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컥, 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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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 평설 |
"生, 열무꽃 빛 환한 잠"인가
- 어둠의 심장에서 새어 나온 인간의 여러 말들
김 종
(시인, 화가)
임해원 시인의 시집 『울컥, 똬리』는 목울대를 밀어 올리는 '울컥'으로 주체 못할 감정을 표현하면서 그 출렁거림의 무게를 견디는 '똬리'라는 사물적 장치로 노래를 이어가고 있다. 똬리는 물동이를 머리에 이기 위해 올리는 둥근 받침을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시집에서는 가난과 노동, 여성들의 생애, 가족사의 애도와 생존을 떠받쳐 온 기억의 구조물로 상징된다. 요컨대 『울컥, 똬리』는 울음을 토해 내는 노래라기보다 그 울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떠받친 노래라는 점에서 주목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집의 시적 서정성은 감정의 분출보다 이를 지탱하는 형식에 가깝다는 게 평자가 갖는 생각이다.
꽃 핀 나무 지나 꽃 진 나무에게로
임해원의 이번 시집은 슬픔을 앞에 두고도 이의 극복을 재촉하지 않는다. 대신에 슬픔과 함께 걷거나 나아가는 법, 머리에 담긴 기억의 무게를 이고도 밥을 짓고 꽃을 바라보는 법을 보여준다. 임해원의 시적 세계에서 어둠은 몸을 눕히는 공간이고 눈물은 꽃의 물이며 사라진 사람들은 강과 바람과 새의 얼굴로 돌아오는 그리움의 표상들이다. 그래서 「울컥, 똬리」는 오래된 상처를 다독거리는 한편으로 삶을 물처럼 흐르도록 펼친 사랑의 도록이라 할만하다.
이 시집을 거드는 큰 축은 '경계'의 의미화에 닿아있다. 빛과 어둠, 산 자와 죽은 자, 어린 시절과 현재, 개인의 상처와 세계의 슬픔, 강과 바다, 이름과 이름 없는 존재 사이의 경계가 끊임없이 나뉘면서 시인은 어느 한쪽을 다른 한쪽에 위치시키지 않는다. 요컨대 어둠은 "사라짐이 아닌 쉼"이며 죽음은 단절이라기보다는 꽃길과 강물, 새와 바람으로 이어지는 존재들의 상대적 변형이라 할 것이며 빛 또한 무조건적 구원 이전에 "빛의 고통"을 품은 존재로 드러난다. 이 시집은 빛과 어둠, 삶과 죽음, 기억과 망각의 경계에서 임해원이 요량한 사물들과 그 사물에 배어든 시간과 체온을 더듬어간다. 물동이를 인 어머니의 이마, 상여 꽃의 색, 강을 향해 흐르는 마음의 무늬, 눈보라 날리는 허공, 상처 입은 나무와 붉은 꽃 등은 하나의 존재가 다른 존재로 이동하는 장면들로 드러난다.
그러나 임해원의 시집 『울컥, 똬리』는 상실된 기억을 복원하는 데만 머물지 않는다. 사라진 것들이 어떻게 자신의 거처로 되돌아오는지를,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어떻게 시적 언어의 결을 송이송이 개화하는지를 집요하게 탐문한다. 여기에서 시는 기억의 저장고가 아니라 기억 이전의 몸과 기억 이후의 몸이 맞닿는 장소로서 위치한다. 물동이의 무게, 부은 발등, 상엿소리의 떨림, 우물의 어둠, 강의 물길, 붉은 꽃과 눈보라의 허공 등등은 각기 독립된 이미지가 아니라 한 생애에 축적된 연대된 감각들이 서로를 호출하는 통로로서 작용하고 있다.
그리 보면 임해원의 언어는 자연물을 통해 기억을 되살리는 감성적 특성을 눈여겨보게 한다. 버들개지, 어리연, 애기동백, 솜다리꽃, 달개비, 나생이꽃, 수양버들, 오동나무 등등이 자주 등장함과 동시에 이들 꽃과 나무들은 단순 사물이라기보단 발언하지 못한 자들의 목소리이자 오래된 여성들의 생애이고 삶의 아픔을 대신 피워 낸 몸들의 언어이기도 하다. 특히나 "그미" 연작에서 읽은 '꽃'은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 표현한 것이고 사라진 존재를 기억하는 방식이며 다시금 되살린 감정의 형식이기도 하다.
하나 임해원의 작품에서 더욱 주목할 것은 여성의 언어적 계보이다. 젊은 엄마, 큰언니와 작은언니, 쿠마리, '누이'로 불리는 존재들은 모두가 가난과 노동, 성장통과 억압, 사랑과 상실 등을 몸으로 통과시키고 있다. 시인은 이들을 개별화하지도 영웅화하지도 않는다. 대신에 물동이의 무게, 부은 발등, 고무신 등을 숨을 곳 없는 골목처럼 일상의 장면으로 불러내어 노래의 형식으로 들려준다. 말하자면 시각화를 넘어 시적 청각화에 닿아있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이들의 삶은 비장한 서사가 아니라 밥을 짓고 물을 길으며 울음을 삼키는 일상의 성스러움으로 빛을 투사하고 있다. 이 시집에서 반복되는 "붉음"이란 어휘 또한 눈여겨지는 부분이다. 붉음은 피, 노을, 동백, 장미, 상처, 성체, 생리, 불꽃을 이어가는 생명의 강렬한 표식이자 통증의 색으로 기능한다. 시인은 이들 붉음을 통해 상처와 생명, 사랑과 죽음 등이 상호 멀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이 시집의 서정성은 단지 아름다움에 그치지 않고 이들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윤리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임해원의 시집 『울컥, 똬리』는 기억을 서사로 정리하기보다 감각으로 되살리는 특이함 또한 읽을 수 있다. 개인의 상처를 고백의 공간에 가두지 않고 여성의 노동과 몸, 공동체의 장례와 토속의 언어, 자연의 순환과 종교적 상상력으로 확장해 가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 때문인가 이 시집에서 빛은 어둠을 지우지 않고 어둠 또한 빛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둘은 서로의 내부에서 존재의 느낌을 심화시켜 간다. 그러므로 시집 『울컥, 똬리』에서 읽은 '울컥거림'은 감정의 파열 상태가 아니라 기억이 몸을 통과할 때 일어나는 현재적 진동이라 할 것이고 이럴 때 똬리는 그 진동을 견디는 삶의 낮고 둥근 형식으로 읽힌다. 시인은 그 같은 똬리 위에 물동이만이 아니라 어머니와 언니들의 생애, 죽은 이들의 이름, 상처 입은 몸들의 침묵, 그리고 아직 도래하지 않은 내일의 빛까지를 조심스레 올려놓고 서로를 받쳐 든 존재들의 묘사를 조용하고도 깊게 증언하는 것이다.
밀고 들어오는 어둠
어둠의 심장에서 빛이 새어 나온다, 화폭에 앉는다
소용돌이치는 색의 기억들이 진하게, 순하게 쏟아진다
태양을 필사적으로 붙들던 노랑, 숨을 멈춘다
허공의 새는 울음을 멈추지 않고
수평선을 긋고 그 금을 넘어오는, 온 적이 없는 배를 그린다
하늘은 그리지 않는다
한 번도 제 본디를 보여주지 않았기에
빛의 심장에 들어온 모든 존재는 자기 역할 후 사라진다
빛과 어둠의 경계
그 아우름에서 으름덩굴 속 고양이처럼 뒤엉킨다
어둠은 사라짐이 아니다, 쉼이다
빛은 부드럽게 위로부터 내려와 어둠으로 스민다
미모사처럼 움츠러든다
겁먹은 아이처럼 자신의 노랑 속에 제물인 양 드러눕는다
여기저기 툭, 툭 끊어진 의식의 실타래
외면하듯 구겨진 잿빛 모자를 눌러쓴다
훗날
먼 훗날
바람이, 새가, 바다가 나를 그린다
우두커니 뒹굴던 돌이 나를 그린다
빛과 어둠
한결같거나 다르다
- 「빛과 어둠, 화가 1」
「빛과 어둠, 화가 1」은 캔버스라는 회화적 공간을 빌려 존재의 생성과 소멸을 그리고 있다. 어둠에서 빛이 새어 나오는 장면은 그 즉시 도달한 창조에의 순간에 진입함을 의미한다. 시는 이어지면서 "하늘은 그리지 않는다"는 선언으로 이어지고 재현 불가능한 초월적 영역으로 나아간다. 화가는 세계의 전체가 아니라 빛의 심장에 잠깐 머물다 사라지는 존재 또한 포착하려 한다. 특히 "어둠은 사라짐이 아니다, 쉼이다"라는 구절에 오면 이 시집 전체를 관류하는 사유가 소멸은 절멸이 아니라 '휴지休止'라는 사실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이때 빛과 어둠은 대립하는 두 개의 항목이기보다 하나의 몸이 번갈아 걸쳐 입은 옷과 같으며 스스로의 풍경이 바람과 새와 돌에 의해 "그려지는" 존재로 전환되고 있다. 이는 주체와 대상, 그리는 자와 그려지는 자의 경계를 허무는 순환적 세계관에 기인한다. 색채어-노랑, 잿빛-의 선명한 대비와 회화적 동사-앉는다, 쏟아진다-의 대비적 사용이 시각적 밀도를 높이는 동시에 관념적 진술을 구체적 이미지로 육화시키고 있어 이 시의 실감이 커진 것이다.
임해원 시인은 위의 작품을 통해 "어둠의 심장에서 빛이 새어 나온다"는 첫 구절의 이미지부터 이 시집의 핵심 세계관을 압축해 내고 있다. 작품에서 화자는 빛은 어둠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태어나 화폭에 앉는다고 생각한다. 화가는 태양을 붙들던 노랑, 멈추지 않는 새의 울음, 오지 않은 배를 그리면서 보이는 풍경보다 보이지 않는 기다림과 결핍을 포착한 사람으로 드러난다. "하늘은 그리지 않는다/한 번도 제 본디를 보여주지 않았기에"라는 표현에서 강한 시적 여운이 남는 것은 물론이고 이 시를 더더욱 인상 깊게 한다. 하늘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정작 자신의 본질을 드러내지 않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이 같은 시적 불가사의 앞에서 이내 겸손해진다. 특히나 후반부에 와서 "어둠은 사라짐이 아니다, 한편 쉼"이라고 말할 때의 삶의 고단함과 상실을 차이 나게 받아들인 시인의 태도가 이채롭다. 훗날 바람과 새와 바다와 돌이 '나'를 그린다는 결말은 창작적 주체가 결국은 자연과 세계 속으로 흩어지는 순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눈여겨진다.
살아있는 이가 죽으면
초상집 지붕 위로 망자의 저고리가 던져지고
바람 잦은 산비탈 외딴 상엿집
상여는 마을로 내려왔다
초상집 마당에서 흩뜨려진 뼈 마디마디를 맞춘 상여
널*을 품고 일어나 비상을 꿈꾼다
어른들은 상여꽃으로 망자의 죽음을 추측했다
붉은 꽃이면 '편한 세상 살다 갔네'
온통 흰 꽃이면 '아프다 갔네' 혀를 끌끌 찼다
만장 앞세운 상여에 올라탄 상여꾼이 요령을 흔들며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님도 꽃길 가소!' 상엿소리 뽑으면
'어허야 디여라, 인생 백 년 꿈이로다!' 맞장구치며
어디만큼에서 제 살았던 데 돌아본 상여
한 마리 새가 되어 흔적 없이 산으로 스며들었다
꽃 꺾어 머리에 꽂고
쪽두리꽃에 앉았던 나비 따라 나부대던
상엿소리에 울먹이던
뭐라 말해야 하나
그걸 어찌 말로 다 하나
그럼에도 눈꺼풀 누르던 겨운 졸음 속 뽀얀 달빛에
파먹히던 어둠, 그 그윽함을
어서어서 가자구요
꽃 핀 나무 지나 꽃 진 나무에게로
꽃 진 나무 지나 죽은 나무에게로
걸어온 길들 스르르 몸을 숨기며
어디만치 왔나
어디만치 왔나
물어도 대답 없이
하염없음이 하염없게
?관의 토속어, 사투리
- 「옛 1」
전통 장례 풍속을 소재로 한 「옛 1」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관찰자의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초상집 지붕에 던져지는 저고리, 상여 꽃의 색으로 망자의 다음 시간을 장식하고 짐작하는, 민간이 지켜온 생사의 해석 방식이나 상엿소리와 화답하는 상여꾼의 가락 등이 구체적이고 생생한 민속적 디테일로 드러난다. 이 같은 풍속의 형상은 현상의 단순 재현에 그치지 않고 "한 마리 새가 되어 흔적 없이 산으로 스며 들었다"는 구절처럼 소멸이 아닌 변신과 귀환의 과정으로 바뀌게 된다. 화자는 유년의 기억 속에 환청처럼 고여있는 상엿소리에 울먹이던 그 시절의 자신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화자는 관찰자적 거리를 좁히고 개인적 정서로 진입한다. 후반부의 "꽃 핀 나무 지나 꽃 진 나무에게로" 이어지는 언어의 반복 구조는 삶에서 죽음으로 나아가는 걸음걸이를 리듬감 있게 형상화한 것이며 "어디만치 왔나"를 묻는 물음에 대답한 것은 존재의 행로가 본질적으로 그 같은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마지막에 읽은 "하염없음이 하염없게"라는 부사의 반복적 사용은 단순 나열이 아닌, 슬픔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오랜 여운으로 이어가려는 의도일 것이다.
