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향투(문인의 지취 1)
모암논선
모암논선 제1편『인정향투』. '인정이 고요한데 향이 사무친다'라는 뜻의 이번 모암논선 창간은 현재의 우리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는 예술의 전통적 그리고 근본적인 의미들을 찾아가고자 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옛 선인들의 정취가 남아 있는 그림의 의미를 상세히 소개한다. 이를 통해 우리 선조의 예술, 작품과 작품 활동에 깃들어 있는 깊은 뜻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전통문화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공유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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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이 창 용, Chief Economist Economics and Research Department, Asian Development Bank, 추천사 중]
옛 선인들의 정취가 남아 있는 그림을 그저 바라만 보는 많은 이들에게, 그 의미를 상세히 소개한 저자의 노력은 우리에게 큰 선물이라 생각됩니다. 더욱이 이 책을 시작으로 연작을 계속 이어간다고 하니, 그저 반갑기만 합니다. 문화는 공유할 때 더 빛이 납니다. 아무쪼록, 저자의 문화전도사로서의 역할이 앞으로 더욱 빛이 나기를 기대합니다.
[정충기,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추천사 중]
이처럼 전통 문화와 예술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도 이런 저런 사정으로 문화 및 예술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던 중, 반갑게도 모암문고 (茅岩文庫, The Moam Collection)의 논문집, '인정향투(人靜香透: 인적이 고요한데 향이 사무친다) -모암논선(茅岩論選)'의 창간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동 논문집의 발간을 매개로 우리 예술작품들에 관한 정밀하고 세세한 연구를 통하여 우리 정신문화와 예술의 근본 뜻을 찾아 많은 다른 독자들과 교유하려는 저자의 노력은 그 의의가 깊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앞으로 지속적인 논문집 발간을 통해 우리의 전통 문화 및 예술 작품들에 대한 연구를 확대할 계획일이라고 하니, 후속 논문집의 발간 또한 기대되는 바입니다.
[이승재, 아시아개발은행 근무(Principal Financial Sector Specialist), 추천사 중]
지금까지 《서원아회첩西園雅會帖》, 《퇴우이선생진적첩退尤二先生眞蹟帖》에 담겨있는 작품들과 추사 〈소심란素心蘭(불이선란)〉에 관한 기존의 많은 연구들이 있어왔다. 하지만, 이 아회첩과 진적첩에 담겨있는 작품들에 관한 부분적인 연구들만이 이루어졌을 뿐 첩 전체의 내용과 내력來歷, 그리고 이 진적첩의 가치 등을 모두 아우르는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추사 소심란은 그 명칭에서부터 그간 연구들의 오류가 눈에띈다. 이 책은 그 누구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학문적 성취를 이룬 저자가 그 철학과 이론을 바탕으로 아회첩, 진적첩, 그리고 소심란에 관한 기존의 연구 성과를 하나하나 꼼꼼히 비평ㆍ검토하고 각 작품 자체의 연구에 그 중심을 두며 설명을 전개한다. 작품들의 구성과 그들에 담긴 모든 발문들의 내용과 내력을 살펴 작품들의 연원淵源과 지금까지 전해지게 된 역사를 밝히고, 작품들의 세세하고 전반적인 내용확인을 통하여 작품들에 담긴 깊은 의미를 알아보고, 또한 각 작품에 담긴 기, 제시를 살펴 작품에 담겨있는 깊은 의미와 여러 발문들과의 관계를 밝히며 《서원아회첩西園雅會帖》, 《퇴우이선생진적첩退尤二先生眞蹟帖》, 〈소심란素心蘭(불이선란)〉의 가치와 역사적 의미를 증명하여 나간다.
I. 《서원아회첩 西園雅會帖》
조선시대 명인 문인묵객 8인의 아름다운 사적인 모임을 엿보다
기미년己未年(영조 15년, 1739) 여름 조선시대 문인들인 조치회趙稚晦, 송원직宋元直, 서국보徐國寶, 심시서沈時瑞, 조군수趙君受, 정선鄭敾, 이병연李秉淵 8인人이 당시 도승지都承旨(지신사知奏事)로 있던 이춘제(1692~1761)의 집 후원인 서원西園과 그 정자인 서원소정西園小亭에서 모임을 가지게 된다.
