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천년의 만남
논어에서 조우하는 유불회통의 사유
Regular price
$42.70
Sale price
Regular price
✈️
Estimated delivery date 예상 배송일
Standard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8-12 영업일
Express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6-8 영업일
『논어』를 사이에 두고 천년이라는 시간 동안
왕성하게 소통해온 불교와 유교! 이 미증유의 만남을 통해
알차게 결실을 맺은 새로운 융합 사상의 진면목!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에서 유교와 불교의 회통적 사유가 『논어』에서 구현된 양상을 꾸준히 연구해온 이영호 교수가 『논어, 천년의 만남』을 펴냈다. 중국사상사의 이단아 이탁오(이지)의 『논어평』을 완역하고, 장대의 『논어우(論語遇)』와 지욱선사의 『논어점정(論語點睛)』에서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대목들을 취사선택하고 번역작업을 했다.
먼저 이지(李贄, 1527~1602)는 양명좌파 경학의 정점에 있는 학자인데, 이름보다 그의 호인 탁오(卓吾)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가 남긴 저서인 『분서(焚書)』에서 유불회통의 사유를 분명하게 드러낸 바 있으며, 이러한 그의 사유는 경학 저술인 『논어평(論語評)』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이지는 이 책에서 불교 용어를 차용하여 『논어』를 설명하면서, 『논어』의 문답이나 내용 등을 선(禪)의 언어로 이해하기도 하였다. 즉 이 책의 내용 일부를 선어(禪語)로 보았기에 공자의 형상이나 심상을 묘사할 때, 종종 선사의 그것과 합치시키게 된 것이다.
『논어평』에 담겨 있는 유불회통적 사유는 이후 여러 학자들에 의해 전해져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지의 경학적 사유를 계승한 이들 가운데, 유가에서는 장대(張岱, 1597~1689?), 불가에서는 지욱선사(智旭禪師, 1599~1655)가 가장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들의 『논어』 주석에는 이지의 『논어평』의 내용을 자주 인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유불회통적 사유 또한 심화시켜서 논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대는 명말 청초의 뛰어난 역사학자이자 산문작가로, 양명좌파의 경학을 계승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또한 지욱은 명나라 말기의 사대고승 중 한 사람으로 선종, 교종, 율종의 조화를 중시하였을 뿐 아니라, 유교, 불교, 도교의 삼교일치를 주장하기도 했다. 많은 저술을 남겼는데, 특히 불교의 교리로 유교의 경전을 해설한, 『논어점정(論語點睛)』, 『주역선해(周易禪解)』 등은 동아시아 종교교류사에서 매우 중요한 저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불교와 유교의 만남은 B.C. 2년경으로 거슬러올라가는데 이때 불교는 중국으로 전래되었다. 그후 다시 수백 년의 시간이 지나 구마라즙과 현장 등의 언어 천재들이 인도어로 된 불경들을 중국어(한문)로 번역작업을 한 덕분에, 불교는 중국 전역에 널리 퍼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불교와 유교의 만남은 단순하게 끝나지 않았다. 이 두 사상은 낯선 만남을 통해 예상 못한 조류를 형성하여, 불교와 유교에서 공히 새로운 융합 사상이 등장하였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을 들자면 불교에서는 선종(禪宗)을, 유교에서는 주자학(朱子學)과 양명학(陽明學)을 거론할 수 있다.
이지(李贄)
1527~1602. 자는 탁오(卓吾), 별호는 온릉거사(?陵居士). 명나라의 저명 양명학자로서 강학과 저술을 통해 사상사에 한 획을 그었다. 말년에 불교를 넘나들면서 유불회통의 사유를 구축하였다. 저서로 『분서(焚書)』, 『장서(藏書)』, 『사서평(四書 評)』등이 있다.
장대(張岱)
1597~1689(?). 자는 종자(宗子), 호는 도암(陶庵). 명말 청초의 뛰어난 역사학자이자 산문작가이다. 또한 양명좌파의 경학을 계승하여 일가를 이루기도 하였다. 저서로 『낭환문집(瑯?文集)』, 『도암몽억(陶庵夢憶)』, 『석궤서(石?書)』, 『고금의열전(古今義烈傳)』, 『사서우(四書遇)』등이 있다.
