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의 감각
파리 서울 두 도시 이야기 | 서울 여자와 파리 남자가 관찰한 도시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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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보다 매력적이고, 소설보다 근사한 두 남녀가 섬세하게 읽어낸 파리와 서울의 내면일기
부부가 된 서울 여자와 파리 남자. 서울과 파리, 그 밖 세계 이곳저곳을 함께 다닌 두 사람이 삶의 장소들, 시간의 흔적과 함께 장소가 된 공간들, 자신들의 경험과 감각, 여정의 기록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독서와 산책, 탐색, 여행의 결과인 두 사람의 이야기는 함께 한 시간의 경험이 쌓여 있는 풍경, 광장과 다리, 절, 결혼식장, 식당, 카페, 병원, 시장, 화분이 놓인 발코니와 해변에 등 개인적인 시선을 담은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Part1에서 프랑스인 남편은 우리에게 익숙한 서울을 낯설게 스케치하고, Part2에서 한국인 아내가 서울과 파리에서 도시의 일상과 공동체에 대한 감각을 사유한다. 이 책에서 파리와 서울은 해부되고 분석되는 대상에 머물지 않고, 도시에 머무는 사람들로 인해 새롭게 창조되는 삶의 터전이다. 두 저자가 산보하며 읽는 것은 도시의 그러한 사회문화적 풍경이다.
부부가 된 서울 여자와 파리 남자. 서울과 파리, 그 밖 세계 이곳저곳을 함께 다닌 두 사람이 삶의 장소들, 시간의 흔적과 함께 장소가 된 공간들, 자신들의 경험과 감각, 여정의 기록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독서와 산책, 탐색, 여행의 결과인 두 사람의 이야기는 함께 한 시간의 경험이 쌓여 있는 풍경, 광장과 다리, 절, 결혼식장, 식당, 카페, 병원, 시장, 화분이 놓인 발코니와 해변에 등 개인적인 시선을 담은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Part1에서 프랑스인 남편은 우리에게 익숙한 서울을 낯설게 스케치하고, Part2에서 한국인 아내가 서울과 파리에서 도시의 일상과 공동체에 대한 감각을 사유한다. 이 책에서 파리와 서울은 해부되고 분석되는 대상에 머물지 않고, 도시에 머무는 사람들로 인해 새롭게 창조되는 삶의 터전이다. 두 저자가 산보하며 읽는 것은 도시의 그러한 사회문화적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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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동물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지만
인간만이 두 지점을 연결하는 길을 낸다
― 게오르그 짐멜
서울 여자와 파리 남자, 지점들을 가로지르다
두 남녀가 섬세하게 읽어낸 파리와 서울의 내면일기
대양의 물결처럼 이어지는 서울의 아파트와 맑은 날 첫 태양의 따뜻한 빛을 머금는 파리의 석회암 건물. 허리를 굽혀 손님을 맞고, 오렌지 껍질까지 발라주는 서울의 카페와 허리를 꼿꼿하게 편 서버의 서빙을 받으며 카운터에서 오믈렛을 먹어야 하는 파리의 카페. 서울 여자와 파리 남자는 그 공간 속을 유유히 걷는다. 그들은 관광객처럼 재바르지 않다. 그저 공간 속에서 시간의 흐름을 읽는 산보객, 플라뇌르(Flaneur)일 따름이다. 남자는 익숙한 서울을 낯설게 스케치하고, 여자는 서울과 파리에서 도시의 일상과 공동체에 대한 감각을 톺아본다. 파리 남자는 서구 기독교 문화와 다른 한국식 교회를 발견하고, 양화대교에 택시가 멈추는 이유를 읽어낸다. 서울 여자는 파리라는 장소의 진실성을 보여주는 에펠탑을 생각하고, 센 강 위에서 세계의 일원이 되기를 바라는 난민들을 바라본다. 남자는 방향 감각이 좋고, 여자는 한 번 들른 곳의 풍경을 잘 잊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여행보다 매력적이고, 소설보다 근사하다.