아회첩의 구성과 그 유래를 말하다
《서원아회첩西園雅會帖》은 약 40면으로 이루어져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첩의 겉표지는 노란색 비단으로 입혀져 있었으며 겸재謙齋 정선鄭敾의 '한양전경'을 포함한 다섯 점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는 견본담채絹本淡彩 형태로 첩 온면에 덧붙여졌고 이춘제와 조현명趙顯命이 지은 두 편의 기記와 사천 이병연李秉淵(1671~1751)의 시서 및 아회 참가자 중 그림을 그렸던 겸재를 제외한 7인의 시서詩書들은 지본수묵紙本水墨으로 가장자리 부분이 덧대어져 담겨 있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시화첩의 양식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첩의 겉표지는 노란색 비단으로 입혀져 있었으며 겸재謙齋 정선鄭敾의 다섯 점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는 견본담채絹本淡彩 형태로 첩 온면에 덧붙여졌고 이춘제와 조현명趙顯命이 지은 두 편의 기記와 사천 이병연李秉淵(1671~1751)의 시서 및 아회 참가자 중 그림을 그렸던 겸재를 제외한 7인의 시서詩書들은 지본수묵紙本水墨으로 가장자리 부분이 덧대어져 담겨 있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시화첩의 양식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서원아회첩西園雅會帖》의 유래는 서원주인 이춘제가 직접 지은〈서원아회(기)西園雅會(記)〉의 후반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於亭逍遙, 竟夕忘歸, 臨罷, 歸鹿, 口呼一律, 屬諸公聯和, 請
謙齋筆, 摹寫境會, 仍作帖, 以爲子孫藏, 甚奇事也, 豈可無識。
"정자에서 소요하는 것으로 마침내 저녁이 되어도 돌아갈 줄 모르다가 파하기에 임해서 귀록이 입으로 시 한 수를 읊고 제공에게 잇대어 화답하라 하고, 겸재 화필을 청하여 장소와 모임을 그려 달라 하니 그대로 시화첩(서원아회첩西園雅會帖)을 만들어 자손이 수장하게 하려 함이다. 심히 기이한 일이거늘 어찌 기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기록이 없을 수 있겠는가?)"
이춘제의〈서원아회(기)西園雅會(記)〉이 문장에 의하면, 이러한 아회雅會가 이루진 일이 매우 신기한 일이기 때문에 아회에 관한 기록을 남김에 귀록歸鹿 조현명趙顯命 대감이 먼저 시 한 수를 지어 읊고 이춘제를 비롯한 참가자 전원에게 시 짓기를 권했던 모양이다.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우리 조선시대朝鮮時代 사대부들의 멋들어진 풍류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이에 참가자 전원이 시를 여러 편 지어 남겼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에 이춘제는 동석했던 겸재謙齋 정선鄭敾에게 정중히 청하여 또한 이 아회의 모습과 정취를 빼어난 다섯 폭의 화폭6)으로 남기게 된 것이다. 이어 이춘제는 아회를 통한 이 시들과 그림들을 그대로 시화첩詩畵帖으로 꾸며 가보家寶로 자손들(후손들)에게 물려주려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성 겸재의 다섯 폭 산수화, 이춘제와 조현명의 아회기, 서원소정기, 그리고 귀록, 사천 등 아회참가자들의 제시를 살피다
〈한양전경漢陽全景〉도는 겸재謙齋 65세(만 64세) 시 경신년庚申年(영조 16년, 1740)에《서원아회첩西園雅會帖》내內 그려 넣으신 두 폭의 진경산수인물화 중 한 폭으로, 아회첩 약 40면 중 중간 면〈서원소정西園小亭〉도 뒤 두 면에 걸쳐 그려져 있던 작품이다. 〈한양전경〉도는 앞서 살펴보았던〈서원소정〉도와 함께 조선시대朝鮮時代 사대부士大夫 문인묵객文人墨客 8인人이 당시 지신사知申事로 있던 이춘제의 집 후원인 '서원'과 그 정자 '서원소정'에서 가졌던 아회 1년 후 그려진 그림이라 생각되는데 이 그림 역시 다음 해가 되는 이춘제의 지비(지)년을 기념하여 집안의 가보로 후손에게 물려줄 아회첩(서원아회첩)의 완성을 위하여 겸재 정선에게 정중히 부탁하여 그려진 그림이라 생각된다.〈 한양전경漢陽全景〉도를 바라보면 먼저 그 광활한 스케일에 압도된다. 또 이 그림은 겸재의 다른 대작들에 비하여 그리 크지 않은 화폭에 이춘제가 자신의 후원 정자 '서원소정'에 앉아 경복궁景福宮, 사직단社稷壇, 인경궁仁慶宮을 비롯하여 남산南山, 관악산冠岳山, 남한산성南漢山城에까지 이르는 한양전경漢陽全景의 모습을 담고 있는데 이러한 한 화면에 한 나라의 수도 전경을 그린 그림은 이〈한양전경〉도가 유일한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감히 말하자면 현재 전하는 겸재 정선의 유작들 중 최고의 수작이라 할만하다.
