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워서 좋은 지금(시작시인선 129)
박소유 시집 『어두워서 좋은 지금』. 이 시집에 수록된 시는 구체적 경험과 생활 감정을 기반으로 정감 있는 일상적 세계를 선보이다가도, 때로는 서늘하고 낯선 욕망의 맨얼굴을 처연히 드러내기도 한다. 시인이 추동하는 환유적 상상력의 편력을 따라가다 보면, 궁극적으로 세계의 외곽에 놓인 변두리 삶들과 조우하게 된다는 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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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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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상처를 꽃으로 읽지만 나는 벌써 꽃이 상처로 보인다."(「자줏빛 紫」).
일견 평범해 보이는 이 시적 진술은 박소유의 시집에 다가가기 위한 주요한 열쇠 말이 되어준다. '상처를 꽃으로 읽는 자'와 '꽃에서 상처를 보는 자'는 어떻게 다른가. 전자에서 중요한 것은 삶과 존재의 세목을 기호화하는 시인의 미학적 시선이다. 균질화와 상징화의 문턱을 거쳐 존재(상처)는 빼어난 이미지와 형상(꽃)으로 구축된다. 수직적 시선의 이끌림 속에서 존재는 새로운 차원으로 고양되지만, 기호화될 수 없는 삶의 불균질적 형질과 존재의 이질성들이 누락되거나 왜곡되는 현상은 불가피하다. 이에 비해 후자에서 우선적인 것은 미적 정렬의 감각 대신, 존재의 세부와 실제적 국면을 성실하게 탐사하는 눈이다. '꽃'은 최초의 발화점으로 작용할 뿐 시인의 시선은 이내 그것과 맞닿은 상처의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실재를 찾아 끊임없이 편력하고 주유(周遊)한다. 미리 의도된 시인의 심적 기호로 환원하거나 단일한 상징으로 수렴하지 않는, 유동하는 원심력의 운동 속에서 시인은 개별자들 간의 모종의 관계망을 구성한다.
시와 세계가 만나는 이러한 두 양상을 각각 은유적 상상력과 환유적 상상력으로 대별한다면, 박소유 시의 요체는 뚜렷하게 환유적 방법론에 치우쳐 있다. 존재는 무엇 혹은 누군가와 늘 겹쳐지거나 연결된다. 시인은 삶의 아주 작은 기미조차도 그냥 흘려버리지 않는 염결적인 시선으로 '연결'과 '중첩'의 세계를 구조화한다.
박소유의 시는 어디론가 끊임없이 '건너가려는' 자들의 발화이다. 삶의 동심원적 구조의 외곽을 향해, 다른 생과 다른 세계, 무수한 타자들이 거주하는 "검은 구멍"(「농담」)을 향해 촉수를 뻗는 이상(異常) 욕망의 관성이 이들을 지배한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안정된 삶의 중핵에 대한 각성과 긴장에 의해 가능할 수 있다. 때문에 박소유의 시는 구체적 경험과 생활 감정을 기반으로 정감 있는 일상적 세계를 선보이다가도, 때로는 서늘하고 낯선 욕망의 맨얼굴을 처연히 드러내기도 한다.
박소유 시가 추동하는 환유적 상상력의 편력을 따라가다 보면, 궁극적으로 세계의 외곽에 놓인 변두리 삶들과 조우하게 된다. 그들은 여전히 '암호'로 남아있지만 암호의 배후조차 알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지하도 노숙인, 철거촌과 재개발 지구의 삶, 곱사등이 남편과 입양아에 이르기까지 시인의 시선은 부박한 세계의 주변부 어디쯤에 머물고 배회한다. 시인은 암호에 다가가기 위해 스스로 암호가 되고자 했지만, 그 방법만이 전부는 아니다. 암호를 해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해도, 암호의 배치를 따라 읽을 때 우리는 훨씬 그(들)의 삶에 근접하게 된다. 그것이 타자의 속내를 알 수는 없어도 짐작할 수 있으며, 소통할 순 없어도 공명할 수 있으며, 위로할 수 없다 해도 배려할 수 있는 방법이다.
목차
목차
앞날 ──── 14
허무맹랑 ──── 15
걸려 있다 ──── 16
천사의 도시 ──── 17
어두워서 좋은 지금 ──── 19
은목서에 길을 내다 ──── 21
선물 ──── 22
그 누구의 꿈도 아닌 ──── 24
바람앵무 ──── 26
아직 모르는 채 ──── 27
흘러간 노래 ──── 28
자장가 ──── 30
오, 어쩌면 좋아 ──── 31
기억의 재구성 ──── 33
앉은뱅이 별 ──── 35
울음 ──── 37
달아 ──── 38
그 한마디만 없었더라면 ──── 39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 41
비밀 ──── 42
그늘 ──── 43
눈사람 ──── 44
분홍미선 ──── 45
그 날 저녁 ──── 46
꽃의 직전 ──── 47
비탈에 서다 ──── 48
잡것 ──── 50
습지에서 ──── 51
병이라면 병이어서 ──── 52
폭설 ──── 54
우는 아기 ──── 56
암호 ──── 57
가장 긴 그림자 ──── 58
이상한 기억 ──── 60
뜨거운 국에 오래 담가둔 숟가락처럼 ──── 61
말이 뛴다 ──── 62
눈치 ──── 64
젖어든다 ──── 65
뱀 ──── 66
울음그물 ──── 68
검은빛 당신 ──── 70
발 ──── 71
그곳 간판 ──── 72
오리들 ──── 74
하지 ──── 75
마리에서 ──── 77
사랑한다는 그 말 ──── 78
슬픔이라는 것 ──── 79
다시, 천사의 도시 ──── 80
어떤 싸움 ──── 82
아이가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다 ──── 84
어둠은 너무 맑아서 ──── 85
은점 ──── 86
11월 ──── 87
잊을 건 잊어야지 ──── 88
농담 ──── 89
안개주의자 ──── 90
사랑 ──── 91
환등기 ──── 92
해설 : 존재의 환유적 연쇄, '건너가기'의 윤리 | 권채린 ──── 95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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