지욱(智旭)
1599~1655. 자는 우익(?益), 호는 팔불도인(八不道人). 명나라 말기의 사대고승 중의 한 분으로 선종, 교종, 율종의 조화를 중시하였을 뿐 아니라, 유교, 불교, 도교의 삼교일치를 주장하기도 하였다. 많은 저술을 남겼는데, 특히 불교의 교리로 유교의 경전을 해설한, 『논어점정(論語點睛)』, 『주역선해(周易禪 解)』 등은 동아시아 종교교류사에서 매우 중요한 저작이라 할 수 있다.
왕성하게 소통해온 불교와 유교! 이 미증유의 만남을 통해
알차게 결실을 맺은 새로운 융합 사상의 진면목!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에서 유교와 불교의 회통적 사유가 『논어』에서 구현된 양상을 꾸준히 연구해온 이영호 교수가 『논어, 천년의 만남』을 펴냈다. 중국사상사의 이단아 이탁오(이지)의 『논어평』을 완역하고, 장대의 『논어우(論語遇)』와 지욱선사의 『논어점정(論語點睛)』에서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대목들을 취사선택하고 번역작업을 했다.
먼저 이지(李贄, 1527~1602)는 양명좌파 경학의 정점에 있는 학자인데, 이름보다 그의 호인 탁오(卓吾)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가 남긴 저서인 『분서(焚書)』에서 유불회통의 사유를 분명하게 드러낸 바 있으며, 이러한 그의 사유는 경학 저술인 『논어평(論語評)』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이지는 이 책에서 불교 용어를 차용하여 『논어』를 설명하면서, 『논어』의 문답이나 내용 등을 선(禪)의 언어로 이해하기도 하였다. 즉 이 책의 내용 일부를 선어(禪語)로 보았기에 공자의 형상이나 심상을 묘사할 때, 종종 선사의 그것과 합치시키게 된 것이다.
『논어평』에 담겨 있는 유불회통적 사유는 이후 여러 학자들에 의해 전해져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지의 경학적 사유를 계승한 이들 가운데, 유가에서는 장대(張岱, 1597~1689?), 불가에서는 지욱선사(智旭禪師, 1599~1655)가 가장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들의 『논어』 주석에는 이지의 『논어평』의 내용을 자주 인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유불회통적 사유 또한 심화시켜서 논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대는 명말 청초의 뛰어난 역사학자이자 산문작가로, 양명좌파의 경학을 계승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또한 지욱은 명나라 말기의 사대고승 중 한 사람으로 선종, 교종, 율종의 조화를 중시하였을 뿐 아니라, 유교, 불교, 도교의 삼교일치를 주장하기도 했다. 많은 저술을 남겼는데, 특히 불교의 교리로 유교의 경전을 해설한, 『논어점정(論語點睛)』, 『주역선해(周易禪解)』 등은 동아시아 종교교류사에서 매우 중요한 저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불교와 유교의 만남은 B.C. 2년경으로 거슬러올라가는데 이때 불교는 중국으로 전래되었다. 그후 다시 수백 년의 시간이 지나 구마라즙과 현장 등의 언어 천재들이 인도어로 된 불경들을 중국어(한문)로 번역작업을 한 덕분에, 불교는 중국 전역에 널리 퍼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불교와 유교의 만남은 단순하게 끝나지 않았다. 이 두 사상은 낯선 만남을 통해 예상 못한 조류를 형성하여, 불교와 유교에서 공히 새로운 융합 사상이 등장하였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을 들자면 불교에서는 선종(禪宗)을, 유교에서는 주자학(朱子學)과 양명학(陽明學)을 거론할 수 있다.
이지(李贄)
1527~1602. 자는 탁오(卓吾), 별호는 온릉거사(?陵居士). 명나라의 저명 양명학자로서 강학과 저술을 통해 사상사에 한 획을 그었다. 말년에 불교를 넘나들면서 유불회통의 사유를 구축하였다. 저서로 『분서(焚書)』, 『장서(藏書)』, 『사서평(四書 評)』등이 있다.