공동체의 장례 풍습이 노래된 「옛 1」은 죽음의 풍경을 복원하면서 상여, 상여꽃, 만장, 요령, 상엿소리, 널 같은 토속적 사물들이 구체적으로 등장하고 망자의 마지막 길을 한 마리 새가 되어 날아드는 장면으로 그려간다. 죽음은 한편으로는 슬픔이면서도 공동체가 떠받드는 하나의 엄숙한 의식이기도 하다. 특히 상여꽃의 색으로 죽은 이의 삶을 짐작하는 장면은 민간의 애틋한 상상력이 그 같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고 붉은 꽃은 편안한 삶, 흰 꽃은 아픈 삶의 의미가 읽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시인은 "뭐라 말해야 하나/그걸 어찌 말로 다 하나"라며 말로는 담아내기 어려운, 달빛에 파먹히던 어둠에의 "그 그윽함"이 이 시의 중심의미처럼 드러난다.
늘 나보다 먼저 도착하는 강
먼 어느 곳을 적시려는지 뻐꾸기가 강 뒤쪽에서 운다
해를 삼킨 연초록
나이테 굵은 나무의 새살들
손사래 치며 가는 망혼亡魂 같은 빗줄기
보랏빛 주렁주렁 달고 선 오동나무
발 아래 먼지 뒤집어쓴 며느리밑씻개
그들이 내 자음 모음이다
내 이름 잊은 날
누구도 내 이름 부르지 않고
나도 누구의 이름 부르지 않게 된
팔월과 시월 사이
붉어지는 사과가 뚝 떨어질 때
잃어버린 자음 모음 찾으러 풀밭 뒤적일 때
가슴 아래 어디쯤 틈새기 있어
노래 한껏 줄인 여치가 찾아 준 적 있다
바닥이 허방인 제 가슴 안고
어떤 간절함에 맞닿은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고 세상도 모르는 수수께끼
너는 너에게, 나는 나에게 묻는 피톨 같은 길
꽃의 다른 얼굴, 나비가 노랑을 품고 낮게 날면
외진 곳이 지닌 순결처럼 지평선을 품은 이가
수평선의 얘기를 듣느라 귀가 지워지는 것도 모른다
늘 나보다 먼저 도착하는 강
늘 '나는 바다야' 외치는 강, 그 끝에서 바다가 시작된다
- 「그리고 바다가 시작된다」
강에서 바다로 흘러가는 대자연의 여정을 자아의 정체성 위에 겹치게 그려낸 시다. 화자는 뻐꾸기 울음, 오동나무, 며느리밑씻개 등 구체적인 식물과 동물의 이미지들을 "내 자음 모음"이라 명명하면서 자연물을 자기 존재의 구성 요소로 이어서 임해원 만의 독특한 시적 발상을 보여준다. "내 이름 잊은 날"이라는 표현으로도 화자는 사회적 관계망에서 이탈하여 익명의 존재로 남는 순간을 포착하는가 하면 그에게서 생성된 공백을 여치의 노래로 채워내고 있다. 시의 중반에서 시인은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고 세상도 모르는 수수께끼"라는 구절로 존재론적 불가지성을 강조한다. 그런가 하면 나비와 지평선, 포개놓은 수평선의 이미지로 시야를 점차 확장해 가는데 이때의 강은 화자보다 먼저 도착해 "나는 바다야"를 외치는 의인화된 존재로 드러나고 자아의 완성이 언제나처럼 자연의 순환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강과 바다의 경계가 사라지는 지점에서 시가 끝나는 것은 당초 시인의 시작 의도가 이쯤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시적 정체성이란 고정된 지점이 아니라 흐름 자체이거나 일부임을 암시하는 구조적 장치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 보면 「그리고 바다가 시작된다」는 이름을 잃은 존재가 다시금 자기 존재를 찾아가는 과정을 노래한 서정성이 실팍한 시다. 연초록, 나이테, 빗줄기, 오동나무, 며느리밑씻개는 시인이 의도한 "내 자음 모음"이 되는 반면 시인에게 자연은 말의 근원이자 정체성을 되찾는 자리이기도 하다. "내 이름 잊은 날"은 단지 망각의 순간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가 끊기고 자기 자신마저 멀어진 시간을 의미한다. 그러나 풀밭을 뒤적이는 행위, 여치의 낮은 노래, 꽃과 나비의 움직임은 잃었던 언어를 다시금 소환하면서 읽은 "늘 나보다 먼저 도착하는 강/늘 '나는 바다야' 외치는 강"은 존재의 지향을 아름답게 발언한 의미를 지닌다. 강은 아직 바다가 아니지만 이미 바다가 되어가고 있다. 이리 보면 인간 또한 도착하지는 못했어도 어떤 간절한 방향을 향해 흐르며 흐르며 이미 그것의 일부가 되어가는 것이다.
비로소 허공이야
가늠할 수 없는 거기는 깊어
자잘한 애탐을 날갯질하는 설렘
누가 이름 지어 부르는가
대답이 더디다
빗금으로 발을 친
아,
너무 많은 입술이
너무 많은 귓볼이
바람으로 모여 기억의 초점을 내려놓고
어떤 중력에 닿고서야 멈추는 축포처럼
새 떼 날리는 흰 손의 모반
진실한 가짜의 희디흰 허공들
내리꽂고 혹은 치솟는, 저희끼리 부딪친 산산조각 또한
따로 이름 지어 부르지 않는다
깜깜하게 쏟아지는, 누구인가 그는
여전히 대답이 떨렸다
비스듬히
눈
설
레
?눈보라와 세찬 바람의 우리 말
- 「눈설레* 1」
제목에서 읽은 순우리말 '눈설레'-눈보라와 세찬 바람-는 언어적 형태와 리듬을 눈보라의 감각으로 재현하려는 실험성이 상당한 작품이다. "너무 많은 입술이/너무 많은 귓볼이"처럼 반복되는 구절은 눈발이 흩날리는 낱낱의 순간들을 암시하며 "진실한 가짜의 희디흰 허공들"이라는 역설적 표현에 이르러 눈이라는 자연현상에서 실재와 허상을 감별하려는 이중구조를 보인다. 화자는 이름 붙이기를 거부하며 "이름 지어 부르는가", "따로 이름 지어 부르지 않는다" 등을 반복하는데 이는 아무렇게나 흩어지는 것들에 대한 시인의 관심을 눈보라처럼 흩날리는 효과가 있다. 마지막 부분에서 "눈/설/레"로 글자를 해체하여 형태 또한 실제로 눈이 비스듬히 흩날리는 시각적 이미지를 재현하는 구체시具體詩적 전달이거나 이미지로 활용한 점이 인상적이다. 다소 난해하고 파편적인 연쇄적 이미지가 독해의 문턱을 높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가 눈보라의 방향성을 체현하는 형식적 선택은 아닌가 싶다.
제자리로 돌아와서 '눈설레'는 눈보라와 세찬 바람을 의미하는 우리말이다. 이 시는 시각과 청각에다 몸의 떨림까지를 더하여 이 시의 감각성을 되살리고 있다. 허공은 깊고 설렘은 날개처럼 날아오르고 그 누가 불러도 대답은 더디고 읽은 뒤의 기쁜 감정을 넘어 불안과 애탐, 나아가선 기억의 파편을 흔들림으로 드러난다. "너무 많은 입술", "너무 많은 귓불" 등이 바람 현상으로 읽히는 것은 말하지 못한 것과 듣지 못한 목소리들의 집합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진실한 가짜"라는 역설 또한 눈보라의 환영을 보이면서 마지막의 "눈/설/레"로 분절된 음운상의 표기 또한 흩날린 눈발이 바람을 가르는 효과처럼 읽힌다.
새 떼, 한숨처럼 길다
자미꽃, 잿빛 하늘에 스민다
내 몸에 흐르던 피도 스민다
자미꽃 천 번, 만 번 붉게 피었다 지면
저세상보다 더 멀리 가버린 그도 붉을까
다 해진 무릎으로 나무는 겨울을 건넜으리
크레바스처럼 갈라진 수피 틈에 울음 새어나왔으리
가지 끝, 새가 허공을 두드리면 한 겹 껍질을 벗으려나
내 안에 뭔가 함부로 휘저어질 때
바람이 나무 끝에 이르러 몸을 여럿 갈아입다가
잎사귀에 얼굴 파묻고 흐느낄 때 물끄러미 바람의 연산을 생각한다
모였다간 흩어지는 푸른 파동
마주 서서 숨죽인 응시로 어둠 밀치고 물이 물을 껴안듯
나무가 일으키는 찬란한 춤의 셈법
솨 솨 솨,
그 바람이 나다
- 「그 바람이 나다」
「그 바람이 나다」는 바람을 매개로 하여 자연과 자아가 합일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새 떼의 날갯짓을 "한숨처럼 길다"고 묘사한 첫 행부터 시어들의 청각과 촉각을 넘나드는 감각의 교차를 능숙하게 시도한다. 자미꽃-백일홍-이 피고 지는 개화의 순환성은 "저세상보다 더 멀리 가버린 그"에 대한 그리움과 겹쳐지고 나무의 겨울나기를 "다 해진 무릎"이라는 신체 이미지는 자연물의 형상에다 인간적 고통을 감정이입으로 투사한 것이다. 시의 중반에서 바람이 나무를 스치며 "여러 몸을 갈아입다가" 잎사귀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낀다는 구절은 바람이라는 무형의 존재에 신체와 감정을 부여하는 의인화의 과정에 다름 아니다. 화자는 이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바람의 연산"이라는 다소 이질적인 수학적 어휘로 드러내는데 이는 자연물에 내재한 질서와 운동의 셈법을 그리 융합한 것으로 읽힌다. "솨 솨 솨"라는 의성어에다 "그 바람이 나다"라고 발언하는 결말은 관찰의 대상이던 바람과 관찰하는 주체가 마침내는 하나로 만나는 순간을 간결하게 초점화하고 있다.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
위의 작품에서 바람은 애도하는 몸이자 시인의 자아로 드러난다. 자미꽃의 붉음은 죽은 '그'에게 닿고 싶은 그리움의 색채가 그 같다는 의미이며 겨울을 건너면서 갈라진 나무의 수피에는 오래 밴 울음이 불빛이 날듯 흐르고 있다. 여기에서 나무와 화자는 상처를 견디며 계절을 지나온 합일된 존재이다. 그런가 하면 바람은 하나의 몸이 아니라 무수히 모였다 흩어지는 사물의 분산이고 나무의 춤을 받아들인 파동의 방식이라 할만하다. 물이 물을 껴안듯 바람과 나무와 화자는 서로의 슬픔을 감싸면서 마지막에 읽은 "솨 솨 솨,/그 바람이 나다"라는 화두 속으로 이내 사라지는 자연과 리듬의 순간을 하나로 모은다고나 할까.
