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안중근(개정판)
안중근 의사와 여순형무소 간수 일본 헌병 치바 토시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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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이토 히로부미를 응징한 안중근을 여순형무소에서 만나 한평생 공양한 일본 헌병 여순형무소 간수치바 토시치 이야기
-우리에게 공개되지 않은 역사의 진실을 밝힌 책!
-아사히신문, 산케이신문, 각종 방송 및 언론 매체에 절찬되었던 바로 그 책!
이 책은 1909년 10월 26일 9시 30분경 하얼빈역에서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사건이 있은 지 일주일 뒤인 11월 3일 이후부터 재판을 받고 처형되기까지 5개월간 여순형무소에 안중근이 수감되었을 때 간수였던 치바 토시치와의 이야기를 쓴 넌픽션이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를 저격하기까지의 상황과 재판과정, 한국의 독립운동과 1910년 전후 국제적 국내적 상황도 상세하게 이 책에서는 적고 있다.
당시 일본 헌병이었던 치바 토시치의 나이는 24세였다. 그는 11월 3일 이후 마지막 날까지 안중근의 곁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이였다. 검찰관의 취조 과정과 재판 과정을 지켜본 것은 물론 형무소에서도 간수로서 같이 지냈다. 그러는 사이에 남몰래 안중근을 존경하게 된 치바는 마음 깊은 곳에서 '안중근을 잃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분명 한국의 미래를 위해 한몫할 인물인데……'라고 아쉬워했다. 그리고 안중근이 처형된 3년 뒤인 1913년 3월 20일 기츠보와 결혼했다. 당시 치바의 나이는 28세, 기츠보는 21세였다. 그 후 요노츠네 소학교 출신자로서는 최고의 지휘인 헌병특무조장까지 진급했으나 뜻한 바가 있어 군에서 퇴역하고 한국 통감부 경찰관으로 전직한 뒤, 마지막 임지인 연해주와 가까운 한국 북부의 함경도에서 경부보로 퇴관했다. 1921년 4월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아내와 생가 근처에 집을 마련하고 여생을 보냈다.
치바는 남은 여생을 보내면서 안중근을 위해 남몰래 참회의 불공을 올렸다. 여순형무소에서 안중근이 써준 글씨인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을 대림사에 모시고 향을 피웠다. 그런 그의 행동은 당시의 일본인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치바는 안중근을 위해 불공을 드리는 것을 하루의 일과로 삼았다. 죽음을 앞둔 치바는 아내에게 안중근의 유묵을 잘 보존할 것과 안중근이 영락정토로 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불공을 드려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치바의 아내 기츠보도 죽고 나자 치바의 친족들은 그의 뜻을 이어 안중근의 유묵을 70년간 소중히 보관해 왔다. 서울에서 안중근 의사 탄신 백주년 기념식이 거행된다는 것을 전해들은 치바의 유족들은, 한국의 발전을 기원하면서 1979년 늦가을에 유묵을 안중근의 고국에 반환하였다. 그리고 2년 후인 1981년 3월 26일 미야기현 구리하라군에 있는 대림사에는 비석이 세워졌다. 이 비석에는 안중근과 치바의 우정을 기념하고 아울러 불행했던 한일병합 35년간의 일제의 탄압지배에 대한 속죄가 담겨 있다.
-우리에게 공개되지 않은 역사의 진실을 밝힌 책!
-아사히신문, 산케이신문, 각종 방송 및 언론 매체에 절찬되었던 바로 그 책!
이 책은 1909년 10월 26일 9시 30분경 하얼빈역에서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사건이 있은 지 일주일 뒤인 11월 3일 이후부터 재판을 받고 처형되기까지 5개월간 여순형무소에 안중근이 수감되었을 때 간수였던 치바 토시치와의 이야기를 쓴 넌픽션이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를 저격하기까지의 상황과 재판과정, 한국의 독립운동과 1910년 전후 국제적 국내적 상황도 상세하게 이 책에서는 적고 있다.
당시 일본 헌병이었던 치바 토시치의 나이는 24세였다. 그는 11월 3일 이후 마지막 날까지 안중근의 곁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이였다. 검찰관의 취조 과정과 재판 과정을 지켜본 것은 물론 형무소에서도 간수로서 같이 지냈다. 그러는 사이에 남몰래 안중근을 존경하게 된 치바는 마음 깊은 곳에서 '안중근을 잃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분명 한국의 미래를 위해 한몫할 인물인데……'라고 아쉬워했다. 그리고 안중근이 처형된 3년 뒤인 1913년 3월 20일 기츠보와 결혼했다. 당시 치바의 나이는 28세, 기츠보는 21세였다. 그 후 요노츠네 소학교 출신자로서는 최고의 지휘인 헌병특무조장까지 진급했으나 뜻한 바가 있어 군에서 퇴역하고 한국 통감부 경찰관으로 전직한 뒤, 마지막 임지인 연해주와 가까운 한국 북부의 함경도에서 경부보로 퇴관했다. 1921년 4월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아내와 생가 근처에 집을 마련하고 여생을 보냈다.