장대(張岱)
1597~1689(?). 자는 종자(宗子), 호는 도암(陶庵). 명말 청초의 뛰어난 역사학자이자 산문작가이다. 또한 양명좌파의 경학을 계승하여 일가를 이루기도 하였다. 저서로 『낭환문집(瑯?文集)』, 『도암몽억(陶庵夢憶)』, 『석궤서(石?書)』, 『고금의열전(古今義烈傳)』, 『사서우(四書遇)』등이 있다.
지욱(智旭)
1599~1655. 자는 우익(?益), 호는 팔불도인(八不道人). 명나라 말기의 사대고승 중의 한 분으로 선종, 교종, 율종의 조화를 중시하였을 뿐 아니라, 유교, 불교, 도교의 삼교일치를 주장하기도 하였다. 많은 저술을 남겼는데, 특히 불교의 교리로 유교의 경전을 해설한, 『논어점정(論語點睛)』, 『주역선해(周易禪 解)』 등은 동아시아 종교교류사에서 매우 중요한 저작이라 할 수 있다.
Couldn't load pickup availability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이지에서 장대로, 장대에서 지욱선사로,
『논어』에서 더욱 짙어지는 유교와 불교의 만남!
이지, 장대, 지욱선사가 쓴 세 『논어』 주석서를 관통하고 있는 유교와 불교의 만남의 양상이 어떤지를 『논어』의 첫 구절에 대한 견해를 통해 잠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배우고 항상 익히면 기쁘지 않겠느냐!(學而時習之, 不亦說乎!)"은 잘 알다시피 『논어』의 첫 구절이다. 이지, 장대, 지욱선사는 이를 각각 다음과 같이 해설했다.
이지(李贄), 『논어평(論語評)』: "배우면 열락(悅樂)이 있을 뿐 불평은 없도다. 그 얼마나 쾌활하며 그 얼마나 안락한가! 배우지 않으면 참으로 소인이 되어, 일생 동안 번뇌 속을 헤맬 것이로다."
(學則有悅樂, 而無?. 何等快活, 何等受用! 不學眞是小人, 一生惟有煩惱而已矣.)
장대(張岱), 『논어우(論語遇)』: "세상 사람들의 '배움'에 대한 인식이 참되지 못하도다. 만약 '배움'이 어떤 일인지를 인식하게 된다면, 곧바로 저절로 이 광휘 속에서 열락에 잠길 것이다. 오직 성인만이 이 열락의 한두 지점을 묘사하였는데, 이는 물을 마시면 차가움을 알고 꿀을 먹으면 달달함을 아는 것과 같다."
(世人只認學不眞耳, 若識得學爲何事, 便自然?此際光景. 獨聖人能描寫 一二, 所謂?水知冷, 食蜜知?也.)
지욱선사(智旭禪師), 『논어점정(論語點睛)』: "대체로 사람마다 영각(靈覺)의 본성이 있어서 애초에 외물에 얽매임도 없고, 그 근원에는 열락만이 있다. 이 같은 마음의 본성을 밝히지 못한 까닭에 셀 수 없는 두려움과 근심 걱정이 솟아나는 것이다. 배움이란 바로 이것을 깨쳐 나가는 지혜를 말함이다. 생각, 생각 그 본래의 깨어 있는 성품[本覺]을 깨쳐 나가 어느 순간도 깨어 있지 않을 때가 없는 것, 이를 '시습(時習)'이라 한다. 어느 때이건 깨어 있기 때문에 항상 열락(悅樂)이 있는 것이다."
(蓋人人本有靈覺之性, 本無物累, 本無不悅. 由其迷此本體, 生出許多恐懼憂患. 今學, 卽是始覺之智, 念念覺于本覺, 無不覺時, 故名時習. 無時不覺, 斯無時不悅矣.)
'학이시습(學而時習)'에서 '학(學)'은 처음에는 우리가 배워야 할 구체적 과목으로 인식되었다가, 유교와 불교가 만나면서, 그 한 축을 담당한 주자학에 이르러 '깨달음[覺]'으로 정의된다. 여기서 주자가 생각하는 '깨달음'은 우리의 본성에 대한 깨달음이다. 이미 여기까지만 해도 현실의 삶에서 인간의 본성으로 그 초점이 선회하였기에 다분히 불교적 영향이 짙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이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런 깨달음으로서의 학이 없다면, 일생을 번뇌 속에서 보낼 것이며, 이 깨달음이 있어야만 번뇌 없는 즐거운 삶을 살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다 장대에 이르면, 이런 깨달음의 결과로서 생겨나는 열락은 물 마실 때 차가움을 알고 꿀 먹을 때 달달함을 아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이는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일상에서 진리를 찾는 선종의 사유와 그리 멀지 않다.
