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장독대 길 가장자리에 무지개가 펴다(당그래 젊은 시인선 11)
천혜영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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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혜영, 슬픔을 승화시키는 폭넓은 시적 세계
천혜영은 보이는 것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도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다. 그의 상상력은 달콤하다. 그리고 다채롭다. 그의 심성처럼 맑고 투명하다. 그의 시는 맨몸으로 달려나와 새소리 바람소리 벗하며 소리 없이 피는 산목련처럼 깨끗하다. 이 외로운 영혼의 빈 잔에 채워진 시를 음미하다 보면 그의 따뜻한 마음이 피부 깊숙이 전해져 오고, 웃음과 여유를 잃지 않으려는 애틋한 몸짓이 가득 담겨 찰랑거리는 게 보인다.
- 도종환 (시인)
내 스무 살 즈음에 태어난 글들이 이제야 부끄러움을 벗을 수 있었던 건 아마도 나에게 과분한 그들의 사랑덕분일 것이다.
“행복한가요 그대”
여행 끝에 만난 김제동의 톡투유는 나를 어리석은 바보에서 진정한 바보로 가는 문을 열어주었다.
말없이 품어주던 눈빛과 기꺼이 내어주던 무릎에 긴장한 마음이 와르르 쏟아 내렸다.
그의 덕분인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증명들로 고생했던 시간들이 오히려 힘이 된 이 여름날이 뜨겁지만 덥지 않은 이유이다.
나는 마땅히 당당해야함에도 습관적으로 움츠러들었다.
그럼에도 두 손 들어 응원해준 손길에 감사하고 싶다.
나는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이 새롭게 깨끗하다.
- 천혜영
천혜영은 보이는 것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도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다. 그의 상상력은 달콤하다. 그리고 다채롭다. 그의 심성처럼 맑고 투명하다. 그의 시는 맨몸으로 달려나와 새소리 바람소리 벗하며 소리 없이 피는 산목련처럼 깨끗하다. 이 외로운 영혼의 빈 잔에 채워진 시를 음미하다 보면 그의 따뜻한 마음이 피부 깊숙이 전해져 오고, 웃음과 여유를 잃지 않으려는 애틋한 몸짓이 가득 담겨 찰랑거리는 게 보인다.
- 도종환 (시인)
내 스무 살 즈음에 태어난 글들이 이제야 부끄러움을 벗을 수 있었던 건 아마도 나에게 과분한 그들의 사랑덕분일 것이다.
“행복한가요 그대”
여행 끝에 만난 김제동의 톡투유는 나를 어리석은 바보에서 진정한 바보로 가는 문을 열어주었다.
말없이 품어주던 눈빛과 기꺼이 내어주던 무릎에 긴장한 마음이 와르르 쏟아 내렸다.
그의 덕분인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증명들로 고생했던 시간들이 오히려 힘이 된 이 여름날이 뜨겁지만 덥지 않은 이유이다.
나는 마땅히 당당해야함에도 습관적으로 움츠러들었다.
그럼에도 두 손 들어 응원해준 손길에 감사하고 싶다.
나는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이 새롭게 깨끗하다.
- 천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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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슬픔을 승화시키는 폭넓은 시적 세계
서창원(시인)
나팔꽃(지은이의 인터넷 대명)은 언어 구사 능력이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매우 부자유스럽다. 그럼에도 그녀는 도전적으로 언어를 시도한다. 처음에는 잘 알 수 없지만 그녀가 표현코자 한 말들은 감전되어 오듯이 이해된다. 그녀의 시 세계는 바로 그녀의 복음과 소망을 담은 가훈과 같은 것이다.
그녀가 쓴 시들은 그녀에서 믿음 같은 것이다. 시는 마음을 담아내는 언어적 기호로 된 회화이다. 나팔꽃은 시를 쓰지만 자신의 시를 언어로서 재현하는 데는 한계를 가진다. 그녀는 그것을 늘 아픔이며 어두움이라 보고 있다. 사람들은 말로서 의사를 소통한다. 그리고 말을 하기 위해서 생각한다.
그 생각을 절제된 언어로 다른 사람에게 전한다. 이것이 대화이다. 만약에 그러한 기능이 잘 안 된다면 얼마나 불행한 것인가. 그녀의 간결한 시는 그녀의 도전적 태도와 일상의 습관에서 빚어낸다. 그녀의 시적 표현은 거두절미하여 알맹이만 들어내는 담백한 맛을 준다.
시어의 선택은 그녀의 한적 슬픔의 마디와 같이 얽혀있다. 그러나 그녀는 시를 단축시키는 재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시어에 은닉되어 있는 애잔을 출렁이게 하는 교감신경이 있는 것처럼 그녀의 시는 마치 건드리면 터지는 지뢰와 같은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
나는 작년 어느 망년회의 모임에서 나팔꽃을 처음 보았다. 그리고 내 옆에서 시 낭송하는 광경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열심히 자작시를 쓰고 있었다. 아마 시를 낭송하려나보다 생각했다. 그녀는 자기도 시 낭송을 하고 싶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녀가 읽고 있는 시는 제대로 읽히는 것이 아니라 음정만 전달되는 것이다. 나는 놀랬다. 그럼에도 그녀는 한 자 씩 힘주어서 자작시를 또박또박 낭송했다. 그러나 전달해오는 언어적 정확성은 거의 상실한 오류의 탁음이었다. 나는 그녀가 언어장애자인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나팔꽃의 그러한 행동은 좌중을 숙연하게 하였다. 그녀의 시 낭송은 나를 슬프게 고문했다. 나팔꽃은 서툴지만 마음속에 뭉쳐진 언어를 풀어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러나 잘 풀리지 않았다. 말을 모방하는 입놀림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녀가 시를 읽고 난 후 그 언어적 시늉이 반사되어 한 줄씩 완전한 시적 감동으로 다가왔다.
