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자(분단에 부딪쳐 쓰러진)(양장본 HardCover)
선태섭의 삶과 죽음을 중심으로
분단에 부딪쳐 쓰러진『민족주의자』. 총 7장으로 구성하여, 신태섭의 성장 배경부터 1945년 해방을 배경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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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1975년 3월 19일 마포구 연남동에서 70세의 노인이 사망하였다. 그는 사는 동안 모두 열 명의 자식들을 낳았지만, 정작 자신이 죽을 때는 어떤 자식도 그의 임종을 지킬 수가 없었다. 자식들 중 일부는 북한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의 죽음을 알지 못했지만, 남한에만 해도 세 명의 아들과 네 명의 딸이 살고 있었는데, 그중 누구도 그의 죽음을 지켜볼 수 없었다. 당시 그의 집은 중앙정보부와 경찰들이 에워싸고 있어서 일반인들의 출입은 통제되고 있었다. 1975년은 긴급조치시대라는 명칭이 붙을 정도로 정보당국에 의한 권위주의 통치가 기승을 부릴 때였다. 그래서 중앙정보부라는 이름은 일반인에게 무시무시한 공포를 상징하는 것이었으며, 일상적으로 마주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시기에 한 사람이 병으로 죽어가는 현장을 중앙정보부 관계자들이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었다. 자식들의 사업체는 국세청의 조사가 진행되고 있었으며, 그것과는 별도로 자식들의 사업체에 대해 이른바 '반공법'사건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로 인해 자식들은 수사망을 피해 도망 다니고 있었다. 자식들을 대신하여 그의 임종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은 그의 오랜 벗들이라고 할 수 있는 남궁현과 유치오였다. 죽는 사람이 누구이기에 이토록 험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당시 사망한 사람은 선태섭이었다. 그는 일제시기 전반에 걸쳐서 항일운동에 투신했던 사람으로, 최소 다섯 번 이상 경찰당국에 체포되어 형사 처벌받은 경력을 갖고 있었다. 그 경력만으로 본다면 항일운동에 투신한 직업적인 사회운동가로,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후에는 존경을 받아 마땅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해방된 이후 분단된 상황에서 한반도의 북쪽을 선택하였다. 후술하겠지만, 일제시기 그의 운동 경력으로 판단할 때 그는 사회주의 경향을 가진 민족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해방정국의 한반도 남쪽은 친일파가 그대로 살아남아 또 다시 지배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그 결과 일제하에서 항일운동을 주도했던 대다수가 좌익으로 몰리는 상황이었다. 더욱이 해방정국에서의 좌우 갈등은 백색테러를 포함한 모든 수단이 동원되는 극한적인 대립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내몰려 그는 남에서의 탄압을 피해 월북할 수밖에 없었다. (들어가는 말 中)
목차
목차
1. 민족주의자로 자부하는 한 노인의 초라한 죽음
Ⅱ. 선태섭의 성장 배경
1. 출생과 가족
2. 출생지역의 역사사회학적 맥락
3. 교육환경
Ⅲ. 선태섭, 사회운동에 투신하다
1. 보통학교 시절의 사회운동
2. 신문기자 생활과 활동가들과의 만남
3. 수의위친계(壽衣爲親契 혹은 守義爲親契) 활동
4. 1920년대 구례지역의 사회운동과 선태섭
Ⅳ. 일제하 전남지역의 공산주의운동과 선태섭
1. 1920년대 중반 전남지역의 사상운동과 공산당운동
2. 공산당운동과 선태섭
3. 1930년대 후반부터 해방될 때까지의 행적들
4. 그 외 각종 사회활동 및 전해오는 이야기들
Ⅴ. 1945년 해방, 꿈을 향해 날다
1. 구례지역에서의 활동
2. 전남지역의 새로운 질서를 위해
3. 조선공산당 창당에 참여
Ⅵ. 북으로, 그리고 다시 남으로
1. 북으로 간 선태섭
2. 다시 남으로
Ⅶ. 인간 선태섭, 분단의 벽에
저자
저자
저서로는 『비전향장기수-0.5평에 갇힌 한반도-』, 『감금의 정치』, 『우리 시대의 소수자운동』(공저), 『전쟁과 국가폭력』(공저) 등이 있으며, 「국가폭력과 트라우마의 발생기제?, 「전남지역의 한국전쟁과 민중의 고통」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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