밀이란 거창한 진리가 아니라, 저물어가는 하루를 따스한 술 한 잔으로 달래며 묵묵히 견뎌내는 과정 그 자체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시 「중고할인매장」, 「광장」, 「죽은 날들의 비애」, 「산사에서」, 「허공에서의 만찬」 등은 물건과 공간, 그리고 인간의 내면을 관찰하며 존재의 생명력과 상실감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버려진 중고 물품이 새로운 인연을 통해 재탄생하는 과정을 긍정하면서도, 광장이나 산사와 같은 공간에서 마주하는 고독과 허무의 정서를 깊이 있게 파고든다. 시인은 소리 없는 죽음이나 텅 빈 만찬과 같은 이미지를 통해 삶의 비애와 무상함을 드러내며, 독자로 하여금 비워진 마음으로 세상을 응시하게 만들고 있다. 결국 그의 시들은 낡고 사라져가는 것들 속에서 본질적인 존재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성찰적인 목적을 지니고 있다.
그중에서 「산사에서」 에 대해 관찰해 보자.
하늘엔 흰 구름
먼 곳에서 들려오는 짐승 소리
여기는 적막이 소리다
산새가 듣는다
처음이 아닌 듯 무심히 운다
무심을 깨달았나
풍경이 고요를 깨우고
오가는 말 속이 텅 비어 있다
산새는 알고 있다
울음 소리가 침묵 속으로 미끄러진다
한참을 생각하다
떨어지는 눈을 어깨에 얹고
멍하니 있다.
- 「산사에서」 전문
이 시에서 보는 바처럼, 시적 화자는 산사라는 공간에서 마주한 절대적인 고요와 무심의 경지를 감각적인 언어로 그려내고 있다. "먼 곳에서 들려오는 짐승 소리/ 여기는 적막이 소리"다. 적막이 소리라니, 새로운 해석이다. 시는 언어로 그린 이미지 그림이라는 사실을 실감나게 한다. 쓸쓸하다거나 외롭다는 식의 감정을 토로하지 않고 그곳에서 만날 수 있는 산새, 짐승 소리 등의 자연물로 환치시켜 배열해 놓고 있다. 첫 연에서 만난 그 적막은 마지막 연 "떨어지는 눈을 어깨에 얹고/ 멍하니 있다"의 적막과 연결되어 있다. 산새가 적막을 들은 것일까. 그래서 "처음이 아닌 듯 무심히 운" 것일까. 아니면 산새가 무심을 깨달은 것일까. 무심無心은 불교적 의미에서 속세의 일에 얽매이지 않고 초연한 상태를 뜻한다. 분별, 집착, 망념이 없는 참된 마음을 의미한다. 산새의 울음에 겹쳐진 시적 화자의 마음이 읽힌다. 시적 화자는 짐승의 울음이나 풍경 소리마저도 적막의 일부로 수용하며, 세속적인 언어의 공허함을 넘어 침묵과 하나가 되는 명상적 경험을 전달하고 있다. 특히, 자연의 움직임을 통해 마음속 번뇌가 사라진 비어 있는 상태를 성찰함으로써,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과정을 우아하게 묘사하고 있다. 결국 이 시는 외부의 소음이 내면의 평화로 찾아드는 찰나를 포착하여, 독자로 하여금 물아일체의 경지를 시각적 이미지로 체험하게 하고 있다.
그의 시 「창문 밖 삽화」, 「환절기」, 「서호에서」, 「성에꽃」, 「낯선 강」 등은 계절의 변화와 일상의 여정 속에서 마주하는 고독과 이별의 정서를 한 폭의 수채화처럼 담아내고 있다.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내면의 아픔과 과거의 기억을 시적 형상화한 그의 시들은, 차가운 성에꽃이나 낯선 강물처럼 피할 수 없는 슬픔조차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수용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떠나가는 계절과 사람을 향해 서글픈 안부를 건네며, 상처가 아물지 않더라도 묵묵히 흘러가야 하는 인생의 숙명적 흐름을 서정적이고 절제된 언어로 갈무리하고 있다. 결국 그의 시들은 상실의 고통을 외면하기보다 그 너머에 존재하는 고고한 고립과 존재의 흔적을 성찰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그중에서 「창문 밖 삽화」를 감상해 보자.
당신의 생각이 가시덩굴일 때
창문을 열면
젖다 만 하늘이 있고
넋 나간 사내 하나
자신의 그림자 뒤에 숨어
백만 송이 들꽃 핀 벌판에서
서성이고 있다
새가 사내 주위를 맴돈다
떨어뜨린 깃털 속에
한숨이 박혀 있다
외로운 짐승이
이젠 산으로 오라 한다.
- 「창문 밖 삽화」 전문
이 시에서 보는 바처럼, 시적 화자는 내면의 고통이 가득한 순간 창밖의 풍경을 통해 투영되는 고독과 구원의 갈망을 한 폭의 그림처럼 묘사하고 있다. 문학에서 '가시덩굴'은 주로 상처, 고통, 저주, 시련, 혹은 헤어 나오기 힘든 집착과 피폐한 환경을 상징하는 비유적 모티프로 자주 등장한다. 식물 고유의 날카로운 가시와 복잡하게 얽히는 덩굴의 특성이 인간의 내면적 상처나 비극적인 운명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현대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류가 생명력을 상실한 채 헤매는 상태를 '가시덩굴 숲'에 비유했다. 그에게 가시덩굴 숲은 본래의 존재 의미를 상실하고 무의미한 실존에 머물고 있는 인간의 처지를 상징한다. 그와 궤를 같이하고 있는 가시덩굴이 이 시에서도 읽힌다. "당신의 생각이 가시덩굴일 때/ 창문을 열"고 있다. 창문을 여는 행위만으로도 어떤 해법이 보이는 듯하다. 창밖에는 넋이 나간 사내가 있는데 "자신의 그림자 뒤에 숨어/ 백만 송이 들꽃 핀 벌판에서/ 서성이고 있"다. 왜 사내는 자신의 그림자 뒤에 숨은 것일까. 아직은 자신의 상처와 대면할 자신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어떤 집착 또는 피폐한 상황에 발목이 잡혀 있는 것일까. 다행인 것은 눈보라가 불어오는 벌판이 아니라 백만 송이 들꽃 핀 벌판에서 서성이고 있다. 희망적인 긍정의 신호가 느껴진다. 시적 화자는 뒤엉킨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창을 열고, 광활한 들녘에서 자신의 그림자 뒤에 숨어 방황하는 상실된 자아의 모습을 발견한다. 시 속 깃털에 박힌 한숨과 산으로 이끄는 외로운 짐승의 부름은 단절된 외로움을 넘어 치유와 안식을 향해 나아가려는 영혼의 여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의 시 「개미」, 「몽돌」, 「멍」, 「비워지면」, 「이팝나무 아래서」 등은 고난과 인내의 시간을 거쳐 삶의 진실을 발견하는 과정을 섬세하고도 서정적인 시어로 그려내고 있다. 시인은 개미의 성실한 노동과 둥글게 마모된 몽돌의 형상을 통해 자기 희생과 내면의 성숙이라는 주제를 시적 형상화하며, 과거의 아픔이 남긴 멍 자국마저도 삶의 일부로 수용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비워냄을 통해 슬픔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지워지지 않는 생명력을 노래함으로써, 독자에게 고통을 견뎌낸 존재가 지닌 아름답고 단단한 숭고함을 전달하고 있다.
그중에서 「멍」의 의미 속으로 들어가 보자.