젊은 엄마
이마에 흐르는 물 손등으로 뿌리며
물동이 이고 비탈길 올라 저문 대문 들어서네
부은 발등, 물 끼얹고 서둘러 저녁밥 짓네
우묵한 양은 냄비
박박 씻어 안친 쌀보리들, 볼수록 착하다
밥물이 끓는다
눈보라 일 듯 넘친다
소복이 솟은 쌀보리 능선
드문드문 강낭콩 섞인 주걱에 묻어나는 가난, 달다
사는 일은 이렇게 밥상 차리는 일
두레 밥상에 어린 것들 둘러앉힌 성찬례
지상에 부려놓은 에덴
대문 앞 늘어진 수양버들, 머리까지 끌어 덮고 잠에 든다
꿈이 길다
기억이 흘러가는 발밑, 뿌리가 내린다
바람에 머리카락 터는 버들개지
물감 번지듯 종소리로 날아간다, 사라진다
어둡지만 캄캄하지 않고
환하지만 가볍지 않은
온몸이 우물인 엄마의 젖은 얼굴 반쪽이라도 나눠 갖고픈
울컥, 똬리
?옛날 물동이를 일 때 머리에 얹는 동그란 생활 도구
?제주의 '봉성소락'이라는 곳에서 며칠 묵은 적이 있었다
?그곳 주방에 걸린 짚으로 만들어진 똬리를 보며 느낀 소회를 옮겼다
- 「울컥, 똬리* 1」
가난했던 유년의 저녁 풍경을 애틋한 서정성으로 복원한 '똬리' 연작의 첫 편이 「울컥, 똬리* 1」이다. 물동이를 이고 비탈길을 오르는 젊은 엄마의 모습에서부터 저녁밥을 짓는 현장적 구체성까지는 그 자체로도 서사적 리얼리즘이라 명명할 만하다. "쌀보리들, 볼수록 착하다"거나 "가난, 달다"와 같은 역설적 형용성은 드러나게 결핍을 낭만화하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 깃든 정서적 온기를 끈 놓지 않고 있다. 밥물이 넘치는 장면을 "눈보라 일 듯"이라 표현한 비유 또한 사소한 일상에다 부여한 시적 표정이 실감 되고 "두레 밥상"을 "지상에 부려놓은 에덴"으로 표현한 부분이 낙원의 다른 표현임을 선언적으로 보여준다.
시의 후반부에 와서 잠든 가족의 풍경 위로 시간의 서정성이 흐르고 "온몸이 우물인 엄마의 젖은 얼굴"이라는 이미지에다 쉬지 않고 길어 올려 무언가를 제공하려는 온축된 사랑이 읽힌다. 제목이 보여준 '울컥'이라는 감탄사로 이 작품의 전체에 스민 격한 그리움을 읽을 수 있다. 반복되지만 연작의 첫 번째인 「울컥, 똬리 1」은 젊은 엄마의 노동을 따뜻하면서도 아픈 기억의 자리로 불러낸다. 물동이를 이고 비탈길을 오르거나 부은 발등에 물을 끼얹고 저녁밥을 짓는 엄마의 모습은 가난의 고단함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그러나 "박박 씻어 안친 쌀보리들, 볼수록 착하다"는 표현에 오면 가난 앞에서도 의연한 시인의 긍정성이나 심적 달관을 읽을 수 있다.
그에다 쌀보리와 강낭콩이 섞인 밥에는 가족을 먹이는 손의 온기와 사랑이 배어 있고 "사는 일은 이렇게 밥상 차리는 일"이라는 구절에서 생은 거창한 이념보다 누군가와 한자리에 둘러앉아 식사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스미듯이 보여준다.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라'
재?의 수요일
사제는 내 이마에 재를 얹고 성호를 긋는다
감싸 쥐여주는 견고한 침묵
혀에 얹어준 붉은 장미, 성체
진홍의 단죄
빈 손바닥에 앉은 햇살 비낀 허공이 그 큰 음성을 껴안는다
잿빛 하늘의 우울을, 그가 일용하는 슬픔을 나눠 갖는다
하늘을 나눠 가진 그믐달처럼
낯익은 묵음이 돌이킬 수 없는 자전축의 기울기만큼 가까이
이천여 년 전 어느 하오
역광도 비껴가는 골고다 언덕
고독의 다른 이름, 나자렛 남자의 늑골에서
뚝, 뚝, 뚝, 흐르는 핏방울
그 혈흔이 내게 관여하는 따뜻한 통점痛點
이 풍성한 외로움의 배후
당신이라는 어스름의 경계
잠든 이의 콧속에 불어넣는 붉은 꽃의 숨
잠든 이의 눈꺼풀을 쓸어주는 붉은 꽃의 혀
세상이 막무가내여도 고요함이 물속 같다면
나, 그 꽃을 따라 나서리
가슴으로 걸어가리
서늘한 무풍의 나라
통증이 멎는 나라
그때,
- 「그때」
가톨릭의 재의 수요일 전례를 시적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존재의 유한성과 고독의 현상성을 언어적으로 성찰한 작품이다.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라"는 전례문을 시의 서두에 배치하여 죽음에 대한 진중한 명상적 분위기를 부여한다. 이마에 재를 얹는 사제의 행위를 "견고한 침묵"과 "진홍의 단죄"라는 상반된 질감의 언어로 병치한 점이 눈여겨지며 종교적 의례가 지닌 엄숙함과 고통을 동시화하려는 시도 또한 읽힌다. 그리고 골고다 언덕에서 흘리는 피의 이미지는 "그 혈흔이 내게 관여하는 따뜻한 통점"이라는 구절이 나의 존재를 감각적으로 일깨우고 있다.
시의 후반부에서 "잠든 이의 콧속에 불어넣는 붉은 꽃의 숨"소리와 동일한 표현 등은 종교적 구원의 이미지를 관능적이고 감각적인 언어로 재해석한 것이며 고통과 위로가 하나의 지점에서 만나는 역설적 현상을 보여준다. "통증이 멎는 나라"를 인간적 갈망으로 마무리한 이 시는 존재의 유한성이 이내 평안에 이르는 길임을 스미듯이 암시한다. 우리는 위의 시 「그때」에서 재의 수요일과 예수의 수난을 통해 인간의 유한성과 구원에의 갈망을 읽으면서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라"는 성경상의 주문은 죽음을 향한 경고를 넘어 삶을 더 깊이 성찰하라는 당부로 읽힌다. 이마의 재, 혀 위의 성체, 붉은 장미, 골고다의 핏방울 등은 신앙상의 결곡한 상징이면서 고통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희생의 이미지에 다름아니다.
시인은 예수의 혈흔을 "내게 관여하는 따뜻한 통점"이라 부른다. 그러면서 타인의 고통이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고백을 들려주면서 후반부의 붉은 꽃은 잠든 이를 깨우고 눈꺼풀을 쓸어주며 고요한 나라로 나아가고 있다. 요컨대 "그때"는 과거의 종교적 사건이라기보다는 고통과 사랑이 현재의 나에게 도달한 순간의 다른 말인 것이다.
두레박 올려진 캄캄한 바닥
파란 하늘과 나생이꽃 앉은 너른 들 있다
실눈 뜨고 입술 꽉 문다
반만 채워도 되는 물동이 그득 채우고 바가지 엎어
똬리 위에 올린다
떠오르다 가라앉는 물, 순하게 귀 젖는다
이마에, 목덜미에 투명한 얼룩이 흐른다
기억에는 출렁이는 심연이 있고
生이란 기껏
마음속 사나운 짐승 한 마리 어르고 달래는 일이라지만
저마다 바람 풀어놓은 풀숲 어디쯤 지나
비틀비틀 걸음은 자꾸만 넘어지자 보채고
눈 마주치지 않으려 멀리 돌아온 골목은
수군수군 길 비켜 도망치는 것들뿐
내일은 멀고 오늘은 다 지나가 버려
열무꽃 빛 환한 잠자고 싶어 목울대 맑은 울음 고이던
내 어린 큰 언니
- 「울컥, 똬리 2」
'울컥, 똬리' 연작 두 번째에서 우리는 두레박이 오르내리는 우물가의 풍경과 물을 긷는 어린 언니의 고단한 모습을 읽을 수 있다. "반만 채워도 되는 물동이"를 그득 채우는 어린아이의 수고는 가난한 살림을 너무 빨리 짊어진 조숙함이며 "生이란 기껏/마음속 사나운 짐승 한 마리 어르고 달래는 일"이라는 잠언적 진술을 삽입하여 개인사를 보편적 삶의 통찰로 확장해 간다. 비틀비틀 넘어질 듯한 걸음으로 사람들이 돌아오는 골목길을 묘사한 '어린 화자(혹은 언니)'가 감당해야 했던 부끄러움과 피로를 담담하면서도 아프게 그리고 있다.
"내일은 멀고 오늘은 다 지나가 버려"라는 구절에 오면 유년에의 시간 감각이 미래보다 오늘에 붙들려 있던 삶의 묘망함을 압축적으로 읽을 수 있다. 마지막 행인 "내 어린 큰 언니"로 시상이 수렴되면서 앞서 묘사된 소녀의 익명성은 차차 구체적인 혈육으로 좁혀지고 이 작품의 연작이 개인적 가족사에 대한 헌시이고 독자에게 뒤늦은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시인이 꾸는 "열무꽃 빛 환한 잠"
「울컥, 똬리 2」는 한마디로 우물에서 물을 긷던 어린 큰언니의 기억을 중심에 두고 노래한다. "두레박 올려진 캄캄한 바닥" 그 아래에 하늘과 들판이 있다는 첫 장면의 설정은 깊은 우물과 넓은 세계가 계속 이어져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서 물동이를 그득 채우는 일은 필요충분적 삶의 조건이면서 어린 몸이 감당해야 했던 삶의 지난함이다. "生이란 기껏/마음속 사나운 짐승 한 마리 어르고 달래는 일"이라는 대목에 와서 삶의 내면을 가슴 뭉클하게 마주한다. 길은 자꾸 넘어지라 보채고 골목은 수군거리며 피하고 그러면서 오늘은 이내 지나간다. 그럼에도 시인은 "열무꽃 빛 환한 잠"을 꿈꾸고 있다. 여기에서 큰언니는 단순한 과거의 인물을 넘어 어린 나이임에도 삶의 무게를 무리하게 짐진 존재로 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해가 꾸는 꿈, 붉새*
속곳 활활 태우는 여자
밑줄 친 지평선 밀치고 온다
귀밑머리 은빛 바람으로 온다
쏟아지는 버들개지 흰 솜털들
붉어지는 수숫대
너를 밀치고 나를 밀친 원시림
알 수 없는 깊이로 넋두리에 빠졌다 밤새 우는 것들의 붉은 비명
해가 꾸는 꿈, 붉새
있다, 젖은 눈을 가진 하이에나
선사시대를 거쳐온 사랑이 무거워
유황 냄새나듯 벌겋게 달군 인두질
불현듯 휘고 굽이치는 붉은 것이 눈을 찌른다
문득
나 또한 이름 버린 것들의 누이가 될 것 같은데
마음을 펴봐
빈 손바닥 같은 허공
아, 그 허공의 응답
달그락 자리 바꾸는 별 하나
환하게 돋는 불티 한점 저물며 빛을 키우다 어둠을 잉태하고
누이야,
누이야,
내가 버리고 온 이름을 부르는 네가 오더구나
울음이 울음을 삭이고
어둠이 어둠을 으스러지게 껴안고 엿듣는 네가 오더구나
어린 침묵들 하나둘 모여와 붉게 젖은 귀, 치마폭에 감추고
안으로만 향하는 눈동자를 겨누는 등불이 되더구나
?핏빛처럼 붉은 노을
- 「해가 꾸는 꿈, 붉새*」
노을을 뜻하는 순우리말 '붉새'를 제목으로 한 이 작품은 원시적이고 강렬한 색채 이미지로 가득하다. "속곳 활활 태우는 여자"라는 다소 관능적이고 파격적인 도입부부터 작품은 노을을 여성적 신체와 겹치게 그리고 있다. 버들개지의 하얀 솜털과 붉어진 수숫대의 대비 또한 언어적 선명성을 더하고 "붉은 비명"이라는 공감각적 표현 또한 저녁이 몰고 오는 격정적 분위기를 시각과 청각을 넘나들어 형상화한다. 중반에 등장하는 "젖은 눈을 가진 하이에나"와 "선사시대를 거쳐온 사랑"이라는 표현은 노을 앞에서 촉발된 원초적이고 야생적인 감정을 인두질과 유황 냄새 등으로 환기한 강렬한 감각어로 시의 온도를 한층 끌어 올린다.
후반부에 와서 화자는 "이름 버린 것들의 누이가 될 것 같다"며 익명성에 터 잡은 연대의 감각을 보여주는데 "누이야, 누이야" 하고 반복 호명되는 대상은 다름 아닌 어둠과 울음을 삭힌 존재로 그려진다. 시는 결국 소멸해 가는 노을빛에서 "안으로만 향하는 눈동자를 겨누는 등불"이라는 내면화된 빛의 이미지로 수렴되고 소멸의 화려함에서 응축된 정신성에 나아간다. 위의 작품에서 '붉새'는 핏빛 노을의 다른 이름을 그리 부르지만 동시에 억눌린 여성성과 이름 없는 존재들의 목소리도 함께 읽히고 있다. "속곳 활활 태우는 여자"는 관습과 억압의 경계를 밀쳐버린 원초적 존재이며 이 시가 제시한 '붉음'은 비명과 사랑의 수치와 그 해방을 동시에 드러낸다. "나 또한 이름 버린 것들의 누이가 될 것 같은데"라는 고백은 이 시가 의도한 핵심 표현이 무엇인가를 살필 수 있다.