화첩에 담겨있는 여러 기와 제시들 중 이춘제의 시를 한편 살펴보자.
小園佳會偶然成,
杖屢逍遙?晩晴,
仙閣謝煩心己靜,
雲巒耽勝脚益經,
休言?陟勞令夕,
誇託來游冠此生,
臨罷丁寧留後約,
將軍風致老?淸。
소원의 가회(기쁘고 즐거운 모임) 우연히 이루어지니
지팡이 들고 짚신 신고 비 걷힌 저녁 산을 소요하네.
선객(신선)이 번거로움 사양하니 마음 이미 고요하고
구름 산 승경 찾으니 다리 가볍네.
II. 《퇴우이선생진적첩退尤二先生眞蹟帖》
조선성리학의 학문적 체계를 완성했던 성리학의 거봉 퇴계 이황을 말하다
성리학은 고려 말에 도입되어 정몽주, 길재 등을 시작으로 김종직, 김굉필, 조광조, 이언적 등을 거쳐 이황에게 귀결되어지고 이황에 의하여 조선성리학으로서의 학문적인 체계가 성립된다. 이론의 여지없이 퇴계는 조선성리학의 거봉으로 중국, 일본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물론이고 현재 그의 독특한 사상은 유럽ㆍ미주에서 서구이론의 불완전함을 보완해줄 사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퇴계의 <회암서절요 서>와 우암의 발문 그 가치를 논하다
퇴계의 사상에 관하여 기존의 연구가 꾸준히 이루어져 왔고 그 성과 또한 뛰어나다 할 수 있다. 저자는 기존의 방대한 자료들을 살펴 그 중 가치 있는 연구들을 선별하여 기존의 연구 성과를 모아 정리하고, 그만의 예리한 안목과 섬세함으로 기존 연구들에서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이러한 과정들을 거치며 진적첩 내의 퇴계 친필수고본 <회암서절요 서>와 우암의 두 번에 걸친 발문 그 소중한 가치를 증명한다.
화성 겸재의 네 폭 산수화, 차자 만수의 부기발문, 지기 사천의 제시를 말하다
퇴계의 친필수고본 <회암서절요 서>와 우암의 두 번에 걸친 발문이 겸재의 집 '인곡'에 전해지는 내력을 적은 만수의 발문부기의 내용을 살펴보고, 겸재 자신이 만년 화성의 필력으로 이 묵보가 전해지는 과정을 지기였던 사천의 제시와 함께 첨부한 네 폭 산수화의 구성과 의미를 정교하고 꼼꼼하게 밝힌다. 또한 경지에 오른 저자의 명확하고 정교한 논리와 고증을 바탕으로 최근 논란이 된 진적첩에 관한 두 잡음을 명쾌하게 불식시킨다.
고산과 구룡산인의 발문, 모운의 발문별지를 살펴 후대의 평가를 말하다
겸재의 집 '인곡'에서 나와 떠돌던 진적첩을 소장하게 된 고산 임헌회가 그 벅찬 소감을 적어놓은 발문과 이후 진적첩을 완상한 구룡산인 김용진이 그 마음에 느낀 바를 적은 발문, 그리고 손자를 얻은것을 기념하여 지기였던 동교 민태식으로부터 이 묵보를 전하여 받은 모운 이강호가 마음의 느낌과 후세ㆍ후손에게 당부하는 글을 적어놓은 발문별지의 내용을 세세히 살펴 퇴계와 우암의 사상과 진적첩에 관한 평가를 논한다.
III. 〈인정향투난人靜香透蘭〉-추사 소심란素心蘭 (불이선란) 연구의 제문제
인정향투난을 통하여 추사의 난을 생각하는 마음의 일면을 읽다
'인정향투人靜香透'
'추사秋史'
"인적이 고요한데 향이 사무친다."