핏발 선 눈동자
아득한 그 날들 감긴다
옛날은 아직 끝나지 않는다
오늘도 물 먹은 종이처럼 늘어져
누워 허공만 본다
숨어 살던 바람아
너도 멍들었구나.
- 「멍」 전문
이 시에서 보는 바처럼, 시적 화자는 과거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무기력한 정적 속에 침잠해 있는 내면의 초상을 그려내고 있다. 프랑스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는 인간은 '몸'을 통해 세계를 지각하며, 몸에 남은 멍이나 상처는 우리가 세계와 부딪히며 살아가는 실존적 증거라고 했다. 하지만 그 실존적 증거인 멍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기에 아프다. "아득한 그날들 감긴다// 옛날은 아직 끝나지 않는다" 시간은 흘러 옛날은 먼먼 곳에 있어야 하는데 그 옛날이 오늘의 자리에 있는 것이다. 오늘의 그 자리가 멍으로 퍼렇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멍든 슬픔으로 여전히 아리다. 염세주의 철학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는 인간의 삶이 '고통'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와 같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겪는 실패, 상실, 좌절 등 마음에 새겨진 감정적인 상처와 멍은 아무리 노력해도 피할 수 없는 실존적 고통의 증거라고 말했다. 이 시는 거기에 더해 "숨어 살던 바람아/ 너도 멍들었구나"라고 말하고 있다. 자연물인 바람까지 멍들었다는 것이다. 바람은 온몸에 멍이 들어도 다시 일어나 달려가는 자세로 살아간다. 그 바람에게서 어떤 동질감과 위로가 느껴진다. 시적 화자는 "옛날은 아직 끝나지 않는다"는 표현을 통해 치유되지 않은 기억이 현재를 잠식하고 삶을 무겁게 짓누르는 양상을 '물 먹은 종이'라는 감각적인 비유로 시적 형상화하고 있다. 허공을 응시하며 멍하니 누워 있는 시적 화자의 모습은 해소되지 않은 슬픔이 육체와 정신을 마비시킨 상태를 암시하고 있으며, 마지막 구절에서 바람과 나누는 교감은 고독한 존재들 사이에서의 연민을 품위 있게 드러내고 있다. 결국 이 시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가 어떻게 한 개인의 삶을 정지된 시간 속에 가두어 두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아내고 있다.
그의 시 「너와 나」, 「정물화」, 「사인 곡선」, 「나를 부르는 것」, 「새로움에 대하여」 등은 상실의 고통과 존재론적 고찰을 통해 삶의 본질을 탐구하며, 인간이 마주하는 어둠 속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생명력과 희망을 갈구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이별로 인해 빛을 잃은 상태를 우주적 파동이나 정적인 예술의 형상으로 치환하며, 죽어 있는 대상에 신의 숨결을 불어넣는 창조적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 고립된 고독과 절망의 순간에도 멈추지 않고 나아가야 한다는 강한 의지는, 결국 과거의 미망을 디디고 일어나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려는 숭고한 극복의 서사로 귀결되고 있다. 무엇보다 그의 시들은 유한한 삶의 굴레를 넘어 영원한 우주의 질서 속에서 자신을 재정립하려는 철학적 의도를 격조 높게 드러내고 있다.
그중에서 「정물화」의 정서를 살펴보자.
말을 걸어온다
빛을 받는 저것들이
담담히 그러나 힘 있게
빛이 비치는 창가에 놔 달라고
바람에 실려 오던 그때
눈물 떨구던 초목들이 보이게
화가 손으로
내 모습 찾았으나 손님처럼 나가
다시 동산으로 그러나
손발이 없다
화가는 정물화를 그렸지
생물을 그린 건 아니다
화가는 신의 음성을 듣는다
죽은 생명도 살려내는 화가는
신이었나.
- 「정물화」 전문
이 시에서 보는 바처럼, 시적 화자는 정물화라는 예술 형식을 통해 죽어 있는 대상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화가의 신비로운 창조적 능력을 성찰하고 있다. 정물화靜物畵는 꽃, 과일, 그릇 등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 사물을 미적 감각으로 배치하여 화폭에 담은 그림이다. 서양 미술사에서 정물화는 철학적 사유의 도구이자 시대의 세계관을 담는 매개체 역할을 해왔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반 고흐의 정물화인 〈구두〉를 보고 예술과 존재에 대한 깊은 철학적 논의를 펼쳤다. 이 시에서 "말을 걸어온다/ 빛을 받는 저것들이"에서 그와 같은 느낌들이 읽힌다. "빛이 비치는 창가에 놔 달라고// 바람에 실려 오던 그때/ 눈물 떨구던 초목들이 보이게"에서도 어떤 깊은 논의가 펼쳐지는 듯하다. 화폭에 담긴 사물들은 한때 살아 있던 과거의 기억을 간직한 채 창가로 나가고 싶어하는 역설적인 의지를 보이지만, 결국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정적인 존재로 남게 된다. 그러나 시인은 이 정지된 사물을 다시 살려내는 화가의 행위를 신의 음성을 듣는 과정으로 묘사하며 예술가를 죽음에서 생명을 건져 올리는 숭고한 창조주의 모습으로 시적 형상화하고 있다. 따라서 이 시는 정지된 사물과 예술가의 시선이 만날 때 발생하는 초월적인 생명 탄생의 순간을 시적 언어와 이미지 구현으로 탐구하고 있다.
그의 시 「내 영혼을 묶다」, 「하늘 조각이 탄다」, 「꽃잎 지는 날 비가 내리면」, 「밝은 물에 배 띄워 가다」, 「달의 무게」 등은 자연의 순환과 계절의 변화를 통해 인간 내면의 감정과 영혼의 성찰을 노래한 서정시들이다. 이 시들은 나무, 달, 비와 같은 자연물을 매개로 고통과 비움을 수용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고, 세속적인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초연한 정신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시인은 슬픔조차 삶의 일부분으로 끌어안는 인내와 회복의 미학을 추구하며, 독자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마음의 무게를 견디고 존재의 근원적인 고독을 사유하게 하고 있다. 그의 시들은 결국 고난 속에서도 잃지 않는 내면의 평온과 정화라는 주제를 향해 일관되게 나아가고 있다.
그중에서 「달의 무게」의 내면으로 파고들어 가 보자.
무심한 하늘, 달만이 감정 있다
모양이 변하면 밝기도 변한다
마마 앓은 자국
밤 구름으로 세수하고
텅 빈 하늘
달은 혼자 빛나는데
달은 욕심이 없다
날마다 야위어 가지만
다시 살찐다
달은 무게로 자신을 견딜 뿐이다.