시인은 사회와 역사 속에서 이름을 빼앗긴 존재들의 자매가 되려 한다. 그리고 '누이야'라는 호명으로 상처 입은 이들을 거듭 부르고 있다. 이 작품의 마지막에서 등불은 세상의 바깥을 밝히기보다 "안으로만 향하는 눈동자"를 치환하고 작품 속의 어둠을 외면하지 않는 빛이라 하겠다.
나비 떼 자욱한 파꽃들 은하 이룬 곳
마르지 않는 큰새암
웅얼대는 입담, 몸 웅크려도 들리는 어깨 너머 숨소리
빨랫방망이 두들기며 엉킨 속내 푼다
구름 한 점씩 내려다보고 개똥지빠귀 날개 털면
버들개지, 귀 연다
술래는 담벼락에 이마를 대고 눈을 감는다
골목은 실타래처럼 헝클어진다
'찾으러 간다!'
'들키지 마라!'
찾기에도 들키기에도 난감한 해저녁
술래의 몰두는 아름다웠으나 외면을 일찍 익혔던
키 낮은 대문은 어두웠고 해야 할 일이 먼저라는 것은
숨을 곳이 없는 것처럼 참담했으리
헐렁한 코백이 고무신
물동이 아래 똬리 얹고 비틀비틀 온다
내 어린 작은언니
- 「울컥, 똬리 3」
「울컥, 똬리 3」은 연작 세 번째로 나비와 파꽃이 어우러진 공간에서의 술래잡기 놀이가 유년의 골목 풍경을 간절하게 복원한다. 큰새암-우물-가의 빨래하는 소리, 개똥지빠귀의 날갯짓 같은 배경 묘사가 정겨운 마을 공동체의 질감을 실감 가운데서 살려내고 술래잡기라는 유희적 소재가 "찾기도 들키기도 난감한 해저녁"이라는 구절에 와서 은유된 삶으로 전환하고 있다. "술래의 몰두는 아름다웠으나 외면을 일찍 익혔던"이라는 대목은 놀이 뒤에 숨겨진 아이의 고단한 현실이 시간조차 넉넉지 않았던 어린 노동자의 처지로 바뀌고 있다.
"헐렁한 코백이 고무신"을 신고 물동이 아래 똬리를 얹은 채 비틀비틀 걸어오는 모습은 '큰언니'와 대구를 이루면서 "내 어린 작은언니"로 이내 돌아오고 연작 속 자매들의 개별적 초상을 완성한다. 유희와 노동, 명랑함과 애잔함이 한 자리에 공존하는 이 작품은 가난한 시절에 함께 자란 자매들의 섬세한 고생을 기억의 차원에서 그려낸다. 「울컥, 똬리 3」은 작은언니의 어린 시절을 골목과 놀이, 노동의 풍경으로 불러내면서 큰새암과 빨랫방망이, 담벼락과 술래놀이, 키 낮은 대문 등 사라진 마을의 풍경까지 아이들의 놀이로 되살리며 아름답지만 "해야 할 일이 먼저"인 가난한 삶의 일상으로 돌리고 마음 놓고 숨을 수도 없었던 시절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숨을 곳이 없는 것처럼 참담했으리"는 이 시의 정서적 막막함을 숨김없이 응축한 것이리라.
시대를 초월하여 아이에게 놀이는 항용 자유로움이어야 한다. 하지만 헐렁한 고무신이 주어지면서 작은언니에게는 물동이와 똬리, 비틀비틀한 걸음 속에 작은언니의 어린 날이 견뎌 낸 삶의 장엄함처럼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긴 속눈썹 아래 검은 호수
굵은 장딴지, 벨벳 망토 두른 어깨
검은 호수가 닫혔다 천천히 열리는 사이
햇살은 투명한 얼룩으로 어룽댄다
얼마나 깊은 곳에서 울리는 언어인가, 네 응시는
투르키에 모스크 불빛의 고요가 외따로 떠 있는 거기
몇 점 파란 불꽃 흔들리고 젖은 뺨을 반씩 나눠 가진다
그만, 고백한다
괜찮니?
괜찮아...
슬픔은 슬픔으로만 어루만져지고
내일은 멀고 오늘은 아예 가버렸기에
너의 바깥, 너의 빗장을 열어주고 싶어
가슴속 섶 불 꺼내주고 싶어
온몸이 우물인 네 긴 속눈썹에 입술 얹으면 눈을 감는
열렬히 나를 듣는
종種의 경계, 부질없다
- 「가을, 이시돌 목장」
제주 이시돌 목장이 배경이 된 이 작품은 말[馬]과 화자 사이의 일치된 교감을 그리면서 동물의 눈을 통해 종種을 넘어선 정서적 유대를 공유하고 있다. "긴 속눈썹 아래 검은 호수"라는 첫 구절은 말의 눈을 심연 같은 공간으로 형상하고 이국적 비유를 통해 "투르키에 모스크 불빛의 고요"와 그 깊이를 한층 확장해 간다. 시의 중반에 "괜찮니?/괜찮아..."라는 짧은 대화체의 삽입은 인간과 동물 사이의 언어적 소통을 극적으로 압축한 측면이 있고 "슬픔은 슬픔으로 어루만지고"는 잠언적 문장을 시의 핵심적 메시지로 제시한다.
화자는 말의 "바깥"과 "빗장"을 열어주자는 욕망을 토로하는데 여기서는 관찰자적 시선을 넘어 상대의 내밀한 고통에 동참하려는 동일시의 감정이입이 읽힌다. 마지막 행 "종種의 경계, 부질없다"는 단언은 이 시가 궁극적으로 겨냥한 지점이며 존재 사이에는 언제나 근원적 경계 허물기를 짧지만 명료한 여운처럼 남긴다. 「가을, 이시돌 목장」은 목장의 말 혹은 소를 바라보며 상처 입은 존재와 교감하는 한편 "긴 속눈썹 아래 검은 호수"라는 표현으로 동물의 눈을 내면의 공간처럼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 그에서 비롯한 응시는 오히려 인간의 말보다 더 깊은 고요를 조장한다.
상처를 다독이듯 피어있을 꽃
시인은 작품을 진행하면서 화자와 동물, 화자와 자기 자신 사이에 오가는 위로의 언어를 보여준다. 그리고 "슬픔은 슬픔으로만 어루만져진다"는 문장은 이 시집을 열어가는 중요한 단서로 읽힌다. 상처는 쉽게 지워지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상처의 온기가 가까이 있을 때 얼마쯤은 이를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종의 경계, 부질없다"는 결말은 거듭 생명들 사이를 이어가는 근원적 연대를 그리 발언한 것이리라.
강 저편에 솜다리꽃이 있다는 말 들었다
소문으로 떠도는 꽃
길 끄트머리 나무에 등을 기대고 서 있다 돌아오곤 했다
나무가 더 간절히 손을 모아 자드락길을 보여주었다
제 기운만큼 밀어 올리는 초록의 파동처럼
내 안에서 뭔가가 함부로 폭발할 때
그 꽃, 솜털 덮인 그 꽃의 투명한 그늘을
가로세로 여닫는 괄호 더듬듯 관여하고 싶었으나
벼랑 근처에서 머뭇거리는 나는 외면하고 싶었다
바람이 수천의 몸으로 옷을 갈아입을 때
뼘 가웃 남짓 강 저편 어딘가 피었다는 솜다리꽃
산다는 건 아프다는 것, 상처를 다독이듯 피어있을 그 꽃을
눈썹 손으로 찾다 돌아오는 게 내 하루의 전부였다
가벼운 것들, 귓가에 붐비던 더운 숨들
홀연 몸을 바꾼 비 젖은 하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강의 고요가, 자드락길의 침묵이 기도였음을
종일 솜다리꽃이 웅성거린다,라고 썼다
- 「내 하루의 전부」
「내 하루의 전부」는 부재하는 대상이란 소문으로만 존재한다는 전제하에 솜다리꽃을 통한 그리움과 기다림을 그리고 있다. 그러면서 "강 저편에 솜다리꽃이 있다는 말 들었다"는 전언 형식의 도입부부터 미확인의 대상에 대한 궁금증이 드러난다. 화자는 매일 같은 자리, 나무에 등을 기대고 꽃을 향해 손을 뻗지만 끝내 다가서지 못하는 "벼랑 근처에서 머뭇거리는 나를 보는 일은 외면하고 싶었다"는 고백을 한다. 그리고 이에서 비롯한 욕망과 두려움이 심리적 섬세함을 포착하면서 "산다는 건 아프다는 것"이라는 직설적 진술이 이 시의 정서적 중심을 이루고 뒤이은 "상처를 다독이듯 피어있을 그 꽃"이라는 이미지와 그 연결로 고통과 치유가 하나의 대상 안에 공존함을 암시한다.
하루 종일 반복되는 기다림의 행위는 결국 "침묵이 기도였음을" 뒤늦은 깨달음으로 수렴하고 마지막 행의 "종일 솜다리꽃이 웅성거린다"는 메타적 진술은 시 쓰기 자체가 부재를 견디는 하나의 방식임을 드러낸 것이리라. 위의 작품 「내 하루의 전부」는 솜다리꽃을 찾아 강 저편을 바라보는 화자의 하루가 기다림과 상처의 시간으로 이어지고 실제로 보지 못한 꽃이기에 그 꽃은 희망인가 하면 결핍이며 계속 살아 움직이게 하는 삶의 이동을 표적 삼는다. 그리고 "가로세로 여닫는 괄호 더듬듯" 꽃에 관여하고 싶다는 말은 꽃을 소유하거나 규정하지 않고 그 존재의 여백을 조심스럽게 더듬고 싶은 심정이 읽힌다. 거듭되지만 "산다는 건 아프다는 것"이라는 표현상의 직절성 또한 이 시를 이끄는 정신적 정서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그에서 비롯된 아픔은 체념을 넘어 상처를 다독이듯 피어있을 꽃으로 이동한다. 마지막에서 "침묵이 기도였음"을 깨닫는 순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화자의 하루가 이미 또 다른 하루에 진입하고 있다.
초경이 시작된 쿠마리*
살을 적시는 붉고 비린 피, 그 순결이 부끄러워 눈을 감는
소름 돋는 아픈 것들이 달려들어
떠나는 걸음보다 돌아오는 길이 더 낯설어질 때
누이야, 누이야
흐르는 피, 양수처럼 지천에 꽃을 피우렴
뜨거운 입김 없이 차가운 것들 가슴 파고들면
스스로 캄캄한 빛을 새기는 서로를 궁금해해
일렁이는 가슴마다 길을
"生, 열무꽃 빛 환한 잠"인가
- 어둠의 심장에서 새어 나온 인간의 여러 말들
김 종
(시인, 화가)
임해원 시인의 시집 『울컥, 똬리』는 목울대를 밀어 올리는 '울컥'으로 주체 못할 감정을 표현하면서 그 출렁거림의 무게를 견디는 '똬리'라는 사물적 장치로 노래를 이어가고 있다. 똬리는 물동이를 머리에 이기 위해 올리는 둥근 받침을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시집에서는 가난과 노동, 여성들의 생애, 가족사의 애도와 생존을 떠받쳐 온 기억의 구조물로 상징된다. 요컨대 『울컥, 똬리』는 울음을 토해 내는 노래라기보다 그 울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떠받친 노래라는 점에서 주목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집의 시적 서정성은 감정의 분출보다 이를 지탱하는 형식에 가깝다는 게 평자가 갖는 생각이다.
꽃 핀 나무 지나 꽃 진 나무에게로
임해원의 이번 시집은 슬픔을 앞에 두고도 이의 극복을 재촉하지 않는다. 대신에 슬픔과 함께 걷거나 나아가는 법, 머리에 담긴 기억의 무게를 이고도 밥을 짓고 꽃을 바라보는 법을 보여준다. 임해원의 시적 세계에서 어둠은 몸을 눕히는 공간이고 눈물은 꽃의 물이며 사라진 사람들은 강과 바람과 새의 얼굴로 돌아오는 그리움의 표상들이다. 그래서 「울컥, 똬리」는 오래된 상처를 다독거리는 한편으로 삶을 물처럼 흐르도록 펼친 사랑의 도록이라 할만하다.