벽 너머 사람들의 육체에 스민 박자들
《풍경의 감각: 파리·서울 두 도시 이야기》는 "우리 앞에 거리를 두고 단지 제 기능에 충실한 채 우리와 무심하게 존재하고 있는 도시 '공간'"보다 "우리들의 눈과 발의 감각 속에서 계속 발견되고 재발견되는 장소들, 우리와 대화하는 '장소'들"에 주목한 책이다. 프랑스인 남편이 관찰한 서울의 낯선 모습이 Part1에, 한국인 아내가 공동체라는 관점에서 사유한 파리와 서울의 형편이 Part2에 실려 있다. 이 책에서 파리와 서울은 해부되고 분석되는 대상에 머물지 않고, 도시에 머무는 사람들로 인해 새롭게 창조되는 삶의 터전이다. 두 저자가 산보하며 읽는 것은 도시의 그러한 사회문화적 풍경이다.
데카르트의 후예 서울을 읽다, 파리 남자
'파리 남자'가 서울을 읽어가는 방식은 서울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국 독자에게 신선하고 기분 좋은 충격을 준다. 자이언티는 '양화대교'에서 택시운전사인 아버지의 삶을 담담한 창법으로 노래해 가슴 뭉클함을 안겨준 바 있다. "어디냐고 여쭤보면 항상 양화대교"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파리 남자의 양화대교 관찰기는 고속도로로 둘러싸인 '접근 불가능한 공간'으로 갈음된다. 택시를 세워도 누구 하나 손을 흔들지 않을, 그런 위험을 무릅쓸 승객이 없는 기사들의 가장 편안한 안식처이기 때문. 그는 한강 다리를 건너며 속도를 가진 운전자는 결코 볼 수 없는 인간의 시야의 너머, 새의 시야로 풍경을 넉넉하게 바라본다. 그 사이 이 예리한 관찰자는 양화대교 너머 포은 정몽주의 동상을 바라보며 개성의 선죽교에서 생을 다한 그가 서울의 양화대교에 있음을 의아해한다.
서울과 파리의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도 흥미롭다. 한국은 죽은 자에게 프랑스보다 10배나 넓은 면적을 할애한다. 경주의 왕릉은 두말할 것도 없다. 프랑스의 묘지는 산 자들의 도시로 끼어들지만 한국은 고즈넉한 산 중턱에 죽은 자의 공간을 둔다. 그래서 성묘가 끝난 후 한국은 모두에게 속한 공간인 산을 떠나 서울, 교통체증과 아파트 숲이 있는 서울로 돌아간다. 죽은 자들의 평화를 떠나 산 자들의 혼란스러운 동요 속으로 분리되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산에 대한 감상은 도무지 느껴보지 못한 것이다. 이성부는 "서울에서 한 시간 남짓하여 세속의 세계에서 신의 왕국으로 건너갈 수 있다"라고 했을 만큼 서울과 산은 가깝다. 산을 찾는 이들도 유독 많아서 동틀 무렵, 새벽 5시에 출발해도 인적이 드문 산을 만나기란 어렵다. 하지만 파리에서 산을 보기 위해서는 6시간을 족히 달려가야 하니 등산이라는 말이 없을 정도다. 그들의 창공을 침범하는 것은 그저 높고 낮은 건물들과 우뚝 솟은 에펠탑뿐이다.
도로명주소 체계는 데카르트의 후예를 자처하는 '파리 남자'에게 합리적이어서 전적으로 편리하고 유용한 제도다. 논리적 체계 속에서 일련번호에 따라 길을 안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도로명주소 체계가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한다. 살고 있는 아파트의 브랜드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는다고 생각하는 나라, 선생님이나 형님처럼 사회적ㆍ가족 내 관계에 따라 호칭이 변화하는 나라, 즉 변화를 끝없이 갈망하는 나라에서 경직되고 중립적인 도로명주소 체계가 어떻게 자리 잡게 될지 물음표를 다는 것이다.
손끝마다 꽃이 피어나기를, 서울 여자
'서울 여자'의 Part2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공동체'다. 도시의 역사는 기실 인간 공동체의 역사와 다름없고, 도시의 메커니즘은 실상 인간 사회의 풍속과 결부되어 있을 것이다. 저자는 독자를 파리 테러가 있었던 2015년 11월의 파리로 이끈다. 테러의 희생자들에게 사람들은 저마다 꽃을 들고 와 헌화했다. 과연 총탄이 지나간 자리에 꽃을 놓은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꽃은 현실의 위협을 동화를 통해 회피하는 어리석은 자위의 수단일 뿐일까? 저자는, 꽃은 현실적인 보호의 방책임을 힘주어 강조한다. 오히려 공포가 창궐하는 시대일수록 꽃은 유용하다고까지 말한다. 사람과 사람, 시선과 시선을 연결하고 나를 타인에게 개방토록 하는 마법의 사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꽃은 공포의 전염을 막는 백신이 된다.