새로운 네모난 탁자에 / 유리컵들이 서서 키 재기를 하다가 / 파리똥 풀로 담근 술이 채워지자 / 도톰한 입술과 입맞춤하고 / 뜨거운 목구멍으로 미끄럼을 탄다 / 붉어진 얼굴에 백지를 갖다대고 / 검은 잉크로 또 다른 나를 그린다 // 거울 속에 나는 놀랬다 / 강하게 피었다가 / 너의 담배연기에 나팔꽃처럼 / 희미하게 시들어지는 / 눈 내리는 날에 나를 보았다 / 나는 놀랬다 / ―<작은 믿음> 전문
이 시는 나팔꽃이 자작하여 즉석에서 낭송한 작품이다. 작품에서 풍기는 시의 세계는 전라도 어느 시골에서 가져 온 파리똥 풀로 담근 술을 축배로 드는 순간 술잔에 뜬 자신의 얼굴에서 발견한 현상의 내면세계를 표현해 낸 것이다. 알코올에 희석되는 자신의 그림자를 술잔에서 발견한다. 술잔에 뜬 그녀의 얼굴, 곧 자신의 나팔꽃임을 발견한다. 나팔꽃은 아침의 희망이다. 늘 밖을 열망하여 피어난다. 담 위에서 밖을 내다보며 그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이렇게 자신을 시적인 영감의 세계로 진입시킨다. 그리고 알코올에 끌려들어 간 자신은 다른 내면의 모순 같은 것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한다. 그녀는 알코올에 녹아 들어간다. 취하면서 그리고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한다. 나는 그녀가 불완전한 언어로 낭송한 위의 시를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이 시는 그녀의 등단시가 되기도 한 것이다. 그녀는 이처럼 시의 세계는 자신과의 부단한 싸움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녀의 시중에서「발음교정」이라는 시를 보면 자신은 언제나 2살짜리 아이처럼 순진무구함의 언어적 세계에 머문 자신을 회화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파하 / 아야어여오요우유으이 / 똑 박 똑 박 / 천천히 / 웃지 말고 / 입 모양은 재대로 / 20년 동안 머리에 꾹 못 박아 놓고서 / 갖은 구박을 다 받아도 / 항상 잊어버린 채 2살짜리 아이처럼 웃고 / …… ―<발음교정>일부
나팔꽃의 시 세계는 동화적 세계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아직 때가 묻지 않은 시의 원액을 마시는 것처럼 맛깔스럽다. 그러나 그녀의 시는 성숙된 자기탐구를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고 있다. 그녀는 우주공간에 항성을 띄우듯이 시의 세계를 열려고 노력하고 있다. 「바깥 풍경」이란 시를 보면
어서 바깥풍경을 보자 / 유령 같은 바람만 불고 / 비가 서서 잠자고 있고 / 은행잎은 매달려 내 어깨에 앉기를 외치고 있고 / 샛강이 넘쳐 돌 위에 누워 있고 / 앵두도 붉게 터져 가고 있고 / 나는 종일 종일 무엇을 했나 / 밥상머리에 앉아 눈만 돌리고 있고 / 우리 엄마는 홍 고추 배만 가르고 있네 /
<비가 서서 잠자고 있다>라든가 <샛강이 넘쳐 돌 위에 누워 있고>라는 표현은 가히 그녀의 시적 성숙을 보인 메시지이다. 그만큼 그녀의 시적 모태는 무생물을 생명체로 바꾸는 시적 영감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
「천애(天愛)」에서 보면 하늘에 대한 동경과 사랑을 느낀다.
달도 별도 웃는 / 저 물방울 속에 / 큰 아이가 산다고 / 내게 말했지. / 꿈을 위해 달아오르듯 / 물방울사이로 튀어 올라오라고, / 그리고 저 언덕모퉁이에 앉은 /신이 난 내 새는 간다고 춤만 추고, /나는 달맞이꽃을 달고, 서성거리지. / 나는 울고, /새는 웃는 날은 늘 /오늘이었지.
그리고 곧 하늘은 절망이며 이르지 못하는 곳으로 본다. 하늘에 이르기 위해서는 날개를 가지기를 소망한다. 나와 맛서 있는 나와 새와의 사이에서 새는 날개가 있어도 울고, 나는 날개가 없어서 오르지 못하니 운다. 오늘의 현실은 이르지 못하는 것의 부자유다. 현실은 이처럼 양면의 날을 가진다. 그녀는 하늘을 그리워하고 사랑한다. 나는 오늘에 있을 뿐이라고 현실을 받아드린다. 자신 안에 모든 것이 있음을 발견한다.
그녀의 또 다른 시「서른즈음에…」에서 보면 절망의 무덤 같은 전율을 느끼게 한다.
/ 그는 진솔한 삶 속에서 죽었다. / 내가 자리 잡고 누울 즈음에 / 그는 어디에도 없었다. / 지금 편식되어 가는 삶을 제치고, / 지독한 죽음을 택했으니 / 얼마나 씁쓸했단 말인가 / 나는 알고 있었다./
이와 같이 서른이라는 나이는 인생의 반이다. 노년기를 뺀 서른은 인생의 반이다. 그래서 우리는 60을 정년으로 하는 사회적 제도로 나이를 재는 것이다. 이 서른 나이는 인생의 왕성한 정점에서 꺾기는 전환점이다. 이미 이 고비를 넘긴 나이는 편식되어 가는 삶이라고 그녀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아름답던 시절을 보낸 꿈같은 시간들이 묻혀 버린 무덤으로 그녀는 생각한다. 서른이란 무덤은 인생에 있어서 처절한 죽음이라 했다. 왜 그랬을까. 이는 그녀의 영혼에 매장한 서른의 육신을 쓸쓸하게 속삭이고 있는 지도 모른다. 또 다른 시 「바램」에서 보면 생명의 경외감을 감지한다. 수평선에 내리는 비의 우수적 슬픔 속에서도 인간은 즉 인생의 전반을 통해서 오는 비 같은 슬픔과 고통은 곧 순수의 손인 어머니가 있어서 극복이 가능하다.
담배연기와 배신이 서려 있는 / 저 토지의 수평선에 / 내리는 빗방울은 / 순수함에 멍든 어머니의 단 손길 / 새야, 깃털로 내 태아가 / 안정감을 느낀다는데, / 네 한 목숨 / 사랑이 있는 한 / 무엇이 두려우냐.
그리고 그 슬픔에서 탈출할 수 있다. 사랑이라는 깃털 같은 감지의 속성에 인간은 슬픔을 노래한다. 오로지 사랑이 있음에 어떤 두려움과 아픔도 치유할 수 있고 걷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으로부터의 일탈이다. 사랑은 자신에 묻혀 있는 배아의 목숨과 같다. 그녀는 사랑으로 모든 두려움을 걷어 낸다. 사랑은 두려움을 치유하는 약인 것이다.
「나의 장례식」에서는 영혼을 마음대로 주무른다. 신기에 가까운 운명을 마음대로 통제하는 것이다. 인간에 있어서 죽음이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그녀는 죽음과 같은 것도 잠시 쉬는 안식이라 규정한다. 그녀는 심장이 멈추어도 살아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암시한다. 오동나무로 집을 짓고 진흙구덩이를 파서 그것을 온돌이라 하여 그 거주지인 땅속을 회랑의 일부로 생각하며 거기서 휴식을 취한다 하였다. 맑은 날에 우는 새를 향해서 손을 뻗어 흔든다 하였다. 일반적으로 온돌은 한국적인 삶의 주거양식이다. 흙과 친밀성을 가지는 우리 민족은 흙에 돌아가는 것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사자에 대한 숭배사상은 극단적으로 발달하였다. 우리의 묘지문화는 그런 사자에 대한 친효사상이 기초가 되어 만들어 낸 민속문화라 할 수 있다. 그녀는 토속적 문화에 안주하고 싶은 지도 모른다. 먼 훗날에 새가 우는 산등성이 햇볕이 잘 드는 그곳을 잠시 휴식을 취하는 곳으로 택할는지도 모른다. 일탈의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다.
하얀 시트를 펼쳤다. / 그 위에 가만히 누워 감았다. / 그러나. / 이미 내 심장은 멈춰 굳어 가고 있었다. / 나뭇잎사귀에 주먹밥 세 개 싸매고, / 엽전 셋 냥을 손에 힘주어 쥐고, / 오동나무의 배를 갈라 집을 짓고, / 산만하게 집에 들어가 길을 떠났다. // 비포장 길을 십 리를 가고, / 천 리를 간다. / 이렇게 맑은 날에 / 우는 새들에게 손을 뻗어 흔들어 보았다. / 그리고, 온돌이 가득 깔린 / 흙덩어리 파서 덮고, / 잠시 휴식을 취한다./
「미술관」이라는 시에서는 사뭇 노을로 이 세상을 마음대로 그리기도 하며 지우기도 한다.