이 시집을 거드는 큰 축은 '경계'의 의미화에 닿아있다. 빛과 어둠, 산 자와 죽은 자, 어린 시절과 현재, 개인의 상처와 세계의 슬픔, 강과 바다, 이름과 이름 없는 존재 사이의 경계가 끊임없이 나뉘면서 시인은 어느 한쪽을 다른 한쪽에 위치시키지 않는다. 요컨대 어둠은 "사라짐이 아닌 쉼"이며 죽음은 단절이라기보다는 꽃길과 강물, 새와 바람으로 이어지는 존재들의 상대적 변형이라 할 것이며 빛 또한 무조건적 구원 이전에 "빛의 고통"을 품은 존재로 드러난다. 이 시집은 빛과 어둠, 삶과 죽음, 기억과 망각의 경계에서 임해원이 요량한 사물들과 그 사물에 배어든 시간과 체온을 더듬어간다. 물동이를 인 어머니의 이마, 상여 꽃의 색, 강을 향해 흐르는 마음의 무늬, 눈보라 날리는 허공, 상처 입은 나무와 붉은 꽃 등은 하나의 존재가 다른 존재로 이동하는 장면들로 드러난다.
그러나 임해원의 시집 『울컥, 똬리』는 상실된 기억을 복원하는 데만 머물지 않는다. 사라진 것들이 어떻게 자신의 거처로 되돌아오는지를,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어떻게 시적 언어의 결을 송이송이 개화하는지를 집요하게 탐문한다. 여기에서 시는 기억의 저장고가 아니라 기억 이전의 몸과 기억 이후의 몸이 맞닿는 장소로서 위치한다. 물동이의 무게, 부은 발등, 상엿소리의 떨림, 우물의 어둠, 강의 물길, 붉은 꽃과 눈보라의 허공 등등은 각기 독립된 이미지가 아니라 한 생애에 축적된 연대된 감각들이 서로를 호출하는 통로로서 작용하고 있다.
그리 보면 임해원의 언어는 자연물을 통해 기억을 되살리는 감성적 특성을 눈여겨보게 한다. 버들개지, 어리연, 애기동백, 솜다리꽃, 달개비, 나생이꽃, 수양버들, 오동나무 등등이 자주 등장함과 동시에 이들 꽃과 나무들은 단순 사물이라기보단 발언하지 못한 자들의 목소리이자 오래된 여성들의 생애이고 삶의 아픔을 대신 피워 낸 몸들의 언어이기도 하다. 특히나 "그미" 연작에서 읽은 '꽃'은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 표현한 것이고 사라진 존재를 기억하는 방식이며 다시금 되살린 감정의 형식이기도 하다.
하나 임해원의 작품에서 더욱 주목할 것은 여성의 언어적 계보이다. 젊은 엄마, 큰언니와 작은언니, 쿠마리, '누이'로 불리는 존재들은 모두가 가난과 노동, 성장통과 억압, 사랑과 상실 등을 몸으로 통과시키고 있다. 시인은 이들을 개별화하지도 영웅화하지도 않는다. 대신에 물동이의 무게, 부은 발등, 고무신 등을 숨을 곳 없는 골목처럼 일상의 장면으로 불러내어 노래의 형식으로 들려준다. 말하자면 시각화를 넘어 시적 청각화에 닿아있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이들의 삶은 비장한 서사가 아니라 밥을 짓고 물을 길으며 울음을 삼키는 일상의 성스러움으로 빛을 투사하고 있다. 이 시집에서 반복되는 "붉음"이란 어휘 또한 눈여겨지는 부분이다. 붉음은 피, 노을, 동백, 장미, 상처, 성체, 생리, 불꽃을 이어가는 생명의 강렬한 표식이자 통증의 색으로 기능한다. 시인은 이들 붉음을 통해 상처와 생명, 사랑과 죽음 등이 상호 멀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이 시집의 서정성은 단지 아름다움에 그치지 않고 이들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윤리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임해원의 시집 『울컥, 똬리』는 기억을 서사로 정리하기보다 감각으로 되살리는 특이함 또한 읽을 수 있다. 개인의 상처를 고백의 공간에 가두지 않고 여성의 노동과 몸, 공동체의 장례와 토속의 언어, 자연의 순환과 종교적 상상력으로 확장해 가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 때문인가 이 시집에서 빛은 어둠을 지우지 않고 어둠 또한 빛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둘은 서로의 내부에서 존재의 느낌을 심화시켜 간다. 그러므로 시집 『울컥, 똬리』에서 읽은 '울컥거림'은 감정의 파열 상태가 아니라 기억이 몸을 통과할 때 일어나는 현재적 진동이라 할 것이고 이럴 때 똬리는 그 진동을 견디는 삶의 낮고 둥근 형식으로 읽힌다. 시인은 그 같은 똬리 위에 물동이만이 아니라 어머니와 언니들의 생애, 죽은 이들의 이름, 상처 입은 몸들의 침묵, 그리고 아직 도래하지 않은 내일의 빛까지를 조심스레 올려놓고 서로를 받쳐 든 존재들의 묘사를 조용하고도 깊게 증언하는 것이다.
밀고 들어오는 어둠
어둠의 심장에서 빛이 새어 나온다, 화폭에 앉는다
소용돌이치는 색의 기억들이 진하게, 순하게 쏟아진다
태양을 필사적으로 붙들던 노랑, 숨을 멈춘다
허공의 새는 울음을 멈추지 않고
수평선을 긋고 그 금을 넘어오는, 온 적이 없는 배를 그린다
하늘은 그리지 않는다
한 번도 제 본디를 보여주지 않았기에
빛의 심장에 들어온 모든 존재는 자기 역할 후 사라진다
빛과 어둠의 경계
그 아우름에서 으름덩굴 속 고양이처럼 뒤엉킨다
어둠은 사라짐이 아니다, 쉼이다
빛은 부드럽게 위로부터 내려와 어둠으로 스민다
미모사처럼 움츠러든다
겁먹은 아이처럼 자신의 노랑 속에 제물인 양 드러눕는다
여기저기 툭, 툭 끊어진 의식의 실타래
외면하듯 구겨진 잿빛 모자를 눌러쓴다
훗날
먼 훗날
바람이, 새가, 바다가 나를 그린다
우두커니 뒹굴던 돌이 나를 그린다
빛과 어둠
한결같거나 다르다
- 「빛과 어둠, 화가 1」
「빛과 어둠, 화가 1」은 캔버스라는 회화적 공간을 빌려 존재의 생성과 소멸을 그리고 있다. 어둠에서 빛이 새어 나오는 장면은 그 즉시 도달한 창조에의 순간에 진입함을 의미한다. 시는 이어지면서 "하늘은 그리지 않는다"는 선언으로 이어지고 재현 불가능한 초월적 영역으로 나아간다. 화가는 세계의 전체가 아니라 빛의 심장에 잠깐 머물다 사라지는 존재 또한 포착하려 한다. 특히 "어둠은 사라짐이 아니다, 쉼이다"라는 구절에 오면 이 시집 전체를 관류하는 사유가 소멸은 절멸이 아니라 '휴지休止'라는 사실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이때 빛과 어둠은 대립하는 두 개의 항목이기보다 하나의 몸이 번갈아 걸쳐 입은 옷과 같으며 스스로의 풍경이 바람과 새와 돌에 의해 "그려지는" 존재로 전환되고 있다. 이는 주체와 대상, 그리는 자와 그려지는 자의 경계를 허무는 순환적 세계관에 기인한다. 색채어-노랑, 잿빛-의 선명한 대비와 회화적 동사-앉는다, 쏟아진다-의 대비적 사용이 시각적 밀도를 높이는 동시에 관념적 진술을 구체적 이미지로 육화시키고 있어 이 시의 실감이 커진 것이다.
임해원 시인은 위의 작품을 통해 "어둠의 심장에서 빛이 새어 나온다"는 첫 구절의 이미지부터 이 시집의 핵심 세계관을 압축해 내고 있다. 작품에서 화자는 빛은 어둠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태어나 화폭에 앉는다고 생각한다. 화가는 태양을 붙들던 노랑, 멈추지 않는 새의 울음, 오지 않은 배를 그리면서 보이는 풍경보다 보이지 않는 기다림과 결핍을 포착한 사람으로 드러난다. "하늘은 그리지 않는다/한 번도 제 본디를 보여주지 않았기에"라는 표현에서 강한 시적 여운이 남는 것은 물론이고 이 시를 더더욱 인상 깊게 한다. 하늘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정작 자신의 본질을 드러내지 않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이 같은 시적 불가사의 앞에서 이내 겸손해진다. 특히나 후반부에 와서 "어둠은 사라짐이 아니다, 한편 쉼"이라고 말할 때의 삶의 고단함과 상실을 차이 나게 받아들인 시인의 태도가 이채롭다. 훗날 바람과 새와 바다와 돌이 '나'를 그린다는 결말은 창작적 주체가 결국은 자연과 세계 속으로 흩어지는 순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눈여겨진다.
살아있는 이가 죽으면
초상집 지붕 위로 망자의 저고리가 던져지고
바람 잦은 산비탈 외딴 상엿집
상여는 마을로 내려왔다
초상집 마당에서 흩뜨려진 뼈 마디마디를 맞춘 상여
널*을 품고 일어나 비상을 꿈꾼다
어른들은 상여꽃으로 망자의 죽음을 추측했다
붉은 꽃이면 '편한 세상 살다 갔네'
온통 흰 꽃이면 '아프다 갔네' 혀를 끌끌 찼다
만장 앞세운 상여에 올라탄 상여꾼이 요령을 흔들며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님도 꽃길 가소!' 상엿소리 뽑으면
'어허야 디여라, 인생 백 년 꿈이로다!' 맞장구치며
어디만큼에서 제 살았던 데 돌아본 상여
한 마리 새가 되어 흔적 없이 산으로 스며들었다
꽃 꺾어 머리에 꽂고
쪽두리꽃에 앉았던 나비 따라 나부대던
상엿소리에 울먹이던
뭐라 말해야 하나
그걸 어찌 말로 다 하나
그럼에도 눈꺼풀 누르던 겨운 졸음 속 뽀얀 달빛에
파먹히던 어둠, 그 그윽함을
어서어서 가자구요
꽃 핀 나무 지나 꽃 진 나무에게로
꽃 진 나무 지나 죽은 나무에게로
걸어온 길들 스르르 몸을 숨기며
어디만치 왔나
어디만치 왔나
물어도 대답 없이
하염없음이 하염없게
?관의 토속어, 사투리
- 「옛 1」
전통 장례 풍속을 소재로 한 「옛 1」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관찰자의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초상집 지붕에 던져지는 저고리, 상여 꽃의 색으로 망자의 다음 시간을 장식하고 짐작하는, 민간이 지켜온 생사의 해석 방식이나 상엿소리와 화답하는 상여꾼의 가락 등이 구체적이고 생생한 민속적 디테일로 드러난다. 이 같은 풍속의 형상은 현상의 단순 재현에 그치지 않고 "한 마리 새가 되어 흔적 없이 산으로 스며 들었다"는 구절처럼 소멸이 아닌 변신과 귀환의 과정으로 바뀌게 된다. 화자는 유년의 기억 속에 환청처럼 고여있는 상엿소리에 울먹이던 그 시절의 자신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화자는 관찰자적 거리를 좁히고 개인적 정서로 진입한다. 후반부의 "꽃 핀 나무 지나 꽃 진 나무에게로" 이어지는 언어의 반복 구조는 삶에서 죽음으로 나아가는 걸음걸이를 리듬감 있게 형상화한 것이며 "어디만치 왔나"를 묻는 물음에 대답한 것은 존재의 행로가 본질적으로 그 같은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마지막에 읽은 "하염없음이 하염없게"라는 부사의 반복적 사용은 단순 나열이 아닌, 슬픔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오랜 여운으로 이어가려는 의도일 것이다.
공동체의 장례 풍습이 노래된 「옛 1」은 죽음의 풍경을 복원하면서 상여, 상여꽃, 만장, 요령, 상엿소리, 널 같은 토속적 사물들이 구체적으로 등장하고 망자의 마지막 길을 한 마리 새가 되어 날아드는 장면으로 그려간다. 죽음은 한편으로는 슬픔이면서도 공동체가 떠받드는 하나의 엄숙한 의식이기도 하다. 특히 상여꽃의 색으로 죽은 이의 삶을 짐작하는 장면은 민간의 애틋한 상상력이 그 같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고 붉은 꽃은 편안한 삶, 흰 꽃은 아픈 삶의 의미가 읽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시인은 "뭐라 말해야 하나/그걸 어찌 말로 다 하나"라며 말로는 담아내기 어려운, 달빛에 파먹히던 어둠에의 "그 그윽함"이 이 시의 중심의미처럼 드러난다.
