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왕건이다
통일 왕조의 군주로 우뚝선 온건한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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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기 한반도의 분열을 딛고 통일국가 고려를 개국한 창업군주
인공지능 시대가 활짝 열린 오늘날 1천 년 전의 인물인 왕건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그가 태어난 시기는 신라 하대의 분열상이 극한으로 치달아가던 혼란기였다. 중앙 정부의 행정력이 무너지자 지방의 권력자들이 성주나 장군을 자처하며 독자적인 호족 세력으로 등장하던 군웅할거 시대였다.
바로 이 무렵 견훤, 궁예, 왕건은 각각 세력을 떨치며 후삼국시대를 열어간 주역들이었다. 견훤과 궁예가 후백제와 후고구려를 건국해 제왕으로 등극할 때, 왕건은 궁예의 휘하에서 전쟁터를 누비는 일개 장수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최후의 순간에 이르러 후삼국시대를 마감하고 삼한일통을 이룩한 주인공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제2인자에서 후삼국 통일의 대업을 완수하게 되었을까? 오랜 시간의 갈피를 열어보는 동안 당대의 상황을 능동적으로 개척한 왕건의 발자취를 따라가게 되었다. 그 발자취를 더듬다 보니, 후삼국시대의 거센 격랑 속에서 고뇌하고 부대끼다가 끝내 자신이 꿈꾸던 세상을 구현해 낸 한 인물상을 『나는 왕건이다』에서 만나게 된다.
왕건은 유력한 호족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평생을 꽃길만 걷지는 않았다. 오히려, 약관의 나이에 궁예 휘하의 장수가 된 뒤부터 험한 전쟁터를 누비는 역전의 용사로서 평생을 보냈다. 젊을 때는 궁예를 도와 고구려의 옛 땅을 되찾겠다는 이상을 위해 싸웠고, 장년이 되어서는 후삼국을 통합해 삼한일통의 위업을 달성하려는 원대한 야망을 위해 한 몸을 바쳤다.
그에게는 고구려 계승 의지가 있었고 한때 그는 궁예 정권에서 요동벌을 회복하고자 하는 강렬한 꿈에 사로잡혔던 청년 장군이었다. 하지만 궁예가 송악에서 철원으로 천도하며 국호를 마진과 태봉으로 변경하자, 그 꿈이 허상으로 바뀌는 것을 경험해야 했다.
왕건은 태봉국의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시중이 되었을 때 장수들의 거듭된 요청과 갑옷을 들고 온 첫째 부인 류씨의 권유를 받아들여 반정에 앞장서 고려를 건국하고 황제로 등극하게 되었다.
왕건은 즉위하자마자 도처에서 들고 일어나는 반란 세력을 진압해야 했다. 시시때때로 침공하는 견훤의 후백제군과도 늘 맞서 싸워야 했다. 왕건은 신라를 돕고자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공산 전투에 나섰다가 생사가 오가는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 충신 신숭겸이 왕건을 피신시키고 싸우다 전사하는 참담한 일까지 겪었다.
인공지능 시대가 활짝 열린 오늘날 1천 년 전의 인물인 왕건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그가 태어난 시기는 신라 하대의 분열상이 극한으로 치달아가던 혼란기였다. 중앙 정부의 행정력이 무너지자 지방의 권력자들이 성주나 장군을 자처하며 독자적인 호족 세력으로 등장하던 군웅할거 시대였다.
바로 이 무렵 견훤, 궁예, 왕건은 각각 세력을 떨치며 후삼국시대를 열어간 주역들이었다. 견훤과 궁예가 후백제와 후고구려를 건국해 제왕으로 등극할 때, 왕건은 궁예의 휘하에서 전쟁터를 누비는 일개 장수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최후의 순간에 이르러 후삼국시대를 마감하고 삼한일통을 이룩한 주인공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제2인자에서 후삼국 통일의 대업을 완수하게 되었을까? 오랜 시간의 갈피를 열어보는 동안 당대의 상황을 능동적으로 개척한 왕건의 발자취를 따라가게 되었다. 그 발자취를 더듬다 보니, 후삼국시대의 거센 격랑 속에서 고뇌하고 부대끼다가 끝내 자신이 꿈꾸던 세상을 구현해 낸 한 인물상을 『나는 왕건이다』에서 만나게 된다.