/ 산과 강 사이 있습니다. / 그 거울 속에서 너는 / 노을로 세상을 지워가고, / 다시 시계를 그리며,/ 과거를 지렁이처럼 꿈틀꿈틀 /회상했습니다. /
강은 늘 노을에 물들어 간다. 마치 추상화 한 폭 같은 자연의 연속, 무상은 변화 속에 반복을 통해서 다시 태어난다. 재생하기 위해서 만물은 본질적으로 소멸한다. 환생과 같은 것이다. 만물은 그렇게 변화하면서도 영원을 향해 간다. 어느 미술관에서 감상하는 동양화 한 폭이다. 자연이 연출하는 미적 본질은 그것이 비극도 희극도 아닌 쉼 없이 움직이고 있는 시간적 소모에 불과하다. 시간은 우리에게 회상을 가능케 한다. 시간은 존재의 이유이다. 시간은 생명의 척도이다. 살아 있음은 시간의 감지가 가능할 때 이루어진다.
/나는 낡은 틀을 파도로 무너트려 / 매화꽃과 물로 비지고, /화음으로 말렸습니다 / 아슬 / 아슬하게 / 얼굴을 맞대고, / 거울 속 세상을 보니 / 새콤한 딸기를 먹는 듯한 느낌 / 순수했습니다. /
그녀는 과감하게 낡은 틀에서 깨어나고 싶어 한다. 일상의 일이나 생활에서 어떤 깨우침의 다른 피안을 향해서 가고자 한다. 거울처럼 들여다보는 강물 속에서 그녀는 일상의 것을 순수로 환원시킨다. 그림을 그려내듯이 그래서 강에 녹아든 노을에 그녀는 마음의 붓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영혼을 그려내는 그 판타지의 작품을 연상한다.
「저녁」이라는 시에서는 한 폭의 판화를 본다. 잘 어울리는 농촌의 한 단면을 묘사해낸 듯이 그녀의 손에 묻은 노을은 산나물을 버무리는 양념이며, 수박을 먹으며 한없이 씨를 뱉어내는 단점의 퇴락은 삶의 어떤 미련 같은 것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그녀는 생활의 깊은 속까지 들어가서 시심을 울어내고 있다. 과연 시 맛을 버무려 내는 그녀의 마음은 손끝으로 나물을 버무리듯이 시를 마음의 고운 양념으로 버무려 내는 것이다.
/ 무지개 저녁노을 내 손에 묻혔다. / 언덕 넘어서 경운기에 오른 부모님이 보일 듯 한다. / 산나물로 밥을 짓고, 노을은 창 중턱에 걸어 놓았다. / 농사일의 근심으로 고구마, 옥수수와 씹어 삼켰다./ 나도 수박씨에 단점을 담아 한 없이 뱉었다. / 저녁노을은 내 손안에서 조금씩 지워져 간다. / 모기향 피우고, 마루에 누워보지만, / 모기, 나방들의 나들이로 설 잠잔다. / 이렇게 또, 하루를 스치며, 별을 헤아린다. /
한편 「구상」이란 시에서 표현하고 있는 '/나는 연어를 성경에 구어 / 돌들에게 던져 주었다./'
성경에 연어를 군다는 것은 매우 깊은 믿음을 의미한다. 믿음을 연어에 비유해서 성경 말씀으로 믿음을 구워낸다. 그것을 돌처럼 닫혀 있는 사람들의 맹한 무지에 그 연어구이인 믿음을 먹이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바라고 있다. 이 세상을 깊고 넓은 말씀의 원어로 믿음을 열고 싶은 것이다.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가히 시적 극치를 보인다.
「산(山)목련」에서는 그녀가 목련이 되고 싶은 소망을 담고 있다. 속세의 뒤뜰에서 새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며 안주하고 싶은 것이다. 현실로부터의 평화로운 세계를 동경한다. 시에서는 얼마든지 희망을 바랄 수 있다. 그리고 그녀는 무엇인가 평화를 갈망한다. 뿌리를 내리는 산 속의 산목련처럼 그대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것이다. 사랑의 뿌리를 내릴 그 소원의 깊은 산과 같은 것이 무엇일까 그녀는 그 안주가 필요하다.
/ 동토에 뿌리내려 겨울을 지내고, / 봄을 기다려 잎사귀 옷도 걸치지 않고, / 맨몸으로 달려나와 봄의 임을 맞이하는 / 난 목련꽃이고 싶다. / 우아한 색깔과 자태를 봄의 작은 편지로 /속세의 뒤뜰과 거리에서 임무를 마치고, / 산중턱 곳곳의 산 목련으로 피어라. / 누군가에게 소요하는 시간을 멈추게 하고, /그대 온 몸 깊이 내려앉는 산 목련이고 싶다. / 새소리 바람소리 벗으로 하며, / 시들지 않을 때까지 소리 없이 꽃을 피울 순간 / 난 그대 가까이 서 있는 꽃 등이 되고 싶다. /
「정원」에서보면 모든 꽃나무가 희망의 사다리같이 무지개로 솟아난다.
/ 벚꽃나무 / 장미 / 채송화/ 후리지아 / 사철나무 / 용담 / 붓꽃 / 구절초 / 국화 / 내 장독대 길 가장자리에 / 무지개가 펴다.
이 시는 그녀의 승천무이다. 꿈을 꾸는 것처럼 울안에서 늘 무지개가 솟아난다. 무지개를 타고 자신의 울타리 안에서 언제나 끝없이 솟아오른다.
「잊어버려도 남을 것은 남는다」에서는 <삶의 조각이 아니라면 아픔도 남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은 비파(琵琶)처럼 퉁기면 소리 내는 악기가 아니라 악기를 담고 있는 통인 것이다. 슬픔이란 내 안에 담겨있는 악기처럼 언제나 필요할 때 울리는 도구일 뿐이다. 슬픔도 필요한 삶의 요소이다.
/내게도 잊어버려도 남을 것들은 남는다. /우리는 성숙해 가는 동안에 있는 것 /비를 맞고, 떨어지는 낙엽도 제 뿌리에 남지 않았다. /생명이 결코, 순간에 머무르지 않듯 /사랑 또, 저 먼길 위에서 자라는 것이 /순조로움의 시계처럼 이루어지리니 /다시는 삶의 조각이 아니라면 아픔도 남지 않는다.
이처럼 나팔꽃은 새로운 시적 세계를 향해 잠입하고 있다. 아직은 낯설지만 친숙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녀의 시의 세계는 강물 속 깊이 하늘처럼 펼쳐있다. 그리고 그 강물 속에서 유영하는 물고기, 구름, 수초, 모래무지, 피라미 같은 것을 건져 올리고 싶은 것이다.
그녀는 추상의 세계와 미완 세계를 공유하며 자기를 완성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시적 영감을 통해서 자신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나팔꽃의 시는 자기 속의 깊은 애련에 머물러 있지만 폭넓은 시적 세계를 가진다. 그녀가 추구하는 희망과 소망의 세계는 늘 큰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작은 곳이다. 그녀는 불완전한 자기로부터 일탈해 가는 세계로 비상을 위해 날개 같은 허구적 소원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슬픔의 날개로 밝고 아름다운 세계를 향해 날아가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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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y301 <대화><전화> --혹은 <위험한 소풍>
살
았
다.
나는 살았다.
너는 내 무릎에 앉아 죽었다.
담배의 한모금과 찬미의 질투로
너는 내 옆에서 죽었다.
참참이 바라본 나는 더러운 오기로 살았다.
죽
었
다.