늘 나보다 먼저 도착하는 강
먼 어느 곳을 적시려는지 뻐꾸기가 강 뒤쪽에서 운다
해를 삼킨 연초록
나이테 굵은 나무의 새살들
손사래 치며 가는 망혼亡魂 같은 빗줄기
보랏빛 주렁주렁 달고 선 오동나무
발 아래 먼지 뒤집어쓴 며느리밑씻개
그들이 내 자음 모음이다
내 이름 잊은 날
누구도 내 이름 부르지 않고
나도 누구의 이름 부르지 않게 된
팔월과 시월 사이
붉어지는 사과가 뚝 떨어질 때
잃어버린 자음 모음 찾으러 풀밭 뒤적일 때
가슴 아래 어디쯤 틈새기 있어
노래 한껏 줄인 여치가 찾아 준 적 있다
바닥이 허방인 제 가슴 안고
어떤 간절함에 맞닿은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고 세상도 모르는 수수께끼
너는 너에게, 나는 나에게 묻는 피톨 같은 길
꽃의 다른 얼굴, 나비가 노랑을 품고 낮게 날면
외진 곳이 지닌 순결처럼 지평선을 품은 이가
수평선의 얘기를 듣느라 귀가 지워지는 것도 모른다
늘 나보다 먼저 도착하는 강
늘 '나는 바다야' 외치는 강, 그 끝에서 바다가 시작된다
- 「그리고 바다가 시작된다」
강에서 바다로 흘러가는 대자연의 여정을 자아의 정체성 위에 겹치게 그려낸 시다. 화자는 뻐꾸기 울음, 오동나무, 며느리밑씻개 등 구체적인 식물과 동물의 이미지들을 "내 자음 모음"이라 명명하면서 자연물을 자기 존재의 구성 요소로 이어서 임해원 만의 독특한 시적 발상을 보여준다. "내 이름 잊은 날"이라는 표현으로도 화자는 사회적 관계망에서 이탈하여 익명의 존재로 남는 순간을 포착하는가 하면 그에게서 생성된 공백을 여치의 노래로 채워내고 있다. 시의 중반에서 시인은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고 세상도 모르는 수수께끼"라는 구절로 존재론적 불가지성을 강조한다. 그런가 하면 나비와 지평선, 포개놓은 수평선의 이미지로 시야를 점차 확장해 가는데 이때의 강은 화자보다 먼저 도착해 "나는 바다야"를 외치는 의인화된 존재로 드러나고 자아의 완성이 언제나처럼 자연의 순환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강과 바다의 경계가 사라지는 지점에서 시가 끝나는 것은 당초 시인의 시작 의도가 이쯤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시적 정체성이란 고정된 지점이 아니라 흐름 자체이거나 일부임을 암시하는 구조적 장치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 보면 「그리고 바다가 시작된다」는 이름을 잃은 존재가 다시금 자기 존재를 찾아가는 과정을 노래한 서정성이 실팍한 시다. 연초록, 나이테, 빗줄기, 오동나무, 며느리밑씻개는 시인이 의도한 "내 자음 모음"이 되는 반면 시인에게 자연은 말의 근원이자 정체성을 되찾는 자리이기도 하다. "내 이름 잊은 날"은 단지 망각의 순간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가 끊기고 자기 자신마저 멀어진 시간을 의미한다. 그러나 풀밭을 뒤적이는 행위, 여치의 낮은 노래, 꽃과 나비의 움직임은 잃었던 언어를 다시금 소환하면서 읽은 "늘 나보다 먼저 도착하는 강/늘 '나는 바다야' 외치는 강"은 존재의 지향을 아름답게 발언한 의미를 지닌다. 강은 아직 바다가 아니지만 이미 바다가 되어가고 있다. 이리 보면 인간 또한 도착하지는 못했어도 어떤 간절한 방향을 향해 흐르며 흐르며 이미 그것의 일부가 되어가는 것이다.
비로소 허공이야
가늠할 수 없는 거기는 깊어
자잘한 애탐을 날갯질하는 설렘
누가 이름 지어 부르는가
대답이 더디다
빗금으로 발을 친
아,
너무 많은 입술이
너무 많은 귓볼이
바람으로 모여 기억의 초점을 내려놓고
어떤 중력에 닿고서야 멈추는 축포처럼
새 떼 날리는 흰 손의 모반
진실한 가짜의 희디흰 허공들
내리꽂고 혹은 치솟는, 저희끼리 부딪친 산산조각 또한
따로 이름 지어 부르지 않는다
깜깜하게 쏟아지는, 누구인가 그는
여전히 대답이 떨렸다
비스듬히
눈
설
레
?눈보라와 세찬 바람의 우리 말
- 「눈설레* 1」
제목에서 읽은 순우리말 '눈설레'-눈보라와 세찬 바람-는 언어적 형태와 리듬을 눈보라의 감각으로 재현하려는 실험성이 상당한 작품이다. "너무 많은 입술이/너무 많은 귓볼이"처럼 반복되는 구절은 눈발이 흩날리는 낱낱의 순간들을 암시하며 "진실한 가짜의 희디흰 허공들"이라는 역설적 표현에 이르러 눈이라는 자연현상에서 실재와 허상을 감별하려는 이중구조를 보인다. 화자는 이름 붙이기를 거부하며 "이름 지어 부르는가", "따로 이름 지어 부르지 않는다" 등을 반복하는데 이는 아무렇게나 흩어지는 것들에 대한 시인의 관심을 눈보라처럼 흩날리는 효과가 있다. 마지막 부분에서 "눈/설/레"로 글자를 해체하여 형태 또한 실제로 눈이 비스듬히 흩날리는 시각적 이미지를 재현하는 구체시具體詩적 전달이거나 이미지로 활용한 점이 인상적이다. 다소 난해하고 파편적인 연쇄적 이미지가 독해의 문턱을 높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가 눈보라의 방향성을 체현하는 형식적 선택은 아닌가 싶다.
제자리로 돌아와서 '눈설레'는 눈보라와 세찬 바람을 의미하는 우리말이다. 이 시는 시각과 청각에다 몸의 떨림까지를 더하여 이 시의 감각성을 되살리고 있다. 허공은 깊고 설렘은 날개처럼 날아오르고 그 누가 불러도 대답은 더디고 읽은 뒤의 기쁜 감정을 넘어 불안과 애탐, 나아가선 기억의 파편을 흔들림으로 드러난다. "너무 많은 입술", "너무 많은 귓불" 등이 바람 현상으로 읽히는 것은 말하지 못한 것과 듣지 못한 목소리들의 집합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진실한 가짜"라는 역설 또한 눈보라의 환영을 보이면서 마지막의 "눈/설/레"로 분절된 음운상의 표기 또한 흩날린 눈발이 바람을 가르는 효과처럼 읽힌다.
새 떼, 한숨처럼 길다
자미꽃, 잿빛 하늘에 스민다
내 몸에 흐르던 피도 스민다
자미꽃 천 번, 만 번 붉게 피었다 지면
저세상보다 더 멀리 가버린 그도 붉을까
다 해진 무릎으로 나무는 겨울을 건넜으리
크레바스처럼 갈라진 수피 틈에 울음 새어나왔으리
가지 끝, 새가 허공을 두드리면 한 겹 껍질을 벗으려나
내 안에 뭔가 함부로 휘저어질 때
바람이 나무 끝에 이르러 몸을 여럿 갈아입다가
잎사귀에 얼굴 파묻고 흐느낄 때 물끄러미 바람의 연산을 생각한다
모였다간 흩어지는 푸른 파동
마주 서서 숨죽인 응시로 어둠 밀치고 물이 물을 껴안듯
나무가 일으키는 찬란한 춤의 셈법
솨 솨 솨,
그 바람이 나다
- 「그 바람이 나다」
「그 바람이 나다」는 바람을 매개로 하여 자연과 자아가 합일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새 떼의 날갯짓을 "한숨처럼 길다"고 묘사한 첫 행부터 시어들의 청각과 촉각을 넘나드는 감각의 교차를 능숙하게 시도한다. 자미꽃-백일홍-이 피고 지는 개화의 순환성은 "저세상보다 더 멀리 가버린 그"에 대한 그리움과 겹쳐지고 나무의 겨울나기를 "다 해진 무릎"이라는 신체 이미지는 자연물의 형상에다 인간적 고통을 감정이입으로 투사한 것이다. 시의 중반에서 바람이 나무를 스치며 "여러 몸을 갈아입다가" 잎사귀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낀다는 구절은 바람이라는 무형의 존재에 신체와 감정을 부여하는 의인화의 과정에 다름 아니다. 화자는 이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바람의 연산"이라는 다소 이질적인 수학적 어휘로 드러내는데 이는 자연물에 내재한 질서와 운동의 셈법을 그리 융합한 것으로 읽힌다. "솨 솨 솨"라는 의성어에다 "그 바람이 나다"라고 발언하는 결말은 관찰의 대상이던 바람과 관찰하는 주체가 마침내는 하나로 만나는 순간을 간결하게 초점화하고 있다.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
위의 작품에서 바람은 애도하는 몸이자 시인의 자아로 드러난다. 자미꽃의 붉음은 죽은 '그'에게 닿고 싶은 그리움의 색채가 그 같다는 의미이며 겨울을 건너면서 갈라진 나무의 수피에는 오래 밴 울음이 불빛이 날듯 흐르고 있다. 여기에서 나무와 화자는 상처를 견디며 계절을 지나온 합일된 존재이다. 그런가 하면 바람은 하나의 몸이 아니라 무수히 모였다 흩어지는 사물의 분산이고 나무의 춤을 받아들인 파동의 방식이라 할만하다. 물이 물을 껴안듯 바람과 나무와 화자는 서로의 슬픔을 감싸면서 마지막에 읽은 "솨 솨 솨,/그 바람이 나다"라는 화두 속으로 이내 사라지는 자연과 리듬의 순간을 하나로 모은다고나 할까.
젊은 엄마
이마에 흐르는 물 손등으로 뿌리며
물동이 이고 비탈길 올라 저문 대문 들어서네
부은 발등, 물 끼얹고 서둘러 저녁밥 짓네
우묵한 양은 냄비
박박 씻어 안친 쌀보리들, 볼수록 착하다
밥물이 끓는다
눈보라 일 듯 넘친다
소복이 솟은 쌀보리 능선
드문드문 강낭콩 섞인 주걱에 묻어나는 가난, 달다
사는 일은 이렇게 밥상 차리는 일
두레 밥상에 어린 것들 둘러앉힌 성찬례
지상에 부려놓은 에덴
대문 앞 늘어진 수양버들, 머리까지 끌어 덮고 잠에 든다
꿈이 길다
기억이 흘러가는 발밑, 뿌리가 내린다
바람에 머리카락 터는 버들개지
물감 번지듯 종소리로 날아간다, 사라진다
어둡지만 캄캄하지 않고
환하지만 가볍지 않은
온몸이 우물인 엄마의 젖은 얼굴 반쪽이라도 나눠 갖고픈
울컥, 똬리
?옛날 물동이를 일 때 머리에 얹는 동그란 생활 도구
?제주의 '봉성소락'이라는 곳에서 며칠 묵은 적이 있었다
?그곳 주방에 걸린 짚으로 만들어진 똬리를 보며 느낀 소회를 옮겼다
- 「울컥, 똬리* 1」
가난했던 유년의 저녁 풍경을 애틋한 서정성으로 복원한 '똬리' 연작의 첫 편이 「울컥, 똬리* 1」이다. 물동이를 이고 비탈길을 오르는 젊은 엄마의 모습에서부터 저녁밥을 짓는 현장적 구체성까지는 그 자체로도 서사적 리얼리즘이라 명명할 만하다. "쌀보리들, 볼수록 착하다"거나 "가난, 달다"와 같은 역설적 형용성은 드러나게 결핍을 낭만화하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 깃든 정서적 온기를 끈 놓지 않고 있다. 밥물이 넘치는 장면을 "눈보라 일 듯"이라 표현한 비유 또한 사소한 일상에다 부여한 시적 표정이 실감 되고 "두레 밥상"을 "지상에 부려놓은 에덴"으로 표현한 부분이 낙원의 다른 표현임을 선언적으로 보여준다.
시의 후반부에 와서 잠든 가족의 풍경 위로 시간의 서정성이 흐르고 "온몸이 우물인 엄마의 젖은 얼굴"이라는 이미지에다 쉬지 않고 길어 올려 무언가를 제공하려는 온축된 사랑이 읽힌다. 제목이 보여준 '울컥'이라는 감탄사로 이 작품의 전체에 스민 격한 그리움을 읽을 수 있다. 반복되지만 연작의 첫 번째인 「울컥, 똬리 1」은 젊은 엄마의 노동을 따뜻하면서도 아픈 기억의 자리로 불러낸다. 물동이를 이고 비탈길을 오르거나 부은 발등에 물을 끼얹고 저녁밥을 짓는 엄마의 모습은 가난의 고단함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그러나 "박박 씻어 안친 쌀보리들, 볼수록 착하다"는 표현에 오면 가난 앞에서도 의연한 시인의 긍정성이나 심적 달관을 읽을 수 있다.