왕건은 유력한 호족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평생을 꽃길만 걷지는 않았다. 오히려, 약관의 나이에 궁예 휘하의 장수가 된 뒤부터 험한 전쟁터를 누비는 역전의 용사로서 평생을 보냈다. 젊을 때는 궁예를 도와 고구려의 옛 땅을 되찾겠다는 이상을 위해 싸웠고, 장년이 되어서는 후삼국을 통합해 삼한일통의 위업을 달성하려는 원대한 야망을 위해 한 몸을 바쳤다.
그에게는 고구려 계승 의지가 있었고 한때 그는 궁예 정권에서 요동벌을 회복하고자 하는 강렬한 꿈에 사로잡혔던 청년 장군이었다. 하지만 궁예가 송악에서 철원으로 천도하며 국호를 마진과 태봉으로 변경하자, 그 꿈이 허상으로 바뀌는 것을 경험해야 했다.
왕건은 태봉국의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시중이 되었을 때 장수들의 거듭된 요청과 갑옷을 들고 온 첫째 부인 류씨의 권유를 받아들여 반정에 앞장서 고려를 건국하고 황제로 등극하게 되었다.
왕건은 즉위하자마자 도처에서 들고 일어나는 반란 세력을 진압해야 했다. 시시때때로 침공하는 견훤의 후백제군과도 늘 맞서 싸워야 했다. 왕건은 신라를 돕고자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공산 전투에 나섰다가 생사가 오가는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 충신 신숭겸이 왕건을 피신시키고 싸우다 전사하는 참담한 일까지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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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한국 인물 500' 발간 현황'
일송북은 '한국 인물 500'을 5백 권 예정으로 고대, 중세, 근세, 근대, 현대, 단체·분야별로 기획하여 순차적으로 펴내고 있습니다. 그동안 나는 치우천황이다(이경철), 나는 사임당이다(이순원), 나는 퇴계다(박상하), 나는 율곡이다(박상하), 나는 백석이다(이동순), 나는 윤이상이다(박선욱), 나는 이회영이다(이덕일), 나는 홍범도다(이동순), 나는 단군왕검이다(박선식), 나는 김만덕이다(박상하), 나는 소서노다(윤선미), 나는 이사부다(김문주), 나는 왕평이다(이동순), 나는 이육사다(고은주), 나는 강감찬이다(박선욱), 나는 해모수다(윤명철), 나는 김지하다(이경철), 나는 박완서다(이경식), 나는 김자야다(이동순), 나는 천추태후다(윤선미), 나는 삼한갑족이다(박상하) 등 21권을 선보여 언론과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이어서 【나는 이병철이다】를 출간하고, 이달에는 【나는 정주영이다】를 내보내게 되어, 한국 경제의 시금석이 되었던 이병철과 정주영을 함께 살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중세의 시원을 여는 태조 왕건의 일대기를 다룬 【나는 왕건이다】도 함께 출간 되어 총 24권을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인물 500 발간의 목적과 기획 방향'
'한국 인물 500'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우리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인물들의 시대와 사회를 살아가는 삶을 들여다보고 반성하며 지금 우리 시대와 삶을 보다 낫게 이끌기 위해서 기획됐습니다. 아울러 한국인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를 폭넓고 심도 있게 탐구하는, 출판사상 최고·최대의 한국 인물 총서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각 권 제목은 '나는 누구다'로 통일했습니다. '누구'에는 한 인물이나 성격 등의 이름이 들어갑니다. 한 인물의 삶과 그 인물이 살았던 시대의 정수를 독자 여러분께 인상적·효율적으로 전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지금 왜 이 인물을 읽어야 하는가에 충분히 답해 나갈 것입니다.
이번 '한국 인물 500'을 위해 일송북에서는 역사, 사회, 출판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선정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선정위원회에서는 단군 시대 너머 신화와 전설쯤으로 전해오는 아득한 상고대로부터 아직도 우리 기억에 생생한 20세기 최근세 인물들과 함께 그 인물과 시대에 정통한 필자를 선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최첨단 문명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혹은 직접 몸으로 세계를 누비는 글로벌, 신유목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한편으론 인공지능 (AI)의 무서운 발전으로 인간의 정체성마저 흔들리고 있음을 절감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때일수록 인간의, 한국인의 정체성이 더욱 요구되고 있습니다.