나는 죽었다.
너는 내 앞에서 슬픈 미소를 지며 살았다.
뜨거운 생명 따위에 너는 고목처럼 죽었다.
떠도는 영혼으로 찾아온 너는
허수아비 같은 내 몸뚱이로 살았다.
살았다!
죽었다!
순간, 소주 한잔의 여유로움 같은 차이.
― <대화> 전문
<잠시 흔들리는 슬픔>
예술과 인간성의 문제는 너무도 이질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또한 너무도 가까운 것이다. 초현실주의의 기두에 섰던 장 콕토는 아편 흡입자였고, 피카소는 86살에 자클린느와 사랑을 속삭였다. 이중섭은 평생을 아내와의 멀어진 사랑 속에서 살았고, 천상병은 괴로운 인생 속에서 귀천을 기리면서 살았다.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자. 어떤 사람은 시 하나 하나가 피아노의 한 건반을 찍어 누르는 것처럼 각각의 개성과 별개성을 지니지만, 어떤 사람은 그의 모든 시 속에서 한가지의 무드가 흐른다. (이것이 결코 진부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지금 평하고 있는 chy301, 나팔꽃은 인간성과 글이 너무도 닮아있을 뿐더러, 모든 시들이 하나의 파노라마처럼 흐르고 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일단 나는 그녀의 인간성이 아닌 그녀의 글을 살펴보기로 한다.
다시 얘기하지만, 그녀의 글에서는 일관된 하나의 무드가 흐르고 있다. 악의 없는 순수함, 그러나 그 속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어느 정도의 비극성. 특히나 어머니라는 오브제를 다루는 그녀의 손길은 나에게 어느 정도의 섬뜩함마저 느끼게 한다.
전화기가 울릴 때마다
어머니는 노래하며, 우셨다.
가만히 바라보는 내게서는
이유 따윈 없었고,
앞에 후회스러움만 남아 있었다 - <전화> 중에서
좁은 계단을 나는 엄마와 둘이
손에 불이 나도록 잡고 간다.
엄마의 왼발 나의 오른발 딛고,
구구단에서 알파벳까지 외우기 시작해
빨간 약초를 따서 고즈넉이 엄마 가슴에
품어 놓고, 나비 따라 낭떠러지에 가
안개가 가린 바다에 꿈의 별 하나,
엄마의 별 둘 떨어뜨려 보아도
메아리는 어디 숨었나..
대답도 없다, - <위험한 소풍> 전문
하지만 그 외에도 그녀의 시에는 분명 어디에선가 울부짖는 감성이 있다. 다른 시인처럼 전문을 올리기는 힘들다. 그것은 일관된 정서이니까. 그녀의 시에서 똑같이 찾을 수 있는 바로 그것이기 때문에.
한 가지 더. 그녀는 일단, 관념이라는 것에서 완전하게 자유롭다. 나는 그래서 그녀가 부럽다. 나 같은 사람처럼, A=B, B=C, A=C??? 하는 식의 공식에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는 그녀가 보고 있는 모든 사물, 그녀가 느끼는 모든 사물에 직접적으로 그녀의 감정을 담는다. 그렇기에 그녀의 글에서는 요즘 시인들에게서 결코 느낄 수 없는 가슴 저림, 그리고 그녀만이 가질 수 있는 악의 없는 순수함이 있는 것이다.
나는 정신분석가가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 사랑에 굶주려 있는 여인이고, 더 중요한 것은 그녀가 자신이 받고 있지 못하는 사랑을 자신의 글에 완전히 쏟아 붓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가 사물을 바라보는 태도는 결코 냉소적이지 않다. 그것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 슬픔에 애수가 담겨 있을지언정. 비극과 희극은 그녀의 글 내에서 더 이상 경계를 두지 않는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존재하는 모든 오브제들, 아버지, 어머니, 전화기, 외출 등…….
요컨대, 그녀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 나같은 사람이 복잡한 관념에 씨름하느라 생각조차 않는 것들을 - 세심하게 잡아내서 그녀의 눈으로 볼 줄 아는 여인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잠시잠시 스쳐가는 또는 베이스로 깔려 있는 슬픔은 무시할 수 없는 섬뜩함이요, 가슴 저리는 그 무엇이다. 어떤 사람이 모차르트에 대해서 한 말을 그녀에게 적용시킨다면 지나치다고 할까?
"<잠시 흔들리는 슬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모차르트를 이해할 수 없다."
랄프 왈도 에머슨은 말한다. "당신이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하게 했다면 당신은 성공한 인생이다." 그녀는 진정, 자신의 시를 읽는 사람을 기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녀의 시에서 냄새나는 휴머니즘이 풍겨 나오는 것이 아닌, 그 무엇을 위해서 영원히 전진하는 듯한 그녀의 진실됨이 말이다.
마지막으로 그녀를 너무도 잘 이해하게 해주는 한편의 시를 여기에 옮긴다. 이것은 그녀의 인간성을, 그리고 그녀의 순수함을, 그리고 그녀의 시에 담긴 일관된 그 무언가를 보여주고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파하
아야어여오요우유으이
똑 박 똑 박
천천히
웃지 말고,
입 모양은 제대로
20년 동안 머리에 꾸욱 못 박아 놓고서
갖은 구박을 다 받아도
항상 잊어버린 채 2살짜리 아이처럼
헤헤헤… 웃는…
또, 다시
가나다라마……
아야어여오……
발음해 보지만,
몇 단어 빼고는
모두 다 엉클어진 발음 뿐.
울고, 운다.
자존심이 상해서
체면 때문에 창피해서인가.
이유도 아닌 이유로 나는 운다.
그래도 다시!!
또, 다시
똑 박 똑 박
천천히
웃지 말고
입 모양은 제대로 하면서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파하...
아야어여오요우유으이...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그녀, 나는 그녀가 참으로 부럽다. 나팔꽃의 시제가 <대화>, 전화, <위험한 소풍>이다. 그녀는 사변의 경계심과 사물과 사물에 관한 <커뮤니케이션의 긴장 관계>가 그녀 시의 장점이다. 작가네트에서 기대가 가장 큰 시인 중 한 사람이다.
서창원(시인)
나팔꽃(지은이의 인터넷 대명)은 언어 구사 능력이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매우 부자유스럽다. 그럼에도 그녀는 도전적으로 언어를 시도한다. 처음에는 잘 알 수 없지만 그녀가 표현코자 한 말들은 감전되어 오듯이 이해된다. 그녀의 시 세계는 바로 그녀의 복음과 소망을 담은 가훈과 같은 것이다.
그녀가 쓴 시들은 그녀에서 믿음 같은 것이다. 시는 마음을 담아내는 언어적 기호로 된 회화이다. 나팔꽃은 시를 쓰지만 자신의 시를 언어로서 재현하는 데는 한계를 가진다. 그녀는 그것을 늘 아픔이며 어두움이라 보고 있다. 사람들은 말로서 의사를 소통한다. 그리고 말을 하기 위해서 생각한다.
그 생각을 절제된 언어로 다른 사람에게 전한다. 이것이 대화이다. 만약에 그러한 기능이 잘 안 된다면 얼마나 불행한 것인가. 그녀의 간결한 시는 그녀의 도전적 태도와 일상의 습관에서 빚어낸다. 그녀의 시적 표현은 거두절미하여 알맹이만 들어내는 담백한 맛을 준다.
