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호츠크해의 바람(강제동원 평화총서 6)
『오호츠크해의 바람』은 역사 연구를 업으로 삼은 내가 운명처럼 만난 사료, 식민지 시대를 전후한 시기에 조선과 사할린에서 살았던 한 사람이 남긴 기록이다. 사할린으로 동원되었다고 신고된 수많은 이들의 고통에 가슴만 아파할 뿐 객관적인 피해판정의 근거를 찾지 못해 고민이 깊어갈 그 시점이었다. 정성들여 작성된 고운 필체. 펜에 잉크를 찍어 또박또박 적어 내려간 류시욱의 143쪽짜리 보름 치 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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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이 책은 우리에게서 완전히 잊혔던 한 남자가 남긴 기록이다. 역사 연구를 업으로 삼은 내가 운명처럼 만난 사료, 식민지 시대를 전후한 시기에 조선과 사할린에서 살았던 한 사람의 육성이다. 수많은 이들이 여러 사건들이 얽히고설키는 역사 속에 등장했다가 사라져갔다. 그중에 역사가 된 이름은 많지 않다. 당대에 부귀공명을 누린 이들도 역사책의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기가 쉽지 않다. 이 글의 주인공은 그런 반열에 드는 사람이 아니다.
사할린으로 동원되었다고 신고된 수많은 이들의 고통에 가슴만 아파할 뿐 객관적인 피해판정의 근거를 찾지 못해 고민이 깊어갈 그 시점이었다. 그의 노트가 내 앞에 나타난 그 기적의 순간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정성들여 작성된 고운 필체. 펜에 잉크를 찍어 또박또박 적어 내려간 143쪽짜리 보름 치 일기였다. 단아한 필체로 미루어 글쓴이는 침착한 성격을 가진 사람으로 보인다. 한시와 자작시까지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면 글쓴이는 상당한 교육을 받은 사람이 틀림없었다. 보름 동안 잠시간의 짬을 이용하여 단숨에 써내려갔을 터인데도 지우거나 고친 흔적이 거의 없었다. 자기의 기억과 주장을 정연하게 표현할 줄 아는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가 분명했다. 그렇게 류춘계 선생은 내 앞에 홀연히 나타났다.
부귀영화나 명성은 그의 삶과 거리가 멀었다. 출생과 어린 시절까지만 해도 순탄한 일생을 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이름만 들어도 유서 깊음이 느껴지는 고실촌(古室村)에 자리하던 서애 류성룡 선생 집안에서 13대 주손으로 그는 태어났다. 4대를 독자로 이어 온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나 더없는 기쁨이 된 그에게 어머니가 붙여주신 첫 이름(아명)은 '성화'였다. '시욱'이라는 이름을 준 부친으로부터 한학을 배우고 소학교에 간 그는 총명하고 문학적 재질도 드러내며 어른들의 기대를 받았다. 스무 살도 되지 않아 청진과 서울을 다니며 제법 번듯한 기업의 촉망받는 일군으로 뻗어나갔으며, 서울에서는 문인협회에 등록하여 '춘계'라는 필명으로 정식 데뷔해 문필가의 삶도 기대했던 그였다.
하지만 그것으로 평탄한 인생은 끝이 났다. 그와 같은 1920년대 생들에게 공통으로 일제강점기와 짧은 해방의 기쁨에 뒤이은 남북 분단과 6.25동란, 그리고 체제 경쟁 속에 전개된 장기적 총동원 체제를 관통해야 하는 가혹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류시욱은 1940년에 독립운동과 민족사상 계몽활동에 가담했고 1년여 후 일경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와 사상범 교화보호소에서 산업보국대원으로 갈 것을 강요받아 당시 20여 명과 함께 사할린으로 끌려가게 되었던 것이다. 세월은 흘러가고 과거의 꿈은 사나운 폭풍에 갈가리 찢겨 쓸쓸한 유폐의 암흑 속에 그의 시절은 무상히 지나갔다. 희망도 기대도 없이 그는 인생의 반 이상을 이국 땅의 노동자로 살다가 1962년에 노동 현장에서 눈을 감았다.
고국을 떠나 공산 세계의 한 변경에서 천수를 다하지 못하고 자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하지도 못한 류시욱은 그렇게 잊혔다. 더불어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시인이자 수필가, 희곡 작가이며 기자였고, 한글 교육자이자 학자였던 한 조선인의 행적도 망각 속으로 들어갈 뻔했다.
찬 가을 빗방울과 오호츠크해의 바람을 맞으며 《산중반월기》에 남겨 둔 바람은 아련한 추억으로 우리를 초청하는 고독의 아우성이 아니다. 저자가 1957년 9월의 보름을 보낸 사할린 크라스노고르스크의 산속은 외부와 100리 단절된 곳이었다. 허술한 풍막은 고향과 수천 리 떨어진 사할린 섬에서 무국적자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갇힌 삶과 닮아 있었다. 목적 없는 삶 속에서 부유하는 매일매일의 끝없는 외로움 때문에 그는 일기를 들고 기억의 파편을 이었으리라.
일제의 강압과 이데올로기의 장벽으로 생이별하게 된 가족과의 이른바 내적 대화의 공간이었던 일기장을 펼칠 때마다 타오르는 심장의 불길 너머로 고향의 길, 조선의 길이 뻗어 나왔으리라. 사랑했던 여러 인물들의 인생도 되살아 나왔다. 느티나무를 지나 '한오리 신작로'를 함께 걸었던 영식이, 금순이, 치수 영감님의 이야기에서 '해방된 미래의 자식들'인 우리는 슬픈 비감으로 식민지 조선 백성의 핍절한 현실과 맞닥트리게 되고, 불사춘과 주복산 등에게서 저항의 현장에서 붉은 피를 쏟은 사람들에 대한 기억의 의무를 되새기게 되며, 저자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평범했던 우리와 이웃 집안들의 생생히 살아난 지난 세월과 대면하게 된다. (책머리에 中)
목차
목차
교사에서 식모로 9월 1일
불쌍한 '머저리'들 9월 2일
기억의 재편성 : 추억 9월 3일
자랄수록 더욱 아름다워졌지만 9월 4일
한 천재의 죽음 9월 5일
영감님과 돌아오지 않는 아들 9월 6일
달빛에 반사되는 눈물 9월 7일
미스터 주(Mr. 朱) 9월 8일
'춘래불사춘'-김순희 9월 9일
어머니 9월 10일
환경에 순응하라 : 세 개의 이름 9월 11일
사할린으로 끌려온 이야기 9월 12일
금년에는 설마 9월 13일
내가 네 품에 안길 수 있을 때까지 9월 14일
3만 명 조선인의 목소리 : '조국아, 아우야, 아들아' 9월 15일
춘계 류시욱 생의 발자취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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