그 정체성은 개인과 나라의 편협한 개인주의나 국수주의는 물론 아닐 것입니다. 보수와 진보 성향의 이념을 초월하여 선정하는 '한국 인물 500' 총서는 해당 인물, 성격의 육성으로 인간 개인의 생생한 정체성은 물론 글로벌한 세계와 첨단 문명시대를 끈질기게 이끌어나갈 반만년 한국인의 정체성, 그 본질과 뚝심을 들려줄 것입니다.
총서이면서도 각 권이 단행본으로 독립되어 훌륭히 읽히게 한 '한국 인물 500' 2권을 아래 보도자료와 함께 살펴보고 많은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왕건의 가장 큰 미덕은 그의 포용력과 애민정신이었다
왕건은 강건한 후백제와는 맞서면서도 허약한 신라를 돕는 데는 최선을 다하는 억강부약의 정책을 펼쳤다. 그의 실리 외교는 신라인들의 신뢰를 얻고 호족들의 지지와 응원을 받는 효과로 이어졌다. 신라를 멸도라 부르며 증오하던 궁예, 경애왕을 자결하게 만든 견훤과는 대조적인 태도였다. 이러한 왕건의 정책은 후삼국을 통합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왕건의 가장 큰 미덕은 그의 포용력이었다. 견훤은 왕건에게 처절한 패배를 안겨주었던 최대의 숙적이었다. 하지만 후백제 내부의 분열로 폐위된 견훤이 금산사에서 탈출해 고려로 귀부하자 왕건은 두 팔 벌려 그를 받아주었다. 그를 상보(尙父)로 존대하며 깍듯하게 예우해주기까지 했다. 아자개, 신라 경순왕, 고려 건국 이후 한동안 명주를 움켜쥐고 버티던 김순식 등이 고려로 귀부해 온 것은 모두 왕건의 포용력에 감응한 것이었다. 왕건은 피 흘려 싸우지 않고도 이들이 가진 영토와 세력을 감싸 안는 지도력을 보여주었다.
후삼국 통일의 대업을 달성한 뒤에는 그가 평소 배우고 익혔던 옛 성현들의 가르침을 좇아, 자신만의 통치 철학을 국정 운영에 쏟아부었다. 왕건은 맨 먼저 애민정신을 바탕으로 조세정책과 구휼정책을 펼쳤다. 먼저, 관리들에게 조세는 10분의 1만 걷으라고 엄중하게 명했다. 동시에, 봄철 보릿고개 때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철에 갚도록 하는 흑창 제도를 시행했다. 골품제 사회에서 탐학한 관리와 귀족들로부터 이중으로 착취당하던 백성들의 고충을 덜어주자는 취지였다.
대외적으로는 북진정책을 펴서 옛 고구려의 땅을 회복하고자 하는 원대한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다. 그것은 자신의 뿌리를 찾고 조상들의 얼을 되살리는 일일 뿐만 아니라, 고구려 계승 의지를 선언적으로 선언하는 일이기도 했다. 대내적으로는 숭불정책을 펴서 오랜 전란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백성들을 종교의 힘으로 보듬으려고 노력했다. 이는 40여 년 동안 전쟁터를 누비며 숱한 인명이 살상되는 모습을 지켜본 인간으로서, 그 업보를 불심으로 씻으려는 참회의 몸짓을 하는 것이기도 했다.
적재적소의 인재 영입과 후삼국의 분열을 일통한 혼인정책
왕건이 남긴 빛과 그림자를 한 조각씩 맞춰 가면서, 놓쳐서는 안 될 몇 가지 사항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적장이라 할지라도 유능한 자라면 인재로 쓰고자 했다. 수전에 능해 수달이라는 별호를 갖고 있던 능창의 경우가 그러했다. 또한, 훌륭한 인품과 덕을 지닌 인물을 곁에 두고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선각 대사 형미의 경우가 그러했다. 그러나 둘 다 궁예가 죽임으로써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왕건이 가장 역점을 기울인 것은 후삼국의 분열을 하나로 꿰어맞추는 일이었다. 지방 호족들의 통합을 위해 그는 혼인정책이라는 기발한 발상을 실천에 옮겼다. 스물아홉 명의 부인을 둔 것은 이 때문이었다. 삼한일통을 위한 포용 정신이 그 바탕에 있었다. 그의 노력 덕분에 각 지방에 산재한 호족 세력들이 중앙 정부에 연합하는 형태로 협조하는 데에 이르게 되었다.