시어의 선택은 그녀의 한적 슬픔의 마디와 같이 얽혀있다. 그러나 그녀는 시를 단축시키는 재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시어에 은닉되어 있는 애잔을 출렁이게 하는 교감신경이 있는 것처럼 그녀의 시는 마치 건드리면 터지는 지뢰와 같은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
나는 작년 어느 망년회의 모임에서 나팔꽃을 처음 보았다. 그리고 내 옆에서 시 낭송하는 광경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열심히 자작시를 쓰고 있었다. 아마 시를 낭송하려나보다 생각했다. 그녀는 자기도 시 낭송을 하고 싶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녀가 읽고 있는 시는 제대로 읽히는 것이 아니라 음정만 전달되는 것이다. 나는 놀랬다. 그럼에도 그녀는 한 자 씩 힘주어서 자작시를 또박또박 낭송했다. 그러나 전달해오는 언어적 정확성은 거의 상실한 오류의 탁음이었다. 나는 그녀가 언어장애자인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나팔꽃의 그러한 행동은 좌중을 숙연하게 하였다. 그녀의 시 낭송은 나를 슬프게 고문했다. 나팔꽃은 서툴지만 마음속에 뭉쳐진 언어를 풀어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러나 잘 풀리지 않았다. 말을 모방하는 입놀림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녀가 시를 읽고 난 후 그 언어적 시늉이 반사되어 한 줄씩 완전한 시적 감동으로 다가왔다.
새로운 네모난 탁자에 / 유리컵들이 서서 키 재기를 하다가 / 파리똥 풀로 담근 술이 채워지자 / 도톰한 입술과 입맞춤하고 / 뜨거운 목구멍으로 미끄럼을 탄다 / 붉어진 얼굴에 백지를 갖다대고 / 검은 잉크로 또 다른 나를 그린다 // 거울 속에 나는 놀랬다 / 강하게 피었다가 / 너의 담배연기에 나팔꽃처럼 / 희미하게 시들어지는 / 눈 내리는 날에 나를 보았다 / 나는 놀랬다 / ―<작은 믿음> 전문
이 시는 나팔꽃이 자작하여 즉석에서 낭송한 작품이다. 작품에서 풍기는 시의 세계는 전라도 어느 시골에서 가져 온 파리똥 풀로 담근 술을 축배로 드는 순간 술잔에 뜬 자신의 얼굴에서 발견한 현상의 내면세계를 표현해 낸 것이다. 알코올에 희석되는 자신의 그림자를 술잔에서 발견한다. 술잔에 뜬 그녀의 얼굴, 곧 자신의 나팔꽃임을 발견한다. 나팔꽃은 아침의 희망이다. 늘 밖을 열망하여 피어난다. 담 위에서 밖을 내다보며 그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이렇게 자신을 시적인 영감의 세계로 진입시킨다. 그리고 알코올에 끌려들어 간 자신은 다른 내면의 모순 같은 것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한다. 그녀는 알코올에 녹아 들어간다. 취하면서 그리고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한다. 나는 그녀가 불완전한 언어로 낭송한 위의 시를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이 시는 그녀의 등단시가 되기도 한 것이다. 그녀는 이처럼 시의 세계는 자신과의 부단한 싸움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녀의 시중에서「발음교정」이라는 시를 보면 자신은 언제나 2살짜리 아이처럼 순진무구함의 언어적 세계에 머문 자신을 회화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파하 / 아야어여오요우유으이 / 똑 박 똑 박 / 천천히 / 웃지 말고 / 입 모양은 재대로 / 20년 동안 머리에 꾹 못 박아 놓고서 / 갖은 구박을 다 받아도 / 항상 잊어버린 채 2살짜리 아이처럼 웃고 / …… ―<발음교정>일부
나팔꽃의 시 세계는 동화적 세계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아직 때가 묻지 않은 시의 원액을 마시는 것처럼 맛깔스럽다. 그러나 그녀의 시는 성숙된 자기탐구를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고 있다. 그녀는 우주공간에 항성을 띄우듯이 시의 세계를 열려고 노력하고 있다. 「바깥 풍경」이란 시를 보면
어서 바깥풍경을 보자 / 유령 같은 바람만 불고 / 비가 서서 잠자고 있고 / 은행잎은 매달려 내 어깨에 앉기를 외치고 있고 / 샛강이 넘쳐 돌 위에 누워 있고 / 앵두도 붉게 터져 가고 있고 / 나는 종일 종일 무엇을 했나 / 밥상머리에 앉아 눈만 돌리고 있고 / 우리 엄마는 홍 고추 배만 가르고 있네 /
<비가 서서 잠자고 있다>라든가 <샛강이 넘쳐 돌 위에 누워 있고>라는 표현은 가히 그녀의 시적 성숙을 보인 메시지이다. 그만큼 그녀의 시적 모태는 무생물을 생명체로 바꾸는 시적 영감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
「천애(天愛)」에서 보면 하늘에 대한 동경과 사랑을 느낀다.
달도 별도 웃는 / 저 물방울 속에 / 큰 아이가 산다고 / 내게 말했지. / 꿈을 위해 달아오르듯 / 물방울사이로 튀어 올라오라고, / 그리고 저 언덕모퉁이에 앉은 /신이 난 내 새는 간다고 춤만 추고, /나는 달맞이꽃을 달고, 서성거리지. / 나는 울고, /새는 웃는 날은 늘 /오늘이었지.
그리고 곧 하늘은 절망이며 이르지 못하는 곳으로 본다. 하늘에 이르기 위해서는 날개를 가지기를 소망한다. 나와 맛서 있는 나와 새와의 사이에서 새는 날개가 있어도 울고, 나는 날개가 없어서 오르지 못하니 운다. 오늘의 현실은 이르지 못하는 것의 부자유다. 현실은 이처럼 양면의 날을 가진다. 그녀는 하늘을 그리워하고 사랑한다. 나는 오늘에 있을 뿐이라고 현실을 받아드린다. 자신 안에 모든 것이 있음을 발견한다.
그녀의 또 다른 시「서른즈음에…」에서 보면 절망의 무덤 같은 전율을 느끼게 한다.
/ 그는 진솔한 삶 속에서 죽었다. / 내가 자리 잡고 누울 즈음에 / 그는 어디에도 없었다. / 지금 편식되어 가는 삶을 제치고, / 지독한 죽음을 택했으니 / 얼마나 씁쓸했단 말인가 / 나는 알고 있었다./
이와 같이 서른이라는 나이는 인생의 반이다. 노년기를 뺀 서른은 인생의 반이다. 그래서 우리는 60을 정년으로 하는 사회적 제도로 나이를 재는 것이다. 이 서른 나이는 인생의 왕성한 정점에서 꺾기는 전환점이다. 이미 이 고비를 넘긴 나이는 편식되어 가는 삶이라고 그녀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아름답던 시절을 보낸 꿈같은 시간들이 묻혀 버린 무덤으로 그녀는 생각한다. 서른이란 무덤은 인생에 있어서 처절한 죽음이라 했다. 왜 그랬을까. 이는 그녀의 영혼에 매장한 서른의 육신을 쓸쓸하게 속삭이고 있는 지도 모른다. 또 다른 시 「바램」에서 보면 생명의 경외감을 감지한다. 수평선에 내리는 비의 우수적 슬픔 속에서도 인간은 즉 인생의 전반을 통해서 오는 비 같은 슬픔과 고통은 곧 순수의 손인 어머니가 있어서 극복이 가능하다.