더 나아가 지욱선사에 이르면, 영각의 본성을 어느 한순간도 쉼 없이 깨우쳐 있는 상태로서의 학을 말하고 있다. 이지에서 장대로, 장대에서 지욱선사로 『논어』에서 유교와 불교의 만남은 그 농도가 점점 짙어진다. 또한 세 『논어』 주석서에는 부처, 선(禪), 깨달음 등의 언어가 계속 이어진다. 마침내 공자와 부처를 동일시하거나 부처와 공자의 제자들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상황까지 나아간 셈이다
어쩌면 유교와 불교는 서로 만나기 이전에 이미 상호 소통할 수 있는 지점을 공유하고 있었을 것이다. 사는 곳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지만, 인간이라는 공통된 바탕 위에 가지는 고민이 유사하였기 때문이다. 즉 부처와 공자는 태어난 나라도 자라난 환경도 달랐지만, 공통된 문제의식이 있었다. 바로 삶은 '고난'이라는 점을 철저하게 인식하였으며, 그 고난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발견하였고, 또 그 방법대로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는 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아득한 과거부터 수많은 시간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공통된 문제의식과 그에 대한 해답이 우리 문명을 떠받치는 중심축인 듯하다. 그 문제의식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러하다. "어떻게 하면 고통 없는 본래의 나 자신으로 살아갈 것인가!
『논어』에서 더욱 짙어지는 유교와 불교의 만남!
이지, 장대, 지욱선사가 쓴 세 『논어』 주석서를 관통하고 있는 유교와 불교의 만남의 양상이 어떤지를 『논어』의 첫 구절에 대한 견해를 통해 잠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배우고 항상 익히면 기쁘지 않겠느냐!(學而時習之, 不亦說乎!)"은 잘 알다시피 『논어』의 첫 구절이다. 이지, 장대, 지욱선사는 이를 각각 다음과 같이 해설했다.
이지(李贄), 『논어평(論語評)』: "배우면 열락(悅樂)이 있을 뿐 불평은 없도다. 그 얼마나 쾌활하며 그 얼마나 안락한가! 배우지 않으면 참으로 소인이 되어, 일생 동안 번뇌 속을 헤맬 것이로다."
(學則有悅樂, 而無?. 何等快活, 何等受用! 不學眞是小人, 一生惟有煩惱而已矣.)
장대(張岱), 『논어우(論語遇)』: "세상 사람들의 '배움'에 대한 인식이 참되지 못하도다. 만약 '배움'이 어떤 일인지를 인식하게 된다면, 곧바로 저절로 이 광휘 속에서 열락에 잠길 것이다. 오직 성인만이 이 열락의 한두 지점을 묘사하였는데, 이는 물을 마시면 차가움을 알고 꿀을 먹으면 달달함을 아는 것과 같다."
(世人只認學不眞耳, 若識得學爲何事, 便自然?此際光景. 獨聖人能描寫 一二, 所謂?水知冷, 食蜜知?也.)
지욱선사(智旭禪師), 『논어점정(論語點睛)』: "대체로 사람마다 영각(靈覺)의 본성이 있어서 애초에 외물에 얽매임도 없고, 그 근원에는 열락만이 있다. 이 같은 마음의 본성을 밝히지 못한 까닭에 셀 수 없는 두려움과 근심 걱정이 솟아나는 것이다. 배움이란 바로 이것을 깨쳐 나가는 지혜를 말함이다. 생각, 생각 그 본래의 깨어 있는 성품[本覺]을 깨쳐 나가 어느 순간도 깨어 있지 않을 때가 없는 것, 이를 '시습(時習)'이라 한다. 어느 때이건 깨어 있기 때문에 항상 열락(悅樂)이 있는 것이다."