왕건은 호족들을 포용하고자 할 때는 폐백을 후하게 주고 도리어 자신을 낮추는 자세를 유지하는 중폐비사(重幣卑辭) 정책을 폈다. 호족들이 군사적으로 반발하거나 대항하면 강력한 진압정책을 펼쳤지만 호족들의 협조를 유도할 때는 회유정책을 썼다. 왕건은 진압정책과 회유정책을 병행하면서 각지의 호족들을 포섭하고 융화하면서 고려라는 하나의 나라로 이끌어가는 대화합의 경륜을 펼쳤다. 겸양의 정신을 바탕에 둔 결과였다.
왕건은 북방 고토 회복과 자주 의식, 온유함과 포용력으로 신라와 후백제의 영토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전통과 문화를 통합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왕건은 외세와 결탁하지 않고 삼한을 통일한 지도자였다. 당당하게 자주 의식을 드높이며 북방의 고토 회복을 위한 열망을 국가의 이념으로 삼았던 진취적인 군주였다. 그는 후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강화된 군사력, 용병술, 외교적 역량 등 막강한 국력을 만방에 떨쳤다. 『남당서 권18』 고려 항목에 "고려의 왕건(王建)이 신라와 백제를 격파하니, 왜(倭)·탐부(耽浮)·환어라(驩於羅)·철륵(鐵勒) 등 동이(東夷)의 여러 나라[諸國]?가 모두 두려워하여 고려의 속국이 되었다."라는 기록이 보일 정도로 고려는 주변국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조공을 바치는 황제국으로 우뚝 섰다.
왕건은 후삼국의 어수선한 혼란을 바로잡으며 고려라는 새로운 통일 왕조를 열어젖힌 창업 군주였다. 그는 고구려를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며 발해 유민들을 거두어들였다. 옛 고구려의 수도인 서경(평양) 개척과 북진정책을 병행하면서 동북 지방의 영토 확보에도 주력했다. 반면, 거란을 적대하는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는 과단성을 보였다.
왕건은 온유함과 포용력으로 신라와 후백제의 영토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전통과 문화를 통합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왕건의 후삼국 통일은 전쟁으로 얼룩진 상처를 봉합하고 진정한 민족통일로 승화시킨, 10세기 전반부의 위대한 업적이 아닐 수 없다. 제2인자로서 불가능한 꿈을 꾸었으되, 그것을 끝내 실현한 왕건을 다시금 떠올리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일송북은 '한국 인물 500'을 5백 권 예정으로 고대, 중세, 근세, 근대, 현대, 단체·분야별로 기획하여 순차적으로 펴내고 있습니다. 그동안 나는 치우천황이다(이경철), 나는 사임당이다(이순원), 나는 퇴계다(박상하), 나는 율곡이다(박상하), 나는 백석이다(이동순), 나는 윤이상이다(박선욱), 나는 이회영이다(이덕일), 나는 홍범도다(이동순), 나는 단군왕검이다(박선식), 나는 김만덕이다(박상하), 나는 소서노다(윤선미), 나는 이사부다(김문주), 나는 왕평이다(이동순), 나는 이육사다(고은주), 나는 강감찬이다(박선욱), 나는 해모수다(윤명철), 나는 김지하다(이경철), 나는 박완서다(이경식), 나는 김자야다(이동순), 나는 천추태후다(윤선미), 나는 삼한갑족이다(박상하) 등 21권을 선보여 언론과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이어서 【나는 이병철이다】를 출간하고, 이달에는 【나는 정주영이다】를 내보내게 되어, 한국 경제의 시금석이 되었던 이병철과 정주영을 함께 살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중세의 시원을 여는 태조 왕건의 일대기를 다룬 【나는 왕건이다】도 함께 출간 되어 총 24권을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인물 500 발간의 목적과 기획 방향'
'한국 인물 500'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우리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인물들의 시대와 사회를 살아가는 삶을 들여다보고 반성하며 지금 우리 시대와 삶을 보다 낫게 이끌기 위해서 기획됐습니다. 아울러 한국인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를 폭넓고 심도 있게 탐구하는, 출판사상 최고·최대의 한국 인물 총서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각 권 제목은 '나는 누구다'로 통일했습니다. '누구'에는 한 인물이나 성격 등의 이름이 들어갑니다. 한 인물의 삶과 그 인물이 살았던 시대의 정수를 독자 여러분께 인상적·효율적으로 전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지금 왜 이 인물을 읽어야 하는가에 충분히 답해 나갈 것입니다.