그에다 쌀보리와 강낭콩이 섞인 밥에는 가족을 먹이는 손의 온기와 사랑이 배어 있고 "사는 일은 이렇게 밥상 차리는 일"이라는 구절에서 생은 거창한 이념보다 누군가와 한자리에 둘러앉아 식사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스미듯이 보여준다.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라'
재?의 수요일
사제는 내 이마에 재를 얹고 성호를 긋는다
감싸 쥐여주는 견고한 침묵
혀에 얹어준 붉은 장미, 성체
진홍의 단죄
빈 손바닥에 앉은 햇살 비낀 허공이 그 큰 음성을 껴안는다
잿빛 하늘의 우울을, 그가 일용하는 슬픔을 나눠 갖는다
하늘을 나눠 가진 그믐달처럼
낯익은 묵음이 돌이킬 수 없는 자전축의 기울기만큼 가까이
이천여 년 전 어느 하오
역광도 비껴가는 골고다 언덕
고독의 다른 이름, 나자렛 남자의 늑골에서
뚝, 뚝, 뚝, 흐르는 핏방울
그 혈흔이 내게 관여하는 따뜻한 통점痛點
이 풍성한 외로움의 배후
당신이라는 어스름의 경계
잠든 이의 콧속에 불어넣는 붉은 꽃의 숨
잠든 이의 눈꺼풀을 쓸어주는 붉은 꽃의 혀
세상이 막무가내여도 고요함이 물속 같다면
나, 그 꽃을 따라 나서리
가슴으로 걸어가리
서늘한 무풍의 나라
통증이 멎는 나라
그때,
- 「그때」
가톨릭의 재의 수요일 전례를 시적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존재의 유한성과 고독의 현상성을 언어적으로 성찰한 작품이다.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라"는 전례문을 시의 서두에 배치하여 죽음에 대한 진중한 명상적 분위기를 부여한다. 이마에 재를 얹는 사제의 행위를 "견고한 침묵"과 "진홍의 단죄"라는 상반된 질감의 언어로 병치한 점이 눈여겨지며 종교적 의례가 지닌 엄숙함과 고통을 동시화하려는 시도 또한 읽힌다. 그리고 골고다 언덕에서 흘리는 피의 이미지는 "그 혈흔이 내게 관여하는 따뜻한 통점"이라는 구절이 나의 존재를 감각적으로 일깨우고 있다.
시의 후반부에서 "잠든 이의 콧속에 불어넣는 붉은 꽃의 숨"소리와 동일한 표현 등은 종교적 구원의 이미지를 관능적이고 감각적인 언어로 재해석한 것이며 고통과 위로가 하나의 지점에서 만나는 역설적 현상을 보여준다. "통증이 멎는 나라"를 인간적 갈망으로 마무리한 이 시는 존재의 유한성이 이내 평안에 이르는 길임을 스미듯이 암시한다. 우리는 위의 시 「그때」에서 재의 수요일과 예수의 수난을 통해 인간의 유한성과 구원에의 갈망을 읽으면서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라"는 성경상의 주문은 죽음을 향한 경고를 넘어 삶을 더 깊이 성찰하라는 당부로 읽힌다. 이마의 재, 혀 위의 성체, 붉은 장미, 골고다의 핏방울 등은 신앙상의 결곡한 상징이면서 고통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희생의 이미지에 다름아니다.
시인은 예수의 혈흔을 "내게 관여하는 따뜻한 통점"이라 부른다. 그러면서 타인의 고통이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고백을 들려주면서 후반부의 붉은 꽃은 잠든 이를 깨우고 눈꺼풀을 쓸어주며 고요한 나라로 나아가고 있다. 요컨대 "그때"는 과거의 종교적 사건이라기보다는 고통과 사랑이 현재의 나에게 도달한 순간의 다른 말인 것이다.
두레박 올려진 캄캄한 바닥
파란 하늘과 나생이꽃 앉은 너른 들 있다
실눈 뜨고 입술 꽉 문다
반만 채워도 되는 물동이 그득 채우고 바가지 엎어
똬리 위에 올린다
떠오르다 가라앉는 물, 순하게 귀 젖는다
이마에, 목덜미에 투명한 얼룩이 흐른다
기억에는 출렁이는 심연이 있고
生이란 기껏
마음속 사나운 짐승 한 마리 어르고 달래는 일이라지만
저마다 바람 풀어놓은 풀숲 어디쯤 지나
비틀비틀 걸음은 자꾸만 넘어지자 보채고
눈 마주치지 않으려 멀리 돌아온 골목은
수군수군 길 비켜 도망치는 것들뿐
내일은 멀고 오늘은 다 지나가 버려
열무꽃 빛 환한 잠자고 싶어 목울대 맑은 울음 고이던
내 어린 큰 언니
- 「울컥, 똬리 2」
'울컥, 똬리' 연작 두 번째에서 우리는 두레박이 오르내리는 우물가의 풍경과 물을 긷는 어린 언니의 고단한 모습을 읽을 수 있다. "반만 채워도 되는 물동이"를 그득 채우는 어린아이의 수고는 가난한 살림을 너무 빨리 짊어진 조숙함이며 "生이란 기껏/마음속 사나운 짐승 한 마리 어르고 달래는 일"이라는 잠언적 진술을 삽입하여 개인사를 보편적 삶의 통찰로 확장해 간다. 비틀비틀 넘어질 듯한 걸음으로 사람들이 돌아오는 골목길을 묘사한 '어린 화자(혹은 언니)'가 감당해야 했던 부끄러움과 피로를 담담하면서도 아프게 그리고 있다.
"내일은 멀고 오늘은 다 지나가 버려"라는 구절에 오면 유년에의 시간 감각이 미래보다 오늘에 붙들려 있던 삶의 묘망함을 압축적으로 읽을 수 있다. 마지막 행인 "내 어린 큰 언니"로 시상이 수렴되면서 앞서 묘사된 소녀의 익명성은 차차 구체적인 혈육으로 좁혀지고 이 작품의 연작이 개인적 가족사에 대한 헌시이고 독자에게 뒤늦은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시인이 꾸는 "열무꽃 빛 환한 잠"
「울컥, 똬리 2」는 한마디로 우물에서 물을 긷던 어린 큰언니의 기억을 중심에 두고 노래한다. "두레박 올려진 캄캄한 바닥" 그 아래에 하늘과 들판이 있다는 첫 장면의 설정은 깊은 우물과 넓은 세계가 계속 이어져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서 물동이를 그득 채우는 일은 필요충분적 삶의 조건이면서 어린 몸이 감당해야 했던 삶의 지난함이다. "生이란 기껏/마음속 사나운 짐승 한 마리 어르고 달래는 일"이라는 대목에 와서 삶의 내면을 가슴 뭉클하게 마주한다. 길은 자꾸 넘어지라 보채고 골목은 수군거리며 피하고 그러면서 오늘은 이내 지나간다. 그럼에도 시인은 "열무꽃 빛 환한 잠"을 꿈꾸고 있다. 여기에서 큰언니는 단순한 과거의 인물을 넘어 어린 나이임에도 삶의 무게를 무리하게 짐진 존재로 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해가 꾸는 꿈, 붉새*
속곳 활활 태우는 여자
밑줄 친 지평선 밀치고 온다
귀밑머리 은빛 바람으로 온다
쏟아지는 버들개지 흰 솜털들
붉어지는 수숫대
너를 밀치고 나를 밀친 원시림
알 수 없는 깊이로 넋두리에 빠졌다 밤새 우는 것들의 붉은 비명
해가 꾸는 꿈, 붉새
있다, 젖은 눈을 가진 하이에나
선사시대를 거쳐온 사랑이 무거워
유황 냄새나듯 벌겋게 달군 인두질
불현듯 휘고 굽이치는 붉은 것이 눈을 찌른다
문득
나 또한 이름 버린 것들의 누이가 될 것 같은데
마음을 펴봐
빈 손바닥 같은 허공
아, 그 허공의 응답
달그락 자리 바꾸는 별 하나
환하게 돋는 불티 한점 저물며 빛을 키우다 어둠을 잉태하고
누이야,
누이야,
내가 버리고 온 이름을 부르는 네가 오더구나
울음이 울음을 삭이고
어둠이 어둠을 으스러지게 껴안고 엿듣는 네가 오더구나
어린 침묵들 하나둘 모여와 붉게 젖은 귀, 치마폭에 감추고
안으로만 향하는 눈동자를 겨누는 등불이 되더구나
?핏빛처럼 붉은 노을
- 「해가 꾸는 꿈, 붉새*」
노을을 뜻하는 순우리말 '붉새'를 제목으로 한 이 작품은 원시적이고 강렬한 색채 이미지로 가득하다. "속곳 활활 태우는 여자"라는 다소 관능적이고 파격적인 도입부부터 작품은 노을을 여성적 신체와 겹치게 그리고 있다. 버들개지의 하얀 솜털과 붉어진 수숫대의 대비 또한 언어적 선명성을 더하고 "붉은 비명"이라는 공감각적 표현 또한 저녁이 몰고 오는 격정적 분위기를 시각과 청각을 넘나들어 형상화한다. 중반에 등장하는 "젖은 눈을 가진 하이에나"와 "선사시대를 거쳐온 사랑"이라는 표현은 노을 앞에서 촉발된 원초적이고 야생적인 감정을 인두질과 유황 냄새 등으로 환기한 강렬한 감각어로 시의 온도를 한층 끌어 올린다.
후반부에 와서 화자는 "이름 버린 것들의 누이가 될 것 같다"며 익명성에 터 잡은 연대의 감각을 보여주는데 "누이야, 누이야" 하고 반복 호명되는 대상은 다름 아닌 어둠과 울음을 삭힌 존재로 그려진다. 시는 결국 소멸해 가는 노을빛에서 "안으로만 향하는 눈동자를 겨누는 등불"이라는 내면화된 빛의 이미지로 수렴되고 소멸의 화려함에서 응축된 정신성에 나아간다. 위의 작품에서 '붉새'는 핏빛 노을의 다른 이름을 그리 부르지만 동시에 억눌린 여성성과 이름 없는 존재들의 목소리도 함께 읽히고 있다. "속곳 활활 태우는 여자"는 관습과 억압의 경계를 밀쳐버린 원초적 존재이며 이 시가 제시한 '붉음'은 비명과 사랑의 수치와 그 해방을 동시에 드러낸다. "나 또한 이름 버린 것들의 누이가 될 것 같은데"라는 고백은 이 시가 의도한 핵심 표현이 무엇인가를 살필 수 있다.
시인은 사회와 역사 속에서 이름을 빼앗긴 존재들의 자매가 되려 한다. 그리고 '누이야'라는 호명으로 상처 입은 이들을 거듭 부르고 있다. 이 작품의 마지막에서 등불은 세상의 바깥을 밝히기보다 "안으로만 향하는 눈동자"를 치환하고 작품 속의 어둠을 외면하지 않는 빛이라 하겠다.
나비 떼 자욱한 파꽃들 은하 이룬 곳
마르지 않는 큰새암
웅얼대는 입담, 몸 웅크려도 들리는 어깨 너머 숨소리
빨랫방망이 두들기며 엉킨 속내 푼다
구름 한 점씩 내려다보고 개똥지빠귀 날개 털면
버들개지, 귀 연다
술래는 담벼락에 이마를 대고 눈을 감는다
골목은 실타래처럼 헝클어진다
'찾으러 간다!'
'들키지 마라!'
찾기에도 들키기에도 난감한 해저녁
술래의 몰두는 아름다웠으나 외면을 일찍 익혔던
키 낮은 대문은 어두웠고 해야 할 일이 먼저라는 것은
숨을 곳이 없는 것처럼 참담했으리
헐렁한 코백이 고무신
물동이 아래 똬리 얹고 비틀비틀 온다
내 어린 작은언니
- 「울컥, 똬리 3」
「울컥, 똬리 3」은 연작 세 번째로 나비와 파꽃이 어우러진 공간에서의 술래잡기 놀이가 유년의 골목 풍경을 간절하게 복원한다. 큰새암-우물-가의 빨래하는 소리, 개똥지빠귀의 날갯짓 같은 배경 묘사가 정겨운 마을 공동체의 질감을 실감 가운데서 살려내고 술래잡기라는 유희적 소재가 "찾기도 들키기도 난감한 해저녁"이라는 구절에 와서 은유된 삶으로 전환하고 있다. "술래의 몰두는 아름다웠으나 외면을 일찍 익혔던"이라는 대목은 놀이 뒤에 숨겨진 아이의 고단한 현실이 시간조차 넉넉지 않았던 어린 노동자의 처지로 바뀌고 있다.