- 「달의 무게」 전문
이 시에서 보는 바처럼, 시적 화자는 감정이 메마른 하늘에서 홀로 빛의 변화를 감내하는 달의 고독한 존재감을 서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달은 예로부터 문학 속에서 신성성, 여성성, 그리고 순환의 상징이자 깊은 고독과 그리움의 매개체로 다루어져 왔다. 고전 시가에서 달은 어둠을 밝히는 존재이자 기원(소원)의 대상이었다. 근현대 시에서는 민족의 애환과 서정적인 그리움을 표현하는 데 쓰였으며 오늘에 와서 달은 이상향이나 환상적인 공간 또는 어떤 상징적인 존재로 표현된다. 이 시에서도 달은 어떤 상징적인 존재로 다가온다. 그 존재는 "마마 앓은 자국/ 밤 구름으로 세수하고" 있다. 2행만으로도 아름다운 동화 한 편을 읽는 느낌이다. 그 존재는 "욕심이 없다/ 날마다 야위어 가지만/ 다시 살찐"다. 문득 저 달의 이야기를 들으며 잠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시적 화자는 달이 차오르고 기울며 자신의 형상을 바꾸는 과정을 욕심 없는 자기 수양의 태도로 바라보며, 외적인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숭고함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달이 스스로의 형체를 깎아내고 다시 채우는 순환은 외부의 시선에 반응하는 게 아니라, 오직 자신의 무게를 묵묵히 버텨내는 의지를 상징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시는 텅 빈 허공 속에서도 묵직하게 자리를 지키는 달을 통해, 내면의 고통을 견디며 스스로를 완성해 가는 생의 경건함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처럼, 주병도 시인의 시들은 고독한 단독자로서의 자아를 탐구하며 삶과 죽음, 그리고 존재의 심연을 성찰하는 총 60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에서 '허공에 걸린 존재'로서 인간의 근원적인 불안과 인식의 한계를 노래했다면, 제2부에서는 '세상을 건너는 사람'의 시선으로 냉혹한 현실과 타인과의 관계를 응시하고 있고, 제3부에서는 '꽃은 다시 바람을 만나다'라는 주제 아래 비움과 회복의 정서를 이미지로 시각화해 놓고 있다. 특히, 시인은 허공, 거미그물, 수평선과 같은 초월적이고 날카로운 이미지를 통해, 일상의 이면을 포착하며, 삶의 고통을 '농주'나 '시 쓰기'라는 행위로 승화시키려는 구도자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궁극적으로 주병도의 시들은 찰나의 삶 속에서도 영원과 본질을 향한 질문을 멈추지 않음으로써, 독자에게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정갈하고도 깊은 서정적 통찰을 제공해 주고 있다.
앞으로, 제3, 제4시집을 펴내면서 여생을 보내기를 기원한다. 고독과 싸우면서, 외로움을 달래면서, 함께하는 동반자가 시가 되기를 바란다. 꾸준히 창작한 시들을 몇 년 만에 한 권씩 열매로 묶어 세상에 내보내는 즐거움을 지속적으로 늘려가길 소망한다.
| 평설 |
주병도 시인의 제2시집
출간을 축하하며
박 덕 은
(문학박사, 전 전남대학교 교수,
문학평론가, 광주특별시문인협회 회장)
주병도 시인은 1968년 2월 25일 전남 고흥에서 아버지 주진문 씨와 어머니 임임순 씨 사이에서 6남 1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그는 고흥에서 고흥남 초등학교, 고흥 중학교를 거쳐, 광주로 올라와 광주사레지오 고등학교를 다녔고, 조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3년에 김혜영과 결혼했으나, 아직 슬하에 자녀가 없다.
한동안 수많은 방황과 노동자 생활을 하다가, 친형의 권유로 학원 강사 활동을 수년간 했다.
그는 월간지 《문학공간》에 「보라색 물감」 외 4편으로 신인문학상을 수상하여 문단에 데뷔를 했다.
2024년에 첫 시집 『나는 분수처럼 자각한다』를 출간했다.
그의 인생관은 '어떠한 경우에도 살자'이다.
어느 날, 그는 이렇게 인생 목표를 세웠다.
"시로써 우뚝 서는 시인이 되자."
자, 그러면 지금부터 주병도 시인의 시 세계를 탐구해 보기로 하자.
그의 시 「수평선에 눈을 베였다」, 「시의 문」, 「벽」, 「어떤 피」, 「그림」 등은 고통스러운 성찰을 통해 도달한 예술적 구도와 영적 변이의 과정을 시적 언어로 형상화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날카로운 자연의 경계에서 얻은 상처를 시작으로, 자신의 영혼을 시와 맞바꾸는 결단을 내림으로써, 우주적 진리를 받아적은 전령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내부의 자아를 침잠시키고 침묵과 비움을 선택한 끝에, 세상은 거꾸로 뒤집힌 그림처럼 낯설고도 선명한 초월적 심연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드러나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의 시들은 고독한 사유의 벽을 넘어 보이지 않는 실재를 감각적으로 포착하려는 구도자적 고백이라 할 수 있다.
그중에서 「시詩의 문」을 살펴보자.
시의 문이 열린 것 같다
문을 알아내기까지
반백 년이 흘렀다
시는 나에게 영혼을 바꾸자 했다
그래 허락했다
오늘도 말을 걸어온다
받아 적으라고
나를 통과하여 우주로 나간다
영혼을 바꾸길 잘했다
시는 유성처럼 떨어진다
가슴에 내려앉아 말한다
받아 적으라고.
- 「시詩의 문」 전문
이 시에서 보는 바처럼, 시적 화자는 평생의 기다림 끝에 마침내 시적 영감의 문을 열게 된 경이로운 순간을 노래하고 있다. 시는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리도 강렬한 것일까. 먹고 사는 일도 아닌데 시를 쓰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는 사람들. 기억과 감각의 심층으로 들어가면 저마다 어떤 무늬들이 살아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유년의 머리맡에서 발화하는 시적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이다. 그 오래된 풍경은 아득하고 다정한 인기척을 낸다. 그 인기척에 반응하는 사람들이 시인인 것이다.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에,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시인은 서 있다. 때로는 식물의 유전자를 대물림한 꽃과 나무의 표정으로, 때로는 기후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구름의 목소리로 시인은 다가간다. 그래서일까, 시적 화자는 "시는 나에게 영혼을 바꾸자 했다/ 그래 허락했다"라고 말한다. 시를 향한 강렬한 이끌림이 느껴진다. 더불어 시인의 내일이 기대가 된다.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영혼을 시와 바꾸기를 잘했다는 시적 화자. 이 자세로 나아간다면 분명 좋은 시를 만날 것이다. 감각을 채집하고 사유의 함량을 늘리며 자신만의 시적 궤적을 만들면 된다. 시적 화자는 자신의 영혼을 시와 맞바꿈으로써 자아를 비우고, 그 비워진 내면을 통해 우주의 언어가 흐르도록 허락하는 통로가 되기를 자처하고 있다. 쉼 없이 들려오는 존재의 목소리를 겸허히 받아적은 행위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영혼의 전이와 초월적인 소통을 상징하고 있다. 결국 이 시는 시 쓰기란 인위적인 창작이 아니라 가슴으로 떨어지는 별똥별 같은 계시를 온몸으로 수용하는 신성한 과정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시 「하늘 그물」, 「파도의 오진」, 「빛과 어둠에 관하여」, 「거미그물」, 「관념의 시」 등은 존재의 근원적인 고립과 삶의 모순을 탐구하는 시적 성찰을 하고 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굴레를 상징한 '그물'의 이미지를 핵심 구조로 사용하고 있다. 시인은 자연 현상과 사물 속에서 발견한 단절과 소멸의 징후를 포착하여, 인간이 겪는 존재론적 허무와 미로 같은 삶의 질서를 감각적인 언어로 묘사해 놓고 있다. 특히, 사계절의 순환이나 나뭇잎의 바스락거림 같은 찰나의 순간을 통해 인생의 유한성을 고백하며, 풀리지 않는 삶의 의문들을 시 쓰기라는 행위로 승화하려는 구도자적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결국 그의 시들은 세상의 이치를 다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끊임없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시인의 숙명과 내면적 갈등을 우아하고도 서글픈 어조로 담아내고 있다.
그중에서 「관념의 시」를 살펴보자.