이번 '한국 인물 500'을 위해 일송북에서는 역사, 사회, 출판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선정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선정위원회에서는 단군 시대 너머 신화와 전설쯤으로 전해오는 아득한 상고대로부터 아직도 우리 기억에 생생한 20세기 최근세 인물들과 함께 그 인물과 시대에 정통한 필자를 선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최첨단 문명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혹은 직접 몸으로 세계를 누비는 글로벌, 신유목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한편으론 인공지능 (AI)의 무서운 발전으로 인간의 정체성마저 흔들리고 있음을 절감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때일수록 인간의, 한국인의 정체성이 더욱 요구되고 있습니다.
그 정체성은 개인과 나라의 편협한 개인주의나 국수주의는 물론 아닐 것입니다. 보수와 진보 성향의 이념을 초월하여 선정하는 '한국 인물 500' 총서는 해당 인물, 성격의 육성으로 인간 개인의 생생한 정체성은 물론 글로벌한 세계와 첨단 문명시대를 끈질기게 이끌어나갈 반만년 한국인의 정체성, 그 본질과 뚝심을 들려줄 것입니다.
총서이면서도 각 권이 단행본으로 독립되어 훌륭히 읽히게 한 '한국 인물 500' 2권을 아래 보도자료와 함께 살펴보고 많은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왕건의 가장 큰 미덕은 그의 포용력과 애민정신이었다
왕건은 강건한 후백제와는 맞서면서도 허약한 신라를 돕는 데는 최선을 다하는 억강부약의 정책을 펼쳤다. 그의 실리 외교는 신라인들의 신뢰를 얻고 호족들의 지지와 응원을 받는 효과로 이어졌다. 신라를 멸도라 부르며 증오하던 궁예, 경애왕을 자결하게 만든 견훤과는 대조적인 태도였다. 이러한 왕건의 정책은 후삼국을 통합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왕건의 가장 큰 미덕은 그의 포용력이었다. 견훤은 왕건에게 처절한 패배를 안겨주었던 최대의 숙적이었다. 하지만 후백제 내부의 분열로 폐위된 견훤이 금산사에서 탈출해 고려로 귀부하자 왕건은 두 팔 벌려 그를 받아주었다. 그를 상보(尙父)로 존대하며 깍듯하게 예우해주기까지 했다. 아자개, 신라 경순왕, 고려 건국 이후 한동안 명주를 움켜쥐고 버티던 김순식 등이 고려로 귀부해 온 것은 모두 왕건의 포용력에 감응한 것이었다. 왕건은 피 흘려 싸우지 않고도 이들이 가진 영토와 세력을 감싸 안는 지도력을 보여주었다.
후삼국 통일의 대업을 달성한 뒤에는 그가 평소 배우고 익혔던 옛 성현들의 가르침을 좇아, 자신만의 통치 철학을 국정 운영에 쏟아부었다. 왕건은 맨 먼저 애민정신을 바탕으로 조세정책과 구휼정책을 펼쳤다. 먼저, 관리들에게 조세는 10분의 1만 걷으라고 엄중하게 명했다. 동시에, 봄철 보릿고개 때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철에 갚도록 하는 흑창 제도를 시행했다. 골품제 사회에서 탐학한 관리와 귀족들로부터 이중으로 착취당하던 백성들의 고충을 덜어주자는 취지였다.