담배연기와 배신이 서려 있는 / 저 토지의 수평선에 / 내리는 빗방울은 / 순수함에 멍든 어머니의 단 손길 / 새야, 깃털로 내 태아가 / 안정감을 느낀다는데, / 네 한 목숨 / 사랑이 있는 한 / 무엇이 두려우냐.
그리고 그 슬픔에서 탈출할 수 있다. 사랑이라는 깃털 같은 감지의 속성에 인간은 슬픔을 노래한다. 오로지 사랑이 있음에 어떤 두려움과 아픔도 치유할 수 있고 걷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으로부터의 일탈이다. 사랑은 자신에 묻혀 있는 배아의 목숨과 같다. 그녀는 사랑으로 모든 두려움을 걷어 낸다. 사랑은 두려움을 치유하는 약인 것이다.
「나의 장례식」에서는 영혼을 마음대로 주무른다. 신기에 가까운 운명을 마음대로 통제하는 것이다. 인간에 있어서 죽음이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그녀는 죽음과 같은 것도 잠시 쉬는 안식이라 규정한다. 그녀는 심장이 멈추어도 살아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암시한다. 오동나무로 집을 짓고 진흙구덩이를 파서 그것을 온돌이라 하여 그 거주지인 땅속을 회랑의 일부로 생각하며 거기서 휴식을 취한다 하였다. 맑은 날에 우는 새를 향해서 손을 뻗어 흔든다 하였다. 일반적으로 온돌은 한국적인 삶의 주거양식이다. 흙과 친밀성을 가지는 우리 민족은 흙에 돌아가는 것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사자에 대한 숭배사상은 극단적으로 발달하였다. 우리의 묘지문화는 그런 사자에 대한 친효사상이 기초가 되어 만들어 낸 민속문화라 할 수 있다. 그녀는 토속적 문화에 안주하고 싶은 지도 모른다. 먼 훗날에 새가 우는 산등성이 햇볕이 잘 드는 그곳을 잠시 휴식을 취하는 곳으로 택할는지도 모른다. 일탈의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다.
하얀 시트를 펼쳤다. / 그 위에 가만히 누워 감았다. / 그러나. / 이미 내 심장은 멈춰 굳어 가고 있었다. / 나뭇잎사귀에 주먹밥 세 개 싸매고, / 엽전 셋 냥을 손에 힘주어 쥐고, / 오동나무의 배를 갈라 집을 짓고, / 산만하게 집에 들어가 길을 떠났다. // 비포장 길을 십 리를 가고, / 천 리를 간다. / 이렇게 맑은 날에 / 우는 새들에게 손을 뻗어 흔들어 보았다. / 그리고, 온돌이 가득 깔린 / 흙덩어리 파서 덮고, / 잠시 휴식을 취한다./
「미술관」이라는 시에서는 사뭇 노을로 이 세상을 마음대로 그리기도 하며 지우기도 한다.
/ 산과 강 사이 있습니다. / 그 거울 속에서 너는 / 노을로 세상을 지워가고, / 다시 시계를 그리며,/ 과거를 지렁이처럼 꿈틀꿈틀 /회상했습니다. /
강은 늘 노을에 물들어 간다. 마치 추상화 한 폭 같은 자연의 연속, 무상은 변화 속에 반복을 통해서 다시 태어난다. 재생하기 위해서 만물은 본질적으로 소멸한다. 환생과 같은 것이다. 만물은 그렇게 변화하면서도 영원을 향해 간다. 어느 미술관에서 감상하는 동양화 한 폭이다. 자연이 연출하는 미적 본질은 그것이 비극도 희극도 아닌 쉼 없이 움직이고 있는 시간적 소모에 불과하다. 시간은 우리에게 회상을 가능케 한다. 시간은 존재의 이유이다. 시간은 생명의 척도이다. 살아 있음은 시간의 감지가 가능할 때 이루어진다.
/나는 낡은 틀을 파도로 무너트려 / 매화꽃과 물로 비지고, /화음으로 말렸습니다 / 아슬 / 아슬하게 / 얼굴을 맞대고, / 거울 속 세상을 보니 / 새콤한 딸기를 먹는 듯한 느낌 / 순수했습니다. /
그녀는 과감하게 낡은 틀에서 깨어나고 싶어 한다. 일상의 일이나 생활에서 어떤 깨우침의 다른 피안을 향해서 가고자 한다. 거울처럼 들여다보는 강물 속에서 그녀는 일상의 것을 순수로 환원시킨다. 그림을 그려내듯이 그래서 강에 녹아든 노을에 그녀는 마음의 붓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영혼을 그려내는 그 판타지의 작품을 연상한다.
「저녁」이라는 시에서는 한 폭의 판화를 본다. 잘 어울리는 농촌의 한 단면을 묘사해낸 듯이 그녀의 손에 묻은 노을은 산나물을 버무리는 양념이며, 수박을 먹으며 한없이 씨를 뱉어내는 단점의 퇴락은 삶의 어떤 미련 같은 것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그녀는 생활의 깊은 속까지 들어가서 시심을 울어내고 있다. 과연 시 맛을 버무려 내는 그녀의 마음은 손끝으로 나물을 버무리듯이 시를 마음의 고운 양념으로 버무려 내는 것이다.
/ 무지개 저녁노을 내 손에 묻혔다. / 언덕 넘어서 경운기에 오른 부모님이 보일 듯 한다. / 산나물로 밥을 짓고, 노을은 창 중턱에 걸어 놓았다. / 농사일의 근심으로 고구마, 옥수수와 씹어 삼켰다./ 나도 수박씨에 단점을 담아 한 없이 뱉었다. / 저녁노을은 내 손안에서 조금씩 지워져 간다. / 모기향 피우고, 마루에 누워보지만, / 모기, 나방들의 나들이로 설 잠잔다. / 이렇게 또, 하루를 스치며, 별을 헤아린다. /
한편 「구상」이란 시에서 표현하고 있는 '/나는 연어를 성경에 구어 / 돌들에게 던져 주었다./'
성경에 연어를 군다는 것은 매우 깊은 믿음을 의미한다. 믿음을 연어에 비유해서 성경 말씀으로 믿음을 구워낸다. 그것을 돌처럼 닫혀 있는 사람들의 맹한 무지에 그 연어구이인 믿음을 먹이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바라고 있다. 이 세상을 깊고 넓은 말씀의 원어로 믿음을 열고 싶은 것이다.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가히 시적 극치를 보인다.
「산(山)목련」에서는 그녀가 목련이 되고 싶은 소망을 담고 있다. 속세의 뒤뜰에서 새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며 안주하고 싶은 것이다. 현실로부터의 평화로운 세계를 동경한다. 시에서는 얼마든지 희망을 바랄 수 있다. 그리고 그녀는 무엇인가 평화를 갈망한다. 뿌리를 내리는 산 속의 산목련처럼 그대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것이다. 사랑의 뿌리를 내릴 그 소원의 깊은 산과 같은 것이 무엇일까 그녀는 그 안주가 필요하다.