사계절은
내가 간절히 원했기에
가고 오는 것
하늘과 땅의 이치를
이해 못 해
시를 쓰는가 보다
삶, 나뭇잎 같이
종국엔 바삭거리며 부서져
뒹구는 것을
내 머리는
오래전부터
의문으로 가득 차 있다.
- 「관념의 시」 전문
이 시에서 보는 바처럼, 시적 화자는 인간의 유한한 운명과 세상의 섭리를 탐구하려는 철학적 성찰을 담아내고 있다. 시인은 세상에게 자신에게 '질문'을 던질 줄 알아야 한다. 그 질문을 부여잡고 사유가 깊어져야 한다. 한 편의 시는 시인이 던진 질문과 그 질문에 대한 깊은 이해와 깨달음이다. 시를 접하고 책을 읽는 이유도 저자가 던진 질문과 이해를 들여다보는 작업인 것이다. 질문을 하며 깊은 이해에 다다르는 걸음이 시다. 릴케는 "쓰지 않고는 죽어도 못 배길 속마음이 우러나올 때 비로소 시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 속마음이 이 시에서 느껴진다. 시적 화자는 "하늘과 땅의 이치를/ 이해 못 해/ 시를 쓰는가 보다"고 고백한다. 그 담백한 고백 속에 출렁이는 질문들이 보인다. "내 머리는/ 오래전부터/ 의문으로 가득 차 있"다는 시적 화자는 반드시 좋은 시를 쓸 것이다. 시적 화자는 자연의 순환이 개인의 염원에서 비롯된다는 객관적 진리 사이의 간극을 시 쓰기를 통해 메우려 하고 있다. 특히 나뭇잎처럼 바스러져 결국 소멸하고 마는 존재의 덧없음을 강조하고 있으며, 해결되지 않는 근원적인 의문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시는 우주의 이치를 온전히 깨닫지 못한 인간이 겪는 지적 고뇌와 실존적 탐색의 과정을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게 묘사하고 있다.
그의 시 「오류로부터」, 「고독」, 「고독의 확신」, 「꿈속의 꿈」, 「나로부터의 세계」 등은 존재의 근원적인 고독과 비정상적인 감각이 지배하는 내면의 풍경을 감각적인 언어로 재구성하고 있다. 시인은 탄생보다 종결이 앞서고 사물이 거꾸로 뒤집히는 전도된 세계관을 통해, 삶의 안온함 대신 파괴되고 해부되는 자아의 고통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특히 현실과 꿈의 경계가 무너진 공간에서 시적 화자는 자신을 한낱 먼지나 고깃덩이로 치환하며, 소멸조차 마음대로 이룰 수 없는 지독한 실존적 허무를 탐구하고 있다. 결국 그의 시들은 파편화된 이미지들을 연결하여, 빛이 보이지 않는 새벽과 황량한 벌판 속에 홀로 던져진 인간의 고립된 본질을 시적 형상화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는 듯하다.
그중에서 「고독」을 만나 보자.
낙인이 찍힌 새벽
단단한 잠 부순다
방안엔 늙은 거미가 산다
취해 거꾸로 나는 새
창문에 부딪히고
이미 창밖엔
동트는 소리가 와 있는데
들리지 않는다
침묵의 음성이 새벽새 울음에 잠긴다.
- 「고독」 전문
이 시에서 보는 바처럼, 시적 화자는 고립되어 맞이하는 새벽의 정적과 감각적 단절을 한 폭의 그림처럼 묘사하고 있다. 감각의 서식처에서 만나는 고독이 늙은 거미, 새벽, 침묵으로 이어지며 아름다운 파동을 일으키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을 눈에 보이는 구상으로 시적 형상화하기까지 시인은 시적 대상에 접근하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호명해야 한다.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는 시어와 시어 사이를 오가며 시의 골조를 세워야 한다. 기초를 다지며 시의 기둥을 세워 최대치의 효과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 쓰기는 고독이라는 존재에게 외로움이라는 존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거는 작업이다.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새벽이라는 공간에 주저앉아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돌보지 않고 방치한 감성, 그 고독이 시적 화자에게 말을 걸고 있다. "낙인이 찍힌 새벽/ 단단한 잠 부"수고 있다. 잠들지 못한 새벽을 낙인이 찍혀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낙인은 심리학적으로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부정적인 꼬리표를 붙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일까, 낙인이 찍힌 새벽의 이미지가 고독의 의미를 더 증폭시키고 있다. 단단한 잠에서 깨어난 시적 화자는 거미와 비틀거리는 새라는 이미지를 통해 내면의 고독과 정체된 시간을 드러내며, 외부 세계와의 연결이 끊어진 소외감을 투영하고 있다. 특히, 창밖에서는 이미 아침이 밝아오고 있음에도 정작 시적 화자에게는 그 소리가 닿지 않는다는 표현을 통해, 소통이 부재한 침묵의 무게를 극대화시켜 놓고 있다. 결국 이 시는 고독의 굴레에 갇힌 개인이 겪는 실존적인 허무와 고립된 의식을 감각적인 이미지로 시적 형상화해 놓고 있다.
그의 시 「생각의 모양」, 「영원」, 「기억의 습관」, 「사람의 함량」, 「바람의 자화상」 등은 인간의 내면세계를 이루는 사유의 시간, 기억과 자아에 관한 시적 성찰을 담아내고 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생각의 역동성을 강조하며 삶의 유연함 속에서 영원을 탐구하는 인간의 겸손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기억이 온몸에 각인되는 습관적인 과정과 타인을 판단하지 않고 존재 자체로 수용하려는 깊은 성찰이 핵심적인 정서로 흐르고 있다. 결국 외부의 바람조차 자아의 투영임을 깨닫는 과정을 통해, 시적 화자는 고통스러운 직면을 넘어 자기 자신을 구원하고 이해하는 일의 숭고함을 전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중에서 「바람의 자화상」을 탐구해 보자.
거울을 깬 자 침묵을 신고
창으로 들이닥친
바람의 고뇌
팔짱을 낀 채 거울 조각이 뒹구는
이유를 감식하며
나의 언어로 인해 바람은 방향을 잃고
창을 들이받았다
바람의 고뇌는 먼 데서 오는 내가
풀어줘야 할
나 자신이었다.
- 「바람의 자화상」 전문
이 시에서 보는 바처럼, 시적 화자는 거울이라는 매개체를 깨뜨리며 시작되는 자기 성찰의 과정을 감각적인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문학에서 자화상은 언어를 통해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고, 내면의 본성과 양심, 지난 삶을 성찰하는 자기 고백적 작품을 의미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명제처럼, 작가는 자화상을 통해 "나는 나를 그린다, 고로 존재한다"를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일이기도 하다.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관점에서 보면, 자화상은 자신의 본질을 외부의 시선(타자의 눈)으로 객관화하려는 시도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 시는 눈길을 끈다. "바람의 고뇌는 먼 데서 오는 내가/ 풀어줘야 할/ 나 자신"이다. 사회적 가면을 쓴 '나'의 안쪽에서 웅크려 있는 '나'를 자유롭게 해주고 싶어한다. 타인의 시선에 갇혀 있지 말고 본래적인 자신을 만나라는 실존적 투쟁을 시적 화자는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가면을 쓴다. 시적 화자는 "나의 언어로 인해 바람은 방향을 잃고/ 창을 들이받았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 지점에서 어떤 방향을 잡으려고 한다. 시적 화자는 산산조각 난 거울 조각을 응시하며 내면의 갈등을 상징하는 바람의 고뇌를 마주하고, 자신의 언어가 지닌 한계로 인해 방황하는 자아의 모습을 발견하고 있다. 결국 외부의 소음처럼 느껴졌던 바람의 실체는 타자가 아닌 멀리서 찾아온 자기 자신이었음을 깨달으며 깊은 존재론적 성찰에 도달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파편화된 자아를 직시함으로써, 진정한 내면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구도자적 여정을 담아내고 있다.