대외적으로는 북진정책을 펴서 옛 고구려의 땅을 회복하고자 하는 원대한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다. 그것은 자신의 뿌리를 찾고 조상들의 얼을 되살리는 일일 뿐만 아니라, 고구려 계승 의지를 선언적으로 선언하는 일이기도 했다. 대내적으로는 숭불정책을 펴서 오랜 전란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백성들을 종교의 힘으로 보듬으려고 노력했다. 이는 40여 년 동안 전쟁터를 누비며 숱한 인명이 살상되는 모습을 지켜본 인간으로서, 그 업보를 불심으로 씻으려는 참회의 몸짓을 하는 것이기도 했다.
적재적소의 인재 영입과 후삼국의 분열을 일통한 혼인정책
왕건이 남긴 빛과 그림자를 한 조각씩 맞춰 가면서, 놓쳐서는 안 될 몇 가지 사항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적장이라 할지라도 유능한 자라면 인재로 쓰고자 했다. 수전에 능해 수달이라는 별호를 갖고 있던 능창의 경우가 그러했다. 또한, 훌륭한 인품과 덕을 지닌 인물을 곁에 두고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선각 대사 형미의 경우가 그러했다. 그러나 둘 다 궁예가 죽임으로써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왕건이 가장 역점을 기울인 것은 후삼국의 분열을 하나로 꿰어맞추는 일이었다. 지방 호족들의 통합을 위해 그는 혼인정책이라는 기발한 발상을 실천에 옮겼다. 스물아홉 명의 부인을 둔 것은 이 때문이었다. 삼한일통을 위한 포용 정신이 그 바탕에 있었다. 그의 노력 덕분에 각 지방에 산재한 호족 세력들이 중앙 정부에 연합하는 형태로 협조하는 데에 이르게 되었다.
왕건은 호족들을 포용하고자 할 때는 폐백을 후하게 주고 도리어 자신을 낮추는 자세를 유지하는 중폐비사(重幣卑辭) 정책을 폈다. 호족들이 군사적으로 반발하거나 대항하면 강력한 진압정책을 펼쳤지만 호족들의 협조를 유도할 때는 회유정책을 썼다. 왕건은 진압정책과 회유정책을 병행하면서 각지의 호족들을 포섭하고 융화하면서 고려라는 하나의 나라로 이끌어가는 대화합의 경륜을 펼쳤다. 겸양의 정신을 바탕에 둔 결과였다.
왕건은 북방 고토 회복과 자주 의식, 온유함과 포용력으로 신라와 후백제의 영토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전통과 문화를 통합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왕건은 외세와 결탁하지 않고 삼한을 통일한 지도자였다. 당당하게 자주 의식을 드높이며 북방의 고토 회복을 위한 열망을 국가의 이념으로 삼았던 진취적인 군주였다. 그는 후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강화된 군사력, 용병술, 외교적 역량 등 막강한 국력을 만방에 떨쳤다. 『남당서 권18』 고려 항목에 "고려의 왕건(王建)이 신라와 백제를 격파하니, 왜(倭)·탐부(耽浮)·환어라(驩於羅)·철륵(鐵勒) 등 동이(東夷)의 여러 나라[諸國]?가 모두 두려워하여 고려의 속국이 되었다."라는 기록이 보일 정도로 고려는 주변국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조공을 바치는 황제국으로 우뚝 섰다.
왕건은 후삼국의 어수선한 혼란을 바로잡으며 고려라는 새로운 통일 왕조를 열어젖힌 창업 군주였다. 그는 고구려를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며 발해 유민들을 거두어들였다. 옛 고구려의 수도인 서경(평양) 개척과 북진정책을 병행하면서 동북 지방의 영토 확보에도 주력했다. 반면, 거란을 적대하는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는 과단성을 보였다.
왕건은 온유함과 포용력으로 신라와 후백제의 영토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전통과 문화를 통합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왕건의 후삼국 통일은 전쟁으로 얼룩진 상처를 봉합하고 진정한 민족통일로 승화시킨, 10세기 전반부의 위대한 업적이 아닐 수 없다. 제2인자로서 불가능한 꿈을 꾸었으되, 그것을 끝내 실현한 왕건을 다시금 떠올리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목차
목차
서문 ..10
책머리에 ..16
1장.