(蓋人人本有靈覺之性, 本無物累, 本無不悅. 由其迷此本體, 生出許多恐懼憂患. 今學, 卽是始覺之智, 念念覺于本覺, 無不覺時, 故名時習. 無時不覺, 斯無時不悅矣.)
'학이시습(學而時習)'에서 '학(學)'은 처음에는 우리가 배워야 할 구체적 과목으로 인식되었다가, 유교와 불교가 만나면서, 그 한 축을 담당한 주자학에 이르러 '깨달음[覺]'으로 정의된다. 여기서 주자가 생각하는 '깨달음'은 우리의 본성에 대한 깨달음이다. 이미 여기까지만 해도 현실의 삶에서 인간의 본성으로 그 초점이 선회하였기에 다분히 불교적 영향이 짙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이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런 깨달음으로서의 학이 없다면, 일생을 번뇌 속에서 보낼 것이며, 이 깨달음이 있어야만 번뇌 없는 즐거운 삶을 살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다 장대에 이르면, 이런 깨달음의 결과로서 생겨나는 열락은 물 마실 때 차가움을 알고 꿀 먹을 때 달달함을 아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이는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일상에서 진리를 찾는 선종의 사유와 그리 멀지 않다.
더 나아가 지욱선사에 이르면, 영각의 본성을 어느 한순간도 쉼 없이 깨우쳐 있는 상태로서의 학을 말하고 있다. 이지에서 장대로, 장대에서 지욱선사로 『논어』에서 유교와 불교의 만남은 그 농도가 점점 짙어진다. 또한 세 『논어』 주석서에는 부처, 선(禪), 깨달음 등의 언어가 계속 이어진다. 마침내 공자와 부처를 동일시하거나 부처와 공자의 제자들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상황까지 나아간 셈이다
어쩌면 유교와 불교는 서로 만나기 이전에 이미 상호 소통할 수 있는 지점을 공유하고 있었을 것이다. 사는 곳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지만, 인간이라는 공통된 바탕 위에 가지는 고민이 유사하였기 때문이다. 즉 부처와 공자는 태어난 나라도 자라난 환경도 달랐지만, 공통된 문제의식이 있었다. 바로 삶은 '고난'이라는 점을 철저하게 인식하였으며, 그 고난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발견하였고, 또 그 방법대로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는 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아득한 과거부터 수많은 시간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공통된 문제의식과 그에 대한 해답이 우리 문명을 떠받치는 중심축인 듯하다. 그 문제의식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러하다. "어떻게 하면 고통 없는 본래의 나 자신으로 살아갈 것인가!
목차
목차
머리말
학이學而
위정爲政
팔일八佾
이인里仁
공야장公冶長
옹야雍也
술이述而
태백泰伯
자한子罕
향당鄕黨
선진先進
안연顔淵
자로子路
헌문憲問
위령공衛靈公
계씨季氏
양화陽貨
미자微子
자장子張
요왈堯曰
학이學而
위정爲政
팔일八佾
이인里仁
공야장公冶長
옹야雍也
술이述而
태백泰伯
자한子罕
향당鄕黨
선진先進
안연顔淵
자로子路
헌문憲問
위령공衛靈公
계씨季氏
양화陽貨
미자微子
자장子張
요왈堯曰
저자
저자
이지
李贄
1527~1602. 자는 탁오(卓吾), 별호는 온릉거사(?陵居士). 명나라의 저명 양명학자로서 강학과 저술을 통해 사상사에 한 획을 그었다. 말년에 불교를 넘나들면서 유불회통의 사유를 구축하였다. 저서로 『분서(焚書)』, 『장서(藏書)』, 『사서평(四書 評)』등이 있다.
1527~1602. 자는 탁오(卓吾), 별호는 온릉거사(?陵居士). 명나라의 저명 양명학자로서 강학과 저술을 통해 사상사에 한 획을 그었다. 말년에 불교를 넘나들면서 유불회통의 사유를 구축하였다. 저서로 『분서(焚書)』, 『장서(藏書)』, 『사서평(四書 評)』등이 있다.
Payment & Security
Payment methods
Your payment information is processed securely. We do not store credit card details nor have access to your credit card information.
$99 이상 무료 배송
3% 리워드 크레딧 적립
Secure Paymen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