또한 도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 건설의 허상을 꼬집으며, 프랑스 사람들에게 "에펠탑은 국보 1호일까?"라고 자문한다. 유명세로 그 장소의 대표성을 담보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저자의 전언대로 공동체의 삶과 그 기반, 장소의 기억을 무시한 채 지어올린 랜드마크는 오히려 그것이 세워진 곳을 가려버릴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센 강변에 들어선 무료 모래사장은 공동체의 가치가 살아 있는 랜드마크로 볼 수 있을 성싶다. 2000년대 사회당 출신 들라노에 파리 시장은 재임 초 휴가를 떠나지 못하는 파리지앵을 위해 7~8월 바캉스 시기, 센 강변 도로의 차량 통행을 막고 바다 모래사장을 설치해 전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이 '파리 플라주(Paris Plage, 파리 해변)'는 사회복지의 철학을 공공장소에 구현하기 위한 위정자의 선택이었다.
[책 속으로 추가]
프랑스 사람들에게 에펠탑은 국보 1호일까? 대부분의 프랑스 사람은 에펠탑이 프랑스에서 제일 유명한 건축물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테지만 에펠탑이 프랑스를 가장 잘 '대표'하는 건축물이라는 생각에 이의를 제기할 프랑스 사람도 적지 않을 것임이 틀림없다. 물론, 한국의 문화 관치官治만이 어떤 공동체를 '가장 잘' 드러내는 건축물을 고르고, '두 번째로 중요한' 건축물을 고르는 방식으로 '공식'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만 랜드마크에 열을 올리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랜드마크를 짓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랜드마크가 기꺼이 대표할 공동체의 내용을 고민하는 일이고, 공동체의 사연과 기억이 거주할 장소들의 풍경을 더 세심하게 보살피는 일이다. 무엇도 나누지 못하는 사회를 대표하는 커다란 물건은 자랑스럽기보다 부끄러운 표식이 되기 쉽다.
_랜드마크는 도시를 상징할까?, 246쪽
빅토르 위고는 바리케이드를 바라보는 자들이란 늘 양쪽으로 나뉜다는 점을 간파했다. "누가 이것을 쌓았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가 이것을 부쉈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빅토르 위고는 바리케이드는 저항하는 자들, 혁명군의 것이라 보았고, 이를 '격동의 즉흥연주'라 불렀다. 그는 1830년대 혁명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 속 "서로 너무나 다른 여러" 사람들, 그러나 "하나의 정치적 이상이나 사유를 지지하기 위해 뭉친 이들"이 길거리 보도블록뿐 아니라 건물에서 떼어낸 문짝, 철책, 차양, 창틀, 솥단지, 온갖 것으로 보도블록을 쌓는 모습을 생생히 묘사했다. 바리케이드는 저항하는 자들의 것이면서 반달리즘과 결부된 파괴의 기술이기도 했다. 바리케이드를 쌓으며 저항했던 이들, 이름 없는 혁명군의 동요와 격렬함이 프랑스 공화국의 역사를 만들어낸 탓일까? 프랑스 사회는 반달리즘을 옹호하지는 않더라도 이제껏 스타디움, 공연장 등 흥분한 사람들이 대규모로 모여 있는 장소에서 발생하는 일부의 반달리즘에 관대한 태도를 취해왔다. 흥분한 시위대 사이에 끼여 집회의 목적과 상관없이 사방에 스프레이 낙서를 하고, 거리에 주차된 민간인 차량을 훼손하거나 상가의 유리창을 깨고 약탈을 하는 이들을 '브레이커'라 부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프랑스 시민, 미디어, 공권력은 일부 브레이커가 목소리를 높이는 전체 시위대를 대표한다고 보지 않는다
_도심 속 바리케이드를 바라보는 두 시선, 266쪽
인간만이 두 지점을 연결하는 길을 낸다