그의 시 「지석강」, 「장례식장」, 「고소공포」, 「바람과 통하다」, 「비정한 도시에서 살아내는 법」 등은 삶과 죽음의 경계, 그리고 삭막한 현대사회 속에서 느끼는 고독한 성찰을 연작의 형태로 담아내고 있다. 시인은 강을 건너는 망자나 이름 모를 조문객들의 정경을 통해 인생의 허무함을 응시하면서도, 끝없는 욕망이 들끓는 높은 곳 대신 낮은 곳의 평화를 택하며 세상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 특히, 인간을 외면한 바람이나 차가운 도시의 비정함을 묘사함으로써, 존재의 본질을 잃어가는 세태에 대한 비극적 인식과 실존적 고뇌를 차분하고도 서늘한 문체로 엮어내고 있다.
그중에서 「바람과 통하다」와 대화를 나눠 보자.
바람을 붙잡고 심문하듯 묻는다
여기까지 오면서
무엇을 보았으며 어떤 걸 들었는지
바람은 그만 울어버린다
잠겼던 입을 연다
세상 끝에서 왔지만
사람에 대해선 침묵하겠다고
사람들이 모르는 사이
바람이 사람들을 버렸다.
- 「바람과 통하다」 전문
이 시에서 보는 바처럼, 진실을 갈구하는 시적 화자가 바람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세상의 소식을 듣고자 시도하는 긴장감 넘치는 대화를 담고 있다. 시적 화자는 바람에게 무엇이 궁금해 심문하듯 묻는 것일까. 단순한 질문이 아닌 '심문하듯'에서 어떤 간절함과 집요함이 느껴진다. 바람은 시적 화자가 모르는 생의 외곽까지 찾아가 그 삶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귓속에 담았을 것이다. 꽃이 피는 내력과 물결의 떨림까지 낱낱이 기록하며 왔을 것이다. 그런데 시적 화자의 질문에 바람은 울며 주저하며 망설이다가 침묵을 선택한다. 바람의 침묵 속에서 시적 화자의 아픔이 느껴진다. 바람에게 어떤 명쾌한 대답을 듣고 싶었을 텐데, 바람은 끝내 침묵한다. 바람은 기후 위기, 기후 재앙을 사람들이 불러왔다며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바람에게 질문하듯 시적 화자가 우리에게 던진 화두가 결코 가볍지 않다. 짧지만 강렬한 느낌의 시다. "사람들이 모르는 사이/ 바람이 사람들을 버렸다"가 내내 가슴에 남는다. 끈질긴 추궁 끝에 마침내 입을 연 바람은 세상을 두루 살피고 돌아왔으나, 정작 인간의 실상에 대해서는 침묵하기로 결심했다는 비극적인 선언을 내놓고 있다. 결국 이 시는 인간 소외와 단절이라는 주제를 심화하며,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자연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고 버려진 인류의 고독한 처지를 서늘하고도 우아하게 고발하고 있다.
그의 시 「황사」, 「마른 천둥」, 「소리.2」, 「겨울의 강」, 「창」 등은 황사와 소음, 그리고 차가운 겨울 강과 같은 황폐한 현대적 정경을 통해 단절되고 상처 입은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시인은 폭력적인 문명의 속도감과 소외된 개인의 고통을 감각적인 이미지와 날카로운 언어로 시적 형상화하며, 소통이 부재한 세상에서 느끼는 실존적 비애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안과 밖을 가르는 '창'의 비유를 통해 경계에 선 존재의 고독을 탐구하고, 치유되지 않는 상처 속에서도 끝내 마주해야 하는 서늘한 현실을 투영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의 시들은 메마른 일상 속에서 파편화된 자아의 정체성을 되묻고, 차단된 세계로 인해 방황하는 인간의 비극적 정서를 우아하게 압축해 놓고 있다.
그중에서 「소리 2」를 탐구해 보도록 하자.
유년의 기억조차 토하게 하는
아이 부르는 소리
지린내 나는 담벼락에 쫓겨가는
바람 소리
뉘 집 허술한 문 사이로
달력에만 있는
내일이 찢겨 나간다
귀를 막아도 귀를 잘라버려도
기어이 파고드는
저들의 비웃는 얼굴
가만히 있기에 숨이 차올라
사내의 심장에
금이 간다
금간 심장을 때움질하는
산소 용접기
발광하는 소리에 눈이 따갑다.
- 「소리 2」 전문
이 시에서 보는 바처럼, 시적 화자는 유년기의 고통스러운 기억과 거친 산업 현장의 소음을 결합하여 현대인의 상처받은 내면을 감각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시적 화자의 내면에 어떤 상처가 있길래 "유년의 기억조차 토하게 하는/ 아이 부르는 소리"가 자리하고 있는 것일까. 무슨 사연이 있길래 "귀를 막아도 귀를 잘라버려도/ 기어이 파고드는/ 저들의 비웃는 얼굴"이 밀려드는 것일까. 성인도 아니고 아이가 그 아픔을 어떻게 견디며 여기까지 걸어왔을까. 사연과 상처를 정확히 알리지 않고 시의 모호성으로 두고 있기에 우리도 시 속에서 우리의 상처를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시는 심장과 혈관을 들쑤시며 온몸을 돌아나온 내상內傷 같은 것이다. 겉으로는 멀쩡하나 작은 통증에도 비명을 지른다. 시적 화자는 기억의 지층에 숨어 있던 슬픔을 길어 올려 붉게 터뜨리는데 "숨이 차올라/ 사내의 심장에/ 금이 간"다. 먼먼 기억이 이제는 가깝고 뜨겁게 사내를 아프게 하고 있다. 다행히도 "금간 심장을 때움질하는/ 산소 용접기/ 발광하는 소리"가 들린다. 시각과 청각 이미지의 날카로운 결합을 통해 희망 없는 내일이 부정당하는 비극적 정서를 전달하며, 분열된 자아의 고통을 '금간 심장'이라는 강렬한 비유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소리를 물리적인 통증으로 치환함으로써, 소외된 개인이 느끼는 실존적 위기감과 질식할 듯한 압박감을 생생하게 시적 형상화해 놓고 있다. 결국 이 시는 파괴된 인간성을 복구하려 애쓰는 현대인의 처절한 몸부림을 응축하여 보여주고 있다.
그의 시 「창 너머」, 「세상을 향한 변명」, 「아직 쓰이지 않은 시」, 「다짐이 웃으며 거기에 있었다」, 「생의 비밀」 등은 고단한 노동의 현실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예술적 성찰을 담담하면서도 깊이 있는 어조로 그려내고 있다. 시인은 창밖으로 흐르는 타인의 삶을 관찰하며 세상을 마주하는 도구로서 시 쓰기의 가치를 탐구하고 있고, 고된 일과 끝에 마시는 술 한 잔으로 생의 비애와 의지를 동시에 녹여내고 있다. 특히, 스스로를 찾아가는 과정으로서의 창작 활동을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숭고한 일로 정의하며, 육체적 고통이 수반되는 일상 속에서도 꿋꿋이 자아를 지키려는 결연한 다짐을 보여주고 있다.