/ 동토에 뿌리내려 겨울을 지내고, / 봄을 기다려 잎사귀 옷도 걸치지 않고, / 맨몸으로 달려나와 봄의 임을 맞이하는 / 난 목련꽃이고 싶다. / 우아한 색깔과 자태를 봄의 작은 편지로 /속세의 뒤뜰과 거리에서 임무를 마치고, / 산중턱 곳곳의 산 목련으로 피어라. / 누군가에게 소요하는 시간을 멈추게 하고, /그대 온 몸 깊이 내려앉는 산 목련이고 싶다. / 새소리 바람소리 벗으로 하며, / 시들지 않을 때까지 소리 없이 꽃을 피울 순간 / 난 그대 가까이 서 있는 꽃 등이 되고 싶다. /
「정원」에서보면 모든 꽃나무가 희망의 사다리같이 무지개로 솟아난다.
/ 벚꽃나무 / 장미 / 채송화/ 후리지아 / 사철나무 / 용담 / 붓꽃 / 구절초 / 국화 / 내 장독대 길 가장자리에 / 무지개가 펴다.
이 시는 그녀의 승천무이다. 꿈을 꾸는 것처럼 울안에서 늘 무지개가 솟아난다. 무지개를 타고 자신의 울타리 안에서 언제나 끝없이 솟아오른다.
「잊어버려도 남을 것은 남는다」에서는 <삶의 조각이 아니라면 아픔도 남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은 비파(琵琶)처럼 퉁기면 소리 내는 악기가 아니라 악기를 담고 있는 통인 것이다. 슬픔이란 내 안에 담겨있는 악기처럼 언제나 필요할 때 울리는 도구일 뿐이다. 슬픔도 필요한 삶의 요소이다.
/내게도 잊어버려도 남을 것들은 남는다. /우리는 성숙해 가는 동안에 있는 것 /비를 맞고, 떨어지는 낙엽도 제 뿌리에 남지 않았다. /생명이 결코, 순간에 머무르지 않듯 /사랑 또, 저 먼길 위에서 자라는 것이 /순조로움의 시계처럼 이루어지리니 /다시는 삶의 조각이 아니라면 아픔도 남지 않는다.
이처럼 나팔꽃은 새로운 시적 세계를 향해 잠입하고 있다. 아직은 낯설지만 친숙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녀의 시의 세계는 강물 속 깊이 하늘처럼 펼쳐있다. 그리고 그 강물 속에서 유영하는 물고기, 구름, 수초, 모래무지, 피라미 같은 것을 건져 올리고 싶은 것이다.
그녀는 추상의 세계와 미완 세계를 공유하며 자기를 완성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시적 영감을 통해서 자신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나팔꽃의 시는 자기 속의 깊은 애련에 머물러 있지만 폭넓은 시적 세계를 가진다. 그녀가 추구하는 희망과 소망의 세계는 늘 큰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작은 곳이다. 그녀는 불완전한 자기로부터 일탈해 가는 세계로 비상을 위해 날개 같은 허구적 소원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슬픔의 날개로 밝고 아름다운 세계를 향해 날아가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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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y301 <대화><전화> --혹은 <위험한 소풍>
살
았
다.
나는 살았다.
너는 내 무릎에 앉아 죽었다.
담배의 한모금과 찬미의 질투로
너는 내 옆에서 죽었다.
참참이 바라본 나는 더러운 오기로 살았다.
죽
었
다.
나는 죽었다.
너는 내 앞에서 슬픈 미소를 지며 살았다.
뜨거운 생명 따위에 너는 고목처럼 죽었다.
떠도는 영혼으로 찾아온 너는
허수아비 같은 내 몸뚱이로 살았다.
살았다!
죽었다!
순간, 소주 한잔의 여유로움 같은 차이.
― <대화> 전문
<잠시 흔들리는 슬픔>
예술과 인간성의 문제는 너무도 이질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또한 너무도 가까운 것이다. 초현실주의의 기두에 섰던 장 콕토는 아편 흡입자였고, 피카소는 86살에 자클린느와 사랑을 속삭였다. 이중섭은 평생을 아내와의 멀어진 사랑 속에서 살았고, 천상병은 괴로운 인생 속에서 귀천을 기리면서 살았다.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자. 어떤 사람은 시 하나 하나가 피아노의 한 건반을 찍어 누르는 것처럼 각각의 개성과 별개성을 지니지만, 어떤 사람은 그의 모든 시 속에서 한가지의 무드가 흐른다. (이것이 결코 진부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지금 평하고 있는 chy301, 나팔꽃은 인간성과 글이 너무도 닮아있을 뿐더러, 모든 시들이 하나의 파노라마처럼 흐르고 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일단 나는 그녀의 인간성이 아닌 그녀의 글을 살펴보기로 한다.
다시 얘기하지만, 그녀의 글에서는 일관된 하나의 무드가 흐르고 있다. 악의 없는 순수함, 그러나 그 속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어느 정도의 비극성. 특히나 어머니라는 오브제를 다루는 그녀의 손길은 나에게 어느 정도의 섬뜩함마저 느끼게 한다.
전화기가 울릴 때마다
어머니는 노래하며, 우셨다.
가만히 바라보는 내게서는
이유 따윈 없었고,
앞에 후회스러움만 남아 있었다 - <전화> 중에서
좁은 계단을 나는 엄마와 둘이
손에 불이 나도록 잡고 간다.
엄마의 왼발 나의 오른발 딛고,
구구단에서 알파벳까지 외우기 시작해
빨간 약초를 따서 고즈넉이 엄마 가슴에
품어 놓고, 나비 따라 낭떠러지에 가
안개가 가린 바다에 꿈의 별 하나,
엄마의 별 둘 떨어뜨려 보아도
메아리는 어디 숨었나..
대답도 없다, - <위험한 소풍> 전문
하지만 그 외에도 그녀의 시에는 분명 어디에선가 울부짖는 감성이 있다. 다른 시인처럼 전문을 올리기는 힘들다. 그것은 일관된 정서이니까. 그녀의 시에서 똑같이 찾을 수 있는 바로 그것이기 때문에.
한 가지 더. 그녀는 일단, 관념이라는 것에서 완전하게 자유롭다. 나는 그래서 그녀가 부럽다. 나 같은 사람처럼, A=B, B=C, A=C??? 하는 식의 공식에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는 그녀가 보고 있는 모든 사물, 그녀가 느끼는 모든 사물에 직접적으로 그녀의 감정을 담는다. 그렇기에 그녀의 글에서는 요즘 시인들에게서 결코 느낄 수 없는 가슴 저림, 그리고 그녀만이 가질 수 있는 악의 없는 순수함이 있는 것이다.
나는 정신분석가가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 사랑에 굶주려 있는 여인이고, 더 중요한 것은 그녀가 자신이 받고 있지 못하는 사랑을 자신의 글에 완전히 쏟아 붓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가 사물을 바라보는 태도는 결코 냉소적이지 않다. 그것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 슬픔에 애수가 담겨 있을지언정. 비극과 희극은 그녀의 글 내에서 더 이상 경계를 두지 않는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존재하는 모든 오브제들, 아버지, 어머니, 전화기, 외출 등…….
요컨대, 그녀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 나같은 사람이 복잡한 관념에 씨름하느라 생각조차 않는 것들을 - 세심하게 잡아내서 그녀의 눈으로 볼 줄 아는 여인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잠시잠시 스쳐가는 또는 베이스로 깔려 있는 슬픔은 무시할 수 없는 섬뜩함이요, 가슴 저리는 그 무엇이다. 어떤 사람이 모차르트에 대해서 한 말을 그녀에게 적용시킨다면 지나치다고 할까?
"<잠시 흔들리는 슬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모차르트를 이해할 수 없다."