― 게오르그 짐멜
서울 여자와 파리 남자, 지점들을 가로지르다
두 남녀가 섬세하게 읽어낸 파리와 서울의 내면일기
대양의 물결처럼 이어지는 서울의 아파트와 맑은 날 첫 태양의 따뜻한 빛을 머금는 파리의 석회암 건물. 허리를 굽혀 손님을 맞고, 오렌지 껍질까지 발라주는 서울의 카페와 허리를 꼿꼿하게 편 서버의 서빙을 받으며 카운터에서 오믈렛을 먹어야 하는 파리의 카페. 서울 여자와 파리 남자는 그 공간 속을 유유히 걷는다. 그들은 관광객처럼 재바르지 않다. 그저 공간 속에서 시간의 흐름을 읽는 산보객, 플라뇌르(Flaneur)일 따름이다. 남자는 익숙한 서울을 낯설게 스케치하고, 여자는 서울과 파리에서 도시의 일상과 공동체에 대한 감각을 톺아본다. 파리 남자는 서구 기독교 문화와 다른 한국식 교회를 발견하고, 양화대교에 택시가 멈추는 이유를 읽어낸다. 서울 여자는 파리라는 장소의 진실성을 보여주는 에펠탑을 생각하고, 센 강 위에서 세계의 일원이 되기를 바라는 난민들을 바라본다. 남자는 방향 감각이 좋고, 여자는 한 번 들른 곳의 풍경을 잘 잊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여행보다 매력적이고, 소설보다 근사하다.
벽 너머 사람들의 육체에 스민 박자들
《풍경의 감각: 파리·서울 두 도시 이야기》는 "우리 앞에 거리를 두고 단지 제 기능에 충실한 채 우리와 무심하게 존재하고 있는 도시 '공간'"보다 "우리들의 눈과 발의 감각 속에서 계속 발견되고 재발견되는 장소들, 우리와 대화하는 '장소'들"에 주목한 책이다. 프랑스인 남편이 관찰한 서울의 낯선 모습이 Part1에, 한국인 아내가 공동체라는 관점에서 사유한 파리와 서울의 형편이 Part2에 실려 있다. 이 책에서 파리와 서울은 해부되고 분석되는 대상에 머물지 않고, 도시에 머무는 사람들로 인해 새롭게 창조되는 삶의 터전이다. 두 저자가 산보하며 읽는 것은 도시의 그러한 사회문화적 풍경이다.
데카르트의 후예 서울을 읽다, 파리 남자
'파리 남자'가 서울을 읽어가는 방식은 서울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국 독자에게 신선하고 기분 좋은 충격을 준다. 자이언티는 '양화대교'에서 택시운전사인 아버지의 삶을 담담한 창법으로 노래해 가슴 뭉클함을 안겨준 바 있다. "어디냐고 여쭤보면 항상 양화대교"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파리 남자의 양화대교 관찰기는 고속도로로 둘러싸인 '접근 불가능한 공간'으로 갈음된다. 택시를 세워도 누구 하나 손을 흔들지 않을, 그런 위험을 무릅쓸 승객이 없는 기사들의 가장 편안한 안식처이기 때문. 그는 한강 다리를 건너며 속도를 가진 운전자는 결코 볼 수 없는 인간의 시야의 너머, 새의 시야로 풍경을 넉넉하게 바라본다. 그 사이 이 예리한 관찰자는 양화대교 너머 포은 정몽주의 동상을 바라보며 개성의 선죽교에서 생을 다한 그가 서울의 양화대교에 있음을 의아해한다.
서울과 파리의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도 흥미롭다. 한국은 죽은 자에게 프랑스보다 10배나 넓은 면적을 할애한다. 경주의 왕릉은 두말할 것도 없다. 프랑스의 묘지는 산 자들의 도시로 끼어들지만 한국은 고즈넉한 산 중턱에 죽은 자의 공간을 둔다. 그래서 성묘가 끝난 후 한국은 모두에게 속한 공간인 산을 떠나 서울, 교통체증과 아파트 숲이 있는 서울로 돌아간다. 죽은 자들의 평화를 떠나 산 자들의 혼란스러운 동요 속으로 분리되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산에 대한 감상은 도무지 느껴보지 못한 것이다. 이성부는 "서울에서 한 시간 남짓하여 세속의 세계에서 신의 왕국으로 건너갈 수 있다"라고 했을 만큼 서울과 산은 가깝다. 산을 찾는 이들도 유독 많아서 동틀 무렵, 새벽 5시에 출발해도 인적이 드문 산을 만나기란 어렵다. 하지만 파리에서 산을 보기 위해서는 6시간을 족히 달려가야 하니 등산이라는 말이 없을 정도다. 그들의 창공을 침범하는 것은 그저 높고 낮은 건물들과 우뚝 솟은 에펠탑뿐이다.