그중에서 「생生의 비밀」의 의미를 탐색해 보자.
산다는 건 농주農酒를 마시고
가슴을 데우는 거지
하루가 쌓여 세월이 되는 걸
비밀로 하면
언젠간 떠난다는 게 이해되지 않지
성벽 너머
생이 궁금해지면
떠날 때가 온 것
성근 그물을 비껴가고
내 몫이 거의 소멸해 버리고
생의 비밀은
아려오는 하루
농주로 가슴을 데우는 거지.
- 「생生의 비밀」 전문
이 시에서 보는 바처럼, 시적 화자는 인간의 삶을 농주로 가슴을 데우는 행위에 비유하여, 유한한 생명의 본질을 소박하면서도 깊이 있게 성찰하고 있다. 농주農酒는 고된 농사일의 피로를 풀어주고 허기를 채워주던 막걸리를 의미한다. 한국 문학 속에서는 서민의 애환, 연대감, 한국적 정서를 상징하기 위해 다루어져 왔다. 천상병 시인의 「막걸리」 에서는 가난하고 고달픈 삶 속에서도 막걸리를 통해 인생의 여유와 달관, 소박한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신경림 시인의 「농무農舞」 에서는 고된 노동의 끝이자 울분을 달래는 매개체로 농주가 등장해, 농촌 공동체의 연대감과 시대적 아픔을 보여준다. 이 시에서의 농주는 시적 화자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매개체로서 끈질긴 생명력과 맞닿아 있다. 그 생명력에 대해 "산다는 건 농주農酒를 마시고/ 가슴을 데우는 거지"라고 말하며 시의 문을 열고 있다. 시의 문을 닫으면서도 "생의 비밀은/ 아려오는 하루/ 농주로 가슴을 데우는 거지"라고 말하며 마침표를 찍고 있다. 생의 시작과 끝을 농주와 함께하고 싶은 시인은 세월이 쌓여 결국 죽음에 이른다는 소멸의 질서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존재의 신비가 풀린다고 역설하며, 삶의 끝자락에서 느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이별의 신호로 정의하고 있다. 결국 생의 비밀이란 거창한 진리가 아니라, 저물어가는 하루를 따스한 술 한 잔으로 달래며 묵묵히 견뎌내는 과정 그 자체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시 「중고할인매장」, 「광장」, 「죽은 날들의 비애」, 「산사에서」, 「허공에서의 만찬」 등은 물건과 공간, 그리고 인간의 내면을 관찰하며 존재의 생명력과 상실감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버려진 중고 물품이 새로운 인연을 통해 재탄생하는 과정을 긍정하면서도, 광장이나 산사와 같은 공간에서 마주하는 고독과 허무의 정서를 깊이 있게 파고든다. 시인은 소리 없는 죽음이나 텅 빈 만찬과 같은 이미지를 통해 삶의 비애와 무상함을 드러내며, 독자로 하여금 비워진 마음으로 세상을 응시하게 만들고 있다. 결국 그의 시들은 낡고 사라져가는 것들 속에서 본질적인 존재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성찰적인 목적을 지니고 있다.
그중에서 「산사에서」 에 대해 관찰해 보자.
하늘엔 흰 구름
먼 곳에서 들려오는 짐승 소리
여기는 적막이 소리다
산새가 듣는다
처음이 아닌 듯 무심히 운다
무심을 깨달았나
풍경이 고요를 깨우고
오가는 말 속이 텅 비어 있다
산새는 알고 있다
울음 소리가 침묵 속으로 미끄러진다
한참을 생각하다
떨어지는 눈을 어깨에 얹고
멍하니 있다.
- 「산사에서」 전문
이 시에서 보는 바처럼, 시적 화자는 산사라는 공간에서 마주한 절대적인 고요와 무심의 경지를 감각적인 언어로 그려내고 있다. "먼 곳에서 들려오는 짐승 소리/ 여기는 적막이 소리"다. 적막이 소리라니, 새로운 해석이다. 시는 언어로 그린 이미지 그림이라는 사실을 실감나게 한다. 쓸쓸하다거나 외롭다는 식의 감정을 토로하지 않고 그곳에서 만날 수 있는 산새, 짐승 소리 등의 자연물로 환치시켜 배열해 놓고 있다. 첫 연에서 만난 그 적막은 마지막 연 "떨어지는 눈을 어깨에 얹고/ 멍하니 있다"의 적막과 연결되어 있다. 산새가 적막을 들은 것일까. 그래서 "처음이 아닌 듯 무심히 운" 것일까. 아니면 산새가 무심을 깨달은 것일까. 무심無心은 불교적 의미에서 속세의 일에 얽매이지 않고 초연한 상태를 뜻한다. 분별, 집착, 망념이 없는 참된 마음을 의미한다. 산새의 울음에 겹쳐진 시적 화자의 마음이 읽힌다. 시적 화자는 짐승의 울음이나 풍경 소리마저도 적막의 일부로 수용하며, 세속적인 언어의 공허함을 넘어 침묵과 하나가 되는 명상적 경험을 전달하고 있다. 특히, 자연의 움직임을 통해 마음속 번뇌가 사라진 비어 있는 상태를 성찰함으로써,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과정을 우아하게 묘사하고 있다. 결국 이 시는 외부의 소음이 내면의 평화로 찾아드는 찰나를 포착하여, 독자로 하여금 물아일체의 경지를 시각적 이미지로 체험하게 하고 있다.
그의 시 「창문 밖 삽화」, 「환절기」, 「서호에서」, 「성에꽃」, 「낯선 강」 등은 계절의 변화와 일상의 여정 속에서 마주하는 고독과 이별의 정서를 한 폭의 수채화처럼 담아내고 있다.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내면의 아픔과 과거의 기억을 시적 형상화한 그의 시들은, 차가운 성에꽃이나 낯선 강물처럼 피할 수 없는 슬픔조차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수용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떠나가는 계절과 사람을 향해 서글픈 안부를 건네며, 상처가 아물지 않더라도 묵묵히 흘러가야 하는 인생의 숙명적 흐름을 서정적이고 절제된 언어로 갈무리하고 있다. 결국 그의 시들은 상실의 고통을 외면하기보다 그 너머에 존재하는 고고한 고립과 존재의 흔적을 성찰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그중에서 「창문 밖 삽화」를 감상해 보자.
당신의 생각이 가시덩굴일 때
창문을 열면
젖다 만 하늘이 있고
넋 나간 사내 하나
자신의 그림자 뒤에 숨어
백만 송이 들꽃 핀 벌판에서
서성이고 있다
새가 사내 주위를 맴돈다
떨어뜨린 깃털 속에
한숨이 박혀 있다
외로운 짐승이
이젠 산으로 오라 한다.