랄프 왈도 에머슨은 말한다. "당신이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하게 했다면 당신은 성공한 인생이다." 그녀는 진정, 자신의 시를 읽는 사람을 기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녀의 시에서 냄새나는 휴머니즘이 풍겨 나오는 것이 아닌, 그 무엇을 위해서 영원히 전진하는 듯한 그녀의 진실됨이 말이다.
마지막으로 그녀를 너무도 잘 이해하게 해주는 한편의 시를 여기에 옮긴다. 이것은 그녀의 인간성을, 그리고 그녀의 순수함을, 그리고 그녀의 시에 담긴 일관된 그 무언가를 보여주고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파하
아야어여오요우유으이
똑 박 똑 박
천천히
웃지 말고,
입 모양은 제대로
20년 동안 머리에 꾸욱 못 박아 놓고서
갖은 구박을 다 받아도
항상 잊어버린 채 2살짜리 아이처럼
헤헤헤… 웃는…
또, 다시
가나다라마……
아야어여오……
발음해 보지만,
몇 단어 빼고는
모두 다 엉클어진 발음 뿐.
울고, 운다.
자존심이 상해서
체면 때문에 창피해서인가.
이유도 아닌 이유로 나는 운다.
그래도 다시!!
또, 다시
똑 박 똑 박
천천히
웃지 말고
입 모양은 제대로 하면서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파하...
아야어여오요우유으이...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그녀, 나는 그녀가 참으로 부럽다. 나팔꽃의 시제가 <대화>, 전화, <위험한 소풍>이다. 그녀는 사변의 경계심과 사물과 사물에 관한 <커뮤니케이션의 긴장 관계>가 그녀 시의 장점이다. 작가네트에서 기대가 가장 큰 시인 중 한 사람이다.
목차
목차
책머리ㆍ5
독자가 쓴 시평/ 서창원(시인)ㆍ93
봄
-새콤할 수밖에 없었던 나날
고백ㆍ13
아기꽃샘 추위ㆍ14
어린 동백꽃ㆍ15
바램ㆍ16
마법은 달다ㆍ17
향(香)빛ㆍ18
라면철판볶음ㆍ19
위험한 소풍ㆍ20
미술관ㆍ21
탄 생ㆍ22
보이지 않은 젊은이ㆍ23
지붕ㆍ24
바닥목욕 전쟁 전ㆍ25
구상ㆍ27
산(山)목련ㆍ28
폭죽ㆍ29
시골마당ㆍ30
여름
-호기심 많던 빈 집터는 놀이터
늦여름ㆍ33
주(酒)술 수첩ㆍ34
소나무ㆍ35
빈 집ㆍ36
빨래하는 가족ㆍ37
목이 매인 아. 버. 지.ㆍ38
풍속화ㆍ39
고목(古木)ㆍ40
약속ㆍ41
여름ㆍ42
난(蘭)ㆍ43
바깥ㆍ44
정원(庭園)ㆍ45
가을
-늦여름에 나팔꽃을 꺾던 이른 저녁
합장ㆍ49
여행(旅行)ㆍ50
앵무새가 집으로 가는 길ㆍ51
작게 낮게 느리게ㆍ53
어떤 도형의 여행ㆍ54
저녁ㆍ55
잃어버린 것ㆍ56
강의 오후ㆍ57
그림자ㆍ58
잊어버려도 남을 것은 남는다ㆍ59
霧(안개)ㆍ60
방구차ㆍ61
사진ㆍ62
자작나무 뿌리에게ㆍ63
겨울
- 그림 그리는 시인의 밤
어느 인도(人道)에서ㆍ67
작은 믿음ㆍ68
반 란ㆍ69
핫도그ㆍ70
대화ㆍ71
전화ㆍ72
쪽잠ㆍ73
정지 상태ㆍ74
나체모델-여자ㆍ76
서다ㆍ77
서른 즈음에…ㆍ78
발음교정ㆍ79
비를 맞는 오후의 의문들ㆍ81
소녀의 소나기ㆍ82
내 절룩뱅이 걸음ㆍ83
프로이드 요리법ㆍ84
마네킹ㆍ85
부활ㆍ86
첫 짝궁ㆍ87
위로ㆍ88
저녁에 피는 꽃ㆍ89
구구(口口) 경기장ㆍ91
사방 뛰기ㆍ92
독자가 쓴 시평/ 서창원(시인)ㆍ93
봄
-새콤할 수밖에 없었던 나날
고백ㆍ13
아기꽃샘 추위ㆍ14
어린 동백꽃ㆍ15
바램ㆍ16
마법은 달다ㆍ17
향(香)빛ㆍ18
라면철판볶음ㆍ19
위험한 소풍ㆍ20
미술관ㆍ21
탄 생ㆍ22
보이지 않은 젊은이ㆍ23
지붕ㆍ24
바닥목욕 전쟁 전ㆍ25
구상ㆍ27
산(山)목련ㆍ28
폭죽ㆍ29
시골마당ㆍ30
여름
-호기심 많던 빈 집터는 놀이터
늦여름ㆍ33
주(酒)술 수첩ㆍ34
소나무ㆍ35
빈 집ㆍ36
빨래하는 가족ㆍ37
목이 매인 아. 버. 지.ㆍ38
풍속화ㆍ39
고목(古木)ㆍ40
약속ㆍ41
여름ㆍ42
난(蘭)ㆍ43
바깥ㆍ44
정원(庭園)ㆍ45
가을
-늦여름에 나팔꽃을 꺾던 이른 저녁
합장ㆍ49
여행(旅行)ㆍ50
앵무새가 집으로 가는 길ㆍ51
작게 낮게 느리게ㆍ53
어떤 도형의 여행ㆍ54
저녁ㆍ55
잃어버린 것ㆍ56
강의 오후ㆍ57
그림자ㆍ58
잊어버려도 남을 것은 남는다ㆍ59
霧(안개)ㆍ60
방구차ㆍ61
사진ㆍ62
자작나무 뿌리에게ㆍ63
겨울
- 그림 그리는 시인의 밤
어느 인도(人道)에서ㆍ67
작은 믿음ㆍ68
반 란ㆍ69
핫도그ㆍ70
대화ㆍ71
전화ㆍ72
쪽잠ㆍ73
정지 상태ㆍ74
나체모델-여자ㆍ76
서다ㆍ77
서른 즈음에…ㆍ78
발음교정ㆍ79
비를 맞는 오후의 의문들ㆍ81
소녀의 소나기ㆍ82
내 절룩뱅이 걸음ㆍ83
프로이드 요리법ㆍ84
마네킹ㆍ85
부활ㆍ86
첫 짝궁ㆍ87
위로ㆍ88
저녁에 피는 꽃ㆍ89
구구(口口) 경기장ㆍ91
사방 뛰기ㆍ92
저자
저자
천혜영
1980년 평택출생
1999년 대한 한겨레문학 신인상수상
2002년 현대 시문학 신인상수상
2003년 시집 내 장독대 길 가장자리에 무지개가 펴다. 출간
2010년 연극"생쥐와 인간"영심 易
2015 숭실사이버대학교 방송문예창작과 졸업
現 서울청운초등학교 근무
시집 집필 중
1999년 대한 한겨레문학 신인상수상
2002년 현대 시문학 신인상수상
2003년 시집 내 장독대 길 가장자리에 무지개가 펴다. 출간
2010년 연극"생쥐와 인간"영심 易
2015 숭실사이버대학교 방송문예창작과 졸업
現 서울청운초등학교 근무
시집 집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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