"헐렁한 코백이 고무신"을 신고 물동이 아래 똬리를 얹은 채 비틀비틀 걸어오는 모습은 '큰언니'와 대구를 이루면서 "내 어린 작은언니"로 이내 돌아오고 연작 속 자매들의 개별적 초상을 완성한다. 유희와 노동, 명랑함과 애잔함이 한 자리에 공존하는 이 작품은 가난한 시절에 함께 자란 자매들의 섬세한 고생을 기억의 차원에서 그려낸다. 「울컥, 똬리 3」은 작은언니의 어린 시절을 골목과 놀이, 노동의 풍경으로 불러내면서 큰새암과 빨랫방망이, 담벼락과 술래놀이, 키 낮은 대문 등 사라진 마을의 풍경까지 아이들의 놀이로 되살리며 아름답지만 "해야 할 일이 먼저"인 가난한 삶의 일상으로 돌리고 마음 놓고 숨을 수도 없었던 시절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숨을 곳이 없는 것처럼 참담했으리"는 이 시의 정서적 막막함을 숨김없이 응축한 것이리라.
시대를 초월하여 아이에게 놀이는 항용 자유로움이어야 한다. 하지만 헐렁한 고무신이 주어지면서 작은언니에게는 물동이와 똬리, 비틀비틀한 걸음 속에 작은언니의 어린 날이 견뎌 낸 삶의 장엄함처럼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긴 속눈썹 아래 검은 호수
굵은 장딴지, 벨벳 망토 두른 어깨
검은 호수가 닫혔다 천천히 열리는 사이
햇살은 투명한 얼룩으로 어룽댄다
얼마나 깊은 곳에서 울리는 언어인가, 네 응시는
투르키에 모스크 불빛의 고요가 외따로 떠 있는 거기
몇 점 파란 불꽃 흔들리고 젖은 뺨을 반씩 나눠 가진다
그만, 고백한다
괜찮니?
괜찮아...
슬픔은 슬픔으로만 어루만져지고
내일은 멀고 오늘은 아예 가버렸기에
너의 바깥, 너의 빗장을 열어주고 싶어
가슴속 섶 불 꺼내주고 싶어
온몸이 우물인 네 긴 속눈썹에 입술 얹으면 눈을 감는
열렬히 나를 듣는
종種의 경계, 부질없다
- 「가을, 이시돌 목장」
제주 이시돌 목장이 배경이 된 이 작품은 말[馬]과 화자 사이의 일치된 교감을 그리면서 동물의 눈을 통해 종種을 넘어선 정서적 유대를 공유하고 있다. "긴 속눈썹 아래 검은 호수"라는 첫 구절은 말의 눈을 심연 같은 공간으로 형상하고 이국적 비유를 통해 "투르키에 모스크 불빛의 고요"와 그 깊이를 한층 확장해 간다. 시의 중반에 "괜찮니?/괜찮아..."라는 짧은 대화체의 삽입은 인간과 동물 사이의 언어적 소통을 극적으로 압축한 측면이 있고 "슬픔은 슬픔으로 어루만지고"는 잠언적 문장을 시의 핵심적 메시지로 제시한다.
화자는 말의 "바깥"과 "빗장"을 열어주자는 욕망을 토로하는데 여기서는 관찰자적 시선을 넘어 상대의 내밀한 고통에 동참하려는 동일시의 감정이입이 읽힌다. 마지막 행 "종種의 경계, 부질없다"는 단언은 이 시가 궁극적으로 겨냥한 지점이며 존재 사이에는 언제나 근원적 경계 허물기를 짧지만 명료한 여운처럼 남긴다. 「가을, 이시돌 목장」은 목장의 말 혹은 소를 바라보며 상처 입은 존재와 교감하는 한편 "긴 속눈썹 아래 검은 호수"라는 표현으로 동물의 눈을 내면의 공간처럼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 그에서 비롯한 응시는 오히려 인간의 말보다 더 깊은 고요를 조장한다.
상처를 다독이듯 피어있을 꽃
시인은 작품을 진행하면서 화자와 동물, 화자와 자기 자신 사이에 오가는 위로의 언어를 보여준다. 그리고 "슬픔은 슬픔으로만 어루만져진다"는 문장은 이 시집을 열어가는 중요한 단서로 읽힌다. 상처는 쉽게 지워지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상처의 온기가 가까이 있을 때 얼마쯤은 이를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종의 경계, 부질없다"는 결말은 거듭 생명들 사이를 이어가는 근원적 연대를 그리 발언한 것이리라.
강 저편에 솜다리꽃이 있다는 말 들었다
소문으로 떠도는 꽃
길 끄트머리 나무에 등을 기대고 서 있다 돌아오곤 했다
나무가 더 간절히 손을 모아 자드락길을 보여주었다
제 기운만큼 밀어 올리는 초록의 파동처럼
내 안에서 뭔가가 함부로 폭발할 때
그 꽃, 솜털 덮인 그 꽃의 투명한 그늘을
가로세로 여닫는 괄호 더듬듯 관여하고 싶었으나
벼랑 근처에서 머뭇거리는 나는 외면하고 싶었다
바람이 수천의 몸으로 옷을 갈아입을 때
뼘 가웃 남짓 강 저편 어딘가 피었다는 솜다리꽃
산다는 건 아프다는 것, 상처를 다독이듯 피어있을 그 꽃을
눈썹 손으로 찾다 돌아오는 게 내 하루의 전부였다
가벼운 것들, 귓가에 붐비던 더운 숨들
홀연 몸을 바꾼 비 젖은 하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강의 고요가, 자드락길의 침묵이 기도였음을
종일 솜다리꽃이 웅성거린다,라고 썼다
- 「내 하루의 전부」
「내 하루의 전부」는 부재하는 대상이란 소문으로만 존재한다는 전제하에 솜다리꽃을 통한 그리움과 기다림을 그리고 있다. 그러면서 "강 저편에 솜다리꽃이 있다는 말 들었다"는 전언 형식의 도입부부터 미확인의 대상에 대한 궁금증이 드러난다. 화자는 매일 같은 자리, 나무에 등을 기대고 꽃을 향해 손을 뻗지만 끝내 다가서지 못하는 "벼랑 근처에서 머뭇거리는 나를 보는 일은 외면하고 싶었다"는 고백을 한다. 그리고 이에서 비롯한 욕망과 두려움이 심리적 섬세함을 포착하면서 "산다는 건 아프다는 것"이라는 직설적 진술이 이 시의 정서적 중심을 이루고 뒤이은 "상처를 다독이듯 피어있을 그 꽃"이라는 이미지와 그 연결로 고통과 치유가 하나의 대상 안에 공존함을 암시한다.
하루 종일 반복되는 기다림의 행위는 결국 "침묵이 기도였음을" 뒤늦은 깨달음으로 수렴하고 마지막 행의 "종일 솜다리꽃이 웅성거린다"는 메타적 진술은 시 쓰기 자체가 부재를 견디는 하나의 방식임을 드러낸 것이리라. 위의 작품 「내 하루의 전부」는 솜다리꽃을 찾아 강 저편을 바라보는 화자의 하루가 기다림과 상처의 시간으로 이어지고 실제로 보지 못한 꽃이기에 그 꽃은 희망인가 하면 결핍이며 계속 살아 움직이게 하는 삶의 이동을 표적 삼는다. 그리고 "가로세로 여닫는 괄호 더듬듯" 꽃에 관여하고 싶다는 말은 꽃을 소유하거나 규정하지 않고 그 존재의 여백을 조심스럽게 더듬고 싶은 심정이 읽힌다. 거듭되지만 "산다는 건 아프다는 것"이라는 표현상의 직절성 또한 이 시를 이끄는 정신적 정서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그에서 비롯된 아픔은 체념을 넘어 상처를 다독이듯 피어있을 꽃으로 이동한다. 마지막에서 "침묵이 기도였음"을 깨닫는 순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화자의 하루가 이미 또 다른 하루에 진입하고 있다.
초경이 시작된 쿠마리*
살을 적시는 붉고 비린 피, 그 순결이 부끄러워 눈을 감는
소름 돋는 아픈 것들이 달려들어
떠나는 걸음보다 돌아오는 길이 더 낯설어질 때
누이야, 누이야
흐르는 피, 양수처럼 지천에 꽃을 피우렴
뜨거운 입김 없이 차가운 것들 가슴 파고들면
스스로 캄캄한 빛을 새기는 서로를 궁금해해
일렁이는 가슴마다 길을
목차
목차
울컥, 똬리 / 차례
시인의 말 · 6
제1부
11월
12월
울컥, 똬리 1
울컥, 똬리 2
울컥, 똬리 3
그때
완벽한 어둠은 없다
해가 꾸는 꿈, 붉새
각인刻印
그 바람이 나다
그리고 바다가 시작된다
날개에 바치다
내 하루의 전부
숨비소리
제2부
옛 1
옛 2
목어 날다 1
목어 날다 2
목어 날다 3
고스란하다
말없음표, 풀씨로 날리는
어떤 길은 항상 비어있다
幻
빛과 어둠, 화가 1
빛과 어둠, 화가 2
바다, 침묵의 재구성
학다리역, 여전하시지요
저녁이 오고 있다
제3부
그미 1
그미 2
그미 3
그미 4
그미 5
그미 6
그미 7
그미 8
그미 9
그미 10
은연
가을, 이시돌 목장
화양연화花樣年華
배롱나무 수레가 되겠네
제4부
눈설레 1
눈설레 2
그런 버릇에 저문다
하염없이, 는
가을을 허락하다
내 안에 갇힌
아카시아잎을 세러 갔다
비렁길
바흐, 무반주
하루라는 오해
물의 방
나무, 견디다
밤길에 관한 한 인상
폐사지
제5부
진달이섬
경계는 없다
가을, 그 바깥
낙엽을 읽다
춘니春泥
고요가 아니다
가을, 책
꿈에 1
꿈에 2
느리게 넘겨지는
머리 속 공터, 실마리만 남았다
글썽이듯
너만 모르지
여름은 간다
작품론
"生, 열무꽃 빛 환한 잠"인가 / 김종
시인의 말 · 6
제1부
11월
12월
울컥, 똬리 1
울컥, 똬리 2
울컥, 똬리 3
그때
완벽한 어둠은 없다
해가 꾸는 꿈, 붉새
각인刻印
그 바람이 나다
그리고 바다가 시작된다
날개에 바치다
내 하루의 전부
숨비소리
제2부
옛 1
옛 2
목어 날다 1
목어 날다 2
목어 날다 3
고스란하다
말없음표, 풀씨로 날리는
어떤 길은 항상 비어있다
幻
빛과 어둠, 화가 1
빛과 어둠, 화가 2
바다, 침묵의 재구성
학다리역, 여전하시지요
저녁이 오고 있다
제3부
그미 1
그미 2
그미 3
그미 4
그미 5
그미 6
그미 7
그미 8
그미 9
그미 10
은연
가을, 이시돌 목장
화양연화花樣年華
배롱나무 수레가 되겠네
제4부
눈설레 1
눈설레 2
그런 버릇에 저문다
하염없이, 는
가을을 허락하다
내 안에 갇힌
아카시아잎을 세러 갔다
비렁길
바흐, 무반주
하루라는 오해
물의 방
나무, 견디다
밤길에 관한 한 인상
폐사지
제5부
진달이섬
경계는 없다
가을, 그 바깥
낙엽을 읽다
춘니春泥
고요가 아니다
가을, 책
꿈에 1
꿈에 2
느리게 넘겨지는
머리 속 공터, 실마리만 남았다
글썽이듯
너만 모르지
여름은 간다
작품론
"生, 열무꽃 빛 환한 잠"인가 / 김종
저자
저자
임해원 ·2004년 〈무등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2023년 《시와사람》 신인상 당선
·다박솔 동인
·광주문인협회 회원
·경희문인회 회원
·시집 『생각이 많은 것들은 고요가 깊다』,『드들강, 저 황홀한 내통』,『울컥, 똬리』
·2023년 《시와사람》 신인상 당선
·다박솔 동인
·광주문인협회 회원
·경희문인회 회원
·시집 『생각이 많은 것들은 고요가 깊다』,『드들강, 저 황홀한 내통』,『울컥, 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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