- 「창문 밖 삽화」 전문
이 시에서 보는 바처럼, 시적 화자는 내면의 고통이 가득한 순간 창밖의 풍경을 통해 투영되는 고독과 구원의 갈망을 한 폭의 그림처럼 묘사하고 있다. 문학에서 '가시덩굴'은 주로 상처, 고통, 저주, 시련, 혹은 헤어 나오기 힘든 집착과 피폐한 환경을 상징하는 비유적 모티프로 자주 등장한다. 식물 고유의 날카로운 가시와 복잡하게 얽히는 덩굴의 특성이 인간의 내면적 상처나 비극적인 운명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현대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류가 생명력을 상실한 채 헤매는 상태를 '가시덩굴 숲'에 비유했다. 그에게 가시덩굴 숲은 본래의 존재 의미를 상실하고 무의미한 실존에 머물고 있는 인간의 처지를 상징한다. 그와 궤를 같이하고 있는 가시덩굴이 이 시에서도 읽힌다. "당신의 생각이 가시덩굴일 때/ 창문을 열"고 있다. 창문을 여는 행위만으로도 어떤 해법이 보이는 듯하다. 창밖에는 넋이 나간 사내가 있는데 "자신의 그림자 뒤에 숨어/ 백만 송이 들꽃 핀 벌판에서/ 서성이고 있"다. 왜 사내는 자신의 그림자 뒤에 숨은 것일까. 아직은 자신의 상처와 대면할 자신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어떤 집착 또는 피폐한 상황에 발목이 잡혀 있는 것일까. 다행인 것은 눈보라가 불어오는 벌판이 아니라 백만 송이 들꽃 핀 벌판에서 서성이고 있다. 희망적인 긍정의 신호가 느껴진다. 시적 화자는 뒤엉킨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창을 열고, 광활한 들녘에서 자신의 그림자 뒤에 숨어 방황하는 상실된 자아의 모습을 발견한다. 시 속 깃털에 박힌 한숨과 산으로 이끄는 외로운 짐승의 부름은 단절된 외로움을 넘어 치유와 안식을 향해 나아가려는 영혼의 여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의 시 「개미」, 「몽돌」, 「멍」, 「비워지면」, 「이팝나무 아래서」 등은 고난과 인내의 시간을 거쳐 삶의 진실을 발견하는 과정을 섬세하고도 서정적인 시어로 그려내고 있다. 시인은 개미의 성실한 노동과 둥글게 마모된 몽돌의 형상을 통해 자기 희생과 내면의 성숙이라는 주제를 시적 형상화하며, 과거의 아픔이 남긴 멍 자국마저도 삶의 일부로 수용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비워냄을 통해 슬픔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지워지지 않는 생명력을 노래함으로써, 독자에게 고통을 견뎌낸 존재가 지닌 아름답고 단단한 숭고함을 전달하고 있다.
그중에서 「멍」의 의미 속으로 들어가 보자.
핏발 선 눈동자
아득한 그 날들 감긴다
옛날은 아직 끝나지 않는다
오늘도 물 먹은 종이처럼 늘어져
누워 허공만 본다
숨어 살던 바람아
너도 멍들었구나.
- 「멍」 전문
이 시에서 보는 바처럼, 시적 화자는 과거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무기력한 정적 속에 침잠해 있는 내면의 초상을 그려내고 있다. 프랑스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는 인간은 '몸'을 통해 세계를 지각하며, 몸에 남은 멍이나 상처는 우리가 세계와 부딪히며 살아가는 실존적 증거라고 했다. 하지만 그 실존적 증거인 멍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기에 아프다. "아득한 그날들 감긴다// 옛날은 아직 끝나지 않는다" 시간은 흘러 옛날은 먼먼 곳에 있어야 하는데 그 옛날이 오늘의 자리에 있는 것이다. 오늘의 그 자리가 멍으로 퍼렇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멍든 슬픔으로 여전히 아리다. 염세주의 철학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는 인간의 삶이 '고통'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와 같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겪는 실패, 상실, 좌절 등 마음에 새겨진 감정적인 상처와 멍은 아무리 노력해도 피할 수 없는 실존적 고통의 증거라고 말했다. 이 시는 거기에 더해 "숨어 살던 바람아/ 너도 멍들었구나"라고 말하고 있다. 자연물인 바람까지 멍들었다는 것이다. 바람은 온몸에 멍이 들어도 다시 일어나 달려가는 자세로 살아간다. 그 바람에게서 어떤 동질감과 위로가 느껴진다. 시적 화자는 "옛날은 아직 끝나지 않는다"는 표현을 통해 치유되지 않은 기억이 현재를 잠식하고 삶을 무겁게 짓누르는 양상을 '물 먹은 종이'라는 감각적인 비유로 시적 형상화하고 있다. 허공을 응시하며 멍하니 누워 있는 시적 화자의 모습은 해소되지 않은 슬픔이 육체와 정신을 마비시킨 상태를 암시하고 있으며, 마지막 구절에서 바람과 나누는 교감은 고독한 존재들 사이에서의 연민을 품위 있게 드러내고 있다. 결국 이 시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가 어떻게 한 개인의 삶을 정지된 시간 속에 가두어 두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아내고 있다.
그의 시 「너와 나」, 「정물화」, 「사인 곡선」, 「나를 부르는 것」, 「새로움에 대하여」 등은 상실의 고통과 존재론적 고찰을 통해 삶의 본질을 탐구하며, 인간이 마주하는 어둠 속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생명력과 희망을 갈구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이별로 인해 빛을 잃은 상태를 우주적 파동이나 정적인 예술의 형상으로 치환하며, 죽어 있는 대상에 신의 숨결을 불어넣는 창조적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 고립된 고독과 절망의 순간에도 멈추지 않고 나아가야 한다는 강한 의지는, 결국 과거의 미망을 디디고 일어나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려는 숭고한 극복의 서사로 귀결되고 있다. 무엇보다 그의 시들은 유한한 삶의 굴레를 넘어 영원한 우주의 질서 속에서 자신을 재정립하려는 철학적 의도를 격조 높게 드러내고 있다.
그중에서 「정물화」의 정서를 살펴보자.
말을 걸어온다
빛을 받는 저것들이
담담히 그러나 힘 있게
빛이 비치는 창가에 놔 달라고
바람에 실려 오던 그때
눈물 떨구던 초목들이 보이게
화가 손으로
내 모습 찾았으나 손님처럼 나가
다시 동산으로 그러나
손발이 없다
화가는 정물화를 그렸지
생물을 그린 건 아니다
화가는 신의 음성을 듣는다
죽은 생명도 살려내는 화가는
신이었나.
- 「정물화」 전문
이 시에서 보는 바처럼, 시적 화자는 정물화라는 예술 형식을 통해 죽어 있는 대상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화가의 신비로운 창조적 능력을 성찰하고 있다. 정물화靜物畵는 꽃, 과일, 그릇 등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 사물을 미적 감각으로 배치하여 화폭에 담은 그림이다. 서양 미술사에서 정물화는 철학적 사유의 도구이자 시대의 세계관을 담는 매개체 역할을 해왔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반 고흐의 정물화인 〈구두〉를 보고 예술과 존재에 대한 깊은 철학적 논의를 펼쳤다. 이 시에서 "말을 걸어온다/ 빛을 받는 저것들이"에서 그와 같은 느낌들이 읽힌다. "빛이 비치는 창가에 놔 달라고// 바람에 실려 오던 그때/ 눈물 떨구던 초목들이 보이게"에서도 어떤 깊은 논의가 펼쳐지는 듯하다. 화폭에 담긴 사물들은 한때 살아 있던 과거의 기억을 간직한 채 창가로 나가고 싶어하는 역설적인 의지를 보이지만, 결국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정적인 존재로 남게 된다. 그러나 시인은 이 정지된 사물을 다시 살려내는 화가의 행위를 신의 음성을 듣는 과정으로 묘사하며 예술가를 죽음에서 생명을 건져 올리는 숭고한 창조주의 모습으로 시적 형상화하고 있다. 따라서 이 시는 정지된 사물과 예술가의 시선이 만날 때 발생하는 초월적인 생명 탄생의 순간을 시적 언어와 이미지 구현으로 탐구하고 있다.