'추사'
위 화제畵題d와 같이 아무 욕심 없이 마음을 비우고 인적 없는 고요한 초당에서 화제 글의 뜻과 같이 운필하여 그렸으니 마치 속세를 떠나 깊은 산속에서 단아하게 정좌하여 수도하는 모습의 고승을 보는 듯 엄숙해진다. 자연스러우면서도 이슬에 젖은 듯 정중하게 느껴지는 난엽! 아무 사심 없는 듯 공손하고 날렵하면서도 깊이 숨어 배어 있는 듯한 은은한 향기! 추사의 고아한 선비정신이 '인정향투란人靜香透蘭'으로 고고하게 피어난 듯, 또 대자연을 그려낸 듯하니 추사가 난화 치기를 기피한 속의 한 편을 읽을 수 있으며 추사의 난화 작품이 매우 귀중함을 느낄 수 있다.
추사 소심란(불이선란) 명칭과 그 연구에 있는 문제점을 말하다
이 추사의〈묵란도〉는 제주 유배에서 풀리고 얼마 후, 추사 60대 중반에 그리신 작품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화제 및 관서의 필획과 특히 '구경우제'라는 관서가 또 이를 증명해준다. 세간에 '부작난不作蘭' 혹은 '불이선란不二禪蘭'이라 불리고 있는데 이는 모두 잘못된 명칭이라고 생각된다. 이 작품은 '소심란素心蘭'이라 불리어야 한다. 그 이유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추사 편을 자세히 살펴보면 추사의 고제인 우선 이상적이 그의 문집〈은송당집恩誦堂集〉에 이러한 시구를 남긴 것을 알 수 있다.
(중략)
知己平生存手墨 素心蘭又歲寒松
"평생 나를 알아주신 수묵이 있으니 '소심란'과 '세한송'이라."
추사께서 돌아가시자 이상적이 눈물을 흘리며 지은 시로 진실한 사제 간의 관계를 보여주어 현대에 시사하는 바도 크다 할 수 있다. 또 '소심란'의 의미를 알아보면 '빈마음의 난, 무념 난' 등으로 그 풀이가 가능한바, '우연히 그렸더니 천연의 본성이 드러났네'라는 화재와도 부합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吳小山見而豪奪 可笑'라는 문구의 해석도 '오소산이 보고 좋아하며 빼앗으려 하니 가히 우습다'가 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 난초를 소산 오규일이 빼앗아갔다는 일화도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始爲達俊放筆 只可有一不可有二. 仙客老人'이라 제하신 것으로 보아 이 작품은 달준에게 작품 해주었는데 이로써 달준이라는 인물을 다른 뚜렷한 사료가 나오기 전까지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으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책속으로 추가>
추사께서 돌아가시자 이상적이 눈물을 흘리며 지은 시로 진실된 사제간의 관계를 보여주어 현대에 시사하는 바도 크다 할 수 있다. 또 '소심란'의 의미를 알아보면 '빈마음의 난, 무념 난' 등으로 그 풀이가 가능한바, '우연히 그렸더니 천연의 본성이 드러났네'라는 화재와도 부합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吳小山見而豪奪 可笑'라는 문구의 해석도 '오소산이 보고 좋아하며 빼앗으려하니 가히 우습다'가 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 난초를 소산 오규일이 빼앗아갔다는 일화도 잘 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始爲達俊放筆 只可有一不可有二. 仙客老人'이라 제하신 것으로 보아 이 작품은 달준에게 작품해 주었는데 이로써 달준이라는 인물을 다른 뚜렷한 사료가 나오기 전까지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으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목차
목차
들어가는 글ㆍ09
작품ㆍ13
Ⅰ.《서원아회첩西園雅會帖》ㆍ14
Ⅱ.《퇴우이선생진적첩退尤二先生眞蹟帖》ㆍ21
Ⅲ.〈인정향투란人靜香透蘭〉ㆍ30
논고 및 설명ㆍ33
Ⅰ.《서원아회첩西園雅會帖》의 재구성ㆍ34
Ⅱ.《퇴우이선생진적첩退尤二先生眞蹟帖》의 제고찰ㆍ136
Ⅲ.〈인정향투란人靜香透蘭〉- 추사 소심란素心蘭(불이선란) 연구의 제문제ㆍ216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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