치바는 남은 여생을 보내면서 안중근을 위해 남몰래 참회의 불공을 올렸다. 여순형무소에서 안중근이 써준 글씨인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을 대림사에 모시고 향을 피웠다. 그런 그의 행동은 당시의 일본인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치바는 안중근을 위해 불공을 드리는 것을 하루의 일과로 삼았다. 죽음을 앞둔 치바는 아내에게 안중근의 유묵을 잘 보존할 것과 안중근이 영락정토로 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불공을 드려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치바의 아내 기츠보도 죽고 나자 치바의 친족들은 그의 뜻을 이어 안중근의 유묵을 70년간 소중히 보관해 왔다. 서울에서 안중근 의사 탄신 백주년 기념식이 거행된다는 것을 전해들은 치바의 유족들은, 한국의 발전을 기원하면서 1979년 늦가을에 유묵을 안중근의 고국에 반환하였다. 그리고 2년 후인 1981년 3월 26일 미야기현 구리하라군에 있는 대림사에는 비석이 세워졌다. 이 비석에는 안중근과 치바의 우정을 기념하고 아울러 불행했던 한일병합 35년간의 일제의 탄압지배에 대한 속죄가 담겨 있다.
목차
목차
연보
기원의 날들
어린 시절
불타는 대륙
일본의 원훈, 이토 히로부미 쓰러지다
두 사람의 만남
빗속의 처형식
조국으로 돌아간 유묵
저자 후기
증보판을 내며
역자 후기
기원의 날들
어린 시절
불타는 대륙
일본의 원훈, 이토 히로부미 쓰러지다
두 사람의 만남
빗속의 처형식
조국으로 돌아간 유묵
저자 후기
증보판을 내며
역자 후기
저자
저자
사이토 타이켄
齋藤泰彦
1935년 미야기현 구리하라군 칸나리쵸 서만사에서 출생. 센다이 일고, 도호쿠대학 문학부 불문과 졸. 아사이신문 기자를 거쳐 1990년부터 현재까지 미야자기현 와카야나기쵸의 조동종(曹洞宗) 대림사(大林寺) 주지.
1909년 10월 안중근은 일본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역에서 사살하였다. 사형판결을 받은 안중근은 처형직전 옥중에서 보살펴준 간수 치바 토시치에게 감사의 뜻으로 〈爲國獻身軍人本分위국헌신군인본분〉이란 글을 써주었다.
치바 토시치는 이 유묵을 제단에 걸어두고 평생 향을 사르며 안중근의 명복을 기원하였다. 그리고 유묵을 소중히 모시라는 치바의 유언에 따라, 유묵은 소중히 간직돼 왔다.
70년 후인 1979년 안중근 탄신 100주년을 맞아 유묵을 한국에 반환하였다. 그것을 계기로 이 유묵이 새겨진 〈안의사와 치바의 기념비〉가 한일 양국의 우호를 기념하기 위해 치바가 잠든 대림사에 건립되었다. 그리고 대림사 주지인 저자가 중심이 되어 한일 양국의 많은 사람들이 두 고인의 심정을 회상하며 〈한일 두 나라의 영원한 평화〉가 있기를 바라는 추도식이 매년 가을마다 이어지고 있다.
그것은 또한 진정한 한일우호관계의 소중함을 바라는 치바 씨의 마음을 통해 역사를 엄숙히 묻고 바르게 하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의 답이기도 하다.
1935년 미야기현 구리하라군 칸나리쵸 서만사에서 출생. 센다이 일고, 도호쿠대학 문학부 불문과 졸. 아사이신문 기자를 거쳐 1990년부터 현재까지 미야자기현 와카야나기쵸의 조동종(曹洞宗) 대림사(大林寺) 주지.
1909년 10월 안중근은 일본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역에서 사살하였다. 사형판결을 받은 안중근은 처형직전 옥중에서 보살펴준 간수 치바 토시치에게 감사의 뜻으로 〈爲國獻身軍人本分위국헌신군인본분〉이란 글을 써주었다.
치바 토시치는 이 유묵을 제단에 걸어두고 평생 향을 사르며 안중근의 명복을 기원하였다. 그리고 유묵을 소중히 모시라는 치바의 유언에 따라, 유묵은 소중히 간직돼 왔다.
70년 후인 1979년 안중근 탄신 100주년을 맞아 유묵을 한국에 반환하였다. 그것을 계기로 이 유묵이 새겨진 〈안의사와 치바의 기념비〉가 한일 양국의 우호를 기념하기 위해 치바가 잠든 대림사에 건립되었다. 그리고 대림사 주지인 저자가 중심이 되어 한일 양국의 많은 사람들이 두 고인의 심정을 회상하며 〈한일 두 나라의 영원한 평화〉가 있기를 바라는 추도식이 매년 가을마다 이어지고 있다.
그것은 또한 진정한 한일우호관계의 소중함을 바라는 치바 씨의 마음을 통해 역사를 엄숙히 묻고 바르게 하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의 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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