그의 시 「내 영혼을 묶다」, 「하늘 조각이 탄다」, 「꽃잎 지는 날 비가 내리면」, 「밝은 물에 배 띄워 가다」, 「달의 무게」 등은 자연의 순환과 계절의 변화를 통해 인간 내면의 감정과 영혼의 성찰을 노래한 서정시들이다. 이 시들은 나무, 달, 비와 같은 자연물을 매개로 고통과 비움을 수용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고, 세속적인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초연한 정신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시인은 슬픔조차 삶의 일부분으로 끌어안는 인내와 회복의 미학을 추구하며, 독자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마음의 무게를 견디고 존재의 근원적인 고독을 사유하게 하고 있다. 그의 시들은 결국 고난 속에서도 잃지 않는 내면의 평온과 정화라는 주제를 향해 일관되게 나아가고 있다.
그중에서 「달의 무게」의 내면으로 파고들어 가 보자.
무심한 하늘, 달만이 감정 있다
모양이 변하면 밝기도 변한다
마마 앓은 자국
밤 구름으로 세수하고
텅 빈 하늘
달은 혼자 빛나는데
달은 욕심이 없다
날마다 야위어 가지만
다시 살찐다
달은 무게로 자신을 견딜 뿐이다.
- 「달의 무게」 전문
이 시에서 보는 바처럼, 시적 화자는 감정이 메마른 하늘에서 홀로 빛의 변화를 감내하는 달의 고독한 존재감을 서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달은 예로부터 문학 속에서 신성성, 여성성, 그리고 순환의 상징이자 깊은 고독과 그리움의 매개체로 다루어져 왔다. 고전 시가에서 달은 어둠을 밝히는 존재이자 기원(소원)의 대상이었다. 근현대 시에서는 민족의 애환과 서정적인 그리움을 표현하는 데 쓰였으며 오늘에 와서 달은 이상향이나 환상적인 공간 또는 어떤 상징적인 존재로 표현된다. 이 시에서도 달은 어떤 상징적인 존재로 다가온다. 그 존재는 "마마 앓은 자국/ 밤 구름으로 세수하고" 있다. 2행만으로도 아름다운 동화 한 편을 읽는 느낌이다. 그 존재는 "욕심이 없다/ 날마다 야위어 가지만/ 다시 살찐"다. 문득 저 달의 이야기를 들으며 잠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시적 화자는 달이 차오르고 기울며 자신의 형상을 바꾸는 과정을 욕심 없는 자기 수양의 태도로 바라보며, 외적인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숭고함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달이 스스로의 형체를 깎아내고 다시 채우는 순환은 외부의 시선에 반응하는 게 아니라, 오직 자신의 무게를 묵묵히 버텨내는 의지를 상징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시는 텅 빈 허공 속에서도 묵직하게 자리를 지키는 달을 통해, 내면의 고통을 견디며 스스로를 완성해 가는 생의 경건함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처럼, 주병도 시인의 시들은 고독한 단독자로서의 자아를 탐구하며 삶과 죽음, 그리고 존재의 심연을 성찰하는 총 60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에서 '허공에 걸린 존재'로서 인간의 근원적인 불안과 인식의 한계를 노래했다면, 제2부에서는 '세상을 건너는 사람'의 시선으로 냉혹한 현실과 타인과의 관계를 응시하고 있고, 제3부에서는 '꽃은 다시 바람을 만나다'라는 주제 아래 비움과 회복의 정서를 이미지로 시각화해 놓고 있다. 특히, 시인은 허공, 거미그물, 수평선과 같은 초월적이고 날카로운 이미지를 통해, 일상의 이면을 포착하며, 삶의 고통을 '농주'나 '시 쓰기'라는 행위로 승화시키려는 구도자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궁극적으로 주병도의 시들은 찰나의 삶 속에서도 영원과 본질을 향한 질문을 멈추지 않음으로써, 독자에게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정갈하고도 깊은 서정적 통찰을 제공해 주고 있다.
앞으로, 제3, 제4시집을 펴내면서 여생을 보내기를 기원한다. 고독과 싸우면서, 외로움을 달래면서, 함께하는 동반자가 시가 되기를 바란다. 꾸준히 창작한 시들을 몇 년 만에 한 권씩 열매로 묶어 세상에 내보내는 즐거움을 지속적으로 늘려가길 소망한다.
목차
목차
허공에서의 만찬 / 차례
시인의 말
감사의 말
축시/ 박덕은
제1부 허공에 걸린 존재
수평선에 눈을 베였다
시詩의 문
벽
어떤 피
그림
하늘 그물
파도의 오진
빛과 어둠에 관하여
거미그물
관념의 시
오류로부터
고독
고독의 확신
꿈속의 꿈
나로부터의 세계
생각의 모양
영원
기억의 습관
사람의 함량涵養
바람의 자화상
제2부 세상을 건너는 사람
지석강
장례식장
고소공포
바람과 통하다
비정한 도시에서 살아내는 법
황사
마른 천둥
겨울의 강
소리 2
창
창 너머
세상을 향한 변명
아직 쓰이지 않은 시
다짐이 웃으며 거기에 있었다
생生의 비밀
중고할인매장
광장
죽은 날들의 비애
산사에서
허공에서의 만찬
제3부 꽃은 다시 바람을 만나다
창문 밖 삽화
환절기
서호에서
성에꽃
낯선 강
개미
몽돌
멍
비워지면
이팝나무 아래서
너와 나
사인 곡선
정물화
나를 부르는 것
새로움에 대하여
내 영혼을 묶다
하늘 조각이 탄다
꽃잎 지는 날 비가 내리면
맑은 물에 배 띄워 가다
달의 무게
평설/ 박덕은
시인의 말
감사의 말
축시/ 박덕은
제1부 허공에 걸린 존재
수평선에 눈을 베였다
시詩의 문
벽
어떤 피
그림
하늘 그물
파도의 오진
빛과 어둠에 관하여
거미그물
관념의 시
오류로부터
고독
고독의 확신
꿈속의 꿈
나로부터의 세계
생각의 모양
영원
기억의 습관
사람의 함량涵養
바람의 자화상
제2부 세상을 건너는 사람
지석강
장례식장
고소공포
바람과 통하다
비정한 도시에서 살아내는 법
황사
마른 천둥
겨울의 강
소리 2
창
창 너머
세상을 향한 변명
아직 쓰이지 않은 시
다짐이 웃으며 거기에 있었다
생生의 비밀
중고할인매장
광장
죽은 날들의 비애
산사에서
허공에서의 만찬
제3부 꽃은 다시 바람을 만나다
창문 밖 삽화
환절기
서호에서
성에꽃
낯선 강
개미
몽돌
멍
비워지면
이팝나무 아래서
너와 나
사인 곡선
정물화
나를 부르는 것
새로움에 대하여
내 영혼을 묶다
하늘 조각이 탄다
꽃잎 지는 날 비가 내리면
맑은 물에 배 띄워 가다
달의 무게
평설/ 박덕은
저자
저자
주병도 ㆍ조선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ㆍ월간지 《문학공간》 등단
ㆍ제1시집 『나는 분수처럼 자각한다』(2024)
ㆍ제2시집 『허공에서의 만찬』(2026)
ㆍ월간지 《문학공간》 등단
ㆍ제1시집 『나는 분수처럼 자각한다』(2024)
ㆍ제2시집 『허공에서의 만찬』(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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