7세기의 국제전과 남북국시대 ... 26
견훤의 후백제 건국 ... 32
비운의 왕자 ... 41
도읍지 철원 ... 47
용의 후손 ... 53
발어참성 성주 왕건 ... 65
2장.
궁예의 후고구려 건국 ... 78
첫사랑 ... 89
금성군 점령 ... 99
양주성 싸움 ... 106
대(大)동방국 마진 ... 112
철원 재천도 ... 122
3장.
첫 번째 결혼 ... 136
수덕만세 태봉국 ... 146
덕진포 해전 ... 153
능창의 최후 ... 162
두 번째 결혼 ... 170
4장.
일인지하 만인지상 ... 178
무주 진격 ... 184
관심법 ... 190
왕건의 고려 건국 ... 199
반란, 그 이후 ... 204
5장.
조물성 전투 ... 212
공산 전투 ... 220
고창 전투와 운주성 전투 ... 227
일리천 전투와 후삼국 통일 ... 233
황제국 고려의 등장 ... 243
나는 왕건이다 ... 249
책머리에 ..16
1장.
7세기의 국제전과 남북국시대 ... 26
견훤의 후백제 건국 ... 32
비운의 왕자 ... 41
도읍지 철원 ... 47
용의 후손 ... 53
발어참성 성주 왕건 ... 65
2장.
궁예의 후고구려 건국 ... 78
첫사랑 ... 89
금성군 점령 ... 99
양주성 싸움 ... 106
대(大)동방국 마진 ... 112
철원 재천도 ... 122
3장.
첫 번째 결혼 ... 136
수덕만세 태봉국 ... 146
덕진포 해전 ... 153
능창의 최후 ... 162
두 번째 결혼 ... 170
4장.
일인지하 만인지상 ... 178
무주 진격 ... 184
관심법 ... 190
왕건의 고려 건국 ... 199
반란, 그 이후 ... 204
5장.
조물성 전투 ... 212
공산 전투 ... 220
고창 전투와 운주성 전투 ... 227
일리천 전투와 후삼국 통일 ... 233
황제국 고려의 등장 ... 243
나는 왕건이다 ... 249
저자
저자
박선욱
시인. 작가. 1982년 《실천문학》지에 시 〈누이야〉 외 3편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 『그때 이후』, 『다시 불러보는 벗들』, 『세상의 출구』, 『회색빛 베어지다』, 『눈물의 깊이』, 『풍찬노숙』이 있고, 창작동화집 『모나리자 누나와 하모니카』, 어린이 인물 이야기 『이티 할아버지 채규철』,
『윤이상, 끝없는 음악의 길』, 『평화와 희망의 씨앗 김대중 대통령』, 『황병기: 천 년의 숨결을 가야금에 담다』, 『박선욱 선생님이 들려주는 김득신』, 『박선욱 선생님이 들려주는 백동수』, 『박선욱 선생님이 들려주는 백석』 등이 있으며, 청소년 평전 『채광석: 사랑은 어느 구비에서』,
『윤이상: 세계 현대음악의 거장』, 청소년 소설 『고주몽: 고구려를 세우다』, 장편소설 『조선의 별빛: 젊은 날의 홍대용』, 역사 에세이 『나는 윤이상이다』, 『나는 강감찬이다』, 『나는 왕건이다』 등이 있다. 본격 평전인 『윤이상 평전: 거장의 귀환』으로 제3회 롯데출판문화대상 본상을
수상했다.
『윤이상, 끝없는 음악의 길』, 『평화와 희망의 씨앗 김대중 대통령』, 『황병기: 천 년의 숨결을 가야금에 담다』, 『박선욱 선생님이 들려주는 김득신』, 『박선욱 선생님이 들려주는 백동수』, 『박선욱 선생님이 들려주는 백석』 등이 있으며, 청소년 평전 『채광석: 사랑은 어느 구비에서』,
『윤이상: 세계 현대음악의 거장』, 청소년 소설 『고주몽: 고구려를 세우다』, 장편소설 『조선의 별빛: 젊은 날의 홍대용』, 역사 에세이 『나는 윤이상이다』, 『나는 강감찬이다』, 『나는 왕건이다』 등이 있다. 본격 평전인 『윤이상 평전: 거장의 귀환』으로 제3회 롯데출판문화대상 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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