도로명주소 체계는 데카르트의 후예를 자처하는 '파리 남자'에게 합리적이어서 전적으로 편리하고 유용한 제도다. 논리적 체계 속에서 일련번호에 따라 길을 안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도로명주소 체계가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한다. 살고 있는 아파트의 브랜드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는다고 생각하는 나라, 선생님이나 형님처럼 사회적ㆍ가족 내 관계에 따라 호칭이 변화하는 나라, 즉 변화를 끝없이 갈망하는 나라에서 경직되고 중립적인 도로명주소 체계가 어떻게 자리 잡게 될지 물음표를 다는 것이다.
손끝마다 꽃이 피어나기를, 서울 여자
'서울 여자'의 Part2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공동체'다. 도시의 역사는 기실 인간 공동체의 역사와 다름없고, 도시의 메커니즘은 실상 인간 사회의 풍속과 결부되어 있을 것이다. 저자는 독자를 파리 테러가 있었던 2015년 11월의 파리로 이끈다. 테러의 희생자들에게 사람들은 저마다 꽃을 들고 와 헌화했다. 과연 총탄이 지나간 자리에 꽃을 놓은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꽃은 현실의 위협을 동화를 통해 회피하는 어리석은 자위의 수단일 뿐일까? 저자는, 꽃은 현실적인 보호의 방책임을 힘주어 강조한다. 오히려 공포가 창궐하는 시대일수록 꽃은 유용하다고까지 말한다. 사람과 사람, 시선과 시선을 연결하고 나를 타인에게 개방토록 하는 마법의 사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꽃은 공포의 전염을 막는 백신이 된다.
또한 도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 건설의 허상을 꼬집으며, 프랑스 사람들에게 "에펠탑은 국보 1호일까?"라고 자문한다. 유명세로 그 장소의 대표성을 담보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저자의 전언대로 공동체의 삶과 그 기반, 장소의 기억을 무시한 채 지어올린 랜드마크는 오히려 그것이 세워진 곳을 가려버릴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센 강변에 들어선 무료 모래사장은 공동체의 가치가 살아 있는 랜드마크로 볼 수 있을 성싶다. 2000년대 사회당 출신 들라노에 파리 시장은 재임 초 휴가를 떠나지 못하는 파리지앵을 위해 7~8월 바캉스 시기, 센 강변 도로의 차량 통행을 막고 바다 모래사장을 설치해 전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이 '파리 플라주(Paris Plage, 파리 해변)'는 사회복지의 철학을 공공장소에 구현하기 위한 위정자의 선택이었다.
[책 속으로 추가]
프랑스 사람들에게 에펠탑은 국보 1호일까? 대부분의 프랑스 사람은 에펠탑이 프랑스에서 제일 유명한 건축물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테지만 에펠탑이 프랑스를 가장 잘 '대표'하는 건축물이라는 생각에 이의를 제기할 프랑스 사람도 적지 않을 것임이 틀림없다. 물론, 한국의 문화 관치官治만이 어떤 공동체를 '가장 잘' 드러내는 건축물을 고르고, '두 번째로 중요한' 건축물을 고르는 방식으로 '공식'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만 랜드마크에 열을 올리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랜드마크를 짓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랜드마크가 기꺼이 대표할 공동체의 내용을 고민하는 일이고, 공동체의 사연과 기억이 거주할 장소들의 풍경을 더 세심하게 보살피는 일이다. 무엇도 나누지 못하는 사회를 대표하는 커다란 물건은 자랑스럽기보다 부끄러운 표식이 되기 쉽다.
_랜드마크는 도시를 상징할까?, 246쪽
빅토르 위고는 바리케이드를 바라보는 자들이란 늘 양쪽으로 나뉜다는 점을 간파했다. "누가 이것을 쌓았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가 이것을 부쉈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빅토르 위고는 바리케이드는 저항하는 자들, 혁명군의 것이라 보았고, 이를 '격동의 즉흥연주'라 불렀다. 그는 1830년대 혁명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 속 "서로 너무나 다른 여러" 사람들, 그러나 "하나의 정치적 이상이나 사유를 지지하기 위해 뭉친 이들"이 길거리 보도블록뿐 아니라 건물에서 떼어낸 문짝, 철책, 차양, 창틀, 솥단지, 온갖 것으로 보도블록을 쌓는 모습을 생생히 묘사했다. 바리케이드는 저항하는 자들의 것이면서 반달리즘과 결부된 파괴의 기술이기도 했다. 바리케이드를 쌓으며 저항했던 이들, 이름 없는 혁명군의 동요와 격렬함이 프랑스 공화국의 역사를 만들어낸 탓일까? 프랑스 사회는 반달리즘을 옹호하지는 않더라도 이제껏 스타디움, 공연장 등 흥분한 사람들이 대규모로 모여 있는 장소에서 발생하는 일부의 반달리즘에 관대한 태도를 취해왔다. 흥분한 시위대 사이에 끼여 집회의 목적과 상관없이 사방에 스프레이 낙서를 하고, 거리에 주차된 민간인 차량을 훼손하거나 상가의 유리창을 깨고 약탈을 하는 이들을 '브레이커'라 부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프랑스 시민, 미디어, 공권력은 일부 브레이커가 목소리를 높이는 전체 시위대를 대표한다고 보지 않는다
_도심 속 바리케이드를 바라보는 두 시선, 266쪽
목차
목차
들어가며
Part1 파리의 눈으로 본 서울
양화대교 건너기 | 카페 사용설명법 | 웨딩 콜라주 | 묘지는 또 하나의 이야기 | 낯선 교회, 익숙한 사찰 | 강남역 4번 출구 앞 편의점에서 두 번째 골목 | 간판, 안내판, 플래카드로 뒤덮인 나라 | 짓고 또 짓고 | 한 이방인의 관악산 등반기 | 색깔의 정치학 | 쓰레기를 읽으면 인간이 보인다 | 상상의 미술관 | 비어 있는 공간, 광장
Part2 도시라는 공동체
기찻길 옆 근대 도시 | 꽃, 공포의 전염을 막는 백신 | 시장은 감정의 교환소 | 미드나잇 인 디즈니랜드 | 랜드마크는 도시를 상징할까? | 연결하는 다리, 분리하는 다리 | 도심 속 바리케이드를 바라보는 두 시선 | 대형 병원 시대, 동네 병원의 역할 | 은밀하게 위대하게: 방석집과 피트니스 클럽 | 밥상이 당신을 보살피는 풍경 | 모두에게 평등한 모래사장
Part1 파리의 눈으로 본 서울
양화대교 건너기 | 카페 사용설명법 | 웨딩 콜라주 | 묘지는 또 하나의 이야기 | 낯선 교회, 익숙한 사찰 | 강남역 4번 출구 앞 편의점에서 두 번째 골목 | 간판, 안내판, 플래카드로 뒤덮인 나라 | 짓고 또 짓고 | 한 이방인의 관악산 등반기 | 색깔의 정치학 | 쓰레기를 읽으면 인간이 보인다 | 상상의 미술관 | 비어 있는 공간, 광장
Part2 도시라는 공동체
기찻길 옆 근대 도시 | 꽃, 공포의 전염을 막는 백신 | 시장은 감정의 교환소 | 미드나잇 인 디즈니랜드 | 랜드마크는 도시를 상징할까? | 연결하는 다리, 분리하는 다리 | 도심 속 바리케이드를 바라보는 두 시선 | 대형 병원 시대, 동네 병원의 역할 | 은밀하게 위대하게: 방석집과 피트니스 클럽 | 밥상이 당신을 보살피는 풍경 | 모두에게 평등한 모래사장
저자
저자
이나라
저자 이나라는 1973년 한국의 수도 서울에서 출생. 곳곳으로 잦은 이사를 다녔고, 컬러 TV를 보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1996년 사회학과 대학생이던 시절, 처음 김포공항에서 국제선 비행기를 타고 유럽을 방문했다. 2002년 서울에서 미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직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파리의 극장과 거리에 익숙해질 무렵인 2013년 파리 팡테옹 소르본 대학에서 영화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0년 프랑스인 남편과 결혼했다. 현재 서울과 파리를 오가며 영화와 문화에 대한 글을 쓰고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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